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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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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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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일이 더 큰 사람, 당신은 아주대입니다

2009학년도 논술고사 예시문제

인문계열

고교명 고등학교 성 명

이메일

아주대학교 입학처

(2)

아주대학교 2009학년도 논술고사 예시문제(인문계열)

[문제 1](30점) 다음 <제시문>을 <유의 사항>에 맞게 요약하라.(띄어쓰기 포함하여 300자 내외)

<유의 사항>

㈎ 요약문에서 [가], [나], [다], [라]를 달지 말 것.

㈏ [가], [나], [다], [라] 각각의 핵심 내용이 모두 포함되도록 할 것.

㈐ [라]의 경우에는 사례까지 포함하여 요약할 것.

㈑ 제3자에게 전달할 것을 고려하여 글의 순서를 바꾸지 말고 흐름에 따라 기술할 것.

㈒ 요약문 전체가 한 편의 완결된 글이 되게 할 것.

--- [가]

텔레비전 비평의 일차적인 존재 근거는 텔레비전이 작품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비평이라 는 개념을 너무 좁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시청자들은 텔레비전을 보며 일상적으로 비평 행 위를 수행하고 있다.

이런 일상적인 비평 행위는 대개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하나는 직접적인 말 로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텔레비전을 보며 가족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대해 촌평을 한다든 지, 친구와 어제 저녁에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등이 여기에 해 당한다. 이때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평가를 내린다. 그러 나 비평 활동이 꼭 그렇게 직접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 우리는 프로 그램 시청 도중에 딴 짓을 한다든지,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기도 한다. 때로는 그와 반대로 주변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며 프로그램에 몰입할 때도 있다. 거의 무의식적 수준에서 이루 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실상 이런 행위들 모두 비평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 비평 행위를 넘어 조금 더 형식화된 비평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다. 프로그램을 보고 제작진에게 의견을 적어 보낸다든지 방송사에서 마련한 인터넷 홈페 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각 방송사의 홈페이지에는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이 폭주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사 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나 특정 집단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이 텔레비전에 방영되었을 때 의견 게재 건수는 더욱 늘어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해 비평 활동을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지 만 평소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의식적으로 고찰해 보는 경우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특정 시청자들이 프로그램 내용을 넘어 프로그램 제작 배경이나 사회적 의미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이렇듯 많은 시청자들이 텔레비전 비평을 별로 심각 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텔레비전이 지니고 있는 일상성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 를 관람할 때에 사람들은 영화의 장면 장면에 집중하며 그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영화의 이런 특성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러나 텔레비전 시청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며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영화에 비해 훨씬 드물다. 이 때문에 그 비평 의 수준이 일상적인 비평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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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일상적 비평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텔레비전과 현실 사이의 혼 동이다.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거나 또는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악역을 담당한 배우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비난을 퍼붓는 행위 등이 전자의 예라면, 텔레비전이 현실을 제대로 그려 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 은 후자의 예이다.

전자의 사례는 단순한 개인적 실수에 속하는 것이어서 별다른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지 않 는다. 반면 후자의 오해는 텔레비전을 비판하는 주된 논점 가운데 하나를 구성한다는 점에 서 나름대로 논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런 비판은 사극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지 못하 다는 비판에서부터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직업이나 계층이 특정 집단에 편중되어 있다든지, 텔레비전의 과잉 폭력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오인하도록 만든다는 관점에까 지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런 비판의 가장 큰 문제는 텔레비전이 하나의 인위적 구성물임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 다. 현실에 가장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뉴스조차 현실을 적당한 형태로 재단하 여 생산한다. 아무런 조작 없이 카메라를 길에 설치해 놓은 후 거기서 나오는 화면을 그대 로 방영한다고 해보자. 과연 그 화면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일까? 카메라가 놓 인 위치가 어디인지, 카메라가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 카메라의 높이는 얼마인지 등에 따라 그 길의 영상은 현저하게 달라진다. 시위 장면을 보도하는 화면에서 카메라의 위치가 시위 대 쪽에 있는지, 아니면 그들을 진압하는 경찰 쪽에 있는지에 따라 시위에 대한 우리의 인 상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텔레비전이 실제로 보여 주는 것은 무엇일까? 피스크(J. Fiske)와 하트리(J.

