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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物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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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嚴昕의 시 槪觀

4.3. 景物詩

엄흔이 자연경관이나 경물을 보고 읊은 경물시79)에서는 세한의 절조와 평담의 세계

76) 엄흔, <送友人歸覲淸州>, 十省堂集 下, 51쪽.

77) 시의 제목 <黃髮頌>에서 “黃髮”은 노인의 흰머리가 다시 누렇게 되는 것은 곧 長壽의 조짐을 말한다. 따라서 부모의 장수를 기원하고 있는 <黃髮頌>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公車千乘, 朱英 綠縢, 二矛重弓, 公徒三萬, 貝胄朱綅, 烝徒增增. 戎狄是膺, 荊舒是懲, 則莫我敢承, 俾爾昌而熾, 俾爾 壽而富. 黃髮台背壽胥與試, 俾爾昌而大, 俾爾耆而艾, 萬有千歲, 眉壽無有害.”( 詩經 , 魯頌 駉之什

<閟宮> 九章 중 4章)

78) 檜風․素冠篇 : 詩經 <素冠>은 사람들이 三年喪을 행하지 않는 것을 풍자한 시이다. 그 전문 은 다음과 같다. “庶見素冠兮, 棘人欒欒兮, 勞心慱慱兮. 庶見素衣兮, 我心傷悲兮, 聊與子同歸兮. 庶 見素鞸兮, 我心蘊結兮, 聊與子如一兮.”( 詩經 , 檜風 <素冠>.)

79) 해동강서시파의 범주에 있는 시인들의 경물시에 대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朴誾은 좌절된 인생을 체념과 안분으로 초탈하여 虛無主義的인 색채를 강하게 내포하였다. 朴祥은 尾聯에서 慷慨하는 시인의 모습을 시 속에 회화적으로 끌어들여 강개의 미학이 높은 수준으로 발현되었다. 鄭士龍은 경물을 요란하게 묘사하면서 그 이면에 정치적 좌절을 투영하여 寄託의 구조를 택하고 있다. 盧 守愼은 고요한 분위기 속에 신선의 세계로 승천하는 맑은 목소리를 느낄 수 있다. 黃廷彧은 이와 는 달리 웅장한 경물 자체에 자신의 울분을 발산하고 있다.(이종묵, 海東江西詩派 硏究 , 太學社, 1995, 373쪽 참조.)

가 엿보인다. <疾風知勁草>, <枯梧>, <種梅見花>, <庭梧>, <庭松> 등 여러 작 품에서는 그가 사림다운 세한의 절조를 갖추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弔 梅>, <新竹>, <咏庭松>, <鳳凰臺>, <三月二十八日遊楮子江>, <題古岫庵> 등 의 경물시에서는 16세기 館閣派의 정수로 알려진 鄭士龍, 盧守愼이 자연의 경물을 묘 사하는 과정에서 해동강서시파의 면모를 반영80)하고 있듯이 엄흔의 시 또한 평담의 세 계를 이루려고 노력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밤에 中興寺에서 자고 夜宿中興寺

아침에 古岫庵으로 왔네. 朝來古岫庵

흰 구름은 희미하게 오르내리고 白雲迷上下

푸른 산봉우리는 동남쪽을 싸안았네. 靑嶂擁東南

벽에는 수천 수백 부처 壁佛身千百

사는 중은 두세 명 뿐. 居僧數兩三

林泉이 한가로운 땅에 있으니 林泉有閑地

호젓한 바위 옆에 집을 지었네. 卜築近幽巖81)

<題古岫庵>은 서울 삼각산 白雲峯에 있는 中興寺와 古岫庵의 두 用事82)를 가져와 시의 의미를 확대하여 지은 작품이다. 이 시는 선경후정의 서술방식으로 먼저 고수암 의 주위 경관을 말한 후 다시 엄흔 자신의 속마음을 서술하였다.

흰 구름이 쉬고 있는 白雲峯 중턱에는 중흥사가 자리하고 동남쪽으로는 고수암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 “白雲”은 뭇 백성을 가리키기도 하고, 고수암을 부지

80) 해동강서시파의 일원으로 宋詩와 唐詩를 함께 아우르면서 漢詩史의 족적을 남긴 “湖蘇芝”, “館閣 三傑”로 일컬어지는 鄭士龍과 盧守愼, 黃廷彧을 말한다. 이들은 호방한 자연을 묘사하여 유미주의 에 입각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망망대해를 노래하거나 높은 곳에 올라 창작한 작품이 많으며, 모호한 전고를 사용하고, 새로운 시어를 창조하는 등 또렷한 개성을 드러내 소위 해동강서시파의 면모를 반영하고 있다.(강동석, 朝鮮前期 自然觀과 그 變貌樣相에 관한 연구-館閣文人을 중심으 로 , 漢文學論集 第38卷, 槿域漢文學會, 2014, 159쪽 참조.)

81) 엄흔, <題古岫庵>, 十省堂集 上, 40쪽.

82) 漢詩 作詩에서 用事에 대한 견해는 학자마다 다르다. 李奎報는 ‘載鬼盈車體’, 혹은 ‘拙盜易擒體’라 고 하였고, 李仁老는 ‘點鬼簿’라고 하여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말하였다. 그러나 丁若鏞은 “시를 지을 때에는 반드시 用事를 위주로 하여야 한다. 그러나 걸핏하면 우리나라 시인들은 중국 故事 만을 사용한다. 이 또한 비루한 성품 때문이다. 마땅히 三國史記 ․ 高麗史 ․ 國朝寶鑑 ․ 東國 輿地勝覽 ․ 懲毖錄 ․ 練藜室記述 및 기타의 우리나라 문헌들에서 그 사실을 취하고, 그 지방 을 고증하여 시에 쓰도록 하여야만 세상에 이름을 남기며 후세에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 여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丁若鏞, 與猶堂全書 卷21 <寄淵兒>.)

런히 오르고 내리는 시인 자신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고수암은 백성들이 살아가고 있 는 화평한 세상이 되어 그의 앞으로 한걸음 다가와 서 있었다.

“白雲”과 “靑嶂”은 색채대비에 의한 대우방식을 취하여 푸른 산을 흰 구름이 안고 있는 고수암의 운치를 더해 주었다. 또한 “千百”과 “兩三”의 수의 대우를 가져와 고수 암의 한적한 분위기를 倍로 증가하였다. 엄흔은 이처럼 고수암의 자연경관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자연경물에 이입하고 평담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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