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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뜻을 찾는’ 우석 글쓰기 대회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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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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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꿈과 뜻을 찾는’

우석 글쓰기 대회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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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꿈과 뜻을 찾는’

우석 글쓰기 대회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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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발간사] 글쓰기, 공들여 쓰고 고치는 모든 순간 우리 삶은 드높아지고! • 7 [심사평] 제6회 ‘꿈과 뜻을 찾는’ 우석 글쓰기 대회 심사평 • 17

<대상>

물꼬 튼 작은 꿈을 좇아 / 심리학과 3학년 우정은 • 21

<최우수상>

굶으면 좀 어때 / 문예창작학과 홍승표 • 25

욕심쟁이 / 상담심리학과 2학년 안지수 • 29

질문하는 기자, 실천하는 기자 / 신문방송학과 3학년 민준영 • 35

꿈꾸는 꽃봉오리 / 아동복지학과 4학년 이한화 • 39

꿈을 먹고 사는 괴물 / 한약학과 2학년 이조희 • 43

<우수상>

겁쟁이의 거창한 핑계 / 경찰행정학과 4학년 김하림 • 47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암흑 속에서 자란다 / 경호비서학과 2학년 천승현 • 51 좌절과 실패, 새로운 도전 / 국어교육과 4학년 조성민 • 57 나를 위해 무책임해지기로 결심했다 / 일본어과 4학년 윤지수 • 61 나의 꿈 나의 뜻 / 한의학과 1학년 한주희 • 65

<가작>

꿈이란? / 경영학과 3학년 김 열 • 69

艱難辛苦 花樣年華 (간난신고 화양연화) / 국어교육과 2학년 김민지 • 73

비상 / 군사학과 2학년 김윤찬 • 77

우석대학교와 나의 꿈 / 대체의학과 3학년 안성일 • 81 융통성 있는 꿈 / 미디어영상학과 1학년 정영애 • 85 베풀어야 하는 꿈 / 식품영양학과 4학년 백선영 • 89 희망의 씨앗이 되어 / 심리학과 1학년 이환희 • 93 나를 알아가는 과정 / 유통통상학부 3학년 전형철 • 97 넘어져도 괜찮아 / 정보보안학과 1학년 이지혜 • 101 나는 나이기 때문에 행복 합니다 / 특수교육과 3학년 소병인 • 107

<특별상>

바보 같은 간호사 / 간호학과 4학년 이주영 • 109

첫 번째 관문 / 군사학과 2학년 성수제 • 113

소년의 영화 / 미디어영상학과 4학년 임채현 • 117

나의 꿈과 뜻 / 심리학과 1학년 김한결 • 121

꿈과의 줄다리기 / 아동복지학과 2학년 천유진 • 125 진정한 인간미 / 역사교육과 2학년 장승모 • 129 나의 꿈과 뜻 / 외식산업조리학과 3학년 정권석 • 133 꿈과 뜻이 아득해서 답답한 마음 / 유통통상학부 1학년 노지수 • 135 그럼에도 불구하고 / 특수교육과 1학년 주예슬 • 139 방황 끝에 생긴 내비게이션 / 호텔항공관광학과 2학년 서지혜 •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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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글쓰기, 공들여 쓰고 고치는 모든 순간 우리 삶은 드높아지고!

젊은 시절에 자신의 꿈과 뜻을 찾는 일보다 더 값진 일은 없습니다. 꿈을 키우는 고귀한 모습을 글로 쓰고 수상까지 한 학생들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꿈과 뜻을 찾는’ 우석 글쓰기 대회가 어느새 여섯 해를 맞았군요. 수상 작품들을 살펴보니 다양한 학과와 학생들이 참가한 점이 눈에 띱니다. 글쓰기대회를 시작 할 때만해도 요즘 같은 시대에 학생들이 관심이나 가질까 우려했던 마음이 컸는데 대 회 공고를 기다리는 학생도 있다는 얘기가 들려 놀랐습니다. 우석인의 꿈과 뜻을 키우는 데 글쓰기대회가 역할을 계속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전에는 상상도 못한 경이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다가올 미래에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그에 맞는 삶의 방향 정립과 모색이 인생을 좌우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의 핵심이 무엇인지 간파해야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수평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 개인의 자율성과 소 통, 그리고 협력을 중시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글쓰기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맺기가 수평적 소통에 의거한다면,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잘 전달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핵심을 이 루기 때문입니다. 소통은 만남이 전제이나 SNS 등과 같은 가상공간에서는 말과 글 을 통해 그러한 관계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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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는 시대이며 자기표현의 의무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자기표현능력 혹은 글쓰기가 미래사회 경쟁력의 필수요건인 이유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을 기술하는 것 입니다. 내가 쓴 말과 글이 날실과 씨실처럼 엮여 “나”라는 무늬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을 정리해서 어 떻게 써야 할까? 까다롭고 어려운 일입니다.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본 발간사를 빌어 ‘좋은 글을 쓰는 비법’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첫째, 좋은 글을 쓰려면 내면에 가치 있는 생각과 앎이 출렁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늘 열려있는 마음으로 눈앞의 것 들을 받아들이고, 넓고 깊게 보며, 매사 올바르게 판단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 를 위해서는 선입견을 없애고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 러한 과정을 거친다면 가치 있는 생각들을 내면화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둘째, 좋은 글을 많이 접해야 합니다. 좋은 글과 책을 가까이 두고 읽으며 글의 표 현 뿐 아니라 그에 담긴 정신까지 본받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동서고 금을 통해 널리 알려진 방법입니다. ‘좋은 글 쓰기’와 ‘좋은 글 읽기’는 따로 떼어 생 각할 수 없습니다. 좋은 글 읽기는 글쓰기의 첫걸음이자 좋은 글을 배울 수 있는 가 장 자연스러운 방법입니다. 특히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좋은 글 찾아 읽기’는 꼭 필요합니다.

셋째, 글을 많이 써봐야 합니다. 글쓰기는 막연한 느낌이나 생각을 객관화하는 작 업입니다. 제법 그럴듯하게 여겨졌던 머릿속 생각이 막상 글로 써놓고 보면 어설프 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이 있을 것 입니다. 내 자신도 어설프다고 느낀 생각에 누 가 공감하고 동의하겠습니까. 생각을 제대로 객관화하여 세상에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날마다 몇 줄이라도 쓰는 습관을 길러 꾸준히 실력을 높여가야 하겠죠?

끝으로, 글을 쓰고 난 후 반드시 소리 내어 읽어보고 고쳐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책을 읽고, 골똘히 생각해 글을 썼더라도 읽는 사람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 소용

없습니다. 또 앞뒤도 안 맞고 어색한 표현이 많은 글은 좋은 의도와 생각을 온전히 전달 할 수 없습니다. 글을 처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읽고 고쳐 완성도를 높여야 좋은 글이 됩니다.

방법을 찾아 연습하면 글쓰기가 부담스러운 작업만은 아닙니다. 글쓰기는 학업과 취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고마운 도구이기도 하지만 일상과 이웃을 따뜻하고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 사람은 빛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입니다. 공들여 글을 쓰고 고치는 과정 하나하나 다 소중한 순간이며 우리 몸과 마음에 켜켜이 쌓여 나와 내 삶을 드높입니다. ‘꿈과 뜻 을 찾는’ 우석글쓰기대회는 앞으로도 그러한 기회를 열어두겠습니다.

2017년 1월

교무국제처장 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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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글을 쓰고, 글쓰기는 사람을 만든다!”

제6회 ‘꿈과 뜻을 찾는’ 우석 글쓰기 대회

□ 취지 및 목적

○ 우석 글쓰기 대회는 ‘내 꿈은 무엇일까?’, ‘내가 삶에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전공 분야 학문 탐구를 통해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어 디일까?’ 등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도록 함.

○ 우리 대학 모든 재학생이 대상이며, 자신의 ‘꿈과 뜻을 진지하게 찾아보는 글 쓰기’를 통해 저마다의 개성과 장점 및 지향점을 발견하게 함.

○ 이를 통해 우리 대학 재학생들은 자신의 꿈과 이상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인식 하며, 그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힘을 갖게 됨.

