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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近代 新宗敎에 나타난 後天開闢思想 硏究-近代 民間 易學의 性格을 中心으로-송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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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後天開闢思想 硏究

*

-近代 民間 易學의 性格을 中心으로-

宋在國**34)

Ⅰ. 緖言

Ⅱ. 近代 新宗敎 運動展開.

1. 韓國人精神的 特徵으로서의 宗敎 意識 2. 韓國 近代 新宗敎 運動展開 樣相

Ⅲ. 新宗敎 運動主體理念 1. 日用的 삶의 主體로서의 民衆

2. 未來的 삶에 대한 民衆的 志向으로서의 後天 開闢 思想

Ⅳ. 近代 新宗敎 運動理念的 背景으로서의 民間 易學 1. 易道公義的 本質

2. 易術日用的 效用

Ⅴ. 結語

【국문요약】

* 이 논문 또는 저서는 2015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 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5S1A5A2A03047853)

* 이 논문은 국학연구원 제31회 학술대회((사)동방문화진흥회강당, 2016.9.3.)에서 발표한 논문을 수정한 것임

**淸州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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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類文明史에 있어서 근대적 성격을 대변하는 用語는 대체로 ‘理 性-科學-市民意識’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존재의 보편적 存在原理로 서의 理性에 대한 自覺과 宣言. 理性的 기능에 土臺한 人爲的 文明 성취에 대한 과학적 세계관의 定礎. 인간사회의 理念的 共同 價値로 서의 市民意識의 擡頭 등은 近代라는 시대상을 응축하고 있는 대표 적인 述語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사적 추세는 급기야 극동의 조용한 나라 朝鮮 社會로도 파급되어, 18-19세기 조선에서는 사회 전 반에 걸쳐 이른바 ‘實學的 風土’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는 조선의 民衆 들에게 새로운 삶의 方式과 價値와 理念을 촉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근대적 삶의 환경’에 대한 民衆的 요청은 조선 사회의 精 神文化를 주도하고 있던 儒學과 易學的 意識 全般에도 새로운 自覺 과 變容을 수반하게 되었고, 나아가 新宗敎의 발흥을 촉발하면서 여 러 방면의 사회적 개혁 운동 등으로 民衆意識을 널리 확산시켰다.

본 논문은 조선 후기 한국의 近代社會가 겪어야 했던 격랑의 시대 적 상황에서 조선의 傳統的 思惟意識을 主導해 온 儒學(易學)의 理念 이 韓民族의 정신적 氣質인 宗敎的 熱情을 통하여 社會改革 運動의 原動力으로 發現된 東學. 甑山敎. 圓佛敎 등 대표적인 新宗敎 運動의 性格과 意味를 易學의 핵심적 主題인 後天 開闢 思想을 中心으로 考 察해 보고, 나아가 民間社會에서의 易學的 關心이 ‘미래적 삶을 판단 하는 방식’으로서의 易術的 效用으로 널리 擴散. 深化되었음을 살펴 봄으로써, 한국의 역사에서 近代라고 불리는 특별한 大轉換의 時期 를 지내오면서도, 오히려 가장 力動的이고 實踐的인 삶을 成就했던 朝鮮 後期 社會 一般의 諸問題를 당시 民衆意識의 底邊에 자리 잡고 있던 易學의 觀點을 통하여 鳥瞰해 본 것이다.

이로써 韓國의 近代史에 登場한 新宗敎 운동의 本質과 歷史的 意味를 한 걸음 더 깊이 討論할 수 있는 學問的 地平을 마련해 볼 수 있었다.

주제어 : 近代. 新宗敎. 民衆意識. 後天思想. 民間 易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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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緖言

西歐에서 먼저 시작된 인류 문명의 近代的 成果는 점차 그 세력이 동양으로 확대되면서 極東의 朝鮮 社會 역시 근대적 技術로 武裝된 西歐 文明의 波及 效果를 正面으로 受容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外勢의 강제적 침탈은 18세기를 前後한 朝鮮 後期 社會를, 한국의 오 천년 역사를 통틀어 그 어떤 시기보다도 가장 힘들고 어려운 苦難과 激情의 現場으로 내몰았다. 인간은 외부에서의 강력한 도전이 있거 나 새로운 환경의 변화와 맞서게 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적극 대응하기 마련인데, 18세기 이후 朝鮮이 당면한 外來的 환경과 强制 的 여건에 對抗하여 조선 사회가 마련한 ‘삶의 樣態와 性格’을 한마 디로 요약하면 ‘實學的 方式과 理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實學的 對應은 먼저 정신적인 면에서 시작하여, 民衆意識의 自覺과 인간 존 엄성의 擴大 등으로 나타났고, 실생활 면에서는 각종 부조리한 社會 制度의 改革과 實用的 技術의 受容 등으로 전개되었는데, 그 중에서 도 특히 한국인의 본래적 心性에 點火되어 시대적 慾求와 함께 集團 的 實踐 운동으로 噴出된 사회 現象으로서, 民族精神과 民衆意識이 종교적 熱情을 통하여 發現된 새로운 형태의 여러 宗敎가 출현하였 으니, 이것이 곧 한국 근대에 登場한 新宗敎 運動인 것이다.

이에 本 論文에서는 한국의 근대 사회에서 강력한 사회 개혁 현상 으로 등장한 신종교 운동의 본질적인 성격과 기능을 당시의 민중 의 식 저변에 자리하고 있는 易學的 觀點으로 해석해 봄으로써, 한국 근 대 신종교의 궁극적 지향점인 後天 開闢思想의 哲學的 근거를 고찰 해보고, 民族宗敎이며 동시에 民衆宗敎인 新宗敎의 시대적 의미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치열한 삶을 살아낸 한국 근대 사회의 민중적 實相을, 외형적 사회 현상과 더불어 그 내밀한 정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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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함께 관련하여 검토함으로써, 한국의 近代性을 理解하는 思 想的 地平을 보다 擴充시킬 수 있을 것이다.

Ⅱ. 近代 新宗敎 運動의 展開.

무릇 歷史 구분에 있어서의 近代 社會는 이른바 ‘歷史的 近代性의 所産’이라는 점에서 볼 때, 18세기 이후의 朝鮮 後期 社會에서 勃興 하여 民衆意識의 自覺과 社會 改革의 實踐的 動力을 提供한 近代의 新宗敎 運動은 당시의 時代的 慾求가 宗敎的 方面으로 噴出된 대표 적인 社會 現象이라고 할 수 있다.

韓國의 宗敎는 韓國人이 가지고 있는 宗敎 意識의 反映이며, 한국 의 新宗敎는 그러한 한국인의 宗敎意識이 새로운 時代와 環境에 副 應하여 새롭게 表出된 宗敎現象이다. 또한 韓國人에게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한국인의 特徵的인 宗敎 意識과 宗敎的 性向이 있을 것인 바, 정규훈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단언하고 있다.

