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재개발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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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발표 : 연산군 자료 찾기
연산군에 얽힌 비사
2006050229 박경원
갈림길 선택으로 살아남은 장순손
연려실기술 제6권 (연려실기술 :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李肯翊:1736~1806)이 지은 조선 시대 사서)
연산조 고사본말(燕山朝故事本末) 갑자화적(甲子禍籍)
장순손(張順孫)은 중종의 상신이다.
장순손은 젊었을 때 얼굴이 돼지 대가리처럼 생겼으므로 친구들이 그를 ‘돼지 대가리’라고 조롱하였다. 연산군이 어느 기생을 사랑하였는데 어느 날 종묘의 제사를 지낸 뒤에 제사에 쓰고 난 고기를 궁중에 드렸더니 기생이 보고 웃었다. 연산주가 까닭을 물으니 기생이 “성 주사람 장순손의 얼굴이 돼지 대가리와 같으므로 사람들은 장을 가리켜 ‘돼지 대가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웃었습니다.” 하자 연산군은 크게 노하면서, “장순손은 반드시 너의 애부로 구나. 빨리 돼지 대가리를 베어 바치라.” 하였다. 공은 이때 벼슬에서 물러나와 있었는데 잡 아 오라는 명을 받고 길을 떠났다. 오다가 함창 공갈못 아래 갈림길에 이르니 고양이가 길 을 넘어갔다. 이를 보자 공은 도사(都事)에게 청하기를, “내 평생에 과거보러 갈 적에도 고 양이가 길을 넘는 것을 보면 반드시 합격했습니다. 오늘 우연히 이 고양이를 갈림길에서 보 았고, 이 길로 가면 매우 빠르니 저 길을 따라 가기를 원합니다.” 하였더니 도사가 이를 허 락하였다. 현에 이르러 선전관이 ‘돼지 대가리’를 빨리 베어 오라는 명령을 받들고 상주까지 내려왔다는 말을 들었다. 은밀히 중종반정(中宗反正)할 기미를 알았으므로 천천히 가서 조 령에 이르렀더니 선전관도 되돌아와 조령에 이르렀는데, 벌써 반정이 성공하였으므로 장순 손은 마침내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프랑스언어문화학과 2012046032 박찬솔
<김처선>
1. 연산군 11년 을축(1505,홍치 18) 4월1일 (병진)
전교하기를,
“내관(內官) 김처선이 술에 몹시 취해서 임금을 꾸짖었으니, 가산(家産)을 1)적몰(籍沒)하 고 그 집을 못 파고 그 본관(本貫)인 전의(全義)를 혁파(革罷)하라.”
하였다.
2. 연산군 11년 을축(1505,홍치 18) 4월4일 (기미)
의정부에 전지(傳旨)하기를,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는 그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야 하거늘, 요사이 간사한 내시 김처선 이 임금의 은혜를 잊고 변변치 못한 마음을 품고서 분부를 꺼리고 임금을 꾸짖었으니, 신하 로서의 죄가 무엇이 이보다 크랴! 개벽(開闢) 이래로 없었던 일이거늘, 어찌 천지 사이에 용 납되랴! 이에 중죄로 처치하고 그 자식에게까지 미치게 하며 그 가산을 적몰하고 그 가택을 못 파고 살던 고향을 아울러 혁파하여, 흉악하고 간사한 것을 씻어내서 뒷일을 경계하노니,
2)중외(中外)에 3)효유하노라.”
하였다.
3. 연산군 11년 을축(1505,홍치 18) 6월16일 (기사)
전교하기를,
“동·서반(東西班)의 대소인원(大小人員) 및 군사 중에 김처선(金處善)과 이름이 같은 자가 있거든 모두 고치게 하라.”
하였다.
4. 연산군 12년 병인(1506,정덕 1) 3월12일 (임진)
전교하기를,
“죄인 김처선(金處善)의 집은 당일로 철거하여 못을 파고 죄명을 돌에 새겨 묻으라.”
하였다.
1) 적몰: 중죄인(重罪人)의 재산을 몰수하고 가족까지도 처벌하던 일.
2) 중외: 조정(朝廷)과 민간을 아울러 이르는 말.
3) 효유: 깨달아 알아듣도록 타이름.
