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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 정보보안학과 1학년 이지혜

1. 실패

나는 중학교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한국예술종학대학교를 가려고 고3 수시원 서를 쓰기 전까지 6년 동안 주구장창 바이올린 연습만 했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하 면서 드는 생각은 ‘정말 내가 하고 싶어서 바이올린을 연주 하는 걸까? 나는 재능이 있는 걸까?’였다. 대회를 나가면 나갈수록 성적은 부진했고, 주변에 잘하는 친구들 은 점점 늘어만 가서 나의 재능에 더욱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연습시간을 늘려도 집중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오히려 독이 될 뿐인데 나는 연습시간만 늘려갔다.

항상 제 자리 걸음 하는 실력에 나는 지레 겁을 먹어서인지 다른 사람들 앞에 만 서면 덜덜 떨렸다. 그걸 보고 레슨을 해주시는 선생님께서 냉정하게 말씀하셨다.

그만 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때까 지 학과공부도 하지 않고 오직 바이올린만 바라보고 왔는데 그만두는 게 좋다는 소 리를 들으니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좋아서 그리고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시작했는데 재능이 없다 까지 듣게 되니 내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었 다. 결국 나는 바이올린을 포기했다.

그러기 위해서 유통업계에 취업하고 싶다는 꿈, 취업을 위해 자격증 취득과 공 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꿈과 목표가 생겼다. 이전에는 이 모든 게 스트레스였는데 내 꿈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이 바꾸니 더는 괴롭지 않다. 앞으로는 또 어떤 꿈이 생길지도 궁금하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확신이 생긴다. 많이 느리고 힘든 일도 많 겠지만 진짜 꿈을 찾아 달려가는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다고 세상 에 말해주고 싶다. 나는 꼭 해내고 말 것이다.

2. 구원

하지만 나는 부모님께 바이올린을 그만뒀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레슨시 간에 할 게 없으니 소위 말하는 일진 애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의미 없이 친구들과 놀다가 어느 날 노래연습장 앞에서 엄마와 마주쳤다. 그날 처음으로 엄마에게 뺨을 맞아보았다. 우리 엄마는 절대 화나는 일이 있어도 손찌검하지 않았 는데 그날 나를 때렸다.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엄마의 눈물을 보 아서인지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늦은 공부여서 따라가기가 힘들었 다.

하루는 학교 오케스트라담당 선생님이 야자시간에 갑자기 나를 불렀다. 맛있는 것을 사주시겠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모르는 선생님이 계셨고 적성검사용지와 피자 가 있었다. 적성검사용지를 풀면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는데 나는 부모님께도 하 지 못했던 재능이 없다는 말을 생전 처음 본 선생님께 하게 되었다. 그리고 눈물을 펑펑 흘렸고 그때 선생님은 “사람이 살다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날도 있다.

돌에 넘어지면 아픈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아프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 는 것은 지는 것이라고 넘어져도 괜찮아 하면서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말씀해 주 셨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선생님이 나만큼 인생을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지 않아 서 저렇게 쉽게 말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선생님이 왜 선생님이 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동질감도 생겨서 그 시간이 좋아졌다. 적성검사 결과 나는 IT관련 직업이 1순위였다. 다 늦게 시작한 공부라 성적 결과는 비참했다. 여러 대학에 컴퓨터 공학과나 정보보안과를 썼는데 합격한 곳은 함 곳도 없이 예비 번호만 받았을 뿐이었다. 선생님도 고3 아들이 있어 함께 열심히 수능공부를 했는데 수능까지 마치고 난 후 얼마 뒤 우석대에서 전화가

왔다. 대학교에 합격하게 되었다고 나는 이 소식을 부모님이 아닌 선생님께 가장 먼저 달려가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마치 자신의 일 마냥 좋아하시고 기뻐해 주셨다.

그렇게 난 우석대에 입학했다.