□ 대회 개요

○ 대회명 : 제6회 ‘꿈과 뜻을 찾는’ 우석 글쓰기 대회 [현상공모]

○ 주관 : 교무국제처 교무학사팀, 교양대학 글쓰기지원센터

○ 공모기간 : 2017년 10월 27일(금) ~ 11월 17일(금)까지

○ 대상 : 우리 대학 재학생이면 누구나

○ 주제 : ‘나의 꿈과 뜻’

#나의 실패와 도전 #나를 꿈꾸게 하는 혹은 나의 꿈을 가로막는 것들에 대해

#꿈도 뜻도 아득해서 답답함 마음 #꿈을 이루기 위한 행동계획서 등을 소재로

○ 원고분량 : A4용지 1~2매(200자 원고지 10매~15매)

○ 원고제출 : 󰋮전주캠퍼스 : 공학관 2212호 글쓰기지원센터

󰋮진천캠퍼스 : 온누리관 3103호 통합과사무실 방문 제출 (학과·학년·학번 및 연락처 반드시 기재)

또는 전자우편 제출(writing123@woosuk.ac.kr)

○ 결과 발표 : 2017년 12월 첫째 주 우석대신문에 수상자를 발표하고 대상작 게 재 예정

□ 시상 내역

[응모자 전원 참가상품 증정!]

구 분 인 원 내 용 기 타

대 상 1 명 상장 및 장학금 (50만원) 최우수상 5 명 상장 및 장학금 (각 20만원)

우 수 상 5 명 상장 및 장학금 (각 10만원)

가 작 10 명 상장 및 상품 (각 3만원 상당) 참여 학과별 분포 를 고려하여 선정 특 별 상 10 명 상장 및 상품 (각 3만원 상당)

※ 시상 일정은 추후 공지

※ 응모자 우석챔프 마일리지(인성개발활동 영역>교내주최 각종 행사 참여 2M) 부여

※ 수상자 우석챔프 마일리지(입상활동 영역>교내 및 시군구 규모 20M) 부여

※ 전자우편(writing123@woosuk.ac.kr)으로 원고를 제출한 학생은 원고 제출처 를 방문하여 참가상품을 수령하시기 바랍니다. (▲ 전주캠퍼스 : 공학관 2212호 글 쓰기지원센터 ▲ 진천캠퍼스 : 온누리관 3103호 통합과사무실)

※ 기타 자세한 사항은 행사 담당교수(063. 290-1679)나 글쓰기지원센터(063.

290-1678)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무국제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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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 대회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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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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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꿈과 뜻을 찾는’ 우석 글쓰기 대회 심사평

글쓰기, 고된 경험 속에 성장하는 우석인

글쓰기는 고된 정신노동이다. 글감을 고르고 내용을 구상하는 준비 과정도 만만 치 않고 어렵사리 글을 써도 여러 번에 걸쳐 고치고 다듬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진로와 취업이라는 무거운 현실을 앞두고 요즘 대학생들은 바쁘고 긴장된 나날을 보낸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백 오십 명에 가까운 학생이 이번 대회에 글을 응모 했다. 글을 쓰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행간마다 학생들이 가슴 속 열망 을 꺼내 보이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배어있었다

대상 수상작인 「물고를 튼 작은 꿈을 좇아(우정은, 심리학과)」는 ‘애조 전문가’를 꿈꾸는 학생이 썼다. 남의 꿈만 좇던 모습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 심정을 발랄하게 표현하고 있다. 대개 자기서사가 그러하듯 이 글도 과거부터 시간 순으로 서술했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글에 힘과 생기를 부여한 것은 말 하기식 전개 방 식이었다. 작은 새를 한 마리 돌보게 된 사연을 눈앞에서 얘기하듯 조곤조곤 풀어 놓는 점이 신선했다. 이런 글은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부분까지 글 전체의 흐름을 잘 유지한 점도 높게 평가 됐다.

대상을 정하기 전까지 시상권 상위에 든 작품들을 두고 심사자들은 몇 차례 심도 있는 논의를 벌여야했다. 대상 작품과 견줄만한 글이 여러 편 있었기 때문이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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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인의 길에 도전 의지를 뚜렷이 밝힌「질문하는 기자, 실천하는 기자」를 비롯해, 백일장 대회에 나갈 차비로 급식비를 써버린 후 배고픔을 견뎌야 했던 사연이 담긴

「굶으면 좀 어때」,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한 전공 학습의 부담을 견디지 못 해 좌절할 뻔 했던 이야기「꿈을 먹고사는 괴물」, 한 겨울에 피어난 꽃에 자신의 꿈 을 비유한「꿈꾸는 꽃봉오리」 등은 모두 글의 색깔도 분명했고 우열을 가리기 힘 들 정도의 수작이었음을 밝힌다. 그 밖에 우수상과 가작, 특별상을 차지한 작품들도

“우석 글쓰기 대회” 취지를 잘 살린 점을 인정받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심사를 진행하며 느낀 안타까움도 있다. 많은 학생들이 같은 실수를 하고 있다 는 점이다. 기껏 매력적인 사연을 쓰고도 문단나누기를 소홀히 한다든지, 내용과 동 떨어진 제목을 쓰거나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써서 낮은 점수를 받은 경우가 꽤 있었다. 글을 제법 잘 쓴 것 같은데 자신이 수상권에 들지 못해 의아한 학생이라면 이 부분을 참고해 내년에 다시 도전하기 바란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내면의 지식을 새롭게 구성하고 체계적으로 사고하는 법 을 터득한다. 이러한 경험이 훗날 사회에서 마주칠 다양한 문제 해결에 든든한 힘 이 될 것은 분명하다. 우석인의 가치 있는 도전에 큰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조창규(원광대학교) 이정주(광주여자대학교) 최정숙(우석대글쓰기센터)

대상과 최우수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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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꼬 튼 작은 꿈을 좇아

대상 / 심리학과 3학년 우정은

오래 전부터 간직해온 그런 애틋한 꿈은 아니에요. 1년 남짓 된 어린 꿈입니다.

작년 여름 저희 집에 새 식구가 생겼습니다. 작은 앵무새였어요. 어머니가 기르고 싶다하여 들여온. 당시 저는 그 새를 갑작스러운 짐 정도로 생각했죠. 혹여 반기는 모습을 보이면 뒤처리를 제가 맡게 될까 겁이 나서 이름조차 예쁘게 불러주지 못했 어요. 어쩌다 부를 일이 생겨도 “못난아”, “멍청아”하며 관심도 두지 않으려 했습니 다. 그런데 가족 중에 새를 맨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새 장 밖으로 나간 녀석을 잡아서 다시 넣을 수 있는 사람도 저밖에 없었죠. 덕분에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꾸준히 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디를 만져야 새는 다치지 않으면서 빠 져나가지 못하게 잘 잡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지가 먼저 다가와 주는지, 어떤 곳 을 좋아하고 어떤 곳은 싫어하는지, 그런 작은 정보들을 모으게 됐죠. 조금씩 알게 되자 관심이 생겼고 그 관심이 모여 애정이 되었습니다. 어느새 뒤처리 정도가 아 니라 앵무새에 대한 모든 일을 도맡고 있는 제가 있었습니다.

녀석이 똥을 조금만 묽게 싸도, 목욕을 싫어해도, 이 작은 솜뭉치가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인터넷에 검색 했어요. 관련 카페나, 앵무새 병원 사이트, 그곳에서 찾을 수 없다면 개인 블로그나 지식인까지, 궁금한 점이 있 을 때마다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내용을 다 찾을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믿을만한 정보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죠.

책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한 권, 그 책이 성에 안차서 다른 책을 세 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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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고도 또 더... 그렇게 제 방에 새에 관한 책이 늘어갔습니다. 하지만 제 속이 시원 할 만큼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책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엔 앵무새 카페에 찾 아갔어요. 사장님께 직접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습니다. 시장에 있는 조류원에도 가 보았습니다. 전주에서는 조류를 다루는 병원이 많지 않았지만, 전화로 물어도 보고, 지나가다 닭을 다루는 가축병원이 보이면 들러보고, 몇 번은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어 새들이 가득한 버드파크를 찾아가 보기도 했습니다. 앵무새에 대해 조금이라 도 더 알 수 있을만한 곳이라면 닥치는 대로 찾아 다녔어요.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점이 넘쳤습니다. 세상엔 직접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을 테지요.