연산군 관련 소재 찾기
2013048235 문화콘텐츠학과 정수진
1. 연산군의 희생자들 : 환관(宦官) 김처선(金處善)
김처선은 관직이 정2품이었다. 연산주가 어둡고 음란하였으므로 김처선이 매양 정성을 다하 여 간하니, 연산주는 노여움을 속에 쌓아 둔 채 겉으로 나타내지 아니하였다. 일찍이 궁중 에서 임금이 처용(處容) 놀이를 하며 음란함이 도를 지나쳤다. 김처선은 집안 사람에게, “오 늘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고 들어가서 거리낌없이 말하기를,“늙은 놈이 네 분 임금 을 섬겼고, 경서와 사서를 대강 통하지마는 고금에 전하처럼 행동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하였다. 이에 연산주가 성을 참지 못하여 활을 당겨 쏘아서 갈빗대에 맞히자, 김처선은 “조 정의 대신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늙은 내시가 어찌 감히 죽음을 아끼겠습니까. 다 만 전하께서 오래도록 보위에 계시지 못할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하였다.연산주는 화살 하나를 더 쏘아 맞쳐서 공을 땅에 넘어뜨리고, 그 다리를 끊고서 일어나 다니라고 하였다.
이에 처선은 임금을 쳐다보면서,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다닐 수 있습니까.” 하자, 또 그 혀를 자르고 몸소 그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 내었는데, 죽을 때까지 말을 그치지 아니 하였다. 마침내 그 시체를 범에게 주고 조정과 민간에 ‘처(處)’ 자를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소문쇄록》
○ 권발(權橃)이 갑자년 시험에 합격했는데, 책문(策問) 시험에 합격되어 이름을 떼어 본 뒤 에 시관이 시권 안에 처(處)자가 있는 것을 깨닫고 낙방시키기를 청하였으니, 이는 앞서 연 산주가 노하여 조정과 민간에 처선(處善)이란 두 글자를 쓰지 못하게 한 까닭이었다. 권발 은 뒤에 정묘년에 과거에 합격되었다
연산군 관련 소재 찾기 김단비
1)연산군과 이장곤
연산군 때 그 몬씰 폭군이 있을 때, 대신들 부인이라는 건 전부 다 오 [476 쪽]
라 해서 하리 지녁 딛고(데리고) 자는기라. 대신들, 요새겉으믄 국무총리니 장관들 전부 부 인들 전부 오라 해가지고, 다 데리고 자고 이러는디, 이장곤(李長坤)이라는 사람 처가 하리 저녁 개기 됐다 말이라. 이장곤이라는 사람 처가. 그래 국법으로 그래해서 가믄, 그저 그만 가믄 좋을낀데, 단장을 허고 이래 가지고 가거든. 남자가 보인께네, 거 보믄 마음이 상허는 거이라 말이라. 그래 갔다 하리 저녁 자고 왔는디, 뒤에 방을 써붙이기로, ‘다음수(多陰 鬚) 선요부(善妖婦)는 이장곤지처(李長坤之妻)라.’ 장안 안에다 막 방을 써놓거든. 그 음 수가 많고 요분질 잘 헌다고 말이지. 그래 그걸 자기 남편이 봤네. 방을 사방 써붙여놓인 께.
그래 뭐 조정에 갔다 와서 마 칼로 그마 쳐삐리. 직이삐맀다 말이라, 칼로. 직이놓고는 고 마 도주를 해 달아나삤지. 그만 가사(家事) 불구허고 마 도주해 달아나, 저 먼디로 가가지 고 백정놈 집에 가 살아, 피신해가, 잽히믄 죽을낀디. 인자 자기 살기 위해서 백정놈 집에 가서, 대처 뭐 일을 해봤나. 글 이르가(읽어가지고) 조정에 뭐 벼실허던 사램이, 백정놈 집 에 가 사는디, 고마 백정의 딸허고 결혼을 했다. 그래 결혼해논께네 아무것도 허냐 말이라.
아무 것도 헐 줄 모르고, 만날 그 쟁인은,
“빌어물 놈, 아무 것도 안 허고 뭐 놀고 자빠졌고 그런다.”
고. 그래 그러고 있지. 그러고 있는디, 그 딸은 사램이 인자(仁者)라. ‘가히 저 사램이 보 통 사람 아이다’ 이리 생각하는데.
그 골 군수가, 자기 친구가 내러왔네, 자기 친구가. 그 뒤에 인자 연산군 없어지고 반정(反 正)이 돼가지고 인자 거시기 돼서, 조정이 평정이 돼 가지고 인자 딴 군수가 내러와노이, 들으이께네 자기 친구거든. 그래서 저그 마느레 보고,
“여 도포 하나 얻어다 달라.”