3. 방황

막상 전라북도에 오니 쓸쓸했다. 친구 한 명 없고 가족도 없는 이곳에서 내가 혼자 지낼 수 있을까 두려웠다. 힘들 때 항상 누구라도 곁에 있었는데 이곳은 그냥 나 혼 자고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니 우울했다. 그렇게 시작한 1학기는 역시나 쓸쓸했다. 학 과 OT도 안간 나에게는 모두가 낯설었다. 사람이 살만하면 힘들었던 지난날을 잊는 다 했던가? 그 말이 나에게 딱 맞는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겪었던 일들을 잊어 버리고 나는 또 방황하기 시작했다. 수업도 전공과 교양필수는 한 과목씩만, 교양선 택은 2개로 딱 11학점만 신청한 채 한 학기만 다니고 재수할까 마음도 먹었다. 그리 고 조금만 힘들어도 수업을 빠졌다. 시험공부도 하지 않고 그냥 진짜 막 살았다. 부모 님께 전화가 오면 잘 하고 있다고 거짓말만 치고 매일매일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만 그리워했다. 항상 금요일이 되면 기차를 타고 집에가 가족들 얼굴도 보고 재수를 하 는 친구들도 보고 대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혼자의 생활을 이어갔다.

4. 흥미

그렇게 1학기를 날려 보내면서 나는 정말 ‘자퇴를 할까 아니면 휴학을 해서 정신 을 좀 차리고 올까’ 고민했다. 엄마는 2학기 한 번 더 다녀보고 휴학을 결정하는 것

도 아직 잘 모르고 내 꿈을 찾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남들보다 아주 늦었지만 그 꿈 을 찾기 위해 애쓰는 요즘 행복하다. 길었던 방황시간의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같 은 고민을 해도 고등학생 때는 가슴만 답답하고 죽을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그냥 기 쁘다. 그리고 나와 같이 뒤늦게야 꿈을 찾는 친구들을 번데기라고 생각한다. 나비도 태어날 때부터 나비가 아니었다. 애벌레부터 시작해 번데기를 거쳐 아름답게 세상 에 날아오른다. 우리도 그와 같다고. 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없다. 우리도 다들 처음 인데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 다들 날개를 펼치기 전에 방황하고 고민하고 사람마다 그 시간이 다를 뿐 언젠가 날개를 펼쳐 나는 날이 올 것이다.

이 어떻겠냐고 하셨다.

나는 ‘2학기는 또 얼마나 의미 없이 보낼까?’하면서 수강신청을 했다. 그런데 거 짓말같이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 졌다. 컴퓨터를 이용해 C언어 수업을 하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컴퓨터에게 내가 명령을 내려 컴퓨터가 알아듣고 수행하는 게 너무 신 기했다. 중간에 컴퓨터가 내말을 못 알아듣고 에러가 날 때는 짜증도 났었지만 0과 1로 이루어진 컴퓨터에게 한걸음 더 다가간 기분이었다. 전공에 재미를 느껴 막 학 구열이 올랐을 때 1학기 때 놀았던 것을 보충하기 위해 19학점을 꽉꽉 채워 듣기 위해 나는 교양선택 과목을 더 신청했다.

1학기 때 반덕진 교수님의 ‘인간과 사회’를 꽤 재밌고 좋게 들어서 반덕진 교수님 수업을 찾아서 고르던 중 수업시간도 적당하고 강의 제목에 이끌려 “교양과 독서”

를 신청했다. 제목만 봤을 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수업일줄 알았는데 그렇게 단순한 수업이 아니었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같은 고전에서부터 동영상 감상시 간에는 고전을 토대로 한 영화 등을 보여주셔서 많은 점을 배웠다. 일리아스 수업 을 너무 재미있게 듣고 책을 사서 읽어봤는데 첫 페이지만 보고 서랍 속에 넣어놓 았다. 교수님이 설명을 재미있게 한 것이지 절대로 책이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하루는 교수님께서 수업 중간에 운명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운명보단 천명을 따르라고, 천명은 곧 적성이며 적성을 찾으면 천직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 었다. 그리고 운명을 바꿀 수 있냐고 질문하셨다. 나는 운명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 한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좋은 선생님을 만나 내 삶이 다시 시작된 것처럼 운명 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어지는 것 같다. 물론 그 운명을 바꾸는 건 자신이며 하 기 나름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한 번 찾아 올 것이다. 선생님이라는 전환점을 만 나 내 인생이 180도 바뀐 것처럼.

나는 아직도 고등학생 때처럼 지근의 전공을 고른 게 맞을까? 그때 찾은 적성이 정말 나의 적성일까? 라고 생각을 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뭐가 되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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