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十省堂集 刊行經緯와 編次
3.1. 刊行經緯
엄흔의 문집 十省堂集 은 1585년 그의 아들 嚴仁述59)이 定山(충남 청양군) 縣監으 로 재직할 때 처음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萬頃(전북 김제지역) 縣監으로 이임하 여 다시 刊行하였는데, 그 간행본이 일본으로 유입되어 현재 國立國會圖書館(청구기 호:820-20)에 소장되어 있다.
본고의 저본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목판본이다. 현재 이 책은 서 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그 본을 마이크로필름(필름번호:M古3-2001-5)으로 소장하고 있는 자료이다. 이 책은 卷尾에 “萬曆乙酉秋七月定山縣開刊”이라는 刊記가 있고, “圓完 寺 常住”라는 後識가 있다. 이 刊記와 後識로 보아 十省堂集 은 1585년 7월에 처음 간행되었는데, 그 중 하나를 圓完寺 사찰에서 소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하나의 異本이 일본 內閣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 또한 서울 국립중앙도서 관에서 그 본을 마이크로필름(필름번호:古M3644-45)으로 소장하고 있는 자료이다. 그 런데 이 책은 刊本이 아닌 日人에 의한 傳寫本으로 卷上에는 友野瑍, 細井謨, 福知瀏 가, 卷下와 附錄에는 福知瀏, 細井謨, 江目圻 등이 교정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萬曆乙 酉秋七月定山縣開刊”이라는 刊記가 적혀 있으며, 卷上과 卷下의 首題 아래에는 각각
‘淺草文庫’라는 所藏印이 찍혀 있다.60)
한편 李好閔의 五峯集 에는 <書十省堂集跋>과 七言律詩 <題十省堂詩集後 - 時 十省胤嚴尹爲漢城判官>61) 1수가 실려 있다. <書十省堂集跋>에서 이호민은 저자 엄흔 과 부친의 친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엄인술이 만경에서 재임할 때 선고의 유고를 한 부 가져왔다는 사실과 함께 만경에서 간행한 본이 전쟁으로 대부분 없어져 버린 사 실 등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588년~1589년 즈음에 萬頃 縣監이 된 저자의 아들 旌善이 先君의 유고와 板刻을 가져와 印刊
59) 엄인술(1540~1606). 자는 述之, 호는 旌善이다. 通訓大夫 淮陽都護府使 鎭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또한 1581년부터 1586년까지는 定山縣監으로 재임하였다.( 定山邑誌 참조.) 60) 金圻彬, 十省堂集 해제, 한국문집총간 제32집, 고전번역원, 1998 참조.
61) 李好閔의 칠언율시 <題十省堂集後>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先友桐江一德星, 妙齡摛藻滿天庭.
洛中舊輩全淪沒, 京兆吾君是典刑. 遺稿茂陵金玉在, 微言江表茝蘭馨. 元眞所有餘殘馥, 雨露今年草又 靑.”(李好閔, <七言律>, 五峯集 卷4 한국문집총간 제59집, 376쪽.)
국립국회도서관본 내각문고장본 비고
重曰 重田 상권 2쪽 8열 4항 ‘曰’과 ‘田’
(이하 상권에서는 ‘상권’을 생략한다.)
力穡之榮 力穡之策 7쪽 7열 2항 ‘榮’과 ‘策’
秋省歛 秋省斂 7쪽 8열 15항 ‘歛’과 ‘斂’
躬自重穀 躬目重穀 8쪽 6열 1항 ‘自’과 ‘目’
하여 한 본을 보내주었다. 내가 공경히 받들고 삼가 읽어보니, 문집 말미에 洪石壁(名, 春卿)이 지은 碣文이 있었다. (中略) 萬頃에서 찍은 간행본이 전쟁으로 대부분 없어져 버렸으니, 다행이 두 집안의 자제들이 힘을 모아 다시 간행하여 영원히 전하여지는 것이 지극한 소원이다. 정선 은 이 말로써 반드시 마음이 유쾌할 것이며, 나도 이 말로써 선친을 우러러 존경할 것이다.62)
엄흔의 십성당집 은 간기와 李好閔의 <書十省堂集跋>의 여러 사실들을 유추해 볼 때, 그의 아들 엄인술이 定山 縣監 재직 당시에 유고를 정리하여 목판으로 初刊하 였고, 다시 萬頃으로 이임한 뒤 간행하여 유포하였는데, 이호민이 발문을 쓴 1601년경 에는 그 간행본이 상당 수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십성당집 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본과 내각문고장본 두 본이 존재하고 있다.
