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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도자의 대미인식이 핵외교에 미치는 영향 연구:

제2차 북핵위기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Influence of North Korean Leader's Recognition of the U.S. on Nuclear Diplomacy: Focusing on the

Second North Korean Nuclear Crisis

정 방 호(Bangho Chung)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박사과정

ABSTRACT

Psychological and cognitive approaches to foreign policy decision-making are mainly focused on individuals. These studies analyze the relationship between policymakers' perception of their surroundings and the specific foreign policy they choose, and reveal the limited rationality of individual human actors. The fact that North Korea's top leader has a deep connection with the U.S. in nuclear diplomacy during the Second North Korean nuclear crisis is that in a one-man dictatorship, the leadership's high sensitivity and importance are often related to unstructured situations that cannot be solved by bureaucrats.

The characteristics of North Korea's perception of the U.S. are negative, defensive, and at the same time, they are considered to be targets for normalization of relations, and are used as a means of internal governance. In addition, the perception of the U.S. is fundamentally hostile, but it has both ideological and practical aspects. First of all, Kim Jong-il's perception of the U.S.

in his joint New Year's editorial and his selection of Kim Jong-il is based on his confidence in the U.S. when referring to the nuclear issue. Second, they have different perceptions of the U.S. in terms of international environmental conditions, such as ideology-oriented, practical-oriented, and parallel. Finally, they respo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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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tively to ideological and cultural penetration, such as denying and threatening North Korean ideas and systems altogether. This study examined the expression of the second nuclear diplomacy based on the joint New Year's address and a close review of Kim Jong-il's selection using a psychological and cognitive approach to the North Korean leader's perception of the U.S. In addition, it is meaningful to analyze the impact of Kim Jong-il's perception of the U.S. on the internal and external effects of the Kim Jong-un regime and provide implications for denuclearizing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program in the future.

Key words : U.S. awareness, nuclear diplomacy, psychological and cognitive approaches, the second North Korean nuclear crisis, New

Year's editorial

주 제 어 : 대미인식, 핵외교, 심리·인지적 접근법, 제2차 북핵위기, 신년 공동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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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북한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유훈 통치기를 거쳐 1998년 9월 국방위원장에 취임하면서 그의 공식적인 통치를 시작하였다. 2000년도 들어서면서 북한은 경제적으로 소폭 성장을 하였지만,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를 겪은 후 경제적 어려움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정일은 국가의 통제 밖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시장을 국가 관 리 내로 유도할 필요가 있어 시장 기능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시행했다(통일부 2019, 139).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의혹으로 시작된 제2차 북핵위기 간 부시 행 정부는 제네바 합의를 폐기하고,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을 가속화시켰다. 이 후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양자 협상이 아닌 5자회담 제의, 미국·중국·북한의 3자회담 등 을 거쳐 6자회담으로 전환을 하였다. 제2차 북핵위기를 시작으로 미국과 북한은 상대를 불신하며 상호 대응을 하였다. 이후 북한의 핵보유국 선언, BDA 사태, 북한 1차 핵실험 등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런 일련의 핵위기 속에서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북한체제 특성상 최고지도자의 권한이 민주주의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분석수준에 따라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외교정책결정 모형은 국제체제수준, 국가·

사회수준, 정책결정집단수준, 정책결정자 개인수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책결정자 개인 수준의 결정요인은 외교정책결정과 수행과정에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파악하기 어 려운 정책 결과를 설명하는 데 주로 이용된다. 또한, 외교정책결정 과정에서 비합리적인 판단, 정보 왜곡 사례, 불확실성의 결과 등이 발생하는 면을 살펴보는 데 유용하다(남궁 곤 2018, 42). 개인수준의 결정요인은 합리적 판단 및 선택을 하는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어서 일반적으로 제한된 합리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책결정자 개인수준의 결정 요인은 정책결정자의 심리상태, 성격, 인식구조 등이 정책결정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준다 는 명제를 주된 논지로 삼는데, 그중에서도 ‘심리·인지적 접근법’으로 불리는 연구방법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남궁곤 2018, 42).

북한의 대미인식과 대외정책과 관련한 연구는 그동안 많이 진행되어왔다. 연구를 살펴 보면, 먼저, 대미인식 특성의 지속성으로, 적대적 인식이 지속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불신 의 악순환이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반미인식에 기초한 외교정책 변화가 초래되었으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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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의 전환이 아니라 ‘전술적 전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김영수 2003; 최영준 2007). 둘 째, 북한의 대미인식은 이중적으로 대미정책에 반영된다는 주장이다. 양대진영론 인식은 선군외교로, 실용주의적 대외인식은 전방위외교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데올로기 및 역사적 반미인식에서 실용적 반미인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김태운 2005 ; 정영철 2011; 장달중 2009). 셋째, 북핵문제 해결 진행 과정에서 북·미 간 불신 토대 위에 서 대응전략 위주로 설명하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강압전략과 그에 따른 북한의 맞대응 전략으로, 맞대응 전략은 대화에는 대화, 갈등에는 갈등으로 대응한다고 주장한다(양무진 2007; 장원만 2010).

이처럼 선행연구의 대부분이 대미인식의 주체에 대해 정확하게 구별하지 않고 있다.

분석수준에 따른 국가 및 사회, 정책결정집단, 개인수준 등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울러 대미인식이 불신에 기반하여 대미정책을 수행한다고 하는데, 불신에 대해 너무 광범위하 게 언급하고 있고, HEU 프로그램, BDA 사태 등과 같은 주요 사건과 관련하여 북한의 대미인식에 대해 자세하게 고찰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대미인식의 불신을 설명하기 보다는 대응전략 위주로 논조를 펼치고 있다.

본 연구와 같이 북한 지도자의 대미인식이 제2차 핵외교1)에 미친 영향을 지도자의 인 지적 구조와 외교정책 결과라는 분석 틀을 이용하여 분석한 연구를 찾기는 어렵다. 따라 서 본 연구의 목적은 심리·인지적 접근법을 적용하여 북한 지도자의 대미인식을 분석하 여 미국과의 핵 협상 간 어떻게 작용하여 발현되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아울러 향후 핵 관련 외교정책 결정 간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심리·인지적 접근법과 인지적 구조 및 외교정책 결과 분석 틀을 살펴보고, 3장에서는 로동신문 등 사 설을 통해 대미인식의 역사와 지도자의 대미인식을 고찰한다. 4장에서는 제2차 핵외교 기간 북미 상호 대응과 핵외교 발현양상을 살펴보고, 대미인식이 김정은 정권하 핵외교 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연구범위는 2차 북핵위기 기간 전후를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연구자료는 김정일의 대미인식을 잘 살펴볼 수 있는 1차 자료인 로동신문의 ‘신년 공동사 설’과 ‘김정일 선집 15권’을 주요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1) 핵외교는 핵카드, 핵담판 등으로 표현이 가능하며 핵을 담보로 북한이 체제 붕괴의 위기를 탈피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책이다.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돌파구 역할을 기대하고, 미국을 외교정책의 대상국 으로 삼고 행해지는 일련의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미치시타 나루시게는 1·2차 북핵위기를 ‘정교해진 벼랑끝 외교’로 표현하고 있으며, 제2차 핵외교에서는 핵을 통한 협박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고 주장 하고 있다(미치시타 나루시게 2017, 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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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이론적 배경

1. 심리·인지적 접근법이란?

