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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개방조치

2.1.1.

경제특구의 신규 설치와 운영

한반도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되던 2000년대 들어와 북한의 경제는 호전 되고 있었다. 이는 부분적으로 국제사회의 지원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단속 적 지원보다는 자본이 필요했다. 북한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노동력과 토지뿐이었으며 자본이 부족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자본을 유치할 수 있 도록 국내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북한은 자본 조달 통로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국내 산업의 침체로 수출을 통한 외화의 획득은 어려웠고 공공차관의 도입도 불가능했다. 북일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자본을 유치하는 방안도 불확실한 상황이었기 때문 에 기대할 수 없었다. 민간차관을 도입하는 것도 구부채 미해결에 따른 대 외신용 저하로 어려웠다. 결국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통하여 외화를 유 치하는 한편, 이를 토대로 수출을 추진하여 외화를 획득하는 방식이 당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김영훈 외 2013).

그러나 북한 내 체제 불안 우려를 불식시킬 수 없어 외국 기업으로부터 대규모 투자 유치를 위한 전면 개방을 추진하기는 어려웠다. 북한은 투자 를 유치하기 위하여 국지적으로 창구를 지정하고 집중 육성하는 방식을 활 용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북한은 외국자본을 유치하되 그들이 우려하는 자본주의가 본토에 깊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특구에 한해서 제한

적인 개방 전략을 취하였다.

북한은 2002년 ‘7․1 경제관리조치’를 발표하고 새로운 특구를 설치하 였다. 이는 경제발전을 추진하기 위한 전략으로 ‘섬’에 특구를 설치하여 시 장경제를 이식하고, ‘본토’에서는 계획경제를 추진하여 병행 발전시키겠다 는 ‘북한식 경제발전 모델’을 시행하기 위한 것이었다(김영훈 외 2013).

특구는 경제적․지리적 입지를 감안하여 저마다 특성화된 기능을 가지 고 외국자본의 유치창구 역할을 수행하고, 본토는 분권형 계획경제체제를 정착․효율화시켜 나가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수출기지화 하여 외화 획득 을 추진한다는 전략이었다. 따라서 이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포기하는 것 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정상화하려는 의도라 볼 수 있 었다. 다만, 열악한 경제상황, 체제 불안, 작은 경제규모를 감안한 현실적 인 방안을 선택한 것으로 판단된다(김영훈 외 2013).

당시 신규로 지정된 특구는 기존 ‘나진․선봉 지대’가 가지고 있던 단점 을 보완하여 제도·경제적으로 한 차원 더 발전된 형태로 개선된 것으로 평 가되었다. 그 차별성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측면으로 정리되고 있다.

첫째, 북한은 과거 소극적인 개혁·개방 정책에서 벗어나 보다 폭넓고 과 감하게 경제특구 개발을 추진하였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과거에 비해 다소 파격적으로 보이는 자본유치 조건을 내걸었으며, 기존의 ‘나진․선봉 지 대’ 재지정과 함께 신의주·개성·금강산으로 이어지는 경제특구를 추가적으 로 지정함으로써 지역적으로도 그 범위를 넓혔다. 이는 모든 접경 국가를 대상으로 투자 유치를 도모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먼저 발동하여 새로운 경제특구 설치에 앞선 선도적 조치를 취하였다는 점이다<표 2-5>. 이는 대외 경제개방의 확 대에 앞서 개방에 따른 부정적 연관효과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한편 긍정적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의도였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7·1조치는 가격·임 금·환율을 시장가격 수준에 맞추어 인상하거나 현실화한 것이다. 또한 이 조치를 통해 개별 기업소나 농장의 자율성과 권한을 강화하였는데, 이는 모두 개방 확대 후 겪게 될 문제에 미리 노출되어 적응력을 강화할 수 있

도록 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셋째, 새로운 특구 정책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으로, 특구행정에 외국인 을 책임자로 참여시키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는 외국인을 행정관리로 임명 함으로써 특구 운영의 투명성을 강조해 대외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의도였 다. 또한 이 조치는 과거 나진·선봉 지대 실패 요인 중 하나였던 경직된 행 정과 규제 조치를 타파해 기업 활동의 자율성과 편의성을 높여보겠다는 뜻 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넷째, 새로운 특구 개방의 한계도 있었다. 새로운 특구 역시 특구와 외부 세계의 차단보다 특구와 본토의 차단을 더욱 강조하는 형태로 추진되었다.

특히 신의주특구의 경우 입법·사법·행정 등이 완전히 분리된 특별행정구로 운영되도록 기획되었는데, 이는 각 특구를 최변방에 설정하여 경제개방을 추진하면서도 개방의 영향이 북한 주민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차단하 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김영훈 외 2013).

북한의 중앙 특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였다. 외자 유치 통로로 서 설치했던 나진·선봉과 신의주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지지 않자 북한은 그 후에도 여러 번에 걸쳐 특구를 개편해 가며 투자유치에 대한 노력을 지 속하였다. 2014년에는 원산·금강산 지역, 황해남도 강령 지구, 평안남도의 은성지구와 진도지구를 중앙급 개발구로 새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남한 투 자를 유치하기 위해 지정한 개성과 금강산 특구도 남한과의 관계 변화에 따라 대응해 왔다.

