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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설계하는 단계에서, 연구자는 무임승차자에 대한 처벌을 통해 협력 이 진화했다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하여, 협력적인 사람에 대한 반사회적 처벌 은 어떠한 이유에서 발생하고 또 무엇을 통해 이를 억제할 수 있는지 알 아보고자 하였다. 관련된 선행 연구들을 검토한 결과, 문제가 되는 반사 회적 처벌의 기저에 불평등 기피 성향이 존재하며 처벌에 대한 보복 가 능성을 도입할 경우 이를 억제할 수 있으리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었고, 이러한 가설을 구조에 반영한 공공재 게임을 설계하여 이를 확인해보고 자 하였다.

실험 결과 연구자가 예상한 대로 불평등 기피 성향은 반사회적 처벌과 밀 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으며, 처벌에 대한 보복이 가능해지자 반사회적 처벌은 확연하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연구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들도 관찰 되었다. 먼저, 보복 가능성의 도입으로 인해 반사회적 처벌뿐만 아니라 더 적게 기여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정당한 처벌 또한 크게 감소하였다. 다음 으로 보복 불가능-평등 조건에서 강도 높은 처벌의 빈번한 발생으로 인해 참여자들은 협력의 이익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보았으나, 보복 가능- 평등 조건에서는 처벌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협력이 유지되어 참여자

들이 협력의 이익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들을 종합해 보 면, 처벌과 그에 대한 보복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에서 협력의 진화를 이끈 것은 실제 처벌이 아니라 서로에게 처벌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 움, 혹은 그러한 위험에 대한 인식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결국 무임승차자 에 대한 처벌을 통해 협력이 발생하고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전제가 실험을 통해 오히려 반증된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지금까지 공공재 게임을 사용한 실험 연구들에서 별다른 의 심 없이 받아들여졌던 처벌의 원리, 자신이 직접 대가를 치르고 타인에게 피 해를 입히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에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처벌은 그 정의상 부당한 행위에 대하여 고통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협력의 맥락에 서 보자면 여기서 부당한 행위란 곧 협력하지 않고 협력으로 발생한 이익을 누리는 것, 즉 무임승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처벌의 정의가 공공재 게임의 구조에서 구현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무임승차자로 엄격하게 한정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공재 게임의 참여자가 자신보다, 혹은 다른 조원들보다 적게 기 여한 사람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는 일은 방법론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렇게 할 경우 참여자에게 남들보다 적게 기여하는 것은 잘못된 일 이라는 인식을 사전에 심어줌으로써 참여자로 하여금 연구자가 원하는 방향 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연구자는 참여자 앞에서 ‘처벌’이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 는 참여자에게 자신이 누군가를 처벌한다는 인식을 미리 심어주지 않은 상태 에서 다른 사람의 자원을 차감하는 행위가 과연 무임승차자에 대한 처벌의 양상을 보이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일반적으로 공공재 게임에서 참여자는 같은 조에 속 한 사람이면 누구라도 선택하여 그가 가진 자원을 ‘차감’할 수 있다는 안내 를 받게 된다. 따라서 참여자가 선택한 대상이 무임승차자일 경우에만 자원 을 차감하는 행위는 처벌이 될 수 있다. 즉 다른 사람의 자원을 차감하는 행 위 그 자체만으로는 처벌의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 면 참여자의 차감 행위가 자신보다 더 많이 기여한 사람을 향했을 때, 이것

을 ‘반사회적 처벌’로 분류하는 일반적인 관행에는 사실 논리적 오류가 있는 셈이다. 공공재 게임에서 발생한 차감 행위가 더 적은 토큰을 기여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 행위는 애초에 처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재 게임에서의 차감, 자신이 비용을 치러 가며 다른 사람이 가 진 것을 없애는 행위는 그 성질에 비추어봤을 때 타인에 대한 공격성의 발 현, 혹은 폭력적 행위를 모형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임승차자에 대한 정 당한 처벌이든 반사회적 처벌이든 근본적으로는 폭력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를 처벌이라고 부르는 완곡어법으로 인해 공공재 게임에서 발생하 는 차감 행위는 실제에 비해 덜 폭력적이고 덜 공격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물론 자신이 가진 자원을 차감당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실제로 상처를 입거나 피를 흘리는 것은 아니므로, 이러한 차감 행위를 폭력이라고 생각하 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공공재 게임에서의 차감이 폭력의 모 형화한 것이기 때문이지, 그 본질이 덜 폭력적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첫 문단에서 언급한, 무임승차자에 대한 처벌을 통해 협력이 진 화하였다는 기존의 관점에는 결국 폭력의 행사가 협력의 진화에 기여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협력 진화의 초기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소규모 부족사회에서, 대규모 현대 사회에서보다 더 높은 빈도로 폭력 사건이 관찰되었다는 민족지적 연구(Chagnon 1988, 1992, Knauft 1991, Lee 1979, Marlowe 2010)들은 이러한 관점을 지지하는 것 처럼 보인다(Guala 2012: 9에서 재인용). 그러나 Guala(2012)는 이러한 폭 력 사건은 대부분 배우자를 둘러싼 성적 경쟁의 과열로 인해 발생하며, 무임 승차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소규모 부족 사회의 무임승차자는 무시당하거나 뒷소문의 주인공이 될 수는 있지만 (Dunbar 2004), 직접적으로 처벌받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다. 또한 칼라하 리 사막의 쿵 족 사회에서 사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집단 내에서 인 정을 받기보다 기피되고,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만연 한 것으로 조사되었다(Lee 1979). 이러한 결과들은 폭력을 통해 유지되는 협력의 사례가 실험실을 벗어난 현실 사회에서는 잘 관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재 게임에서와는 달리 현실 사회에서 협력의 수단으로서 폭력이 선호 되지 않는 이유는, 폭력의 사용에는 언제나 보복의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이 다. 다시 쿵 족의 사례를 들면, 자신의 친족을 살해한 사람을 죽이는 일, 즉 보복에 대해서 쿵 족은 관대한 편(Lee 1979)이다. 본 연구의 공공재 게임에 서도 보복 가능성을 도입하자 참여자들의 공격성 발현(처벌 사용)은 상당히 억제되었다. 또한 폭력을 사용할 경우, 사용자와 대상 모두 손실을 입게 된 다. 따라서 설령 그것이 무임승차자를 벌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도, 폭력의 사용은 협력을 통해 생산된 이익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실제로 본 연구의 실험 결과, 보복 불가능-평등 조건에서 참여자들의 협력 수준이 결코 낮지 않았음에도 처벌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평균 순이 익은 0 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적 처벌은 사회성을 촉진하기 보다는 오히려 저해한다는 것이다(Guala 2012).