통상적으로 외교정책 결정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로 국제체제, 국가속성, 정책 결정집단, 정책결정자 개인을 제시한다. 외교정책 결정과정의 심리·인지적 접근은 이러한 상이한 분석수준(level of analysis) 중 주로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들 외교 정책 결정과정의 참여자가 대부분 외교정책 집행자이다. 이러한 연구는 정책결정자의 주 변상황에 대한 인식(perception)과 이들이 선택할 외교정책 간의 관계를 분석한다(김달중 1999, 125-126). 심리·인지적 접근법은 인간 개별행위자들의 비합리성 혹은 제한된 합리 성(bounded rationality)을 정면으로 드러내고 정책결정자의 심리적 요인의 인과효과 (casual effect)를 강조하며, 이러한 점은 여타 국제정치이론과 구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은용수 2013, 87.). 합리적 선택론(rational choice theory)도 ‘인간’이라는 행위자에 관심을 두지만 그들의 개별적 역할은 사라지거나 약화된다. 오히려 합리성이라는 개념 하에서 환경적 혹은 구조적 요인과 상황이 중요하게 된다. 인지적 요인들이 정책결정자 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방해가 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정책결정자는 특정 상황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고 흡수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책 결정자는 선택 가능한 정책 대안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식별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 도 많다. 각 선택 대안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예상도 매우 단편적이다. 이런 이유로 외교정책결정자 개인은 선택의 문제에서 전략적 선택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남궁 곤 2018, 44-45).

심리·인지적 연구 필요성이 대두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30년 넘게 이어진 냉전이라는 국제환경으로 인해 당시의 외교정책과 국제관계는 많은 부분 ‘힘의 균형’, ‘동 맹’, ‘진영(bloc)’, ‘이데올로기’ 등과 같은 외부환경 및 구조적인 요인들로 설명할 수 있었 으나, 그것을 가능케 한 냉전체제 자체가 붕괴함으로써 국내적인 요인과 개별적인 정책 결정자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둘째, 탈냉전을 통한 정치환경적 변 동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즉 국제관계학에서의 ‘인식론적’ 다변화와 국제관계 현실에서 의 환경 구조적 변동이 나타났고, 이는 곧 심리·인지학적 연구에 대한 재조명 혹은 재평 가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은용수 2013, 91). 다시 말하면, 냉전체제 붕괴로 인한 국내적 요인과 개별 정책결정자의 역할 중시, 탈냉전기에 국제관계학에서의 인식론적 다변화와 정치 환경적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에 심리·인지적 연구가 필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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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인지적 접근법의 대표적 학자로 볼딩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현실 그 자 체가 아니라, 우리에게 인식된 현실이다. 인식되지 않은 현실은 행동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김달중 1999, 126). 허드슨 또한 정책결정 과정에서 정책결정자들에게 미치는 다 양한 요인 중 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감정, 신체적 상태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상황적 맥락(situational context)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권효림, 김용호 2014, 104). 볼딩은 현실 자체보다는 인식된 현실에 의해, 허드슨은 지도자의 감정이나 신 체적 상태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홀스티의 미국 덜레스(Dulles) 국무장관의 ‘적 이미지(enemy image)’ 연구는 덜레스의 소련에 대한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에 비해 장기적으로 거의 변화하지 않아 이를 미국 지 도자들이 소련에 대해 그 당시 가지고 있던 도덕적 우월감에 바탕을 둔 흑백 논리적인 반사 이미지(mirror image)라 하였다.2) 이런 경우 덜레스 국무장관의 대소(對蘇) 적 이미 지는 소련의 대미정책이 협력적으로 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일정 수준을 유지하 였다(김달중 1999, 128). 홀스티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정책결정자는 객관적인 현실보다는 상황에 대해 그가 가진 이미지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것이다(김달중 1999, 303-304). 또 다른 사례로 외교정책결정자가 상대방에 대해 강한 적 이미지가 있으면 사악하고 영악한 모습과 행동만 받아들여 기억한다. 상대가 그보다 더 복합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또 생각보다 능력이 약할 수 있다는 이미지는 걸러진다. 미국의 지도자들과 정보기관이 공산 진영과 소련이 그토록 쉽게 또 빨리 무너질 줄 예상하지 못한 것은 강력한 ‘적 이미 지’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로라 니애크 2020, 54-85). 홀스티와 로라 니애크는 적 이미 지의 강렬함 때문에 소련의 대미정책이 유화적으로 변화되었음에도 과거의 적 이미지에 도취하여 협력하지 못한 사례와 또한, 구소련이 그렇게 빨리 붕괴하였을 것으로 예측하 지 못한 예를 들고 있다.

저비스는 정책결정자의 인식과 행위 사이에는 균형 잡힌 관계가 있는데, 두 국가 사이 의 관계가 협력적일 때는 호의적인 인식을, 이와는 대조적으로 두 국가 사이의 관계가 적대적일 때는 부정적인 인식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비스는 정책결정자들이 새로 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기존의 이미지나 편견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 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한다(Jervis 2002). 이러한 사실은 본 연구가 나중에 살펴볼 북미 관계를 설명하는데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통하여 오인이 2) 덜레스는 자신의 신념과 시각에 맞지 않는 정보는 거부했으며, 이와 같은 정보의 취사 선택, 재해석

등을 통해 소련에 대한 적대적 외교정책을 추구했다(Holsti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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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하는가? 실제로 의사결정자가 가진 이론과 이미지가 그가 지각하는 대상을 결정한 다. 다시 말해 행위자들은 미리 기대하고 있는 것을 지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학자들이 주장한 내용을 요약하면, 정책결정자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인식된 현실이고, 정책결정자의 감정이나 신체적 상태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정책결정자는 객관적인 현실보다는 상황에 대해 가진 이미지에 의 해 행동을 하고, 두 국가 사이에 협력적일 때는 호의적인 인식을, 적대적일 때는 부정적인 인식을 한다는 것이다.

2. 인지적 구조와 외교정책 결과 관계 분석 틀

심리·인지적 접근법에 대해 학자들이 주장한 내용과 북한의 현실을 고려 시 <그림 1>

과 같은 분석의 틀을 상정할 수 있다. 지도자의 인지적 구조, 즉 대미인식은 독립변수로, 외교정책 결과인 대미 핵외교 결과는 종속변수로 규정할 수 있으며, 북미 간 상호작용인 환경구조는 매개변수로 가정할 수 있다.

지도자의 인지적 구조 외교정책 결과

∙ 대미인식(기본: 적대적) - 이념 위주

- 실리 위주

∙ 대미 핵외교 결과

환경구조

∙ 북미 간 상호작용 - 핵협상 목표

<그림 1> 인지적 구조와 외교정책 결과 관계 분석 틀

제2차 북핵위기 간 대미 핵외교에서 북한 최고지도자의 개인과 관련이 된다는 사실에 대해 허드슨은 개인적 정책결정자의 특징이 중요한 요소 중 첫 번째로 북한과 같은 체제 의 특성상 일인 독재체제에 있어서 외교정책 결정 간 지도자의 권한이 매우 높다는 점을 강조하였다(Hudson 2020, 40). 또한, 핵 결정이 가진 높은 중대성은 관료조직에 의해 해 결될 수 없는 비정형적인 상황과 관련된 경우가 많아서 지도자의 연구가 유효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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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권효림, 김용호 2014, 102). 다시 말하면, 일인 독재체제에서 지도자의 권한이 매우 높고 핵 관련 결정이 관료조직에 의해 해결될 수 없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연구방법은 신년 공동사설과 김정일 선집 15권(2000~2004년)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서 분석하였다. 외교정책 결정과정에서 간접적인 지도자 인식의 추정은 일정 기간에 수집된 행위자료를 사용하면 인식의 측정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달중 1999, 145). 김정일은 “공동사설은 당에서 구상하고 있는 문제들과 의도하는 문 제들을 그대로 반영하였습니다. 공동사설은 곧 당의 방침입니다”라고(김정일 선집 제15 권 2005, 2) 밝혔듯이, 당의 방침은 곧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방침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김정일 선집 15권은 2차 북핵위기 시기에 쓰인 것으로 김정일의 대미인식이 잘 드러나 있고 유훈통치 이후 김정일의 인식과 사상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Ⅲ. 대미인식의 역사와 지도자의 인식

