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이 숫자는 확실히 그의 일생에 있어서 기념하여도 좋을 만한 (그 이상의) 것인 것 같 았다. [91쪽]

3) “여보십시오!”

그는 수작하기 곤란한 이 자리에서 이렇듯 입을 열어보았으나 별로 그 사람에게 대 하여 할 말은 없었다. 그는 몹시 머뭇머뭇하였다.

“왜 그리오?”

“저 오늘이 며칠입니까?”

“오늘? 12월 12일?”

“네!”

기적 일성과 아울러 부근의 시그널은 내려졌다. 동시에 남행열차의 기다란 장사(長蛇) 가 그들의 섰는 곳으로 향하여 달려왔다. [150쪽]

3‘) “오늘이 며칠입니까?”

이 말을 그는 그 같은 사람에게 우연히 두 번이나 물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12월 12일!”

이 대답을 그는 같은 사람에게서 두 번이나 들었는지도 모른다. [152쪽]

주인공 ‘그’가 아내와 아이를 잃고 허무주의에 빠져 일본으로 떠난 날짜가 12월 12일이었고, 막대한 유산을 넘겨받아 고향으로 돌아온 날짜도 12월 12일이었으며, 업의 죽음으로 삶이 돌 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하는 날짜도 12월 12일이다. 이 우연의 반 복은 이것이 ‘그’가 처해 있는 운명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설정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언뜻 혼란스럽게 구성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의 구성 원리는 매우 철저한 일관성을 갖는 다. 그것은 개개인은 운명이라는 서사의 주인공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물음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의 ‘그’는 운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많은 연구들이 이 소설에 깔려 있는 허무주의를 지적했으며 확실히 그렇게 보인다. 그러 나 이 소설에는 흥미로운 괴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나’(=서술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이 소설의 집필 취지와 실제로 쓰인 소설에서의 ‘그’(=주인공)의 최후가 얼핏 서로 상충된다는 점이다. “이 하잘것없는 짧은 한 편은 이 어그러진 인간 법칙을 ‘그’라는 인격에 붙여서 재차 방랑 생활에 흐르려는 나의 참담을 극한 과거의 공개장으로 하려는 것이다.”(9쪽) 프롤로그를 닫는 서술자의 이 문장은 이 소설의 목적이 현재 자신의 삶을 어떤 식으로건 끝까지 잘 살아 내기 위한 각서를 쓰는 데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소설은 결국 ‘그’의 자살 로 끝을 맺고 만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생각을 서술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인제 죽을 때가 돌아왔나 보다! 아니 참으로 살아 야 할 날이 돌아왔나 보다!” 이 문장에도 모순이 있다. ‘죽음’이야말로 ‘참으로 사는 것’이라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모순으로부터, 앞서 지적한 소설 전체의 구성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어야 한다.

말하자면 ‘그’의 죽음을 단순히 자살이라고 불러서는 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가 마지막에 자살했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그 이전에는 자살하지 않는 데 성공 했다는 뜻이다. 그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고, 운명이라는 서사가 완전히 전개될 때까지 싸운 뒤에, 운명이라는 서사의 귀결이 자살임을 확인하고 나서 그 귀결에 따른 것이다. 그는 마지 막에 자살한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이 될 때까지는 죽지 않은 사람이다. ‘그’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그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담겨 있는 기묘한 자족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소설의 프롤로그에서 이 소설을 통해 삶에 대한 의지를 선언하겠다고 서술자가 말했을 때 그 의 취지는 자살만이 남게 될 그 순간까지는 삶을 끝까지 살아내겠다는 결의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연재 4회분의 서두에 붙인 ‘작가의 말’에 쓴 이런 수수께끼 같은 말도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나에게, 나의 일생에 다시없는 행운이 돌아올 수만 있다 하면 내가 자살할 수 있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 순간까지는 나는 죽지 못하는 실망과 살지 못하는 복수(復讐)―이 속에 서 호흡을 계속할 것이다.” 자살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러나 그 행운은

운명과의 대결에서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삶을 끝까지 살아낸 자에게만 오는 행운이다. 이상 의 첫 소설이 말하고자 한 것은 운명에 대한 패배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운명과의 대결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에게는 최후의 자살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선 택지이며 그것을 택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메시지다. 그리고 이상은 1936년 무렵으 로 가면 운명과의 대결을 좀 다른 방식으로 수행해나가려고 한다. 그것에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운명이라는 신의 서사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미리 써 나갈 수는 없을까 하는 물 음이다.

