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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무역 마찰의 발전 과정

1979년 중미 <중미 무역 협정> 체결 이후 양국 경제 무역이 계속 증가하고 중 미양국 협력 분야의 확대와 무역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양국 간 무역 마찰도 증가하여 양자 간 무역의 초점으로 되었다.1980년 미국의 대중국 화학산 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는 중미 간 무역 마찰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 리나라가 2001년 정식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타국과의 무역이 점차 늘어 감에 따라 중미 간 무역 마찰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역 마찰의 성격 과 특성을 결합하여 구분을 한다면 역사적으로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단계1 : 1979 - 1989년 은 양국 간 무역 마찰의 시작 단계다. 1979년은 중미 양국 수교를 한 해이기 때문에 그 10년 동안 양국 간 무역액은 그다지 크지 않 다. 예를 들어 1979년 양국의 무역액은 25억 달러 미만이었다. 또한 1979부터 1989년은 중국이 개혁 개방의 초기 단계였고 당시 국문 개방이 절박했던 중국은 외국의 무역 합작에 적극 참여하였다. 당시의 중국으로선 직물, 저부가가치의 경 공업제품, 화공자재 등 노동 집약형의 제품이 중미 무역에서 우위를 점했기 때문

53) 闫克远, "中国对外贸易摩擦问题研究", 东北师范大学, 2019, pp.23-24.

에 이때의 무역 마찰도 대부분 이런 상품에 집중됐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1979~1989년 동안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덤핑 사례는 총 18건이며, 농축산물과 기전은 각각 1건으로 같은 기간의 전체 대중 반덤핑 물량 의 5.5%를 차지했다. 방직품은 3건으로 같은 기간 모든 대중국 반덤핑 물량의 16.6%를 차지했고, 경공업은 6건으로 같은 기간 전체 대중국 반덤핑 물량의 33.3%를 차지했으며, 화공은 7건으로 같은 기간 전체 대중국 반덤핑 물량의 38.8%를 차지했다. 당시의 중국은 경제력이나 정치면에서 미국과 전혀 비교가 안 되었고 미국 측이 반덤핑, 협상 타결, 수출입 관세 인상 등을 통해 자국의 무 역을 보호하려 할 때 화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중국은 기본적으로 수동적으 로 양보하는 역할을 맡아 무역 마찰이 근본적으로 해결을 볼 수는 없었다.

단계 2 : 1990년-2000년은 양국 간 무역 마찰의 상승 단계였다. 이 단계 중미 무역 마찰의 주요 특징은 정치적 요인이 많이 섞여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80년대 말 동유럽이 급변하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세계 판도가 크게 바뀌었다. 중 국은 사회주의 라인의 일원으로 미국의 주요 적수가 돼 중미 관계가 긴장 되었 다. 국내에서는 1989년의 ‘6.4’ 파동으로 인해 중미 간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다.

미국은 국내외의 이중압박에 힘입어 대중국 무역 마찰 문제의 처리 수위를 높였 다. 처리 수단은 반덤핑에만 그치지 않고 ‘경제제재’라는 수단도 썼는데 특히 이 를 통해 우리나라와의 고신기술 무역을 제한하였다. 처리 범위도 경공업, 방직업 등에서 지적재산권, 화공, 철강 분야 등으로 확대됐다. 또 당시 중국은 세계무역 기구(WTO) 가입을 신청하는 단계였고 미국은 중국의 인권문제, 노동재개 제품 수출 등을 문제 삼으며 중국의 영구적 최혜국 대우를 거부해 왔다. 또한 미국은 중국의 최혜국 대우에 대해 매년 심의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는 2001년에서야 폐 지되었고 동시에 미국은 중국과 미국의 영구적 정상무역관계를 선언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1990년-2000년의 동안 중국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은 총 61건이었으며 이 중 경공업 25건은 같은 기간의 모든 대중 반덤핑 물량의 40.98%를 차지했고, 화공품은 18건으로, 같은 기간의 모든 대중 반덤핑 물량의 29.5%를 차지했으며, 농축산물과 오광류 제품은 각각 8건으로 같은 기간의 모든 대중 반덤핑 물량의 13.11%를 차지했다. 기전과 의료보험은 1건으로 같은 기간

의 모든 대중 반덤핑 물량의 1.63%를 차지했다. 이렇게 반덤핑 행위의 빈도는 갈수록 많아졌다.

이 단계에서 우리나라의 종합 국력이 계속 강해지면서 세계에서의 중국의 위 상이 높아졌고 중미 무역 마찰 속에서 점차 능동적 반격과 자기 보호에 나서고 있다.

단계 3: 2001년부터 현재까지는 양국 간 무역 마찰의 빠른 발전 시기다. 2001 년 이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 공식화되면서 중미 양국의 무역 은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입회는 예상한 것처럼 중미 양국에 새로운 길을 열어 주지 못하고 있다. 정반대로 양국의 마찰은 수량, 제품의 범위, 나아가 마찰 금 액까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 후 미국이 중국에 대 한 반덤핑 건수는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2007년, 2009년과 2013년에는 반덤핑 건 수가 절정에 달했다. 2018년 3월 22일에 미국은 중국에 대해 ‘301 조사’ 진행”중 국의 600개 수입 상품에 대규모의 관세 부과했다. 현재 중미는 이미 세 차례의 무역 마찰을 겪고 있는데, 1차는 미국이 중국에 500억 달러 상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 중국의 반제 조치는 미국의 500억 달러 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 하였다. 2차는 미국은 중국에 2천억 달러의 상품에 대해 25퍼센트의 관세를 부과 하였으며, 중국의 반제조치는 미국의 600억 달러 상품에 대해 액수가 부동한 관 세를 부과하였다. 3차는 미국이 중국에 3,000억 달러의 상품에 대해 10%의 관세 를 부과하였으며, 중국은 미국의 750억 달러 상품에 대해 액수가 부동한 관세를 부과하는 반제 조치를 취하였다. 2019년 9월까지 미국은 중국 5,500억 달러의 상 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은 1,850억 달러의 미국 상품에 대해 관세를 부 과하는 조치를 취했고, 관세가 붙는 품목 일부가 제외된 것 이외 이미 중미 양측 의 전체 쌍무무역의 총액을 커버하고 있다.

이때 미국이 중국에 대해 취한 반덤핑과 특별보장의 빈도도 예전보다 훨씬 높 았다. 이것은 중미 무역이 계속 늘어나고 무역적자가 확대되면서 미국의 전반적 인 무역적자 비중이 커지고 중미 무역의 불균형 문제가 부각되면서 미국 국민의 관심을 더욱 끌고 있다. 이처럼 갈수록 심각해지는 불균형의 문제는 무역 마찰을 거시적 경제 차원으로 까지 확대시켰다. 또 미국 의회와 이익 집단은 중미 무역

의 불균형을 빌미로 대중 무역 보호 정책을 장려해 자신들의 이익을 충족시키려 는 목적도 갖고 있다.

중미 무역 마찰의 세 가지 발전 단계에 대한 회고를 통해 우리는 중미 반덤핑 사건 수량 하고 관세율, 금액이 수직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국은 현 재 중국에 대해 무역 마찰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우 리는 초기 단계의 수동적 응전, 타협적 양보가 아닌 중미 무역 마찰의 문제에 대 해 적극 대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와 경제 무역이 계속 상승함에 따라 우리는 논리에 입각하여 끊임없이 균형을 찾고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일치한 점은 취하고 의견이 서로 다른 점은 잠시 보류하는 것으로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54)

제2절 중·미 무역 마찰의 영향 요인 분석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