“한민족은 종교적 민족이다. 어느 종교도 한국에서 무참히 실패하고 돌아 간 적이 없으며, 누구나 종교적인 정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선언하기를 망설인다. 우리와 우리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사상의 터널을 통 과하지 않을 수 없다. 근대기에 화산처럼 분출한 동학 등 신종교들만 하더라 도 고대로부터 형성, 잠재되어온 각종 사유체제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결 국 근대 종교의 이해는 한국 정신사의 지표를 마련하는 일이라 하겠다”1)

그렇다면 위의 引用에서 언급된 ‘(韓民族의) 古代로부터 形成, 潛在 되어온 各種 思惟體制’의 具體的 內容과 性格은 과연 무엇인가? 이러 한 ‘韓民族의 思惟體制에 대한 一般化 作業’은 韓國의 諸般 宗敎 現 象을 理解하고 規定하는 基本的인 要素이며 前提的 要件이 아닐 수

1) 정규훈. 한국의 신종교. 서광사. 2012. p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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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이에 한국의 신종교를 探究함에 있어서 ‘韓國人의 일반적인 思 惟的 傾向과 그 속에 內在된 宗敎的 特質을 살펴보는 일’은 韓國的 宗敎 現場에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韓國人의 精神的 特徵으로서의 宗敎 意識

한국인의 본래적 정신세계를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신뢰할만한 원 천적 자료는 한민족의 정신적 原形質(遺傳因子)을 상징적으로 기록 하고 있는 한민족의 고대 신화이다. 新宗敎의 성격이나 의미를 논의 하는 일은 한민족의 精神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기에, 韓國 神話를 분 석. 검토하게 되면, 그 속에 溶解되어 있는 民族的 宗敎性의 특질이 나 性向을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基調 위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신화인 檀君의 開國神話. 高 句麗 朱蒙神話. 新羅의 朴赫居世 神話의 내용을 차례로 要約. 引用하 면 다음과 같다.2)

“하늘에 사는 桓因의 아들 桓雄이 인간세계로 내려와서 인간이 되고자 염원한 곰의 뜻을 이루어주고, 인간이 된 熊女와 혼인하여 檀君을 낳으니, 이가 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朝鮮開國하였다

“扶餘金蛙王河伯의 딸인 柳花를 데려왔더니, 柳花의 몸에 하늘의 태양빛이 계속 비치고 이로 인하여 유화는 잉태하고 朱蒙을 낳았으며, 활을 잘 쏘는 朱蒙은 후일 高句麗를 開國하였다”

“新羅의 옛 땅인 辰韓의 여섯 부족이 모여 자신들의 을 찾고자 하니, 이때 하늘에서 白馬가 알을 가지고 내려왔고 그 알에서 태어난 아이가 그 들의 朴赫居世가 되었다”

2) 三國遺事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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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引用한 한국의 여러 神話(檀君. 朱蒙. 朴赫居世 神話)는 다음 과 같은 共通的 構造와 要素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太初的 意識 속에 뚜렷한 宗敎的 意志(宗敎的 特質)가 내포되어 있음을 積極的으로 反映하고 있다.

① 한국 신화의 主體 즉 우리 한민족의 조상은 그 태초적 人格性 (인간의 自我意識)을 모두 하늘로부터 받은, 하늘의 子孫으로 인식하 고 규정하였다. 즉 한민족의 天孫意識은 한민족의 원초적이며 보편 적인 자기 이해이며, 이는 ‘하늘의 存在原理(天道)’를 한민족의 고유 한 생명적 본질로 삼고 있음을 표방한 것으로, 한민족의 고유한 정신 적 특질이 宗敎意識(宗敎性)에 근거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3)

②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의 의미는, ‘現象 자체로서의 하늘’

(天文學的 對象인 自然天)이 아니다. 인간의 의미로 해석되고 수용된

‘인격적인 天’으로 이른바 창조적 權能의 천(主宰的 權威의 天)이다.

이는 인간의 원초적 의식이 반영된 결과로서, 그들은 하늘을 일러

‘하늘에 대한 인격적 呼稱인 하느님’으로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

③ 한민족은 처음부터 하느님의 關心과 意志가 투영된 하느님의 자손으로 自我를 인식하고 규정한 것이니, 이는 한민족의 태초적 의식 자체가 곧 강력한 종교성을 본질로 삼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4)

실로 인간은 天地之間의 萬物之中에서 인격적 삶을 내용으로 살아 가는 하나의 존재이다.

인간은 ‘神明性’(靈魂)과 ‘叡智性’(理性)을 가진 形而上的 존재이기 에 “뜻”(義. 意. 道. 理)을 본체로 삼고 있는 神과 交通할 수 있고, 동 시에 “몸”(身. 體. 器. 氣)을 가지고 있는 形而下的 존재이기에 동물의

3) 인간이 ‘하늘’(天)의 存在的 意味를 인격적으로 해석하고 규정한 궁극적 개 념이 곧 神性이며, 인간이 神性에 대하여 갖게 되는 諸般 儀式과 行態가 곧 宗敎의 本領이다.

4) 어려운 戒律을 끝까지 지켜냄으로서 ‘인간으로 새로남(거듭남)’을 성취한 곰 의 강렬한 의지와 노력은 종교성이 발현되는 가장 典型的이고 模範的인 事 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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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能性과 物質的 제한성에 구속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부여받고 있 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本質인 人性에는 이미 하늘의 神明之 德과 땅의 萬物之情을 함께 具有하고 있는 “神⋅〮物 兩性의 人格主體 性”이 內藏되어 있다 할 것이다. 한민족의 태초적 人間理解(自我解 明)에는 이러한 ‘天神과 地物의 統合的 人格性’이 명백한 構造로 提 示되어 있다.

天神 환웅과 地物 곰이 인간 세계에서 交合하여 인격적 존재인 檀 君으로 탄생하여, 세상을 經綸하는 開國者로 등장하고 있고, 하늘의 태양빛(日光)과 (땅의 본질을 상징하는) 柳花의 肉身이 만나서 주몽 이라는 인격성으로 化生하고 있으며, 땅에 사는 여섯 부족의 염원에 부응하여 하늘의 日光이 안내하여 白馬가 전해 준 알에서 朴赫居世 가 태어나는 생명적 構圖는, 한결같이 宇宙的 生命의 原材料가 인간 의 인격적 本性으로 內在化되고 收斂. 調和. 統一되어 한민족의 본래 적 思惟體系가 完成되었음을 거듭하여 陳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한민족의 삶의 내용은, 天神만을 대상적으로 의지하고 추 구하는 편향된 종교적 삶(西歐 歷史에서의 中世的 삶의 실체가 이러 한 사례에 해당된다)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이고, 또한 물질적 가치만을 일방적으로 추구하고 탐닉하는 (치우친) 과학적 삶(현대 사 회에서의 科學萬能主義. 物神 敬拜 경향은 이러한 사례이다)에 구속 되지 않을 수 있는, 보다 統合的이고 均衡 있는 思惟方式과 世界認識 (이념적 總體)을 조화롭게 갖추고 있는 것이다.