Hartley)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객관적인 사회적 실재의 반영이 아닌 사회적 가치의 반영”

이다. 예컨대 텔레비전에 중상 이상의 계층에 비해 하위 계층의 사람들은 별로 나오지 않는 다면 그것은 “사회적 사실의 왜곡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러한 위치 및 그 위치에 있는 사 람들에게 표하는 존경을 정확하고 상징적으로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가치라는 것이 제작진들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가치라거나, 또는 제작진들이 보기에 우리 사회의 성원들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라는 말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어쨌든 비평가의 직업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속의 구체적인 내용이 얼마나 우리의 현실에 근접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프로그램이 담고 있는 사회적 가치가 우리 사회 성원들이 가 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이제 일상적 비평을 넘어서 텔레비전을 조금 더 진지하게 분석하고자 하는 사람들, 즉 비 평가의 작업 영역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그들은 왜 텔레비전을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하 지 못하고 프로그램에 대해 시시콜콜 잔소리를 늘어놓는지? 과연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무 엇일까? 텔레비전 비평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텔레비전이 문화 속에서 수행하 고 있는 역할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텔레비전이 한 사회의 문화 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즉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 체계가 반영되며 그에 의해 해석하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

비평은 문화가 형상화되는 과정, 문화의 의미가 구체적인 형태로 구성되는 과정에 개입하 고자 하는 노력이다. 여기서 비평의 개입이 가능한 것은 문화의 의미가 비교적 다양한 형태 로 구성될 수 있는 여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와 텔레비전 사이의 이런 관계는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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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의 언어 사용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언어는 사람들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할 수단을 제공해 준 다. 언어로 만들어지기 이전의 생각은 아직 구체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추상적 생각일 뿐이 다. 생각이 언어로 표현될 때야 그 구체적 형태가 갖춰진다. 마찬가지로 청자들도 그들 머 릿속에 갖고 있는 언어에 대한 지식을 이용하여 발화된 언어를 해석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 들이 어떤 하나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할 때 그 표현 방법은 결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 다. ‘사랑해.’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같은 한국어로도 수없이 다양한 종류를 표현을 사 용할 수 있다. 때로는 시인들처럼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표현법은 기존의 관례적인 형상화 방식, 나아가 기존의 언어 에 충격을 준다. 그리고 그런 충격이 누적될 때 기존의 언어는 새로운 것으로 변하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개별 언어 사용자들의 실수에서 비롯되었을 언어의 용법이 널리 퍼져 맞춤 법 개정을 이끌어낸다든지, 새로운 단어나 비유가 널리 사용되면서 사전에까지 등재되는 과 정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리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변화시킴으로써 문화에 충격을 줄 수 있으며, 그런 충격을 누적시켜 기존의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

결국 비평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그가 속해 있는 사회의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 다. 구체적으로 그 방법은 바람직한 프로그램 제작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평가는 왜 문화를 변화시키려는 것일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텔레비전은 그 문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을 반영한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평소 우리는 문화라는 말을 집합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사용한다. 한국 문화니 미국 문 화니 하는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이 그 예다. 하지만 실제 문화 내에는 다양한 이질적 요소 들이 뒤섞여 있다. 한국 문화 속에도 얼마나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공존하고 있는가! 그런 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이질적 요소들이 문화 속에서 서로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화 속에서 어떤 요소는 더 강하고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어떤 요소는 약하고 부차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평소 일상생활에서도 이처럼 이 질적인 문화 요소의 존재와 그들 간의 불균등한 힘의 관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장 우리 사회에서 자주 논란이 되는 세대 문화에 대해 살펴보자. 세대 문화란 각 세대 가 서로 다르게 갖고 있는 이질적인 문화를 일컫는다. 뽕짝과 랩처럼 때로 그 요소들은 서 로 너무 달라 도저히 융화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처럼 이질적인 요소 들이 공존하고 있다 해서 한국 문화라는 말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때 한 국 문화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이 여러 세대 문화의 단순한 평균으로 구 성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이질적인 문화 요소들 중에서 한국 문화를 구성하는 데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이때 중요한 것은 한국 문화를 구성하는 것 가운데, 어느 요소가 더 강한 힘으로 더 많은 기여를 하며 어느 것이 그렇지 못한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즉 모든 문화 속 에는 더 강한 요소와 더 약한 요소라는 권력 관계가 내재되어 있으며, 이 중 더 강한 요소 가 전체 문화의 특성을 규정하는 데 더 많이 기여한다는 말이다.

