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지중해 세계
김명배 교수
로마와 지중해 세계
로마는 고대 동방, 이집트 및 독창성이 높은
그리스 문화를 계승하여 이 모든 것을 서양문명으로 전달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였다.
로마법과크리스트교는서양세계에서가장중요한양대문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로마법은 권리와 의무의 관념을 뿌리내리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 크리스트교는 서로마 제국 멸망 후
정신적지도력을충분히발휘하여유럽의통합을달성하기에이르렀다.
로마의 역사는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에 이르는 약 13세기의 오랜 기간에 걸쳐 전개되었으며
유럽 문명의 기초가 되었다.
로마의 기원
트로이 목마로 트로이 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트로이의왕프리아모스의사위인아이네이아스만이탈출에성공한다.
아이네이아스는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인간 남자 안키세스의 아들인데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간신히 죽음에서 벗어난 것이다. 트로이를 탈출한 아이네이아스의
유랑은 그리스 여러 섬과 카르타고에서도 끝나지 않고, 신들이 이끄는 대로 이탈리아 서해안 티레노 해에 위치한 쿠마에 도착한다. 마침내 로마근처에 라티움지방에 이르러 이곳의 왕 라티누스의 딸, 라비니아와 결혼하고 정착하게 된다.
베스타 신전의 레아 실비아
아이네이아스의아들 아스카니오스가 왕위를물려받고알바 롱가라는새도시건설
8세대후손누미토르와아물리우스는라티움의왕권을공유하고있었다.
어느 날 아물리우스는 왕국의 통치권을 독점하기 위해서 동생을 추방하고 그의 자식들을 모두 살해하였지만,
동생의 딸 레아 실비아(Rea Silvia)만은 살려두고
이 왕녀를 베스타(Vesta) 신전의 처녀신으로 만든다.
로마의 건국왕 로물루스
레아실비아는금혼령에도전쟁의신 마르스(M ars) 와 사랑에빠져두 명의 쌍둥이 가태어난다.
테베레강에버려진두 아이는늑대의젖을 먹고자란다.
레무스를죽이고유일한왕이된로물루스는 도시를건설하겠다는 의사표시로우선팔라티누스 언덕주위에성벽을쌓았다.
그날은기원전753년 4월21일이었다고 한다.
버질의 ‘아에네이스’
-로마건국 신화 -
권력의지, 형제살해, 처녀성(도덕성)
“로마인이여 기억하라.
그대들은 세계를 지배해야 할 것이다.”
“로마인들이여 그대들의 목표를 명심하라.
전 세계를통치하고평화의관습을심어주며, 패배한 자에게는 관대하게,
자랑하는 자는 철저히 제압하라”
가부장제와 로마법
로마는종족이나혈연보다는 법으로건설된국가 이다.
법을 기반으로 건설된 국가이었으므로 법에 대한 처벌이 아주 잔인할 정도로 심했다.
그러나 법만 지키면 무척 자유로운 국가였다.
서양인들의법정신을전수하였다는점에서높이 산다.
로마인은 로마의 patris,
즉 로마 최초가문의가장으로부터나왔다고믿는다.
*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로마의 가족-법에 기초한 사회
사비니인의아내와자매, 처녀들은귀족가문의조상이되었다.
로마인과융합한여인들이화해시킴으로
라틴인도그들과함께하나의공동국가를건설했다.
사비니 여인의 약탈
로마의부인들은남편의존중을받았으며, domus라고하는집에서domina, 즉 마님으로 대접을 받았다. 그 여자들은 모두 약탈된 재산이었으므로
법률적인 권리를 지니지 못했다. 개인의 이러한 일신상의 불신에서 권리와법률이만들어졌다. 아내는남편을잃어도유산을상속받지못했다.
그녀들은 mancipium, 즉 가장의 “손에 들어온 재산”으로 취급되었다.
가부장의 절대권
patria potestas
가족(가문)은 파테르 파밀리아스(pater familias)라 불린
가부장의 뜻에 따라 처리되었고, 그의 절대권 아래에 종속되었다.
법적인 의미에서 파테르 파밀리아스가 가족 자체이었다.
로마인들의 가족은 파테르 파밀리아스의 지도와 통제와 관리 하에 노동과 재산의 공동체일뿐만 아니라 국방과 법률과
정부의 체제로 국가의 축소판이기도 했다.
최초의 로마법은 가족을 자급자족적이며 독립된 집단으로 국가의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경제 단위로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