“새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이쯤이면 제 꿈을 짐작 하실까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방송에 출현 중인 ‘강아지 강씨’로 불리는 ‘강형욱’을 혹시 아십니까? 그래요. 대상이 개가 아니 라 새지만 저는 그 분처럼 되고 싶어요. 간단히 ‘애조 전문가’라 부를 수 있겠군요.

저는 새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간 막연하게 앵무새 기르는 법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속에 뭉쳐있어 괴로웠는데 그걸 맘껏 해보자 싶었어요. 어찌 보면 우스운 일입니다. 스물 두 해를 살았는데 고작 1년 반 함께한 작은 새가 제 삶 에 방향을 정해주었으니 말 이예요. 그 작은 새가 저를 얼마나 매료시켰는지도 보 이시죠?

제게 꿈이 생겼어요. 어디로 흘러야할지 모르고 제자리에서 소용돌이치던 물살이 물꼬가 트인 한 곳을 향해 힘차게 뻗어나갔습니다. ‘이제 무엇을 하면 될까. 무엇을 하면 나는 이 물살을 그저 쏟아져 고일 호수가 아니라 널리 퍼져나갈 바다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먼저 찾은 것은 구직 사이트였습니다. 새와 관련된 직종이 없다면 동물과 관련된 채용정보라도 찾아보았어요. ‘세상에 이런 직업도 있구나!’ 감탄하면서 그 일에 해 당되는 자격요건이나 우대사항 부분을 하나하나 꼼꼼히 찾아보았습니다. 앞으로

공부해야할 것들, 취득해야할 자격증들도 알게 되었지요.

제가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펫케어 상담사, 동물매개심리상담사 같은 직업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반려동 물관리협회에서 발급하는 민간자격증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제가 지금 배우 는 심리학과 접목해볼 수도 있을 거란 희망도 생겼어요.

저를 가까이서 지켜봐 온 한 친구가 말해주었습니다. 제게는 두 인격이 있는데 하 나는 사람을 대할 때, 하나는 동물을 대할 때 나타난답니다. 인사를 하는 모양새부 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래요. 그 정도로는 저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심리학이라는 제 전공, 그러니까 심리학과가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 습니다. 학문 자체는 즐겁게 배우고 있었지만 열심히 공부한다 해도 사람들과 관련 된 일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사람을 관찰하고, 집중하여 분석하고?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어딘가 취직을 하더라도 그것은 전공과는 영 동떨어진 것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공을 살릴 길이 보였어요.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 무의미하게 스러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오래전부터 저 를 위해 준비된 길인 것처럼, 더 이상은 한 순간도 헤맬 필요 없이 너무나도 완벽하 게 제 꿈이 저를 넓은 바다로 안내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꿈을 가져야한다고들 합니다. 꿈을 가지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당연한 일 이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인 것처럼.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미래의 나의 모습 을 그려보라면서 손에 색연필을 쥐어주잖아요? 지금까지는 ‘꿈이 대체 뭐 길래!’ 지 겹다 여겼습니다. 글씨를 쓸 수 있게 된 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자기소개며 인적사 항에 우리는 꿈을 박아 넣어야 했으니까요. ‘꿈을 적는다고 그게 이루어지기라도 한 단 말이야?’ 꾸고 싶은 꿈을 적은 쪽지를 베개 밑에 두고 자는 어린애 같은 짓이라 비웃었죠. 꿈에 대해서는 한 조각의 기대도 갖지 않았던 저였어요. 하지만 꿈을 찾 고 나니 세상이 바뀌었어요. 왜 그렇게 어른들이 “꿈을 가져라. 꿈을 찾아라.” 들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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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계기는 작은 것이어도 좋습니다. 지금 그 꿈이 눈앞을 지나고 있거나 이미 주변에 숨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어요. 이 글을 보는 당신도 꼭, 그 꿈을 손에 쥘 수 있기 바랍니다. 꿈을 갖기 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가슴 두근거리는 그런 세상이 당신에게도 펼쳐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굶으면 좀 어때

최우수상 / 문예창작학과 홍승표

소년, 꿈을 가지다

한 소년이 있었다. 멸치처럼 깡말랐던 소년은 축구보다 인형놀이를 더 좋아했다.

온 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뛰어놀기보다는 방안에서 하는 소꿉놀이가 더 재밌 었다. 위로 누나가 셋이었던 소년은 치마 입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어 른들에게 “고추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고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누나들 따라 교회에 가기 시작한 소년은 난생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즐거 워졌다. 남들보다 더 큰 목소리로 “구원 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로 가지요~”를 불렀다. 소년은 중학교에 다니는 형, 누나들처럼 찬양단원이 되고 싶었다. 친구들 앞에서도 자랑스럽게 찬양가를 불렀다. 꼭 찬양이 아니더라도 이정현의 ‘와’를 따 라 불렀다. 새끼손가락을 마이크로 삼아 자신의 끼를 마음껏 뽐냈다. 찬양단의 구심 점이었던 셋째누나가 소년을 비웃기 전까지, 그는 가수를 꿈꿨다. “너 노래 진짜 못 부른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소년은 가수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춘기가 된 소년은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이 싫었다. 몸이 삐쩍 말랐고, 앞머 리는 덥수룩했다. 학교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다가도 “너 여자애 같다.”라는 친구의 말에 눈물을 흘렸다. 소년은 자신의 행동이 어디가 어떻게 여자애 같은지 알지 못 했다. 또래 남자애들보다 잘 울고, 말끝마다 “어머”를 붙였을 뿐이었다. 큰맘 먹고 미용실에 간 소년은 ‘빡빡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계집애보다는 빡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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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훨씬 나았다.

소년은 점점 더 의기소침해졌다. 남자애들은 커녕 여자애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 했다. 소년은 축구나 공기놀이 대신에 아무도 없는 도서관을 찾았다. 소년은 조용한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도서관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소년은 자연스럽게 독서부장 이 되었다. 독서부장이라고 해봤자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선생님 께 받은 ‘중학생 필독도서’ 프린트를 게시판에 붙이는 게 전부였다. 심심할 때면 책 장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읽었다.

고등학생 되어 문예 동아리에 가입한 소년은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초등 학생 때 쓴 표어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써보는 글이었다. 시는 간결한 표어보다 훨 씬 어렵고 복잡했다. 은유며 직유며 알아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소년은 국어 선생 님과 동아리 부원들의 격려를 받으며 차츰 자신만의 시를 써내려갔다. 언어의 세 계는 실로 다채로웠다. 새가 있으라 하면 새가 날아다니고, 꽃이 되라하면 볼품없 는 폐타이어도 예쁜 수채화가 되었다. 운곡 백일장에 참가해 장원을 수상한 소년은 난생 처음으로 남들에게 잘 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소년에게 시는 자신을 증명해줄 새로운 길이 되었다.

그리고 좌절

부모님께 받을 수 있는 돈은 3만원이 전부였다. 소년은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 다. 원주에서 서울까지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소년은 인터넷에서 받아온 약도를 보 며 백일장이 열리는 보라매공원을 찾았다. 시어는 ‘부모님’이었다. 소년은 귀가 불편 한 어머니를 목련화로 비유했다. “흐느끼듯 부서지는 목련화는, 어머니의 귀를 닮았 습니다.” 시상식은 당일 발표였고, 끝내 소년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소년은 주로 시외에 있는 백일장에 참가했다. 특히 서울에서 열리는 백일장은 강

원도에서 주최하는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소년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돈이 너 무 많이 든다고 생각했다.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빚을 갚아야 하는 아버지와 허름한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수입으로는 자주 시외로 나가기 힘들었다. 한 번 은 부모님께 죄송하다며 백일장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꾸 지람을 들었다. “굶는 한이 있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그날 급식비로 받은 돈을 들고 백일장이 열리는 서울로 갔다. 소년은 다시 한 번 낙방했다.