2. 韓國 近代 新宗敎 運動의 展開 樣相

한국의 역사적 記錄과 現場은 한국인의 自我意識이 한국의 時空的 座標에 나타난 한국인의 自畵像이다. 한국인의 自意識 속에 녹아 있 는 원형적 氣質이 무엇보다도 강력한 종교적 성향이라면, 한민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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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현장에 종교적 열정과 지향이 간단없이 表出되고 기록되어 있 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더구나 일상적 삶을 영위해 감에 있어서, 特定 시대의 실존적 상황이 당시의 종교적 열정을 현상으로 孵化시키기에 필요하고도 충분한 여건을 갖추게 된다면, 이러한 종 교성의 씨앗은 더욱 크고도 힘차게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적 地平에서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의 민족적 삶의 상황은 한국인의 宗敎的 熱情을 發芽시켜 宗敎的 實 踐으로 꽃을 피우기에 적합한 本質的 要件를 충실히 具備하고 있었 으며, 이에 따라 韓民族의 ‘精神的 自覺’이라 할 수 있는, 民衆의 自 己 改革 運動은 宗敎的 方面으로도 나타나면서, 당시 韓國의 新宗敎 運動은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가 새로운 宗敎的 期待感을 現場에서 表出하고 또 享有하게 된 것이다.

1) 現實的 삶에 대한 宗敎的 對應으로서의 東學

18-19세기는 한국의 全歷史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轉換과 混沌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오백년을 지탱하던 王朝 사회의 성리학 적 질서가 흔들리면서 전통적 삶은 붕괴되고 있었고, 역사상 최초로 東西 문명 간의 충돌, 서양의 이질적인 近代 文明이 틈입함과 동시에 서양 帝國主義의 폭력적 팽창으로 인한 국가적 存亡의 위기는 民衆 들의 삶을 말할 수 없는 桎梏으로 빠뜨렸다.

거의 유래가 없는 이 역사적인 굴절에 민중들은 고통으로 신음하 고 있었고. 정신적 아노미 상태에서 갈 길을 잃고 절규하고 있었다5) 東學은 이러한 사회적 大混沌의 상황에서 한국 민중이 이를 탈피 하고 희망의 새 시대를 갈망하는 민족적 몸부림으로 나타난 ‘韓國的 更生運動의 總體’라 아니할 수 없다.

東學의 開創者인 崔濟愚는 그의 종교적 체험을 통한 內面的 省察 5) 김용휘. 동학의 개벽사상과 새로운 문명. 한국종교 제 35집. 원광대 종교문

제 연구소. 2012.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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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하늘에 대한 인식과 인간 자신(당시의 사회현실)에 대한 자 각을 상호간에 통일적 관점에서 해석하여, 동학의 기치를 내걸었으 며, 이는 당시의 사회적 요청과 부합하여, 민중의 실질적 삶의 개혁 을 혁명적으로 추구한 東學革命이라는 實踐的 운동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동학은 龍潭遺詞(안심가)에서 “십이제국 괴질 운수 다시 개벽 아 닐런가. 태평성세 다시정해 국태민안 할 것이니”6) 라고 노래하면서

‘다시개벽’과 ‘태평성대’라는 두가지의 종교적 표제어를 제시하고 있 는데, 이는 ‘새로운 우주질서에 대한 인간의 의식과 해석을’개벽 ‘으 로 수렴한 것이고, 나아가 인간 사회 현실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희 망을’태평 ‘으로 선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하늘의 문제(天道)와 인간의 삶(人事)의 관계를 통일 적으로 상관시켜 그 論理的 構造와 意味를 “하늘과 인간 사이의 生 命的 關係”로 규정한 것이며, 이를 종교적 차원에서 ‘侍天主’(하느님 을 받들고 모심)라는 종교적 자세와 ‘다시 開闢’이라는 종교적 志向 으로 綜合하고 있는 것이다. 동학에서 제시한 天道와 人事와의 관계 는 신종교 현상 전체를 아우르는 ‘본질적인 構圖’인 동시에, 이는 凡 人類史的 宗敎形式의 源泉的 構圖이기도 하며, 동시에 한국적 종교 의식의 강력한 특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동학 운동은 그 자 체가 이미 세계사적 일반 의식의 보편적 실현 현상과 그 軌와 脈을 함께 共有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한국의 東學運動은 처음부터 인류의 보편 의식이 지향하는 世界性을 가지고 출범하였던 것이다.

2) 宗敎的 對應의 理論的 根據로서의 正易

天道와 人事와의 必然的 關係性을 전제로 그 인간적 情緖를 發現 시킨 종교적 운동이 동학이라면, 一夫의 正易은 天道와 人事(天人關

6) 龍潭遺詞. 안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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係)의 生命的 相關性과 必然的 構造에 대하여 度數的 論理와 體系로 써 解明해 낸 한민족의 철학적 成果인 것이다.

正易의 核心的 主張은 天道 현상을 “천도 運行의 度數 자체가 실 제적으로 成長”(天之曆數의 變化)하는 우주의 생명적 전개 과정으로 이해하고, 그 철학적 논거를 數値(度數)로 체계화한 것으로, 이는 天 道 理解에 대한 인간의 意識 地平을 새롭게 擴張. 深化하고 있는 것 이다.

우주의 생명적 전개 과정을 필연적인 天之度數(曆數)의 변화 단계 로 確定하여 論證해냄으로써, 인간의 삶의 근거인 우주적 실체가 ‘그 生命性을 스스로 완성해 나가는 새로운 미래적 모습’(이것이 後天의 實相이다)으로 전개될 것임을 豫見. 確定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래에 대한 革命的 新世界를 기대하던 당시 민중의 意識 志 向에 강력하고도 確信的인 信念의 鞏固化를 가져다 준, 실로 획기적 인 宇宙 認識으로 擴散되어, 新宗敎의 전체에 이론적 근거로 널리 引 用되었던 것이다.

