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Ck* 。仁오

문서에서 월간 審評(심평) 제54호 (페이지 43-50)

스캔들과부동산정보

구목일씨는 아내에게 헬스클럽 회원권을 구해주기로 결심했다. 요 즘 들어 아내는 부쩍 짜증이 심해지고 있었다. 전 같으면 아무렇지 도 않을 일에도 신경질을 부렸다. 집안이 어지러져 있는데 넋을놓 고 앉아 있는 날도 있었다. 구목일씨를 더 못 견디게 한 것은 아내가 자기의 퇴근 시간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점이었다. 술을마시고늦 게 들어가면 시위라도 하듯 말을 하지 않아 버렸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여자가 왜 이러는가 싶어서 맞대 놓고 짜증을 부려 보았는데, 효과가 없었다. 아내는, 사는 게 왜 이 렇게 재미가 없지? 하고 중얼거 리고 다녔다.

일찍 귀가해서 같이 시장에 가고 산책가고 하는 날은 상태가 좀 나 았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게 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회사가늘 제 시간에 끝난다는 법도 없었고, 또 회식도 해야 하고 술도 마셔야 했 다. 직장 동료와 밥 먹는 자리에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동료는 일단 아마 갱년기인 모양이라고 진단했다. 그 시기가 되면 여자들이 우울 해지고 예민해진다고 한다.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며 억울해 하기도 하고 사나워지기도 한다고 한다는 것이 었다.

“너무 집에만 있으니까 답답해서 더 그럴 거야. 밖으로 좀 나가게 해 보지 그래? 예를들면 운동.”

생각해 보니까 결혼한 이후 아내는 집안 일만 하면서 살아온 것이 사실이었다.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20년을 보냈다. 그동 안 집안 행사로 함께 동행할 때 말고는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지낸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내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좋아하기도 했 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틀린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서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자기 생활이 문득 답답해졌을 수 있었다. 이게 뭔가, 남편과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면서 바보가‘ 되어 간 것이 내 인생이 아닌가…그런 자괴감이 아내를 우울하게 하고 짜 증나게 한 게 틀림없어 보였다. “헬스클럽에라도 다니게 해. 수영도 좋고. 우리 마누라는 요새 요가에 재미를 붙였더구만.”

그날 퇴근한 구목일씨는 동료가 제시한 목록들을 아내에게 내밀었 다. “헬스를 할래, 수영을 할래? 아니면 요가? 셋 중에 하나를 택해.”

아내는 영문을 몰라 했다. 구목일씨는 셋 중에서 뭐든 하나를 택하 라고 요구했다. 아내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굳이 해야

42 www.hira.or.kr

한다면, 수영은 망측하고 요가도 민망하게 몸을 비트는게 싫다며 헬 스를 택했다. 구목일씨는 다음 날 당장 헬스클럽 회원증을 아내에게 내밀었다. 구목일씨의 방법은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다. 처음에는 마 지못해 가는 것 같던 아내가 어느 날부턴가 운동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헬스장 가는 걸 기다리기도 하고 몸매가 잡혀 가는지 전 신 거울에 자신의 몸을 비춰 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는 같이 운동 하는 사람들과 점심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 를 타고 교외로 나가기도 했다. 구목일씨가 그 모든 것을 알게 된 것 은 아내가 일일이 다 이야기를 해 주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그가 회 사에서 돌아오면 그날 밖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다 늘어놓 았다. 그에 비례해서 아내의 짜증이나 신경질도 현저하게 줄어들었 다. 우울해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구목일씨는 만족스러웠다. 그는 상당히 느긋하게 퇴근 후의 술자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지는 게 감지되었다. 구목일씨 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을 주절주절 늘어놓던 아내의 화제가 달라져갔다. “저기 흐화장품 광고 모델하는 여배우 있잖아 요. 그 여자 이야기 들었어요? 그애가 글쎄, -1 회사 회장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라지 뭐예요? 요새 통 안나오지요? 그게 그 회장 애를 낳 으러 외국에 나가서 그런다지 뭐에요.” 그런 이야기가 아내의 입에 올랐다. 얼굴은 순수하게 생긴 영화 배우 누구가 정치인 누구의 애 인이고, 탤런트 누구가 강남 어느 룸살롱 출신이며, 누구누구는 어 디어디를 어느 병원에서 고쳤고, 누구는 데뷔 전에 누구랑 동거를 했으며, 누구는누가 키웠고, 지금은누가뒤를봐주고 있으며... 연 애인들에 얽힌 이런저런 스캔들이 끝도 없이 제공되었다. 그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어디서 듣고 오느냐고 나무라면 그녀는 세상 사 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자기만 모르고 지냈다고, 바보처럼 왜 그 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그게 무슨 대단히 억울해 할 일이라도 된다는 둣 한탄하는 소리를 했다. 구목일씨는 그런 아내가 불만스러 웠다. 그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듣고 오지 말았으면 싶었고, 자기에 게 옮기지 말았으면 싶었고, 되도록 그런 소문을 옮기고 다니는 사람 들과 어울리지 않았으면 싶었다. 구목일씨가 그런 의중을 내비치자 아내는 펄쩍 뛰었다. 이제 좀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 판에 그 무슨 훼방이냐는 식이었다. 구목일씨는 헬스클럽을 그만 두게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백화점 문화 센터 교양 강좌를 신청해 주었다.

