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J. FOOD CULTURE26(6): 599-613, 2011 본 논문의 저작권은 한국식생활문화학회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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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멱적을 통해서 본 쇠고기 구이 조리법 변화에 대한 역사적 고찰 I - 1950년대 이전의 문헌을 중심으로 -
박채린1·권용석2·정혜정3*
1한국학대학원 민속학전공, 2상명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 3우송대학교 글로벌한식조리학과
A Historical Study on Changes in a Roasted Beef Recipe through Sulhamyukjuk (Part I) - Focus on literature published in Korea until 1950 -
Chae-Lin Park1, Yong-Suk Kwon2, Heajung Chung3*
1Department of Folklore, Graduate School of Korean Studies
2Research Institute of Natural Science, Sangmyung University
3Department of Global Korean Culinary Arts, Woosong University
Abstract
The aim of this research was to analyze changes in a Roasted Beef recipe through Sulhamyukjuk. In order to conduct this study, we investigated ancient and modern culinary literature published until 1950. The main method of research in this study was content analysis. There were 15 pieces of ancient and modern culinary literature used. In addition, the roasted beef recipes totaled 78. Analysis of recipe data published over the last 300 years showed two different types of Roasted Beef recipes: 1) Roasted Skewered Beef and 2) General Roasted Beef. In the case of Roasted type, the method was divided into three steps: 1) Coating of flour porridge after marinade in the source, 2) Three dippings into cold water during Roasting, and 3) Roasting again with Seasoning.
Key Words: Roasted Beef, Roasted Skewered Beef, Coating of flour porridge, dipping into water
I. 서 론
한국의 식품학계에서는 전통 육류구이의 문화 중 불고기 의 기원을 설하멱(雪下覓)에서 찾고 있다(김 2010). 설하멱은 고구려의 ‘맥적(貊炙)’에서 유래하며, 고려시대로 들어오면서 더욱 융성된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잊혀졌던 맥적이 조선시 대 ‘설하멱’으로 되살아난 것이라고 보고 있다(이 1985). 또 한, “설하멱은 다시 1800년대 말 ‘너비아니’로 그 이후 ‘불 고기’로 변하여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Kim 1995a). 그러나 설야멱과 너비아니 및 불고기의 조리기법상 의 특징과 그 상호 연관성에 관한 설명은 충분하지 못한 실 정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우육구이와 관련된 연구들을 살펴 보면 구이와 산적에 관한 우육 조리법의 역사적 고찰을 수 행한 연구(Kim 1995ab)와 근대문헌을 활용하여 문헌에 나타 난 불고기의 개념과 의미 변화에 관한 연구(Lee & Cho 2010) 및 근대 이후 100년 동안의 한국 육류구이 문화의 변 화를 조사한 연구(Lee 2010) 등이 보고되었다. 이 중 Kim(1995ab)의 연구논문에서는 조선시대부터 1945년 이전
까지의 문헌사료에 등장하는 육류관련 조리법의 유형, 출현 빈도, 육류구이의 방법 및 조리특징 및 사용재료 등을 다루 고 있었는데, 한국 문헌사료에 등장하는 우육구이류를 유형 별로 구분하고 각 유형별 제법의 특징을 세밀하게 분석한 논 저에 해당된다. 또한, Lee & Cho(2010)의 연구에서는 우리 나라의 국어사전과 근대이후의 조리서에 나타난 불고기에 대 해 고찰하였으며, 불고기는 너비아니의 조리법과 동일한 음 식으로 그 전통을 이어가며, 그 의미의 경우, ‘불에 구운 고 기’라는 사전적 개념이 지속되어 너비아니보다 그 범위가 더 크게 인식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설하멱과 우육구이류의 제법이 어떠한 조리학적 계보를 가지고 후대 의 육류구이 제법까지 연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의 과 정에 대한 연구는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본 연구 에서는 쇠고기 구이 문화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는 설하멱 제 법의 계승과 변화과정을 집중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본 고는 제 1보로 설하멱적의 제법이 후대 육류구이 조리법에 어떻게 계승·변화 되고 있는지를 1950년까지의 조리서를 대상으로 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Corresponding author: Heajung Chung, Department of Global Korean Culinary Arts, Woosong University, Daejeon 300-718, Korea Tel: 82-42-629-6481 Fax: 82-42-629-6497 E-mail: [email protected]
II. 연구 내용 및 방법
1. 연구의 범위 및 연구 방법 1) 연구의 범위
본 연구는 우리나라 우육구이류 중에서도 독창적인 조리 기법을 보이고 있는 설하멱적 제법의 계승 변화 양상을 조 리사적으로 분석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따라서 고조리 서에 소개된 우육구이류 중에서 설하멱적과 유사한 제법이 계승되거나 이로부터 분화되었다고 판단되는 우육구이를 모 두 분석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해 갈비 및 내장구이와 쇠고기 산적류 일부도 포함하여 쇠고기구이 문화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연구 방법
본 연구는 질적연구와 양적연구를 병용할 수 있는 내용분 석(Content Analysis)을 연구방법으로 활용하였다(Weber 1985; Oh 2000; Lee & Cho 2008; Han & Shin 2010).
내용분석은 커뮤니케이션분야에서 널리 활용되는 방법론으 로 문헌의 내용을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연구 방법 중에 하나이다(Holsti 1968; Kassarjian 1977;
Krippendorff 1980; Oh 2000; Chong 외 2007).
2. 연구 대상 조리서
본 연구에 활용된 조리서에 대한 내용은 <Table 1>과 같 이 나타내었다. 연구대상 조리서는 총 15권으로 1800년대 까 지 발행된 고조리서의 경우,『산림경제(1718)』,『증보산립 경제(1766)』,『규합총서(1809)』,『임원십육지(1827)』,『주 찬(1855년 이전)』 및『시의전서(1800년대 말)』까지 6권 이 었다. 또한, 1900년대 이후의 근대 문헌으로는 1917년의『(만 가필비)조선요리제법』을 비롯하여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1924)』,『조선요리제법(1931)』,『간편조선요리제법(1934)』,
『四季의 朝鮮料理(1935)』, 『신영양요리법(1935)』, 『조선 요리법(1939)』, 『우리음식(1948)』, 『조선요리대략(1950)』
으로 9권을 조사대상 문헌으로 활용하였다.
연구 대상 문헌을 조사한 결과 쇠고기구이의 유형을 크 게 3가지로 범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유형 I은 직화 구이 고기류로 후대로 가면서 꼬챙이가 사라지게 되는 부류이다.
유형II는 산적류라는 명칭을 가진 우육구이류인데 이 유형 II의 산적류는『시의전서(1800년대 말)』를 시점으로 새로 운 제법이 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다시 세분화하였다.
유형 II-1은 꼬챙이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산적류로, 유형 II-2는 다진 고기를 이용하여 만든 섭산적류로 분류 하였다. 본 연구는 설하멱적의 조리법의 계승양상과 관련 된 내용을 다루고자 하므로 유형 I이 주요 분석 대상에 해 당된다.
III. 결과 및 고찰
1. 18세기 조선시대 문헌의 설하멱 제법
1)『산림경제(1718)』와『증보산림경제(1766)』의 설하멱 적 제법 비교
본 연구에 활용된 조선시대 조리서 중 설하멱이라는 명칭 이 최초로 출현하는 것은『음식디미방(1670년 경)』으로 확 인된다. 그러나 이는 설하멱이라는 음식의 제법을 소개한 것 이 아니고 ‘가지느름적’과 ‘동아적’ 조리법 중 가지와 동아를 꼬챙이에 꿰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한 비유로서 ‘설아멱처럼 하라’고 기재된 것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설하멱의 명확한 정체와 조리법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산림경제(1718)』로 볼 수 있다.
