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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지역갈등해소를 위한 숙의민주주의 모델 정립

2) 공적숙의의 윤리성

대의제에서 주로 활용되어온 투표는 여론조사와 마찬가지로 선호도만을 파악하는 다수결의 논리를 따른다. 그러나 투표나 여론조사는 시간적 영역 내에서 그 순간 개인의 선호도를 수집하는 것이다. 즉 수집된 통계는 정지된 인간의 심리를 포착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양한 경로로 간접적 경험을 쌓아가고 매 순간 주관적 체험을 겪는다. 경험을 반복하는 개인의 선호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선호 역시 결코 정(靜)적이지 않다. 개인의 선호와 선호도가 변화함에 따라 생활세계에서 필요성을 인식하는 문제들이 새롭게 발생한다. 다수의 선호 변화는 더 큰 파장으로 생활세계를 변화시킨다. 민주사회에서 대리인(선출인)은 시민사회의 의견을 대표하여 정책을 결정해야 마땅하므로 매순간 변화하는 생활세계의 선호와 선호도를 파악하여야한다.

따라서 순간의 선호를 수집하는 투표나 여론조사만으로 사회문제와 갈등의 요인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나열된 문항들의 선택은 종종 원하지 않는 것과 더 원하지 않는 것, 곧 ‘두 개의 악들 중에서 덜한 쪽을 선택’61)하는 행위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선출자가 시민사회의 대리인으로서 정책을 입안할 때에는 시민사회의 선호 및 선호도의 변화를 파악하고 사유를 이해하기위한 끝없는 의사소통의 노력이 필요하다. 의사소통 행위는 순간에 박제되지 않으며 상호작용이라는 특성 덕분에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경험에 기반하여 추구하는 미래의 어떤 것들을, 상대의 주관적 경험과 전망에 비교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요컨대 의사소통은 주체와 객체의 시간을 공유하는 기제로서 성찰적 이해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후설(E. Husserl,)은 이러한 과정을 의식철학의 ‘상호주관성’62)이라고 표현한다. 의사소통의 상호주관성 실현은 공동합의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정책이 시민사회의 합의결과로서 도출되는 것이 참 이라면 정책결정과정은 생활세계의 개인과 개인 간, 생활세계와 체계 간을 아우르는 의사소통과정을 거쳐야함이 타당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결정과정에서 결정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의 문제다. 사회구성원들의 공동합의를 추구하는 숙의 민주주의는 제도화된 절차 속에서 시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 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공공선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61) A. Negri, M. Hardt, Multitude, 2005, 조정환 외 역, 『다중』 (서울 : 세종서적, 2008), p. 324.

62) E. Husserl, Cartesianische Meditationen und Pariser Vorträge, 1973, 이종훈 역, 『데카르트적 성 찰』 (파주 : 한길사, 2002), p. 157.

윤리적인 과정을 통하여 공공선을 함께 찾는 합의의 과정이어야 한다. 벤하비브 (Benhabib, S.)는 이를 민주주의의의 정당성 문제로 여긴다.63)

숙의민주주의는 의사소통행위를 통하여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궁극적 으로 공동합의점을 찾기 위한 합리적 선택을 한다. 공리주의처럼 목적론적 윤리를 추구하는 사상은 어떤 선택이 합리적인지 비교하고 고름으로써 합리성을 최대화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선택지에서 이익과 기회비용을 따질 뿐 어떠한 성찰도 이뤄지지 않는다. 반면 숙의민주주의에서 체계와 생활세계의 교두보 역할을 자처하는 공론장은 자아성찰의 집합체이다. 상호이해를 지향하는 의사소통행위는 공동합의를 이루기 위하여 스스로의 허위의식을 깨달을 수 있는 계몽적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숙의 민주주의는 체계와 생활세계의 집합적 의사소통으로부터 기인하므로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합리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공론화 과정을 제도화해야하며 체계의 제도들은 다시 공적숙의를 거치는 윤리적 절차를 밟으며 형성되는 것이다.64)

담론윤리는 상호이해지향적인 의사소통 행위와 합리성, 공적 이성을 아우르는 윤리성을 띠고 있다. 공적숙의에 참여하는 의사소통 행위자들은 평등성을 핵심으로 삼는 내재적 기준에 의거하는데, 이러한 기준이 곧 담론윤리다. 담론은 합리적인 공동 합의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합의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이상적인 언어 행위가 전제되어야하는데 이상적 언어행위란 비강제적, 상호주관적, 자율적, 균형적, 이해지향적인 언어행위, 즉 숙의토론을 의미한다. 앞선 세 가지 사례에서 숙의토론이 진행될 때 찬성 측과 반대 측은 모두 동일한 발언시간을 부여받았다. 소분임 숙의 토론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언기회는 균등하였고 의견을 개진할 때 지켜야할 세부 지침 들도 존재하였다. 이러한 지침들이 숙의토론에서 형평성 있는 토론기회를 위한 것일 때, 지침에 내재되어있는 강제성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강제성, 합법성이 공적숙의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결국 규범성과 정당성 문제를 재논의하는 것과 같다. 새로이 규범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공정성과 정당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공정성과 정당성은 엄밀히 말해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 정당성이 법적 개념에 의거하는 타당성의 개념으로 활용된다면 정당성은 곧 합법성을 의미하므로 강제성의 문제는 무의미하다. 그러나 정당성이 특정 개념에

