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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에 대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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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자각하고 상호주관성으로 타인과 소통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치열한 과정이고 도전으로서 자발성의 의미를 갖는다.

자발적 활동이란 고립이나 무기력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하는 강제적 활 동이 아니다. 외부에서 주어진 행동 모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자동인 형 같은 순응주의자의 활동도 아니다. 자발적이란 라틴어 어원 sponte의 뜻 그대로 자아의 자유로운 활동을 말한다. 라틴어 sponte는 ‘자유의지로’라는 뜻이다. 60)

에리히 프롬은 자유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고 도달해야 하는 것으 로 전진하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고61) 현실을 자 각하고 수동적 태도를 극복해야 억압이 자유로 변한다고 말한다.62) 프롬은 자발성을 갖는 사람들이 흔치 않지만 자발성을 갖춘 사람 대 부분이 예술가라고 기술한다. 이는 앞서 마르쿠제가 유희 즉 예술을 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는 말과 연결된다. 자유는 스스로 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교육과 문화산업에 의해 내면화된 전체주의적 인 가치관과 자기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자유의지를 길 러 판단의 기준을 자신 안에 두어야 한다. 또한 철학과 예술을 통해 끝없이 사유하고 상호주체로서 타인과 소통하여 자신의 기준을 계속 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와 같은 깊은 환영이 펼쳐진다. 선 위에 선이 그어지면서 아래의 선은 화 면 안으로 밀려들어 간다. 행위의 반복으로서 시간적 무한은 화면으로 옮 겨지면서 공간의 무한이 된다. <도판 43, 44>

<도판43> 송유미, 무한에 대한 상상 20-9, mixed media on canvas, 112 x 112 cm, 2020

<도판44> 송유미, 무한에 대한 상상 20-8, mixed media on canvas, 112 x 112 cm, 2020

무한 반복하는 행위의 연속은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에 있다. 춤을 추는 듯한 행위로 선을 그어가는 몰입 중에도 정신은 깨어있다. 선의 위치, 선 을 긋는 속도, 손에 힘을 주는 정도 등 에는 순간순간 정하는 예민한 기 준이 있다. 그것은 칸트의 미적 판단의 기준인 ‘목적 없이 목적에 부합 함’63)을 넘어 마르쿠제의 자유의 구조인 ‘ ‘법칙 없이 법칙에 부합함’64) 이라는 기준을 따른다. 춤을 추듯 몸과 정신을 자유롭게 하여 몰입하는 가운데도 수많은 확률 속에 정확한 위치와 형태를 찾아간다. 우주와 같이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만들고 그곳을 유영하는 상상을 하며 자유로운 유 희 속에서 화면 위에 선을 긋는다. 칸트가 말하는 ‘숭고미’처럼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무시무시한 바다나 거대하고 험준한 산의 무한함”65)

63) 칸트의 ‘목적 없는 합목적성’과 같은 의미이다.

64) H. 마르쿠제, op. cit., p.219.

65) 박일호, op. cit., 미학과 미술, 미진사, p.136.

넘어 더 크고 상상하기 힘든 시간과 공간을 상상하는 연구자의 유희는 자 유에 대한 갈망이다. ‘무한에 대한 상상’을 타이틀로 열었던 지난 개인전 에는 본 연구자가 생각하는 상상력과 자유를 담았다.

만일 상상력을 무한히 키울 수 있다면 인간의 정신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림에 무한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을 보는 사람은 얼마 나 많은 상상을 할 수 있을까?

무한대에서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한다. 가능할 때까지 무한히 하다 보면 불가능한 것이 없으니 그 말이 맞을 것이다. 화면 위에 무수히 반복되 는 선을 그으며 무한을 상상하는 것은 어쩌면 자유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선 위에 얹힌 선들은 아래의 선들을 뒤로 밀어내며 공간을 확장한다. 그 렇게 한없이 반복하다 보면 그림의 공간은 더욱 깊어진다. 행위의 반복은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쯤에서 그림의 입구로 나를 이끈다.

앞에 펼쳐진 그 끝을 알 수 없는 공간….

나는 붕새가 되어 무한대를 날아가는 상상을 한다. 시간과 공간의 끝이 없는 그곳에서 한 번 날갯짓에 구만리를 솟구쳐 오르고 소용돌이치며 자유 롭게 난다.

세상을 유한하게 생각하면 날 수 있는 공간과 시간도 유한해진다. 무한을 상상하고 무한의 공간을 그림에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림 앞에 선 관객은 작 가와 함께 그곳을 자유로이 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상상이 당신의 자유가 되길 바라며 선 위에 다시 선을 긋는다.

무한 공간을 만든다.66)

연구자는 선을 반복적으로 중첩하는 행위적 드로잉의 방식으로 평면에 공간의 깊이와 환영을 만든다. 이것은 작가가 만들어 내는 공간의 확장된 환영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관람자의 상상력으로 작품을 (재)창조케 함으로써, 추상표현주의 회화는 주관적인 자유를 확장했다”라는 멜 구딩 의 말처럼 본 연구자의 회화는 관람자를 통해 가능성을 더욱 확장하게 된

66) 본 연구자가 2021년 2월에 산수미술관에서 열었던 9회 개인전‘무한에 대한 상상’도록에 수록 된 작가 노트

다. 기운생동한 선들의 교차로 만들어진 내재한 이미지들은 관람자의 눈 과 경험을 통해 수만 가지의 형상이 되어 그들의 이성과 감성을 자극하며 다차원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것은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충동67) 과도 비슷하다. 예술로 승화한 욕구는 니체의 말처럼 삶의 고통을 환희로 바꿀 수 있고, 감상자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 여 멀리하기 쉬운 추상회화는 알고 보면 관람자의 기준으로 해석하고 유 희할 수 있는 예술이며 더 나아가 감상자는 그러한 유희를 통해 주체로서 사유하는 힘을 갖게 된다. <도판 45>

<도판45> 송유미, 무한에 대한 상상 20-4, mixed media on canvas, 112 x 112 cm, 2020

67) 박일호, op. cit.,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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