『산림경제(1718)』는 설하멱적(雪下覓灸)을 소개하면서 이 제법의 전거(典據)를 <서원방(西原方)>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에서는『산림경제(1718)』에 표기된 인용문의 전거를 대부분 서명으로 보고 <서원방>을 현존하지 않는 서 적 혹은 중국고서로 분류되어 왔었다(이 1982; 주 2005). 그 러나 한국고전번역원의 해제기사에 의하면 <서원방>은 조리 법이 실린 책이 아닌 ‘기타 여러 가지 방법(其他諸方)’ 중의 하나에 해당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원방> 뿐만 아니라
<속방(俗方)>이나 <문견방(聞見方> 등도 마찬가지로 오랜 기 간을 각 지방의 수령(守令)으로 재직했던 저자가 어떤 지역 이나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비법을 채록한 것으로 추정하 고 있다(안 2006; 한국고전번역원 편역 1982). <서원방>의 서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 으나 『산림경제(1718)』를 필두로 이 <서원방>의 제법이
『증보산림경제(1766)』 및 그 이후 간행된 『고사신서(攷事 新書, 1771)』, 『농정회요(農政會要, 1830년경)』, 『민천집 설(民天集設, 1752~1822년)』, 『임원십육지(1827)』에 이르 기까지 지속적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은 <서원방>이 18세 기에 문인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전해지 던 우리 고유의 제법이었을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단, 『증 보산림경제(1766)』에서는 <서원방> 제법을 소개한 뒤 양념 에 밀가루를 섞어 풀을 만들어 이것을 고기에 발라 굽는 독 창적인 방법을 한 가지 더 제안하고 있다. 이를 간단히 도식 화하면 다음 <Table 2>와 같다.
2) 18세기 문헌사료의 기록을 통한 설하멱적의 조리사적 정의 18세기 문헌사료의 기록을 통해 설하멱적의 제법을 정리 하면 <Table 3>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이를 다시 조리사적 으로 정의해 보면 쇠고기를 재단하여 칼집을 낸 뒤→밀가루 즙을 섞은 양념에 재우고→꼬챙이에 꿰어→약한 불에 굽다 가→냉수침지하기를 3번 반복한 뒤→마지막에 2차로 양념을 발라가며 굽는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2. 조선시대 설하멱적법과 『거가필용(1200년대 말)』의 쇠 고기구이(燒肉)법의 비교
조선시대 설하멱적법과『거가필용(1200년대 말)』의 쇠고 기구이(燒肉)법에 관한 비교·분석한 내용은 <Table 4, 5>
와 같이 나타내었다.
설하멱이 <서원방>이라는 우리나라 고유의 우육구이 조리
법이 적용된 음식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좀 더 면밀하게 살피기 위해『산림경제(1718)』 육류조리법의 주요 전거지이 자 원나라 초기 조리문헌인 『거가필용사류전집(居家必用事 類全集, 1200년대 말)』(이하 『거가필용(1200년대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설하멱적의 고유 제법을 처음 으로 기술한『산림경제(1718)』, 그리고 마늘즙이라는 독창
<Table 1> Literature and topics of study
구분 간행시기 집필자 유형 유형-1 유형 -2 빈도
(山林經濟)산림경제 1718 홍만선 雪下覓
(설하멱) 1
증보산림경제
(增補山林經濟) 1766 유중림 雪下覓
(설하멱) 牛脅炙
(우협적) 牛心炙
(우심적) 雜散炙(잡산적)
醬散炙(장산적) 5
규합총서 1809 빙허각이씨 설하멱 1
임원십육지
(林園十六志) 1827 서유구 雪下覓
(설하멱) 牛脅炙
(우협적)
炙(산적) 雜散炙(잡산적) 醬散炙(장산적) 汁散炙(즙산적)
6
(酒饌)주찬 1855년
이전 저자미상 雪花覓
(설화멱)
(肉炙 또는 즙산적)汁散炙 常散炙(상산적) 散炙(염통콩팥산적)
醬散炙(장산적)
5
시의전서 1800년대
말 저자미상 너 안이 가리구이 염통구이 육산적
약산적 뭉치구이 6
조선요리제법 1917 방신영 너비아니 산적 섭산적 3
조선무쌍신식 (朝鮮無雙新式요리제법 料理製法)
1924 이용기
【양雪夜覓】양서리목
【간雪夜覓】간서리목
【쟁인고기】너 안이
【가리쟁임, 갈비구의 脅灸】
【牛心灸】염통구의
【魚灸】방자구의
산적 【 炙, 散炙】
잡산적 【雜散炙】
집산적 【汁散炙】
염통산적 【牛心散炙】
【醬散炙】장산적 11
조선요리제법 1931 방신영 우육구이
(너비안이) 가리구이 염통구이 산적
염통산적잡산적
섭산적장산적 8
간편조선요리제법 1934 이석만 너비아니 산적
잡산적 섭산적
쟝산적 5
朝鮮料理四季의 1935 鈴木商店 가리구이 산적
잡산적 섭산적 4
신영양요리법 1935 이석만 산적
염통산적 섭산적
장산적 4
조선요리법 1939 조자호 고기너비아니
염통너비아니 가리구이 콩팥구이 염통산적
고기산적 섭산적 7
우리 음식 1948 손정규 너비아니 갈비구이 염통구이 섭산적 4
조선요리대략 1950 황혜성 너비아니
【보통 굽는
불고기】 갈비구이 방자구이
염통구이 산적
잡산적 섭산적
장산적 8
*우족적(증보) 및 죡구이(시의전서)는 삶아서 굽는 형식이므로 본 분석대상에서 제외하였음
*순수 쇠고기구이류만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누름적, 화양적과 같이 타재료와 함께 꿰어 굽는 산적류도 분석대상에서 제외함
*음식명은 원문이 한자본인 경우 한자를 먼저 표기하고 ( )안에 한글을 병기, 국한문 혼용과 한글본인 경우 원서의 표기법을 그대로 따름
*『간본 규합총서(1869)』는 『규합총서(1809)』의 이본이라 분석대상에서 제외하였음
*『임원십육지(1827)』의 잔소육방은 『거가필용(1200년대 말)』을 인용한 중국 제법이므로 제외하였음
*산적은 한자어로 炙 혹은 散炙으로 표기되고 있는데 은 ‘셈놓을·산, 수(數) 놓을·산, 셈대· 산’이라 하여 막대기가 여러 개 모여 있는 모 습을 뜻한다(이성우, 조선시대 조리서의 분석적 연구, 262쪽).
적 양념법을 새로이 추가한 『증보산림경제(1766)』는 실학 자들이 쓴 저서답게 중국의 고기구이제법 중에서 당시 조선 에 적용할 만한 방법들도 선별하여 인용하였는데, 육류조리 법의 개요를 다루면서 그 중 하나로 설하멱과 유사한 쇠고 기 구이법을 소개하고 있다. 바로 ‘소육(燒肉)’이 그것인데
『거가필용(1200년대 말)』을 전거로 하는 이 소육법을 설하 멱적 조리법과 비교하면 몇 가지 차이와 유사점이 나타난다.