이상이 작품 활동을 한7년여의 기간 중에서1936년은 절정의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이 해 에 이상은 지주회시 와 날개 라는 걸작 단편을 생산해냈고, ‘오감도’ 연작 이후 2년 만에 두 편의 연작시‘역단’ 연작(가톨닉청년, 1936년 2월호)과‘위독’ 연작(조선일보, 1936년10월4

일~9일)을 발표했다. 초기에 일어로 발표된 계열시들에서 이상의 ‘주체’는 당대 일본 모더니즘

의 기법들, 특히 수학, 기하학, 물리학의 전문용어들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방식으로 몇 겹의 벽 을 쌓고 그 뒤에 숨어 있었다. 2년 뒤 시작된 ‘오감도’ 연작에서 그 주체는 사회적․정치적․역 사적 맥락들을 은밀하게 거느리면서 보다 현실적인 문맥 속에 제 모습을 기입하고, 분신 모티 프를 활용하면서 주체의 증상을 재현하는 데 몰두한다. 그러나 이 두 단계에서 주체는 온전히 1인칭의 그것이기보다는 3인칭 내레이터에 가까워 보인다.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난 뒤 발표 된 ‘역단’과 ‘위독’ 연작시들은 1인칭 고백의 문장들을 동원하면서 보다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삶의 현황을 이야기하고 주체의 현실을 드러낸다. 이런 변화는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재현하고 싶다는 욕망의 반영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역단’과 ‘위독’ 사이에 이상이 본격적으로 소설 창 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는 정황도 그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요컨대 ‘역단’ 연작은 이상이 소설 의 시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다리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역단’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 이고 어째서 이 단어가 제목으로 사용된 것인가?

여기서 ‘역단’이라는 말은 이상 자신의 한자조어일 가능성이 많다. ‘역(易)’이란 흔히 주역 (周易)을 일컫는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역’은 주역의 괘를 이용하여 인간의 길흉화복 을 따지는 점복의 의미 또는 운명을 뜻한다. ‘단(斷)’은 ‘끊다’, ‘결단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 다. 그러므로 ‘역단’은운명에 대한 거역이라는 뜻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142) (강조는 인 용자)

142) 권영민, 전집1, 106쪽.

이 시의 제목인 ‘역단’도 그가 만든 조어이다. 여기서 ‘역(易)’이란 글자는 운명을 점쳐 본다 는 의미에서 썼을 것이다. (…) ‘역’에는 ‘거꾸로’란 뜻과 ‘바뀐다’는 뜻도 있다. 그가 생활로 복귀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이 두 의미는 모두 중요하다. 그가 지금까지 생활 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제시해 온 ‘거꾸로 가기’가 여기서부터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단’은

그러한‘거꾸로’를 단절하는 것이며,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는 결단을 뜻한다.143) (강조는 인

용자)

이 두 주석은 모두 ‘역단’이 이상의 조어라고 전제하고 있지만 ‘역단’은 이상의 조어가 아니 라 ‘주역에 의거한 길흉 판단’을 뜻하는 말로 흔히 ‘역단하다’라는 동사형으로 사용되는 역학

(易學)의 전문용어다.144) (그러나 ‘역단’이라는 말이 이상의 조어가 아니라고 해서, 그것을 이상

의 조어로 간주하고 그 내포적 의미를 추론해낸 위 연구들의 통찰이 의미를 잃는 것은 전혀 아 니다. 뒤에서 보겠지만, ‘운명에 대한 거역’이나‘생활로 복귀하는 문제’는 이 연작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연작시 전체의 타이틀인‘역단’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이상은, 그것이 반드시 역학에 의한 판단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이 시기에 자신의 운명[易]에 대한 상념에 빠 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역단’이라는 것이 역경(易經)이라는 ‘책’에 의 한 판단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한 개인의 미래가 이미 책 속에 서술돼 있다는 사태를 뜻한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으로 이미 서술돼 있는 그 운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혹은 그 운명을 어 떻게 변경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을 낳을 수 있는데, 이 때의 ‘대응’과 ‘변경’이란 곧 서 술된 것을 다시 서술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이는 백지 위에다 연필로 한 사람의 운명을 흐릿하게 초를 잡아 놓았다.

— 역단 부분

이 연작 전체의 핵심적인 정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문장이 분명히 보여주듯, 이 연작시의 근본적인 상상력은 쓰인 것을 다시 쓰는 일과 관련돼 있다. 말하자면 이 시기 이상의 글쓰기의 본질은 ‘운명을 다시 쓰기 위한 저항으로서의 글쓰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역단’ 이라는 단어가 조어라고 간주하고 그 의미를 해석한 결과 이를 ‘운명에 대한 거역’(권영민)이나

‘생활로 복귀하는 문제’(신범순)로 풀이해낸 기왕의 연구들은 그 출발점과는 무관하게 결과적으 로 이 연작시의 핵심적인 의의 중 하나를 포착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상 문학을

143) 신범순, 앞의 책, 376쪽.

144) 김주현 편정본 이상문학전집1 : 시, 소명, 2009, 110쪽.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