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公 02 〉

문서에서 누의료보험연알회 (페이지 30-61)

CCc

의료보장 • 29

의료보험 체험수기 / 우수상

오 편집자주 : 이 글은 의보련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한 ’ 98년도 의료보험 체험수기 현상공모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숙아! 걸으면 신발 사줄께

홍성욱

짧은 신혼

숙은 피곤했던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창밖을 보니 우리가 탄 기차는 한강철교를 지나고 있었다.

조금전 예식을 올렸던 예식장도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포기하고 지리산 내고향에 부모 님을 뵈러가는 중이다. 김천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지리산 엄천을 갔다. 7년동안 병상에 계셨던 어머님 은 며느리 손을 어루만지며 웃는 듯 우는 듯 눈시울 을 적시고 계셨다.

이것이 어머님과 마지막 작별이 되었다. 결혼 휴가 가 끝나고 부대앞에 삭월세 방을 하나 얻어 숙과 새 인생 설계를 한 것은 78315일이었다.

류마치스 관절염이 재발되다

숙은 나 한 사람 의지하고 최전방까지 따라와 궁핍 한 생활의 어려움 속에 고생을 각오했었다. 숙은 나 와 함께 걸을 때 언제나 내 뒤에서 아장댔다. 그것은 발이 평발이었기 때문이다. ‘건강이 제일인데.’ 이런 생각을 할 때 이미 숙은 류마치스 관절염으로 자리에 눕고 말았다.

결혼 후 숙이 갓 해온 식사와 군복을 다림질 해줄 때 결혼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신혼의 여섯달을 추억할 겨를도 없이 깊은 좌절과 번민이 찾아왔고 얄궂은 심술쟁이가 우리 앞 길을 훼방놓았다.

숙을 업고 화천에 있는 0 0의원에 갔었다. 원장님 은 아는 병이니 약을 먹고 음식을 잘 먹어야 된다고 했다. 몇달째 춘천까지 업고 다니며 약을 복용했으나 병은 심해만 갔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밥까지 내가 떠 먹여야 했다.

난 부대 근무를 도저히 할 수가 없어서 지리산 처가 에 숙을 업고 들어갔다. 장모님은 드디어 올 것이 왔 다는 듯 안색이 변하였다. 한약을 먹으며 몸조리를 부탁하고 떠나 온 이후 숙에게 편지로 위로를 했다.

숙이 지리산에서 요양한 지 두 달이 될 쯤이었다. 숙 의 소식이 궁금해 지리산을 가보아야 겠다고 생각하

며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고 이불밑에 앉아 있으니 깜 빡 졸음이 왔다. 개울 건너 5번도로상에 막차가 지나 갔고 먼데서 개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깥에 인기척 이 났다.

내가 문을 열었을 때 장모님이 오셨다. 너무 뜻밖이 다. 옆마루에서 건장한 남자가 숙을 업고서 앉아 있 었다. 숙은 광목천으로 묶인 채 였다. 새벽에 지리산 을 나서서 온종일 차를 타고 온 숙은 송장이었다. 얼 굴은 목과 함께 두 개였다. 온 삭신들이 부종으로 알 아볼 수가 없었다. 온몸에 털이 새카맣게 났고 턱밑 에 수염이 났다. 이런 중환자를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고 이곳까지 왔냐며 원망스러워 하는 내 표정에 장 모님은 5분도 지체하지 않고 가셨다. 그날밤 우린 잠 을 못 이뤘다. 숙은 금단의 현상과 체 념으로 삶을 상 실하고 있었다. 혈압과 체온은 상승되고 손, 발톱이 노랗게 녹아 있었다.

난 날이 밝기를 기다려 과장님에게 보고하여 부대 장님의 재가를 받아 숙을 업고 버스에 올랐다. 등촌 동 0 0병원에 도착한 것은 점심 때가 지나서였다.

검사가 끝나고 군의관이 나에게 고개를 가로저었 다. 한마디로 의술이 손을 못 쓰는 판국이었다. 관절 염이 이처럼 심한 것도 문제였으나 약물 반응이 검사 에서 나타났다. 이때 숙은 비로소 비밀을 실토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숙에게 처음 병마가 찾아온, 것은 8년전 열 여섯살 때 일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릴레이를 하다 친구와 부딪쳐 넘어진 후 다리를 절며 집으로 왔는데 그 이 후 관절염이 왔다, 딸의《벼을 고쳐보기 위해 전주 0 0병원과 서울 0 0병원, .令0병# 둥을 전전하는 동안 집마저 팔게 되었고세 번의나 죽을고비를 넘 겼다고 했다. 추해 '■'츠分

그때 약국에서 Q夕 0 0정이라는-약을 사서 먹기 시작했단다. 이 약을 장기간 복용한' 후로는 중독이 된것이다. 아예 다른 약은 듣지를 않았코 이 약을 끊

서- i

지 못하고 지금껏 먹다가 화천으로 오기 몇일 전에 갑자기 그 약을 복용한지 8년만에 중지한 것이 화근 이 된 것이다.