『거가필용(1200년대 말)』의 ‘소육(燒肉)’과 『산림경제 (1718)』 및『증보산림경제(1766)』의 설하멱은 ‘양념에 재우 고’, ‘꼬챙이에 꿰어’, ‘약한 불에 굽다가’, ‘마지막에 양념을
발라가며 굽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대략 공통점이 나타난 다. 즉, 둘 다 양념에 재운 고기를 꼬치에 꿰어 직화로 굽는 방식인데, 이 때 꼬치는 팬이나 번철과 같은 열전달 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직화방식의 구이에서 손잡이 역할을 하는 보 조도구로 쓰였을 것으로 사료된다(Kim 1995b). 중국과 몽골 을 지배했던 원나라의 문헌인 『거가필용(1200년대 말)』이 나 『산림경제(1718)』, 『증보산림경제(1766)』 등에서 직화 식 고기구이에 꼬챙이를 사용하는 방식은 한국이나 중국, 몽 골 등 여러 나라의 고기구이법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가필용(1200년대 말)』과 우리나
<Table 2> Comparison of recipe regarding Sulhamyukjuk of『Sanrimgyeongje (1718)』 and『Jeungbosanrimgyeongje (1766)』 by <Seowonbang>
구분 원문 해석 전거(典據)
(山林經濟, 산림경제 1718)
1) 取牛肉 作片 2) 以刀背之使軟
3) 揷串 和油鹽壓置 待其盡入 4) 用慢火 燒之
5) 乍浸水 旋出 更燒 如是者三 6) 又塗油荏 而更燒之 極軟味佳
1) 쇠고기를 편으로 썬다 2) 칼등으로 두들겨 연하게 한다
3) 꼬챙이에 꿰어 기름과 소금을 섞어 꼭꼭 눌러 재워 양념기를 흡수시킨다
4) 뭉근한 불로 굽는다
5) 물에 잠깐 담궜다가 곧 꺼내어 다시 굽기를 3번 6) 기름과 깨를 발라 다시 구우면 아주 연하고 맛이 한다
좋다.
<서원방 (西原方)>
증보산림경제 (增補山林經濟,
1766)
1) 取牛背肉 등심살 切廣二寸許 長六七寸許 1) 厚如手掌許
2) 以刀或背或刃 輕輕搗軟 3) 揷串 和油鹽醬壓置 待其盡入
4) 用火炙之 [火若太熾 恐焦卽以薄灰 盖之]
5) 至肉極熱 取起急浸於冷水中 [更炙如是者 凡三次]
6) 又塗油荏 而更炙之 極軟味佳
1) 쇠고기 등심살을 너비 2치, 길이 6~7치, 두께 손바닥만한 정도로 자른다
2) 칼등이나 칼날로 가볍게 두드려 연하게 한다 3) 꼬챙이에 꿰어 기름과 소금을 섞어 꼭꼭 눌러
재워 양념기를 흡수시킨다.
4) 불에 굽는다(불이 너무 세면 태울 염려가 있으니 불에 재를 약간 뿌림).
5) 고기가 다 익을 정도가 되면 들어내 급히 찬물에 담갔다가 다시 굽기를 3차례 한다.
6) 기름과 깨를 발라 다시 구우면 매우 연하고 맛이 좋다.
1) 一方 用眞 合諸物料 調油醬水 作薄 糊 塗而炙之
1) 餘法上同
2) 少加蒜汁 則尤軟美 而人或有厭臭者
1) 밀가루를 여러 재료와 섞고 기름과 장과 물에 개어 엷은 죽처럼 만들어 고기에 발라 굽는다.
2) 마늘즙을 약간 곁들이면 더욱 연하고 좋지만 사람들 중에는 더러 이 냄새를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증보산림경제 (增補山林經濟, 1766)에서 새로 제시한 방법
* 『임원십육지(1827)』의 설야멱은 <서원방>과 『증보산림경제(1766)』의 마늘즙 제법을 동시에 전거로 하여 수록하고 있어 별도 분석하지 않 았음
<Table 3> Comparison of recipe regarding Sulhamyukjuk of『Sanrimgyeongje (1718)』 and 『Jeungbosanrimgyeongje (1766)』
구분 산림경제((山林經濟, 1718)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1766)
크기 편으로 썬다(作片). 너비 6 cm치, 길이 약 20 cm, 두께 손바닥 정도(厚如手掌許)
고기손질
칼로 가볍게 두드린다(以刀背之使軟).
꼬챙이에 끼운다(揷串).
양념에 재운다(和油鹽醬; 기름, 소금, 장)
<양념법 1> 양념에 재운다(和油鹽醬; 기름, 소금, 장)
<양념법 2> 밀가루를(眞) 양념(諸物料油醬水)에 섞어 풀을 만 들어(薄糊) 고기에 바름(塗).
마늘즙을 넣기도 한다(浸於冷水).
굽기 약한 불(慢火)에 굽는다.
찬물에 담갔다가 다시 굽기를 3번 한다(浸冷水).
마무리 마지막에 기름과 깨를 발라(塗油荏) 다시 굽는다(更炙).
라 조리서 중 특히 『증보산림경제(1766)』의 우육구이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차이점을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 어 설명할 수 있다.
양념의 종류에 있어 설하멱은 『거가필용(1200년대 말)』
에서 사용하고 있는 술과 식초를 쓰지 않고 있으며 대신 마 늘즙 첨가를 권하고 있다. 이는 설하멱에 전통적인 양념법을 적용하여 중국 양념방식과 차이를 보이고자 한 것이라 사료 된다. 또한, 밀가루즙을 양념에 첨가하여 재우는 조리기법은 다음에 설명될 풍미상승 기술과도 연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굽기 방식에서도 조리과학적으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직화방식으로 육류구이를 할 경우 표면과 내부의 익는 정도 에 차이가 생기게 되어 표면은 빨리 익고, 내용은 익지 않는 상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Mcgee(2004)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한 바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Table 4>와 같다.
McGee(2004)가 제시한 ‘육류조리의 풍미향상 기법’을 참 고하여 분석해 볼 때 1)의 밀가루로 싸서 보호막을 만드는 방법은『거가필용(1200년대 말)』의 소육(燒肉)과 설하멱 모 두가 채택하고 있다. 다만 『거가필용(1200년대 말)』은 밀 가루 옷을 입혀 구운 뒤 먹기 전에 이를 벗겨내고 있어 고기 의 풍미를 유지하는 코팅제로써만 밀가루 옷을 사용한 반면
『증보산림경제(1766)』의 설하멱에서는 ‘밀가루 양념풀’을 조리가 완료된 후에도 벗겨 내지 않고 있다. 따라서 밀가루 풀에 혼합된 양념까지 먹게 됨으로써 조리과정 중 코팅제 역 할과 함께, 보조적인 맛도 제공하는 역할까지 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고기구이 시 육즙을 유지하여 풍미 향상과 연육을 위한 또 하나의 방편인 2)와 3)의 온도 조절 기법은 설하멱에서 3차 냉수침지를 반복하는 과정이 이해 해당되는데 소육에는 보 이지 않고 있다. 또한, 4)의 지방층 코팅법 역시 소육에는 사 용하지 않고 설하멱에서만 보이는 방법이다. 설하멱에서는 마지막 굽기 단계에서 기름과 깨를 발라 맛을 상승시키면서 기름 코팅에 의한 표면 응고와 수분증발을 지연시키는 방법 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육류구이의 풍미를 위한 조리기술에 있어 중국의 ‘소 육’이 밀가루코팅이라는 1단계에 머문데 비해 우리나라의 설 하멱은 총 3단계(밀가루 양념풀→냉수침지→기름·깨 코
팅)에 걸친 조리기법을 활용함으로써 풍미상승에 더 섬세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음을 드러내 주는 것이라 사료된다.