이제 한국의 신종교는 종교적 열망과 더불어 그 종교적 論理 體系 를 확보함으로써, 단순한 情緖的 慰安이나 日常的 期待感의 滿足을 渴求하는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적인 미래적 宇宙像을 論理的 으로(理性的 計量에 依하여) 受容하고 信仰하며 豫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의 신종교는 主張과 實際 사이의 원천적 間隙을 혁명적 발상으로 無化시키고, 信仰과 生活을 一體化시킬 수 있는 ‘한 국적 信仰의 바탕과 動力’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正易에서 제시한 ‘天之曆數變化에 대한 전혀 새로운 解明’은 실로 인간에게는 영원한 생명적 전제이며 想念의 대상일 수밖에 없던 ‘우 주 자체의 神明的 境地’를 인간의 눈앞에 펼쳐 보인 일대 革命的 認 識 轉換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며, 旣存의 天道 理解와는 次元을 달 리하는 正易으로의 새로운 發想은 ‘天道에 대한 韓民族의 哲學的 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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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니, 이는 한국의 新宗敎 운동을 근거 있게 主導해 낸, 思想的 指針이며 有用한 宗敎的 里程標가 되었던 것이다.

3) 人間 主體性의 宗敎的 發現으로서의 甑山道

甑山敎의 創敎者인 甑山 姜一淳(1891-1909)은 이 시대의 民衆宗敎 가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종교적 열망을 매우 독창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그의 사상은 분명 기성 종교의 전통과는 軌道를 달리하고 있음 을 엿볼 수 있는 데...강증산의 敎說에 나타난 사상적 특징은 무엇보 다도 신앙의 대상으로 自任되는 그의 位格에 있다. 그는 스스로가 고 통 받는 民衆을 救濟하는 절대적이며 완전한 權能의 소유자임을 明 示하고 있는 것이다.7)

다음은 이를 직설적으로 선포한 대목이다.

“나는 ....삼계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고, ....무명의 약소민족을 도와서 만 고에 쌓인 원을 풀어주려 하노라. 나를 좇는 자는 ...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 니, 이것이 참동학이니라”(典經)8)

“상제께서 ‘선천에서는...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 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 상생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 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典經)”9)

위의 선포는 創敎主 ‘姜甑山 자신이 실제로 民衆 앞에 나타난 하느 님적 존재임’을 斷定한 것으로, 실존적 개별자인 人間 姜甑山과 보편 적 존재원리를 대변하는 하느님이 그 位格에 있어서 동일하다는 자 기 권위의 絶對성을 宣布한 것이다.

7) 이경원. 강증산의 후천 개벽론. 한국종교 제 35집. 원광대 종교문제 연구소.

2012. pp144-147 참조.

8) 典經. 卷之 1-10 9) 典經. 公事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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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餘他의 종교적 지도자가 ‘하느님의 代理者’ ‘神意를 전달하는 인간의 역할’로 자리 매김 되는 일반적인 종교적 位相과는 구별되는,

‘甑山이 스스로 규정한 자기의 종교적 本質’인 것이다. 한국 近代의 宗 敎家 중에서 이처럼 ‘인간 자신을 神格으로 昇華시킨 종교적 宣言’이 出現할 수 있었던 背景에는 ‘인간 존재를 宇宙的 主體로 이해하고 있 는 한국인의 思惟的 特質’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는 ‘인간 존재를 神性(하늘)과 物性(땅)의 統一的 妙合體’로 解明하고 있는, 古代 韓民族의 人間觀에서 胚胎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강증산이 자신의 人格性을 우주 만물의 創造者이며 主宰者인 上帝 의 神格性과 一體化시킴으로써, 증산 자신은 실존적 創敎主로서의 종교적 權能과 權威를 스스로 초월적 경지로까지 高揚시켜 확보 하 였는데, 이는 同時에 萬民 救濟라는 民衆에 대한 ‘자신의 無限 責任 을 自處하는 종교적 使命으로 自覺. 認識하게 되었고, 증산의 이러한 강력한 자기 確信은 또한 자연스레 증산의 敎說을 信仰하는 많은 民 衆들의 종교적 要求에 무한대의 信賴와 信仰的 慰安을 제공할 수 있 게 된 것이다.

종교적 신앙 체계의 구축은 합리적 理性에 근거하기 보다는 情緖 的 熱情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天尊과 人尊을 同一 地平에서 調和시 키고, 자신을 그 주체적 인격체로 自任하고 선포한 甑山의 종교적 메 시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힘겨운 삶을 꾸려가던 당시의 民衆들에 게는 매우 친근하고도 便利한 信仰的 歸依處가 될 수 있었고, 나아가 現實的 解放地가 되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4) 人間 生命性의 宗敎的 享有로서의 圓佛敎.

종교의 本質은 神을 위한 神의 종교가 아니라 人間을 위한 人間의 종교이다. 그러므로 종교의 主體와 客體는 神이 아니라 오히려 人間 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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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이 종교의 주체가 되고 人間이 종교의 객체가 되면, 실존적인 人 間이 虛像뿐인 神의 장식품이나 노예로 전락하게 되기 쉬우며, 거룩 한 神의 이름은 자칫 인간에게 희망과 위로가 아닌 고통과 고난을 강제하기도 한다. 때로는 인간만이 종교의 주체가 되고 神은 객체가 되어 神이 오히려 인간의 利己的 도구(수단)로 利用되는 畸形的 신앙 체계가 出現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의 체계는 神과 人間이 모두 主體가 되고 동 시에 모두 客體가 되는, 이른바 ‘神人以和’10)의 相生的 調和를 추구하 는 것이다.

다만 形體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形而上的 의지(뜻)를 가지고 있 는 神은 인간이 希求하는 理念的 主體가 되고, 현실적 삶의 주체인 인간은 그 이념적 受惠者가 되어, 끝내 인간은 神의 恩寵을 日常에서 享有하는 ‘信仰的 生活’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여러 新宗敎 중에서도 圓佛敎는 특별히 종교의 진정한 주 체를 인간의 실제적 日常 生活과 一體化시켜 인간이 信仰生活로 누 릴 수 있는 종교적 惠澤(恩寵)을 강조하고 추구한 매우 ‘현실적인 생 활 종교’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親生活的이고 親大衆的인 종교 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일상생활에는 물질적인 혜택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지만, 단지 물질적인 豐饒와 便利만을 追求하다가는 진정한 인간의 행복을 향유할 수 없는 것이며, 이러한 물질 위주의 생활에 수반되는 限界는 오로지 宗敎的 道德心의 發現으로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이기에, 圓佛敎 開創의 동기를 밝힌 正典의 첫머리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 세력의 항복을 받아,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10) 書經. 舜典 “八音克諧 無相奪倫 神人以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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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한다.” (正典 제 1 요약)11)

圓佛敎의 중심 강령은 ‘物質에 구속되지 않는 진정한 精神開闢’에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물질문명이 크게 일어남에, 이를 정신적 개혁으로 통어하고 극복해야, 비로소 올바른 인간의 삶을 향 유할 수 있는 것이기에, 원불교의 종교적 救世理念은 日常에서의 精 神開闢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의 精神開闢 운 동은 궁극적으로는 범인류세계의 참문명을 건설하게 되어, 끝내 종 교적 이상세계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불교의 개창자 소태산의 종교적 멧시지는 ‘인간을 개벽하여 참 문명세계를 건설하자’는 것으로, 이는 ‘道學과 科學. 공부와 사업을 함께 竝進하여, 靈과 肉이 함께 온전하고, 精神과 物質이 調和된 참 된 인간 세계’를 성취하자는 것이다. 다음을 이를 直說한 대목이다.