약물 스테로이드로 인해 그 부작용이 스무가지도 더 되었다. 폐와 위장에 구멍이 생겼고 모든 관절은 이탈되고 녹아 없어졌던 것이다. 엑스레이 촬영한 것 을 보면 성한 관절이 한 곳도 없었다. 정신적으로는 금단 또한 심했다.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꼭 마약 하는 자와 같았다. 숙은 그 독한 약을 결혼 후에도 찬 장에 숨겨두고 먹었노라 실토했다. 이처럼 의사의 처 방없이 남용한 약물로 인해 폐인이 되었다. 숙의 피 부색깔은 온몸전체가 약물의 독기로 노랬다. 얼마나 심했던지 손, 발톱이 녹아버렸다.

내과 과장은 정형외과로 정형외과 과장은 내과로 서로 환자를 미루다가 퇴근하는 의사들이 원망스러 웠다. 나는 병원 복도에서 어찌 할 바를 몰라하다가 간호장교에게 사정을 해 응급실에 하룻밤 신세를 졌 다. 그야말로 숙은 꺼져가는 등불이었다.

이튿날 난 용기를 내어 병원장으로 계신 0 0 0 군님을 뵙고 내 기막힌 사연을 하소연했다. 그 결과 6개월 병원신세를 톡톡히 지게 되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숙은 세번씩 자살을 기도했으나 수포로 돌아갔 다. 숙에게는 옆에 늘 간병인이 있어야 했는데 군인 이었던 나는 이 문제로 많은 갈등을 겪었었다. 순간 순간 온몸이 간지럽다고 늘 긁어 달라했고 대소변 처 리와 잠이 들만 하면 잠을 깨워 사람을 못 살게 했다.

간병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그 일은 기약도 없 었다. 평생을 해야 할지 정말 답답하고 한치 앞이 보 이지 않는 절망을 내딛고 있었다.

퇴원을 할 때 군의관은 0 0 0 0정을 계속 복용할 . 것을 부탁했고 숙의 부종은 많이 빠졌지만 앉은뱅이』

가 된숙을업고집으로왔다. 上스

이 아기를 주셨다

병원에서 퇴원 후에 곤양이를 많。r&

다. 자돼지, 쓸개도 많送돈흐J들여 먹이기도

‘어 의료보장 31

름모를 동물의 뼈로 술을 만들어 먹이기도 했다. 답 답해서였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이제 약을 먹지 않 기로 작정한 것은 오랜 후였다. 1%의 가능성이 보인 것은 숙이 아기를 잉태했을 때였다. 아기를 낳으면 좋아질까 그렇게 실낱같은 기대를 했다.

나라가 어려운 때에 아기가 태어났다. 병상의 숙은 아기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웃음을 되찾기엔 건강이 절망적이었다. 나 또한 짐을 더 떠맡아 고생을 해야 했다. 연세가 많으신 장모님이 백일동안 길러 주셨지 만 백일을 넘어서자 나는 일인 삼역을 감당해야 했 다.

부대근무는 뒷전이었고 숙의 간병과 아기의 양육은 나에겐 매우 고달픈 훈련을 요했다. 냇가에 나가서 기저귀랑 이불을 빨았고 간장도 담는 등 여자의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내 일생을 두고 가장 힘든 세월이었지만 인생을 깊이 체험하는 순간들이기도 했다. 내게 끝없는 열정이 타오르기 시 작했다.

전역상신

화천 읍내까지 나에 대한 소문이 나 있었다. 어느날 아기를 안고 시장을 다녀오는데 골목에서 사람들이 수군대더니 저 사람이 홍 하사야! 하는 말을 들으며 그옆을 숨죽이고 지나온 일이 있었다.

지휘본부에서 부대장님이 날 찾았다. 나를 본 부대 장님은 아기와 숙에 대해 몇마디 물어보신 후에 나를 책상앞으로 다가 오라고 하시며 내 손바닥을 펴 보라 고 하셨다. 나는 손금을 보시려나 했다. 부대장님은 내 손바닥에 검정 싸인펜으로 “넓을 관자" 를 한자로 쓰시더니 “이게 넓을관자야 인생을 넓게 멀리 보라 구. 청춘이 구만리인데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내말 잘 새겨 들어 이제껏 아내한테 할 만큼 했어. 아기는 고 아원에 맡기고 홍 하사는 새장가 가는 게 어때. 이혼 을 해. 처남 때문이면 내가 나서줄께’’ 처남은 다른 포 대 인사계에 있었다.

"간부들의 가족들이 홍 하사 사정만 봐주고 하니 부

대장을 어떻게 알겠어 언제까지 시간을 내주고 그래, 곰곰히 생각을 잘 해봐 이혼을 못할 것 같으면 제대 를 하게.” 난 부대장님과 면담한 후 또 갈등이 있었지 만 전역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며칠 후 처남은 숙에 게 찾아와서 자살을 권유했다는 소리를 숙에게서 들 었다.

아! 의료보험중

숙은 명이 엄청 긴 사람일까? 사람의 목숨이 한순 간에 다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숙은 몇번의 사선을 넘겼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업무로 춘천을 종종 나 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아기를 안고 기저귀와 우유를 준비해서 다녔다.