<표 2-5> 북한 특구의 운영 비교

구분 나진·선봉 특구 새로운 특구

경계의 관리 지대-외국 경계 단속 (강)

지대-본토 경계 단속 (약)

특구-외국 경계 단속 (강) 특구-본토 경계 단속 (약)

운영·관리 북한의 독자 운영

북한의 중앙행정부 직영

개방적 운영 특구에 독자성 부여

동반된 개혁조치 - 7·1경제관리개선조치

자료: 필자 정리.

<표 2-6> 북한의 중앙급 대외 경제특구의 변화

지역 주요 내용

나진·선봉

- 1991년 ‘나선자유경제무역지대(FETZ)’ 설치 - 2011년 ‘나선경제무역지대’로 개편 지정 - 2008년 북한과 러시아 ‘나진-하산 프로젝트’ 추진

※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일환으로 국내기업 컨소시엄 진출 검토 신의주 - 2002년 9월 ‘신의주특별행정구’로 재지정

- 2014년 ‘신의주국제경제지대’로 개편 지정 기타 - 2014년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신규 지정

- 2014년 황해남도 강령개발구, 평안남도 은정개발구, 평안남도 진도개발구 추가 지정 자료: 필자 정리.

<표 2-7> 북한의 중앙급 대남 경제특구의 변화

지역 주요 내용

개성

- 2002년 ‘개성공업지구’ 지정

- 2004~15년 공단 가동과 남북 간 물자 반출입 - 2014년 가동 일시중단, 2016년 폐쇄

금강산

- 2002년 ‘금강산 관광지구’ 지정 - 2008년 일시 폐쇄

- 2016년 폐쇄 자료: 필자 정리.

2.1.2.

교역·경협 관련 개방 노력과 남북 간 합의

첫째, 경의선·동해선 등 철도 및 도로 연결에 관해서는 남한이 북한 요 청에 따라 연결 공사에 필요한 장비와 자재의 제공에 응하였다. 둘째, 남북 한은 개성공단 사업의 기본 문제에 관해 논의하고 북한이 ‘개성공업지구 법’ 제정을 준비하였으며, 남북 양측이 실무협의회를 추진하기로 약속함으 로써 개성공단 설치를 구체화하였다. 셋째, 남북 간에 만성적인 문제로 되 고 있던 임진강 수해 방지에 관해서는 북측이 현지조사를 허용했다. 이와 함께 북측은 임진강의 기상·수문 정보를 우리 측에 통보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남한은 임진강 북측지역 산림녹화에 필요한 묘목과 자재를 지원 하기로 합의하였다. 넷째, 금강산댐(임남댐) 조사를 위한 양측의 실무접촉 을 갖기로 하고 공동조사 일정도 논의하기로 하였다. 다섯째, 남북 간에 체 결된 ‘경제협력 4대 합의서’(투자의 보장, 이중과세의 방지, 상사분쟁의 해 결, 청산결제 등)와 관련해 양측은 각자 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조치를 조속 히 마무리 짓기로 합의하였다. 여섯째, 남한이 북한에 쌀 40만 톤과 (차관) 비료 10만 톤을 (무상)제공할 것을 합의하였다.

2002년 11월에는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이하 남북경추위) 제3차 회의

가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남북한은 다음과 같은 3개 사항에 대해서 합의하였다. 첫째로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측이 국내외의 심각한 우려를 전달하고 북측이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 해결에 임할 것을 촉구하였 다. 이에 북한은 심사숙고 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둘째, 남북경추위 제2차 회의 합의사항과 분야별 실무협의회 진행경과를 점검하였다. 셋째, 남북 간 실질협력의 제도화에 관해 본격 착수하기로 하였다. 우선 경협제 도 실무협의회를 가동하여 남북 간 경제협력의 제도적 틀을 구축해 나가기 로 했으며, 4대 경협 합의서의 동시 발효와 12월 중순 경협제도실무협의 회 개최를 합의하였다(김영훈 외 2003).

2차에 걸친 남북경추위 회의 이후 남북한 당국자 간에 경제 협력 관련 의제로서 다루어지거나 추진된 것은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개성공단 개발

6 이하 내용은 김영훈 외(2003: 30-31)의 󰡔북한 특구 농업개발 방향과 협력과제󰡕

에 서술되어 있는 내용을 참고하여 재정리하였음.

문제, 쌀과 비료 지원, 임진강 수해 방지 및 임남댐 조사, 남북경협사업 확 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이다. 2002년 말까지 추진된 사업도 있고 착수조차 되지 않은 사업도 있지만, 남북 당국자 대화의 급속한 진전은

7·1조치, 북미 간 대화, 북일 간 대화 등과 함께 새로 지정된 경제특구의

7·1조치, 북미 간 대화, 북일 간 대화 등과 함께 새로 지정된 경제특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