고. 그래 저거매 보고 그 소리허인께네,
“아이가, 가짢은 놈. 백정 놈의 사우가 뭐 도포가 뭐꼬?”
안 얻어다 주거든. 그래 저그 딸이 어데 가서 참 이우지 양반 집에 가 [477 쪽]
서 사정을 해 얻어왔단 말이라. 그래 얻어와가지고 입고 떡허이 가인께네, 아 자기 친구거 든. 그래 얼매나 반가할끼라 그래가지고 그래 인자 연산군 전부 다 없어져삐, 그 조정도 없 어져삐리고 인조반정(仁祖反正)(1)[주]제보자가 잘못 파악하고 있음. 中宗反正임.시댈끼구
마, 그때가. 그래 인자 올라갔네. 그럴 것 아이라. 그래가 그분이 병조판서(2)[주]이장곤은 중종 때 이조판서, 예조판서, 좌찬성, 병조판서를 역임했음.꺼지 지냈다 캐. 이장곤이란 사 람이 그런 사람이라.
2)정희 왕후 등에게 공궤하게 하다. 왕의 음탕함이 날로 심하여지다 [연산군 11년 을축(1505,홍치 18)/4월12일 (정묘)]
전교하기를,
“정희 왕후(貞熹王后)·안순 왕후(安順王后)·소혜 왕후(昭惠王后)·공혜 왕후(恭惠王 后)·제헌 왕후(齊獻王后)·대비전(大妃殿)·중궁(中宮)의 족친(族親)에게 오는 단오일(端 午日)에 내·외청(內外廳)으로 나누어 공궤(供饋)하라. 옛말에 ‘구족(九族)을 친근히 한 다.’ 하였으니, 이제 촌수는 멀지라도 동성 팔촌(同姓八寸)·이성 육촌(異姓六寸)까지 모 두 들어와 참여하게 하며, 외방에 있는 자도 올라오게 하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왕이 음탕이 날로 심하여, 매양 족친 및 선왕(先王)의 후궁(後宮)을 모아 왕이 친히 잔을 들어서 마시게 하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문득 녹수(綠水) 및 괴는 궁인(宮人)을 시켜 누구의 아내인지를 비밀히 알아보게 하여 외워 두었다가 이어 궁중에 묵 게 하여 밤에 강제로 간음하며 낮에도 그랬다. 혹 4, 5일토록 나가지 못한 사람으로서, 좌 의정(左議政) 박숭질(朴崇質)의 아내, 남천군 이쟁(南川君李崝)의 아내, 봉사(奉事) 변성 (邊成)의 아내, 총곡수(叢谷守)의 아내, 참의(參議) 권인손(權仁孫)의 아내, 승지(承旨)의 윤순(尹珣)의 아내, 생원(生員) 권필(權弼)의 아내, 중추(中樞) 홍백경(洪伯慶)의 아내 같 은 이들이 다 추문(醜聞)이 있었다. 백경은 당양위(唐陽尉) 상(常)의 아들이니 왕에게는 표 종형(表從兄)이 되는데, 백경이 죽고 과부로 살매, 왕이 그의 아름다움을 듣고 드디어 간통 하였다. 그리고 운산군 이계(雲山君李誡)·풍원위(豊原尉) 임숭재(任崇載)·윤산 부정 이탁 (輪山副正李濯)·옥천 부정 이옥(玉泉副正李沃)·황원 정 이부(黃原正李敷)·팔계군 이정 (八溪君李淨)에게 각각 말[馬] 1필을 내렸다.
【원전】 13 집 693 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사급(賜給) / *역사-사학(史學) / *풍속-풍속(風俗)
[주D-001]정희 왕후(貞熹王后) : 세조비.
[주D-002]안순 왕후(安順王后) : 예종 계비.
[주D-003]소혜 왕후(昭惠王后) : 덕종비.
[주D-004]공혜 왕후(恭惠王后) : 성종비.
[주D-005]구족(九族) : 아홉 친족(親族)을 친근히 한다는 뜻.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훌륭한 덕을 잘 밝혀서 구족을 친근한다.[克明俊德 以親九族]” 당시의 구족은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예기》 상복소기(喪服小記) 주에 “본종(本宗)의 고조(高祖)부터 현손까지 9 대(代)를 가르킨다.” 하였는데, 《서경》주해와 근세 학자들은 이 설을 따르고 있음.
