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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에서의 상상력

II. 규제받는 상상력

3. 숭고에서의 상상력

자연 표상을 판정함에 있어 주관의 마음이 동요할 경우 그 표상은 숭고한 것이라 불리운다. 이러한 마음의 동요 역시 흡족의 감정으로 귀결됨에 따라 숭고판단은 취미판단과 함께 미감적 판단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숭고한 것에서의 흡족과 미적인 것의 흡족은 동일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까닭인즉 취미판단에서는 쾌감이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를 통해 직접적으로 발생하지만, 숭고판단에서는 무한정성이 표상됨에 따라 현시하는 능력으로서의 상상력이 좌절함으로써 “내포적, 즉 부정적 쾌”(KU 245)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숭고에서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쾌는 생명력들이 일순간 저지되어 있다가 곧장 뒤이어 한층 더 강화되어 범람하는 감정에 의해 산출되는 것으로, 그러니까 그것은 감동으로서, 상상력의 활동에서 유희가 아니라 엄숙인 것으로 보인다.

(같은 곳)

숭고판단에서 쾌가 발생함에도 상상력이 유희하지 않는 이유는 숭고한 것이 오직 이성 이념들과만 관계하기 때문이다. 이념은 우리의 감성적 형식에 부적합한 소재로 현시가 불가능한 까닭에 상상력은 숭고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의 표상으로부터 지성과 합치할 수 있는 어떠한 형식도 도출해내지 못한다. 그리하여 숭고한 것에서 상상력은 포착에 실패하며 이는 곧 합목적성의 성립 조건인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가 수립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숭고의 감정을 일으키는 대상은 우리 판단력에 대해 반목적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는 취미판단에서의 쾌감이 지시하는 자연의 합목적성을 통해 지성개념만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현상들의 체계를 확인한다. 그런데 숭고판단에서 마주하는 것은 혼돈, 무질서, 크기, 위력으로서 그것들은 우리 인식능력에 대한 자연의 합목적성을 지시하는 것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취미론에 이어 숭고론이 등장하는 이유는 숭고를 통해 주관 안의 합목적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주관 안의 합목적성을 다루는 숭고는 자연의 합목적성을 다루는 미감적 판단력에서 “부록” 55 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주관의 합목적성은 “자연의 표상에 대한 상상력의 합목적적 사용”(KU 246)을 지시해준다는 점에 주목하여 숭고한 것이 제공하는 직관들과 상상력의 관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숭고판단은 미감적 반성적 판단력의 한 종류로서 취미판단과 마찬가지로 합목적성과 관계한다. 그러나 합목적성이 도출되는 양상에서 두 판단은 차이를 보인다. 취미판단은 객관의 형식에 관해 판단하는 것으로서 우리 상태는 관조적인 상태를 유지한다. 반면에 숭고판단에서는 숭고한 것의 특징인 무형식성으로 인해 대상 판정을 수행함에 있어 마음이 동요한다. 이 마음의 동요 덕분에 상상력은 “인식능력 또는 욕구능력과 관계”(KU 247)하는데56, 주어진 표상의 합목적성은 상상력이 관계맺는 이 능력들에 관해 판정된다. 숭고론에서 다뤄지는 인식능력은 지성이 아니라 이념들의 능력인 이성으로서, 무한자의 이념을 내포하는 대상을 마주하는 경우 상상력은 이성과 관계한다. 이러한 대상은 “단적으로 큰 것”(KU 248)으로서 어떠한 비교대상도 가지지 않으며, 측정 단위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는 현상들에서 대상의 크기를 판단할 때는 단위를 필요로 하지만, 현상들의

55 “…이 주의는 숭고한 것의 이념들을 자연의 합목적성의 이념과 전적으로 분리시 키고, 숭고한 것에 대한 이론을 자연의 합목적성에 대한 미감적 판정의 한낱 부록 으로 만드는 바이다.” KU 246.

56 칸트는 상상력이 관계맺는 능력의 종류에 따라 숭고한 것을 인식능력과 관계하 는 수학적 숭고와 욕구능력과 관계하는 역학적 숭고로 구분한다. 본고는 상상력이 다른 인식능력들과 관계맺음으로써 그 산출물이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입장을 취함 에 따라, 상상력과 욕구능력 간의 관계가 나타나는 역학적 숭고는 다루지 않는다.