1. 대미인식의 역사 및 특징

북한의 대미불신 기원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직후 소련 에 의해 북한의 지도자로 옹립된 김일성은 자신의 항일무장투쟁 경력을 타 정치 파벌과 차별화되는 정통성의 근거로 내세우며 미국을 일본 제국주의를 대체한 주적으로 지목하 고 반제 반미투쟁의 가치를 높였다.3)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은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져 신 화화되고 통치 이념화되며 반제 반미투쟁으로 확대된다(김성학 2017, 71). 대표적으로 보 천보전투를 들 수 있다. 일본 주재소 민간인 2명이 사망한 것이 전부였으나 북한은 이를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업적으로 과대 포장하고 대대적인 우상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1946년 미‧소 관계가 갈등 상황으로 전개되면서 공산당에 대한 미 군정의 탄압이 본격 화되었고, 대미관이 부정적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1947년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나서 반미주의 쪽으로 확실한 노선을 정하게 된다. 즉 1948년 적대적 대미인식의 등장 이후 적대적 대미관을 공식화했다(박형준 2019, 115). 북한이 바라보는 미국은 남한의 지 배를 통해 한반도에서 정치‧안보 등 제 분야에서 식민지적 수탈을 하고 전략적 이익을 확보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1950년의 6‧25전쟁과 전쟁 중에 보인 미군의 행동은 북한의 대미인식을 결정적으로 좌 3) 북한은 미국을 “미제는 현대의 가장 야만적이고 가장 흉악한 제국주의이며 세계제국주의의 우두머리로

서 인류의 가장 흉악한 공동의 원쑤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정치사전 1973,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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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했다. 제공권을 장악한 미 공군의 폭격과 미국의 원자탄 사용 가능성에 대한 언급 등으 로 북한은 미국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백학순 2011, 27). 신천대학살 사 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4)

1960년대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과 EC-121기 격추 사건, 1970년대 판문점 도끼 만행사 건 등 대결을 심화시킨 무력투쟁 사건들을 통해 북한 내부의 체제결집과 김일성 유일지 배체제 강화를 위한 통치 기제로 활용함으로써 주민들에 대한 대미 적대감을 확고히 하 였다(박형준 2019, 116). 김일성은 푸에블로호 나포사건과 EC-121 격추 사건을 통하여 당에 대한 군의 독립성을 향상하려 했던 김창봉 민족보위상 등 군 수뇌부를 숙청하면서 군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였다.

북한은 1980년대 말부터 소련이 붕괴하기 시작하고 동유럽에서 체제전환이 이루어지 는 상황을 맞아 ‘우리식 사회주의’와 ‘조선민족제일주의’를 내걸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인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사상적 방어에 나섰다(백학순 2011, 35). 더구나 남한은 1990년 소련과 외교 관계를, 1992년 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면서 북한은 더욱 난처해졌고 미 국을 제국주의로 몰아붙였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북한의 핵개발, 악의 축 발언, 남한 내 미군의 군사훈련 및 전략무기 배치 등 상호 군사안보 이익의 추구 속에서 미국의 군사 공격 대상으로 간주되면서 체제의 안보에 대한 부담감이 가중되었다. 특히 경제위기 상 황까지 더해지면서 북한의 피포위 의식이 북한의 지도자를 위협했고5), 이를 미국 때문이 라고 여긴 북한은 대미 적대정책을 확대해 나갔다(박형준 2019, 116-117). 북한은 미국의 위협을 체계적으로 조작 및 과장하고 강제와 모방이라는 주민 압력을 통해 대미인식을 구조적으로 내면화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대미인식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의 대미인식은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대미인식은 미·소의 한반도 분할점령,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 냉전의 지속 등으로 기본적으로 부정적이고 방 어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양국 상호 간의 적대관 계를 종료하고 관계 정상화를 이루어 북한이 국제 사회 속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받아

4) 신천대학살에 대해 북한은 전쟁이라는 비정상적인 시기에 좌·우익이 갈라서 서로 죽이고 보복하는 과 정에서 벌어진 사건을 그들은 치부를 감추고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군에게 그 책임을 뒤 집어씌우고 있다.

5) 북한은 1990년대 후반의 ‘고난의 행군’도 미제가 조선 민족 앞에 저지른 ‘20세기 가장 비열하고 악랄 한 범죄’였으며, 미국 때문에 북한이 ‘강요당한 최대의 시련’이라고 선전했다. 북한은 자신의 제도가 좋은 제도인데, ‘미국 놈만 아니었다면 생활 수준도 세상에서 제일 좋았을’ 것이라는 식으로 미국인들 을 비난했다(백학순 2011,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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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할 대상, 즉 대외 생존과 번영의 핵심 고리로 미국을 인식해 왔다(백학순 2011, 47).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은 1970년대 초반 데탕트 시기부터 중국과 공조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포함하여 미국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둘째, 북한은 미국을 대내 통치의 주요수단으로 인식하고 활용한다는 점이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한국전쟁 중의 신천대학살 사건이나 냉전 시기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EC-121기 격추 사건 등을 통해 대미 적대적 인식을 강화하고, 적대적 인식의 학습화를 통해 정권의 통치기반으로 활용한다고 볼 수 있다.

2. 신년 공동사설과 김정일 선집에 나타난 지도자의 대미인식

지도자의 대미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로동신문 등에 실린 신년사설과 김정일 선집을 중 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002년 1월 1일자 『로동신문』과 『조선인민군』, 『청년전 위』 공동사설(이하 신년 공동사설로 표기) “위대한 수령님 탄생 90돐을 맞는 올해를 강 성대국건설의 새로운 비약의 해로 빛내이자”는 9‧11테러 관련하여 미국의 반테러 전쟁 명목 하에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에서의 긴장 상태를 비난하고, 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 을 포기해야 하며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미인식은 이념 위주로 나타 나고 있다.

<반테로>의 명목밑에 감행되고 있는 미제와 남조선호전분자들의 반공화국, 반통 일책동으로 말미암아 지금 조선반도에서는 긴장상태가 격화되고 있다. 새 전쟁의 위험이 날로 커 가고 있는 정세하에서는 나라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 생각할 수 없 다. <중략> 제국주의 호전계층들은 우리 민족의 드팀 없는 통일의지를 똑바로 보 고 대조선고립압살기도를 버려야 하며 남조선에서 침략군을 당장 철수시켜야 한다 (로동신문 2002/1/1).

2003년 1월 1일자 신년 공동사설 “위대한 선군기치 따라 공화국의 존엄과 위력을 높이 떨치자”에서는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국특사의 평양방문 이후 불거져 나온 핵 문제 등에서 성공적으로 대처했을 뿐 아니라, 국제정치 뉴스에 자주 등장하게 된 것을 두고 세계정세의 흐름을 주도했다고 평가하고 있다(북한편집부 2003, 77-78). HEU 프로그램 사태에 대해 주도적으로 대응을 했다고 만족하며 미국과의 협상을 이어나가려는 실리 위 주의 대미인식을 견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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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우리를 고립압살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반동적공세는 전례없이 강화되 였다. 우리는 사생결단하여 싸우는 영웅적인민의 신념과 의지로 난국을 헤치고 강 성대국건설에서 새로운 비약의 길을 열어 놓았다. <중략> 온세계를 공포에 몰아넣 는 제국주의의 전횡과 강권행위도 우리를 놀래울수 없었고 우리의 전진을 가로 막 을수 없었다. 제국주의초대국과 당당히 맞서 세계정세의 흐름을 주도하며 국제관계 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는 사회주의조선의 위력은 자주를 지향하는 인민들에 게 커다란 신심을 안겨 주고 있다(로동신문 2003/1/1).

2003년 1월 “선군혁명로선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혁명로선이며 우리 혁명의 백전백승 의 기치이다”에서는 미제국주의자들의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으로 인하여 시련과 난관에 부딪쳐 미제와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상문화 압박 등을 언급하며 이념 위 주로 미국을 인식하고 있다.

