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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의 연속으로서의 미술사

문서에서 Ernst H. Gombrich의 회화적 재현론 (페이지 40-47)

곰브릭은 미술사는 양식의 변화란 각 시대의 이미지가 갖는 기능의 변화나 미술의 전통으로부터 제기된 문제에 따라 그 해결을 모색해 온 시도들의 연속 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이집트 미술에서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의 양식변화를 전통의 연속성과 개념적 이미지의 지속적 역할이란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먼저 이집트인들이 생각한 이미지의 기능은 초시간적(timeless)42) 개념적인 것이며 그에 따른 해결은 전형적인(typical) 상황들에 속하는 진술들(saying)이 었다.43) 따라서 이집트미술은 상형문자와 같은 개념적 이미지로 구성된다.

그리스 미술에서 추구한 이미지의 기능은 설화적(narrative)기능으로 이집트 미술이 ‘무엇’(what)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 그리스 미술은 ‘무엇’ 뿐만 아 니라 ‘어떻게’(how)까지도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상상력에 의존함으로써 신화 적 사건을 환기하고 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집트의 개념적 도식에 대한 끊임없는 수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44)

미술에서 곰브릭은 그리스 신화나 도덕적인 우화에서 ‘의식적인 허구 (conscious fiction)’가 해방되며 미술은 상상력에 의존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 은 그리스 문화에서 비판적인 이성(critical reason)이 대두했던 ‘깨어있는 자 를 위한 꿈’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플라톤이 주장하는 외관과 실 재간의 구분은 그 사이에 애매모호한 영역으로서 ‘깨어있는 자를 위한 꿈’을

41) Ibid., p.17

42) Ibid., pp. 122-123에서 재인용 43) Ibid., p. 124

44) 다른 어떤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예술가들도 학습과정을 거쳐 명료화되는 어법 이 필요했다. 그리고 고고학자들이 그 어법의 출발점을 고대 오리엔트예술에서 찾고 있다 는 것을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A & I., p. 133

결코 인정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그리스의 정신이 비판적 이성을 통해 이 애매모호한 영역을 인정한 것은 그리스 미술의 혁명적 성격이다. 즉 신화적 사건이나 전쟁의 기록을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으로 받아들였던 그리스인의 순 박한 정신에 비판적 이성이 싹틈으로써 그런 것들이 의식적인 허구로써 받아 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플라톤이 그의 저서 「공화국」에서 예술은 외관의 모방이라 하고 예술가는 공화국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했던 것은 그의 관심사였던 진실과 허위의 구 분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으며, 당시 예술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아니었다. 이 것은 그가 활동했던 B. C. 4세기 중반에 그리스미술은 절정에 달했고 단축법, 원근법 및 입체감 표현법이 등장했다는 것을 생각해 봄으로써 뒷받침 될 수 있다. 플라톤은 당시의 상상력을 이용한 이미지 대해, 우리가 현대미술에서 느 끼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며 이집트의 확고부동한 도식을 향수어린 심정으로 회고했을 것이다.45)

상상력을 이용하고 설득력 있는 이미지를 추구했던 고전적 그리스 미술은 고대 후기에 오면 동방종교의 영향으로 나타난 이미지의 의식(ceremony) 및 계시(revelation)의 기능에 의해 선별과 도태의 과정을 겪게 되며 고전적 그리 스 이전의 개념적 도식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이 새로운 방향을 쇠퇴라 보아 서는 안 되며 기능의 변화에 따른 문제해결의 연속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 야 한다.

중세(A. D. 3세기-A. D. 13세기)에는 가시세계와 미술의 접촉이 빈약해졌으 며, 서술과 교리전달이라는 기능을 위해 고대 고전주의 미술이 발전시킨 공식 들을 새로운 맥락에 알맞게 변형시키고 적용시켜야 했다.

르네상스시대는 설득력 있는 이미지를 추구한 점에서 고전적 그리스의 이상 으로 돌아 간 정확한 도식-묘사에 적용할 수 있는 보다 정확한 기준-을 마련 하기 위해 원근법이 연구되었고 사물의 구조에 대한 보편적인 지식이 탐구되 었다. 달리는 사냥개를 그리는 화가는 그의 시각이 바뀌면 그 도식도 수정되어

45) Ibid, pp. 127-133

야 한다는 것을 알고 여러 방향에서 그럴듯하게 보이는 사냥개의 3차원적 패 턴을 시각화 하는데 몰두하게 되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에는 지식과 예술 간의 자연스러운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때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사물의 구조에 몰두했던 것은 실제적인 (practical) 이유- 묘사에 적용할 수 있는 도식이 필요했기 때문 -에서이지 형 이상학적인 요구에 의해서는 아니다. 사물들이 본질(essence)을 결정하는 골 격(scaffolding)으로서의 구조(structure)의 개념 속에는 세계의 무한한 변화를 파악하기 위한 도식의 필요성이 반영되어 있다.46)