크기 규정만으로는 “어떤 크기에 대한 절대적인 개념을 결코 제공할 수”(같은 곳) 없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비교의 척도를 주관에서, 정확하게는 반성하는 주관 안에서 찾는다.

그러나 비교의 척도가 주관에서 주어진다 하더라도 숭고판단은 취미판단과 마찬가지로 보편적 동의를 요구한다. 숭고판단의 보편적 전달 가능성의 근거는 숭고한 것에 대한 우리 인식능력들의 사용에서 발생하는 흡족의 성질, 다시 말해 “상상력 그 자체의 확장에 대한 흡족”(KU 249)의 특성에 있다. 어떤 대상의 크기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그 대상의 직관을 포착하고 총괄해야 한다. 포착은 주어진 잡다를 차례대로 지각하는 것으로서 한계가 없으나, 포착된 직관들을 하나로 엮는 총괄작용은 직관의 모든 표상들을 포괄하는데 한계57가 있다. 한계에 봉착한 상상력은 그 대상을 현시하는데 부적합하다고 느끼면서도 자신을 확장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에서 상상력은 “감동적 흡족”(KU B88) 상태에 놓임에 따라 숭고의 대상은 우리 주관에 합목적적인 것으로 설명된다.

숭고에서 발견되는 주관적 합목적성은 주관 안에 “무한한 것을 하나의 전체로서 생각”(KU B92)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뜻한다. 단적으로 큰 대상에서 우리는 감관의 척도를 뛰어넘는 것, 즉 무한자의 이념을 마주한다.

그리하여 숭고판단에서 상상력은 무한자를 총괄할 수 없다는 것을, 즉 이성이념의 현시는 자신의 한계 너머에 있음을 불쾌의 감정을 통해 표명한다. 그럼에도 숭고한 대상은 우리 안에 무한자와 관계할 수 있는 이성이 있음을 일깨움으로써 간접적 쾌를 발생시킨다. 이에 따라 숭고판단에서의 상상력은 “자기의 제한과 부적합성을 표명”(KU B97)하고,

“이성에 의한 평가에 부적합”(같은 곳)함으로써 이성과 상충하지만, 주관 안에 이성을 일깨울 수 있음에 따라 우리는 숭고한 것에서 흡족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상상력이 언제나 이성이념들을 현시하는데 좌절하는 것은 아니다.

57 칸트는 피라미드를 예시로 총괄 작용을 실패에 대해 설명한다. 만약 우리가 피라 미드를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서 본다면, 피라미드 전체를 한 번에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순차적으로 부분들을 포착하면서 총괄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 경우 처음에 보았던 표상들의 일부가 소실되는 탓에 칸트는 상상력의 총괄에는 한 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KU 252 참조.

오히려 천재에서 상상력은 “주어진 대상의 표상”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경험에서 주어졌던 모든 감관표상들을 활용하여 이성개념들에 객관적 실재성을 부여하고자 애쓴다. 그리하여 숭고에서 확인되는 상상력과 이성이념들 간의 반목적적인 관계는 부정적, 간접적 쾌를 일으키는데 그치는 반면 천재에서 상상력은 이념과 결부되어 생기를 불러일으킨다58. 이에 따라 숭고에 관한 논의가 취미판단과의 비교에 그치는 경우59 상상력과 이념들 간의 합목적적인 관계가 부각되지 않으며, 숭고에 관한 논의를 천재와 분리시켜 논하는 경우60 숭고론이 취미론과 천재론 사이에 삽입된 근거 및 숭고론이 부록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어렵다.

미감적 판단력 내에서 상상력의 활동은 합목적성을 원리로 삼으며 이 합목적성은 자연과 자유의 매개를 위해 요청되는 반성적 판단력의 원리임을 고려할 때, 주관 능력의 확인에 그치는 숭고는 미감적 판단력의 부록에 해당한다. 하지만 숭고론을 통해 감성계에서 시작하는 상상력이 이성이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되며, 이로부터 대상을 판정하는 취미론에서 미감적 이념을 현시하는 천재론으로의 연결점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숭고론의 위치가 재해석될 수 있다.

58 천재와 이성이념들 간의 관계는 본고3장 2절 ‘천재에서의 상상력’에서 보다 자세 히 다루고 있다.

59 김상현(2006), 13-21쪽.

60 S. Gibbons, Kant's Theory of Imagination, Oxford : Clarendon Press ;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1994 (2002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