[주D-006]상(常) : 연산군의 고모, 명숙 공주의 남편임.
[주D-007]표종형(表從兄) : 고종 사촌형.
<창작소재개발 - 연산군과 이장곤 (李長坤) >
문화콘텐츠학과 2013047997 문아현
1. 조선왕조실록 - 1504년 갑자사화
연산군 10년 갑자(1504,홍치 17) 11월6일 (임진)
이극균이 이장곤을 천거한 것은 사사로운 정 때문이다라고 하다 전교하기를,
“이장곤(李長坤)은 비록 활쏘기에 능하다 할지라도, 이극균(李克均)이 천거한 것은 반드시 그 정실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승정원이 아뢰기를,
“장곤이 과연 활쏘기에 능합니다. 그러나 극균이 천거한 것은 그 마음의 공사(公私)를 알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문신으로 활쏘기에 능한 자가 한두 사람이 아닌데, 홀로 장곤을 천거하였다. 작상(爵賞)은 임금에게 있는 것이지 밑에 있는 자가 천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승정원이 아뢰기를,
“과연 성상의 하교와 같습니다.”
하였다.
연산군 10년 갑자(1504,홍치 17) 11월6일 (임진) 이장곤이 천거된 것에 변명하니, 더 고문하게 하다
이장곤의 공초에 ‘과거에 급제한 뒤 8개월 동안 여러 차례의 활쏘기 시험에 수석하였기 때 문에 천거된 것이요, 세력에 의지하는 것[攀附]은 신의 소위(所爲)가 아닙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더 고문하라.”
하였다.
연산군 11년 을축(1505,홍치 18) 2월9일 (을축) 이장곤의 무리를 형신하게 하다
전교하기를,
“이장곤(李長坤)의 무리를 형신(刑訊)하라.”
하였다.
연산군 11년 을축(1505,홍치 18) 5월22일 (병오)
이장곤을 장죄에 처하고 고신을 삭탈하여 해외로 내쫓게 하다 전교하기를,
“이장곤(李長坤)을 장(杖) 1백에 처하고 고신(告身)을 모조리 삭탈(削奪)하여 해외(海外)로 내쫓으라.”
하였다.
연산군 12년 병인(1506,정덕 1) 8월17일 (갑자) 도망간 죄인 이장곤을 연좌시켜 처벌하게 하다
남해 근리사(南海謹理使) 유방(柳房)이 치계(馳啓)하기를,
“죄인 이장곤(李長坤)이 도망갔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장곤의 집을 즉시 폐쇄(閉鎖)하고 그 부모·동생과 족친을 수금(囚禁)하며, 의금부 낭원(郞 員) 중 순직 근신한 자를 보내어 그 형 이장길(李長吉)과 함께 조치하여 잡되, 손바닥을 꿰 어 수갑을 채우고 칼을 씌워 오라.”
하였다. 이어 전교하기를,
“의금부 낭원 중 활 잘 쏘는 무신 2명을 보내어 잡아오라. 장곤은 활 잘 쏘는 용사이니, 그 를 잡아 고하는 자는 익명서(匿名書) 때 잡아 고한 자와 같이 논상(論賞)하라. 그리고 남해 현감(南海縣監) 유성(柳星)은 이 실정을 모를 리 없으니 잡아다 국문하라.”
하였다.
연산군 12년 병인(1506,정덕 1) 8월18일 (을축) 이장곤을 잡는 자는 죄인도 방면하게 하다 전교하기를,
“이장곤을 잡아 고하는 자는 방면(放免)해 줄 것이라는 뜻을 분배(分配)된 죄인들에게 알리 라.”
하였다.
연산군 12년 병인(1506,정덕 1) 8월18일 (을축) 이장곤의 흉악함에 대한 어제시를 내리다 어제시를 내리기를,
“화난(禍難) 닥치리라 미리 헤아려 딴 놈에게 붙고 흉하게도 고식적인 생각으로 깊은 산에 숨었구나 어버이 임금 버리고 어디서 용신(容身)할꼬 고금에 완악 이보다 더 없도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이장곤의 흉악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이른 것이다.”
하였다.