미 제국주의자들과 그 추종세력들은 힘으로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려고 군사적침 략책동을 전례없이 강화하는 한편 정치, 경제, 사상문화, 외교의 모든 분야에 걸쳐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고 우리를 질식시키려고 사면팔방으로 덤벼들었습니다. 제국 주의반동들의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으로 하여 우리 혁명은 력사에 류례없는 엄혹한 시련과 난관에 부닥치게 되었으며 우리는 미제와 정면으로 맞서 제국주의침략 세력 의 집중공세로 맞받아나가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김정일 선집 15 2005, 354-355).

2004년 신년 공동사설 “당의 령도밑에 강성대국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혁명적공세를 벌 려 올해를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에서는 현재 한반도 정세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시정책으로 엄중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고, 북미 간의 핵 문제를 대 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원칙적 입장은 일관하다고 재확인했다(박헌옥 2004, 126-127).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원칙적 입장을 밝힘으로써 실리 위주로 미국 에 접근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미국 방북대표단의 영변 핵시설 방문을 허용함으로써 다소 유화적인 자세를 보인 바 있다.

오늘 조선반도의 정세는 부쉬행정부의 극심한 대조선적대시정책으로 인하여 엄 중한 단계에 이르고 있다. 조미사이의 핵문제를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방법으로 해 결하려는 우리의 원칙적립장은 일관하다. 그러나 우리는 존엄있는 우리식의 사상과 제도를 전면부인하고 위협하는 미국의 강경정책에는 언제나 초강경으로 대응할 것 이다(로동신문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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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신년 공동사설 “전당, 전군, 전민이 일심단결하여 선군의 위력을 더 높이 떨치 자”에서 9·11테러 이후 미국이 수행 중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대테러전쟁의 정 당성을 부인하는 한편, 미국으로부터의 압력에 부담을 피력했다. “미국은 우리 공화국을 군사적으로 압살하려는 시도를 버려야 하며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바꾸어야 한다”고 하면 서 체제변화와 제제전환 시도 모두를 적대정책으로 간주했다(박헌옥 2005, 144).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을 비난함과 동시에 자주, 평화, 친선의 대외정책 이념을 구현할 것을 강 조하는 등 이념과 실리 병행의 대미인식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제무대에서는 날로 로골화되는 미제의 날강도적인 침략과 강권행위를 반대하는 투쟁이 힘있게 벌어졌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침략하고 지배하려는 행 위는 그 무엇으로써도 정당화될수 없다. <중략> 미국은 우리 공화국을 군사적으로 압살하려는 시도를 버려야 하며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굳건히 수호해 나갈 것이며 자주, 평화, 친선의 대외정책적리념을 일관하게 구현해나갈 것이다(로동신문 2005/1/1).

2006년 신년 공동사설 “원대한 포부와 신심에 넘쳐 더 높이 비약하자”는 대외면에서

“미제의 반공화국 고립압살 책동을 초강경으로 짓부시고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지켜냈 다”며 미국의 대북 압박공세를 성과 있게 극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이라크 전쟁 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과 공화국 수비대가 맥없이 무너진 것을 심리전 때문으로 보고 사 상전과 심리전 방어를 강조하고 있다(박헌옥 2006, 133-137). 미국에 대한 인식은 미제의 전쟁 도발 책동, 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며 이념 위주로 접근하고 있다.

우리는 미제의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을 초강경으로 단호히 짓부시고 우리의 사 상과 제도, 우리의 위업을 굳건히 지켜냈다. <중략> 적들의 비렬한 사상문화적 침 투와 심리모략전을 혁명적인 사상공세로 단호히 짓부시며 사회주의제도를 좀먹는 온갖 이색적인 요소들이 추호도 침습할수 없게 하여야 한다. <중략> 온 민족이 미 제의 새전쟁도발책동을 단호히 짓부시기 위한 투쟁에 총궐기하여 조선반도의 평화 와 안전을 견결히 수호하여야 한다. 거족적인 미군철수투쟁으로 이 땅에서 전쟁의 화근을 송두리채 들어내야 한다(로동신문 2006/1/1).

2007년 신년 공동사설 “승리의 신심드높이 선군조선의 일대 전성기를 열어나가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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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핵 억제력 보유에 대한 자부심을 내세우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을 뿐 북핵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이나 정책을 담고 있지 않다. 예년과 달리 미국을 겨냥한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 핵실험 이후 정세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북한은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원칙적 수준을 유지하면서 정세를 관망하고 있다 (이무철 2007, 41). 북한은 핵실험 후 정세를 살피면서 실리 위주로 미국을 상대하고 있 다.

우리가 핵억제력을 가지게 된 것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불패의 국력을 갈 망하여온 우리 인민의 세기적숙망을 실현한 민족사적경사였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그 어떤 원쑤들의 핵전쟁위협과 침략책동도 단호히 짓부시고 사회주의조국을 끄떡 없이 지켜낼수 있게되였다. 오늘 우리가 마련한 전쟁억제력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고 자주위업의 승리적전진을 담보하는 강력한 힘으로 되고 있다(로동 신문 2007/1/1).

2008년 신년 공동사설 “공화국창건 60돐을 맞는 올해를 조국청사에 아로새겨질 력사적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에서 대북 적대시정책을 종료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주장은 2008년에 새롭게 제안한 것이다. 북한은 본격적인 외교 관계 확장을 위하여 자주, 평화, 친선이라는 외교방침에 더하여 진보적 인민들과의 연대성 강화와 같은 주장으로 실리주 의적 접근 의지를 드러냈다(박헌옥 2008, 140). 즉 북한은 ‘평화협정’, ‘친선 협조관계’ 등 을 언급하며 미국과 실리 위주의 인식을 하고 있고, 미국과 대외관계 맺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끝장내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며 남조선 에서 침략적인 합동군사연습과 무력증강책동을 저지시키고 미군기지들을 철폐하여 야 한다. 동족을 <주적>으로 삼는 대결관념을 버리고 군사적긴장을 완화하며 분쟁 요소들을 제거하여야 한다. <중략> 우리 공화국은 앞으로도 자주, 평화, 친선의 기 치를 높이 들고 조선반도의 안정과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적극 투쟁할 것이며 우리 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의 친선 협조관계를 더욱 강화발전시켜 나갈 것이다(로동신문 2008/1/1).

신년 공동사설과 김정일 선집에서 살펴보았듯이 김정일의 대미인식은 다음과 같다. 먼 저, 핵문제를 언급한 때는 미국을 상대로 핵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실리 위주로 미국 을 대등하다고 여기고 있다. 2004년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견 해를 밝힌 것과 2007년 ‘우리가 핵 억제력을 가지게 된 것은 불패의 국력을 갈망해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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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세기적 숙망을 실현한 민족사적 경사였다’고 주장한 것과 같이 북한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려고 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국제적 환경여건에 따라 즉, 국익을 위해 대미인식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테러전쟁 명목하에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에서의 긴장 상태를 비난하고 있고, 북미기본합의서 파기, 핵 소동(HEU 프로그램), 핵 선제공격 등에 대해 국가이익을 위해 이념 위주 혹은 실리 위주가 병행하는 대미인식을 하고 있다.

셋째, 북한식의 사상과 제도를 전면부인하고 위협하는 행위 등 사상·문화적 압박과 침 투, 심리전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이념 위주의 인식을 하고 있다. 이러한 행 위는 반공화국 고립압살 책동이라 간주하고, 극심한 대조선적대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Ⅳ. 제2차 북핵위기 간 대미인식과 김정은 시기 핵외교에 미치는 영향

1. 제2차 핵외교 기간 북미 상호 대응 및 핵외교 발현양상

2002년 10월 미국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의한 핵무기 개발 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시인하였다”고 발표함으로써 제2차 북핵위기가 시작 되었다. 북한과 미국은 2차 핵외교 기간 중 작용·반작용에 의해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따 라 상호 대응을 하였다. 그럼 주요 사건인 HEU 프로그램, 6자회담, 9·19공동성명, BDA 사태 등을 중심으로 북한과 미국의 상호 대응을 살펴보고자 한다.