텔레비전이 어느 한 문화에서 가장 중심적인 것을 반영한다고 할 때 그것은 텔레비전이 문화 속에서 더 강한 요소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텔레비전은 가 능한 한 더 많은 사람에게 쉽게 이해되고자 하므로 이 점은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강한 요소가 반드시 수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요소는 아니라 하더라도 더 많은 사 람들이 강한 요소에 대해 이해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한 요소 가 우대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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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동성애자 홍석천과 성전환자 하리수를 대하는 텔레비전의 상반된 대우가 좋은 예이다. 두 사람은 모두 일탈적 성 정체성(identity)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서로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홍석천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후 텔레비전 출연에 어려움을 겪었던 반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바꾼 하리수는 당당하게 텔레비전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리수가 스스로를 여성으로 바꿈으로써 우리 사회의 이성애적인 기준에 여전히 충실하게 복종하고 있다는 점이 하나의 이유일 수 있겠다. 즉 하리수는 일반 대중이 남성 동성애자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 않다. 하리수는 여성적 남성으로 남아 있으면 서 이성애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여성이 되어 일반 대중이 지향하는 그런 이성애 에 동참하려는 욕망을 보여준 것이다. 다른 한편 여성으로 전환한 하리수의 미모는 남성 중 심적인 사고의 틀에 아무런 충격을 가하지 않는다. 만일 하리수가 매우 ‘남성다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여성으로 변한 하리수를 보며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 만 그의 ‘여성스러운’ 외모는 여성 하리수를 생각하는 데 어떤 어려움도 주지 않는다. 결국 하리수는 성 전환자라는 일탈적 성 정체성을 지닌 존재이면서도 오히려 가장 여성다운 여성 으로서 남성 중심적 이성애의 틀에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하리수는 우리 문화의 중심 을 이루는 남성 중심적 이성애에 혼란을 주기보다 그 경계선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그를 더욱 강화시키는 작용을 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이성애를 거부한 홍석천에 비해 하 리수가 텔레비전에서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비평이 개입하고자 하는 곳은 바로 이 지점이다. 비평이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 권 력 관계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글로 이루어지는 비평이 강력한 권력 관계를 직 접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펜이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 구체적 인 행동을 하도록 만들 때 의미를 지닌다. 비평은 구체적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 속에서 이 권력 관계가 표현되는 양상을 시청자와 제작진들이 인식하도록 애쓴다.

- 출처 : 정준영, ‘텔레비전 보기-시청에서 비평으로 - ---

* (문제 2 ~ 3) 다음 제시문 [가], [나], [다]를 읽고 물음에 답하라

.

[문제 2](30점) 제시문 [가]와 [나]는 조선시대 명종 임금 때 서얼의 벼슬 허용 문제에 대 해 신하들이 제시한 의견들이다. 제시문 [가]와 [나]의 논점을 대조하여 서술하라 (띄어쓰기 포함하여 200자 내외).

[문제 3](40점) 명종은 [가]와 [나]의 의견 중에서 [가] 쪽을 선택했다. 제시문 [다]를 요 약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 [가]를 반박하라. 그리고 그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라]에 나오는 ‘루키즘’ 현상을 비판하라(띄어쓰기 포함하여 600자 내외).