“우리가 건설할 회상은 ... 큰 회상이라. 그러한 회상을 건설하자면 그 법 을 제정할 때에,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여.... 모든 교법을 두루 통합해야 한 다” (大宗經)”12)

이처럼 圓佛敎가 추구하는 참 文明世界는 ‘開闢된 인간의 실천적 宗敎 운동’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宗敎 一般이 提示하고 있 는 理想的 理念과 대체적으로는 그 軌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특별히 주목할 수 있는 점은, 일반적인 生活人들로 하여금 안팎으로 정신을 수련하고 물질을 統御하게 되면, 靈肉이 모두 안락한 경지를 누릴 수 있음을, 보다 현실적인 敎說로 안내하고 있는바, 圓佛敎에서 는 매우 일상적 삶과 밀착된 종교적 특성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11) 正典 제1. 총서편.

12) 大宗經. 서품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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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新宗敎 運動의 主體와 理念

1. 日用的 삶의 主體로서의 民衆

근대의 시대정신을 주도한 인간 의식은 이른바 시민의식으로서 이 는 사회 구성원의 多數인 庶民 大衆(民衆)의 정신 활동을 일컬음이 다. 民衆의 개념에 부합하는 유학적 인간 규정으로는 ‘百姓’이라 할 수 있는 데, 공자는 백성의 본질에 대하여 매우 다양하고 친절하게 그 본질적 특성을 설명하고 있으며, 그 핵심적 의미를 ‘日用性’으로 집약하고 있다.

儒學의 최종적 理念은 天地間에 펼쳐진 인간사회에서 ‘個個人의 天賦的 人格性을 현실적 삶의 현장에서 만끽하고 누리며 인간답게 살아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유학의 諸經典에서는 ‘百姓의 日用的 삶 自體’를 인간 사회에서 志向해야 할 궁극적이며 절대적인 生命的 價 値로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유학에서는 인간 사회의 삶의 주체로서 聖人. 君子. 百姓이라는 세 가지의 입장에서 人間像을 구분 하여 규정하고 있다.

儒家의 제경전에 聖人. 君子. 百姓 등이 대표적인 인간 규정으로 구분되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각각의 名稱에 해당되는 개념적 의 미가 “상호 구분 되어야 한다” 는 認識을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 는 것이다.

認識이란 어떤 개념에 대하여 ‘區別하여 說明할 수 있는 인간의 理 性的 기능’이라 할 수 있으며, 인식의 最終的 대상은 ‘모든 理性的 기 능의 궁극적 收斂處인’原理 ‘(道 自體)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적 기능이 ‘眞理 자체’를 인식할 수 있느냐 없 느냐의 여부는 인간의 본질적 성격이나 능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尺 度가 되는 것이다. 천지 萬物 중에서 오로지 인간만이 認識의 主體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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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될 수 있는 理性的 존재라는 점에서, 理性的 기능의 발휘 정도는 인간 자체의 본질적 의미와 위상을 구별해볼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 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다음의 인용은 유가적 인간상 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용한 통로를 제공하고 있다.

“中庸에서는 인간의 존재 상황을 세 가지 관점에서 구분하고 설명하고 있다.

‘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 一也 或安而行之 或利而 行之 或勉强而行之 及其成功 一也 13)

위의 인용은 認識(知)과 實踐(行)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질적 존재 의의를 세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 것으로, 이를 좀 더 詳述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앎(知: 인식)이라는 이성적 보편 기능이 있는데,14) 어떤 이는 그 이치(道)를 태어나면서부터 (배우지 않고도) 알고, 또 어떤 이 는 그 이치를 (後天的으로) 배워서 알게 되며, 또 어떤 이는 그 이치를 알기 위해 힘을 들이고 애를 쓰고 어렵게 노력해야만 겨우 알게 된다.15)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알고 있는 이치에 따라 살아가게 마련인 데, 어떤 이는 그 이치에 따라 편안하게 살고, 또 어떤 이는 천하 세상을 잘 살게 하기 위하여16) 부지런히 그 뜻을 널리 실행하며 살아가며, 또 어떤 이 는 남이 시켜야만 겨우 따라서 행위하며 살아가게 된다.

유가의 諸經典에는 인간을 규정하는 여러가지 명칭이 있음에도, 필자가 구태여 ‘聖人’ ‘君子’ ‘百姓’ 이라는 槪念語를 중심으로, 그 인간적 의미를 논 의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恣意的 선택이거나 論義便宜性 때문이 아니다.

孔子는 특별히 이 세 가지 類型人間像에 대하여는 그 개념적 의미를

13) 中庸 20장

14) 여기서 앎의 내용은 “앎의 대상인 ‘그 것(之)’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바, 여기 서의 ‘그 것’이란 인식의 가장 포괄적이며 궁극적인 내용인 ‘道 자체(存在原 理: 理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5) 여기에는 ‘개인의 인위적 노력만 가지고는 그 이치를 알기가 매우 어렵다’.

‘힘들게 애쓴다고 모두가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16) ‘利而行之’에서 ‘利’의 문제는, 앞서의 ‘學而知之’라는 인식(知)의 차원에 상응 하는 실천(行)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유가 사상의 일반적 주제인

‘好學君子의 利天下(經世治民) 사상’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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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관점에서 구분하여 설명하고, 각각의 人間像이 相互間에 구분되어 야 하는 기준과 차원을 거듭 밝힘으로써, 각각의 본래적 存在像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産萬物者 聖也”17) “昔者 聖人之作易 也”18)등은 이치를 밝힌 주체가 곧 ‘作易 聖人’임을 天道的 차원에서 말한 것이고, “君子 進德修業”19) “君子 將有爲也 將有行也”20) 등은 이치를 실 천하는 ‘行易 君子’를 經世的 차원에서 일컬음이며, “民之質矣 日用飮食”21)

“百姓 日用而不知”.22)등은 日常的 삶을 살아가는 ‘百姓’의 본래적 속성을 言 明한 것이다”. (송재국. 유가의 인간 규정에 대한 삼재적 의미. 제Ⅱ장 참조)

그런데 或者는 ‘百姓 日用而不知’의 본래적 의미를 단순히 文字的 으로만 (피상적으로) 해석하여 ‘無知한 百姓’이라는 의미로 格下하면 서, 儒學의 實踐 理念인 ‘平天下事業’도 엘리뜨의 一方的 支配를 擁護 하는 ‘衆愚政治의 事例’로 曲解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는 百姓의 本質을 철학적 차원에서 규정한 ‘日用性’의 본래적 의미를 바르게 設 定하지 못한 데에 그 원천적 誤謬가 있는 것이다. 이제 공자가 언급 하고 있는 백성의 의미를 좀 더 천착해보면 다음과 같다.