HEU 프로그램은 2002년 시점에서 북한이 우라늄농축과 관련된 장비를 실험실 수준에 서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미국 정보기관이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에서 우라늄농 축 장비를 구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도 사실로 보인다(이삼성 2019, 334-335). 하지만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그의 회고록 최고의 영예에서 ‘불완전한 것이었고 미국의 의도가 있는 행동이었다’고 밝혔다. HEU 프로그램으로 인해 촉발된 제2차 북핵위기의 발단과 원인에 대해 미국은 북한의 합의 위반이라고 강조하는 반면, 북한은 미국의 약속 위반을 주장하였다(김근식 2011, 153). 미국은 중유공급을 중단했고 북한은 핵동결 해제 및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하는 것으로 반응했다. 2004년 3월 제출된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 가 지적했듯 ‘추정’에 불과한 것이었는데도 부시 행정부는 부정확한 단서로 북한을 압박 했고, 그 과정에서 북한이 핵무기용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존재를 스스로 인정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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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했다. 부시 행정부의 성급한 결정은 북한이 동결했던 플루토늄 핵 프로그램을 재가 동해 핵무기 실험으로 나아가게 했고, 오히려 북핵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제네바합의가 무용지물이 된 후 미국은 ‘북핵 문제의 국제화’를 추진했다. 미국은 “북핵 문제는 미국만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라며 중국의 협조하에 2003년 8월 베이징에서 미 국, 중국, 러시아, 일본과 남한, 북한이 참가하는 ‘6자회담’을 시작했다(임동원 2018, 547).

미국이 6자회담이라는 다자 틀을 선택한 이유는 중국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 때문이었고, 9·11 사태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아프가 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에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6자회담에 임하는 북미 간 입장과 태도는 매우 대조적이었는데, 북한은 제1차 회담 시작부터 자신의 요구사항을 밝히고 미 국에 전달했다. 즉 북미 간 일괄타결 도식을 제안하고, 동시 행동원칙에 따라 단계별 이행 을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은 뚜렷한 입장 없이 CVID 원칙에 따라 북한의 선 핵포기를 주장했다(김근식 2011, 162-163). 다시 말하면 북한은 동시 행동을 주장했고, 미국은 북한 의 先 핵 포기 後 북한의 요구사항을 논의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북한은 2004년 10월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북한인권법에 대해 격하게 반응을 하였다. 북한은 인 권법에 대해 ‘체제 전복을 재정적으로 보장하면서 제3국에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김근식 2011, 157). 북한은 회담 개최를 합의해놓고 2004년 9월로 예정된 제4차 회담을 무산시켰다.

북한이 불참을 선언한 이유는 신뢰라는 ‘회담의 기초가 파괴’되었으므로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었 다. 북한은 무기한 6자회담 참가 중단을 선언하였고, 2005년 2월에는 핵보유국 선언을 하기에 이른 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05년 4월 라이스 국무장관과 힐 차관보는 북한과 직접 협의를 검토하고, 미국이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식하고 무력행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9·19공동성명은 6자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목표와 원칙에 합의한 공동성명을 채택했 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을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김연철 2018, 229-230).

9·19공동성명의 특징은 포괄적 접근으로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나머지 5개 국가는 북한 의 핵포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상응 조처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선 핵폐기론을 주장 하였지만, 북한은 불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먼저 핵폐기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 했다. 북한은 제네바합의 사문화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 차원에서 선 경수로 제공을 들고 나왔고, 미국은 불법 국가 길들이기 차원에서 위폐유통 의혹을 제기하고 금융제재를 가 했다(고유환 2005, 119). 9·19공동성명은 시작부터 BDA 문제로 인해 이행하는데 어려움 이 조성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2005년 9월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시키는 등 금융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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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처를 했다. 북한은 이를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이라고 반발하면서 6자회담 합의는 다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미국은 북한의 100달러 지폐 ‘슈퍼노트’ 불법제조를 지적했고 북한은 금융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한 핵문제에 대한 협의에 응하지 않는다고 견해를 밝혔다. 제5차 6자회담 2단계 회 담을 이른 시일 내 개최 합의에도 불구하고 회담 개최는 지연되었는데, 사유는 BDA 문제로 인한 북미 간 견해 차이였다. 2006년 5월 22일 북한 한성렬 차석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선 BDA 해결, 후 6자회담 복귀”를 주장했다. 같은 날 글리에저 미 재무부 부차관보는 “BDA 문제는 국익 보호 차원의 수세적 조치이고 6자회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양무진 2007, 103). 결국, 북한은 2006년 10월 핵실험을 하게 되었고 미국은 6자회담과 별도로 BDA 문제를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표 명했다. 이어서 북한은 11월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을 발표했다. 북한 핵실험 후 미 중간선거에서 집 권 공화당이 패배하여 다수당의 지위를 민주당에 빼앗기면서 공화당 내 강경파들의 입장은 좁아지 고, 부시 행정부는 대북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조성렬 2008, 9). BDA 사태는 북핵 문제의 구도를 6자회담에서 북미 양자구도로 바꾸었다. 결과적으로 BDA 사태는 북핵이 발전되는 것을 방 치하게 하였다.

지금까지 북미 간의 상호 대응을 살펴보았다. 다음은 이러한 상호 대응에서 김정일의 대미인식이 어떻게 핵외교의 결과로 나타나는지를 고찰하겠다. 첫째, 제2차 핵위기가 시 작된 HEU 사건에서 김정일의 대미인식은 이념 위주로 체제 위신 제고가 필요하여 HEU 프로그램을 시인하였다. 둘째, 북한의 6자회담 수용은 초기에는 미국과의 양자 회담을 주 장하였지만, 실리 위주로 체제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다자적 협상 틀을 수용하였다. 셋째, 미국에 의한 ‘북한인권법 제정’과 부시 2기 취임연설 시 ‘세계의 폭정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과 관련하여 북한은 체제 전복 위기에서 체제안보 유지가 필요하였 으며, 그 결과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을 선언하고 이어서 핵보유국임을 선언하였다.

넷째, 제4차 6자회담에서 발표된 9·19공동성명에서 보인 북한의 대미인식은 실리 위주로 대미 접근하 경제지원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9.19 공동성명은 선과 악의 이분법적 게임에 서 정책 합리성의 공유를 통한 게임으로의 방향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미국과 북한 은 비확산이라는 핵심적 이해를 선과 악의 대결적 관점이 아니라 교차승인과 경제적 보 상이라고 하는 주고받기식의 게임으로 풀기로 합의하였다(장달중 2009, 22). 다섯째, BDA 사태 관련하여 북한은 이념과 실리의 병행 대미인식 하에 미국의 전방위 대북압박 에 맞서 정권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BDA 사건과 6자회담 은 별개로 가야 한다고 하였고, 북한은 BDA 자금해제와 북한에 대한 불법행위 혐의가 벗겨져야 6자회담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지막으로 북미 간의 2.13합의는 북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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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 위주의 대미인식으로 합의를 하여 초기 단계에서 중유 5만 톤 상당 에너지 지원 등 의 약속을 받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지도자의 대미인식과 핵외교 결과는 <표 1>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표 1> 지도자의 대미인식과 핵외교 발현양상 (최영준 2007, 80 참조 재정리)

주요 사건 대미인식 핵 협상 목표 핵외교 결과

HEU 프로그램 이념 위주6) 체제 위신 제고 필요 HEU 프로그램 시인 6자회담 시작 실리 위주 체제안보 유지 다자적 협상 틀 수용 북한인권법 제정,