르네상스이후 인상주의 이전까지는 이런 도식의 연구가 계속되었고 중세에 서 인상주의 전까지 미술이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도식의 지배 및 전통의 고수란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인상주의자들에 의해 도식에 의한 전통적인 교수법은 도전을 받게 되며 이 들은 도식에 의해 틀 지을 수 없는 독특한 시각적 체험만이 예술가의 임무라 는 주장을 하게 된다. 또 이들은 아무 제약 없는 독창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여태껏 보아 온 그림에 대한 기억을 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순진무구한 눈의 회복’ 이나 ‘눈으로 본대로 재현 한다’는 구호 로 대표되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곰브릭은 전통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는 있 을 수 없다고 비판 한다. : 무언가를 망각하려 한다는 것은 전여 모르는 것과 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며 그들의 시도는 기존의 도식에 대한 학습으로 얻은 고양된 의식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즉 기존의 도식은 시각적 분류를 통 해 사물에 대한 인식능력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인상주의자들이 추구한 독특한 시각적 체험은 명료화되어 그 바탕이 이루게 되었다. 47)

이와 같이 ‘눈으로 본대로 재현한다.’ 는 요구에 집착했던 인상주의는 말기 에 이르게 되자, 그 요구 자체 내의 모순 - ‘보는 것’과 ‘아는 것’은 명확히

46) Ibid, pp. 152-155 47) Ibid., pp.174-178

구분될 수 없다는데서 나타나는 모순 - 으로 부터 문제를 야기하게 되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잔(Paul Cezanne, 1839-1906), 반 고호 (van Gogh, 1853-1890), 고갱 (Paul Gauguin, 1849-1903)의 시도를 거쳐 20세기 현대 미술로 이르게 된다.48)

우선, 세잔은 인상주의가 순간순간의 묘사에만 몰두한 탓으로 자연의 입체적 이고 영속적인 형태를 무시하게 되었다고 느끼고 이 둘 간의 조화를 꾀하고자 했으며, 반 고흐는 인상주의가 시각적 인상에 굴복하고 빛과 색의 광학적 성질 만을 탐구하여 예술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강렬한 정열을 상실하게 되었 다고 느끼고 감정표현을 추구했다. 마지막으로 고갱은, 인상주의 자연을 모방 하는 기교로 인해 예술가는 겉만 번지르르한 예술작품을 양산하는 천박한 기 술자가 되었고 자신의 영혼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느꼈다.

현대미술은 이런 불만에서 생겨난 것이며 이 세 사람의 화가가 모색했던 문 제해결의 시도는 세 가지 현대미술 운동에 이념의 바탕의 바탕을 마련해 주었 다. 세잔의 시도는 프랑스에서 큐비즘을 일어나게 했으며 반 고흐의 해결시도 는 독일 중심의 표현주의(Expressionism)에 영향을 미쳤고, 고갱은 다양한 형 태의 원시주의 (Primitivism)를 낳게 하였다.49)

인상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50)로 곰브릭은 초현실주의자 들의 ‘눈으로 본대로 재현한다.’ 는 요구에 대해 치중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화가가 현실의(혹은 상상의)사물을 재현할 때 주의를 살펴보며 모방하 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고 물감이나 형태를 가지고 요구된 이미지를 창조(형성) 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 이를 우리에게 다시 한번 인식시켜 주고자 한다. 우 리가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의 그림 속의 형태나 색체로 이

48) E. Gombrich, The Story of Art, London: Praidon 1960 (10th Edition), pp.427-428 49) Ibid., p. 422

50) 곰브릭이 『서양미술사 (The Story of Art)』(1950)를 완성한 해는 1948년이며, 액션 페인팅과 팝아트 등은 이 때를 전후하여 일어났던 미술운동들이다. 그러나 곰브릭은 이런 미술운동들에 대해 논평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이 진정으로 미술의 역사를 만들

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도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루어진 단서들이 자연 속의 하나의 사물을 의미했기 때문 이라고 주장한다.

이상에서 살펴 본 현대미술의 전개에서 주의를 해야 할 점은 큐비즘. 표현 주의, 프리미티즘이라는 세 가지 이념이 현대미술운동에 시간상으로 하나씩 차 례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들은 미술가들의 마음속에서 동 시에 상호작용하고 교차하곤 했던 세 가지 가능성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다. 옛날에는 모든 양식들이 보다 질서 있게 차례를 이어 계속되었다고 생각하 는 것도 어느 정도는 시간의 거리가 빚어 낸 착각인 것이다. 고딕과 르네상스 가 행진하는 병정처럼 하나 뒤에 다른 하나가 앞장서고 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시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급한 사람들은 오늘날의 역사가와 비평 가에게서 가장 새로운 ‘주의(ism)’가 무엇인지를 듣고 싫어한다. 물론 지금 현 재 진행되고 있는 가장 새로운 인물에 대해 논평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아 무도 말할 수 없다. 20세기 현대미술이 갖고 있는 시대적 특징이 있다면 모든 종류의 사고와 수법 및 재료에 대한 실험의 자유에서 찾을 수 있다.51)

20세기 현대미술은 이러 실험의 자유를 바탕으로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들 이 해결되자마자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서 그 다음 세 대의 미술가들이 형태와 색채로 무엇을 해낼 수 있는 지를 보여줄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 온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따라서 전통에 반기를 든 미술가들도 자기가 노력해야 할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서 전통에 물어 보지 않 을 수 없다.

