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결론: 마그리트 회화의 기호학적 해석 가능성

1. 시각적 재현의 가능성

마그리트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초현실주의자이면서도 초현실주의 회 화의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기법을 버리고 오히려 초현실주의 회화에 정면으 로 대립하는 회화인 전통적 자연주의 회화의 기법이나 방법을 갖고 그것을 사용했다. 마그리트는 재현을 통해 현실을 묘사했지만 현실을 객관적 대상으 로 묘사하려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 그리트는 독창적이고 독자적인 회화적 재현의 방법에서 결과하는 그의 회화 의 이미지들이 전통적 회화의 그것들과 다른 종류의 기호(sign)의 성격을 지 니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이고도 있다. 이는 해외의 마그리트 연 구 동향으로 「마그리트 회화 작품의 기호학적 이해」라는 논문을 통해 이러 한 접근을 시도한 틸레 파일라(Teale Failla)의 논문을 요약함으로써 기호학 적 해석 문제의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133)

마그리트 회화는 ‘재현불가능한 것’의 재현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기호학적 해석을 요구한다.134) 찰스 샌더스 퍼어스(Charles Sanders Peirce)의 기호 체 계를 통해서 마그리트의 회화를 본다면 우리의 일반적인 현실 이해의 밖에 (언어가 통하지 않는) 놓여있는 마그리트의 의도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그리트는 언어를 통한 이미지 재현에 임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하 여 시각적 및 심리적 이미지 재현을 시도하기도 한다. 마그리트 회화의 시각 적 재현의 가능성에 이어 이미지의 기호학적 해석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기

133) http://www. teale. rawcity. net.

The Treason of Images: A Semiotic Understanding of the work of René Magritte 134) http://beard. dialnsa, edu / ~efraller / papers / Failla Teale. pdf

Representing the Unrepresentable: The Psychology of Art」

호를 통한 이미지 재현의 해석에 대해 접근해 보고자 하였다.

기호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마그리트의 작품은 어떤 종류의 이름 붙일 수 있는 사물이나 생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기호학의 용어로 해석해본 다면, 마그리트의 회화작품들은 signify되지 않은 것을 signify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현실 이해 의 밖(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해되지 않는 세계)에 놓여있기 때문인 것이다.

상징주의로 마그리트의 이미지를 이해하는데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상징화될 수 있는 것은 말해질 수 있고, 이름 붙여질 수 있고, 기술되어질 수 있고, 쓰 여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그리트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자신의 그 림은 의미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아무런 의미도 감추고 있지 않은 가시적인 이미지라 할 수 있지만 때로 우리의 세상 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잣대와 은밀한 시선을 꼬집거나 지적하여 여러 상상과 신비를 드러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마그리트 작품의 회화적 재현의 의미를 언어학과 기 호확의 관점에서 조망해 볼 필요가 있게 된다.

마그리트는 signifiant/signifié의 두 개가 한 벌이 되는 것에 대한 소쉬르 (Ferdinand de Saussure)의 ‘재현의 기호학’을 거부했다. 수수께끼(mystery)의 관념은 소리이미지에 의해 생겨나는 의미를 갖지 않는 구조에서는 나타날 수 가 없다. 그러나 상징적 해석을 싫어하는 마그리트의 그림에 나타난 의도들 이 세벌의 한 쌍이 되는 기호학적 체계를 통해 의미화될 수 있다는 점은 매 우 흥미롭다. 소쉬르는 구어에 대한 구조적 분석은 숨겨져 있는 언어체계를 확인해냄으로써 가능해지며, 기호들 간의 ‘교환이란 그물망’의 역할을 하는 언 어작용을 밝혀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소쉬르에 따르자면 현대 언어 학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숨겨진 체계 혹은 무의식의 체계가 어떻게 작용하는 가를 기술하는 것이며 언어의 과학적 탐구를 위해서 이 체계가 이 용되고 있다. 소쉬르는 말, 즉 파롤(parole)은 언어의 어떤 특수한 행위를 가

리킨다. 즉 우리가 일상생활의 구체적 발화에서 추상적 언어체계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실제 방식이다. 랑그(langue)는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체계인 반면, 파롤은 '지금', '여기'에 속하는 것이다. 소쉬르는 파롤보다는 랑그를 중시한 다. 그는 개인적으로 한 문장을 말하고 이해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의미 있 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언어체계라는 얼개 안에서만 의미 있다고 주장한 다.