부시 2기 취임연설 이념 위주 체제 전복 위기에서 체제안보 유지 필요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선언, 핵보유국 선언 9·19공동성명 실리 위주 대미 접근하 경제지원

획득 9·19공동성명 합의

BDA 사태 이념·실리 병행

미 전방위 대북압박에 맞서 정권안보 유지

금융제재 해제 미시행 시 핵문제 협의 불가 주장, 핵실험 실시

2.13합의 실리 위주 미 국내정세 활용한

실리 획득 2·13합의 도출

결론적으로 김정일의 대미인식은 제2차 핵외교 기간 중 주요 사건에 따라 이념 위주, 실리 위주, 혹은 병행으로 인식을 하고 협상 목표를 설정하여 핵외교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북한은 핵을 통해 미국을 효과적으로 협박하고 이를 적절하게 활용했다(미치시타 나루시게 2014, 31-34).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직후 미국은 대북정책을 변경했다. 아울러 2008년 6월에는 북한에 대한 적성국교역법 적용을 해제하고, 10월에는 테러지원국가 지 정도 해제했다. 그리하여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과 체제 유지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2. 대미인식이 김정은 정권하 핵 관련 외교정책 결정과정에 미치는 영향

지금까지 2차 북핵위기 간 나타난 김정일의 대미인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대미인식이

6) 2003년 신년사설에서는 HEU 프로그램 사태에 대해 주도적으로 해결했다고 강조하며 실리 위주의 대 미인식을 나타냈으나, 실제 핵협상 과정에서는 체제 위신 제고를 위해 이념 위주로 나타났다. 이와 같 은 차이는 북한의 대외선전과 대내 주민을 위한 목적이 다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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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외교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북한의 외교정책 관련 기구와 결정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북한 내각의 외무성은 북한과 수교 관계에 있는 국가와 또한, 미국과 일본 등 비수교 국가들에 대해서도 외교정책을 작성하여 김정은에게 직접 보고하는 과정을 통하여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외무성은 김정은의 방침에 따라 북 한 내 모든 기관과 부문들의 대외활동을 통일적으로 장악, 통제 및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의 직접적인 결재에 따라 활동하는 로동당 국제부를 비롯한 특수기관들의 대외활 동은 외무성이 장악·통제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한철민 2020, 116-117). 국가기구인 외 무성은 기본적으로 당 국제부의 당적·정책적 지도를 받는다. 국제부의 업무는 대외정책 을 지도 및 집행 관리하고, 타국 공산당·사회당 등 반미·반제 기치 정당들과 교류 및 협력 한다(박영자 외 2018, 222-223).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통상 외교업무가 당 기구와 국가기구로 이원화되어 있으며 당 우 위의 전통이 확립되어 있다. 그런데도 북한은 지난 수십여 년간 국가기구 소속인 외무성 의 위상과 자율성이 꾸준히 증대되어왔다. 그 배경에는 공산권 붕괴 이래 북한외교의 중 심축이 이데올로기에서 경제와 핵문제로 전환된 데 기인한다. 공산권이 몰락하면서 전통 적인 ‘당 대 당’ 외교의 비중은 현격히 낮아졌지만, 경제와 핵문제가 핵심 이슈로 주목받 음으로써 서방국가와의 관계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임재형 2002, 42-43). 또한, 외무성 은 새로운 체계에 맞게 특수기관들과 내각 예하 기관과의 대외업무를 신속 정확하게 처 리하기 위해 외무성 내에 핵 상무조, 인권 상무조 등과 같은 각종 비상기구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해당 기관과 협의와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김동수 2004, 30-32). 다음은 지금까 지 분석한 북한의 대미인식이 향후 북한의 핵 관련 외교정책 결정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대대적, 대외적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겠다.

가. 핵 관련 외교정책 결정과정에 대내적으로 미치는 영향

분석한 대미인식이 김정은 정권하 핵 관련 외교정책 결정과정에 대내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이 도출할 수 있다. 김정일 시대는 2차 북핵위기 진행 과정을 중심으로, 또한, 김정은 시기는 두 차례에 걸친 북미정상회담 진행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① 핵 관련 행위조직 ② 핵 문제를 보는 시각 ③ 선군정치의 영향력 등 제 요소를 비교함으로써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수 있다.

첫째, 김정일 시대 핵 관련 중요 행위조직은 외무성, 군부, 원자력총국이었고(조건식 2004, 88), 김정은 시대는 외무성, 군부, 원자력공업성7)이다. 둘째, 중요 행위조직이 핵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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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를 보는 시각은 김정일 시대에 외무성은 북미 관계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여 외교 관계 정상화를 이루는 데 중점을 두었고, 반면 군부는 북한체제 유지를 위한 억제력 차원에서 핵 보유를 원하였다. 김정은 시대에 외무성은 김정일 시대와 다름없이 미국과 대외관계 정상화를 추구하였고, 군부는 김정일 시대와 비교하면 정치면에서 위상이 약화되었고, 경 제부문에서도 영향력이 저하되었다(이상숙 2019, 183). 아울러 핵에 대한 권한도 김정일 시대보다는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군에 대한 선군정치의 영향력에 따라 비교를 하면 김정일 시대에는 선군정치의 영향으로 군부의 비중이 높아 정책 결정과정에서 영향 력이 크게 발휘되었다. 국방위원회의 부상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당이 군에 대한 통제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반면에 김정은 시대에는 당의 군에 대한 통제 강화로 군의 비중이 약화되었다.8) 핵무력 건설은 ‘전략군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군의 정치력 강화보다 는 전문성 강화에 초점을 맞출 필요성이 있었다(이상숙 2019, 181-184). 그리하여 핵 관련 외교정책 결정과정에서 군부의 영향력은 축소되었다.

그럼 이제 이와 같은 핵 관련 행위조직 및 시각, 선군정치의 영향력 등 요소가 최고지 도자 김정은·외무성·군부의 입장 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첫째, 1차 북미정 상회담 전후로 나타난 대미인식의 영향을 살펴보면, 북한은 동창리와 풍계리 실험장을 폐기하고,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등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일정 부분 이행을 해나가고 있었으나, 미국이 종전선언 교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경제 제재 또한 완화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박형준 2019, 129). 동창리 및 풍계리 실험장 폐기는 김정은의 실리 위주의 인식으로 유연한 대외정책을 단행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념 위주의 인식을 한 군부는 이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시했을 것이다. 미국은 종전선언 교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북한에 대해 핵신고 리스트 제출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선 비핵화 요구’로 이해하여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체제 안전과 유지 를 최우선으로 하는 북한으로서는, 즉 외무성과 군부 모두 미국의 요구에 이념 위주의 인식으로 반대를 하였을 것이다.

둘째, 2차 북미정상회담 기간 중 나타난 대미인식의 영향을 살펴보면, 2차 정상회담 기 간 중 비핵화 협상의 쟁점은 ① 폐기 대상과 범위 ② 이행방법 ③ 검증 방식 등이었다. 미

7) 원자력공업성은 2013년 4월 신설되었으며, 영변 핵시설 등 핵연구·개발 시설 관리, 재처리 및 핵물질 생산, 대변인 성명 등 핵 관련 대외대응 임무를 수행한다(박영자 외 2018, 104).

