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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際精神分析學會 學術大會(IPA Congress) 漫遊記(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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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Reports 精 神精 神 分 析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精 神精 神分 析分 析分 析 :: 第第 11 卷卷 第第 1 號 2 0 0 0 Vol. 11, No. 1, page 148~160, 2 0 0 0

國際精神分析學會 學術大會(IPA Congress) 漫遊記(上)

趙 斗 英*

<Reportage> My Journey into IPA Congresses

Doo-Young Cho, M.D.*

大會參席 意義

국제정신분석학회 학술대회(IPA Congress)는 격년으로 홀수 해에 열린다. 작년인 1999년에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렸고, 내년인 2001년에는 프랑스 니이스에서 열린다. 개 최지는 유럽 2개 도시, 북미 1개 도시, 남미 1개 도시 순번 으로 돈다. 그러니 2003년에는 스위스 제네바다. 그 다음인 북미 개최지는 미정으로, 내년 니이스대회때 투표로 정해질 것이다. 나는 1985년 서독 함부르그대회부터 참석을 시작 해 몬트리올, 로마, 브에노스 아이레스, 암스텔담, 쌘프란시 스코, 바르세로나를 거쳐 산티아고까지 여덟 번의 대회에 참석하였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글을 쓰고자 한다.

IPA대회 참석의의는 무엇인가. 내게는 다음 몇 가지가 있 었다.

첫째, 한국과 우리를 국제정신분석계에 알리고 싶어서 이 다. 한국인도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있고, 공부하고 싶고, 앞 으로 두고 보면 괜찮은 친구들일 것임을 국제무대에 알리고 싶어서이다.

둘째, 공부하고 싶어서이다. 대회에 가 앉아 있으면 발표 자가 하는 말 가운데 일부는 또렷하게 알아 들을 수가 있기 에 뒤에 한국에 돌아와 책 읽을 때 그것이 밑천이 되어 다 른 것 이해에 크게 작게 도움이 되겠거니 하는 겸손한 희망 이었다. 이 목적은 달성한 듯해서 사실 대회에서 보고 듣던 인물을 떠올리면서 책을 읽으니 훨씬 더 머리에 잘 들어오 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회참석 그 자리에서 듣자마자 상당 부분이 이해가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참석을 거듭할수록 알

아듣는 퍼센트가 조금씩 는다는 정도일 뿐이다. 또 어느 것 은 돌아와 아무리 읽어도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아직도 너 무나 많지만, 이는 정식공부를 덜 해 본 내 개인에 근본원인 이 있으니 그져 담담하게 받아드릴 뿐이다.

셋째, 사람들을 만나고, 정보를 얻고, 대회를 어떻게 치르 나 같은 것을 알고 싶어서 이다. 정신분석이란 의학과 심리 학은 물론 인문과학과 예술이 복잡하게 얽히는 인류최고의 지식분야요, 인류최고의 정신세계가 아니겠는가 라는 호기심 이 내게는 작동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틈에 끼여 본다는 자체로도 나는 대만족이었다. 대회운영의 묘도 음으로 양으 로 많이 배워 왔고, 또 우리가 이렇게 배워 온 것이 실은 한 국 여러 학회에 알게 모르게 번져 나가고 있으니, 그 한 예 가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춘추계학회때 나누어 주는 검정가 방의 아이디어가 거기서 온 것이다. 가방의 색을 나는 말한 다. 지금은 검정색이 유행이지만 십년 전에만 해도 아니었 는데 그때 우리 회원 누군가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임원으 로 있으면서 이를 시작했던 것이다. IPA대회 참가로 아울러 영어를 써 보고, 재 기억케 하는 계기를 갖는 것도 의의가 되겠다.

넷째, 觀光과 휴식의 재미다. 나는 대회 앞뒤 한 주일을 놀 고 구경하는 기간으로 정해 사해팔방 대도시와 산골을 누비 니 이 아니 좋을손가. 학회핑계 대지 않고서야 내 어찌 남미 의 잉카 산골과 이과수폭포를 따로 보겠는가. 상당수 우리 회원은 일주일만을 빡빡히 틈 내 와서는 주야로 억울한 듯 바쁘게 보내는데, 비싼 비행기표 사고 온 것이 아깝지도 않 은지 나는 궁금하다. 우리학회는 남이 돈 내주는 그런 학회 가 아니지 않은가.

다섯째, 단체관광의 재미와 興이다. 우선 떠날 때 김포비행 장에서 여럿이 만나는 것부터가 나는 짜릿하다. 낯선 도시 를 밤에 우루르 몰려나가는 재미, 학회 음악회 입장 줄에 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Professor of Psychiatry,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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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 斗 英

참참 참참 관관관관 기기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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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저 자가 누구더라? …”라고 서로에게 묻고 그 상대에게

별명 붙이는 재미, 아침부페 자리에서 간 밤 무용담을 주고 받는 재미, 골목 속 한국식당 김치찌개와 진로소주를 족치는 재미, 자기 전 호텔 빠에 주섬주섬 모여들어 멋쟁이 우리회 원이 치는 파아노 소리를 들으면서 맥주 조끼를 맞부딪치며 빙그레 얼굴을 서로 보는 재미, 침대 모서리에 꾸부정 앉아 짐 속 깊이 숨겼던 팩소주를 아깝게 아깝게 마시며 궁상을 떠는 재미가 나는 그립고도 그립다. 또 오후 일정 빼먹고 몰 래 나가 골프치며 서양들판 정복했다고 희희낙낙 거리는 재 미도 어찌 빼겠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흥겨웠던 것은 전세 버스타고 우리끼리만 지중해연안과 알프스 골짜기를 누비며 한국인 안내원의 테너 듣는 재미였다. 여성회원이 이런 점 잖고 안심이 되는 자리를 우리 말고 어디서 구할까.

위에서 말한 바 같이 공부 약간, 외국어 귀 뚫기 약간, 노 는 것 약간, 단체생활 약간이 범벅이 되는 이 IPA대회 참석 보고기록은 그래서 만유기(漫遊記)가 아닌가.

大會의 構成

IPA 학술대회는 대개 이렇게 짜여 있다.

먼저 日時다. 이 대회는 격년 7월 맨 마지막 월요일부터 시작해 같은 주일 금요일 오후 늦게 끝난다. 그래서 대개는 7월 말에서 8월 초에 걸쳐 있다. 유치운동이 활발하고, 투 표결과가 발표되면 뽑힌 쪽 나라와 도시에서 온 회원들의 환호성이 대단하지만 이것은 잠시일 뿐 그 뒤로는 조직위원 회의 요구를 맞추기 위한 半지옥 같은 시련이 온다. 돈, 호 텔, 참석인원 확보, 정부요인의 개회식 참석과 인사말 청탁 등등으로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음 때문이다. 그래서 회원 수 가 적은 나라에서는 엄두를 못 낸다. 개최비가 보통 수 백만 불 든다 하고, 그 상당부분을 개최지역 학회에서 동원한 인 원이 내는 등록비로 보태야 하기 때문이다.

大會地는 투표로 정하는데, 4년 전에 서면투표로 정한다.

大會場은 보통 그 도시의 제일 좋은 호텔이다. 1,500명 이 상이 들어앉을 장소 외에 大中小 회의실 열 개 이상을 구비 해야 대회를 치를 수가 있다. 함부르그와 암스텔담, 산티아 고, 그리고 몬트리올서는 그 도시 콘벤숀센터를 썼었는데, 몬 트리올 때 헤어보니 한 번에 22개 회의장을 쓰는 것이었다.