물론 『거가필용(1200년대 말)』에도 ‘참깨 및 기름 코팅 법’과 침수법을 사용한 육류구이제법은 존재한다. 밀가루 옷 을 입히지 않고 굽는 일반 ‘고기구이(炙肉)’ 법에는 ‘참깨코 팅법’을 사용하는데, “고기를 구울 때(灸肉) 참깨꽃(芝麻花) 을 가루로(末) 만들어 고기 위에 뿌리면 기름이(油) 흐르지 않는다(不流)”고 설명되어 있어 지방과 수분의 보유를 목적 으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침수법(浸水法)은 ‘양 갈비 구이(灸羊脇骨)’에 적용되고 있는데, “양갈비살(羊脅) 한 대를 두 단으로 가르고, 망사( 砂) 가루 한 움큼을 끓는 물 에 담가(沸湯浸) 따뜻하게 둔다(放溫) 여기에 구운 고기를 담 갔다가 굽기를 세 번 반복 한 다음(再 再炙 如此三次) 좋 은 술에 잠깐 담갔다가(好酒略浸) 철판(金産) 위에 놓고 한 번 뒤집으면 바로 먹을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돼지 갈비, 양갈비, 노루고기 및 토끼고기 구이법에 모두 3차례 수 침(水浸) 뒤 술에 담갔다가 굽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으며, 양 기름[羊脂]을 사용한 지방 코팅법도 이용되고 있다. 따라서 고기 표면의 과숙과 수분증발을 막기 위한 수침 및 코팅법 자체가 설하멱만의 독창적 제법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거 가필용(1200년대 말)』의 육류구이법이 음식별로 각각 그 기 법을 분리하여 적용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의 설하멱은 하나의 음식에 이 3단계(밀가루 양념풀→냉수침지→기름·
깨 코팅) 기법을 한꺼번에 적용하여 더 효과적인 풍미 상승 꾀하였다는 점에서 그 변용·발전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 다고 사료된다.
3. 설하멱적의 명칭 고찰
설하멱적의 명칭에 관한 고찰은 <Table 6>과 같이 나타내 었다. 우리나라 문헌으로서는 『음식디미방(1670년 경)』에 처음 ‘설아멱 꿰듯이 하여’라는 말이 등장한 이래 남성 문인 들이 쓴 한문 조리서인 『산림경제(1718)』와 『증보산림경 제(1766)』, 『고사신서(攷事新書, 1771)』, 『농정회요(農政 會要, 1830년경)』,『민천집설(民天集設, 1752~1822년)』,『임 원십육지(1827)』에 설하멱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증보 산림경제(1766)』 이후의 네 문헌은 모두 『증보산림경제 (1766)』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기에 조리법은 동일하
<Table 4> Method of roasting by Cooking Science appeared in the book of Mcgee (2004)1) Mcgee(2004)의 저서에 나타난 조리과학적 육류 구이 방법
1) 육류 표면을 베이컨이나 밀가루 반죽 등으로 싸서 육류 표면에 직접적인 열이 닿지 않도 록 보호막을 만들면 열 침투를 지연시킬 수 있다.
↓
2) 조리를 2단계로 나누어 첫 번째 단계에서는 높은 온도에서 표면을 익힌 후 두 번째 단계 에서 낮은 온도로 중심부를 서서히 익혀준다.
↓
3) 육류가 완전히 익기 전 열원으로부터 분리하여 여열로 서서히 조리 되도록 한다.
↓
4) 육류표면을 지방층으로 코팅하면 수분 증발이 차단되어 조리 시간을 1/5 정도 절약할 수 있다.
1)Mcgee(2004)의 저서를 토대로 논자 재작성
나 유사시기 문헌에서 모두 설하멱법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 은 그만큼 유행하였던 음식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 을 것이다. 그러나 설하멱의 명명법은 문헌마다 조금씩 차이 가 나는데 『규합총서(1809)』를 쓴 빙허각이씨는 설하멱은
‘눈오는 날(雪下) 찾는다(覓)는 말이니 근래 설이목이라고 하 는 것은 음을 잘못한 말이라’고 지적하면서 당시 설하멱이 옳은 표현임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주찬(1855 년 이전)』에서 ‘설화멱(雪花覓)’,『농정회요(農政會要, 1830 년경)』에서는 ‘설중멱(雪中覓)’『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
에는 ‘서리목(雪夜覓)’이라 하였는데, 서리목은 설야멱(雪夜 覓)이라는 한자와 병기되어 있어 이를 한글화하는 과정에서 변형된 표기인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해동죽지(1925)』는
‘설리적(雪裏炙)’이라고 표기하면서도 이것이 눈 오는 겨울 밤하늘 아래에서 술안주가 되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하여 눈 (雪)과 관계된 음식 명칭인 ‘설하적’ 또는 ‘설야적’과 의미적 연관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설하멱의 멱(覓)을 중국의 『수신기(搜神記, 4세기 경)』에 나오는 맥적과 연관지어 멱(覓)이 맥(貊)을 계승한 것으로 맥 적을 불고기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도(이 2000) 있으나 사료 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확언하기는 어렵다. 17~18세기 고 조리서에 소개되고 있는 설하멱은 동시대 그림에서 그 먹는 모습이 포착되는데 그 공통점은 ‘눈(雪) 오는(下) 밤 (夜)’과 의 연관성이었다.
<Figure 1>은 조선시대 임득명(1767~1822)이 그린 설리대 적(雪裏對炙)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조선시대 중인들의 모임인 옥계시사(玉溪詩社) 회원들이 겨울밤에 모여 설리적 을 먹는 모습을 담은 것으로《옥계십이승첩(玉溪十二勝帖)》
에 실린 12개의 그림 중 10월의 풍경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인물이 작게 묘사되어 있어 그림의 좌상단에 설리대적(雪裏 對炙)이라는 글씨가 없다면 무엇을 하는 모습인지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 모임에 참석했던 인물들의 글 을 통해 그림속의 구체적 정확을 파악 할 수 있다. 이인위는
“화로를 둘러싸고 고기를 구우며 서로 취하게 하네 말술로 마음껏 즐겨도...”라는 시를(허 1992), 노윤적은 “白華茅堂相 與對 擁爐梅下俱閒態 滿盤魚肉滿樽蓼 痛飮終宵寒足耐”(정 2002)라는 글을 남겼는데 ‘흰꽃(雪) 핀 초가에 서로 마주 보 고 매화 아래 화롯불 끼고 한가로이 않았네. 쟁반에 고기와 생선 가득하고 요주(蓼酒, 여뀌로 만든 술)는 잔에 가득하 네. 밤이 새도록 흠뻑 마시며 추위를 이기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어 바로 설하멱을 먹는 장면임을 증명해 준다.
<Figure 2>은 김홍도가 그린 18세기 작품으로 나뭇가지에 눈이 소복이 걸려 있는 겨울 밤, 야외에서 번철에 고기를 구 워먹는 사람들의 모습이며 <Figure 3>은 마치 김홍도의 작 품을 모사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어 비슷한 시기의 작품으 로 판단된다.
조선시대는 우금정책으로 쇠고기를 사사로이 도축하는 것 은 금지되어 있었으나 18세기 이후 우피무역의 성행, 쇠고기 수요의 급증, 속전(贖錢)1)징수의 폐단 등으로 인해 그 강제 성은 유명무실해졌고 관(官)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쇠 고기 도축은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었다(김 1993; 김 1996;
양 1995). 18세기 그림에 나타나는 고기 먹는 장면은 이러한 쇠고기 소비 풍습과 무관하지 않으며 『동국세시기(1849)』
에서 10월의 풍속으로 난로회를 소개할 정도로 중인 이상 계 층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쇠고기의 음성적
<Table 5> Comparison with recipe of roasted beef of『Geogapilyong (late 1200's)』 and recipe book published in Korean 구분 거가필용(1200년대 말) 증보산림경제(1766)를 토대로 한
우리나라 설하멱 제법의 특징 비고
표기명 소육(燒肉) 설하멱(雪下覓)
구이 형태 대꼬챙이(簽子)에 뀀 꼬챙이(串)에 뀀
1차 양념
1) 기름(油), 소금(鹽), 장(醬), 갖은양념 (細物料) 술(酒), 초(醋)에 재움 2) 묽은 밀가루풀(薄糊) 바름
→먹을 때 떼어냄
1) 기름(油), 소금(鹽) or
2) 밀가루(眞)+양념+기름장물(油醬水) or
3) 기호에 따라 마늘즙(蒜汁)
양념 종류 차이 밀가루옷 용도 다름
구이 방식
(직화) 숯불(炭火)에 구움 손을 빨리 놀려 구워냄
뭉근한 불에 (慢火) 냉수침지(浸冷水)는 설하멱에 만 있음
냉수 침지(浸冷水) 3차
2차 양념 기름(油)과 깨(荏)를 발라 다시 구움 밀가루옷 없을 경우 참깨꽃가
루(芝麻花末)을 고기위에 뿌려 기름 안 흐르게함
*‘우리나라 설하멱’이라함은 <서원방>에 새로운 조리법을 추가하여 후대 설하멱 제법의 기본이 되고 있는 『증보산림경제(1766)』 의 제법을 모 델로 하였다.