하나는 2001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古典籍을 조사․영인할 때 국회국립도서관 소장 목 판본을 촬영한 마이크로필름(필름번호:M古3-2001-5)이다. 본고에서는 이를 가지고 저 본으로 삼았다. 다른 하나 역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내각문고장본인 필사본을 촬영한 마이크로필름(필름번호:古M3644-45)이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이를 가지고 한국문집 총간 제32집 십성당집 저본으로 삼았다.
따라서 본고는 두 본을 면밀히 검토하여 보았다. 그 결과 내각문고장본은 국립국회 도서관 소장의 목판본을 후대에 와서 일본인이 필사하였으며, 그 필사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기록을 허다하게 남기었다. 따라서 본고의 아래 <표1>을 통하여 알 수 있는 바 본고의 저본이 한국문집총간 제32집 十省堂集 의 저본 내각문고장본보다 先本이자 善本임을 전체 五十六字의 異字를 근거하여 밝혔다. 아울러 두 저본 간의 異字는 본고 저본의 원문 순서에 따라 제시하고, 각각 비고를 통하여 의미를 비교하여 보도록 하였 다.
․ <표1>
62) “歲萬曆戊子己丑間, 旌善宰萬頃縣, 以其先君遺稿鋟榟, 印一本寄某. 某奉以莊誦, 見集末有洪石壁所 撰碣文. (中略) 萬頃印本, 多沒於兵火. 幸兩家得分寸力, 重爲入榟, 以永其傳, 是至願也. 旌善必以此 語愃, 某亦以此語景嚴矣.”(李好閔, <記․跋>, 五峯集 卷8 한국문집총간 제59집, 437쪽.)
鷹揚而啓行 鷹揚而啓竹 11쪽 1열 16항 ‘行’과 ‘竹’
致中和 致中秋 16쪽 1열 18항 ‘和’와 ‘秋’
四海于湯 四海千湯 16쪽 8열 2항 ‘于’와 ‘千’
征歛煩多巧 征斂煩多巧 22쪽 3열 1항 ‘歛’과 ‘斂’
故鄕蒼茫千萬里 故鄕蒼范千萬里 25쪽 5열 11항 ‘茫’과 ‘范’
擧眼不見浮觴處 擧眠不見浮觴處 26쪽 7열 7항 ‘眼’과 ‘眠’
要須元氣壯 要須亢氣壯 36쪽 7열 15항 ‘元’과 ‘亢’
課盡裁培力 課盡我培力 37쪽 8열13항 ‘栽’와 ‘我’
元非擊楫人 亢非擊楫人 39쪽 3열 6항 ‘元’과 ‘亢’
勳葉新投筆 勳葉雜投筆 54쪽 9열 5항 ‘新’과 ‘雜’
久負剡溪船 久負刻溪船 55쪽 9열 18항 ‘剡’과 ‘刻’
借問文園令 借問文圓令 56쪽 7열 4항 ‘園’과 ‘圓’
振策關河道 振策開河道 62쪽 3열 3항 ‘關’과 ‘開’
食覺鷦林足 食覺鶴林足 67쪽 8열 5항 ‘鷦’와 ‘鶴’
平原入望開 平原入望關 68쪽 2열 12항 ‘開’와 ‘關’
揄揚纔一語 偸揚纔一語 68쪽 8열 11항 ‘揄’와 ‘偸’
停時欲斷絃 停時欲斷絲 72쪽 10열 2항 ‘絃’과 ‘絲’
同盧水一帶 東盧水一帶 98쪽 9열 1항 ‘同’과 ‘東’
祇益登臨此日思 祇益登監此日思 하권 2쪽 7열 1항 ‘臨’과 ‘監’
(이하 하권에서는 ‘하권’을 생략한다.)