‘미술의 이해와 감상 이라는 과목이었다. 미술을 이해하고 감상하

러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헬스를 하는 사람들과는 뭔가 차원이 다를 거라고 그는 기대했다.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한다니, 아무래도 고상 하지 않겠는가. 설마 연애인 스캔들 주워오는 일이야 하겠는가. 다 음달부터 아내는 헬스장에도 가고 미술의 이해와 감상도 들으러 다 녔다. 그러면 구목일씨가 기대했던 효과는 나타났을까. 유감스럽게 도 그렇지 않았다. 헬스장에서 연애인 스캔들을 수집해 전하는 일은 여전했다. 거기다가 문화센터에 갔다 온 날은 어디어디 아파트가 재 개발이 언제 될 것이고, 현재 시세가 얼마인데 프리미엄이 얼마가 더 붙을 것이라는 따위 정보들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어느 지역에 무슨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고 그러면 땅값이 얼마로 뛸 것이라든지, 어느 상가가 얼마에 분양화는데 경쟁률이 어느 정도 될 것이라든지, 부업으로 무슨 장사를 하면 안전하다든지 하는 정보들.

구목일씨에게는 하등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아내에게도 마찬가 지였다. 왜냐하면 그런 데 투자할 돈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필요 없는 정보들을 뭣 땜에 주워 나른단 말인가. 구목일씨는 은근히 불 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적금 통장과 보험을 해약해서라도 어디어디 아파트를 사두어야 한다는 둥 어느 지역 땅을 사 두면 몇 개월 안에 두 배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둥 수위 높은 발언을쏟아 놓았다. 그것들은 미술의 이해와 감상을 듣는 수강생들과 밥 먹고 차 마시며 얻어들은 쪼가리 정보들이었다. 도대체 미술의 이해는 언 제 하고 감상은 어떻게 하는지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구목일씨가 듣기에 그곳은 헬스클럽보다 더 위험해 보였다. 그는 귀 가 시간을 자유롭게 늦추고 술을 마시기 위해 아내에게 운동을 하게 하고 미술 공부를 하게 한 자신을 반성했다. 그는 차라리 자신의 자 유를 반납하고 불편한 쪽을 택하기로 마음먹 었다. 회사가 끝나자마 자 일찍 집에 들어와서 아내와 함께 시장에 가고 공원에 산책가고 비디오 빌려서 함께 볼 결심을 세웠다. 문제는, 헬스장과 문화 센터, 아니, 연인들의 스캔들과 부동산 정보를 주워 나르는 일에 재미 들 린 아내가 그의 뜻을 받아들여 집으로 들어와 줄 것인가 하는 점이 었다. 구목일씨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시도는 해 볼 작정 이었다. e國

글 이승우소설가)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 당선

〈생의 이면〉,〈에리직톤의 초상’〉,〈식물들의 사생활〉,〈가시나무 그늘〉,〈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미궁에 대한 추측〉대산문학상, 동서문학상 수상.

일러스트'박공우

2005 May 43

문화와 여행 광장®

나 의 팬 들

글 -윤 신 애 ( 물 리 치 료 사

• 충 남 아 산 시 둔 포 면 -서 울 의 원 }

“할머니, 어디가아프세요?’