*한문본이므로 원문을 편의상 한글로 번역하되 원문의 한자어 표기를 병기하였음
1) 쇠고기를 도축하는 대신 벌금 형태의 세금을 공납하는 제도
식용이 성행했다고 해도 소를 농번기에 잡아먹을 경우 농사 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농한기가 되어야 그나마 소비가 가능하였다. 따라서 농한기인 9월 이후 소비가 급증 하였는데 이와 같은 사실은 1920년대 일본 정부가 조사한 쇠 고기 소비 추세 조사 자료를 통해서도 입증 된다(경성부[編]
1927). ‘우육은 농가의 번한에 따라 출고량이 달라지는데, 4, 5월 번농기에는 감소하고 9월경 점차 증가하여 농한기에는 최대 수요를 보인다. 8월, 2월, 정월에 손수 기른 소를 돈으 로 바꾸므로 우시장이 한층 붐빈다.’고 기록 되어있다. 이 자 료가 분석한 대로 농한기가 되어야 쇠고기를 먹기가 수월해 졌을 것이고 불에 구워먹는 조리법의 특성 상 설하멱은 가 을 이후부터 눈 오는 겨울철에 먹는 것이 제격이었을 터이 니 이러한 정황은 자연스럽게 음식의 명칭과도 연관될 수 있 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4. 19세기 이후 문헌에 나타난 설하멱적 제법 비교
『산림경제(1718)』와『증보산림경제(1766)』 이후 남성 문
인들이 쓴 한문 조리서 중 ‘설하멱적’ 제법이 출현하는 문헌 사료는『고사신서(1771)』,『농정회요(農政會要,1830년경)』,
『민천집설(民天集設,1752~1822년)』,『임원십육지(1827)』 등 이 있다. 그러나 모두 『증보산림경제(1766)』의 내용을 그 대로 인용하고 있기에 모두 18세기 문헌의 ‘설하멱적’으로 통칭하여 분석하였다.
설하멱적은 『규합총서(1809)』, 『주찬(1855년 이전)』으 로 이어지면서 제법이 조금씩 변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 세기초반의 조리서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에는 이전 시대 문헌의 설하멱 제법과는 달라진 내장(肝, 月襄)구이 로서 ‘서리목(雪夜覓)’의 제법이 소개되어 있으며, 민속자료
<Table 6> Comparison of the name of Korea's Sulhamyukjuk
명칭 출처 저술연대
설아멱 음식디미방 1670년경
설하멱(雪下覓)
산림경제(山林經濟) 1718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1766
고사신서(攷事新書) 1771
규합총서(閨閤叢書) 1809
민천집설(民天集設) 1752~1822년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1827 설중멱(雪中覓) 농정회요(農政會要) 1830년경
설화멱(雪花覓) 주찬(酒饌) 1855년 이전
서리목(雪夜覓)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1924 설리적(雪裏炙) 해동죽지(海東竹枝) 1925
<Figure 2> Kim Hong-do (1745-1815?).《Eight-panel folding screen:
genre scenes》 <Snowy day Night Party (雪後夜宴)>, painted on silk, 108×49 cm, Collection of France Guimet Museum
<Figure 3> Artist Unknown (The mid-19th century),《Night Party (夜宴)》, painted on silk, 76×39 cm, Collection of National Museum of Korea
<Figure 1> Im deuk-myeong (1767~1822),《Ok-gye-sipyi-seung- cheop (fresh streams and 12 screens 玉溪十二勝帖)》
<Snowy day roasting beef (雪裏對炙)>, 1786, Chinese Ink tint, 24.5×19 cm, Collection of Samsung Museum of Publishing
인『해동죽지(1925)』에서는 각 지방 명물을 소개하면서 언 급하고 있었다.
이들 19세기 이후 문헌의 설하멱 제법은 18세기 문헌의 제 법과는 차이가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Table 7>와 같다. 위 문헌의 제법 변화를 보면 『규합총서(1809)』는 18 세기 문헌의 제법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벙거짓골 고기 처럼 얇게 썰어 유장에 재운 뒤 숯불을 약하게 하기 위해 재 를 덮어 굽는데 너무 익기 전에 냉수에 담갔다가 굽기를 3 번 한다. 다시 유장과 파, 생강, 후추 등의 향신양념을 발라 구어야 연하다’고 기록하고 있어, 양념법에서 2차 양념을 할 때 파, 생강, 후추 등의 향신양념이 추가로 첨가된 것을 확 인할 수 있었다.
이 양념법은 『주찬(1855년 이전)』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18세기 문헌 중 선택적으로 사용하였던 <Table 5>의 1)+2)+
3)의 조리법을 모두 한꺼번에 적용하면서도 양념의 구성이 풍부하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참기름, 간장의 기본양념은 물론 생강, 파, 초피, 마늘 등의 향신채소와 잣가루까지 첨가 하여 시의전서 이후 문헌에서 보이는 ‘갖은 양념’의 완성 형
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
의 서리목은 18세기 설하멱 제법과 비교했을 때 양념법 일 부 및 꼬챙이에 꿰는 구이형태만이 유사해 실질적으로 18세 기 설하멱과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용 부위 또한 살코기가 아닌 내장구이여서 명칭만을 계승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해동죽지(1925)』는 한국 전통 풍물을 소 개하기 위한 목적에서 발행된 서적으로 그 중 각지 명물 소 개 부분에 개성의 명물로서 설리적을 소개한 것이다.『조선 무쌍신식요리제법(1924)』이 갈비구이에 설하멱 명칭을 사용 하지 않은 것과 달리 『해동죽지(1925)』는 갈비 및 염통구 이 모두를 설하멱으로 통칭하면서 직화구이와 냉수침지를 병 행한 제법을 소개하고 있다. “개성부(開城府內)에서 전해 오 는(古來) 명물로(名物) 쇠갈비(牛肋)나 염통(牛心)에 기름(油) 과 향신양념을(薰) 하여 굽는데(炙) 반쯤 익으면(半熟) 냉수 (冷水)에 잠시(一 時) 담가(沈) 센 불에(熾炭) 다시 구워(更 炙) 익히면(至熟) 눈내리는 겨울밤에(雪天冬夜) 술안주 고기 로(酒物肉) 아주 연하고 좋다 (甚軟味甚佳)”라고 기록되어 있 는데 조리서가 아니기 때문에 소개된 조리기법이 당대의 것
<Table 7> Analysis regarding process of change in recipes of Sulhamyukjuk
구분 18세기 문헌1) 19세기 문헌2) 20세기 문헌