고3이 된 소년은 문예창작학과를 지망했다. 제때 급식비를 내지 못해 저녁을 굶 기 일쑤였지만, 백일장에는 꾸준히 참가했다. 수상 실적은 좋지 못했지만 시를 쓰 는 게 즐거웠다. 오히려 백일장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은 아닌지 마음을 다잡기도 했 다. 소년은 ‘서정 문학’이라는 작은 문예지에 다섯 편의 시를 공모했다. 두 달 후, 기 쁜 소식이 들려왔다. 「박제」 외 4편의 시가 장원으로 뽑혔다는 소식이었다. 그날 이후 친구들은 소년을 ‘약골’이나 ‘계집애’가 아닌 ‘시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소년은 부끄러웠다. 그의 시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다. 밥을 굶으며 시를 썼던 소년에 게는 더 큰 꿈이 있었다. 문예지 안에는 살아가는 것이 아닌, 더 큰 세계로 나아가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네가 정 원한다면 문창과에 가도 좋다. 하지만 하나는 꼭 기억해둬라. 도중에 포 기할거면 시도도 하지 말거라.”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자를 하기 전에 든든히 배를 채워야 했 던 시절, 나는 밥 대신 시를 선택했다. 배고프면 좀 어때. 시를 쓰다보면 배고픔도 하나의 시어가 되었다.

오늘도 나는 학교로 향한다. 백석의 시집을 가슴에 품고, 넓은 시상(詩想)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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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몸을 내던진다. 그 물살은 빠르고도 거세서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 시를 쓸 수만 있다면 그대로 떠내려가도 좋다. 배를 주려도 내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까.

욕심쟁이

최우수상 / 상담심리학과 2학년 안지수

꿈을 이루었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아직’이루지 못했다고 대답한다. ‘아직’

이란 말은 우리에게 미래가 존재하고, 우리가 그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 이다.

고등학교 2학년 끝 무렵의 겨울밤, 아늑한 나의 방 안에서 어린 머리를 열심히 굴 려보았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한 번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미래,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아하는 글쓰기, 배우고 싶 은 심리학. 나는 어느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복잡하게 회전하던 머리에서 겨 우 생각을 정리했다. 나는 심리학을 택했고 글쓰기는 취미로 남겨두기로 했다. 내가 겪었던 일들과 배워온 것들로 힘든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태양과 같은 따 스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상담사가 꼭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말하는 돈과 명예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면을 쓴 채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유쾌하게 웃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를 바쳐서 본연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렇게 내 인생을 꾸려나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판단했다.

대학에 처음 올라왔을 때 큰 포부와 설렘을 가지고 수업에 임했던 나를 기억한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기대에 눈이 반짝거렸다. 나중에 이런 일을 하면서 이렇게 살 아가겠구나 하는 어설픈 계획까지. 첫날의 설렘을 잊지 않기 위해 애썼던 것이 기 억난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꿈에 대한 작은 희망을 놓칠 것만 같아서 아등바등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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렸다. 먹고 대학생이라는 말도 있지만 정작 대학 공부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심 리학이라는 학문은 과학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연구하는 과목이기에 악기 를 조현하는 것처럼 늘 꼼꼼하고, 섬세하며, 조심스러워야 했다. 그렇게 애를 먹는 사이에 자신감이 부족해져서 숨이 콱콱 막혀왔다.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면 하늘을 보라는 말에 하늘만 쳐다보면서 걷기도 했고, 잘하고 있냐는 엄마의 안부 목소리에 양심이 따끔거렸다.

여름방학에 성적을 확인하고는 정신이 아득했다. 장학금 타고 학교 다니겠다며 큰소리 땅땅치던 내가 아니었는가.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가족들에게 차마 성적 을 말할 수 없었다. 인생이라는 표지판에 화살표가 있다면 그것을 반대방향으로 꺾 어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허투루 보낸 시간의 결과는 참 잔혹했다.

그 당시 나는 앞서 가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조바심을 냈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도 내가 초조해 보인다고 말씀하셨고, 나 스스로도 그 긴장감에 여러 감정이 얽혀 서 나의 발밑을 간질이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심했다가는 나의 무거운 마음에 잡 아먹힐 것만 같았다. 절박한 심정에 Self-Mapping Day의 ‘학점을 부탁해’를 신청 하고서야 무거운 짐을 조금 덜 수 있었다. 나 스스로 계획표를 짜고 그것을 지켜나 가는 것에 대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성적과 함께 떨어졌던 자존 감을 올릴 때가 온 것이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지켜나가면서 “나는 조금씩 나아 지고 있다.” 이런 말들을 스스로 조곤조곤 속삭였고, 과거를 기억하다보면 미래는 계속 나아진다는 말을 기억하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되찾았다.

내게 확고한 꿈을 가지게 해주는 것은 아무래도 과거가 아닌가 싶다. 꽃처럼 피어 오르는 계절들 사이로 아프게 겪었던 학창시절.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나를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자주 상담실을 찾았다. 살얼음 낀 나의 마음을 상담실이라는 장소에서 계속 녹이며 그 시간을 견뎌냈다. 나처럼 아픈 학창시절을 보내는 친구들을 꼭 도와주고 싶었다. 살아가다가보면 누구에게나 있는 힘든 시간

을 함께 이겨내자는 취지로 꿈을 확실하게 정하게 되었다.

감정 표현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나는 감정표현을 자주 드 러내는 성격이다. 어렸을 때 감정표현을 과도하게 하여 주의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날 이후 내 감정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 생겼다. 남들 앞에서 우는 것을 굉장히 창피한 일로 여겨 자제했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오다 심리학과 과 동 아리인 Psycho Mirror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그저 과 동아리이기 때문에 심리학 이 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신청서를 내고 면접을 봤다. Psycho Mirror는 심리극이 라는 것을 공부하는 동아리였다. 처음 동아리의 일원이 되어 박희석 교수님의 심리 극을 봤을 때 전율이 일었다. 나는 그렇게 숨기고 숨겼던 감정을 저렇게 많은 사람 들 앞에서 터트리라니! 여태까지의 흘러넘치는 감정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그것이 쌓여 커다란 멍울이 되었다. 내 마음속에 멍울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오다가 심리 극을 만나 이 상처를 알아챈 것이다.

살아가다보면 많은 걸림돌이 우리의 삶을 방해한다. 내 걸림돌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었다. 우리 집은 가난했었다. 열심히 돈을 모아 편안하게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아버지는 돈을 갖고 도망쳤다. 어머니께 남은 것은 막대한 빚과 어린 나 뿐 이 었다. 어머니 혼자서 몸을 혹사하여 빚을 다 갚았다고 생각한 순간 아버지가 돌아 왔다. 열여섯의 어린 나는 아빠가 필요했다. 아버지와 같이 살다 대학교 1학년이 되 었을 때 사건이 다시 터졌다. 아버지가 경마에 빠져 엄마 몰래 제 3금융에서 많은 돈을 빌렸던 것이다. 우리 집은 다시 위기에 빠졌다. 집 안이 온통 울음바다가 되고 어머니의 통곡소리가 방문 밖으로 들려왔다. 어머니는 한 번 더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버지와 같이 빚을 갚아가고 있지만, 나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마음속에 꽁꽁 숨겨둔 채 모른척하다가 심리극에 참여했다. 갑자기 주인공 자리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 고 있는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담담하게 이야기 했지만, 곧 억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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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던 감정이 울음으로 튀어나왔다. 심리극을 주도하는 디렉터는 나에게 억누르지 말고 크게 소리치라고 했다. 그때 내 안에서 큰 감정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있음에 도 불구하고 원망의 말들을 내 뱉었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맞 기에 그 심리극을 통해 두 가지의 감정을 인정하여 내면에서 다투던 양가감정이 정 리되었다. 이후 아버지를 좀 더 편안히 대면하게 됐고 가슴 속에 답답함도 많이 옅 어졌다.

그 날 이후 나는 심리극을 진행하는 디렉터가 되기로 했다. 심리극 연구 학회도 가보고 전국의 대학생들이 참가하는 디렉터 페스티벌도 참여했다. 디렉터는 정신 적으로 건강해야 하기 때문에 건강한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 다양한 심리극의 기법 이나 경험을 체험해 보기 위해 Psycho Mirror 같은 활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 심리 극은 이론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주인공이 이야기를 어떻게 털어놓게 해야 할 것인가, 감정을 어떻게 고조시킬 것인가, 감정 해소 후 어떤 감정 을 느끼게 해줄 것인가 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며 디렉터의 역량이 중요하다. 나 는 다양한 심리극의 현장을 경험하고 심리극을 공부하여 자격증을 취득할 것이다.