주최측은 같은 값이면 호텔을 선호하는데, 대회본부가 같은 호텔에 있어야 편키 때문이다.

대회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본 대회는 앞서 말한 대로 월

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있지만 그보다 이틀 앞선 토요일과 일 요일에 교육지도분석가들(training and supervising ana- lysts) 모임과 국제정신분석 수련생기구 학술대회(Intern- ational Psychoanalytic Students Organization Congress, IPSO Congress)가 있다. 나는 IPSO 모임에 두 번을 들어 가 보았었다. 함부르그와 몬트리올에서 였다. 우리 한국회원 입장에서는 좀 일찍 대회지로 가 이 IPSO 모임도 함께 참 석하는 것이 일석이조다. 몇 년 더 지나면 내가 들어가 보지 못한 교육지도분석가 모임에 우리회원 가운데 누군가가 참 석할 것이 아니겠는가.

본 대회 개회식은 사정에 따라 미리 일요일 저녁에 열리 는 수도 있다. 프로그램이 넘쳐 흐르고 돈이 있는 대회의 경 우로, 끝난 뒤 환영연을 베푼다. 이런 환영연 음식은 풍성한 한국식이 아니라 남기면 안 된다는 식의 얌체방식이라 양이 적어 먼저 달려가 먹지 않으면 뒤에 먹을 것이 없다. 뛰듯이 달려가 게걸스럽게 먹는 서양 여자분석가들이 이 때는 인격 도 없는듯이 보인다. 수요일은 대개 학술모임은 쉬고, 대신 총회가 있다. 이를 事務會議(business meeting)이라 부르 는데, 우리 한국분석학회에서 이 영어용어를 그대로 도입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아시는지? 우리가 몬트리올 대회를 다녀오고 나서부터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눈여겨 잘 보면 우리 이외 그 어느 다른 학회도 이 용어를 쓰지 않 는다. 한때 총회도 기웃거려 보았지만 한국풍토와는 달리 그 큰 회의장은 거의 비어 있었다. 천 여명 앉을 자리에 그 저 백 여명이 여기저기 드문드문 앉아 있어 멋없이 꽉 들어 차게 출석해 있는 집행부 의석만이 처량하였다. 즉 서양식 은 선출된 지도자들이 알아서 정하면 군말 없이 따라 가겠 다는 식이다. 대신 수요일 저녁에는 그 지역 학회가 마련한 음악회가 있고 간단한 요기거리를 함께 준다. 이 음악회 열 리는 장소는 그 고장 명소로, 보통사람은 평소 출입할 수 없 는 곳일 경우가 많아 참석자가 끝없이 많으니 일찍 가야 한 다. 이 수요일을 이용해 대회참석 회원들과 가족들은 낮 시 간에 시내나 교외 관광에 나선다.

大 會 特 徵

IPA학술대회는 다른 정신과 소속 학회들에 비교해 다음 과 같은 독특한 점이 있다.

첫째, 참석자격을 까다롭게 따진다. 즉 IPA산하 지부학회 책임자가 보증하지 않은 사람은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 독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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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건방지게 보인다. 대다수 학회는 개인적으로 신청서를 받아 등록금을 같이 보내면 환영하는데, 국제분석학회는 영 딴판이다. 그래서 우리도 처음 몇 번은 등록서류에 국제학회 장의 보증서명을 받아 보내느라고 두어 달 걸려 편지왕복을 서너 번씩 하여야만 하였다. 지금처럼 우리회장의 서명만으 로 되게 된 것은 1991년 客員硏究會(guest study group) 로 되고 나서 부터이다.

둘째, 대회비가 비싸다. 다른 학회들은 더러 제약회사 같은 보조자가 있어 여유 있게 치루지만 분석은 그렇게 엉겨붙을 데가 없고, 단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정신분석에 공짜가 없음이 학술대회에도 적용될 줄을 처음 에는 몰랐었다. 특히 회원 아닌 동호인은‘손님’(guest)이 라 하여 더 비싸게 받는다. 이런 학회는 IPA뿐인 듯싶다.

미국정신의학회(APA)나 심지어는 미국정신분석학회(AP- saA)도 외국에서 오는 손님은 미국회원 내는 액수의 반액 이하를 받는다. 이런 규정 때문에 우리는 처음 서너 번 대회 때는 손님자격만을 얻어 바가지 쓰는 기분으로 냈었고, 지 금은 비공식 양해하에 부(副)회원에 해당하는 대회비를 내 고 참석한다.

셋째, 대회장에서 참석자들 가슴에 다는 명패가 계급을 나 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정회원, 부회원, 분석수련생, 손님, 회 원가족 순의 계급이 있어 명패 색깔부터가 다르다. 우리는 한동안 손님 패를 차고 다니다가 근년에는‘가짜’ 부회원 패 를 얻어 민망스러움에서 벗어났는데, 그 중 어떤 회원은 주 최측 착오로 정회원 패가 나와 이때는 당사자가 거꾸로 당 황해서는 우리 신분을 아는 외국인이 사기 친다고 적발해 낼 까봐 가리고 다니는 사람이 생겼다.

넷째, 대회용어로 영어만 쓰지 않고 독일어, 프랑스어, 스 페인어도 쓴다는 점이다. 즉 영, 독, 불, 서의 네 가지 말이 대회공용어로 못 박혀 있는 것이 특이해서 처음 참석하는 동 양인에게는 기가 차리 만치 환상적인 분위기를 제공한다. 일 본어도 공용어로 끼어보려고 애를 쓰지만 쉽지가 않은 듯하 다. 그렇게 만사가 백인 위주다. 예컨대, 토론시간에 질문을 누가 불어로 하면 대답이 불어나 스페인어로 나오고 뒤이어 또 누가 독일어로 추가토론을 해도 회원 거의 다수가 알아 듣는 듯하다. 기가 막혀 한번 Pines선생에게 정말 사람들이 알아듣느냐고 물었더니“유럽 사람들은 고교졸업하면 대개 두 가지 말을 하는데, 분석가들은 공부를 더 했으니 세 나라 말은 거의 다 해요. 놀랄 것 없어요”라는 대답이었다. 따지 고 보니 나 또한 漢字만 쓰면 일본과 중국, 심지어는 베트남

에 가서도 꼭 필요한 의사소통은 되는 터인지라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라고 나를 위안한 일이 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젊 은 회원은 한자를 모르니 어쩐다!

다섯째, 위와 비슷한 말이 되겠지만 이 대회 통역단의 인 원 수와 그 위세는 대단하다. 통역 부스(booth)가 여러 개 쭉 늘어서 있는 것이 장관이고, 거기서 새어 나오는 쌀라쌀 라 소리 또한 장관이다. 한꺼번에 각국어가 동시 통역되기 에 그렇다. 근 20여명의 통역사들이 따라 붙고, 이들은 아 무나 할 수 없는 정신분석용어를 다 마스터한 사람들이라 텃 세를 자주 부려 하루에도 몇번씩 강연하는 연자에게“좀 천 천히 해요! … 빌어먹을, 어디 따라 갈 수 있어야지!”라는 식의 말을 직접 마이크로 해 대니 모두가 웃는 가운데 연자 만 벌겋게 달아 있다. 이래서 통역단 쓰는 비용이 꽤 든다 한다.