규합총서 주찬(酒饌)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해동죽지(海東竹枝)
표기명 설하멱(雪下覓) 설하멱 설화멱(雪花覓) 서리목(雪夜覓) 설리적(雪裏炙)
재료 살코기 살코기 살코기 <간(肝), 양(月襄)> <소갈비(牛肋)
쇠염통(牛心)>
구이형태
꼬챙이(串) (길이 6-7촌, 너비 2촌,
두께 손바닥) 꼬챙이 꼬챙이(串)
(길이 4-5촌, 너비 1-2촌,
두께 3-4푼) 꼬챙이 꼬챙이에 대한
언급 없음
양념 1차
1) 기름(油), 소금(鹽) or
2) 밀가루(眞)+양념+기름장물(油醬水) or
3) 기호에 따라 마늘즙(蒜汁)
기름간장
• 참기름(眞油)·간장(醬)
•·소금(鹽)
• 밀가루(眞末)
•·양념<생강(薑)
•·파(蔥)·초피(椒)
•·마늘(蒜)·잣(栢)>
• 깨소금(荏鹽)
깨소금,기름, 후추가루
기름(油) 향신채소( )
초벌구이 (직화)방식
뭉근한 불에(慢火) 센 숯불 빨리 구움(急炙; 센불) 기름과 깨소금 발라 잠깐 구움(석쇠)
반숙(半熟)냉수→
침지(沈于冷水)→
센 숯불(熾炭)
냉수 침지 3회 (浸冷水) 냉수 침지 3회 × × 잠깐(一) 냉수 침지
(沈于冷水 )
<횟수 불명>
2차 양념 및 재벌구이
기름(油)과 깨(荏)를 발라 다시 구움(更燒)
기름(油)·쟝(醬)·
파(蔥)·생강(薑)·
후추 발라 다시 구움
× × ×
1)18세기 문헌: ‘설하멱적’이라는 항목이 출현하는 문헌사료로『산림경제(1718)』와『증보산림경제(1766)』 이외에도『고사신서(1771)』,『농 정회요(1830년경)』, 『민천집설(1752~1822년)』, 등이 있으나 모두 『증보산림경제(1766)』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기에 모두 18세기 문 헌의 ‘설하멱적’으로 통칭하여 분석하였음
2)『임원십육지(1827)』 역시,『증보산림경제(1766)』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기에 모두 18세기 문헌의 ‘설하멱적’으로 통칭하여 분석하였음
·원문에 한자표기가 명확히 되어 있는 경우만 병기하였음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에도 쇠갈비구이(脅炙)가 있으나 저자가 이를 설하멱으로 보지 않았기에 표에서 제외하였음
을 채록한 것인지 전통의 계승 측면을 부각하기 위한 차원 에서 전통적 설하멱 조리법을 소개한 것인지에 대해 명확하 지 않은 측면이 있다(이 2006). 이상의 조리서에 나타난 설 하멱 제법의 변화상을 통해 그 경향성을 판단해 볼 때, 설하 멱적식의 조리기법은 조선시대 후기(19세기)까지 조리법에 약간의 변화를 수반하면서 ‘쇠살코기를 꼬챙이에 꿰어 갖은 양념을 해 구워내는 방식’으로 존속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5. 국내 조리서에 나타난 육류구이법과 설하멱적 제법의 계승 형태
1) 우육구이류 조리기법의 계통 분류
국내 조리서에 나타난 육류구이법 중 설하멱적 제법과 유 사한 조리기법을 가졌던 우육구이가 어떻게 분화되어 가는 지 그 계통 분류를 <Table 8>과 같이 나타내었다. 설하멱의 명칭과 더불어 18세기 제법의 특징인 <양념에 재워 밀가루 풀 입히기(양념 자체에 밀가루즙이 첨가되기도 함), 냉수 침 지하기, 2차 양념 입혀 다시 굽기>및 <꼬챙이에 꿰어 굽기>
방식까지 그대로 전수된 것은『규합총서(1809)』, 냉수침지 를 제외한 조리법이 적용된 것은 『주찬(1855년 이전)』이 마지막으로 확인된다. 그 이후 문헌사료에서는 설하멱 제법 의 조리기법 중에서 ‘양념 재워 굽기’, ‘침수법’ 및 ‘꼬치구 이법’ ‘밀가루 옷’ 등이 각각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육류구이 방법에 확장 적용된 사례를 상당수 발견할 수 있었다. 18세 기 설하멱적 제법의 이 4가지 특징 중 어떤 것이 소멸하고 어 떤 것이 계승되고 있는지 다음 장에서 항목별로 살펴보았다.
2) 18세기 설하멱적 제법의 특징과 분화과정 (1) 양념에 재워 밀가루풀 입히기
『거가필용(1200년대 말)』의 소육과 달리 우리나라 설하 멱적은 밀가루 코팅을 구운 뒤 벗겨내지 않고 양념과 섞어 바름으로써 코팅 효과는 높이면서 벗겨내지 않고 함께 먹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양념법은 『증보산림경 제(1766)』,『임원십육지(1827)』 및『규합총서(1809)』의 설 하멱은 물론이고, 『주찬(1855년 이전)』의 산적류 제법에도 응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보산림경제(1766)』에 설하멱방과 함께 기록된 다른 음 식 중 산적류인 잡산적(雜散炙)은 ‘설하멱적법 대로 구으라’
로 설명되어 있기에 설하멱적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설하멱적과의 차이를 더 엄격히 구별하자면 밀 가루풀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Table 9>. 그러나 『증보산 림경제(1766)』의 설하멱이 밀가루즙을 사용한 것과 사용하 지 않은 것 2가지 조리기법을 소개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설하멱이 반드시 밀가루풀 옷을 필수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 니기에 산적과 설하멱의 조리기법상 차이를 ‘밀가루 풀 옷의 유무’로 구별 지을 수 없으리라 판단된다. 더욱이『주찬(1855 년 이전)』을 마지막으로 구이류·산적류 통틀어 밀가루를
양념에 섞는 조리기술은 나타나지 않고 있어 우육구이제법 에서 밀가루즙은 더 이상 특징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지 못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주찬(1855년 이전)』의 산적은『증보산림경제(1766)』의 산적보다 설하멱적의 조리기법과 더 유사하였다<Table 8>.
양념재료의 구성은 더 풍부해졌고, ‘밀가루풀 옷입히기’도 있 으며, 마지막 구울 때 2차 양념을 하는 방식도 동일한 것으 로 나타났다. 각각의 조리법에는 꼬챙이 꿰는 설명을 모두 표기하지 않았지만 장산적 조리법의 마지막에 ‘이와 같은 방 법으로 한 산적은 모두 꿰어 굽는다(雖依法散炙皆貫炙也)’라 고 하여『주찬(1855년 이전)』의 산적이 꼬치구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었다. 즉 설하멱적과 산적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성우교수의 주장대로 오히려 밀 가루즙의 사용은 구이·산적류 조리법이 분화되는 과정 중 누름적에서 전유어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이 1982).
즉 우리나라의 우육구이 문화는 밀가루를 제외한 기타 향신 채소와 기름, 장 등이 어우러진 갖은 양념에 재워 굽는 방식 으로 정착된 것이라 사료된다.