심리극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 내가 심리극을 통해 치 유된 것처럼 다른 마음의 병을 갖고 있는 분들도 울고 웃는 감정을 통해 삶을 긍정 적으로 바꾸면 좋겠다. 이런 멋진 꿈을 갖고 있는 내가 자랑스럽고 앞으로 열심히 심리극 디렉터를 향하여 달려갈 것이다.

그렇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써왔던 글쓰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심리학에서 방 어기제의 하나로 ‘승화’라는 말이 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글을 썼다. 괴로워 하던 마음에 실오라기 같은 희망의 끈이었을지도 모른다. 내면의 나를 등장인물들 을 통해 풀어내고, 인물들과의 공감과 교류를 주고받았다. 한 글자 한 글자의 글을 통해 풀어내는 이야기는 늘 새로웠다. 결국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내 글을 사랑 하게 되었다. 글을 인정해주는 사람들과 가족들을 통해 많은 대회에 참가했고, 과분

할 정도의 수상도 경험했다. 그렇게 글은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나에게 하루를 주고 있다.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다양한 글을 내고 있다고 들었다. 심리학과 글쓰기. 참으로 매력적이다. 두 장점을 모두 살린다면 정말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꿈에 다가가는 길은 그렇게 쉽지 않다. 비단길이 될 수도 가시밭길이 될 수도 있 다. 나의 꿈도 마찬가지다. 상담사가 되기 위해 대학교에 다니면서 자격증 취득하고 대학원을 나와서 일을 하기까지가 누군가에게는 머나먼 길, 포기하고 싶은 길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그 꿈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꿈은 금방 지워질지 몰라도, 가슴에서 들끓는 꿈은 절대 식지 않는다. 혹 시라도 그런 꿈에 대해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의 꿈을 위해 많은 것을 해보라고, 조금 더 욕심을 부려도 된다고 말이다. 상담사가 되고 싶은 나 와 글을 쓰는 나, 나를 보면 멋대로 두 가지를 다 하고 있지 않은가. 욕심쟁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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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기자, 실천하는 기자

최우수상 / 신문방송학과 3학년 민준영

성역 없이 누구나 취재·보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편집권 독립 명제는 언론의 신성한 기본권이다. 이 원칙은 언론학도로서 첫 발을 내딛는 학생들이 신문학개론 수업 첫 단원에서 배우고 항상 각인하는 부분이다. 이 명제에서 ‘나만 빼고’를 앞에 수식하게 되면 특정 세력을 찬탄하게 된다거나 이익집단의 비리를 눈감게 되는 경 우가 발생한다. 언론은 항상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 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신입생 때 배우는 이론서 내용과 많이 다르다. 내가 1학년이었 던 2012년, KBS와 MBC 언론노조가 집단 파업에 들어갔다. KBS는 공영방송 사수, MBC는 문화방송 재건 투쟁이라는 표어로 파업을 감행했다. 당시 두 방송사 사장들 은 친정부 인사들을 자리에 앉혔다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로 불렸고 특히 내부 사 전검열로 정권에 대한 비판은 거의 불가능했다. 두 방송사 언론인들은 이에 대해서 환멸감을 느꼈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내가 원하는 기자가 될 수 있을까. 중학생 때부터 정치와 사회문제 에 관심이 많았고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부 취재기자를 꿈꿨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 제를 해결할 수 없는 원인이 대해 알아보던 중 내가 기자가 되면 바꿔볼 수 있을 것 같다는 포부로 그 꿈을 키워왔다. 특히 작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대서특필 된 후 기자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다. 정의로운 기자,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실만을 보 도하는 기자가 되는 게 내 꿈이지만 흔히 ‘적폐’라고 불리는 방송사 사장들의 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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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보면 그런 기자가 될 수 있을지 의아하다. 방송사 파업 중 내부 분열이 일어나 결국 다시 방송에 복귀해 호사를 누리는 언론인들을 보면, 내가 염원하고 있는 기 자상을 내 앞길을 위해 포기해 버리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 희망적인 건 최근 방문 진 이사회의 주주총회로 MBC 김장겸 사장과 백종문 부사장을 해임하면서 언론 개 혁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언론개혁이 이루어 졌다고 해도 기자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 ‘언론고시’라고 불 릴 정도로 치열한 입사 경쟁이 나를 취업 낭인으로 만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 도 한다. 언론인이 되기 필요한 실무경험과 토익 성적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고 아직은 내경험들이 남들과 차별화 될 정도가 아니므로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것 이다.

언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큰 걱정거리다. 최근 기자들을 낮잡아 ‘기레기’라고 부른다. 기자정신 없이 특종에만 혈안 된 기자들을 쓰레기라고 깎아내리는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기자들은 피해자 유족들에게 심경을 묻기 바빠 민간 잠수사가 팽목항에 가져온 몇 억짜리 구조장비는 못 본채 했다. 시민들 이 원하는 기자는 그런 기자가 아니다.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말을 듣기 싫으면 기 자답게 보도 하고 글을 쓰면 된다. 지금 우리나라 기자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레 기라고 비판받는 결과에 대해서 열을 낼게 아니라 문제가 뭔지 성찰해 봐야 한다.

나는 기자가 되기 위해 대학생활 동안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을 꾸준히 참여 했다. 2013년 학교 대표로 처음 토론대회에 참가했고 대기업에서 모집하는 학생 기 자단 인턴도 지원했다. 하지만 토론대회는 예선에서 탈락했고 학생 기자단에서도 더 역량있는 다른 학생들 앞에서 낙오자가 됐다. 내가 준비했던 이 과정이 기자가 되기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간절했지만 매번 좌절을 맛봐야만 했다.

살면서 이렇게 쓴맛을 본 경험이 없었고 대학생활에서 실패한 경험이 약이 됐다고 생각했다. 이후로도 큰 대회는 아니었지만 캡스톤 경진대회에서 팀을 꾸려 출전해

동상을 차지했고, 직접 학과 동아리를 운영하며 신문 잡지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리 고 지금은 학보사에서 학생 기자로 활동 중 이다. 정말 기자가 될 수 있을 지 보장 할 수는 없지만 열심히 준비한다면 기회가 있을 거라 믿고 싶다.

여성 최초로 백악관에 출입했던 핼렌 토머스기자는 “기자가 질문하지 않으면 대 통령은 왕이 된다.”며 권위적인 백악관의 행태를 질책했다. 나는 핼렌 토머스가 얘 기한 ‘질문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권력층이 원하는 질문이나 그들에게 적절한 질 문은 그들의 감시역할을 하지 못한다. 권력기관이 답하기 싫고 회피하고 싶은 날카 로운 질문을 하는 기자가 돼야 한다. 여태껏 한국 언론인들은 질문하길 부끄러워했 고 회피하려 했다. 질문하지 않는 기자는 감시견 역할을 할 수 없고, 언론이 권력기 관을 감시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무지 속에서 부패가 발생한다. 수사적인 말뿐이 아 닌 직접 질문하는 기자가 되고 감시하는 기자가 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실천하고 싶은 기자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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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꽃봉오리

최우수상 / 아동복지학과 4학년 이한화

유난히 포근했던 어느 겨울 날 이었다. 집 앞 화단에 화사하게 피었던 꽃이 시들 어져 줄기만 남아 있었다. 유독 쓸쓸히 보였던 그 자리에는 꽃의 일부분인지, 아니 면 돌인지 콩인지 분간 할 수 없는 아주 작은 것들이 떨어져 있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물질은 봄이 오고서야 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있던 자 리에는 새침한 모습의 꽃이 당당히 피어 있었다. 꽃을 두고도 알아채지 못했다니.

아마 우리 인생도, 사람도 이와 같을 것이다. 씨앗에서 시작된 우리의 생명은 저 마다의 씨앗을 품으며 살아간다. 마음속 깊이 내재된 씨앗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상상하는 일은 가장 설레는 일이면서 힘든 싸움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꽃을 피우게 될까?