여섯째, 웅장하고 심오하고 멋진 분위기로서 이 모임을 당 할 모임이 없다는 점이다. 참석자는 거의 모두가 정장을 하 고 온다. 여자라면 바지 대신 스커트를 입고 온다. 물론 근 래 젊은 미녀 분석가들 일부는 더러 멋으로 바지를 입고는 있지만. 남자들 중 예외는 독일 젊은이 일부로, 이들 역시 멋 으로 독특한 복장을 할 때가 있다. 다른 어느 학회에서도 이 점잖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게다가 휴식시간에 나누는 대화 를 엿들어 보면 의학이야기는 별로 없고, 철학 예술 기타인 문과학 이야기다. 영어만이 아닌 각나라 말이니 처음 참석 하는 동양인은 정신을 못 차린다. 영화에서 나오는 동네 아 주머니같은 여자 입 에서‘피카소’,‘니체’,‘베토벤’이 어 떻고 저떻고 하는 말이 나올 줄이야. 게다가 몇가지 나라 말 이 섞어서 나오니!

일곱째, 老人들이 판 친다는 점이다. 정신분석은 육체적 힘이 그 중 덜 드는 직업분야라서 경험 많고, 논문 많이 쓰 고,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자연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인들이 대회를 주름잡는다. 더구나 단상(壇上)에 올라앉는 이런 노인들 상당수는 그 배우자가 같이 분석분야 를 하거나 최소한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음이 특징이다.

서로 이해해주고, 한쪽이 받들어 주고, 함께 돈 버니 각박해 질 필요가 없고, 대회참가때 떼어놓을 핑계가 없어 부부애 가 금갈 일이 적고, 분석계 내 인간관계 수립유지에 쌍칼을 쓰니 단칼 쓸 때보다 효력이 나는 등등 이익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찌기 로마대회때 우리 故 金幸淑선생이“알 겠어요, 이것이 모두 부자 지식인 노인들의 세계적 축제임 을 이제 알겠어요!”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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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 개회식의 웅장함이다. 이것은 다른 여러 학회들을

다녀 보아야 실감하겠지만, 확실히 감명적이다. 대개의 학회 는“개회식은 가서 뭘해!”라고들 가지않지만 이 대회 개회 식은 그게 아니다. 약속이나 한듯 참가회원 모두와 그 배우 자들이 30분 전부터 꾸역꾸역 입장을 시작하는데, 이 모습 또한 장관이다. 그 고장 지도자, 특히 시장 도지사 대통령 같은 유명인사가 와서 꼭 축사를 하는데, 그 레벨이 내가 가 본 학회 중 제일 높다. 예로, 지난 산티아고대회때는 칠레 대통령이 왔었다. 회원 배우자들이 이 광경에 특히 녹아난 다. 내 집사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홉째, 폐회식 후 저녁에 열리는 고별연회가 기막히게 멋 있다는 점이다. 중년 이상의 회원 부인들이 기다리는 것이 바로 이 모임이리만치, 이 모임은 화려하고 재미있고 화기 애애하다. 남녀 모두 성장을 하고 시작 훨씬 전부터 가서 좋 은 자리를 맡는다. 좋은 자리란 회장단 근처 테이블로 무도 장 옆이다. 함부르그대회때는 시청 지하실, 쌘프란시스코때 는 시립미술관 본관 전시장, 산티아고때는 최고급 란취에서 열렸는데, 이 장소는 보통 그 도시 연회장으로 최고장소다.

시중꾼들의 극진한 예의는 말할 것도 없고, 별별 고급와인 이 다 나오고, 회장단이 근처 테이블을 돌며 악수와 웃음을 선사하고, 실내악단이 들어서 댄스파티를 유도한다. 처음 우 리는 이런 것을 몰라 오히려 겁을 내고 피하다가 차차 요령 이 생겨 이제는 빨리 들어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외교와 춤을 즐기게 되었다. 보통 저녁 7시에 시작해 자정에 끝나 는데, 브에노스 아이레스때는 놀기 좋아하는 아르젠틴과 브 라질 사람들 수백 명이 브라질에서 데려온 삼바 악단의 연 주 아래 밤새고 광란의 밤을 지샜다는 것이다.

끝으로,‘일본의 밤(Japan Night)’이 있다. 대회 때 마다 둘째 날인 화요일 저녁 7시에 일본분석학회 주최의 진수성 찬 고급와인이 곁들인 부페파티가 고급호텔에서 열리고, 그 때마다 한국회원들이 초청받는다. 물론 초청 주대상은 국제 학회의 기라성같은 거물들이지만 아시아라는 의미에다 동양 인 얼굴 수자도 채울 겸 우리를 부른다. 가 보면 많이 와서 오래 머무는 사람들은 독일과 이태리 사람들로서, 은연 중 주최국 사람들과 이차대전때 추축국(樞軸國) 동지애를 돈독 히 하고 있어 우리로서는 다소 씁쓰름한 느낌이 들기도 한 다. 그러나 나는 현실과 장래를 위해 매 번 참석하고 있고, 지난 번에는 우리 대회참가자 모두가 참석해서 맛있는 음식 을 즐기면서 꽤 오래 있다가 왔다. 재미있는 현상은 회를 거 듭할수록 IPA대회 참석인원 수에서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많

아져 한일 양국회장 모두가 어색함을 느끼고 있는 점이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동양의 존재를 알리는 일본학회의 노고 와 고역이 언젠가는 빛을 발하리라고 기대해 본다.

함부르그 大會(1985)

1. 머나 먼 길

IPA대회 첫 참가는 돌이켜 보건대 힘들고 먼 길 이었다.

우리 학회가 연구모임으로 출범한 초창기 이삼년은 그런 것 이 있다는 어렴풋한 짐작 이외 자세한 것은 잘 몰랐고, 그래 서 첫 접촉이 어려웠다. 또 서류가 복잡하여 여러 번 편지가 왕래했어야 했고, 국내서 출국허가도 쉬운 것이 아니었기에 그러하였다.

나는 1984년 봄 직장파견으로 미국에 나가 있을 때, 친 구되는 李載斗선생에게서 IPA의 존재와 의의, 그리고 다음 해에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李선생은 나와 대학 동기로 보스톤의 텃후트대학병원서 정신과 레지던트를 마 친 뒤 뉴욕에 와서 콜럼비아대학부속 정신분석연구소 정규 candidate생활 2년을 하고 그곳 롱아일랜드 소재 뉴욕주립 대학 조교수로 있었는데, 처음부터 한국 우리모임에 관심을 갖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분이었다. 실은 이 비슷한 사람들 이 몇 더 있다. 뉴욕의 趙鴻, 李漢洙, 金石植, 金炳晳선생이 그 분들이다. 미국서 돌아와 회원들과 의논한 뒤 나는 초겨 울부터 전화로 여러 차례 이재두선생과 연락하여 IPA회장 이름과 집 주소, 대회 장소와 일시를 알아내어 영국에 있는 회장 Adam Limentani선생에게 편지를 보냈다.

