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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一分殊와 산수경물의 形式美

Ⅱ. 退溪‧松巖 漢詩의 山水美와 現象學的 이해

1. 理一分殊와 산수경물의 形式美

성리학자인 퇴계와 송암에게 理一分殊는 현상학의 관점에서 의식의 지향성이 포착하는 명증하고 엄밀한 앎이라고 할 수 있다. 성리학의 관점으로 다시 바꾸어 말하면 이들에게 산수 경물은 보편적 理가 개별적 理로 내재된 궁구해야 할 대 상, 즉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때 학문적 관점에서 산수 경물을 탐구한다는 것은 그 대상의 생성에 보편적 理가 개별적 理로 내재된, 理의 分殊 로 이루어진 것임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상에게 품부된 개별적 理는 감 상자에게 오감을 통해 인식되며, 이것이 자연 사물의 구성 형식에 부합할 때 그 표현은 외형적 美로 형상화된다.

다시 말해 이 외형적 미는 만물이 人爲가 아닌 자연 사물의 구성 형식을 따를 때 인식되는 感覺美이자, 山水의 形式美47)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우리

가 자연 속 다양한 생명과 풍광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아름다움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산수의 형식미는 순서상 감각적으로 포착되고, 이성적으로 이해되 는 단계를 거친 후에 그 감흥을 노래할 때 나타난다. 이 절에서는 퇴계·송암의 한시를 대상으로 하여 형식미의 구체적 양상을 확인하고자 한다.

詠松

돌 위에 자란 천년 묵은 불노송(不老松) 마치 푸른 비늘 우굴쭈굴한 용의 기세로구나 까마득한 높은 벼랑에 우뚝 자라나서

기세는 하늘을 쓸어낼 듯 준봉을 내리누르는 듯 울긋불긋 사치스러움이 본성을 상케 함을 원치 않으니 도리(桃李)의 아름다운 자태를 기꺼이 따르겠는가 깊디깊은 뿌리 구사(龜蛇)의 기골을 키웠으니 한 겨울 눈서리에도 그 모습 의연하도다

石上千年不老松 蒼鱗蹙蹙勢騰龍 生當絶壑臨無底 氣拂層霄壓峻峰 不願靑紅戕本性 肯隨桃李媚芳容 深根養得龜蛇骨 霜雪終敎貫大冬48)

퇴계의 「詠松」은 한겨울 눈서리 속 峻峯의 벼랑에 우뚝 자란 불노송(不老松)을 노래하고 있다. 시적 화자의 시선은 1구, 2구의 불노송에게 집중되어 있다가 이 후 서서히 遠景으로 물러나면서 준봉의 벼랑을 내리누르는 듯한 불노송의 모습 에 머문다.

시적 화자에게 불노송이 ‘용의 기세’와 ‘구사의 기골’이라는 비유적 표현을 통해 美的 가치로 포착된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의식의 지향성이 불노송의 理, 즉 본 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소나무의 본성은 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는 생명력에 있

47) 손오규, 산수미학탐구 , 제주대학교 출판부, 2006, pp.20-21.

48) 원문 및 번역은 손오규, 퇴계시와 미학 , 제주대학교 출판부, 2012, pp.160-161에서 인용하였 다.

는데, 더군다나 불노송은 한 겨울 눈서리를 맞으며 준봉의 벼랑이라는 악조건에 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자신의 性을 다하는 것이다. 부차적으로 이러한 불노송의 性은 5구, 6구의 ‘울긋블긋 사치스러움’, ‘도리의 아름다운 자태’와 대조됨으로써 그 형식미를 드러낸다. 따라서 이러한 불노송의 형식미는 1차적으로는 감각적 인 식, 2차적으로는 산수 경물의 理의 分殊를 이성적으로 포착하려는 시적 화자의 의식의 지향성이 작용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형식미는 이처럼 산수의 개별 대상에게 내재된 理를 이해하면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개별 산수가 하나의 경물이 돼 이루는 아름다움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아래의 시를 보자.

春望

봄날 해가 산 정자에 늦게 뜨고 바람 앞에 나비가 비껴나네 시냇가 버들에는 푸른빛이 감돌고 언덕의 꽃은 붉은 봉오리 터트리네 아지랑이가 밝은 문에 피어오르고 갈매기는 저녁 모래톱에 서 있네 발을 걷고 잠자는 것 포기한 채 술이 있는 서쪽 집을 찾아가네

春日山亭晩 風前蝶影斜 靑舒溪上柳 紅綻岸頭花 野馬浮晴戶 江鷗傍晩沙 捲簾違睡課 有酒問西家49)

송암의 「春望」은 봄날의 다양한 풍경을 노래하고 있는데 각 구의 표현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듯, 시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산수 경물의 형식미를 형상 화하고 있다. 이 시는 1구의 산 정자에 봄날 해가 떠오르는 아침부터 시적 화자

49) 원문 및 번역은 권호문 저, 안정 옮김, 앞의 책, p.114에서 인용하였다.

가 술이 있는 서쪽 집을 찾아가는 8구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적인 변화를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산 정자의 시적 화자는 아침 해를 맞이하면서 봄바람에 나비가 미끄러지듯 비 껴나는 모습과 시냇가 버들의 푸른 빛, 언덕의 붉은 꽃봉오리를 차례로 바라본 다. 나비의 동적인 움직임과 버들의 푸른 빛은 언덕의 붉은 꽃봉오리가 터지는 장면에서 극적인 봄의 생명력을 더해 표현된다. 그야말로 봄의 약동하는 생명들 이 제 本性을 다하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낀 시적 화자는 아지랑이를 뒤로 하 고 저녁 강가의 갈매기를 보다, 발(簾)을 걷고 술이 있는 서쪽 집으로 향한다. 이 처럼 이 시는 각 구의 생생한 표현을 통해 봄의 생명력의 일순간을 포착하면서 개별 산수 경물의 형식미를 잘 담아내고 있으며, 이에 시적 화자는 감흥이 일수 밖에 없다.

또한 이 작품은 개별 산수 경물의 형식미를 잘 드러내면서도, 시상 전개에 일 면 드러나는 시적 화자의 존재가 각 구의 서로 다른 장면을 연결하는 내적 논리 가 되어 제목인 「春望」으로 대표된다. 따라서 하나로 수렴되는 봄날의 경치는 시 적 화자의 감흥을 자아내는 산수의 형식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상에서처럼 퇴계·송암의 시가에서 확인되는 산수의 형식미는 감각적으로 시 적 화자에게 인식된 후에, 分殊된 理를 포착하는 성리학자로서의 의식의 지향성 이 이성적으로 작용함으로써 발견됨을 알 수 있다. 이때 시상 전개에 드러나는 시적 화자의 내면의 목소리, 즉 감흥과 지향의 표현은 담담하게 서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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