--- [가]

예전(禮典)의 조항을 살펴보니, ‘서얼의 자손은 문무과(文武科), 생원 진사시(生員進士試)에 응시할 수 없다.’고 하였다. 사대부의 집안에서는 예에 정해진 분수가 있어서 적자(嫡子)와 서자(庶子)를 구분하므로 자손 누대에 이르러서도 사람들이 적서(嫡庶)를 알 수 있다. 이민 (吏民)들은 여자를 엄격하게 취하지 않기에 자식을 낳더라도 정해진 분수가 없어 적서를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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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하기 어려우므로 양천(良賤)의 구분이 없다. 이로 보면 국법이 현귀(顯貴)한 자에게만 엄 격하고 미천한 자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인데, 그렇다면 법이 형평성을 잃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가 있을 수 있다. 이에 예조에서 세세한 사항을 작성하여야 한다. 조정의 관료 들이 양가의 여자나 사대부의 서녀를 취하여 첩을 삼은 자에게서 난 자손과, 천첩의 자식으 로 속신(贖身)하여 양민이 되어 양가의 여자를 취하여 아내로 삼은 자에게서 태어난 자손은 문무 양과와 생원․진사시에 응시하여 벼슬을 할 수 있도록 하되, 청직(淸職)․현직(顯職)․중직 (重職)은 주지 말며, 과거를 거쳐 출신(出身)한 자가 아니면 동서(東西) 양반의 정직(正職)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듯하다. 다만 서얼이 벼슬길에 나오는 길이 열리게 된 이후로 혹시나 적자를 깔보는 마음이 생겨나 명분을 어지럽힐까 염려된다. 그러니 서자 로서 과거에 응시하는 자는, 평소 예와 분수를 지키며 효도와 우애를 독실히 행하여 응시할 만하다는 내용이 담긴 확인 문서를 적형제(嫡兄弟)나 백부, 숙부, 혹은 집안의 존장으로부터 받은 후에 비로소 벼슬길을 열어주어 응시자로 하여금 적자와 종가를 존경해야 한다는 뜻을 알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한다면 서얼들은 자신을 아낄 줄 알아서 학문에 부지런히 힘 쓰고 행실을 삼가서 자포자기하던 전날의 습관이 없어지고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인재를 임 용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 이민(吏民) : 아전과 백성.

* 양천(良賤) : 양민과 천민. - 출처 : <명종실록> 권15 -

[나]

경전(經傳)에 ‘어기지도 말고 잊지도 말고 옛 법을 따르라.’고 하였고, ‘선왕의 법을 따라서 잘못되는 일은 없다.’ 하였다. 이는 성현의 격언으로서 후세에 당연히 지켜야 할 말이다. 우 리나라는 중국과 지역이 다르고 풍속 또한 다르므로 법에 있어서도 중국과 다른 점이 많다.

적서의 구분을 세워 존비(尊卑)의 등급을 엄중히 하고, 개가금지법(改嫁禁止法)을 만들어 부 녀의 도리를 바로잡게 한 것 등등 이외에도 중국과 다른 점은 모두 들어 말할 수 없다. 이 법이 중국과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조종조에서 대대로 지켜온 것은, 대체로 법이란 풍속에 따라서 세워지는 것으로서 국속(國俗)이 이미 안정되어 상하가 모두 오랫동 안 편안하게 여겨온 것을 고칠 수 없다고 여겨서이다. 법이란 선왕이 만든 것이어서 경솔하 게 고칠 수 없는 것이다. 선왕이 법을 정할 때, 서얼 자손에게는 문무과와 생원 진사시의 응시를 허락하지 않고, 서용할 때에도 또한 한품(限品)을 둔 것이 법전에 실려 있으니 그 생각이 매우 깊은 것이다. 지금 만일 옛 법을 경솔하게 고쳐서 서얼 자손을 과거에 응시케 하면 명분이 문란해져서 서얼이 적자를 능멸하거나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를 해치는 풍조가 이로부터 크게 생기지 않을까 염려된다.