8) 김정은 시기가 시작된 2012년부터 2016년 제7차 당대회 이전까지 선군정치는 ‘지속과 변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었고, 2016년 7차 당대회 이후부터 2018년 4월까지 선군정치의 ‘쇠퇴’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이상숙 2019,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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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은 폐기 대상과 관련하여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 관련 자료 및 프로그램, 개발 인력 등 국외반출을 요구하였고, 북한은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에 국한하여 자체 폐기한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미국은 폐기 범위를 핵뿐만 아니라 생물·화학무기 등을 포함하였다. 북 한의 입장은 위에서 언급한 폐기 대상과 동일하다. 이행방법에서 미국은 先 비핵화 後 보상식 일괄타결 및 이행을 요구하고, 북한은 비핵화 및 보상은 단계별·동시적 교환을 주 장하였다. 검증 방식으로 미국은 임의·불시사찰을 주장하고, 북한은 신고 장소 및 대상을 제한하여 사찰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의 입장을 대미인식 차원에서 살펴보면, 첫째, 폐기대상 및 범위를 제한적으로 하자는 북한의 주장은 실리 위주의 인식으로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받겠다 는 의도로 풀이된다. 외무성은 실리 위주 입장을 취하고, 군부의 입장에서는 완전한 비핵 화는 체제 위협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제한적 비핵화’를 추구하는 것도 주저하면서 이념 위주의 대미인식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장기간의 제재로 인한 경제적 침체와 2018년 4월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는 ‘새로운 전략노선’을 선포하면 서 경제면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다급하였을 것이다. 둘째, 이행방법과 관련하여 북한의 인식은 제한적인 비핵화로 조속한 시일 내 경제 제재를 해제 받아 경제적 실리를 취하겠 다는 외무성의 실리 위주의 대미인식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셋째, ‘검증 방식’과 관련하여 신고 장소 및 대상을 제한한 사찰은 군부의 이념 위주의 인식이 반영되었다. 군부의 입장 에서는 부분적인 비핵화를 하더라도 대남 군사력 우위를 달성해야 하고, 비대칭 수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정일 시대의 대미인식이 김정은 정권하 핵협상에 미친 영향은 선군정치 의 영향력 등으로 외무성과 군부의 인식이 다소 다르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선 군정치의 쇠퇴로 인해 즉, 군부의 입장이 약화되어 김정은은 비핵화 외교를 유연하게 추 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식의 결과로 동창리와 풍계리 실험장 등을 폐기할 수 있었고, 핵폐기 대상과 범위, 이행방법 등과 관련하여 미국과 협상에 임했다는 사실에서도 나타 난다.

나. 핵 관련 외교정책 결정과정에 대외적으로 미치는 영향

다음은 김정일 시대의 대미인식이 김정은 정권하 핵 관련 외교정책 결정과정에 대외적 으로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념 위주의 대미인식은 2013년 ‘경제건설과 핵무 력 건설 병진노선’에서 나타난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실리 위주의 대미인식은 1·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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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 간 나타난 ‘비핵화 인식과 방식’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첫째, 북한의 대미관이 이념 위주인 경우는 2차 북핵위기 간 ‘인권법 제정’과 부시 대통 령의 ‘악의 축 발언’ 등이 있을 때 나타났고, 또한 HEU 프로그램을 시인할 때 체제 위신 제고가 필요하여 등장하였다. 김정은은 2013년 3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 로선’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병 진노선은 “국방비를 늘이지 않고도 적은 비용으로 나라의 방위력을 더욱 강화하면서 경 제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에 큰 힘을 돌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병진노선은 경제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한 투자 여력을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약화하 는 방향으로 작용했다(채규철 2015, 290). 북한 경제는 외부로부터 대규모의 지원이 있어 야 한다. 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는 북한 핵무기 ‘불용’ 입장을 고수하면서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대북제재를 받으면서 핵개발을 하겠다는 것은 경제건설보다 핵무력 건설을 우선시하 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략은 외부위협에 대해 강한 적개심이 고정관념화되어있고, 제재를 유발했으며, 그 결과 적대세력의 위협에 대해 주민들에게 항상 적개심을 심어주 는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미국과 핵협상을 통해 핵포기를 수용한 이란9)이나 미국과 국 교 정상화에 합의하고 경제 재건을 모색하고 있는 쿠바의 사례는 적대세력이 단지 ‘선동 적 언사’임을 말해준다(채규철 2015, 290). 병진노선은 체제안보 우선주의를 정당화시키 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지도부는 경제적 어려움을 유발한 미국을 포함한 제재 세 력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들의 실정을 숨기고 있다. 즉, 북한 지도부의 이념 위주 대미 인식은 외부의 위협을 의도적으로 과장 및 왜곡하여 주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주민을 통치하고 있다. 아울러 외부 세계의 정보가 유입됨으로써 체제의 취약성이 나타날 우려 로 인해 개혁개방을 꺼리고 있다.

저비스는 “두 국가 사이의 관계가 협력적일 때는 호의적인 인식을, 이와는 대조적으로 두 국가 사이의 관계가 적대적일 때는 부정적인 인식을 보인다”고 하였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적대적이고 상호 신뢰를 하지 않는 점을 고려할 때, 이념 위주의 대미인식을 하는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은 핵 협상에서 체제개방을 주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 이익은 챙기면서 비핵화 약속을 불이행하는 행태를 반복해서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결 론적으로 이런 인식과 행동은 미국 등 서방국가의 제재를 유발하고 그 결과 북한 경제의 9)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5월 이란과의 핵합의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등 이란의 다른

위협을 다루지 않았다며 파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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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을 초래한다. 아울러 체제의 개혁개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북한의 대미관이 실리 위주인 경우는 2차 북핵위기 간 신년사에서 핵문제를 언급 할 때 자신감 있게 미국을 대하였다. 또한, 6자회담 기간, 9·19공동성명, 2·13합의 기간 중에도 나타났다.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회담 목표는 ‘체제 안전 보장’이었고, 하노이 2차 회담에서 비핵화 회담 목표는 ‘제재 해제’였다. 미국으로부터 제 재 해제를 승인받아 경제건설에 총력을 다하는 것이 김정은의 목표였다. 1·2차 북미정상 회담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비핵화 인식의 차 이와 비핵화 방식으로 말미암아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비핵화 인식에 대해 살펴보면, 김정은이 생각하는 비핵화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로 싱 가포르 선언에 담긴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이다. 이는 북한이 한미동맹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미국의 핵우산까지 철수하는 것을 의미한다(주인석 2019, 96). 북한은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으로 전략자산 전개까지도 포함한다. 북한은 핵무기의 완전 한 포기가 아니라 영변 핵시설 폐기와 같은 현재 핵 개발의 포기 정도로 국제 사회의 제 재 해제를 도출할 계획이었고, 북한의 전략은 제재를 피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주 인석 2019, 97). 향후 비핵화 과정이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핵화에 대한 인식부터 일 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핵화에 대한 방식으로 김정은은 ‘행동 대 행동의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는 반면, 트럼프는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일괄협상을 주장하였다. 북한의 동시적 단계적 접근에 따르면, 북한은 비핵화 과정을 여러 단계로 나누고, 단계마다 미국으로부터 종전선언, 평 화협정, 국교 수립, 경제협력의 대가를 받겠다는 의도가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CVID, FFVD와는 분명히 거리가 먼 것이다(김학성 2018, 46). 이러한 김정은의 핵협상 태도는 과거 1차 북핵위기 이후 북한이 자주 사용한 방법으로 핵 폐기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 았고, 지속해서 핵개발을 진행하였으며 핵 포기를 대가로 보상을 요구하며 협상 지연전 략을 한 것과 유사하다. 김정은의 핵협상 전략은 분명히 핵보유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국제적인 도발이나 미래핵 개발을 중단하는 선에서 비핵화하겠다는 점이 명백하다(김근 식 2013, 72-77).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에 대한 방식을 지속적으로 절충 및 합의하여 진행 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실리 위주의 대미인식이 체제 유지를 위한 일시적인 전술상의 변화 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즉 미국을 기만하고 진정으로 비핵화의 의지가 없다면 신뢰 부족 으로 말미암아 미국과의 핵협상에서 평화협정과 국교 수립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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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의 지속으로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최빈국으로 전락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덜레스 국무장관의 소련에 대한 ‘적 이미지’는 소련이 보낸 화해적인 메시지도 공격적·적 대적·악의적 독재체제라는 이미지에 맞게 변형시켜 해석하였다. 즉 소련이 미국에 대해 협력적으로 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덜레스의 대소 인식이 변하지 않았다. 이처럼 김정 은의 대미인식이 국제환경과 더불어 미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적극적’으로 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전의 인식을 답습한다면 대미 핵외교에서 성공하기 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김정일 시대의 대미인식이 김정은 정권하 핵 관련 외교정책 결정과정이 대내 적 혹은 대외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북한의 이념 위주 혹은 실리 위주의 대미 인식은 미국과의 비핵화와 관련한 외교정책 결정과정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북한의 외교정책 결정과정에 유사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 외교정책의 목표가 체제의 생 존, 정통성 확보와 안보 및 경제발전의 추구이며, 그 이면의 최종적인 목표는 조선혁명의 승리를 위한 국제혁명 역량과의 연대성 강화에 두고 있다(김계동 2018, 264). 북한의 대외 관계에 있어 적응력의 부족 즉, 유연한 대외정책의 부재로 말미암아 정치 및 경제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이는 곧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한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사고가 부족하였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대외관은 무척 중요하다. 심리·