이처럼 소규모 부족사회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들, 그리고 공공재 게임에 보복 가능성을 도입한 실험 연구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Guala(2012)는 협력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값비싼’ 처벌의 기여가 실제에 비해 과장되어왔음 을 비판하고, 더 나아가 험담(gossip)이나 따돌림(ostracism), 중앙화된 집단 적 처벌 (centralized coalitional punishment) 등과 같은 ‘비싸지 않은’

제재 수단으로도 협력은 충분히 유지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 협력에 있어서 분산화된 사적 처벌(decentralized peer punishment)의 기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일 수 있다. 그 대신 집단 내에서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처벌과 보복, 즉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위험에 대한 인식이 협력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처벌에 관한 고전적인 공공재 게임 연구(Fehr & Gächter 2000; 2002)에 서 처벌이 불가능할 때 참여자들의 기여량은 게임 초반, 지급된 토큰의 절반 에 이르는 높은 수준을 기록했지만 라운드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감소하여 게임 종료를 앞둔 시점에서는 0에 수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본 연 구의 보복 가능-평등 조건에서 참여자들의 처벌 사용은 억제되었으나 기여량 은 라운드의 진행에 따라 점차 증가하였고, 평균적인 수준에서도 보복이 불 가능했을 때(따라서 처벌이 활발하게 사용되었을 때)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

았다. 원천적으로 폭력을 사용할 수 없는 것(처벌이 불가능한 공공재 게임)과 폭력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복의 부담으로 인해 사용하지 않는 것(처벌과 보복이 가능한 공공재 게임)은 참여자의 협력 의사결정에 완전히 상반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인간이 서로 협력하여 오늘날과 같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 이 폭력을 사용할 줄 모르는 아주 온순한 양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 아니 다. 폭력의 사용을 완전히 배제한 채 협력 여부를 결정하는 온순한 양들의 공공재 게임에서, 참여자들의 협력 수준은 장기적으로 완전한 무임승차에 수 렴하였다(Fehr & Gächter 2000; 2002). 인간들은 얼마든지 서로에게 상처 를 입히는 괴물이 될 수 있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힘으로써 상대를 끌어내리거나 자신이 더 우월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폭력을 사용하려고 드는 성향이 인간에게는 내재되어 있다. 처벌이 1회만 가능한 공공재 게임에서 빈번하게 나타났던 높 은 강도의 처벌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오늘날 인류는 그런 괴물들이 다른 모든 괴물들을 상대로 투쟁을 벌이는 홉스의 자연 상태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 않다. 홉스는 그 이유를 훨씬 더 큰 괴물, 리바이어던과 같은 국가의 탄생에서 찾고 있지만 본 연구의 결과는 그보다 앞선 단계에서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이 누군 가에게 함부로 괴물(처벌)이 될 수 없는 까닭은, 그 누군가도 자신에게 괴물 (보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쿵 족 사회에 폭력 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하다(Lee 1979)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 다. 폭력이 없는 세상에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폭력의 씨앗이 심어져 있고, 그것이 꽃을 피우면 양자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을 이해할 때에만 폭력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복이 두려워 함부로 처벌하지 못하는, 아슬아슬한 비폭력의 균형을 이루 고 있는 괴물들의 세계는 애초에 처벌할 줄 모르는 양들의 세계와 표면적으 로 동일하지만 그 균형이 조금이라도 깨질 경우 치명적인 파국으로 치닫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보복 가능 조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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