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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문학성 검토

2. 공 간

「세경본풀이」에서 공간은 지상계와 천상계 그리고 서천꽃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설화에서 충돌이나 갈등이 어떠한 방향으로든 해결이 되는데, 그 추상적 방향은 설화 속의 인물의 행동으로 형상화된다. 설화의 인물들은 나름대로의 일정한 공간에 위치하 는데, 이 공간은 그들의 본질적 특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지상적 공간이 라는 본질적 특성을 지닌 인물의 공간은 지상으로 한정된다.48)

자청비는 지상적 인물로 태어난다. 그녀가 태어난 곳이 지상이기에 그녀는 지상적 공 간이라는 특성을 지니게 됨과 동시에 지상인이 된다. 이에 반해 문도령은 하늘에서 내 려오는 존재이다. 하늘에서 거무 선생한테 글을 배우러 지상으로 내려오게 된다. 지상 으로 내려오지만 그는 하늘의 존재로 있었기에 그는 천상적 공간이라는 특성을 지니게 됨과 동시에 천상인이 된다.

공간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자질일 뿐더러 이야기의 심미적 양상을 좌우하 는 결정적인 요건이기도 하다.

공간은 인물과 행동에 신뢰감을 높이고, 브룩스 워렌은 「소설의 이해」에서 ‘사실감 있게 구축된 배경은 그 배경 속에서 활동하는 인물과 행위의 사실감을 보장해 준다’는 요지의 말을 하고 있는데, 그럴듯한 공간은 그 공간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그 공간 속에 서 발생하는 사건조차를 그럴듯하게 만들기 때문이다.49) 문학은 현실의 반영이다. 문학 48) 송효섭(1999), 「설화의 기호학」, 민음사, p.247.

을 통해서 독자들은 현실 속에서 경험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때 그 문학은 문학으 로서의 제 구실을 하는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공간은 소설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되고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심지어는 작품의 존재 이유가 된다.50) 그러므 로 공간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세경본풀이」에서는 자청비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지상적 공간과 문도령이라는 인물 로 대변되는 천상적 공간, 그리고 인간 생명의 본원적 장소로서의 서천꽃밭이라는 공간 이 등장한다.

연구자는 「세경본풀이」의 공간과 의미를 4차에 걸친 <가출-귀가>에 나타난 공간이 동을 중심으로 분석하면서 각 공간 이동에 담긴 의미를 찾고자 한다. 그리고 각 1차에 서 4차의 <가출-귀가>에 사용한 도형들은 송효섭의 「설화의 기호학」51)에 나타난 도형 을 원용하였다.

1) 가출-귀가 구조에서 본 공간과 의미

⑴ 1차 가출과 귀가

주천강 연못(밖) 집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자청비는 집에서 밖으로 가출을 시도한다. 그 가출의 이유는 정술댁이가 손발이 고운 이유 때문이다. 빨래를 하면 고와진다고 하자 그녀 자신도 손 발이 고와지기를 바라며 주천강 연못에 빨래를 간 것이다. 같은 지상에서 지상으로의 이동이다. 집에서 주천강 연못으로 가는 것이다. 주천강 연못은 물이 있는 곳이다. 물은 세계 전체의 근원이며, 잠재하는 모든 것의 윈리로서 일체의 형태가 발생하는 원초적 물질이기 때문에 어떤 창조도 가능하게 한다.52) 창조가 가능한 물이 있는 주천강 연못

50) 김화영편(1986), 「소설이란 무엇인가」, 문학사상사, p.148.

51) 송효섭(1999), 전게서, p.248

52) 현원필(1999), “문학교과에서의 서사무가지도 연구- 제주 서사무가 <이공본풀이>를 중심으 로”, 석사학위논문,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p.41.

으로 간 자청비는 그 곳에서 신적 존재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는데 그 기반 마련은 바로 천상의 존재인 문도령을 만나는 것이다.

여성성을 인지한 자청비가 집밖으로 나가지만, 이는 표면적 이야기에 나타나는 것이 고, 이면적 이야기에서 집 밖으로의 이동의 의미는 집 안이라는 공간 속에선 결함의 존 재로 밖에 지낼 수 없기에 자청비는 결함을 채우러 집 밖으로 공간이동을 한 것이다.

집 밖, 주천강 연못에서 그는 천상적 공간의 존재인 문도령을 만나게 된다. 문도령과의 사회적 공인을 받은 결합만이 자신의 결함을 딛고 온전한 존재로 될 수 있기에 자청비 는 집 밖으로 공간 이동을 한 것이다.

하지만 1차 가출에서 그녀의 목적은 달성될 수 없었지만 천상의 존재를 만날 수 있 어 주천강연못이라는 공간은 자청비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서는 공간이 된다. 표면적 이 야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과, 이면적 이야기에서 그녀가 신이 되기에 필요 한 하늘의 존재를 만났다는 것은 공간이동이 긍정적임을 보여준다. 긍정적인 공간이동 이 가능했던 것은 어떤 창조도 가능하게 해 준 물이 존재하는 공간으로의 이동이기 때 문이다.

