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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제기: 지역주의, 후진 정치로의 퇴행

한국사회에서 지역주의라는 개념은 매우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다.

지역주의는 정치사회 혹은 시민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익숙한 현상이 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은 지역주의를 전체사회의 발전을 위해 반드 시 청산되어야 할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지역주의 투표행태는 이미 자체 논리를 지 닌 듯하다. 지역주의 선거가 제도권 정치사회를 창출하고, 다시 정치권 은 지역주의를 조장하여 시민사회에 유사한 투표행태를 선동하는 악순 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역주의는 국가적 통합을 저해하기 때문에 민주 주의의 공고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이 사회에 팽배해 있다.

지역주의 선거는 이제 민주사회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합의구조마저 뒤흔드는 심각한 위기요소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문순보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한국정치),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연구단 BK21 RA. 최근 저서로『적대적 제휴-한미일 삼각안보체제』공저(2003)이 있음.

최근의 정치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것처럼 지역주의 선거는 격 렬한 양상으로 자주 비화되었다. 2002년 12월의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서도 기존의 지역주의 구도와는 판이한 양상이었지만, 여전히 특정 정 당의 후보들이 특정 지역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기록하는 지역주의 선 거행태가 지속되었다.1) 지역주의 선거에 대한 관심이 긍정적 차원의 희망이 아니라 후진적 정치과정으로의 퇴행에 대한 우려와 경계를 의 미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당과 야당을 가릴 것 없이 대권 주 자들은 승리를 위한 계산에 여념이 없다. 그 계산의 최종 결론이 지역 주의 감정에의 호소가 될 때 한국 정치의 현주소는 다시 일보 후퇴할 것이라는 점에서 지역주의 투표행태의 문제는 심각하다.

이 글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 필자는 한국정치에서 강력한 영 향력을 발휘해온 지역주의 선거의 원인을 분석할 것이다. 둘째, 필자 는 지역주의 선거의 기원과 그것의 심화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제2장 은 예비적인 고찰 단계이다. 여기서는 지역주의의 개념과 기원을 간 략히 언급한다. 제2장에서 필자는 지역주의가 역사적으로 뿌리깊었던 특정지역에 대한 편견과 배제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밝힐 것이다. 그 러나 역사적인 지역차별이 현대의 지역주의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 지적된다. 아울러 제2장에서 필자는 이 글에서 사용하고 있는 지역주의 선거의 개념을 조작적으로 정의할 것이다.

이 글에서 지역주의 선거는 권력지향적인 목적을 지닌 둘 이상의 지역 에서 타 지역에 대한 배타성을 기반으로 하여 정치권과 유권자들이 상 호공유된 인식에 따라 집단적으로 결집함으로써 정치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투표행태로 규정된다. 제3장과 제4장에서는 지역주의 선 거의 원인과 기원, 그리고 그것의 심화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먼저 제 3장에서는 정치세력과 유권자들이 자체의 인식과 이해를 공유함으로 써 집단적 결집 현상이 나타나고 그에 따라 지역주의 선거가 유발된다 는 점을 밝힐 것이다. 지역주의 선거의 원인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점

1) 2002년 12월 19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의 결과 분석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 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한국 지역주의 선거의 원인과 기원, 그리고 그 심화과정 209

은 선거 경쟁 자체가 지닌 냉혹함이다. 지역주의 선거는 대통령 중심 제 하의 권력 집중과 권력 장악을 위한 치열한 경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먼저 정치권에서는 패권적 권력경쟁의 수단인 유권자 동원전략 의 일환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한다. 유권자들은 주체적인 인식과 이해 를 바탕으로 하여 특정 정당과 강한 일체감을 느끼면서 집단적 결집을 행사한다. 경쟁적인 둘 이상의 지역에서 정치적 이해와 인식을 공유 하는 정치권과 유권자의 양 수준이 결부될 때 비로소 온전한 지역주의 선거행태가 발현된다. 제4장에서 필자는 한국정치과정에서 고질적으 로 되풀이되는 지역주의 선거의 기원이 역설적이게도 야당의 대선후 보 지명전에 있었다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또한 본격적인 지역주의 선거는 1971년에 치러진 제7대 대통령 선거였다는 점도 언급된다. 제 5장은 결론 부분이다. 여기서는 그 동안의 논의를 요약하고 필자의 견 해를 간략히 언급하는 것으로 그간의 작업을 종결지을 것이다. 위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자는 1963년부터 1997년에 이르기까지 한국정치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판단되는 주요 선거의 사례분석 에 치중했다.2) 하지만 선거에 작용했던 유권자들의 표심을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이 묘연하기 때문에 필자는 선거결과를 분석하는 데 각 후보 자들의 득표율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는 것을 밝혀둔다. 이 글에서 필자 는 하딘(Russell Hardin)의 ‘집단적 결집(collective coordination) 모델’

을 개별 사례에 적용하여 한국의 지역주의 선거 원인과 기원, 그리고 그 심화과정을 분석할 것이다.

