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농업생산기반 조성
제1, 2차 5개년계획에서 농업 부문의 주요 목표는 식량자급을 위한 양곡 증산이었다. 정 부는 양곡 증산을 위한 핵심 정책수단이었던 경지의 확장과 단위면적당 생산량 증대를 위하 여 관련 법령과 제도를 정비하고 농지개발 및 정비사업, 즉 농지의 외연적 확대인 개간·간척 사업과 내연적 확대인 농업용수개발, 배수개선 및 경지정리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특히 개간사업은 정부가 농업기반 정비 분야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한 사업이었다. 정부와 외국기관의 지원으로 시행한 개간사업은 농민들의 개간 의욕을 고취시켜 1962~66 년의 5년간에 총경지의 6%에 해당하는 약 11만 정보가 개간되었다. 그러나 개간된 농지의 상당 부분은 일정 수준의 생산력에 도달하기도 전에 1960년대 말 이후 이농에 따른 노동력 의 감소와 밭작물의 낮은 수익성으로 인해 경작방기(耕作放棄)된 것도 있었다(박진도, 1987, p.64).
1964년부터 추진된 경지정리사업은 1965년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경지정리사업의 중요 성을 강조하면서 정부계획사업으로 채택되었다. 처음에 농민들은 농지감소에 대한 우려와 원지환지(原地換地)를 고집하며 반대하였으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농촌근대화의 새 바 람과 함께 경지정리가 효율적인 영농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197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경지정리사업은 농지의 구획 형태 개선과 용·배수로, 농로 등의 정비 및 농지의 집단화를 실시함으로써 농기계의 도입과 합리적인 물관리를 가능하게 하였다. 또 노동시간이 대폭 절감되어 농업생산성이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농지의 범용성이 높아져 2 모작의 도입 등 경지이용률을 향상하고 작목선택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하였다.
5.2. 농업생산 증대
농업생산정책은 제1차 5개년계획의 일환으로 수립된 「제3차 농업증산5개년계획」(1962~
66)에 의해 추진되었으나, 3차년도인 1964년 정부는 식량 사정의 긴박성과 인구증가에 따 른 식량 수요의 증가에 대처하기 위하여 1965년을 기점으로 하고 1968년까지는 식량의 자 급을, 1969년부터는 잉여양곡의 수출을 목표로 하는 「식량증산7개년계획」(1965~71)을 수 립 추진하였다.
제1편 농업·농촌 100년의 발자취
162
그러나 식량증산정책에도 불구하고 계획의 최종연도인 1971년의 양곡 생산은 1966년에 비해 3.5%나 감소하였는데, 그 이유는 공업 중심의 투자정책으로 인한 재원 부족과 가격보 장 대책의 미흡에 있었다.
농업생산증대 정책의 미흡한 성과는 농협중앙회가 발간한 뺷한국농정20년사뺸(1965)가 지 적하고 있듯이 ‘전체 증산계획과 개별 영농계획의 괴리 문제’와도 관련이 있었다. “문제는 정부가 수립한 농업생산계획이나 각종 생산정책이 어떻게 개별농가의 영농계획에 최대한 반영되고 구현되느냐이다. 그동안의 농업생산정책은 정부의 일방적인 것이었으며 생산 주 체인 농민에게 어떻게 얼마나 수용되며 농장에서 실제로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는가에 관 해서는 소홀히 해온 것이 사실이다. 즉 정부는 농산물의 전체적인 수급불균형에서 생긴 차 질을 절대량 증산주의의 관철로서 달성하고자 하였으며 그것이 농업경영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못하였다. 정부는 ‘사회경제적’ 견지에서 농업생산정책을 구상하고, 개 별농가는 ‘사경제적’ 견지에서 정부의 농업생산정책을 취사선택하므로 일방적인 생산정책 은 결과적으로 차질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적정한 가격수준이 보장되지 못한 농산물의 증산 을 강요한다는 것은 적어도 농가의 입장에서 보면 비합리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제3공화국 정부는 「축산장려 5개년계획」(1962~66), 「유축농가조성 5개년계획」(1961~65),
「낙농장려 10개년 계획」(1962~71년), 「축산진흥 4개년계획」(1968~71)이 추진되고, 「축산법」,
「낙농진흥법」, 「사료관리법」, 「초지법」 제정 등 축산진흥시책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한편, 양잠은 반실업 상태의 농가노동력에 연소기회를 제공하여 농가소득과 수출증대에 대한 기여도가 커서 식량증산 사업과 함께 정부의 역점사업으로 부상하였는데, 정부는 경제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제1차 잠업증산5개년계획」(1962~66)과 「제2차 잠업증산5개년계획」
(1967~71)을 추진하였다. 이 기간에 우리나라의 뽕밭 면적은 전체 밭 면적의 약 10%, 양잠 농가는 전체 농가 수의 약 20%를 차지하였고, 농수산물 수출의 반을 차지하였으며, 한때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0% 이상, 수출가득액 면에서는 20%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5.3. ‘고미가’와 이중곡가제 도입
정부는 1968년산 미곡의 수매가격을 파격적으로 전년 대비 17% 인상한 것을 시작으로 1968~71년 사이 연평균 25.1%씩 수매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이른바 ‘고미가’정책을 폈다. 그 결과 1968~71년간의 평균생산비에 대한 수매가격 지수는 147로서, 1962~66년의 평균지수