(2) 초벌구이 후 냉수 침지하기
『증보산림경제(1766)』와 이를 인용한『임원십육지(1827)』
는 설하멱을 냉수침지하여 반복 굽기 하는 동시에 『증보산 림경제(1766)』의 갈비구이(牛脅炙) 역시 같은 방식으로 냉 수침지법을 활용하고 있었다<Table 10>. 냉수침지는 조리기 법 상 표면의 과응고와 수분증발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이다. 고기가 질길 경우 익히는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므로 잠깐씩 냉수에 침지하여 온도를 떨어뜨려주면 고기가 연해 지게 된다. 이와 같은 방식이 고기를 연하게 하기 위한 방편 이었다는 사실은 냉수침지법을 적용하여 구운 우육구이법의 마지막 문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현존하는 조 선시대 문헌 중 냉수침지법을 사용한 우육구이는 규합총서 를 마지막으로 사라진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에서는 위의 『증보 산림경제(1766)』, 『임원십육지(1827)』와 마찬가지로 갈비 구이에 냉수침지법을 적용하였는데 이는 『조선무쌍신식요 리제법(1924)』이『임원십육지(1827)』를 감본(監本)으로 한 책으로 전통 제법을 다시 상고하고 시대의 조류와 융화하려 는 정신을 가지고 쓰여진 조리서’(이 1981)로서 『임원십육 지(1827)』의 우협적을 그대로 계승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파 악된다. 이와 같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이 『임 원십육지(1827)』 제법을 가능한 그대로 유지하려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양서리목, 간서리목 등 설하멱의 명칭을 그대로 계 승한 음식에 냉수침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조선무 쌍신식요리제법(1924)』 중 가리구이의 냉수침지법은 해당 시 기의 우육구이 조리법 경향에서 벗어나는 예외적인 사례로 보아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Table 8> Classification regarding recipe of roasted beef 구분증보산림 경제임원십육지규합총서주찬시의전서조선요리 제법 조선무쌍신 식요리제법 조선요리 제법
1931
간편조선 요리제법 四季의 朝鮮料理 신영양 요리법
조선요리법우리음식조선요리 대략 시기18세기19세기19세기후반20세기 꼬치없음牛脅炙1) (갈비)牛脅炙1) (갈비)
가리구이 너비아니
너비아니3)
가리구이 【脅
炙】1)
너비아니 방자고기 염통구이 【牛心炙】
가리구이 (번철
, 석쇠)
너비아니 염통구이
너비아니가리구이가리구이
가리구이 너비아니
3) 염통구이
갈비구이 방자구이 너비아니
4) 뭉치구이섭산적섭산적3)
섭산적 쟝산적
섭산적섭산적섭산적섭산적섭산적 꼬치에 뀀
雪下覓1,2) (설하멱)
牛心炙 (염통
)
雪下覓1,2) (설하멱)설하멱1,2)雪花覓2) (설화멱)
양서리목3) 【양雪夜覓】 간서리목 【간雪夜覓】염통구이 雜散炙2) (잡산적)
醬散炙 (장산적
)
炙 (산적)
雜散炙 (잡산적
)
醬散炙 (장산적
)
汁散炙 (즙산적
)
醬散炙2) (장산적) 常散炙2) (상산적) 散炙 (염통콩팥 산적) 汁散炙 (肉炙 또는 즙산적)2)
염통산적 약산적
3)산적3)
산적(석쇠)5) 【炙, 散炙】 잡산적 【雜散炙】 집산적 【汁散炙】
산적 염통산적 잡산적
산적 잡산적 산적 잡산적
산적 염통산적염통산적 고기산적산적 1) 설하멱의 냉수 침지법 계승한 항목임 2)밀가루즙을 양념에 첨가하여 재운 양념기법을 표시한 것임 3) 조리법 상에 ‘석쇠’에 굽는다고 적힌 것에만 표시한 것이므로 조리서상에 표기되어 있지 않더라도 실제 구이를 석쇠에 하였을 가능성은 존재함 4)조리법은 설명되어 있지 않고 ‘너비아니’라고 조리명만 소개되었으며, 옆에 ‘普通굽는 불고기’라고 표기되었음 5)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의 조리법 설명에는 꼬챙이에 꿴다는 말이 없으나『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이 『임원십육지(1827)』의 조리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 하면 꼬챙이에 꿴다는 표현이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炙이라는 한자어를 병기하고 있는 것은 산가지 형태로 꿰었다고 볼 수 있다.
(3) 2차 양념하여 재벌 구이
냉수침지법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초벌구이와 재벌구이가 통합되어 한 번에 굽는 방식으로 간소화되고 밀가루즙이 양 념에 들어가는 것도 사라지고 있었다. 화력의 변화 시기 역 시, 초벌구이는 약한 불에, 재벌구이는 센불에 하던 조리방 식의 소멸 시기와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18세기 문헌사 료에서는 설하멱적을 모두 뭉근한 불에서 구웠던 것에 비해
『규합총서(1809)』 이후에는 센 불에서 굽기 시작하였다.『주 찬(1855년 이전)』에서는 ‘모든 고기구이(諸肉炙)는 센불에 (盛火) 빨리(急) 굽는(炙) 것이 좋다(可也)’고 하여 설하멱적 을 포함한 모든 육류구이법이 모두 센불에 직화로 굽는 방 식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Table 11>. 또한, 본 연구 에 활용된 조리서 중 『주찬(1855년 이전)』 이후의 모든 조 리서에 소개된 육류구이 조리법에서는 불의 세기 자체를 논 하지 않고 있어 화력(火力)의 강약 조절이 조리기법에서 더 이상 주의사항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와 같이 설하멱 고유의 특징적 조리기법인 3단계 연육 (軟肉) 기술<양념에 (밀가루즙이 첨가되기도 함) 재워 밀가 루풀 입히기→냉수 침지하기→2차 양념 입혀 다시 굽기>이 사라지게 된 현상은 두 가지 가설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 다. 첫 번째는 쇠고기의 육질이 이전 시대에 비해 부드러워 지게 된 계기가 발생하였을 가능성이다. 두 번째는 조리기구 인 석쇠의 발달로 고기 표면 온도를 쉽게 조절할 수 있게 되 었다는 점을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가설은 조리법 이 적힌 문헌사료만으로는 밝혀내기 힘든 문제이므로 본고 에서는 논외로 하고, 두 번째의 석쇠발달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석쇠에 올려놓고 구울 경우, 손잡이 하나만을 잡고도 열원인 숯불로부터 거리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꼬챙이에 꽂아 하나씩 구울 때에 비해 효율적으로 익힘 정 도를 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석쇠의 사용은 꼬챙이와도 연관된 문제이므로 이는 우육구이용 조리기구의 발달과 굽 기 방식의 변화 부분에서 자세히 다루려한다.
<Table 9> Characteristics of cooking process regarding other roasted beef among『Jeungbosanrimgyeongje (1766)』
구분 재료
양념법 굽기
살코기부위 기타 부위
雜散炙(잡산적) 牛肉
(쇠고기)
心(염통) 腸(내장)(콩팥) 千葉(천엽)
(양념즙)汁物料 →꼬챙이에 꿰어 설하멱법대로 구움(炙如雪下覓法)
醬散炙(장산적) 牛肉
(쇠고기) 臟(내장)
腑(부아) 油醬
(기름장) →구움→말림→감청장(甘淸醬)을 달여 포도즙처럼(如葡萄汁) 만든다→고춧가루(蠻椒)+산초(川椒)를 넣음
牛脅炙(우협적, 갈비구이) 牛脅(갈비) 불명 →침수(浸水)법 3차
牛心炙(우심적, 염통구이) 牛心(염통) 불명 →꼬챙이(喉管)에 꿰어 7부 정도만 구워야 건조하지 않아 맛 있음(乾燥則反無味)
<Table 10> Description regarding three dippings into cold water during Roasting appeared in ancient culinary literature
원문 해석 출처(조리법 명)
(상략)…極軟味佳 극히 연하고 맛이 좋다 증보산림경제(1766)와 산림경제(1718)의 설하멱
(상략)…尤軟美 더욱 연하고 맛이 좋다 임원십육지(1827) 설하멱
(상략)…浸冷中旋浸旋炙如是三五番… (중략)… 極脆美 극히 무르고 맛있다 임원십육지(1827)의 우협적방 (상략)…이쳐로 세 번을 긋 후 고쳐…(중략)…구어야 연긁니라 구워야 연하니라 규합총서(1809)의 설하멱
<Table 11> Characteristics of cooking process regarding other roasted beef among『Juchan(before 1855)』
구분 재료 양념법
살코기부위 기타부위 양념 코팅 굽기
(육적 속칭肉炙 즙산적(汁散炙)
(연육)軟肉
廉桶(염통), 千葉(천엽), 傍腸(방장), 昆子孫 (곤자손), (양), 肝(간)
蒜汁(마늘즙), 蔥(파), 薑(생강), 胡椒 (후추), 川椒末(천초), 柏子末(잣가루),
荏鹽(깨소금),眞油(참기름), 醬(간장)
(밀가루)眞末 →깨(荏子), 밀가루즙(末汁) 발라구움
散炙(산적)
(일반산적)常散炙 肉薄
(얇은고기) 荏鹽(깨소금), 薑(생강), 蔥(파),
胡椒(후추), 川椒 (천초) 眞末
(밀가루) →유장(油醬) 발라 구움
散炙(산적) 廉筒(염통), 肛胞(항포) 藥鹽(양념) 미상 →소금(鹽), 유장(油醬) 발라 구움 醬散炙(장산적) 軟肉
(연육) 荏鹽(깨소금), 鹽(소금), 油(기름) 眞末
(밀가루) →꼬챙이(串)에 꿰어 구움
(4) 우육구이용 조리기구의 발달과 굽기 방식의 변화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쇠고기 구이용 조리기구의 종 류와 형태는 <Table 12, Figure 4>에 나타내었다. 조리서 중 에서 구이용 조리기구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 문헌은
『음식디미방(1670년 경)』으로 동화적 조리법에 ‘설아멱 꿰 듯이 하여… 쇠 노화 만화로 무 게 구우 ’라는 표현이 나온다. 『음식디미방(1670년 경)』의 적쇠가 어떤 것을 의 미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조선시대 간행된 사전류를 살 펴보았다. 『음식디미방(1670년 경)』의 편찬시기와 비슷한 연대인 1690년에 간행된『역어유해(譯語類解)』라는 사전을 보면 ‘적상(炙床)’ 항목에 ‘고기굼 석쇠’라고 기록되어 있 다. 한편 1798년에 간행된『재물보(才物譜)』에서는 ‘적상 (炙床); 쇠 ‘적탱(炙 구이버팀목); 적쇠’로 표기하여 석 쇠와 적쇠를 다른 것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이 1798).
