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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시대의 과학과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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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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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Future Horizon

들어가며 : 사이보그의 시대

30대 아일랜드계 미국인 여성인 에이미 뮬린스는 100미터를 12.88 초에 주파하고 멀리뛰기에서 5.14미터의 기록을 가진 운동선수이다.

그녀는 패션모델과 배우로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고, <피플>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50명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 녀가 다른 패션모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쇼에 나설 때 옷만 바꿔 입는 것이 아니라 ‘다리’까지도 갈아 ‘입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장 을 170센티미터에서 180센티미터까지 조정할 수 있다고 한다.

에이미는 선천적으로 종아리뼈가 없이 태어난 장애인이다. 1살쯤 무 릎 아래쪽의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으니 타고 난 다리로는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장애조차 스포츠 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소녀 시절에는 소프트볼 경기에서 최고의 도루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고등학교에서는 스키선 수로도 활약했다고 한다. 그녀는 미국 대학 스포츠 연맹이 주최한 육 상대회에서 정상인들과 함께 경쟁했고, 남녀를 통틀어 이 대회에 참

가한 최초의 장애인이었다. 탄소섬유로 제작한 “치타”라는 경주용 인 공 다리를 자신의 몸으로 체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12쌍의 다리를 번갈아 착용한다고 하는데, 인터뷰에서 자연스럽게 다리를 꼬 고 앉은 모습을 보고 그것이 인공물인 것을 알아차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54세의 전직 교사인 볼프강 랭거는 혈전이 혈관을 막는 질병으로 오 른쪽 다리를 잃었다. 절단 수술 후 한동안은 사라진 다리가 심하게 아 픈 환상통으로 고생했지만, 이제는 새로 맞춘 인공 다리를 이용해 달

포스트휴먼시대의 과학과 의학

글 강신익(부산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미래연구 포커스 The Next Human Plat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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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산에도 간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환 상통이 사라짐과 동시에 인공 발에 와 닿는 물체를 느낄 수 있게 되었 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절단된 다리의 단면에 신경 말단을 다시 배치 하는 수술을 했다. 인공 발바닥에는 6개의 센서를 달아 여기서 발생한 자극을 전기신호로 바꿔 절단면 신경말단에 전달하도록 했다. 이 자 극은 마이크로 콘트롤러를 통해 뇌에 전달되고 뇌는 그것을 감각으로 해석해서 방금 밟은 것이 단단한 돌인지 부드러운 잔디인지 등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BBC News, 2015. 6. 8)

팔과 다리 말고도 인공물로 대체할 수 있는 장기는 많다. 심장 판막, 달팽이관, 관절, 치아 등을 대체하는 인공물은 이미 대량으로 생산되 어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심장, 신장, 폐, 간 등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장비도 활용되거나 개발 중이다. 인간 정체성의 표상 으로 여겨지던 뇌도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 파킨슨 병, 간질, 우울증 등의 장애를 보이는 환자의 뇌 깊은 곳을 전기로 자극해 증상을 완화 시키기도 한다. 뇌에 생기는 질병과 손상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어 진 정보 중에는 뇌와 인간 정체성의 관계에 대한 지금까지의 통념을 뒤집을 만한 위력을 가진 것들도 많다. 이제 우리는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거나 제거함으로써 사람의 감각과 성격과 욕망을 크게 변화시

킬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인간 존엄성의 근거로 여겨지던 정체성과 자 유의지가 사실은 뇌의 신경회로에서 발현된 특정한 신경자극 패턴의 결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통적 철학과 종교의 기반이 흔들린다 고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의 정체성 즉 ‘내가 나인 것’과 이 시대의 과학기술은 분리되지 않는 다. 우리 모두는 생물학적 개체이면서 동시에 인공물을 품고 살 수밖 에 없는 자연과 인공의 혼합인 사이보그이다. 나는 생물학적 개체로 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사이보그다. 나의 스마트워치와 스마트 폰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으로 남긴다. 하루 동안 걸은 걸음 수 와 걸은 시간, 자전거나 자동차로 이동한 시간과 거리, 오고 간 장소, 주고받은 통화와 문자 등이 기록으로 남는다. 이 기록은 부지불식간 에 구글과 같은 세계 기업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우리는 SNS 뿐 아니라 가는 곳마다 설치된 폐쇄회로 TV에도 그 흔적을 남긴다.

우리 모두는 사이버 세계의 아바타와 연결된 사이보그인지도 모른다.

웨어러블 장비로 파악된 생체 정보가 의료기관에 전송되고 로봇 팔을 이용한 원격 수술이 가능해 지는 등 환자와 의사의 직접 대면과 접촉 에 의존했던 의료행위 자체가 사이버 세계로 그 무대를 옮기는 경향 이 있기도 하다.

