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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

5. 목적론에 의한 증명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질서 정연하게 정돈되어 있다. 이성을 소유하지 않은 자연의 부분이나 인간 육체의 부분들도 모두 질서정연하다. 순수한 자연물들도 특정한 목적을 지닌 것처럼 행동한다. 나무는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는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절묘한 조화와 규칙성을 보인다. 이러 한 규칙성들은 자연법칙이라는 이름으로 그 인과관계가 확인되곤 하지만, 자연과 학은 아직도 부족한 설명 체계임에는 틀림없다. 자연과학은‘어떻게’(즉, 과정)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뿐,‘왜’그러한 규칙성을 지닐 수 있 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모든 사물들은 하나의 목적(finis)을 지향하고 있고, 이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하나의 목적은 그보다 더 큰 목적을 지향하며, 이 목적은 다시 자기보다 더 큰 목적을 지향한다. 사과나무의 씨앗은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이 싹은 자라 꽃을 피운다. 좀 더 성장하면 열매를 맺는다. 이처럼 세계는 모든 사물들이 자기보다 더 큰 목적을 지향하는 목적성의 체계이다. 이로써 세계는 목적적 질서를 가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질서의 궁극적 원인이 되며, 모든 사물들이 궁극적으로 지 향하는 최고의 목적을 우리는 전제할 수밖에 없다. 이성을 가지지 않은 것들조차 도 이렇게 목적론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우주 안에는 목적론적인 질서가 있 어 보인다. 자연의 모든 사물들에는 자신들의 목적으로 향하게 해주는 어떤 지성 적인 존재가 존재한다. ‘목적을 향한 질서’라는 것은 곧 지성적인 특성을 말하 고 있다고 아퀴나스는 말하고 있다.

다섯째 길은 사물들의 통치에서 취해진다. 사실 우리는 인식을 갖지 못하는 사 물들, 즉 자연적 물체들이 목적 때문에 작용하는 것을 본다. 이런 것은 자연물들 이 가장 좋은 것을 얻기 위해 항상 혹은 자주 같은 모양으로 작용하는 데서 나타 난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우연에서가 아니라 어떤 의도에서부터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 명백하다. 그런데 인식을 갖지 않은 것들은 인식하며 깨닫는 어떤 존재에 의 해 지휘되지 않으면 목적을 지향할 수가 없다. 이것은 마치 화살이 궁수에 의해 지휘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든 자연적 사물을 목적에로 질서지어 주는 어떤 지성적 존재가 있다. 이런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63)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이란 한 가지의 내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연속적 인 운동 안에서 한 가지의 목적으로 내닫는 것”64)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에게 있어서는 모든 작용이 그 개념에 비춰보더라도 한 가지의 목표를 향해 질 서 지워져 있기 때문에, 이 목표 즉 작용의 마지막은 작용의 시작인 본질의 개념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목적은 형상과 일치되며, 운동원인을 형상원인 과 동일시하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원인을 목적원인과 동일시한다. 그 래서 개별적인 사물들의 실체 또는 본성은 항상 ‘어떤 것을 위해 생겨난 것’

이라고 한다.65)

모든 행동자(능동자)는 목적 때문에 행동한다. 그렇지 않다면 능동자의 행동에 서 저것이 아니고 이것이 결과가 될 것이며 그것은 우연에서가 아니면 이루어지 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능동자와 수동자는 바로 그런 것인 한에 그 목적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기 그 양태를 달리한다. (중략) 능동자일 뿐인 제1능동자 (제1작용자)에게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그런 작용자 즉 능동자는 오로지 자기의 완전성 즉 자기의 선성(善性)을 전달하려고 의도한다. 그리고 각 피조물은, 신의 완전성과 선성과의 유사인 자기 의 완전성에 도달하려고 의도한다. 그러므로 신의 선성은 모든 사물의 목적이다.

66)

모든 사물 하나하나에 대해 특정 목적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누군가의 주재(主 宰)가 없었더라면, 서로 모순되고 조화되지 않는 여러 사물들이 언제나 또는 대 부분의 경우에 단일한 질서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데 세계 속에서 우리는 상이한 본성을 가진 사물들이 어떤 유일한 질서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을 관찰하는데, 드물거나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또는 대부분의 경우에 그러하다. 그러므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처럼 “자신의 섭리로 세계를 통치하는 존재”67)가 존재해야 한다. 이를 우리는 신이라고 부른다.

63) 토마스 아퀴나스, 정의채 옮김, 신학대전 I, 2문제, 3절, 169~171쪽.

64) Aristoteles, physics.“The point is that those things are natural which undergo continuous change, starting from an intrinsic source of change and concluding at a particular end.” book Ⅷ, p52.

65)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강성위 옮김, 서양 철학사 , 이문출판사, 2012, 264쪽.

66) 토마스 아퀴나스, 정의채 옮김, 신학대전 I, 44문제, 4절, 6권, 77쪽.

67) 토마스 아퀴나스, 신창석 옮김, 대이교도대전 Ⅰ, 13, 195쪽.

이상에서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를 받아들여 구체적으로 실재하고 있는 사물에서 출발하여 신 존재를 증명하였다. 세계 속에서 발견되는 운동, 변 화, 인과 관계, 우연적인 존재들, 완전성의 단계들, 목적인의 질서와 같은 사실들 에서 출발해서 제1동자, 제1작용인, 필연적 존재, 최고 완전자, 최고 지성자 등의 개념에 도달하였고 아퀴나스는 이를 신이라고 불렀다. 그는 실재하는 감각경험에 서 출발하여 그 존재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 존재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며 객관적으로 신 존재를 증명하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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