전통 언어학은 한 사물을 지시하는 이름인 기호를 추론하는 언어의 지시론 적 모델로 발전한다. 소쉬르는 기호를 인간의 목소리에 의해 표현되는 형식 과 청각적 영상(그가 기표(signifiant)라고 부르는 것)과 개념이나 심적 관념 (그가 기의(signifié)라고 부르는 사이)의 관계로 정의한다. 소쉬르는 기호는 언어공동체에서 한 번 확정되면 개인이 의도적으로 그것을 변화시킬 수는 없 다고 말한다. 언어의 체계가 개인의 발화에 의해 결정 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언어의 체계가 개인의 발화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이나 천재성이 의미를 창조한다는 낭만주의나 실존주의 이론을 근본적으로 거부하 는 것이다.135)

찰스 퍼어스(Charles Peirce)는 그의 기호 체계가 정신의 세 개의 서로 다른 형이상학적인 상태들의 기본적인 관계 위에 세 가지를 바탕으로 삼게 하고 있다. 첫 번째는 애매하고 감정상태 속에 그 밖의 다른 어떤 것과의 관계도 지시하지 않는 존재상태다. 퍼어스는 기본적으로 예술작품도 일종의 기호라 고 보았다. 예를 들어 음악회에서 어떤 악보가 연주된다고 할 때 이 악보는 작곡가의 음악적 관념을 전달하거나 혹은 전달하려고 하는 일종의 기호라는 것이다. 퍼어스는 기호가 얼마나 다양한가를 우리가 가장 잘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의 경우에서라고 서슴없이 주장하는데 그가 예술을 본질적으로 기 호이다라고 말할 때의 이 기호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도상적 기호, 혹은 줄여서 도상이라고 하는 기호이다. 여기서 퍼어스가 말하는 도상이라는 것이

135) 리처드 케네이, 임헌규·곽영일·임찬순 옮김, 현대 유럽 철학의 흐름, 서울, 한울, 1992, p.

317

오직 재현적 예술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퍼어스는 어떠한 기호를 도상으로 분류하고 있는가? 퍼어스는 정 신적인 이미지에 대해 얘기할 때에는 흔히 “정신적인 도상”(mental icon)이라 는 용어를 사용하며 회화작품과 같은 도상을 얘기할 때에는 “재료 상”(material imag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도상이란 지시 대상과 일종의 유사성을 지닌 그러한 기호이다. 유사성이란 어떤 점에서의 유사성인가? 순 수 도상(pure icon)은 형식 이외의 그 무엇도 표상하지 않는다는 퍼어스의 주 장을 염두에 둘 때 이 때의 유사성이란 표상의 근거(basis representation)를 이루는 형식의 유사성이라 할 수 있다.

퍼어스는 가장 순수한 형태에 있어서의 도상은 그것이 재현하는 대상과 물 리적인 연관성을 갖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여기서 분명 재현되는 대상 이 순전히 허구물인 경우를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정물화는 실재 하는 어떤 대상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술가에 의해서 창조된다. 데드 마스 크의 경우처럼 그것을 창조해내는 데에 대상이 실제로 참가하는 것과 그냥 조각작품을 만드는 것과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재현되는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문제에는 눈을 돌린 채 퍼어스는 순수한 도상적 기호는

“어떠한 적극적인 혹은 사실상의 정보도 전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 물이 자연 속에 실제로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장담도 못하기 때 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단지 그 대상이 만약 실제로 존재한다고 가정할 경 우 그때 그 대상의 성질들이 어떠할 것인가를 기호해석자로 하여금 추측하도 록 할 뿐이다. 재현대상이 아무리 허구적인 것일지라도 재현 그 자체는 논리 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퍼어스의 견해이다. 이는 곧 대상이 존재 하지 않더라도 도상 형태는 논리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함을 뜻한다.136)

퍼어스의 기호학에 따르면 도상은 다른 모든 기호유형들과 내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 퍼어스는 그 성격에 따라서 기호들을 질기호(qualisign), 존재 기호(sinsign), 그리고 법칙기호(legisign)의 세 가지로 구별한다. 이렇게 나누

136) Y.Basin, 오병남·윤자정 옮김,『현대 예술철학의 흐름』, 서울, 예전사, 1996, p. 274

어진 기호들이 첫 번째 3항 짝이다. 질기호란 성질(quality)이 기호가 되는 경 우이며 예술에 있어서는 이 역할이 음, 색채, 빛에 주어진다. 존재기호란 실 제로 존재하는 사물이나 사건이 기호가 될 때를 말한다. 조각·조상·연극은 모 두 도상의 예가 될 수 있는데, 이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이나 사건이 된다. 법칙기호란 법칙(law)이 기호의 역할을 할 때의 경우를 말한다. 법칙은 보통 인간에 의해 성립된다. 모든 관례적인 기호는 일종의 법칙기호이다.