“공자가 주역에서 ‘百姓 日用而不知’라고 말한 뜻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백성이란 日用人”이란 점이요. 또 하나는 “百姓이란 不知人”이란 점이다.

日用人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삶의 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백성이 란 무슨 특별한 사명이나 의지를 내세우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 의 일상적 가치와 개별적 존엄과 자유 등을 귀하게 여기고, 이를 위해 자신 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무리를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백성이란 “먹고 사는 일에 충실한 보통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자신의 일보다 17) 禮記. 鄕飮酒義.

18) 說卦傳 1.

19) 乾卦 文言傳 20) 繫辭傳 上. 10.

21) 詩經. 天保 22) 繫辭傳 上.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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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국가와 사회의 문제에 더욱 관심이 많은 사람도 있고, 현재보다는 미래 에 더욱 집착하는 사람도 있는 것인데, 日用人이란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는 달리 ‘지금. 여기에서의 자신의 삶의 문제’(實存 狀況)에 골몰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또한 詩經에서는 ‘民’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神之弔矣 詒爾多福 民之質矣 日用飮食”23)

여기서 ‘日用飮食’이란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상적 삶”을 일컫는 것으 로 이것이야말로 백성의 본질을 설명해주는 가장 분명한 형용이라는 것이 다. 아울러 백성을 “不知人”으로도 설명하고 있는 데, 이는 “백성은 살아가 理致原理를 모르는 無識한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근 본적 이치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관심을 표명해야 할 어떤 의무나 固有 役割이 주어져 있지 않은 존재가 바로 백성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백성이란 어떤 이치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면서 삶을 꾸려가는 존재 가 아니라, 그저 주어진 자연적 질서에 따라 정서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 人君은 백성의 이러한 본래적 의미 와 속성을 파악하여 백성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하거나, 억지로 同意를 구 하거나 하는 따위의 번거로운 일에 골몰하기 보다는, 그저 백성이 보고 배 워서 따라 하기에 쉽도록, 매사를 자발적이고 희생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24)

이처럼 백성이 스스로의 마음에 말미암아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허용 하는 정치 형태가 곧 王道 정치이며, 强要指示가 아닌 敎化感化 정치의 방식으로 삼는 왕도 정치의 본질이 곧 德治 사상인 것이다.”25)

(송재국. 儒家의 인간 규정에 대한 三才的 의미. 제 Ⅲ 장 요약)

한국의 新宗敎 運動에서 指導者의 一方的 意志를 獨斷的으로 實現 하기 위해 民衆에게 종교적 敎義를 강요하거나 또는 敎理를 선전하 기 위해, 민중의 삶을 일방적으로 動員하거나 裝飾으로 利用하지 않 23) 詩經, 天保.

24) 論語, 泰伯.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는 이러한 공자의 언급이다.

25) 宋在國. 儒家의 人間規定에 대한 三才的 意味. 동서철학 제 77호. 한국동서 철학회. 2015. p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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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오로지 人民大衆(衆生)의 日常的 幸福을 旗幟로 내걸고, 國泰民安 과 太平聖代를 추구한 이유는, 儒學에서 志向하는 이념적 目標와 온 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宗敎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宗敎가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人間 中心 主義. 百姓 于先主義를 宗敎的 現場에서 실천하는, 명백한 民衆宗敎. 實踐宗敎의 증거이며, 실로 한국 新宗敎 의 存在 意味와 文明的 價値도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2. 未來的 삶에 대한 民衆的 志向으로서의 後天 開闢 思想

社會的 삶의 階層的 位相에서 그 下部的 構造를 차지하고 있는 大 多數의 民衆은 그들에게 ‘現在的 삶은 언제나 苦難과 逆境’ 속에 있 으며, 그러하기에 또한 언제나 보다 행복한 ‘未來的 삶을 希望’하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나의 未來的 삶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期待와 關心은 民衆들에게 있어서는 日常的 意識이며, ‘自身의 미래적 狀況’을 알고 싶은 强力한 熱望을 가지게 되는 것은, 또한 당 연하고도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東洋社會에서 易學은 오랜 歲月에 걸쳐 人間의 未來的 關心에 대 하여 應答해주는 道具的 學問으로도 所用되어 왔다. 易의 本來的 機 能이 ‘未來事를 알고자 하는 인간의 바람’을 充足시켜주는데 있음은 周易에 직접 明示되어 있다.

“極數知來之謂占”26)

(시간의 수를 미루어 셈하여 미래의 일을 알고자 하는 것이 곧 점치는 행위를 말한 것이다)

26) 周易. 繫辭傳 上.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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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來者 逆 是故 易 逆數也”27)

(미래를 알고자 할 때는 역의 방향으로 수를 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 학에서는 시간의 물리적 전개 순서인 역의 방향을 위주로 하여 도수를 밝 히고 있는 것이다)

朝鮮 後期 어렵고 힘든 苦難의 시대를 살아온 당시의 민중들에게

‘보다 행복한 미래적 삶을 희망하고 알아볼 수 있는 易學的 效用’은 그러므로 현재의 삶이 困窮할수록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었던 것이 다. 近代 新宗敎의 諸般 양상을 論議함에 있어서 民衆의 要請에 應答 하던 易學的 쓰임과 意味를 함께 關聯하여 檢討해야 하는 理由가 여 기에 있는 것이다.

