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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상상’을 담은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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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상상’을 담은 비행기:

KT&G 상상마당 춘천

방승환 「닮은 도시 다른 공간」 저자 (archur@naver.com)

2020 UrbAN ODYSSeY•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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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호 2020 September

유년 시절을 보낸 1980년대는 지금과 달리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갈 만한 곳이 마땅 치 않았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나와 누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셨는데, 그중 가장 자 주 갔던 곳은 집 근처에 있었던 인천상륙작전기념관(1984)이었다. 가끔 먼 곳도 갔는데, 특히 독립기념관(1987)은 개관일에 맞춰 갔던 곳이라서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개관일 이었던 그날은 비가 많이 왔는데, 전국에서 몰려온 관람객들로 인해 독립기념관으로 가는 길은 주차장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서 키즈 카페뿐만 아니라 캐릭터를 활용한 다양한 실내 놀 이공간 그리고 직업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까지, 아이를 데리고 갈 곳이 참 많다. 여기 에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만든 ‘어린이’라는 단어가 시설명에 들어가는 문화기반시설도 상 당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해 발간하는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2018년 기 준 전국 881개 박물관 중 ‘어린이’라는 단어가 시설명에 들어가는 곳은 총 여섯 곳이다. 그 리고 유사한 성격으로 ‘서울상상나라’도 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시설은 인천어린이박물 관으로 2005년 5월 5일 개관했다. 전국 1100여 개 공공도서관 중 어린이도서관은 총 77개가 있다. 이 중 1979년 개관한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이 가장 오래됐다.

1980년대 지방뿐만 아니라 서울에도 ‘어린이’를 위한 문화기반시설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방에 국립박물관이 지어진 시기는 1975년 이후였다. 그 해 부여박물관과 경주박물관이 국립으로 승격됐고 이후 광주(1978), 진주(1984년), 청주 (1987)에 국립박물관이 개관했다. ‘어린이날’을 지정해서 그날만이라도 몇몇 시설에서 어 린이들을 위한 행사를 개최하자는 생각을 할 만한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에 강원 어린이회관이 춘천시에 개관했다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이례적인 시설은 일단 어린이를 위한 시설임에도 어린이가 쉽게 갈 수 없는 곳에 있 다. 의암호 옆에 작은 언덕을 끼고 있는 주변 환경을 얼핏보면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여건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위치가 너무 외지다. 춘천의 중심인 중앙로터리에서 차를 이용할 경우 15분이면 충분하지만 준공 당시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 었다. 그럼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은 어떠했을까? 현재도 중앙로터리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걸린다.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라면 어린이들이 도보로 접근할 수 있는 위치가 가장 좋은데, 강원어린이회관은 춘천 시내를 기준으로 도보권 밖에 있다.

입지뿐만 아니라 건물이 건립된 배경을 봐도 과연 이 건물이 진정 어린이들을 위한 시 설이었는지 의심스럽다. 1980년 5월 24일 개관한 이 건물은 강원도가 춘천과 원주에서 열린 제9회 전국소년체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했다. 1980년 5월 24일은 광주에서 5.18

사진제공:

KT&G 상상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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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았을 때다. 당시 소년체전은 5월 27일~30일 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6월 10일~13일로 연기됐다. 그 시절 전국체전과 소년체전은 도 시 기반시설을 확충할 수 있는 큰 이벤트였다.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

건축은 땅을 이길 수 없다. 다만 건축물의 설계를 통해 땅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어느 정 도 만회할 수는 있다. 강원어린이회관에서도 건축 설계를 통해 어린이가 접근하기 어려운 입지라는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 다만, 당시만 해도 이례적인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 은 도대체 어떠해야 하는가?’,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이 어른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낼 수 있어야 했다. 설계를 맡은 김수근도 처음 설 계 의뢰를 받았을 때 이 프로젝트가 ‘어린이와 공간’이라는 좋은 테마를 가지고 있다고 생 각했다. 김수근(1980)은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아늑하게 숨어 있다 나오면 햇빛이 옆으로 비쳐 들어오다가 지붕에서 쏟아져 들어오기도 하고 어느 부분에 오면 탁 트여 구름다리 같은 데에서 호수와 산이 보이는 공간상의 해프닝(happening)”을 테마로 삼았다. 어린이 는 바로 노는 사람이란 개념이고, 그런 어린이의 본질을 발산시킬 수 있는 문화적 공간으 로서 이 건축물의 개념을 살리고자 했다.