연산군 12년 병인(1506,정덕 1) 9월2일 (기묘)
중종이 경복궁에서 즉위하고 연산군을 폐하여 교동현에 옮기다 (중종반정)
왕(연산군)은 오랠수록 더욱 의심하여 모두 없애려고 하였으며, 이장곤(李長坤)이 가장 용맹 한 사람이니 마침내 변을 일으킬까 싶다 하여, 경사(京師)로 잡아 보내게 하여 장차 먼저 죽이려고 하므로 장곤이 듣고 곧 망명하니, 왕은 크게 노하여 상금을 걸고 체포를 서둘되, 경조관(京朝官)을 보내어 모든 도에 있는 관원과 함께 군대를 풀어 찾게 하니, 도하(都下)가 흉흉하여, 혹자는 이장곤이 망명하여 무리들을 모아 거병(擧兵)한다 하였다.
2. 한국구비문학대계
연산군과 이장곤 채록지 : 정서리 원정리 채록자 : 김승찬, 강덕희 조사 구연자 : 이종기
출전 : 한국구비문학대계 8집 14책 출전페이지 : 475 ~ 477
연산군 때 그 몬씰 폭군이 있을 때, 대신들 부인이라는 건 전부 다 오라 해서 하리 지녁 딛고(데리고) 자는기라. 대신들, 요새겉으믄 국무총리니 장관들 전부 부인들 전부 오라 해가지고, 다 데리고 자고 이러는디, 이장곤(李長坤)이라는 사람 처가 하리 저녁 개기 됐다 말이라. 이장곤이라는 사람 처가. 그 래 국법으로 그래해서 가믄, 그저 그만 가믄 좋을낀데, 단장을 허고 이래 가지고 가거든. 남자가 보인 께네, 거 보믄 마음이 상허는 거이라 말이라. 그래 갔다 하리 저녁 자고 왔는디, 뒤에 방을 써붙이기 로, ‘다음수(多陰鬚) 선요부(善妖婦)는 이장곤지처(李長坤之妻)라.’ 장안 안에다 막 방을 써놓거든. 그 음수가 많고 요분질 잘 헌다고 말이지. 그래 그걸 자기 남편이 봤네. 방을 사방 써붙여놓인께.
그래 뭐 조정에 갔다 와서 마 칼로 그마 쳐삐리. 직이삐맀다 말이라, 칼로. 직이놓고는 고마 도주를 해 달아나삤지. 그만 가사(家事) 불구허고 마 도주해 달아나, 저 먼디로 가가지고 백정놈 집에 가 살 아, 피신해가, 잽히믄 죽을낀디. 인자 자기 살기 위해서 백정놈 집에 가서, 대처 뭐 일을 해봤나. 글 이르가(읽어가지고) 조정에 뭐 벼실허던 사램이, 백정놈 집에 가 사는디, 고마 백정의 딸허고 결혼을 했다. 그래 결혼해논께네 아무것도 허냐 말이라. 아무 것도 헐 줄 모르고, 만날 그 쟁인은,
“빌어물 놈, 아무 것도 안 허고 뭐 놀고 자빠졌고 그런다.”
고. 그래 그러고 있지. 그러고 있는디, 그 딸은 사램이 인자(仁者)라. ‘가히 저 사램이 보통 사람 아이 다’ 이리 생각하는데.
그 골 군수가, 자기 친구가 내러왔네, 자기 친구가. 그 뒤에 인자 연산군 없어지고 반정(反正)이 돼가 지고 인자 거시기 돼서, 조정이 평정이 돼 가지고 인자 딴 군수가 내러와노이, 들으이께네 자기 친구 거든. 그래서 저그 마느레 보고,
“여 도포 하나 얻어다 달라.”
고. 그래 저거매 보고 그 소리허인께네,
“아이가, 가짢은 놈. 백정 놈의 사우가 뭐 도포가 뭐꼬?”
안 얻어다 주거든. 그래 저그 딸이 어데 가서 참 이우지 양반 집에 가서 사정을 해 얻어왔단 말이라.
그래 얻어와가지고 입고 떡허이 가인께네, 아 자기 친구거든. 그래 얼매나 반가할끼라 그래가지고 그 래 인자 연산군 전부 다 없어져삐, 그 조정도 없어져삐리고 인조반정(仁祖反正)(1)[주]제보자가 잘못 파악하고 있음. 中宗反正임.시댈끼구마, 그때가.
그래 인자 올라갔네. 그럴 것 아이라. 그래가 그분이 병조판서(2)[주]이장곤은 중종 때 이조판서, 예조 판서, 좌찬성, 병조판서를 역임했음.꺼지 지냈다 캐. 이장곤이란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