本來 聖人께서 易을 지으신(作易) 理由는 하늘의 자식으로 태어난

‘인류의 미래적 삶’이 걱정되어서(憂天下來世) “天下 百姓에게 어려운 事態(空間的으로는 험한 물길을 건넘: 利涉大川. 時間的으로는 先天 에서 後天으로 넘어가는 曆數 變革의 계기를 무사히 살아냄)가 닥치 더라도, 죽지 않고 잘 견디고 극복하여(懼以終始) 오래도록 허물없이 (无咎)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28) 인간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基準과 法度로서의 ‘올바른 때의 원리’(時義. 時中之 道: 易道)를 밝혀주고, 이를 인간에게 가르쳐주기 위함이다.29)

東洋의 精神史에서 易學은 孔子 以後 周易뿐이었다. 그런데 19세 기 艮方 朝鮮에서 正易이 出現하였다. 正易이 세상에 나오게 된 철학 적 근거로서의 宇宙史的 必然과 人類史的 當爲가 周易 속에는 이미 祕藏되어 왔음이 正易의 출현으로 因하여 비로소 밝혀지게 된 것이 다. 易學史에서 易道가 周易과 正易으로 나누어서 출현하게 된 哲學 的 意義는 무엇이며, 周易과 正易의 中心的 主題는 相互 어떻게 區分

27) 周易. 說卦傳. 3

28) 繫辭傳 下.11 “懼以終始 其要无咎 此之謂 易之道也”

29) 주역. 繫辭傳 上. 4 “知周乎萬物而道濟天下”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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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가? 이에 周易과 正易을 서로 간에 비교하면서 그 主題와 論理 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구분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周易과 正易의 中心 主題

周易은 인간이 本來的으로 가지고 있는 人格性의 存在構造와 人格 的 삶의 法則을 밝힌 生命思想이며, 正易은 (인간을 낳아 주시고 살 아갈 수 있도록 인간에게 生命性을 賦與해 주신 인간의 父母인) 宇宙 自體가 가지고 있는 人格性의 存在意味(神明之德)와 宇宙 자체의 生 命的 展開 法則(曆數 自體의 變化原理)을 밝힌 生命思想이다. 附言하 자면 人間 社會의 삶의 법칙을 中心으로 易道를 해설한 經典이 孔子 의 周易이며, 宇宙 自體(天道의 存在方式)의 생명적 展開 法則을 중 심으로 易道를 해설한 經典이 金 恒의 正易이다.

하늘의 문제(神明性)는 生而知之한 聖人30)이 말씀(言)으로 밝혀 주 는 것이며, 땅의 문제는 學而知之한 君子31)가 행동(行)으로 經綸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문제(天行)를 主題로 삼은 경전인 正易에서는 聖人의 존재 의미를 중심으로 易理를 해설하고 있으며, 땅의 문제(人間萬事)를 주제로 삼은 경전인 周易에서는 군자의 使命 을 중심으로 易理를 해설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역의 중심적 주제는 天道(元亨利貞)의 存在方式인 時間 (春夏秋冬)과 空間(東南西北)의 存在構造를 前提하고, 이에 順應해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當爲的인 삶의 법칙(仁禮義智)을 說明함에 있 고, 정역의 중심적 주제는 인간의 생명적 存在 根據가 되고 있는, 天 道 自體의 생명적 전개 과정(天之度數: 曆數 自體의 變化 原理)을 모 두 밝혀서, 본래 하늘이 意圖하고 計劃하고 設計한 하느님의 태초적 意志(神明之德)를 解明함에 있는 것이다.

30) 하늘의 뜻이 인격성으로 化하여 인간 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존재.

31) 성인의 말씀이 기록된 경전을 배워, 그 뜻이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이라 자 각하고, 이를 인간 세상에 실현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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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天道 自體의 變化 原理: 天之曆數

‘易’이란 글자는 “日月爲易”에서 알 수 있듯이, ‘日月之行’에 의한 四時 變易을 뜻하는 것이며, 동시에 시간의 변화에 따른 萬物의 變化 現象을 말한다. 따라서 易學이란 變化에 대한 學問이며, 동시에 變化 의 根據인 變化原理에 대한 探究로서, 종합적으로 말하면 ‘變化之道 를 내용으로 하는 學的 체계’인 것이다. 周易에는 ‘變化’와 관련한 表 現이 매우 다양한데, “乾道乃革” “天地革而 四時成” “終則有始 天行 也” “乾道變化” “天地變化”등은 모두 “天地가 變化한다는 점”을 나 타내고 있다. 주역에서 天道의 變化가 問題視되는 理由는 그것이 ‘人 間의 삶의 모든 領域’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十翼을 贊述하여 易道의 철학적 기틀을 다진 孔子에게 있어서 가 장 큰 관심은 “인간의 本質은 무엇이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라는 철학적 命題에 있었고, 이에 대한 그의 해답을, 그는 “四象 (元亨利貞)이라는 하늘적 存在構造에 依據하여, 四德(仁禮義智)이라 는 인간적 삶의 원리를 실현해야 한다” 고 설파함으로써, 이른바 天 人 間의 道德的 相應關係를 闡明하였던 것이다. 孔子의 十翼을 바탕 으로 삼은 易學은 漢代 以後 儒學이 官學으로 정착되면서 더욱 크게 硏究되었지만, 易學의 中心 槪念인 ‘變化之道’에 대한 일반적인 說明 은 대체로 “天道와 人事間의 存在論的 一體化를 言及한 乾卦 文言傳 의 範疇와 次元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易學에서의 ‘變化之道’의 참된 意味가 “인간의 삶에 대한 存在論的 必要性 때문에 要請된 天 道의 變化 現象”이라기보다는, 오히려 “天道 自體가 실제로 그 運行 度數의 變化 段階를 거치는 生命的 過程을 통하여 成長한다”는 “宇 宙史的 曆數變化原理”라는 새로운 “易道解說”이 出現하였으니, 이것 이 곧 19세기 後半. 朝鮮에서 宣布된 一夫 金 恒의 正易인 것이다.

正易이 提示한 새로운 관점에서 ‘變化之道’의 意味를 窮究해 보면, 周易에 言明되어 있는 ‘變化’와 관련된 다양한 文句 등도 사실은 ‘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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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 自體의 運行度數(天之曆數)의 變革’를 示唆하고 있음을 비로소 알 게 된다는 것이다. 周易 乾卦의 三爻와 四爻에 대한 孔子의 說明은 이에 대한 分明한 事例의 하나이다.

周易의 卦象은 內卦와 外卦로 되어 있는데, 內卦의 마지막 3爻에 는 “知終終之”. “无成而代有終也” 등, “終”의 의미가 나타나 있고, 外 卦의 첫 爻인 4爻에서는 “乾道乃革” “天地變化” 등 變革의 의미가 거듭되어 있는 것은, 天道가 ‘終則有始하는 變革’을 거쳐 ‘새로운 宇 宙 秩序가 登場함’을 標榜하고 있는 것이다. 天道 運行의 本質이 終 則有始32) 이며, 人間社會의 變化는 마땅히 天道 運行의 變革된 秩序 와 同行하게 되는 것이므로, 새로운 天道 變革은 당연히 새로운 人道 變化를 隨伴하게 되는 것이다.

‘앞선 마침’인 3爻와 ‘뒤 이어 시작’하는 4爻의 관계는, ‘終則有始하 는 天行’에 隨伴되어 ‘終則有始하게 되는 人間 世上’을 表象하는 것으 로, 이를 易學에서는 ‘먼저 하는 세상’으로서의 先天과 ‘다음으로 뒤 에 따라오는 세상’인 後天으로 구분하여, 論說하고 있는 것이다.