답이 한 달만에 왔다. 가는 데 십여일, 오는 데 십여일, 그 쪽 의논이 1주일 걸린 폭이다. 참석을 허락한다는 말과 함 께 보내온 서류를 보니 등록할 때 우리 처지에서는 반드시 IPA회장의 서명이 들어가야 하는 것 이었다. 직장이 있는 나와 다른 회원은 또 IPA회장 명의의 대회초청장이 필요하 였고, 공무원 신분인 나는 별도로‘모든 경비를 부담한다’

는 외국기관의 보증서도 필요하였다. 그래서 다시 IPA와 편 지가 두 번 더 오가고, 나는 나대로 가짜 재정보증서를 얻으 려 뛸 수밖에 없었다. 부탁한 보증서가 곧 와줄리가 있었겠 는가. 초조해진 나는 여기저기를 찌를 수밖에 없었고, 결과 적으로 한꺼번에 세 군데서 얻게 되었다. 하나가 金昇泰선 생이 보내준 미국 뉴욕대학의 것이요, 다른 하나가 李尙馥 선생이 알선해 준 서독 뮨스터의 어느 병원 것이고, 또 다른 하나가 在佛친지를 통해 얻은 파리 어느 병원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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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복잡한 절차로 IPA행정비서가 혼이 좀 난듯 그 뒤 우 리가 대회에 갈 때면 불쌍하다는 뜻으로 유달리 친절하든가 아니면 일시켜 먹었다고 유달리 까다롭게 신경질을 내던가 의 극단적 반응을 보여오고 있다.

당시의 우리는 지금보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웠다. 출국시 외환은 2천불이 상한선으로, 신용카드는 국내서 막 나온 때 로서 외국서는 통용도 않되고 또 써서는 안될 때였다. 비행 기는 싼 외국여객기로, 일주일에 한번 오는 것을 택할 수밖 에 없었다.

1985년 7월 24일 수요일 저녁 9시, 吳承煥회장과 金二 泳, 趙斗英의 한국정신분석학회 三銃士는 아내들의 환송을 받으며 KLM항공으로 김포를 출발하였다. 그때 우리 셋은 팔팔하던 사십대 후반이었다. 완전만원 비행기 속 우리 좌 석은 맨 뒤에서 세번째 줄, 옆에는 유럽으로 입양되어가는 한국 고아들이 낯설은 서양 보모들을 맞아 밤새워 울어대는 슬픈 모습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암스텔담에서 우리 일행은 갈려서 비행기를 탔다. 오승환, 김이영선생은 본학회까지의 남는 며칠을 이용해 북구여행길에 올라 스톡홀름으로 가서 그곳에서 金賢德선생도 만나 보았었다. 김현덕선생은 나와 같은 55학번으로 고려의대(당시 수도여자의과대학)를 나와 국립의료원 신경과 레지던트하던 중간에 스웨덴으로 가 정 신과 전공의수련을 거쳐 정신분석수련을 받아 한국출신으로 는 金明姬, 徐廷貴선생 다음으로 정식 IPA회원이 된 분인데, '84년 일시 귀국해 우리를 위한 세미나를 열어주었던 바 있 었다. 吳, 金선생은 이렇게 스톡홀름 일박, 열차내 일박, 코 펜하겐 일박 후 일요일 오후 나와 함부르그역에서 합쳤다.

나는 떠나 오기전 李符永선생에게 자문받아 함부르그 도 착 즉시 대회장 근처 염가의 호텔을 구할 수가 있었다. 중앙 역에서 한 정거장 북서에 있는 담토르(Dammtor)역 인근 一星級 여인숙으로 유럽대륙서는 펜숀(pension)이라 부르 는 곳 이었다. 한국서 여인숙이라면 기차역 근처 사창가를 연상하겠지만 유럽은 그런 곳이 아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여 관으로 꽤 크다. 독방 큰 것에 전용 샤워시설이 있고, 단지 화장실만 공동으로 쓰는데 이것도 두 서너 방이 함께 쓰기 때문에 늘 비어 있다. 독일식 아침밥은 영국식 다음으로 푸 짐해서 이것 저것 거의 다 나온다. 물론 숙박비에 포함되어 있다. 친절해서 관광안내와 말벗, 영어회화 입열기 상대로 더 없이 좋은 상대가 되어주는 주인이 꼭 있다. 게다가 도둑 맞을 일이 절대로 없는 이점이 있다. 나는 며칠 후 올 두 동 료의 방을 구해놓고 느긋이‘임상행동과학’의 마지막 章 원

고를 그 사이에 끝내 서울로 부쳤다. 점심을 나가 사 먹을 때 우리가 부르는 쏘세지가 독일말로‘부르스트(wurst)’ 을 처음 알았다.

2. 大會 意義

열리는 고장마다 IPA대회는 의의가 다 있겠지만 함부르 그대회의 의의는 아주 크다고 하겠다. 내가 이 의의를 파악 한 것은 그 후 한참 지나서 였지만, 여기서는 간단하게라도 집고 넘어가야겠기에 기술하려 한다. 그러려면 우선 역사를 알아야 한다.

독일의 분석은 1910년 초 스위스에서 돌아온 Karl Ab- raham이 베르린분석학회를 조직한 것으로 시작한다. 그 몇 달 뒤 뉴른베르히에서 첫 IPA대회가 열렸고, 그 뒤 1911년 바이마르, 1913년 뮨헨, 1922년 베르린, 1925년 바드 홈부 르그, 1932년 비스바덴에서 모두 여섯 번 IPA대회가 독일 땅에서 열렸었다. 세계최초의 정신분석연구소가 1920년 베 르린에 열렸는데, 이는 비엔나에서 보다 5년을 앞서서 였다.

총지휘에 Abraham, 돈 대고 운영하는데 Max Eitingon, 교 육홍보에 Ernest Simmel의 삼총사가 이 연구소를 꾸려나 가면서 키운 인재는 굉장하다. 꼽아보면 Franz Alexander (정신신체의학연구로도 유명), Gustav Bally(스위스인으로 뒤에 정신치료에서 Boss와 경쟁), Theresa Benedek, Si- egfried Bernfeld(Anna Freud가 한때 異性으로 좋아했었 다는 소문이 있다), Otto Fenichel, Robert Fliess(젊은 시 절 Freud의 친구 겸 동반자였던 Wilhelm Fliess의 아들), Erich Fromm, Frieda Fromm-Reichmann, Angel Garma (스페인과 아르헨틴의 분석 전파자), Georg Groddek(id로 번역된 Das Es라는 용어의 창시자), Karen Horney, Edith Jacobson, Lamplede Groot(네델란드의 분석 창시자), He- inrich Meng, Sandor Rado, Anny Reich, Theodore Reik, Rene Spitz 등이다.

나치의 대두로 독일분석학회는 1936년 IPA를 탈퇴했고, 1938년 강제 해산되었으며, 1935년부터 1944년까지 Ma- tthias Goring(나치 2인자 꾀링의 사촌동생)과 CG Jung이 조직해 이끌었던 국제정신치료학회의‘제국연구소(Reich- institute)’가 이를 대신하였다. 이차대전때 유태인 분석가 는 해외로 탈출하였거나 살해당했고, 밉보인 게르만족 분석 가들은 모두 동부전선 군의관으로 보내져 전사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원래의 분석가는 단 둘, 그중 하나인 Carl Muller- Braunsweig가 1950년 분석학회를 재건하고 IPA의 승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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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았던 것인데, 이 사람도 나치 부역의 前過로 말이 많았지

만 재건이 더 중요해 추궁만은 삼갔다 한다.