인지적 접근법에서 살펴보았듯이 상대방 국가에 대한 잘못된 인식, 적 이미지, 적대적일 때 부정적인 이미지 등을 갖고 있을 때는 외교정책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한 지도자의 바람직한 대외인식은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체제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Ⅴ. 결 론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의혹으로 시작된 제2차 북핵위기는 미국 이 제네바 합의를 폐기하고,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을 가속했다. 이후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양자 협상을 6자회담으로 전환하였다. 미국은 제네바 합의 파기, 중유 제공 중단을 하였고, 북한은 핵시설 운전 재개 선언 및 NPT 탈퇴 선언으로 상 호 대응을 하였다. 이후 6자회담 시작, 북한의 핵보유국 선언, BDA 사태, 북한 1차 핵실험 등 일련의 주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런 일련의 사태에서 북한 최고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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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북한체제 특성상 최고지도자의 권한이 매우 높다는 점과 핵 결정이 가진 높은 민감성과 중대성이 있기 때문이다.

외교정책 결정과정의 심리·인지적 접근법은 상이한 분석수준 중 주로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들 외교정책 결정 과정의 참여자가 외교정책 집행자이다. 이러한 연 구는 정책결정자의 주변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이들이 선택할 외교정책 간의 관계를 분석 한다. 심리·인지적 접근법은 인간 개별행위자들의 제한된 합리성을 드러내고 정책결정자 들의 심리적 요인들의 인과효과를 강조한다.

북한 대미불신의 기원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이다. 해방 직후 소련에 의해 북한 의 지도자로 옹립된 김일성은 자신의 항일무장투쟁 경력을 타 정치 파벌과 차별화되 는 정통성의 근거로 내세우며 미국을 일본 제국주의를 대체한 주적으로 지목하고 반 제 반미투쟁의 가치를 높인다. 1947년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남북분단이 가까워 지자 반미주의 쪽으로 확실한 노선을 정하게 된다. 즉 1948년 적대적 대미인식의 등 장 이후 적대적 대미관을 공식화했다. 이후 북한은 한국전쟁, 1960~70년대 반미 무력 투쟁을 통해 대미 적대감을 공고화하였다. 탈냉전기 이후에는 미국의 군사공격 대상 으로 간주하면서 오히려 체제의 안전보장에 대한 부담감이 가중되었고, 경제위기 상 황까지 더해지면서 피포위 의식이 심해졌고, 북한은 대미 적대 정책을 발전시켜 나갔 다. 대미인식의 특징은 부정적이고 방어적이며 동시에 관계 정상화를 이룰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북한 대내 통치 기제의 주요수단으로 삼고 있다.

로동신문의 신년 공동사설과 김정일 선집에서 살펴본 김정일의 대미인식은 먼저, 핵문제를 언급한 때는 대미 자신감을 바탕으로 실리 위주로 미국을 대하고 있다. 둘 째, 국제적 환경여건에 따라 즉 국익을 위해 대미인식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 째, 사상 문화적인 압박과 북한식의 사상과 제도를 전면부인하고 위협하는 행위 등 사상·문화적 침투, 심리전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념 위주의 인식을 하고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HEU 프로그램, 6자회담 등 주요 사건별로 지도자의 대미인식을 바탕으로 환경조건인 협상 목표, 즉 국가이익을 설정 후 핵외교를 펼쳤다. 제2차 핵외교 기간 중 북한은 6자회담 협상 틀 수용, 9·19공동성명 합의, 2·13합의 등 약속이행을 하였으 나, 한편으로는 벼랑 끝 전술로 NPT 탈퇴, 핵보유국 선언, 1차 핵실험 등을 실시하였 다. 김정일의 대미인식은 제2차 핵외교 기간 중 주요 사건에 따라 이념 위주나 실리 위주, 혹은 병행으로 인식을 하고 협상 목표를 설정하여 핵외교를 실시하였다. 그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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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적성국교역법 적용을 종료했고, 테러지원국 지정도 해제되어 미국과 관계가 개선되었다.

2차 북핵위기에서 나타난 대미인식이 김정은 정권하 대내적으로 핵 관련 외교정책 결정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다. 핵 관련 행위조직, 핵문제를 보는 시각, 선군 정치의 영향력 등을 살펴본 결과, 두 차례에 걸친 북미정상회담에서 나타난 영향은 김정일 시대보다 유연하게 대외정책을 추진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외무성은 실리 위주의 인식을, 군부는 이념 위주의 인식을 했다. 하지만 군부는 선군정치의 후퇴로 말미암아 김정일 시대보다 그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그 결과 핵 실험장 등을 폐기할 수 있었고, 핵폐기 대상과 범위, 이행방법, 검증 방식 등에 대해 비핵화 미국과 협상 을 하게 되었다.

대외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먼저, 이념 위주의 대미인식은 UN과 미국의 제재를 유발하고, 그 결과 북한 경제의 침체를 초래하고, 나아가 체제의 개혁개방을 막는 장애물로 작동되었다. 다음으로 실리 위주의 대미인식이 체제 유지를 위한 일시 적인 전술상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평화협정과 국 교 수립을 지연시키고 제재의 지속을 유발하여 경제발전을 저해하게 되었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승리하면서 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집권으로 국내에선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오바 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로 돌아갈 것이란 우려와 클린턴 행정부 시기 핵, 평화체제, 북 미수교 등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모색하는 ‘페리 프로세스’의 부활을 기대하는 모 습이 공존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바이든 부통령 안보보좌관과 국무부 부장관 을 지냈고, 차기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블링큰이 2018년 6월에 대북 핵협상에서 최선의 모델은 ‘이란’이라는 주장을 하였다(Bliken 2018). 블링큰은 모든 핵프 로그램의 공개, 국제사찰단 감시 하의 우라늄농축과 재처리 인프라 동결, 핵탄두·미사일 의 일부 폐기와 경제 제재의 제한적 해제 맞교환 등을 미북 간에 고려해 볼 만한 잠정적 합의 요소로 꼽았다. 또한, 바이든은 2020년 7월 미국 외교협회(CFR)에 보낸 입장문에서 이란 핵 협정을 대북 협상의 모범사례로 제시하였다(정욱식 2020). 물론 이란 핵 협정을 북핵문제와 직접 연결해 해석하기에는 다른 점이 많지만, 한미 당국은 이란 핵협정이 주 는 교훈을 검토하고 북한 지도자의 대미인식이 핵외교에 미치는 영향을 유념하여 살펴보 아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북한 지도자의 대미인식을 심리·인지적 접근법을 활용하여 신년 공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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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과 김정일 선집의 면밀한 검토를 토대로 제2차 핵외교의 발현양상을 살펴보았고, 이를 토대로 김정은 정권하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대미인식이 핵협상에 미치는 영향 을 고찰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체제수준, 국가·사회수준, 정책결정집단수준의 연구도 병행되어야 한 단계 높은 연구가 될 것이 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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