따라서 적쇠는 걸개형태의 구이기구에 해당 되고, ‘ 쇠’에 서 ‘ ’이 ‘가느다란 것이 얽히고설킨 모양’3)을 의미하는 말 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석쇠 형태와 유사한 형태는 적상(炙 床)일 것으로 추측된다.
『재물보(1798)』와 비슷한 시대에 편찬된 『임원십육지 (1827)』의 <섬용지(贍用志)>에 수록된 ‘취찬지구(炊 之 具)’편에는 보다 구체적인 구이기구 형태가 명시되어 있다.
적쇠 즉, 적철(炙鐵)은 ‘철(鐵)로 만든 것으로 볶음쟁반(炒槃) 같이 생겼는데 유전과(油煎果), 강정( ), 떡( 餌) 생선(魚), 고기(肉)를 굽는데 사용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어 볶음쟁반 인 초반(炒槃)은 ‘솥뚜껑 뒤집은 모양(鍋盖之仰者)’이라 부연 하여 결국 적철의 모양이 그물형의 석쇠가 아닌 솥뚜껑 형 태의 기구임을 밝히고 있다.
한편, 번망(燔網)은 ‘철로 사방을 바로 잡고(鐵作方 ) 구 리선(銅線)으로 그 안(內)에 망(網)을 만든 것으로 생선이나 고기를 굽는 기구(燔炙魚肉之具也)’라고 설명하였으니 이것 이 바로 요즘의 석쇠와 유사하다. 번망(燔網)과 유사한 것으 로 번가(燔架)가 있는데 ‘철로 사방을 바로 잡고(鐵作方 ) 그 안에 1촌 간격의 철조(鐵條)를 매단 것으로, 작은 손잡이 가(小柄) 달려있어 생선(魚)과 고기구이(肉)에 사용 한다’고 되어 있어 번망(燔網)이 그물망 형태의 촘촘한 석쇠인데 비 해, 번가(燔架)는 철창형태로 생긴 구이 기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Figure 4>.
우리말로 화로걸개라 할 수 있는 노교(爐橋)는 ‘두 개의 철 사(兩鐵) 머리(頭)부분을 둥글게 연결하여(綴連環) 화로 위에 (爐上) 다리처럼 만들고(作橋) 거기에 생선이나 고기를 굽다 가(燔炙魚肉) 나중에(而後) 번망(燔網)이 나와 여기에 생선 (魚)과 고기구이(肉)를 구웠다(始可置燔網等器而燔之)’고 설 명한 것으로 보아 이 책에 소개된 여러 가지 구이기구 중 석 쇠인 번망(燔網)이 가장 진화된 형태의 구이기구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이상의 문헌 기록을 종합해 볼 때 17세기 후반에도 그물 모양의 ‘ 쇠’는 존재하였으나 적상(炙床)이라고도 불렀으 며, 19세기 초엽까지 솥형태의 적쇠는 그물형의 석쇠와 별 개의 조리용구로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Figure 2, 3> 에서도 그물형태의 석쇠가 아닌 엎어진 솥형 태의 적철에 고기를 굽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를 종합해 볼 때, 17세기 문헌인 『음식디미방(1670년 경)』
의 적쇠는 적철(炙鐵) 즉, 솥모양의 철판일 가능성이 높다.
『임원십육지(1827)』의 <섬용지(贍用志)>를 통해 19세기 초 반부터 그물망형의 번망이 기존 구이용 기구의 대체물로 사 용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나, 조리서에서 석 쇠라는 용어를 사용한 기록이 보이는 것은『시의전서(1800 년대 말)』 이후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꼬챙이에 꿰어 적철에 굽는 설야멱은 시의전서부터 보이 지 않음과 동시에 석쇠를 우육구이에 이용한 사례도 『시의 전서(1800년대 말)』 약산적법에야 처음 등장하고 있다<Table 13>. 석쇠가 산적이 아닌 우육구이류에 처음 사용된 것은
『조선요리제법(1917)』의 너비아니부터이다. 설야멱에 석쇠 를 사용한 것은『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의 간서리목 과 양서리목에 이르러서인 것으로 나타난다. 19세기 초반 경 에 번망, 즉 석쇠의 존재를 언급했던『임원십육지(1827)』 조 차도 <정조지>편의 설하멱이나 갈비구이(우협적) 조리법에 는 석쇠가 이용되었다는 내용이 없으며 비슷한 시기의 문헌 인『규합총서(1809)』,『주찬(1855년 이전)』에서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19세기 초반까지의 문헌인 『임원십육지(1827)』, 『규합 총서(1809)』, 『주찬(1855년 이전)』에 등장하던 설하멱 조 리법은 이후 문헌에서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19세기후반
『시의전서(1800년대 말)』 이후의 조리법에서 쇠고기구이제 법은 꼬치가 없는 구이류와 꼬치에 꿴 산적류가 명확하게 구 분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기적으로 바로 석쇠를 우육구이에 사용한 때와 일치하고 있다. 이때를 기점으로 꼬 챙이가 사라진 우육구이 제법에서는 설하멱적식 제법에서 보 였던 냉수침지과 밀가루즙 사용이 중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의전서(1800년대 말)』의 우육구이류(가리구이, 염통구 이, 너 안이, 약산적) 중에서는 약산적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기에 잔칼질을 하여 양념에 재워 굽는 간단한 방법을 채 택하고 있었다<Table 13>. 『시의전서(1800년대 말)』의 우 육구이요리는 약산적을 제외하고 꼬치를 이용하지 않았다.
석쇠 구이 방식이『시의전서(1800년대 말)』에서 처음 나타 나므로 더 이상 꼬치가 필요 없어졌기 때문으로 추정해 볼 수 있겠으나 약산적은 석쇠에 굽는 방식인데도 불구하고 여 전히 꼬치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의해 볼만하다. 왜냐하
2)『역어유해(1690년 경)』에서는 柳箱을 ‘ ’이라고 하였다. 버드나무가지를 엮어 만든 상자를 ‘ ’이라 하는데 그물 모양으로 엮인 상태를 의미하는 옛말이 다. 국립국어원(http://stdweb2.korean.go.kr/search/List_dic.jsp)의 풀이에 의하면 ‘얽히고 설키다’의 현대적 의미는 ‘가는 것이 이리저리 뒤섞이다’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