他年地下共倘佯 他年地下共徜徉 3쪽 9열 17,18항 ‘倘佯’과 ‘徜徉’
良材一失逢難再 良村一失逢難再 5쪽 5열 6항 ‘材’와 ‘村’
大材自古無人顧 大村自古無人顧 5쪽 8열 6항 ‘材’와 ‘村’
花前杯酒借顏紅 花有杯酒借顏紅 7쪽 7열 18항 ‘前’와 ‘有 他年認取開懷地 他年認取關懷地 7쪽 8열 9항 ‘開’와 ‘關 星河漸結半庭陰 墨河漸結半庭陰 8쪽 3열 3항 ‘星’과 ‘墨’
登臨何處對斜暉 登臨河處對斜暉 8쪽 8열 3항 ‘何’와 ‘河’
千年那復與追游 千年那復與進游 10쪽 3열 13항 ‘追’와 ‘進’
眼底曾經路四千 眼底曾經洛四千 10쪽 8열 7항 ‘路’와 ‘洛’
已作斕斑戲老萊 已作爛斑戲老萊 12쪽 4열 19항 ‘斕’과 ‘爛’
衡宇獨留彭澤徑 衡字獨留彭澤徑 30쪽 2열 11항 ‘宇’와 ‘字’
誰識胸中元不病 誰識胸中亢不病 32쪽 2열 9항 ‘元’과 ‘亢’
不緣藥力收刁匕 不綠藥力收刁匕 35쪽 2열 16항 ‘緣’과 ‘綠’
同垂松梓三年淚 同垂松梓三年深 46쪽 1열 2항 ‘淚’와 ‘深’
不是尋常海外生 不是尋當海外生 46쪽 2열 15항 ‘常’와 ‘當’
久恨塵埃長悵望 又恨塵埃長悵望 47쪽 4열 15항 ‘久’와 ‘又’
永日閑開萬卷書 求日閑開萬卷書 48쪽 8열 8항 ‘永’과 ‘求’
久爲艱難多旅泊 又爲艱難多旅泊 50쪽 1열 10항 ‘久’와 ‘又’
雲宵舊路多閑地 雲霄舊路多閑地 52쪽 1열 11항 ‘宵’와 ‘霄’
憑公暫取淸江趣 憑分暫取淸江趣 63쪽 5열 6항 ‘公’과 ‘分’
幕下有人存郢質 幕下有人有郢質 65쪽 5열 9항 ‘存’과 ‘有’
地遠元無鼓打開 地遠元無鼓打閣 70쪽 4열 9항 ‘開’와 ‘閣’
囊貧不怪詩篇富 囊賀不怪詩篇富 72쪽 3열 11항 ‘貧’과 ‘賀’
蓼莪非復慕羹墻 蓼莪非後慕羹墻 75쪽 6열 11항 ‘復’와 ‘後’
已付生涯枯淡裏 已付生涯拈淡裏 78쪽 6열 9항 ‘枯’와 ‘拈’
郭北長江分遠派 邪北長江分遠派 79쪽 9열 15항 ‘郭’과 ‘邪’
點點胡山向我迎 點點胡山何我迎 81쪽 5열 6항 ‘向’과 ‘何’
幽尋有約可相違 幽尋有約可相遣 83쪽 10열 14항 ‘違’와 ‘遣’
嘖月驚濤寒洒面 84쪽 1열 10항 ‘噴’과 ‘嘖’
噴月驚濤寒洒面
何日同舟又同醉 何日同舟又同辭 84쪽 5열 11항 ‘醉’와 ‘辭’
簪纓未禁蓴鱸興 簪纓未禁蓴纑興 85쪽 10열 10항 ‘鱸’와 ‘纑’
髣髴磯頭水濕袍 髣髴磯頭水滋袍 86쪽 6열 13항 ‘濕’과 ‘滋’
丹砂長駐少容顔 丹砂長駐少容顔 90쪽 1열 9항 ‘顔’과 ‘韻’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립국회도서관본은 1585년 定山에서 초간한 본을 萬頃 에서 간행한 본이 분명하고, 일본이 필사하는 과정에서 誤記가 많은 내각문고장본보다 십성당집 의 저본이 되어야 함은 타당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차후 학계에서 엄흔의 십성당집 연구와 일반인의 독해에 정확성을 기여하기 위하여 두 본 간의 異字를 위 와 같이 따로 정리하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