여기서 ‘귀가’는 논의에서 제외했다. 그 이유는 지상에서 지상으로의 공간이동이므로 집으로 돌아가는 공간 이동의 목적은 중요성이 덜하다는 생각에서이다.

⑵ 2차 가출과 귀가

굴미굴산(밖) 집

두 번째의 가출의 동기는 정수남이로 인한 가출이다. 자청비가 마련해 준 소, 말 열 여덟 마리를 모두 잡아먹고, 옷도 도둑 맞고 빈 몸으로 돌아온 정수남이를 자청비가 죽 이려들자 정수남이는 거짓으로 문도령을 산에서 봤다고 한다. 그래서 자청비는 문도령 을 만나러 정수남이와 함께 집을 떠나 산으로 향하게 된다.

즉 집 안에서 집 밖인 산으로 공간이동이 나타난다.

숲이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정수남이는 계속해서 자청비를 희롱하여 자기의 안락과 식욕을 채우고, 급기야 주인인 아기씨를 성적으로 희롱하기까지 한다. 고립된 공간 속 에서 정수남이는 아기씨를 단지 성적대상으로 본다. 평상시에는 주인과 종이라는 사회 적 관계 때문에 감히 넘볼 수 없었으나, 숲의 고립된 공간에 들어서면서 그의 야수성이 발동된 것이다. 주인과 종이라는 사회적 위계는 고립된 공간 속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 것이다.53)

집 안이라는 공간은 자청비에겐 상전이라는 계층적 특성을 심어주고, 정수남이에겐 하인이라는 계층적 특성을 심어준다. 정수남이한테 자청비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상대이 며, 조롱하거나 풍자하거나 비판하거나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능욕은 가당치도 않는 일이다. 하지만 산이라는 공간은 정수남이에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왜냐 하면 산이라는 공간은 정수남이한테는 긍정적이고 안식으로 다가서는 공간이기에 가능 한 것이다. 이는 후에 목축신이 되는 정수남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목축은 산이라는 공 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이다. 따라서 산에서 정수남이는 그의 본능을 맘껏 발산할 수 있었으며, 이 산이라는 공간에서 그는 작품의 주동인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상전인 자청비를 마음껏 비웃고 있는 것이다.

삶은 행위의 진행으로 나타나며, 그 진행 가운데 공간적 이동은 주인공이 지향하는 가치를 보여준다.54) 자청비의 1차 가출인, 집 안에서 물가로 공간적 이동은 긍정적인 의미로 작용했고 주천강 연못이라는 공간에서 하늘의 존재인 문도령을 만났다. 이는 분 명 긍정적 공간이동이다. 하지만 2차 가출은 집 안에서 산으로의 공간 이동인데, 산이 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정수남이에게 농락당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분명 이 산이라는 공 간은 자청비에게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2차 가출에서 보이는 공간 이 동이 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만 다가서는 것은 아니다.

이면적 구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집 안이라는 공간은 신이 되어야 하는 자청비에겐 결핍의 공간이다. 따라서 이번에도 자청비는 문도령을 만날 수 있다는 정수남이의 말에 정수남이의 안식처라 할 수 있는 산으로 공간이동을 한다. 집 안이라는 공간이 자청비 에겐 결핍의 공간이었고, 정수남이의 말에 산으로 공간이동을 하는 자청비의 목적은 바

53) 윤교임(1989), “여성영웅신화 연구-초공본풀이․삼공본풀이․세경본풀이에 대한 문화기호학 적 해석”, 석사학위논문, 경기대학교, p.71.

54) 송효섭(1999), 전게서, p.245.

로 결함의 존재를 벗고 온전한 존재로 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곳은 자청비에 겐 부정적인 장소였고, 상전과 하인이 전도되는 상황에서 정수남이에게 조롱과 농락을 당하다, 그를 죽이게 된다. 자청비는 사람을 죽인 것이다.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집 안 이라는 공간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집과 관련된 한국인의 인식을 보면, 집 중심 의 안과 밖이라는 의식을 통해서 집을 신성한 곳으로 생각하고 집에 긍정적인 가치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에게 집은 단순한 안식처로서가 아니라, 신성한 곳으로 인식된다.55) 집으로 대변되고 있는 김진국대감과 조진국 부인은 인간적 삶을 대변하고 있으며 그녀가 정수남이를 죽였다고 해서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살인은 부 정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살인을 한 자청비는 인간적 삶을 대변하는 집 안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따라서 정수남이에 의한 산으 로의 공간이동은 자청비에게는 결핍의 장소인 집이라는 곳에서 멀어지는 계기가 된다.

집 안이라는 공간은 결핍의 장소이므로 이 공간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신이 될 자

집 안이라는 공간은 결핍의 장소이므로 이 공간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신이 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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