제4장 경제성장기의 농업·농촌(1961~1987)
163
130에 비하면 ‘상대적인 고미가’였다. 이 시기의 고미가정책은 종래의 지나친 저곡가정책이 식량 증산의 저해, 농가소득 증대의 부진, 미곡의 소비증대와 맥류의 소비위축, 외곡의 도입 증대 등 많은 문제점을 가져온 것에 대한 반성에 기초한 것이지만, 여기에는 1969년의 ‘3선 개헌’과 1971년의 대통령선거 등 정치적인 이유도 없지 않았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편, 1989, p.37).1968년의 고미가정책에 뒤이어 1969년부터는 맥류의 증산과 소비촉진을 위해 방출가격 을 매입가격보다 낮게 하는 「이중맥가제」를 실시하였고, 1970년부터는 생산자가격 지지로 증산을 유도함과 동시에 소비자가격을 낮추어 저임금체제를 유지하고자 쌀에 대해서도 「이 중미가제」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방출가격과 수매가격의 차이가 중간경비를 초과하는 본격 적인 의미의 이중미가제는 1972~76년 사이에 실시되었다.22)
‘고미가’와 이중곡가제의 도입배경은 국민경제 재생산조건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23) 1960년대 양곡 생산의 불안정과 외곡의 대량 도입은 대외지향적인 자본축적을 수행하는 국 내자본의 입장에서는 소재 보전에 필요한 외환 문제를 일으킴으로써 자본축적의 중요한 애 로로 작용하였다. 특히 미국원조가 무상에서 유상으로 전환됨에 따라 국제수지가 크게 압박 을 받게 된 상황에서 국내 자본의 원활한 축적을 위해 농업 부문이 식량 증산을 통해 국제 수지상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었다.24)
이 시기 양곡관리와 관련하여 특기할 사항은 10월유신 직후인 1972년 12월 18일 「양곡 관리법」을 개정하여 국가의 양곡 통제력을 강화하였다는 점이다. 즉, 「양곡관리법」 개정을 통해 수매가와 수매량 결정에서 국회 동의 조항이 삭제됨으로써 그나마 국회 동의 과정에서 제한적으로 표현되었던 곡가에 대한 농민의 이해보다 자본의 요구가 관철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다(조영탁, 1991, p.366).25)
22) 1969~72년도 이중미가제의 내용, 즉 수매가격, 판매원가, 방출가격의 비교에 대해서는 농협중앙회 조사부(1981, pp.127~129)를 참조.
23) 이중곡가제의 목표, 성과, 문제점에 대해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1986, p.648)를 참조.
24) 이중곡가제는 국가가 한편으론 총자본의 입장에서 저 농산물가격에 의한 저임금을 보장해주고, 다른 한편으론 농업·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농가수취가격을 지지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하 개량주의적 농업정책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한 국농어촌사회연구소, 1989, p.234). 그로 인해 이중곡가제는 정책목표 자체가 이중적·상충적일 수밖에 없었고, 경제 의 호·불황, 물가변동 폭, 재정 형편, 쌀 과잉과 부족, 농가 경제 사정 등 한국 자본주의의 재생산조건 변화에 따라 이중곡가제의 정책목표와 내용도 달라졌다.
25) 1972년 이전에는 정부가 가격지지를 위해 수확기에 물량을 흡수한다는 측면보다는 정부양곡의 확보를 위해 반강제적
제1편 농업·농촌 100년의 발자취
164
5.4. 농업 재정·금융
농업재정은 농업 부문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개입과 규제의 주요한 내용이며 수단이다. 이 시기 재정정책의 전개에서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대외 의존적·대내 불균형적 경제성장 정책 하에서 농업 부문에 대해 상대적으로 낮은 재정투융자가 이루어져 왔다는 점이다. 제1 차 5개년계획 기간 중 국내총생산에서 농림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8.0%인데 비해 정부의 재정투융자에서 농림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5.2%에 불과하였고, 제2차 5개년계획 기간에 는 전자 28.2%, 후자 26.1%로 다소 완화되긴 하였으나 농림어업 부문에 대한 재정투융자가 낮은 상황은 지속되었다.
농업재정을 내용 면에서 보면 대부분의 농업 부문 재정투융자가 개간·간척 등 농지의 외 연적 확대, 농지개량 등의 생산기반 정비, 농업생산 장려 등 생산정책 분야에 집중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 이중곡가제가 실시되고, 농산물가격 안정을 위한 기금이 확충되는 등 가격정책이 강화되고 농어촌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투융자가 일부 이루어졌으나 농업재정 대부분은 여전히 농지기반 조성 등 생산정책에 집중되었다(이영기, 1998, pp.283~285).
공업화 중심의 불균형성장이 강력하게 추진되는 과정에서 농업금융, 즉 농업부문에 대한 자 금공급 또한 제한되었다. 예컨대, 1970년의 경우 농림어업 GDP 비중은 24.8%인데 비해 예금 은행의 대출금 중 농림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3.8%에 불과하였다. 이 시기에는 정부가 자본
공업화 중심의 불균형성장이 강력하게 추진되는 과정에서 농업금융, 즉 농업부문에 대한 자 금공급 또한 제한되었다. 예컨대, 1970년의 경우 농림어업 GDP 비중은 24.8%인데 비해 예금 은행의 대출금 중 농림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3.8%에 불과하였다. 이 시기에는 정부가 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