63) S. Benhabib, "Toward a Deliberative Model of Democratic Legitimacy", Democracy and Difference (NJ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6), pp. 67-95.

64) S. Benhabib (1996), p.69.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개념이라면 정당성은 곧 가치를 의미하게 된다. 공적이성의 윤리성, 즉 담론윤리는 행위를 함으로써 무엇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하였기에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담론윤리의 성과는 갈등해소 이므로 사회적 합의를 의미한다. 이처럼 숙의민주주의의 윤리성은 특정한 목적에 귀속되는 수단적 개념이 아니라 정당한 행위로서 공적숙의를 통하여 윤리성을 획득 하는 것이다.

참여민주주의는 숙의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정책결정과정에의 시민들의 직접적 참여를 중시한다. 숙의민주주의에서 참여권은 의무론적 규범에 포함되지만 참여 민주주의에서 참여권의 보장은 개인의 자율성에 의지한다. 개인이 자율적인 존재일 때 스스로를 위한 합리적 선택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이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가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 새로운 문제에 봉착한다. 참여 민주주의에서 참여권은 숙의민주주의의 참여권과 달리 윤리적 차원에서 의무론적이지 않다. 참여민주주의에서 참여권은 권리의 평등한 실현, 즉 개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가지는 인정욕구를 정당히 충족할 권리를 강조한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이뤄진 표결에는 공동합의의 개념이 무색해진다. 공동합의가 윤리적 행위가 아니라 사회구 성원으로서 자율적인 권리 추구의 당위성을 실현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정당성은 사회구성원들이 자유롭고 평등하여야 한다는 기본전제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모두가 평등한 자유권을 추구함에 따라 사회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질수록 갈등 역시 증가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개인과 개인 간 자율성이 충돌할 때 정당성은 방관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정당성은 의견 불일치가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도 참여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기본권 실현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합리적 선택에 따른 의견불일치로부터 발생한 사회적 갈등을 묵인할 수밖에 없다. 합리적 선택에 따른 갈등은 합리적 결과 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논의로는 결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없으며 공적이성을 발휘할 수도 없다.

민주적 정당성은 국민주권의 실현이고 국민주권이란 사회구성원들의 공동합의를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가 권리에 초점을 맞추고 정당성을 실현할 때, 숙의민주주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정당성의 개념을 재해석한다. 숙의민주 주의에서 정당성은 곧 의무론적 윤리성을 의미하므로 사회구성원들은 자신의 권리를

추구하는 동시에 서로가 서로의 권리를 추구할 수 있도록 상호 조정하고 합의해 나가야만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공적숙의를 거쳐 공적이성이 발현되는 절차 속에서 공적숙의의 윤리성을 찾을 수 있다.

숙의민주주의의 시민과 대리인(선출인) 즉 생활세계와 체계는 상호 간에 자율적인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인정받아야한다.’ 부산광역시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정책이 결정된 후 단 한 차례의 민원도 발생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이는 부산 사회가 공론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상관없이 공론화를 통한 정책결정이 타당하고 정당하다고 인정하였음을 의미한다. 신고리 사례의 경우에는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정책결정에 대하여 반발하는 언론기사65)가 간혹 있었으나 이는 전통적이고 보편적 이었던 학인-관료의 문화적 통념을 극복하지 못한 가치관의 문제다. 제주 사례의 경우 도정이 공론화 결과를 수용하지 않았으므로 숙의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평가 하기에는 섣부르다.

숙의민주주의의 시민과 대리인(선출인) 즉 생활세계와 체계는 상호 간에 자율적인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인정받아야한다.’ 부산광역시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정책이 결정된 후 단 한 차례의 민원도 발생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이는 부산 사회가 공론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상관없이 공론화를 통한 정책결정이 타당하고 정당하다고 인정하였음을 의미한다. 신고리 사례의 경우에는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정책결정에 대하여 반발하는 언론기사65)가 간혹 있었으나 이는 전통적이고 보편적 이었던 학인-관료의 문화적 통념을 극복하지 못한 가치관의 문제다. 제주 사례의 경우 도정이 공론화 결과를 수용하지 않았으므로 숙의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평가 하기에는 섣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