나의 꿈, 나의 꽃

사랑이 가득한 교사. 그것이 나의 꿈이다. 단순히 유아를 가르치는 교사가 아닌 사랑을 보여주는 상냥한 교사가 되고 싶다. 유치원 선생님의 덕목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 생각한다. 아동들이 정서적으로 불안하지하지 않게 사랑으로 인도 하고, 아동 스스로 사랑받는 존재임을,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임을 느끼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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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다. 사랑스런 마음은 아동들만 사랑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친 절하고 모든 사물과 현상을 사랑으로 볼 줄 아는 마음의 본질부터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부모님 두 분 다 일하시는 경우가 많은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머 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다 보니 하루의 대부분을 교사랑 보내게 된다. 교사는 제2의 엄마가 되어야 한다. 엄마는 아이들을 사랑해주고 지켜주는 존재이다. 교사 는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아동을 대해야 하며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곁에서 인도해야 한다. 가족 외에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타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교사가 되어 북적거리는 아이들 속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자랑하기 위해서, 마음이 답답하고 속상해서, 어제 있었던 재미난 일을 말하고 싶어…. 미래에 내가 만날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내 주위에 언제나 아이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곁에 머물고 싶은 교사가 되 고 싶다.

세상에 대한 의심이 없고 모든 것이 아름다운 작은 씨앗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곁에서 든든히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씨앗

예비교사가 본 아동은 씨앗과도 같다. 아직 미성숙한 씨앗은 무궁무진한 잠재력 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능력을 찾기 위한 탐구와 탐색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시기이다. 인생의 시작점인 아동기는 인생의 골든타임이다. 발달의 양적, 질적 수 준을 따져볼 때 아동기만큼 격렬한 성장이 이뤄지는 시기는 없다. 아동은 찰흙, 백

지로도 표현하고 싶다. 주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어떻게 아동을 대하는지에 따라 아동의 성장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누구도 예측 할 수 없다. 그 씨앗을 소중히 다루며 씨앗의 본질과 능력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사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씨앗을 품고 있다. 능력이 없는 씨앗은 없다고 믿 는다.

교사는 수백 개의 눈을 켜야 한다. 아동의 행동에 주의하여 관찰을 하며 흥미영역 은 무엇이며 특히 무엇을 할 때 더 집중을 하는지, 특별히 잘하거나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몰입할 수 있도록 곁에서 적절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

아동은 교사와의 의사소통으로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이는 아동이 발 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동의 말과 행동에 귀 기울기고 언제나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시켜주어야 한다. 따뜻한 말과 격려, 믿음,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아동은 성장한 다. 나의 눈빛과 말로 상처를 주어선 절대 안 된다. 언제나 아동의 편이며 사랑을 주 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한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모든 일에 사랑이 필요하나 특히 나 이 일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다 교사는 사랑 없이는 할 수 없 는 직업이다. 특히나 감정과 마음이 예민한 시기인 아동기 때 사랑과 인내, 관심, 애 정으로 자기 자신의 신뢰와 세상에 대한 믿음을 느낄 수 있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신이 세계를 창조하실 때 가장 귀히 여긴 것이 인간이다. 너무도 소중하여 제 모 습 그대로 빚으셨다. 아동은 신의 은총이며 선물이다. 이 땅위의 원석과도 같으며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 이렇게 귀한 존재를 우리는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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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꽃봉오리

동그랗게 말린 꽃잎들이 톡 하고 터질 것 같다. 금방이라도 꽃을 피울 것처럼 보 이지만 최고의 순간을 기다리며 필사적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강인함이 깊은 곳에 서 느껴진다. 콩보다 작은 시절부터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마지막 꽃을 피우 기 직전인 지금까지, 그 과정을 생각하며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꽃봉오리는 지금 가장 설레고 행복할 것이다. 최고의 날을 위해 꽃봉오리는 인내하고 있다. 꿈을 향 해 열심히 나아가는 나의 모습이 마치 꽃봉오리처럼 보인다. 희망찬 삶을 상상하며 미래의 멋진 모습을 그려가고 현실로 이루기 위해 오늘을 살아간다. 그윽한 향기와 사랑을 뿜어내는 꽃이 되기 위하여 밖을 나서는 걸음은 열정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향기로운 꽃이 되길, 눈을 감아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길 바라며.

2017.11.16

꿈을 먹고 사는 괴물

최우수상 / 한약학과 2학년 이조희

학창시절 내내 선생님들은 나를 ‘자영’이라고 더 많이 불렀다. ‘자영’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뜻이었다. 학교폭력, 음주, 흡연 같은 것들과는 일절 관련 없었지만, 학 교에 나가고 싶을 때만 나가는 건 기본이고 야간자율학습 때 틈만 나면 도망치는 등 멋대로 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당연히 그런 나를 못마땅해 하셨다.

하루는 담임 선생님이 불러 교무실로 갔다. 선생님은 진지하게 나중에 뭘 하고 싶 은지 물어보셨다.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리자 그럼 오늘부터 한 번 찾아보자 고 하셨다. 별 거 아닌 말씀이었지만 나는 그 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말로 고등학 교 2학년이 되도록 아무 꿈도 없이 달려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어 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살던 내게 꿈을 찾아보라는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 꿈이란 그냥 ‘어느 학과로 진학할 것인가’ 정도였다. 학과를 정하 는데 중요한 조건은 그 공부가 재미있으면서도 장래가 어둡지 않아야한다는 것이 었고, 그에 가장 적합한 학과가 바로 한약학과였다. 원래 한약에 관심이 있기도 했 고 전공과목들을 보니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한약학과를 선택 했다

부모님은 언제나 우리 삼남매에게 ‘평범함’과 ‘무난함’에 대해 강조하는 분들이었 다. 딱딱하고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유달리 자유롭게 생활하는 나를 특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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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걱정하시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부모님은 한약학과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셨 다. 학교생활에 비해 비교적 괜찮은 성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학과보다는 성적에 맞춰 유명한 대학에 가는 것을 원하셨다.

부모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나는 이미 한약학과에 가기로 결심을 했던 상태였기 때문에 사전에 조사한 정보를 말씀드리며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머 니는 내 얘기를 들으시고 납득하셨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들어 하시며 최소 수도권 이상의 대학이 아니면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나는 포기하겠다고 했다. 대학이 아니라 지원을 말이다. 한약학과에 입학하고 아 무런 지원도 받지 않겠다고 하니 도리어 아버지께서 크게 당황하셨다. 며칠간 따가 운 눈총을 받긴 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마침내 아버지도 동의하셨다.

우여곡절 끝에 한약학과에 입학한 나, 화려하고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꿈꾸었지만 실상을 많이 달랐다. 첫 수업을 들은 날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외워야할 한자 의 양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한약학과 특성상 한자를 꼭 읽을 수 있어야 하긴 했 지만 그 양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나만 빼고 대부분의 동기들은 한자에 익숙하다 는 사실을 알고 좌절했다. 나 혼자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한참 뒤쳐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중간고사는 다가오는데 나는 공부는커녕 문제조차 읽을 수 없었으니 큰 일 이었다. 대학교 공부는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더 혼란스러웠다.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 때처 럼, 아니 그 때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대학교 첫 번째 시험에서의 내 노력 을 큰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 뒤로 나는 다른 공부들은 제쳐두더라도 하루에 30분씩은 꼭 전공과목 한자를 공부했다. 약재이름이라던가 한방용어 말이다. 매일 한자를 들여다보니 어느 순간 부터 쓰진 못하더라도 읽을 수 있는 글자들이 생겼다. 그렇게 노력하기를 꼬박 한

달밖에 안했는데 읽고 쓸 수 있는 한자가 정말 많아졌고, 한자를 필요로 하는 전공 과목들이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되었다. 덕분에 기말고사 때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한약학과에 다니면서 생긴 꿈이 있다. 하나는 한약 홍보대사가 되어 한약을 널리 알리는 것, 또 하나는 한약사의 처우를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꿈 을 갖게 된 이유는 내가 학교를 다니며 한약학과와 한약사의 상황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 그 것을 타개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남 보기에는 내가 이루기에 너무 거창한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약과 관련된 만화를 그려보고자 캐릭터 및 스토리를 구상 중이고, 더 영향력 있는 홍보와 처우 개선을 위해 한약학과 학생 회 부회장으로 진출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게끔 말이다. 이렇게 사소한 일부터 천천히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목표에 닿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때까지 내가 이뤄왔던 모든 것들이 전부 그런 식으로 완성되었다.