2) 필자가 분석의 시기를 이와 같이 잡은 까닭은 한국 현대정치과정에서 지역주의 선거가 실제로 작동한 것은 1970년의 신민당 대선 후보 지명전이라는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그 이전의 시기들과 비교한다는 차 원에서 1963년의 선거와 1967년의 선거를 분석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필자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1970년의 야당 대선후보 지명전과 그 이듬해의 대통령 선거 에서 실제로 지역주의 선거가 시작됐다면, 그러한 주장은 이전 시기의 선거들과

‘단절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제4장에서 언급된다.

2) 기존 연구의 검토: 지역주의 선거의 원인은 정치권인가 시민사 회인가

지역주의의 발생원인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 주 목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에서는 ‘지역주의’와 ‘지역주의 선거’

를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역사적 측면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 역감정이 곧 지역주의 선거의 원인이라고 오해하거나, 혹은 지역주의라 는 개념으로 정치행위의 동기나 과정 자체를 분석하는 데 한계를 노정 하고 있다.

지역주의의 발생원인에 관한 첫 번째 범주는 정치ㆍ경제적 차별과 저항이라는 측면이다. 김석준(1992), 황태연(1996)을 비롯한 많은 이들 이 1960년대 이후 추진된 경제발전에서 지역간 격차와 호남 지역의 정 치적 소외에서 지역감정과 사회적 편견의 원인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 들은 제3공화국이 등장한 이후(1960년대), 정치 엘리트의 충원과정에서 영남권 인사들의 요직 독식과 경제자원의 불평등한 분산이 전라도 지 역의 정치적ㆍ경제적 소외를 가져왔으며, 이로 인해 호남인들의 정치적 박탈감이 확대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치ㆍ경제적 차별이 지역감 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일 수는 있어도 특정 지역에서 집단적 결집을 가져오는 규정변수는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으로는 지역주 의 집단투표가 발생하는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설명력이 약하다.

둘째는 정치적 동원을 중심으로 지역주의의 탄생을 설명하고자 하는 측면이다. 손호철(1997)은 야당내 지역주의적 파벌대립이 시민사회의 지역주의 투표성향에 선행하여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정 당과 정치인의 개별적 이해에 따른 정치적 분파가 지역주의를 심화ㆍ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즉, 손호철의 주장은 정당을 둘러싼 정치 과정이 지역감정을 반영하는 정도를 넘어서 지속적이고 능동적으로 지역주의 를 규정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한편, 김문조(1990)와 김만흠(1991)은 정치 행위자와 사회구조적 배경의 상관관계에 주목한다. 특히 김문조 는 지역의식의 ‘선택적 발현’은 지역격차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다른 주관적ㆍ배경적 요인들이 가미된 복합적 상호작용의 산물임을 지적한

한국 지역주의 선거의 원인과 기원, 그리고 그 심화과정 211

다. 그는 지역의식과 지역격차가 상호작용하는 정치적 과정으로서의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정치적 동원 가설은 정치적 지 역주의의 발생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가설은 정작 정치행위 변화의 동기나 과정에 대한 분석에는 미흡하다는 약점 을 지니고 있다.

셋째는 합리적 선택으로 지역주의 투표성향을 설명하려는 측면이다.

이러한 시도는 유권자들이 지역주의 선거를 가장 합리적인 선택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지역주의가 확산된다고 주장한다. 이갑윤(1998)은 정 치인의 지역주의적 동원전략과 유권자들의 지역적 결집이 주어진 상황 에서 유권자들의 투표행위는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하는 합리적 선택 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그는 지역주의를 지역민 간의 적대감의 문제로 간주하거나 상대 정당에 대한 불신감으로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투표권 행사에서 개개인이 보 이는 행태가 이익을 전제로 하는 합리적 계산에 의존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한국과 같은 특수한 정치문화를 지니고 있는 사회에서 유권자들의 투표행위를 이익에 기초한 합리적 선택으로만 환원하여 설 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에 빠질 개연성이 크다.

기존의 연구 내용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존 연구들은 지역주 의의 원인을 정권의 불균형 발전전략과 지속적인 정치적 동원의 측면, 그리고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로 제각기 수용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연구들에서 나타난 지역주의 개념은 정치권의 지역감정 조장과 유권자들의 정당 일체감에 따른 집단적 결집, 그리고 양측의 상호작용 에 의해 발생하는 지역주의 선거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에는 일정한 어 려움이 존재한다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지역주의란 정치권과 유권자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정치권의 조 작과 전략이 아무리 정교하고 선동적이라 할지라도 유권자의 실제 투 표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지역주의 선거라는 현상 자체는 존재하지 않 을 것이다. 또한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가 지역주의라면, 우리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당선율이 99%라는 경이적인 수치가 나왔

문서에서 저출산 고령화사회의 노인복지정책 (페이지 18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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