정통분석이 황무지가 된데다 이 틈을 탄 잡다한 학파와 공산사회주의에 물든 정신치료세력이 서독을 휩쓰는데 걱정 과 동정이 앞서 마침내 영국학회가 서독 영국군 점령지역인 함부르그에 출장교육을 시작했던 것이 뒤에 그곳 대학과 연 계되어 Michael Balint 분석연구소로 발전하여 전후 독일최 초의 연구소가 되었다. 현재 중심이 되고 있는 후랑크후르 트의 Sigmund Freud 연구소는 그 뒤 생겨난 것이다. 서독 학회의 재건은 속도가 빨랐다. 모국어로 쓰여진 Freud책은 이해가 쉬웠고, 동부전선서 전사한 게르만족 분석가들의 자 녀들이 아버지를 따른다는 신념으로 분석공부에 대거 진입 했고, 사회주의식 후한 의료보험이 개인분석료 상당부분을 대신 내주었던 것이 그 이유다. 그리하여 오늘 날 독일은 15개의 분석연구소와 북반부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회 원을 거느린 분석대국이 된 것이다. 그러니 회원들 모두가 젊다.

겉으로는 이렇게 화려해도 독일분석가들은 속으로 괴롭다.

즉 한 발자국 외국에 나가보면 동료 외국분석가들이 속마음 을 주지않고 슬슬 피한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 아니겠느냐 는 식, 그 민족 피를 속일 수가 있겠느냐는 식으로 대부분이 유태계인 분석가들이 독일인을 상대하지 않는 것 이었다. 유 럽과 미국 사는 유태인치고 나치에게 부모친척 잃지 않은 사 람들이 없으니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독일인은 IPA 중 추기구에 끼어주지도 않고, 또 끼어 달라고도 요구할 처지 도 못되어 어벙하게 겉으로만 도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던 것이다. 함부르그에 가서 도와준 영국분석가들도 알고 보면 영국학회의‘영국학파’에 속하는 非유태인들이었다.

위와 같은 의미에서 함부르그대회는 이차대전후 독일 땅 에서 처음 열리는 대회로 정신분석과 독일과의 화해, 유태 인과 독일인의 화해모색이라는 의의를 띠고 있었다. 그렇기 는 하나 대다수 유태인출신 분석가들은 분노와 두려움의 범 벅에서 이번만은 도저히 갈 수 없다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 서 예년에 비해 외국인 참석자가 줄었다는 것이다.

3. IPSO大會 參觀

만유기 서두에서 잠깐 언급했던 국제정신분석수련생기구 는 사람들이 그저 머리글자를 따서‘입소’라 부른다. 나는 이 IPSO대회에 엉뚱한 계기로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전말 은 이러하다. 위도가 높은 함부르그는 밤 늦게 해가 지고 새

벽 4시면 벌써 환해진다. 7월 26일 토요일 아침, 時差때문 에 고생하던 나는 아침 일찍 여관을 나서서 근처 식물원을 산책하다가 이왕이면 그 한가운데 있는 분석학회 회의장인 콘벤숀센터나 미리 구경해두자는 마음으로 다가 갔더니 웬 일인지 사람들이 꾸역꾸역 그리로 모여들고 있었다. 호기심 으로 들어갔는데, 정신분석이라는 글씨가 크게 써 있는 등 록처가 보였다. 나는 학회가 다음날 저녁에 시작하는 것으 로 여겼던 터라 순간적으로 당황 스러웠다. 시차적응 때문 에 날짜 가는 것도 몰랐나, 아니면 대회일정이 바뀐 것을 우 리가 몰랐나, 돈도‘손님’ 자격으로 450불이라는 적지않은 액수를 냈는데 이 무슨 낭패인가! 나는 접수구에 달려갔고, 거기서 내 이름이 사전등록명단에 없는 것을 발견하고 일대 항의를 해서 손으로 쓴 명찰을 현장에서 발급받아 허겁지겁 입장하고 보니 어딘지가 이상하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차근 차근 연단 프라카드와 내 손에 든 팜플렛을 보니 아니,‘입 소’가 아닌가. 나는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었다. 그래서 행운으로 알고 구경삼아 그냥 눌러 있기로 하였다. 삼 사백 좌석에 백 명 정도가 와 있었다.

대회 주제는‘분석수련중의 identity형성과정’으로, 만 이 틀 학술발표가 있다는 것인데 꼭 본대회의 축소판 같았다.

개회식도 있어 IPA회장, 독일측 조직위원장, 국제수련생기 구 위원장과 사무총장, IPA사무총장이 나란히 앉아 회의를 진행시켰다. Limentani회장이 개회사 중간에 이 모임의 유 래를 소개하면서 1960년대 말,“IPA총회때 젊은 분석가들 이 아우성을 치는 행패를 부려 분위기가 마치 老少對決로 가 는 것같아 1968년 국제수련생기구를 출범시켰고, 이런 학 술모임은 1971년 비엔나대회 때부터 시작하였다”고 하였 다. ′60년대 후반이라면 일본서는 동경대학 야스다(安田)강 당 방화사건과 좌익청년의사들의 동경대학 정신과병동 영구 점령농성, 미국과 영국의 反정신과운동, 로마서 열렸던 청년 정신분석가대회 등등으로 시끄러웠던 시절이었는데. IPA서 도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알았다.

독일 조직위원장은“독일 우리 선배들은 나치의 구박을 받 았고, 그뒤 우리는 영미의 구박을 받고 지내면서 半은 웃고 半은 울며 지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핵, 독재, 기계문명과 싸 워나가자!”는 말을 하였다. 사무총장 Laufer는“이번 대회 등록자는 2천명인데, 최초의 대회에 참석한 40명에 비하니 감격스럽다”라는 말을 했다. 수련생 총무는“이 자리에 모 인 수가 백명이 채 안되 실망스럽다. 그것도 절대다수가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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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람이니!”라는 한탄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미국,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헝가리, 북구에서 각기 두 서너명씩 오고 동양인은 나 하나뿐이었다. 유태계 수련생들이 외국서 대거 오지 않은 것이다.

오전 테마는 각 나라의 분석교육 실태보고로서, 여기서 나는 정보를 꽤 얻을 수 있었다. 먼저 서독의 두 남녀 수련 생이 나왔는데, 간추린다면 대개 이러하다.

1) 서독에는 12개 연구소가 있다. 의대만 나오면 응모자 격이 있어, 응모자가 퍽 많다. 모두 5백여명의 수련생이 현 재 있고, 아마 이 중 2백명 정도가 뒤에 최종시험에 통과해 분석가가 되지 않을까 한다.

2) 수련생은 졸업 전에 일주 4회 이상씩 3백시간 이상 치료한 증례 둘을 공개토론에 내놓아야 하고, 이를 논문으 로 써야 한다. 개인분석은 6백시간 이상을 받아야 하는데, 실제는 대부분이 8백시간 넘게 받고 있다.

3) 우리는 의료보험 덕을 톡톡히 본다.

4) 나치의 죄과 때문에 우리는 identity수립에서 큰 고통 을 받아오고 있다. 우리는 아버지는 전사하고 어머니 혼자 벌어 사는 가정에서 컸고, 그래서 내 분석가를 친아버지로 보는 경향이 농후하다. 오늘 주제도 이런 의미에서 의의가 있다. 우리는 피해의식과 죄책감의 범벅 속에서 산다.

헝가리에서 온 수련생은 이런 보고를 했다.

1) 헝가리 분석학회는 1949년까지는 존재하였었다. 현재 우리는 4명의 분석가가 IPA직속으로 있고, 학회조직은 공 식적으로 없는 폭이다. 단지 국립정신과학연구소 정신치료 과내에 분석그룹이 존재하며, 2명의 교육분석가가 6명의 피 분석가를 훈련시키고 있다. 분석은 주당 3회 한다. 문제점 은 우선 둘이다. 하나는 분석가와 피분석가가 서로 늘 만날 수밖에 없는 점이다. 또 하나는 학생이 볼 환자가 없다는 점 이다.