나는 사실 아직도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인생을 하 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처 럼 목표를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하나씩 달성해 나가며 성장하는 그 자 체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 인생에 만족하고 있으며 앞으 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 그렇게 보면 내 진짜 꿈은, 꿈을 먹이로 삼아 계속해서 커지 는 ‘꿈을 먹고 사는 괴물’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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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의 거창한 핑계

우수상 / 경찰행정학과 4학년 김하림

방학을 하고 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 아침에 일어난 나를 보고 엄마께서 물으셨 다. ‘어떤 진로로 나갈지 정했느냐’고. 지난 학기 나는 반년 동안 휴학을 하고 경찰 을 목표로 삼아 임용시험을 준비했었다. 엄마께서 걱정스러운 질문을 던지신 이유 는 내가 이번 9월 경찰임용시험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경찰공부를 할 자신이 없다 며 길을 바꾸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짧다하면 짧고 길다하면 긴 반년이라는 시간에 경찰 공부를 마치고 곧장 포기선 언을 내린 나를 보고 내 친구들은 나에게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니냐며 걱정했다.

내가 경찰이라는 꿈을 얼마나 목표로 삼고 포부를 가지고 있었는지 모두가 알고 있 기 때문이었다. 사실 임용고시의 결과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처음 보는 시험이 었기에 너무 높지 않은 평균 점수를 목표로 두었기도 했지만 그 목표치 정도는 너 끈히 달성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거나 과장스런 표현 을 빌리자면 소위 죽고 싶을 정도도 아니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건대 내 머 리의 한계성을 느끼긴 했었지만 그럼에도 경찰이라는 꿈을 포기하게 된 것은 내 나 름 판단으로써 현실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경찰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을 고려하던 중 나는 엄마께 넌지시 말씀드렸다.

노량진 경찰 학원에 보내달라고. 돌아온 대답은 집에 그만한 돈이 없어 미안하다였 다. 나는 낙담했지만 엄마가 자식이 공부한다는데 보내주기 싫어서 그러한 것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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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 괜찮다고 했다. 모로 가나 도로 가나 될 놈은 될 거라고. 속 많이 썩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효도였다. 엄마는 그날 우셨다.

몇몇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본인이 어렸을 때와 달리 국가에서 주는 많은 지원과 도움이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고마운 줄 모르고 노력할 생각들이 없다고. 어떻게 보면 맞는 말씀이다. 나도 엄마가 몸이 편찮으시고 그로 인해 국가의 도움을 받아 중·고교 생활을 보냈고 대학교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반박할 여지도 없다. 허 나 그만큼 받는 교육의 차이도 심해졌다는 것은 모르시는 것 같다. 비싼 학원과 능 력 있는 강사들로 인해 사교육은 점점 비상하고 있고 그 곳에서 수강을 들은 자와 듣지 못한 자의 차이는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자신이 꿈을 이룰 것이라는 큰 포부가 있으면 두 배, 아니 세 곱절이라도 더 열심 히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그 말씀도 옳다. 그러나 자신이 없다. 2017년 공무원 임용시험 지원자 수가 가장 높았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다른 이들은 무심코 지나 쳤을지도 모르는 그 기사에 나는 새벽에 혼자 공포영화를 본 것보다 더 무서웠다.

그 많은 경쟁자들이 무서웠고 남들보다 1년 늦게 들어 온 대학에서 또 1년이 뒤처 지게 될까봐 무서웠다.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점점 많아지는 아빠의 흰머리가, 주름 하나 없던 엄마의 얼굴에 하나 둘 잡혀가는 주름이 마치 빨리 자리 잡지 못한 네 탓이라는 듯 무서웠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사람 모두가 눈치 챘을 것이다. 맞다, 사실은 내가 꿈을 포기하려는 이유는 돈도 시간도 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 겁쟁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겁쟁이인 내가 경찰이 되고 싶었던 것은 경찰의 소소한 미담을 보고서였다.

범인을 잡고 피해자의 마음을 공감하는 그런 거창한 미담은 아니었다. 한 경찰관이 가출로 잡혀온 불량청소년에게 따뜻한 안부와 걱정, 교훈을 주어 몇 년 뒤 그 청소 년이 자라 같은 경찰이 되어 경찰서를 찾아 온 이야기, 한강에서 자살하려는 아저 씨를 여경이 딸의 행세를 하여 막을 수 있었던 이야기 등, 그렇게 길에서 지나쳐 갈

수 있는 도움을 필요로 한 사람들에게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경찰이 되고 싶었다.

허나 누가 탓한 것도 무어라 한 것도 아님에도 바닥까지 떨어진 내 자존감은 내 꿈 까지 밀어내고 있었다.

사실 이 글에는 결론이 없었다. 글짓기 대회 공모전이 끝나갈 때까지도 마무리 짓 지 못했던 것이다. 내 꿈에 결말이 없으니 ‘나의 꿈과 뜻’이라는 주제를 가진 나의 글은 당연이 끝을 맺지 못하는 것이겠느니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방에서 내 글을 발견한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렇게 남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 하면서 자기 자신 자체로써 자존감도 확신도 힘도 없느냐고.

엄마의 지나쳐가듯 하신 말씀이, 아니 아마 지나치며 하시는 말씀이 아니었을 것이 다. 그 말씀에 스스로에게 혼쭐이 나서 하루 종일 고민과 생각에 잠겼다. 겁쟁이인 주제에 꿈을 포기할 자신은 있고 이룰 자신은 없다는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기 시작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한다는 것은 누구나 겁이 나고 두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잊 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하더니 내가 바로 핑계 좋은 무덤 이었다. 이제 나는 저 많은 핑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 뛰어 넘기도 전에 머뭇거리는 멍청한 행동은 이 정도면 되었다. 겁을 먹고 도망칠 것이냐 나아갈 것이냐의 기로 에서 꿈을 실현하지 못한 것인지 실현해 낼 것인지를 좌우한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 했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을 나 혼자 모르는 체 시침 떼기 바빴다.

오늘로써 앞서 쓴 내 꿈에 대한 장애물들은 이제부터 나의 넋두리로만 남게 될 것 이다. 아마 어느 순간 또 겁쟁이는 다시 고개를 내밀 때도 있을 것이다. 겁이 나면 쉬다 가겠다. 단, 주저앉아 이번처럼 넋두리만 재잘거리지는 않겠다.

이제야 나는 다시 당당하게 내 꿈을 외친다. 나는 경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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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꽃은 암흑 속에서 자란다

우수상 / 경호비서학과 2학년 천승현

나는 용기 내어 아버지께 나의 꿈을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네 가 나를 축구로 이기면 축구부에 들어가게 해주겠다.’ 그 제안을 승낙하고 아버지와 운동장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성인과 중학생 대결은 보나마나 지는 게 뻔했지만 나 는 포기할 수 없었다.

부모님께 그런 진심을 전하고자 편지로 나의 생각과 진실함을 전했다. 아직까지 그 내용이 기억이 난다.

“저는 머리가 나빠서 몸으로 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고 싶습니다.” 어린 나 이에 이런 글을 써서 그런지 나의 진심은 부모님께 전달이 됐고, 결국 나의 꿈이었 던 정읍 신태인 중학교로 전학을 가서 축구선수로 뛰게 되었다. 어린 나에게 어디 서 그런 용기와 실행력이 있었던 것이었을까 꿈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길이였지만 동네에서 부리던 자신감은 어디 갔는지, 축구 부 애들과 경기를 뛰고 훈련을 하면서 느꼈다. “내가 지금까지 교만 했구나”,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게 이런 소리구나”

그 어떠한 깨달음 보다 가장 큰 깨달음 이었고 어린 나이에 큰 충격이라서 그런지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절실하게 받아 드린 만큼 나는 쉬지 않고 연습하고 또 연 습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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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시간이 부족해서 나는 선택했다. 잠을 줄이기로 새벽 5:30 알람을 맞춰 놓고 훈련 장비를 챙긴 상태로 밖으로 나가 나의 부족한 기본기를 다졌다.