강원어린이회관 내 공간은 아기자기하다. 1970년대 김수근은 벽돌을 사용해서 한국 건축이 주는 여유로움이나 넉넉함을 구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공간사옥(1977) 을 비롯해 양덕성당(1979), 서울 대학로의 샘터사옥(1977), 문예회관 전시장 및 공연장 (1979), 해외개발공사 사옥(1979) 등이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 모두 김수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건축물이다. 강원어린이회관도 이런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남북 대칭으로 배치 된 날개모양의 건물 안에는 성인 머리가 닿을 정도의 높이로 설계된 통로와 잘게 나뉜 공 간들이 다양하다. 그리고 이런 자잘한 공간과 요소

들이 경사로로 연결돼 있다. 분명, 어른들에게는 작 은 크기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공간을 인지한다고 보면 적당한 스케일이다. 마치 어릴 적 넓다고 생각 했던 공간을 성인이 되어 다시 봤을 때 작게 느끼는 이치와 같다.

그럼 어린이를 위한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 린이 입장에서 봤을 때 적당한 크기일까? 난 이곳에 서 아이들이 실제 어떻게 행동하는지 직접 보고 싶

2020 UrbAN ODYSSeY•9

<그림 1> 김수근의 1970년대 건축조형을 보여주는 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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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이들은 내부공간을 연결하는 경사로를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그리고 낮은 높이의 공간과 그 뒷공간에서 숨바꼭질을 시작했다. 마치 설계자가 옆에서 시킨 것처럼. 아이들 은 어른들처럼 재는 게 없어서 처음 보는 사이지만 금방 친구가 된다. 딸아이도 그곳에서 만난 또래와 즉흥적으로 규칙을 만들어 놀았다. 어떤 놀이가 됐든 강원어린이회관은 다 받아주었다.

‘어린이회관’에서 ‘상상마당’으로

강원어린이회관의 처음 용도는 과학전시실, 극장, 자연학습실, 대회의실 등이었다. 한쪽 에는 강원도향토사료관도 있었다. 1992년에는 ‘춘천시어린이회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운 영은 그럭저럭 됐던 것 같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관람객이 급격하게 줄었다. 어린이 를 위한 여러 시설들과 경쟁할 수 없다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어린이회관이라고 는 하지만 구체적인 용도는 애초부터 없었고, 무엇보다 건립 목적이 전국소년체전이었으 므로 이후 뾰족한 활용방안이 있지도 않았다. 2010년 전후 건물은 거의 방치돼 있었다.

결국 2012년 4월, 춘천시는 시비 45억 원을 투입해 어린이전용공간으로 리모델링하겠다 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얼마 후 KT&G가 ‘상상마당 프로그램’을 이곳에 도입하겠다 는 제안을 춘천시에 냈다. 상상마당 프로그램은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는 취지로 추진 되는 사업이다. 춘천시 입장에서는 반길 만한 제안이었다. KT&G는 춘천에 앞서 홍대 앞 과 논산에서 상상마당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검증도 이미 끝났 다. KT&G 상상마당 춘천 건립은 그해 5월에 확정됐다. 강원어린이회관의 건축적 가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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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자잘한 공간들을 연결하는 경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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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는 KT&G가 내부만 개보수하고 외관은 그대로 살리자는 춘천시와 의 합의로 해결됐다. KT&G는 ‘호숫가에 예술과 함께 머무는 아트 스테이(Art Stay)라는 콘셉트로 문화예술을 즐기기 위해 마련된 각 공간들을 통해 창작자에게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향유자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강원어린이회관과 인접한 강원도체육회관을 함께 매입했다(KT&G 상 상마당 홈페이지). 1년간의 리모델링 공사를 끝낸 뒤 KT&G 상상마당 춘천은 2014년 4월 29일 개관했다. 그리고 개관 후 100일 만에 관람객 수는 7만 명을 돌파했고, 1년 동 안 180만 명이 다녀갔다.

의암호로 날아오르는 비행기

김수근은 강원어린이회관을 설계하면서 주변 환경과의 조화에 가장 중점을 두었다. 이런 설계자의 의도는 아기자기한 내부공간을 나와 크고 작은 크기로 나뉜 외부공간 어디에서 든 의암호와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건물을 중심으로 작은 언덕과 호수가 만나기 때문에 주변 풍경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여유로워진다. 건물 도 낮게 깔려 있어서 건물 주변 어떤 자리에서 봐도 거슬리지 않는다. 처음 이곳에 갔을 때 건물을 둘러싼 풍경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춘천에 갈 때마다 가능하면 이곳에 들러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느끼고 온다. 건물 한쪽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2020 UrbAN ODYSSeY•9