“…… 뭐라구? 집이 어디냐구?’

“어.디.가.아.프.시냐.구.요!”

“으이구, 늙으면 죽어야지, 먹을게 없어 귀까지 먹어 속 썩이네.”

오늘도 나의 하루는 이렇게 백발이 성성한노인들께 소리를 지르며 시작된다. 새파랗게 어린 것이 어르 신들께 이렇게 소리나 지르니 지옥에 떨어질까 내심 걱정… 그래도 나의 팬(?)들은 천당에 갈 테니까 걱 정 말라며 달래시니, 믿어봐야겠다.

노인들께 이렇게 버릇없이 구는데도 천당행을 다짐받는 나는〈물리치료사〉이다. 손끝에 가시가 박혀 도, 눈에 티끌이 들어가도 옆집에 마실가듯 찾게 되는 그야말로 가장 가까운 동내의원이 내가 근무하는 병원이다. 그렇다보니 우리 병원 식구들은 환자들에게 떨어져 사는 손녀딸 대신이고, 며느리이기도 하 다. 혼자 사시는 노인들이 많은 탓에 우리병원은 노인들의 아픈 몸을 치료함은 기본이고, 지치고 외로 운 마음을 의지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노인환자들을 대하는 자세는 ‘친절’ 이라 하기엔 좀 촌스럽고 ‘살가움’ 이라 표현해 야 할 듯싶다. 치료실에서 치료를 받는 1시간여 동안 노인들은 조심스레 당신들의 속내를 비추신다.

“에구에구, 얼른 죽어야하는데 죽지도 않고 젊은 선생 고생만 시키네, 나도 그리 고울 때가 있었나 싶어

“돌아가시려면 아직 멀었어요! 할머니 돌아가시면 내가할일이 없잖아요. 난 뭐해먹고 살라구!”

한바탕웃음이 번진다.

당신들의 불편한 몸이 혹여 자식에게 짐이나 될까 하는 걱정과 무심하게 지나버린 젊은 날에 대한 안타 까움이 그대로 느껴져 마음이 짠해진다. 난 그런 노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함께 나누는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서 조잘거리는 수다쟁이 치료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일상이 항상 이 렇게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연세가 많이 들면 아이가 된다고 한다. 저쪽 병원은 어떻게 해주던데… 여 긴 왜 다르냐는 둥, 치료해봐야 소용 없다는 둥, 내가 먼저 왔는데 왜 저사람 먼저 해주냐는 둥, 작은 일 에 서운해 하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 속을 뒤집어놓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내심 테스트를 하는 것 인지, 기껏 치료해줬더니 저런 소리를 들어야하나 싶어 정말 기운이 쏙 빠진다. 하지만 짧은 기억력 탓 인지 단 한 분이라도 치료 후에 호전됐다 하시거나, 내 손을 꼭 잡으시며 수고했단 말 한마디면 금새 기 운이 난다. 철마다 수확하는 오이, 상추, 토마토 등을 누가 볼 새라 검은 봉지에 담아 슬그머니 놓고 가 시는 할머니, 손주가 사다준 사탕 몇 알, 껌 한 조각이라도 내놓고 가시는 할아버지, 속고쟁이 구석에서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한 장을 꺼내 몰래 주머니에 찔러주시는 할머니는 자칭 타칭 나의 팬들이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서 이런 풋풋한 인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픈 몸을 간신히 이 끌고 치료실을 들어섰던 환자가 치료 후 너무 좋아졌다며 기뻐하실 때 나의 기쁨은 두배. 세배가 된다.

까짓, 잠깐 힘들고 짜증났던 일 훌훌 털어버 릴 수 있다.

어느 날에는 중년 아주머니 한 분이 책상위에 흰 봉투를 놓고 가셨다. 깜작 놀라 얼른 펼쳐보니 빼곡히 쓰여진 정성스런 편지 한 장. 내용은 대강 이랬다.

「바쁘지만 항상 웃으면서 손녀딸처럼 노인들을 대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아요. 아픈 이를 치료하는

44 www.hira.or.kr

문서에서 월간 審評(심평) 제54호 (페이지 43-50)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