- 출처 : <명종실록> 권15 -

[다]

나라를 경영하는 자와 임금의 직무를 다스릴 자는 인재(人才)가 아니면 안 된다. 하늘이 인재를 내는 것은 원래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한 것이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귀한 집 자 식이라고 하여 재주를 넉넉하게 주고, 천한 집 자식이라고 해서 인색하게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옛날의 어진 임금은 이런 것을 알고 인재를 더러 초야에서 구했으며, 낮은 병졸 가 운데서도 뽑았다. 더러는 싸움에 패하여 항복해 온 적장 가운데서도 뽑았으며, 도둑 무리를 들어올리고, 혹은 창고지기를 등용하기도 하였다. 쓴 것이 다 알맞았고, 쓰임을 받은 자도 또한 자기의 재주를 각기 펼쳤다. 나라가 복을 받고 치적이 날로 융성케 된 것은 이러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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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같이 큰 나라도 인재를 혹 빠뜨릴까 오히려 염려하였다.

근심되어 옆으로 앉아 생각하고, 밥 먹을 때에도 탄식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산림(山林)과 연못가에 살면서 보배를 품고도 팔지 못하는 자가 그토록 많고, 영걸한 인재로서 낮은 벼슬아치 속에 파묻혀서 그 포부를 펴지 못하는 자가 또한 그 토록 많은가? 참으로 인재를 모두 얻기도 어렵거니와, 그들을 다 쓰기도 또한 어렵다. 우리 나라는 땅덩이가 좁고 인재가 드물게 나서, 예로부터 그것을 걱정하였다.

그리고 우리 왕조에 들어와서는 인재 등용의 길이 더욱 좁아졌다. 대대로 명망 있는 집 자 식이 아니면 높은 벼슬자리에는 통할 수 없었고, 바위 구멍이나 초가집에 사는 선비는 비록 뛰어난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억울하게 등용되지 못했다.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높은 자 리에 오르지 못하니, 비록 덕이 훌륭한 자라도 끝내 재상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하늘이 재 주를 고르게 주었는데 이것을 문벌과 과거로써 제한하니, 인재가 모자라 늘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 넓은 세상에서, 첩이 낳은 아들이라고 해서 그 어진 이를 버리고, 개가했다고 해서 그 아들의 재주를 쓰지 않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어미가 천하거나 개가했으면 그 자손은 모두 벼슬길에 끼지 못했다. 변변치 않은 나라인데다 양쪽 오랑캐 사이에 끼어 있으니, 인재들이 모두 나라를 위해 쓰이지 못할 까 두려워해도 오히려 나라 일이 제대로 될지 점칠 수 없다.

그런데도 도리어 그 길을 막고는, “인재가 없다. 인재가 없어.”라고 탄식만 한다. 이것은 수레를 북쪽으로 돌리면서 남쪽을 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중략) 하늘이 낳아 준 것을 사람이 버리니, 이는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늘을 거스르면서 하늘에 기도하여 명 을 길게 누린 자는 아직까지 없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하늘의 순리를 받들어 행한다 면, 크나큰 명을 또한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출처 : 허균, 유재론(遺才論) -

[라]

‘루키즘(lookism)’이란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외모지상주의, 외모차별주의로 번역된다. 미 국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새파이어(William Safire)가 2000년 8월 인종, 성별, 종 교, 이념 등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차별 요소로 지목하면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외모가 개인간의 우열뿐 아니라 인생의 성패까지 좌우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 는 경향, 또는 그러한 사회 풍조를 말한다. 곧 외모가 연애, 결혼 등과 같은 사생활은 물론, 취업, 승진 등 사회 생활 전반까지 좌우하기 때문에 외모를 가꾸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 같은 경향이 잘난 외모를 선호하는 사회 풍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외모가 받쳐주지 않으면 결혼을 할 수 없고, 학창 시절에 아무리 학점이 좋았더라도 역시 외모 때문에 번번이 면접에서 탈락하다 보니 자연 외모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2000년 이후 루키즘이 사회 문제로 등장하였는데, 조사 결과 한국 여성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형수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다이어트 열풍에 휩쓸려 무리 하게 살을 빼다가 죽음에 이른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

- 출처 : ⓒ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 ---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