도상적 기호는 두 번째 3항 짝으로 접어드는데 이는 기호를 대상과 관련하 여 고려할 때 나타난다. 두 번째 3항 짝은 도상과 함께 지표(index)와 상징 (symbol)을 포함한다. 세 번째 3항 짝은 기호들이 기호해석자와의 관계에 따 라 또 그것들이 해석되는 방식에 따라 명사(term), 명제(proposition), 논증 (argument)의 세 가지로 나뉜다.137)

“첫째 것은 강제가 없는, 이유 없는 상태로 무엇인가 이야기할 수 없지만 현존하는 상태다. 그것은 감정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둘째 것은 두 번째 사 물의 현존과 더불어서 도입되는 관계로부터 생겨나는 무감각한 사실들의 영 역이다. 그리고 둘째 것은 행위의 감각을 포함한다.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것 은 사물의 실재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다. 외부적인 사물들과 우리 자신 양자 에 대한 실제의 감각이다. 그것은 어떤 하나의 감정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감정에 의한 하나의 감정의 깨뜨림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본질 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두 가지 사물들을 포함하는 것이다.”138) 퍼어스 는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셋째 것은 이들 법칙들에 의해서 미래의 행위를 예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법칙에 관한 일반적인 패턴이 되는 해석을 포 함한다. 그것은 사고, 학습, 또는 하나의 현상이 하나의 규칙에 의해서 지배 된다고 생각되는 과정을 통과하는 것을 포함한다. 또는 하나의 알 수가 있는 일반적인 행위의 방식을 갖는 과정을 통과하는 사고를 포함하는 것이다.”139)

137) 위의 책, pp. 277~280

138) Peirce, The Essential Peirce, Selected Philosophical Writings, vol.2, Bloomington and Indianapolis University Press, 1994, p. 4

퍼어스의 세 벌이 한 쌍인 기호의 시스템은 첫째, 둘째, 셋째 사이의 차별화 함에 기초하고 있다. 소쉬르의 두 벌이 한 쌍인 기호 시스템을 거부하는 퍼 어스는 기호(sign)/representamen, object, interpretant의 세 벌이 한 쌍인 사 인 시스템을 도입한다. 사인/리프리젠타멘은 표시를 말하는 것으로 첫째 영역 에 놓여있고, 오브젝트는 둘째 영역에 존재한다. 셋째 영역에 놓여있는 것으 로서 인터프리탄트는 해석할 사항의 의미로서 하나의 열쇠가 되는 요소이다.

해석할 사항이 우리의 마음 속에 표시140)하는 사물을 말한다. 세벌이 한 쌍이 되는 것은 두 벌이 한 쌍이 되는 것이 실패하는 곳에서 마그리트의 회화를 분석하는 것이 왜 성공일 수가 있는가하는 것이 열쇠이다. 인터프리탄트는 사인/오브젝트 관계로부터 생겨나는 해석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 대상을 재현하고 있는 하나의 사인과 대결의 결과로서 생겨나는 마음의 기호는 고유한 본래적인 중요한 의미 있는 효과라 할 수 있다. 셋째 것과 마찬가지로 인터프리탄트는 두 개의 카테고리 사이의 매개이다. 그러한 하나 의 사인 시스템은 마그리트가 환기시키려고 시도하고 있었던 수수께끼 (mystery)의 현존에도 적용될 수 있다. 수수께끼(mystery)는 비록 서로 다른 관찰자에 대한 서로 다른 사물들을 포괄할 지라도 사인의 결과요, 소산의 결 과요, 인터프리탄트의 결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마그리트의 회화작품들은 기호학적 관계를 제공하고 있다. “수수께끼(mystery)는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그림에 있어서 알려진 재 현의 대상들을 모방하는 그러한 시스템이라기 보다는 오브젝트를 분류하는 시스템의 일부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141)

이것은 소쉬르의 두 벌이 한쌍인 시스템과 퍼어스의 세 벌이 한 쌍인 시스 템 사이의 주요한 차이를 보여준다. 마그리트는 하나의 그림을 창작하는데

139) Ibid., p. 5

140) 퍼어스는 예로 임의의 관점이나 입장에서 우리가 어떤 것을 대면하게 되는 사물로서 기호 (sign)를 예시한다. 그는 사물로서의 기호를 사유의 대상으로서의 기호와 구별하기 위해 ‘표시’라 는 용어를 더 강조한다.

141) 수지 개블릭, 천수원 옮김, 앞의 책, p. 131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