호모에서 포스트휴먼으로

이러한 변화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담론이 만들어져 유통되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스트로 불리는 사람들은 인공물에 의한 인체의 변화 와 증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새로운 인류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다.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에 대한 전통적 관념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 은 이런 낙관론을 개탄하면서, 생명공학의 남용은 새로운 생물학적 계 급을 낳을 것이고 우리를 디스토피아로 몰고 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포 스트휴머니스트로 분류되는 학자들은 이런 경향을 우리가 전통적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을 정립해야 할 현실적 이 유로 받아들인다.

이 중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인류가 진화해 온 생물학적 역사와 그렇게 진화한 몸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역사와 문명을 만들어 온 우주와 생명과 인류의 경험 전체를 거시적으로 검토해 본 다음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 지를 돌아봄으로써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질과 에너지에 서 시작해 생명과 문명으로 이어지는 과정 전체를 바라보는 이른바 빅 히스토리(Big History)의 관점이다.

우주(宇宙 ; 시간과 공간)가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35억 년 전이었다고 한다. 이로써 최초의 물질과 에너지, 원자와 분자가 존재하

포스트휴먼시대의 과학과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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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Future Horizon

미래연구 포커스 I The Next Human Platform

기 시작했다. 45억 년 전에는 지구가 생겨났고 38억 년 전에는 스스로 를 복제하는 최초의 생명체가 나타났다. 6백만 년 전에는 인류가 침팬 지와의 공통조상으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진화하기 시작했으며 2 백 50만 년 전에는 처음으로 돌을 다듬어 도구를 만든 호모 속(屬) 조상 이 나타났다. 그리고 20만 년 전에는 우리의 직접 조상인 호모 사피엔 스가 살기 시작했다. 우리의 몸은 우주가 시작될 때 형성된 물질과 에너 지로부터 발생한 최초의 생명체에서 진화해 왔으며 자연에 적응하기도 하고 그러는 동안 자연을 크게 변경 또는 훼손하기도 했다. 우주-지구- 생명-호모-인간으로 이어지는 존재의 사슬은 물질과 생명의 긴 이력서 이기도 하다.

과학으로 재현된 물질과 생명의 이력서에는 그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다른 변곡점이 몇 군데 있다. 거시적 시각으로 역사를 서술해 온 이스 라엘의 역사학자 노아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대략 세 개의 변곡점을 찾아낸다. 7만 년 전 인지혁명은 인간의 생물학적 존재 조건에 문화적 요소가 결합된 생물-문화적 전이 사건이었다. 각각 1만 2천 년과 5백 년 전에 시작된 농업혁명과 과학혁명은 그런 생물- 문화적 인지능력을 가진 인간이 자연과 사회에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온 역사와 문화의 변곡점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포스트휴먼으 로 불리는 제4의 변곡점을 돌고 있다.

20세기 말부터 시작된 포스트휴먼 담론은 과학과 기술이 연구와 개입 의 대상을 인간들 자신의 생물-문화적 조건에까지 확장한 결과이다.

7만 년 전 인지혁명은 자연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진화한 인지능력이 만든 변화지만, 포스트휴먼 시대에서는 그 능력을 통해 스스로 변해 가는 인간이 문제가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우리로 변해가는 중이며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진다.

뮬린이 인공 다리로 백 미터를 12초대에 주파하고, 랭거가 잃어버린 다리의 감각을 되찾은 것은 인공물이 그들에게 체현되어 몸과 하나 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많은 전화번호를 일일이 기억하지 않 고도 간단히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인지 능력 중 일부 가 스마트폰에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포스트휴먼 이론가들은 이것을 체현-분산 인지(Embodied-Distributed Cognition)라 부른다. 이제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는 더 이상 물리적 피부가 아니다. 인간과 인 간이 아닌 동물 사이의 경계도 사라지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자연과 문화의 구분도 의미가 없어진다. 도나 해러웨이는 1983년에 발표한

<사이보그 선언>에서 이같이 모호해진 정체성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해 포스트휴먼 논쟁의 문을 열었다. 호모 속에 속하는 조상이 이 땅에 나타난 지 2백50만 년만의 변화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한계 속에서 살던 호모에서 농업과 과학을 통해 자연 을 개조하는 인간을 거쳐 이제는 스스로 변해가는 포스트휴먼이 된 것이다.

무지의 재발견 : 트랜스휴먼인가 포스트휴먼인가?

포스트휴먼 시대는 물질-생명-기계의 혼종인 사이보그들의 세상이다.

인간은 사이보그를 만들기도 하지만 스스로 사이보그가 되기도 한다.

