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3. 니힐리즘과 가치전도

3.3 모든 가치의 전도

니체는 니힐리즘을 하나의 징후로서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힘의 상승의 징 후일 수도 하강의 징후일 수도 있다. 니체는 니힐리즘이 우리들의 삶에 있어 상 승의 징후로 작용할 때 우리에게 도래한 니힐리즘의 극복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것은 니힐리즘이 단지 최고의 가치에만 의존하 는 인간의 모습을 자각하게 하고, 이러한 자신의 상태를 극복할 단초를 마련할 철학적 성찰로서 적용될 때를 말한다. 니힐리즘이 이러한 철학적 성찰로 우리에 게 적용될 때 니힐리즘은 오히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출발점, 즉 삶의 상승의 징후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삶의 상승의 징후로서 니힐리즘은 인간이 자신에

51) 하이데거는 이러한 완전한 니힐리즘이 이제까지의 삶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질서를 위해 길을 열고 사멸 하려는 의지를 지닌 것들에게 종말에의 열망을 불어넣는 다는 점에서 니힐리즘은 기존의 장을 제거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들의 장을 여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니체와 니힐리즘 , 133쪽 참고.

52) 니체전집(KGW Ⅷ-2) , 9[39], 25쪽.

대한 올바른 성찰을 하게 함으로써 니힐리즘의 극복, 달리 말해서 자기극복의 단

아들이고 극복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데, 니체는 이것을 운명애(amor fati)라고 부른다. 그는 운명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몸에 나쁜 피를 지니고 있는 모든 것에 오로지 내 존재로만 항거한다…… 인간에 게 있는 위대함에 대한 내 정식은 운명애다: 앞으로도, 뒤로도, 영원토록 다른 것은 갖기 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필연적인 것을 단순히 감당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은폐는 더 더욱 하지 않으며―모든 이상주의는 필연적인 것 앞에서 허위다―, 오히려 그것을 사랑하 는 것……

55)

이러한 운명애는 자신의 삶과 마주할 때 드러나는 처참한 고통을 외면하거나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왜곡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에 마주서는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운명애를 깨닫게 되면 자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 과 의지를 무한히 긍정하는 자기극복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 니체의 입장이다.

그러나 니체가 보기에 인간의 삶이 이러한 운명애를 필요로 할 정도로 고통스러 운 것은 바로 인간이 힘에의 의지의 무한한 투쟁의 상태인 생성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명애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무한히 긍정한다는 니체의 주장은 힘에의 의지의 투쟁의 세계인 생성의 세계를 인간이 받아들이고 힘에의 의지의 본질인 생성, 즉 기존의 가치를 전도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니체가 말하는 모든 가치의 전도는 인간이 운명 애를 통해서 자신의 의지를 믿으며 끊임없이 자기를 극복하고 기존의 가치를 넘 어서서 스스로 가치를 창조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니체의 주장은, 니힐리즘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간은 어떤 가치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 라 스스로 가치를 창조해내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지닌 강력한 긍정의 사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긍정의 사유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운명애를 통해서 지닐 수 있는 인간의 거룩한 긍정이다.56) 니체는 이러한 거룩한 긍정을

」, 정치사상연구 , 제8집, 152~153쪽 참고.

55) 니체전집(KGW Ⅵ-3)-이사람을 보라 , 373쪽.

56) 디오니소스적 긍정은 인간이 지닌 강력한 긍정의 사유로써 그러한 사유가 긍정하려는 것은 바로 인간이

‘디오니소스적 긍정’(dionysische Bejahung)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디오 니소스적 긍정이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니 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디오니소스적 긍정이 인간이 살아가는 이 대지, 즉 바로 지금 여기 삶 속에서 자기 의지를 무한히 긍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 고 니체는 이 거룩한 긍정을 통해 인간이 위버멘쉬(Übermensch)57)라는 새로운 인간유형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러한 점에서 니체에게 디오니소 스적 긍정은 인간이 자기의 삶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긍정하려는 사유 이다. 즉, 그에게 있어서 디오니소스적 긍정은 인간이 니힐리즘을 완전히 극복하 고 항상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위버멘쉬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힘에의 의지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은 힘에의 의지의 무한한 힘의 투쟁 속에서 겪는 고통을 받아들 이고 긍정하려는 사유가 바로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다. 이러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사유를 가능하게 하 는 것이 인간이 자신의 운명에 대한 사랑인 운명애인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백승영 옮김, 니체전집 (KGW Ⅷ-3)-유고(1888년 초~1889년 3월 초) , 16[32], 책세상, 2000, 354~356쪽 참고, 이후 니체 전집(KGW Ⅷ-3) .으로 표기.

57) 위버멘쉬(Übermensch)는 우리 말로 보통 초인으로 해석된다. 그것은 인간을 초월해서 있는 초월자가 아 니라 인간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자로서 니체가 추구하는 새로운 인간의 유형을 의미한다. 논자는 니체가 니힐리즘을 극복한 자로서 제시하는 인간 유형인 위버멘쉬의 의미를 최대한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 번역어인 초인이 아니라 위버멘쉬로 표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