해가 저물어 늦게 집으로 오면 숙은 온종일 아기를 기다리며 점심은 이웃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앙상한 뼈와 푹패인 눈과 백지장 같이 창백한 얼굴로 몹시 쇠약한 숙의 처지는 말로 표현을 못했다.

나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아직 산돼지 쓸개 값도 완불치 못했고 봉급을 받으면 이자와 생활비가 한 없

이 부족했다.

나는 오직 기적을 바라야 했다. 그 기적이 나를 기 다리고 있었다. 난 한번도 낙심한 적이 없었지만 주 위에서 부정적으로 말을 할 그때에 그들을 설득하기 가 나로서는 힘이 들었다. 의료보험증이 나온 것은 80년 9월이다. 군인 - 공무원에게 처음으로 실시가 되었다. 일부 직장에서 이미 시행된다고는 알았지만 나에게 의료보험은 정 녕 나를 위해 예 비해 놓은 선물 이었다. 의료보험증 앞면에 작은 글씨가 내맘을 설레 이게 했다. 총진료비의 20% 본인 부담이라 적혀있 었다.

나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날듯이 기뻤다. 진료비 걱정을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이제 전역할 날짜 도 다가오는데 전역하면 휴지조각이 될 의료보험증 이었다.

80913일 춘천에 있는 의료보험관리공단에 들러 입원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들고 서울로 향해 가 는 날이다.

나는 숙을 업었고 아기는 옆집 순덕엄마가 업고서 00대학병원을 갔다. 특진 교수님은 OOO박사님 이셨다. 박사님께서 엑스레이 필름을 보시더니 손목 고정술이 가능하다면서 수술일자를 잡자고 하셨고 숙의 입원을 허락하셨다.

침상에 숙을 눕혀두고 난 아기를 데리고 지리산 처 가로 향했다. 지리산에 도착한 때는 아침나절이었다.

장모님께서 숙이 입원했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숙을 처가로 데려다가 주고아기를,데리고 가라고 했다.

나는 아기 때문에라도 수술을 해보련다고 설득을 했다. 장모님도 내게 호이 없는 줄을 뻔히우기 때문 에 걱정이 앞선 나머지버재 새 삶수술은 927일날》행했貢. 읠스레이필름을 보

O

혰다.

" '.石

1

허프

5*^

니 슬관절을 5cm정노하톄고^을 5캐씩 양촌목 에 박아 놓았다. 기章조^호쳐호’彩하서

X

매달았고'두 다리는 저 i추니달아흐;었는 데휴사도살할양이었다. 스■우厂

수술할 적에 들어간 기구는 의료보험이 도질 않아 i I /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사방을 쫓아 다녔었다. 숙의 손목 하나는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앞쪽으로, 하나는 변을 보고 닦을 수 있도록 약간 뒤쪽으로 고정이 되 었다. 영구적 장애자였다.

나는 무엇보다 퇴원시에 일괄 납부해야 할 입원료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의료보험이 된다고 하지만 매 일 불어나는 금액을 보니 언제 퇴원할지는 몰라도 그 입원료가 구해지질 않았다. 사회가 너무 어려웠고 돈 이 귀했다. 거기다가 10. 26 사태 이후 경제는 너무 나빴다.

난 춘천에 있는 OO은행에 갔다. 매월 1 만원씩 재 형저축을 붓는 것이 있었기에 그 통장을 담보로 융자 를 받았다. 50만원을 손에쥐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간병인으로 처남을 병원에 불러다 놓고 남대문 시 장에서 옷을 조금 떼다가 화천 사방거리 골목에 나가 팔기 시작했다. 길바닥에 옷을 내려놓고 한 개라도 사길 바랐으나 구색이 맞지 않으니 때만 잔뜩 묻혀 놓고 돌아서는 사람들이라 옷은 팔리지 않았다.

나는 군인이 아니라 보따리 장사꾼이었다. 드디어 퇴원하라는 연락이 왔다. 11월 18일 원무과에 가보 니 내손에 쥔 돈과 일치된 입원비가 계산되어 나왔으 니 이게 기적이 아닐까?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했 다. 숙을 업고 병실문을 나서는데 노량진의 이모님이 오셨고 그분이 차비를 주셔서 지리산으로 갔다. 다음 날이 아기 돐이었다.

산을 옮겨 주셨다

난 숙을 항상 현재 처지로만 보려고 하지 않았다.

질그릇 속에 감추인 보배를 보고 있었다. 언젠가 걸 어다니겠지, 끝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모두가 불가능 후'"

하다고 해도 나는 가능해지는 것을 믿곤、싶었다 래서 숙이가 한충 용기를 가졌곤 생의 혀.허을

W

되었다. - 〈'{처

어'느

y

부대장님께서나를

g

으수하

{iaq

을\磁다면서 어떻체少를 유 줄꼬여서/위

T 1, <’야 아의;뵤L33

문서에서 누의료보험연알회 (페이지 30-61)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