<그림 3> 강원어린이회관을 리모델링한 KT&G 상상마당 아트센터 외관

사진제공: 춘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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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갔을 때 딸아이 덕에 풍경과 건물이 이루는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 다. 앞서가던 딸아이가 야외공연장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나를 불렀다. “와! 아빠 이거 보 세요!” 딸아이와 같은 풍경을 바라본 순간 ‘아! 설계자는 우리들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풍경에서 의암호 건너편의 북배산 산세는 건물의 지붕선 위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은 의암호와 북배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위 성사진을 통해 강원어린이회관을 보면 호수 옆을 노니는 한 마리 나비 같다. 하지만 이 장 면에서 건물은 비행기였다.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 비행기가 되어 의암호를 건너 북배산 을 넘어 더 먼 세상으로 날아간다는 스토리라인(Storyline)이 풍경을 보며 떠올랐다.

강원어린이회관을 설계한 김수근은 우리나라의 근대건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 는 인물이다. 1977년 5월 타임(Time)지는 그를 ‘서울의 로렌초(The Swinging Lorenzo of Seoul)’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군사권력이 필요로 하는 건물을 너무, 잘 설계했다는 그 의 과오를 비난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특히,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한 ‘경찰청 인권 센터 남영동 대공분실’은 그의 재능에 존재하는 하이드(Hyde)다. 하이드의 대척점에는 지 킬 박사(Dr. JeKyll)가 있다. 야외공연장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본 풍경과 강원어린이회 관이 이루는 모습은 김수근의 재능 중 지킬 박사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정인하(1999)는 “김수근의 건축이 고도의 기술문명에 의해 소외된 인간과 건축에 그 본

<그림 4> 의암호와 북배산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

사진제공: KT&G 상상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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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적인 가치를 부여하려 한 점이 오늘날 우리 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라고 했다. 김수근 은 인간이 건물의 주체이고 건물은 인간을 위 해 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과 정에서 자연은 인간에게 소중한 실체로 다가 온다고 봤다. 자연은 건축을 포함한 모든 인 간의 활동을 담는 그릇이고 이에 따라 자연을 전제로 하지 않는 건축은 결코 인간을 위한 건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인하는

“서구의 기술문명이 주는 빛과 그림자 중에서

김수근은 그림자 쪽을 택해 여기에 동양사상의 온기를 불어 넣는다. 따라서 기술문명이 주는 밝음의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의 건축철학은 더욱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이 어질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건물을 재생하는 이유

건물을 재생하면 건물과 주변 조직이 이루고 있던 기존 관계는 크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여기서 둘 간의 관계가 상호 보완적이라면 재생을 통해 어긋난 부분만 매만져도 더 큰 효 과가 일어난다. 그렇지 않더라도 건물과 주변 조직 간의 관계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이용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재생된 건물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KT&G 상상마당 춘천이 강원어린이회관이었을 때 건물의 입지는 적당하지 못했다. 어 린이들을 위한 시설로 지어졌지만 너무 외진 곳에 있었다. 하지만 땅이 가지고 있는 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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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비행기와 나비를 떠오르게 하는 건물의 배치

<그림 6> 지역의 예술가들을 위한 공연장, 전시장, 녹음실 등으로 활용되고 있는 상상마당

사진제공: KT&G 상상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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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했지만 건축물의 설계가 건축물과 대지를 뗄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여기에 KT&G가

‘예술’과 ‘상상력’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도입하면서 건물의 용도와 대지와의 관계가 재 조정됐다. KT&G는 건물 이용자의 범위를 지역주민과 어린이에서 예술 창작자와 향유자 로 확장했다. 그리고 기존에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던 건축물과 땅의 잠재성을 재조명했다.

강원어린이회관이 KT&G 상상마당 춘천으로 재생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건물의 재생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큰 이유였던 ‘시간’, ‘준공 연한’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물론, 재생 시점에 강원어린이회관의 준공 연한은 34년이었다. 강원어린이회관이 재생된 이유 는 땅과 건물 디자인이 지닌 잠재성에 있었다. KT&G는 새로운 콘텐츠 도입을 통해 건물 을 재생함으로써 땅과 건물 디자인이 지닌 잠재성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KT&G 상상마당 춘천은 어떤 건물이 여전히 우리에게 가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래 서 해당 건물을 재생할 필요가 있느냐를 결정하는 이유가 반드시 ‘시간’에 있지 않다는 것 을 보여준다.

김수근. 1980. 어린이에 꿈을 심는 놀이집. 경향신문, 7월 11일자, 5면.

정인하. 1999. 김수근 건축론: 한국건축의 새로운 이념형. 서울: 시공문화사.

KT&G 상상마당 홈페이지. https://www.sangsangmadang.com/info/CC (2020년 8월 6일 검색).

참고문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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