2) 분석료는 의료보험으로 낼 수가 없다. 따라서 개인부 담이다.

3) 분석공부 희망자는 늘고 있다. 현재로는 부다페스트에 서만 가능하다.

이번에는 오슬로에서 왔다는 동양인처럼 생긴 젊은 사내 가 뛰어나왔다. 노르웨이에서는 1961년에 독자학회가 섰고, 현재 회원은 50명으로 분석연구소가 하나 있다 한다. 교육 분석가는 회원선거로 뽑고, 분석공부하려는 사람은 우선 두 명의 교육분석가와 면접하여 승인을 거쳐 2년간 개인분석 부터 받은 뒤 연구소에 예비수련생으로 등록해서 1년간 학

과과정을 밟는다. 그리고 다시 두 명의 선생에게 심사받아 정식 연구생이 되며, 이때부터 치료를 시작한다는 말이다.

다음은 프랑스 여자 수련생 차례다. 학회는 1926년 출범 했지만 분석연구소는 1953년에야 비로소 생겨 현재 약 1백 명의 수련생이 있다 하였다. 그것과는 달리 Lacanians이 있 어 독자적으로 6개소의 연구소를 열고 있지만 이는 IPA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서는 의사와 非의사 다 분 석공부를 할 수 있으며, 대개는 먼저 자발적으로 교육분석 가에게서 개인분석을 받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 진행을 보아 중간에 연구소 입학이 결정된다. 이 경우는 선발면접이 없 다. 이렇게 교육분석가에게 미리 치료를 받지않은 사람으로 분석공부를 희망하는 사람에게는 세 명의 선생에게 면접을 보게 하여 통과되면 3년간 개인분석을 받게 한 뒤 재평가해 서 연구소 입학여부를 결정한다. 어떠한 경우든 개인분석은 보통 10년 정도가 걸린다는 것이 그녀 말이다.

끝으로 영국사람이 나왔다. 영국 전체회원수는 3백여명으 로, 다른 학파들이 공존하며, 전체회원의 3분지 1이 非의사 다. 연구소 수련에 응모하는 사람은 대개 이미 개인분석을 받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분석은 주당 5회를 엄수 하며, 연구소 첫 해는 예비수련생 자격이다. 또 첫 해에는 영아관찰(infant observation)이 필수로서, 첫 해 끝날 무렵 논문을 써서 내게 한다. 연구소 세미나는 매일 저녁 있고, 학생은 이 가운데서 골라 주당 두 세번 저녁 세미나에 참석 한다. 환자치료는 반드시 2명을 해야 하는데, 첫 환자는 異 性을 골라야 하고, 연구소 졸업에는 첫 증례는 2년 치료, 다 음 증례는 1년 정도 치료한 상태서도 무방하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점심시간 직전에 내가 IPSO 새 간부로 추대되는 해프닝 이 있었다.“일본에서 온 Doo-Young Cho를 아세아대표로 추대하자!”는 미국여자의 바람잡는 소리에 우뢰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던 일이 있었는데, 나는 신분을 밝히기도 쑥스럽고 게다가 워낙 급해 영어 말문이 막혀 멍청히 한동안 앉아있 는 웃지도 못하고 울 수도 없는 꼴을 당하였던 것이다. 그날 저녁은 함부르그 분석연구소에서 모든 참석자를 항구를 떠 나 엘베강을 오르내리는 船遊만찬에 초대하였지만 나는 빠 졌다. 일요일 낮에도 모임에 나갔는데, 독일이 주인이라서 그런지 주로 나대면서 마이크를 잡는 친구들은 이차대전때 독일에 우호적이었던 헝가리, 스페인, 남미에서 온 수련생들 이었다. 영미의 텃세에 눌려 왔던 터가 아니겠는가. 기차역 으로 두 동료 마중을 나가는 일요일 오후, 우연히 대회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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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인 서독의 Ohlmeier를 만났다. 후랑크후르트대학 교

수로, 텁텁한 사람인데,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당신네 한국 도 멀지않은 장래에 정식학회로 가입하게 될터이니 그리 걱 정하지 마시요”라고 격려하는 것이었다. 이 토요일과 일요 일 모임에서 안면을 익힌 서독 수련생들을 나는 그 뒤 IPA 대회때도 만났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들 일부가 교육분석가가 되어 점잖을 빼는 장면을 멀리서 보고나서부터는 내가 그들 을 피하게 되었다.‘씁쓰름하다’, 또는‘떫다’라는 말의 의 미가 이들과 마주칠 때마다 내게는 새삼 되살아난다. 어쩌 랴! 누구를 원망하랴!

4. IPA大會史上‘韓國’이라는 명칭의 첫 登場 이제는 본 대회 이야기를 하여야 겠다.

1985년 7월 28일 일요일은 한국정신분석학회에게 뜻 깊 은 날이다. 저녁 7시, 함부르그 콘벤숀센터에서 열린 제34 차 IPA대회 개회식에서 첫 연사인 Adam Limentani회장의 개식사 중간 무렵“유럽, 북남미는 물론 아시아에서, 저 멀 리 한국에서도 모였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올 때 내 코는 찡 하였다. 대회사상‘Korea’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것이기에 우리 吳, 金, 趙 삼총사의 감회는 말할 수 없었다. 웅장한 개 회식, 무대 위에 걸려있는 국제분석학회 프라카드, 대여섯 명 이 횡열로 나란히 앉아 무대 아래 2천명 참석자들을 정면으 로 보고있는 회장단 모습, 모두가 정장을 한 남녀노소 회원 들, 음악회처럼 기침 한마디 없는 그 정숙에 우리는 놀라고 또 감격했다.“아하! 이런 것이 서양지식인의 모습이구나”

라는 내 혼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독일학회장 겸 대회조직위원장인 Dieter Ohlmeier교수는 환영사에서“우리나라의 과거 행적 때문에 여기 오시기를 못 내 망설이셨던 분들이 많으셨으리라고 압니다. 그래도 와 주 셔서 감사합니다”라면서 송구스러운 자세를 취했다.

함부르그 시장인 von Dohnanyi가 나와 하는 환영사에서 는“1932년 비스바덴대회 이래 독일땅에서 반세기만에 다시 이 대회가 열립니다. 이 모두가 우리의 죄 때문이지요. 그러 고 보니 이차대전이 끝난지도 이제 꼭 40년이 됩니다. 우리 는 그동안 부모친지를 전쟁에서 잃고도 마음껏 울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금세기 3대 천재요 사상가인 Marx, Freud, Einstein이 모두 독일어를 모국어로 썼던 사람들인데, 이 무 슨 아이로니 입니까. 여기 이 도시의 한 구역인 바스벡크에 서 1886년, 프로이드가 결혼을 올렸다는 것도 참작해 주십 시요”라는 말을 하였다.

이어서 30분 정도의 바록크 음악이 실내악단연주로 있었 고, 곧 환영부페가 로비에서 있었는데 동양식 점잖음으로 뒤에 나간 우리에게는 음식차례가 오지 않았다. 탁자에 붙 어 꾸역꾸역 먹어대면서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서양분석가 들에서는 한 시간 전 신사숙녀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大食家인 나로서는 얼마나 화나고 실망했는지 모른다.