컴퓨터는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포스트휴먼 시대를 사는 대부분의 인 간은 컴퓨터와 같은 인공물(스마트폰, TV, CCTV, MRI, 인공 장기 등)을 통해서만 인간(포스트휴먼 사이보그)일 수 있다. 그래서 인간 과 비인간의 구분도 사라진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진 세상에서는

〔그림 1〕 호모 사피엔스와 친척들의 진화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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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통해 주고받는 정보와 욕망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매체가 바로 메시지이고 그것이 우리들 자신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이 논리를 단순하게 연장하면 인간은 그 역량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 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로보캅, 터미네이터, 아바타, 아일랜드 같은 영화가 보여주는 세상이 바로 그런 것이다. 내 뇌 속에 담긴 정보를 빠짐없이 다운로드하면 그것이 바로 나의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도 그 렇다. 척추손상 환자에게 줄기세포를 주입하면 벌떡 일어나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길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도 그런 사유양식의 귀결이 다. 트랜스휴먼에 대한 꿈이고 욕망이다.

우리가 진정 포스트휴먼이라면 이러한 꿈과 욕망을 이성적이고 보편 적인 도덕원리를 근거로 꾸짖을 수는 없다. 오히려 포스트휴먼이 긍 정하는 경계 가로지르기의 대표적 사례일 수 있다. 문제는 그런 기술 들 자체에 내재된 그리고 영화나 우표 등의 매체를 통해 은근히 강요 된 경계짓기의 사유이다. 이 우표는 줄기세포를 신체에 주입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어마하게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한 현상을 철저히 무시한 다. 생명과 기계의 경계를 넘어 기계 쪽으로 접근하기는 했지만 기계 적 사유에 머물러 생명으로 다시 돌아오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는 포스트휴먼 이론가들이 말하는 의미의 사이보그가 아니다. 뮬린 이 인공 다리로 달릴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것을 피와 살로 된 자신의 몸에 ‘체현’했기 때문이다. 그 녀는 그 인공물을 자신의 몸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 고 그 결과 다른 사람과는 다른 신경회로를 출현시켰을 것이다. 랭거 가 인공의 발에 닿은 돌과 흙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전자 장비를 통해 피와 살로 된 몸과 인공의 몸을 일체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으로 세상을 아는데, 그 몸은 다른 사람의 몸과 동식물과 물체와 기 계와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이 세상에 퍼져있는 체현-분

산된 것이기도 하다.

17세기의 과학혁명은 ‘무지’를 발견함으로써 끊임없이 진보하는 지식 의 발판을 마련했다. 포스트휴먼 시대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 무지의 재발견이다. 과학과 지식의 대상인 세계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끊임 없이 세계와 관계해 온 우리들 자신에 대한 그리고 세상을 바꾼 과학 자체에 대한 무지이다. 지금도 과학과 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 고 있다. 하지만 포스트휴먼의 관점에서 보면 그 성과를 제대로 향유 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합리적 주체와 객관적 대상 의 이분법이라는 인식론과 당장의 성과만을 강조하는 연산(硏産)복합 의 틀에 갇혀 자신들이 발견한 사실들의 포스트휴먼적 의미를 사유 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최근의 의학적 연구 성과 중에는 인문학적 사유의 대상이거나 인문학 과의 소통을 통해 새로이 건져올릴 수 있는 통찰이 많다. 진화생물학 은 이미 인간과 동물의 벽을 허물었고 인지과학은 몸과 마음의 벽을 면역학은 자아와 비자아 사이의 벽을 허물고 있다. 이미 그런 가로지 르기를 실천하고 있는 과학자와 철학자들도 적지 않다. 여기서 얻어 지는 통찰은 임상의학에 되먹여져 정해진 표준적 진단과 치료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의학의 씨앗이 될 것이다. 의사의 지식과 기술이 환 자의 경험 그리고 그로부터 솟아오르는 삶의 의미와 만나 새로운 앎 을 창출할 수 있는 포스트휴먼 시대의 의학을 꿈꾸어 본다.

글을 마치며

포스트휴먼은 결코 가벼운 담론이 아니다. 스스로 인간(휴먼) ‘이후(포 스트)’의 존재임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포스트)인간은 상 수가 아닌 변수이다. 따라서 포스트휴먼은 주체변혁의 담론이다. 그런 데 미래를 말하는 많은 사람들은 미래를 상수인 인간과 변수인 기술의 결과 함수로 본다. 지금 미국에서 성업하고 있는 냉동인간 사업이 이런 사유양식이 무비판적으로 적용된 대표적 사례이다. 여기서 인간은 죽 었든 살았든 상수로서의 인간이다. 그들은 몸과 함께 살았던 그 사람의 삶 그리고 시간마저도 냉동 보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미래의 발달된 기술이 그를 살려낼 것이란 일차원적 기대를 상품으로 둔갑시 킬 수 있는 것이다.

포스트휴먼은 변하면서 흐르는 존재이다.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 (我不流時不流)는 격언은 지금의 현실만을 기준으로 미 래에 대한 억측을 이끌어내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꼭 기억해야 할 지혜이다. 의학은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를 생각할 때 스스로 어떻게 변 해갈지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의학이 인문학이기도 해야 하 는 이유 중 하나다.

포스트휴먼시대의 과학과 의학

〔그림 2〕 2005년에 발간된 줄기세포 기념우표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