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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내 작품은 보다 선명한 색을 갈구했다. 염색은 채색과 달리 강 렬함을 줄 뿐 아니라 색의 지속성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앞에서 살펴본 안 료의 성분조사의 원리와도 비슷하다. 이는 산화가 모두 끝난, 즉 공기와 반응이 모두 끝난 안료가 더 이상 색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 럼, 염색된 헝겊 또한 열과 약품처리로 인한 작업으로 인해 색이 천위 에 고착이 되어 빛이나 공기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더욱 선명한 색 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던 원리와도 비슷하다. 그리고 이것은 선명한 색감을 넘어 재질감을 추구하면서 재료의 다양성까지도 가져왔고 배경이 칠해진 위로 톱밥과 모래를 올려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 속 무늬의 이미지 를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다.

내 작품의 주요 기법은 그리기, 닦아내기, 붙였던 것, 혹은 칠했던 것을 뜯어내기 등 평면의 변화를 주는 작품들이었다. 물론 이 때도 문양의 형상 이 바탕에 깔려있으나 점차 그 형태가 약해지고 자유로운 붓의 움직임으로

인한 안료와 전색제로 인한 흔적이 더욱 부각된다. 이러한 전색제는 안료 를 화면에 고정시키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전색제의 특성을 이용해 효과 를 색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기도 한다.

내 작품에서는 담(淡)한 색으로 안료를 매개로 하여 문양을 표현한다. 그 래서 단순하고 평이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는 20세기 초 일 어난 조형적 혁신운동인 꼴라쥬의 발생 배경과도 일맥상통한다. 현대미술 에서는 물체는 도구가 아닌 그 자체가 작품이 된다는 개념을 끌어들인, 물 질자체가 작품이 되는 개념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현대미술의 특성을 바탕으로, 내 작품은 색을 더욱더 풍성하고 효 과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재료의 탐구, 효과, 메디움의 도입, 꼴라쥬의 사 용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색채를 하나의 뜻을 가진 언어로 사용했던 선조 들과 비교했을 때, 현대는 합성안료의 발전으로 다양한 색이 개발되어 색 채 조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색채의 변질, 안료 박락 등을 생각하게 된다. 이에 선명하고, 뜻하지 않은 충격을 안겨다 줄 수 있 는 오브제의 도입이 작품의 특징으로 되었다. 이것은 안료만으로는 표현에 한계가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한계는 비단 과거의 문제만은 아니다. 불과 얼마 전 복원된 숭례문 복원사업도 그 단적인 예가 될 수 있다. 한 국민의 그릇된 행동으로 우리 나라 국보 1호가 잿더미가 된 사건이 있었다. 이를 복원하기 위한 공사가 5년 3개월 동안 계속되었으나 복원된 숭례문은 저품질의 재료와 시공기간 을 무리하게 거행한 결과 목재의 건조 상태가 좋지 않아 균열을 일으키며 단청의 박락현상 등 현재 부실공사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참고도판 -24>)

내 작품에서 문양이 새겨진 헝겊과 글자가 새겨진 한지 사용의 근거를 안 료성분에 의한 작품성의 변질, 염색을 통한 평면작품의 효과와 함께 이를 바탕으로 발전해온 현대미술에 두고 기법의 연구가 절실하게 느껴졌다.

결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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