미술사는 끊임없이 짜여지고 변화하는 전통들의 역사이며, 각 작품들은 그 전통들 속에서 과거를 지향하기도(refer to)하고 미래를 지향하기도 한다. 미 술이라는 것(such thing as Art)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문제와 그것의 해결 을 시도하는 미술가들만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미술작품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 하나의 실험이며 잠정적으 로 용인된 일종의 가설인 것이다. 이러한 실험과 시도의 평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관심을 갖고 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문제해결

51) Ibid., p .455 및 p. 461

로서의 미술은 그 운명이 좌우된다. 52)

이와 같이 곰브릭은 미술사를 전통의 역사로 파악하고 있으며, “새로운 것 의 전통(the tradition of the new)”53)이 다른 전통들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변화와 새로움 만이 예술에 있어 중요한 것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새로움에 대한 이와 같은 평가는 경제 ․ 문학과 마찬가지로 미술도 거슬릴 수 없는 진행과정에 의한다고 생각하고 미 술을 시대의 표현(expression of the age)'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기인한다. 미 술을 시대의 표현이라 생각하는 변화의 철학에 의하면, 그 시대의 조건이나 정 신에 의해서 봉건시대는 대성당을 건축할 수밖에 없었으며 현대의 우리는 마 천루를 짓게 운명 지어져 있다는 것이며 우리가 우리 시대의 미술을 받아들이 지 않는 것은 무익하며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것이라면 무 엇이든 이해해야 하며 장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54)

미술이 시대의 표현이라는 신념은 자기표현(selfexpression)이라는 이념 -낭만주의 시대부터 시작된- 과 결합하여 모든 자기통제(self-control)를 버리 는 것이 미술가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는 결론으로까지 이른 다. 만약 그 결과로 생겨난 격정의 폭발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시대 자체가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라 간주하며, 중요한 것은 뻣뻣하게 굳어 버린 현실을 직시하여 우리가 처해 있는 현재의 곤경(predicament)을 진 단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들에 의하면, 우리가 처해 있 는 불완전한 세계(imperfect world)속에서 완전함의 섬광(a glimpse of perfection)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은 예술뿐이라는 생각 이러한 도피주의 (escapism)인 생각은 배척된다. 따라서 도피주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으 려는 욕망으로 그 전 세대들이라면 외면했을 광경들에도 주목하게 된다.55)

52) Ibid., pp. 452-454

53) 곰브릭은 미국의 비평가 해롤드 로젠버그 (Harold Rosenberg)가 『새로운 것의 전통 (the tradition of The New)』에서 액션 페인팅을 비롯한 새로운 미국미술을 옹호하고 있는 것을 비판한다.

54) Ibid., pp. 465-466

둘째, 회화의 경쟁자로서 사진술이 확산된 것을 들 수 있겠다. 사진술의 확 산과 더불어 ‘사진 같은(photographic)’이란 말은 화가들과 미술 감상을 지도 하는 교사들 사이에서 경멸적인 의미를 지닌 말로 되어 버렸으며, 미술은 자연 의 재현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들을 탐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받아 들여지게 되었다. 56)

셋째, 새로운 것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유행의 변화에 대한 대중의 반응성 (responsiveness)이 미술에 있어 새로운 창안과 모험적인 생기(gaiety)를 자극 했다. 이와 같은 유행에 대한 순응주의 (conformism)의 압력은 미술가들로 하 여금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가 구식이라는 평을 받을까 두려워하게 하였으며 예술적 경주에 뛰어 들게 하였다. 그러나 그런 경주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다. 만일 그런 경주가 존재한다면 저 유명한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기억해야 만 할 것이다.

곰브릭은 이상과 같은 요인으로 인해 새로움 만이 미술에 있어 중요한 문제 라 간주하고 과거의 미술에 의한 전통을 사소한 것 이라 간주하는 것은 바람 직하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새로운 흥미만 쫓고 현대미술이 의미를 갖기 위해 서는 과거의 미술을 극복해야만 하는 방편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유 산으로부터 우리를 베어내는 꼴이 되며 문제해결을 중단하는 것이 된다.

미술사는 문제해결의 연속이며 미술가와 감상자의 시행착오 과정들 간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미술은 역사를 갖게 되는 것이다.

55) Ibid., pp. 456-466 56) Ibid., p.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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