5. 絶妙한 대회주제;同一視

함부르그대회의 학술주제는‘동일시와 그 浮沈’으로, 그 밑에‘倒錯(perversion)에서 관찰되는 동일시’와‘나치운 동의 동일시’라는 중간제목이 있었다. 각 중간제목마다 두 서넛 연자와 연자 수에 맞는 토론자가 있고, 사회자도 토론 에 참가하며, 뒤에 다시 청중이 나서는 공개토론이 있는 심 층연구발표가 이 IPA대회의 특징이었다. 주제발표가 각 45 분씩, 토론이 각기 30분씩, 공개토론이 45분이니 시간이 모 두에게 충분하였다. 이런 양식은 매 대회마다 비슷하니 미 리만 좀 읽고 오면 아주 좋은 공부가 된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우리는 우리학회 공개강연때 발표시간을 연자에게 충분히 주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곳 대회때 발표자 는 혼자 나와 서서 원고를 읽어 내리는 형식을 취하기에 군 더더기 없이 시간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고, 슬라이드가 없 는 것 또한 특징이다. 인간관계와 내부심리가 연구대상인 정 신분석학회인지라 발표자와 청중 사이를 직접 연결시키는 것 같았다. 이에 반해 근자의 국내외 정신과학회서는 불을 끄고 연자가 청중에게 등을 돌린 자세에서 슬라이드만을 보 고 하는 발표가 주종을 이루니 여기서는 인간관계가 실종하 는 격이 된다. 그러니 우리가 한번은 반성해 볼만하다.

그런데 이 제목들이 절묘하였다. 서양사회서는 독일인들 이 유독 도착, 특히 性도착이 많다는 것과 최면에 걸린 듯 지도자와 독재자에게 잘 따르는 기질이 있다는 것으로 정평 나 있다. 이런 독일인을 두고 이 대회가 독일땅에서 열리면 서 마치 독일인들을 놀리는 듯한 제목을 택하였으니 말이다.

즉 영, 미, 불에 사는 유태인 분석가들이 주류를 이루는 IPA 학술기획위원회가 게르만족 독일인 분석가들을 한방 먹이면 서“자, 이러니 우리 다 같이 독일땅에 가서 미친척 본 때를 보이자구!”하고 손님을 끄는 高手를 두었던 것은 아닐까 라 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 오전은 두 연자와 토론자 발표에 이어 공개토론이 있 었는데, 청중 속에서 저마다 손을 들고 나와 영, 독, 불, 서 어로 여기저기서 핏대를 올려대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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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으면 적당히 끝날 터인데, 무엇이 그렇게 할 말이 많 은지 약속시간 45분이 지나서고 손드는 사람들이 서넛 더 있었다. 공개토론이란 저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반의 느긋한 점심시간이 끝나니 이번에는 2천명 청중이 이십 개 방으로 각기 흩어져 오전 주제발표내용을 다시 소그룹 심층토의하는 시간이 한 시간 반 있었다. 나는 영어밖에 몰라 미국인 Pulver가 주재하는 방에 들어갔다.

한 해 전 미국 Wong선생의‘꿈 세미나’ 때 그의 논문을 읽 은 터이라 낯익어 그 방에 들어갔던 것이다. 늦은 오후의 끝 시간은 탈진해서 로비에서 우물우물 보냈다. 오전의 주 연 자로 나왔던 프랑스 여자 McDougall이 그렇게 날리는 처지 인 것도 그때 로비서 수근거리는 소리를 듣고 알았다. 실은 그 여자가 이번 대회 학술기획위원장이었던 것이다. 오십대 말의 이 빠빳한 여자는 인물은 별로 였는데, 마른 중키로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빠르게 걷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 럽 분석가들, 특히 여자분석가들이 우상처럼 떠받드는 모양 이었다.

둘째 날 오후에 들어갔던 방은 두 사람이 좌장을 보는 소 그룹이었다. 그 한 좌장이 미국인 Kafka로, 서울서 金容植 선생에게 들어 아는 이름이다. 김선생의 미국연수때 NIMH 선임자문연구원으로 Kafka라는 여자정신과의사가 있어 자 기 남편이 분석가라 했었다면서 한번 김선생 이름을 대고 인사하면 어떻겠느냐고 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방은 영, 독, 불을 다 쓰는 방인데, 남자 Kafka는 영, 독을 쓰고 다른 영국인 여자좌장은 영, 불어를 쓰는데 모두가 기막혔 다. 특히 여자좌장이 기품 있고 자상하게 전체를 이끌어 인 상적이어서 나는 나오다 옆 영국인에게 좌장이 어떤 분이냐 물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를 알게 되었다. 바로 Dinora Pines선생이었고, 알려준 사람은 런던분석연구소를 졸업한 Brian Martindale선생이다. 이것을 인연으로 Pines선생은 1년 뒤 한국에 나와 세미나를 해주었고, Martindale선생은 몇 년 뒤 우리 朴敏喆선생을 카우치에 눕혔는가 하면 지금 은 영국에서 제일 젊은 교육분석가가 되어 있다. Kafka선생 부부하고도 이렇게 해서 알게 되어 뒤에 저서도 거저 받았 던 일이 있다. Kafka선생은 IPA부회장이 되어 몇 년 전 이 사회에서 우리를 간접으로 도와주기도 하였다.

이렁저렁 대회의 학술발표시간은 거의 빠지지 않고 다 들 어가 보았지만 처음이라 생소하고 흥분해서, 또 영어와 학 문 자체의 깊지 못함에 기인해 크게 남는 것이 없다 할까.

순전히 사람 구경과 회의 구경이 주였다고 하겠다. 끝날인

금요일 오후, 학술면에서 총정리 해준 미국의 Harold Blum 선생이 무척 인상이 좋았다. 이 분은 그 뒤 여러번 다른 모 임에서 보고 듣기도 했는데, 금년 4월 서울에서 우리 한국 회원들을 위해 세미나를 이틀에 걸쳐 열어 주면서 좌중을 휘어잡았었다. 십년 전부터 벼르던 행사였던 것이다.

6. 小集團 워크샵

본 대회 월, 화요일에 있었던 소그룹 워크샵에 대해 몇마 디 추가하련다. 오전시간의 전 참석자는 천오백에서 이천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방이 많고 크다 해도 전체를 수용하기 에는 벅찬데, 어찌하는지 궁금하였다. 그런데 빠지는 숫자가 많았다. 그 지역의 회원으로 눈도장 찍으러 나왔던 사람과 다른 볼 일 있는 사람, 외국인으로 오후관광을 노리는 사람, 느긋하게 점심 먹다 아예 그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 로비에 서 담소하는 사람, 회의운영자 등이 있기에 대략 반은 그렇 게 빠진다. 또 방마다 인원이 같은 것도 아니다. 언어와 주 관자의 인기에 따라 참석자 수가 들쭉날쭉 하다. 동그라미 를 그리고 앉아 토론을 벌리는데, 중간에 백지에 자기 이름 을 써 넣는다. 물론 나는 이 첫모임에서 벙어리였다. 나처럼 벙어리가 없는 것이 아니었는데, 북구인들이나 분석수련생 들인 듯하였다. 소득은 많았다. 그래서 그 뒤, 나는 되도록 이런 소모임에 끼려고 노력해서 더러는 벙어리신세를 면키 도 했지만 차차 이 모임 역시 事前등록을 하는 방향으로 변 해 서울서 미리 하기도 귀찮고, 또 우리 회원들의 등록 자체 가 느려 時限을 대지 못할 때도 있어 지난 몇 번은 못들어 갔다. 앞으로 우리회원은 여기 눈독을 드렸으면 한다.