어느 날은 너무 피곤해서 나가지 못하고 푹 잠이 들었다. 눈을 뜨고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감독선생님은 한마디 하셨다. “상욱이처럼 새벽에 나 가서 자기가 부족한 걸 연습해라!” 상욱이는 그 때까지 새벽 운동을 나간 적이 없었 다. 상욱이 말이 “잠이 너무 안 와서 나갔는데, 감독선생님 눈에 운 좋게 띠였다.” 라 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지금까지 새벽에 일어나서 하는 노력은 뭐지? 정작 노력한 사람은 눈 에 띠지 않아서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누구는 한 번 나간 게 눈에 띄어 서 인정을 받는다는 게 정말 억울했다. 근데 나이를 먹고 되돌아보니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게 아닌 내 자신을 위해 노력하 는 게 맞았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어떤 일을 하던 노력을 하는 스타일이다. 어릴 때 해 놓은 게 몸에 배어있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 깨닫고 받아들이기엔 지금처럼 성숙하지 못했다.

주말엔 학교끼리 리그가 있다. 우리 팀과 수준이 비슷한 팀과 대결을 했다. 결과 는 패배였다.

감독 선생님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말에 쉬지 말고, 훈련을 준비하라 하셨다.

주말까지 훈련을 하면서 나는 열심을 다 했다. 내가 부족한 걸 정말 알고 깨닫고 있 었기에 열심히 하는 게 정답인 줄 알고 했는데 너무 무리한 나머지 어지러워서 감 독 선생님께 말을 했더니 “너 같은 선수는 필요 없으니까 집에 가라, 열심히 하는 거? 필요 없어, 잘해야지” 라는 말이 나에게 돌아왔다. 5년 동안 해온 노력이 한 번 에 다 무너졌다.

주변어른들의 “열심히만 하면 성공한다.”는 말만 쫒아 노력해왔는데 감독선생님 은 나에게 가뭄의 단비가 아닌 눈물을 줬다. 태어나서 피눈물이 라는 걸 흘려봤다.

친구가 말했다. “승현아 내가 너였으면 벌써 그만 뒀다, 그런 취급 받으면서 어떻게

계속할 수 있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짐 했다. 더 이상은 아니구나, 나는 재 능이 없구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축구 그만 두겠습니다.” 엄마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승낙해줬다. 축구를 그렇게 그만두고 나니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매 일 게임에 빠져 살았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세상이 싫었다. 하루하루 똑같은 삶 이 계속 되는데 어느 날 친구는 “교회에 가면 맛있는 거를 사주는 데 같이 가자” 할 것도 없어서 교회를 가게 됐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무심히 갔던 교회는 너무 낯설었다.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있었던 곳은 욕설과 구타가 난무한 곳 이였는데…… 교회라는 곳에선 나에게 따뜻 한 말, 선한 손길이 다가와 모든 게 포근했다. 나의 마음 속 자물쇠가 풀리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청년부에 들어오면서 생각을 했다. 내가 학창 시절에 뭘 해야 할 지 모르겠고, 심적으로 힘들었던 것처럼 나 같은 애들이 분명히 있을 거야 생각하 며 고등부 교사로 들어가게 됐다.

스승의 입장에서 보는 제자들은 사랑스럽기만 했다. 스승의 날이라고 편지를 써 주고, 교감을 통해 나의 부족한 점을 아이들에게 배우고 아이들도 나를 보고 배우 고 학창시절에 배워야 할 인간관계를 교회에 교류를 통해 배우면서 한 층 더 성숙 해지며 지금까지 스승들에게 받았던 아픔들이 다 이해가 됐다. 왜 그렇게 대하셨는 지, 왜 나에게 쓴 소리를 하셨는지, 그걸 깨닫게 되니 남들에게 선한 말과 영향력을 주려고 노력한다. 내가 아픔을 겪어봤으니 남들에게는 좋은 것만 주기로 다짐하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고 2014년 12월 나는 의정부 306 보충대에 입대를 했다. 철부지 같았던 개구쟁이 모습들은 군대에 와서 뜯어 고쳤고 훈련소 조교를 하면서 많은 훈련병들을 통제하고 교육하면서 사람의 얼굴만 봐도 이 사람의 심리, 행동들이 눈의 띄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대도 작은 사회인만큼 간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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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가작, 특별상 모음

디테일한 사회생활을 배우고 지적 받으면서 내 잘못된 점을 수첩에 적고 또 적으면 서 매일 같이 보고 고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인가 지적을 받지 않고 참된 군인이 됐고 그렇게 작년 가을 전역을 했다. 전역 후 나는 바로 복학을 하지 않고 아버지 일을 도우면서 등록금 및 생활비를 벌었다.

복학을 해서 내가 1학년 때 받은 성적을 보니 엉망 이였다. 그런데 나는 포기하기 가 싫었다. 내가 만들어 놓은 일은 내가 메꾸자 생각해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을 가 고 교수님, 선배, 후배 할 거 없이 모르는 게 있으면 자존심 다 내려놓고 여쭤봤다.

그러다 보니 내 성적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가장 뿌듯했다. 아, 정말 노력을 하면 되는 구나! 지금껏 내가 실패 했던 것 들은 다 경험이었고 나에게 덕이 된 거 구나 깨닫고 지금도 무엇이든 다 찾아서 해 보려고 한다.

축구부 시절 내가 받았던 상처들은 사실 나를 더 단단하게 하는 스승의 사랑이었 고 그로 인해 나는 힘든 일이 와도 두렵지 않고 피하지 않는다.

씨앗이 땅 속 어두컴컴한 곳에서 물을 받고 새싹이 피고 햇빛을 받으며 꽃망울이 피어나고 사람에게 밟혀도 꿋꿋이 이겨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것처럼 내 인생도 힘든 역경과 고난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게 나에게 덕이 되었다. 앞으로 어떠한 역경 과 고난이 다가와도 전에 경험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이겨낼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암흑 속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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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과 실패, 새로운 도전

우수상 / 국어교육과 4학년 조성민

우리는 누구나 태어남과 동시에 실패를 마주한다. 그 실패 속에서 성공을 경험한 뒤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고 다시 실패와 성공을 반복한다. 나에게 실패는 익숙함 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이어온 태권도 선수 생활은 남들의 눈에는 실패 로 끝났다. 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졌다. 태권도를 그만둔 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평소 관심 있었던 수학경시대회에 나가 입 상을 하고 3학년 때는 금상을 받았다. 결국 380명 중 40등 안에 드는 성적으로 중학 교를 졸업했다.

그러던 내게 고등학교 진학 후 일상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자신 있어 하던 수학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중상위권이었던 성적은 계속 하락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주 변의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주 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편법을 사용하려고 하고 부당한 방법을 찾기 시작 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훈계도 그 당시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하루하루 무의 미한 생활을 이어갔다. 고등학교 1,2학년 생활을 그렇게 마무리하고 3학년으로 진 학했다.

새롭게 편성된 반에는 전교 1등을 하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는 내게 새로운 자 극으로 다가왔다. 고등학교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앞으로의 인생설계에 목적의식

참조

관련 문서

6. 나는 나에게 맡겨진 일을 철저하게 완수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7. 나는 자료를 신중하게 해석해서 무작정 결론은

“나는 이미 의자의 두꺼운 겉 천으로 된 좌석판을 팽팽하게 연결된 천으로 바꾸는 아이디 어를 가지고 있다.. 또한 나는 탄력

“나는 하느님께는 스페인어로, 여자에겐 이탈리아어로, 남자에겐 프랑스어 로 그리고 내 애마에게는 독일어로

문을 닫으세요. 그는 모든 학생들을 불러냈다. 나는 그를 친구로 여긴다. 이 일을 마음에

나는 아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짂짜 아주 무척

c 나는 가끔 우리 아빠가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실지에 대해 생각해요..

아니오, 나는 공장으로 갑니다... 아니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