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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걷기의 사회적 의미 변화

3) 보행권의 대두

(1) 보행권의 대두와 관련 법규

모터리제이션으로 말미암은 자동차 중심의 인식은 교통권과 이동권으로 대변되었 다. 교통 체증이나 교통사고 등 자동차로 인한 도시문제가 잇달아 심화되면서 보행 자의 권리로서 ‘보행권’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국내에서 보행권에 대한 인식과 필 요성이 제기된 것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후반부터 자동차 보 유량이 급증하면서 “자동차 중심의 도시 설계, 안전과 삶의 질보다는 빠름과 편리 함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인식, 이를 끌고 밀어주는 교통정책 및 법제 등이 주 류를 형성”(명묘희, 2015: 38)했던 터였다. 열악한 통학로 보행여건 및 안전문제에 격분한 학부모,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걸을 수 없는 장애인의 이동권 문 제 등 교통약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기 시작한 시민단체들은 이들의 입장을 대 변하면서 보행권이라는 개념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1993년 녹색교통운동이 ‘보행권 시장을 위한 도심지 시민걷기 대회’를 개최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당시 보행권을 주장했던 이들에게 보행권의 이념적인 기초는 “휴머니즘과 정의, 인권”이었다(명묘희, 2015: 39). 빠르게 자동차 중심으로 치우쳐버린 도시 공간구조 에서 보행권에 대한 접근 역시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존중하는 형평성 차원에서 접근하여야 하며, 도로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라는 가로 민주주의(Street Democracy)의 확산이 필요함을 제기”(명묘희, 2015: 39)했다.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이끌었던 보행권 운동은 다른 시민단체와의 연대, 전문가 와의 결합,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 등에 주목하며 활동 반경을 넓혔다. 정부·연구원 등 전문기관·이해관계자 집단·언론과 연대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냈다. 시민교 통환경센터(현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는 서울시의원, 서울시정개발연구원 (현 서울연구원) 등과 함께 서울시 보행환경 개선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추진했 다. 서울시는 1995년 ‘보행자 중심의 교통체계로의 개선’을 천명하면서 1996년에는 보행환경 관련 업무 주무부서로 ‘녹색교통계’를 신설했다. 그 후 1997년 1월 15일 서울시의회가 ‘서울특별시 보행권 및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면서 ‘인 간을 위한 도시 만들기 운동’에 계기를 만들었다. 이소영(2017)은 이러한 서울시의 노력은 비교적 꾸준한 성과를 내왔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997년 서울시가 보행 관련 단독 조례를 제정한 이래, 도시의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 한 계획과 사업으로 도시 정책의 패러다임이 보행을 중시하는 모드로 전환되고, 이 전 시대에 비해 1990년대 후반부터 보행 관련 계획과 사업에 많은 예산이 투입됐 다.

서울시에서 첫 발을 뗀 이후 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로 그 흐름이 번져나가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보행권 확산기’라 부를 만한 움직임이 생겨 났다. 1999년에는 제주시, 2000년에는 부산광역시와 광주시, 2001년에는 수원시, 목 포시, 대전광역시가 보행조례를 제정했다. 이에 힘입어 보행환경 개선사업이 이뤄졌 는데, 서울시의 ‘걷고 싶은 거리 만들기 사업’과 대구시의 ‘대중교통 전용지구’ 조성 등이 그 예로 꼽힌다.

200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보행권 보장 관련 법률이 제정되거나 혹은 개정되었다.

지자체 중심으로 운영되던 보행정책 및 사업이 여러 가지 문제를 드러내면서 중앙 정부 단위의 계획적이고 형평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개진되었던 것이 다. 2011년에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제정과 더불어 25개 지자체가 보행조례를 운영하고 있다. 우선 장애인, 고령자 등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 법」이 제정되면서 그 안에 교통약자의 보행편의와 안전을 제고하기 위한 내용이 포함됐다. 2012년 8월에는 보행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통행·생활할 수 있는 권리, 즉 보행권과 보행환경을 국가가 보장하고, 조성하도록 규정하는 ‘보행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보행을 행위로서가 아닌 생활환경의 중요한 지표

<표 1> 제주시 보행 조례의 목적과 정의

제1조 (목적) 이 조례는 제주시민(이하 “시민”이라 한다)의 보행권 확보와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기본사항을 규정하여 보행환경 시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함으로서 안전함 과 편리함,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걷고싶은 보행환경을 조성하여 시민의 보행권 을 확보하는데 목적이 있다.

제2조 (정의) 이 조례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보행권”이라 함은 보행자가 안전하고 편리하며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권리를 말 한다.

2. “보행환경”이라 함은 보행자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물리적·감각적·정신적 측면과 이에 관련된 제도등을 포함한 총체적 환경을 말한다.

3. “보행약자”라 함은 스스로의 힘으로 목적지까지 보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어린이, 노인, 장애인, 임산부등을 말한다.

로 인식”(최창규 외, 2013)이 확산되었다.

(2) 제주지역 보행 조례와 변천

1990년대 후반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보행 조례를 제정하는 움직임 가운데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인 1999년에 제주시에서 ‘제주시 보행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총 14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조례 제정의 목적과 정의에서 지향점이 드러난 다.

이어지는 제3조 보행환경개선사업의 종류에서 “제주시장은 보행약자를 포함한 모 든 보행자들이 안전하며 편안하고 쾌적한 통행이 될 수 있도록 하고, 걷고 싶은 도 시를 만들기 위하여 보행환경 개선사업을 포함하여 추진한다”며 그 지향점이 좀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 조례가 다루는 범위를 보면 제4조 보행환경개선사업추진, 제5조 쾌적한 보행공 간확대, 제6조 고령·장애인 보행 여건 개선, 제7조 어린이 통학로 개선, 제8조 사업 시행자등의 보행자 안전시설 설치, 제8조 보행환경개선계획 수립대상 사업, 제10조 보행환경개선계획 수립대상사업 시기, 제11조 기타 보행권확보에 관한 사항, 제12조 시민의 권리와 의무, 제13조 재원확보, 제14조 규칙 등 보행에 관한 모든 사항을 언

<표 2> 제주특별자치도 보행권 확보 및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조례의 목적과 정의

제1조(목적) 이 조례는 보행권 확보 및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기본사항을 규정함으 로써 제주특별자치도민의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환경을 조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이 조례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보행권”이란 보행자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다른 교통수단에 우선 하는 통행권리를 말한다.

2. “보행약자”란 어린이, 고령자, 장애인 및 임산부 등 일상생활에서 보행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급하고 있다.

이 조례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2007년 11월 7일자로 효력이 소멸됐다.

그로부터 10년 간 공백기를 거치고 난 뒤인 2017년 7월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같은 해 9월에 ‘제주특별자치도 보행권 확보 및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다. 이 조례의 제정 목적과 정의는 1997년 제주시의 그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설명이 간략해지고 규정하는 정의도 줄어들었다. 게다가 제3조 도지사의 책무, 제4조 도민의 권리와 의무 제5조 조성기준의 설정 제6조 재 정지원 등 제7조 보행약자의 보행여건 개선 제8조 시행규칙 등 개별 조문도 줄어들 었다.

제주지역에서도 보행권 개념이 대두된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보행권이 무엇인지 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보행자들은 보행 이라는 것을 권리로 인식보다는 이동의 욕구 정도로 인식해 왔던 것”(이성용, 2010) 이 그 배경일 테다. 제주에서의 보행권 인식은 “도로를 보행하는 보행자가 가능한 한 편안하게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는 권리”(이성용, 2010)여야 하며 이러한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보행하는 길, 즉 보도의 수평연결성 또는 수평이동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