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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단군조선이후의 역사

4. 발해와 고려

황의돈은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함과 동시에 북방민족을 대표하여 전통 을 차지할만한 나라이고, 󰡔삼국사기󰡕에 발해를 편입하지 않은 것만으로 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제왕운기󰡕에서 발해를 본기에 편입하여 신라와

69) 안재홍, 같은 책, 523쪽

같이 남북조로 하였으니, 역사가의 창견이 동시에 그 공이 위대하다고 한

라 하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고 한다.74) 유학자의 눈에는 성골장군의 존재 나, 당 숙종이 고려에 왔을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일제시기 최남선은 성 골장군을 단군설화와 관련지어 설명하는데 비해, 나카무라는 이것을 견 강부회하였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고려의 선조에 당 숙종이 있었다고 하 는 것은 금과 송이 멸망하고 원이 등장하자, 당의 혈통을 들어서 고려가 자신이 중화를 이었다고 하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이승휴가 고려를 소중화라고 하는 것은 당의 혈통을 이었다고 하는 것에서 나온 주 장이라면 송시열은 조선이 소중화라고 하는 주장은 명의 문화를 이었다 고 하는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황의돈은 금나라 사람의 조상 오고랄이 고려의 평주출생임을 증명하였 고, 고려과 금나라가 평등형제의 국교를 행하였음을 말하였다. 최익한은 상권의 금국기, 금나라 사람시,75) 금나라 조서76)를 특이 인용하고 주석한 것은 이채롭다고 평가하다.

5. 민속

이병기는 「날러드는 봉」이란 기사에서 봉새가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 라 한국에도 있다고 한다.77) 이는 최남선이 용이나 봉이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하는 주장과 대비가 된다.78) 이병기는 우리나라에 봉이 원래 있 다고 하는 근거를 고려 덕종때 봉새가 날라와서 가마귀떼를 몰아냈다고

74) 󰡔立齋集󰡕 권9 「東史評證」, 高麗自稱爲唐肅宗之後。又稱宣宗之後。又稱唐貴族。按三說皆無 稽。不過金蛙,解慕漱,高朱蒙,朴昔金金首露之說耳。李承休帝王韻記所謂聖骨將軍外孫。

又或謂高句麗之後者。亦未可攷。不足據也。

75) “‘연지는 신선이 살던 굴이고, 삼한은 부모가 살던 고향이다.’라고 하였으니, 대체로 근 본을 잊지 않은 것이다.” 이는 금나라가 고려를 부모국으로 인정하였다는 시이다.

76) “대금국 황제는 고려국 황제에게 글을 보낸다”라고 하여, 형제의 교분을 맺었다고 한 다.

77) 이병기, 「날러드는 봉」, 󰡔동아일보󰡕 1939.3.5 78) 최남선, 「民族志上의 虎」, 󰡔동아일보󰡕, 1926.1.29

하는 이야기와 이승휴의 『제왕운기』 “덕이 어찌 네 해에 그치랴, 봉새가 와 상서로다”고 한 구절을 들고 있다. 이글의 원문은 이제현의 󰡔익제난고

󰡕 권9에 나온다. 여기서는 『제왕운기』에 나오지 않고 속담으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한다.79) 그런데 『제왕운기』에는 “文景虎宣尤聖明, 龍與麟鳳來呈 瑞”과 “至今餘慶猶不窮, 鸞臺鳳閣流苗裔”라고 하고 있는데 전자의 주체는 중국 한나라의 문제, 경제, 무제, 선제이고 후자는 신라의 혁거세이다. 그 런데 이병기는 전자의 뒷부분과 후자의 앞부분을 혼용하여 쓰고 있다.

Ⅴ. 결론

1930년대 이승휴의 『제왕운기』와 『동안거사집』에 대한 논의는 단군에 대한 잠시 꺼져가던 불을 다시 일으키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제왕운기』

와 『동안거사집』의 발견과 발행은 촉매역할을 하였다. 그 중에서도 황의 돈과 나카무라는 발견과 발행에 역할을 하였고, 최익한은 이승휴에 대해 심도깊은 연구를 하였고, 정인보와 안재홍은 자기만의 역사관을 가지고 이승휴를 논평하였다. 정인보는 󰡔제왕운기󰡕에서 단군의 홍익인간을 말한 점에서 그것을 인정하였지만, 단군을 인간으로 보기 때문에 『제왕운기』

에 대해서 비판적이었고, 안재홍은 언어적 관점으로 『제왕운기』를 긍정적 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이승휴의 단군 기록 이 조선에서도 정통사관이 되었음을 논증한 점에서 일치한다. 고려 말에 이어 일제 강점기가 단군연구의 부흥기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나카 무라는 일본인 학자 답게 단군전설이 고려 말에 점차로 만들어진 인물이

79) 李齊賢, 曰頭陁山李承休帝王韻記, 曰德何止四年鳳鳥來呈瑞, 考之實錄無之, 惟俚語相 傳, 鳳鳥來儀於威鳳門, 群鳥隨而噪之, 鳳乃飛去, 國人憎烏, 少長彈射, 德宗一代京城無 烏, 云而爲群烏所遂, 豈, 曰鳳哉, 蓋韻記之無稽耳。德王居喪。能盡子之孝。爲政不改父之 道。任用舊臣徐訥,王可道,崔冲,黃周亮之儔。朝廷無欺弊。而民安其生。雖微鳳鳥。尊號曰 德。不亦宜乎。

고 『제왕운기』에 나타나는 단군의 강역은 고려시대의 판도를 넓히려는 욕 망으로 보고 있는데 비해 대종교계열의 학자들은 단군전설과 판도가 전 조선에 관계한 존재와 국가로 보고 있다. 이것이 한국인과 일본인이 단군 을 다르게 보는 점이다. 그에 대한 적절한 조명이 다시금 요망되는 바이 다. 일제 강점기에 이러한 단군연구가 주목되고 있지 않은 것은 단군연구 사에서 한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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