화요일 늦은 오후에는 일본분석가 우시지마 사다노부(牛 島正信)선생의‘미지마 유끼오(三島由紀夫)의 武士性 분석’

이라는 논문발표가 있었다. 여기 우리 삼총사는 함께 들어 갔었다. 사무라이복장에 칼을 치켜든 미지마 사진을 연단에 크게 비치면서 강연을 하였는데, 듣는 사람들이 신기해 하 는 듯하였다. 일본인 참석자 모두가 들어왔고, 우리에게 고 마움을 표하였다. 그 뒤로도 우리는 일본인 발표때는 꼭 들 어가 준다. 동양인끼리 서로 돕고 지내야 하지 않겠는가. 서 양을 여행하다 보면 무슨 일 날때 끝까지 남아 도와주는 것 은 일본인들이고, 우리도 그렇게 그들을 돕는다. 牛島선생은 당시 후꾸오까의 니시조노(西園) 주임교수 밑에서 助교수로 있었고, 그 뒤 동경근처 어느 사립대학 주임교수가 되어 갔 다. 나와 그는 서로 신년인사를 해마다 교환하는 사이다. 강 연참석이 인연이 되어 그는 나를 그날 저녁 함부르그시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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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식당으로 초대하여 밥을 사 주었던 것이다.

곁드려 일본인에 관해 한 마디를 더 하겠다. 함부르그대회 때 일본은 자기 말이 대회공식용어가 아닌데도 특별히 일본 어 간이 통역부스를 설치하였는데, 대회에 참석한 일본인은 서넛 밖에 되지 않았다. 일본인 발표의 소모임에서도 모두 가 영어를 썼기에 대회 분위기가 일본어 통역부스로 웅성거 렸다. 이차대전의 戰友였던 독일측의 배려가 아닐까 라는 것 으로, 오히려 이 때문에 두 나라는 점수가 깎였다.

목요일 오후에 내가 들어가 본 곳이‘교육분석가와의 동 일시’라는 소모임이었다. 좌장 가운데 한 분이 제네바에서 온 Janice de Saussure였는데, 이 여자는 富, 貴, 才를 모 두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 귀족출신으로 제네바대학 언어 학교수 겸 그 고장 정신분석 선구자로 유명한 Raymond de Saussure의 부인 아니면 딸인 듯한 이 초로의 좌장은 4개 국 말을 고상하게 구사하면서 그 품위가 일급이었다. 동양 고전식으로 하자면‘月宮의 姮娥인가, 南海의 觀音인가’로 표현해야 할 정도다. 이 양반은‘수련생이 자연 교육분석가 를 동일시하기 때문에 교육분석가는 그런 좋은 모델로 행세 하려니 죽을 지경이다. 여하튼 교육분석가는 자기 자신 알 게 모르게 그렇게 되려고 애쓰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하였다.

다른 좌장인 미국 필라델피아의 Homer Curtis선생은‘수 련생이 자기 분석가의 기능적인 면에, 즉 개인이 아닌 선생 이라는 인간에 동일시함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이론적으로 그렇다 할 뿐이지 실제 당해 보면 죽을 지경이 다. 고로 분석가란 직업은‘불가능한 직업’이다. 수련생은 자칫 분석연구소의 정치투쟁에 말려들어가기 쉽다. 그러다가 뒤에 자주적이 되기는 하지만 … 수련생이 분석가를 고르는 경우는 왜 하필 그런 분석가를 고르느냐가 궁금하다. 내 경 험으로는 이는 수련생의 성격상의 문제다. 이렇게 고른 경 우,‘수련생의 저항욕구(resistance need)와 분석가의 자기 애적 역전이(narcissistic countertranceference)가 함께 있으면 문제가 생긴다’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미국의 Caldwell이라는 분석가가 손을 들더니“교육분석가의 정신 병리에 따라 분석의 결과도 다르게 될 때가 있지요. 분석가 가 신경증형(neurotic type)이라면 제자로 하여금 자기를 닮게 하여 자기 주위를 에워 싸게 만들면서 제자의 독립을 저지시키고 나아가 경쟁을 두려워 하게 만들며, 분석가가 反 사회형(psychopathic type)이라면 제자는 결국 反정신분석 으로 되거나 중도탈락하더군요”라는 말을 하였다.

7. 韓國人의 첫 學術發言

대회사상 한국인의 첫 학술발언이 바로 첫 참가한 이 대 회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자랑할 만하다. 본 대회 첫날인 월 요일 늦은 오후의 소모임의 하나로‘리어왕과 그 딸들’이라 는 제목의 연제발표를 캐나다 철학교수요 교육분석가인 Ch- arles Hanly가 하는 자리에 우리 金二泳회원이 들어갔다가 토론시간에 신분을 대고 나서“쉑스피어 원작에서‘Oh, no!

no! no!’라고‘no’소리를 주인공 리어왕이 막내 딸 시신을 부둥켜 안고 다섯 번 질렀는데, 왜 그랬는지요?”라는 질문 을 한 것이다. 좌중이 모두 이 동양의 질문자를 놀람의 눈으 로 쳐다보았으며, 연자는 자상하게 분석적인 견해를 답변해 주었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자리가 파한 뒤 Hanly선생은 일부러 김선생을 찾아와 악수와 인사를 나누고, 또 한국사 정과 이번 참석경위를 묻더라는 것이다. 그 전날 개회식 때 한국인의 첫 참가를 회장이 공표한터라 모두가 우리에게 호 기심과 동정적 태도를 가지고 있던 터에 웬만한 인문학적 소 양이 없이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쉑스피어 희곡의 미세 부분을 탁 건드린 폭이니 좌중에게‘한국인도 제법인데!’ 는 식의 인상을 심어 준 김선생의 공로는 말할 수 없이 컸 다. 뒤에 金회원의 말로는 희곡 본문에서‘Never’로 나오 는지‘no’라고 나오는지가 잘 기억이 되지 않아, 순간적으 로‘no’쪽을 집어 그렇게 물었는데, 金회원의 질문이 나가 자 마자 좌중 여기 저기서‘never’라고 고쳐주는 소리가 터 져나와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 들더라는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김선생과 Hanly선생은 친분을 이어나갔고, 2년 뒤 몬트리올대회서 반갑게 해후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 다. 이 Hanly교수의 위상은 IPA에서 점차 높아져 북미대륙 非의사출신 분석가들의 代父격이 되어 뒤에 IPA회장 자리 를 놓고 현재 회장이 된 Otto Kernberg선생과 결선투표까 지 가서 패한 바 있었다. 김선생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이 귀한 인연을 끝까지 우리학회를 위해 지켜 주었다. 또 우리 학회도 Hanly교수에게 대회때 마다 간단한 선물을 몇 번 드렸었고, 그 분도 IPA이사회에서 우리를 도와주곤 했었다.

용기와 패기에서 나온 金二泳선생의 학회발언은 이렇게 우 리학회에 영광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8. 몰라서 놓친 幕間行事재미

소위‘공식 어울리기(official social program)’라 하여 대 회기간 중 학회가 제공하는 이렁저렁의 회원社交를 겸한 문 화함양 어울리기가 큰 학회마다 있는데, 내 경험으로는 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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