3) 天道의 終始 構造와 先天--後天

周易은 作易과 興易의 배경으로 歷史的 事實을 擧論하면서 ‘懼以終始 하는 人間的 態度’를 통하여, 인간의 未來的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憂患 意識’을 강조하고 있는바, 다음의 引用은 이를 직접 言及한 事例들이다.

“易之興也 其於中古乎, 作易者 其有憂患乎”33)

“易之爲書也...其出入以度外內使知懼 又明於憂患與故”34)

“易之興也 其當殷之末世 周之盛德耶 當文王與紂之事耶...懼以終始其要 无咎 此之謂易之道也”35)

32) 周易.蠱卦.彖傳 “先甲三日後甲三日 終則有始 天行也”

33) 周易.繫辭傳 下. 7장 34) 周易.繫辭傳 下.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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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주역은 ‘先天-後天’과 관련한 天道의 變革에 대응하여, 인간 은 언제나 ‘懼以終始해야 함’을 다음과 같이 示唆하고 있다.

“易之爲書也 原始要終 以爲質也 六爻相雜 唯其時物也”36) (六爻 괘상이 보여주는 핵심은 시간의 변혁 원리임을 강조함)

“先甲三日 後甲三日 終則有始天行也”37)

(선천-후천의 종시 변혁이 천도 운행의 본질임을 언급함)

“无初有終 先庚三日 後庚三日 吉”38)

(六甲에서의 庚日을 기준으로 바뀌는 역수 변화가 천도의 본래 모습임을 천명함)

위의 언급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면 ‘懼以終始’에서 ‘懼’해야 하는 내 용은, 人間事의 變化 事態에 한정된 것만이 아니라, 天行의 變革인

‘曆數 自體의 變化 事態’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天道의 終始 問題를 염두에 두고, 天道의 先後天 變易을 孔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先天而天弗違 後天而奉天時 天且弗違而况於人乎 况於鬼神乎....知進退 存亡而不失其正者 其唯聖人乎”

위의 언급을 정리해 보면, 첫째. 宇宙史의 展開는 先天과 後天으로 구분할 수 있고, 둘째. ‘先天에서 後天으로 變化하는 시간의 構造 자 체’는 絶對的인 것으로, 宇宙史와 人間史가 결코 그 原理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며, 셋째. 이러한 天道 變易의 절대적 원리를 알고, 이 에 對處할 수 있는 人格的 存在는 오로지 聖人일 뿐이라는 것이다.

35) 周易.繫辭傳 下. 11장 36) 周易. 繫辭傳 下. 9장 37) 周易. 蠱卦. 彖傳.

38) 周易. 巽卦. 九五爻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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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天下 百姓이 天道 變革의 契機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聖人 의 가르침인 易經을 배우고 실천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正易 以前의 易學者들은 대부분 ‘懼以終始’의 문제를 ‘人間事의 變 動에 대응하는 處世 方式(處世術) 정도로 인식하였고, 孔子의 이른바

‘時中之道’ 역시 人道的 次元에서만 설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正易的 관점에서 새롭게 보면, 周易의 ‘懼以終始’가 담고 있는 問題도 宇宙史 의 先後天 曆數變化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孔子는 “원리적 曆數로서의 360度數”를 易의 乾坤策數에 근거하여 도출해 놓고는 “四營而成易....天下之能事畢矣 顯道 神德行39) 라 하 여, 天道의 운행 구조가 360 正曆度數로 완성되는 데에는 네 가지의 運營 원리가 內在되어 있음을 明示하고 있다. 그렇지만 ‘曆數 자체의 구체적인 變化 方式이 무엇인지’ 에 대해서 주역에서는 더 이상 언급 하지 않고 있다.

다만 “艮 東北之卦也 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 故曰 成言乎艮”40) 이라 하여, 後世 聖人이 艮方에서 出現하여 “易道의 完成”을 宣布할 것으로 豫言하고 있을 뿐이다.

孔子의 이러한 神明的 豫見은 그 후 2천 수백 년이 지난 뒤, 19세 기에 이르러 艮方 朝鮮에서 一夫 金 恒의 ‘天之曆數 變化原理’를 선 포한 正易 ‘으로 著述. 公表된 것이니, 그 핵심적 敍述이 곧’宇宙史를 通貫하는 실제적 先後天 曆數 變化 原理 ‘인 것이다.41)

39) 周易. 繫辭傳 上. 9章.

40) 周易. 說卦傳 5章.

41) 正易에서는 天道 自體의 生成 變化 過程을 天之四曆度數의 段階的 運行으로 解明하고 있다. 宇宙의 本體 原理度數(元曆) 375度數가 十五尊空原理에 따라 (十五尊空爲體原理) 九度數씩 歸體(脫落)되어 366度數(亨曆)와 365 1/4 度數 (利曆) 의 兩閏曆 成長 過程을 거쳐 乾道用九(해)度數와 坤道用六(달)度數가 合德 成道되어 閏度數가 모두 一擧에 脫落하고, 陰曆 陽曆이 모두 成道合德 하여 天之度數가 360度數로 正曆 完成되는 宇宙의 生成原理와 存在構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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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易學의 窮極的 主題: 後天 開闢

天之曆數가 變革하여 새로운 天道의 運行 秩序가 이루어지는 宇宙 的 事態를 易學에서는 “開闢”이라 하고, 그렇게 開闢된 以後 전개되 는 새로운 世上을, 開闢 以前의 世上인 ‘先天’과 구분하여 ‘後天’이라 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宇宙의 開闢的 事件과 後天의 到來는 그 主體와 權能이 모두 ‘하늘’이라는 絶對的 領域에 속한다는 점에서, 하 늘 아래서 하늘이 내려주는 功能에 예속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天 下의 人類에게 있어서는, “開闢과 後天”이란 오로지 믿고 受容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宗敎的 次元의 信仰的 對象에 해당하는 것이다. 실 로 天地의 時空的 制限 속에서 生命性과 人格性을 謳歌해야 하는 (宿 命的 存在인) 인간이 이른바 “하늘적 事件 自體”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態度는 오로지 宗敎的 姿勢와 信仰的 心性을 具備하고, 하늘의 權能을 철저히 믿고 따르면서, 그 天道 運行 構造에 順應하는 일 뿐 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인간은, 비록 天地(하늘)가 내려준 時間과 空間 이라는 制限(틀) 속에 구속되어 現實的으로는 이를 결코 탈피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자유로운 靈魂과 意志 속에서는 (인간은 思惟 할 수 있는 神明한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超時空的 絶對 自由를 꿈꾸고 希望하고 念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實存的 意識에 副應하여 하늘을 代身하여 人間의 心性을 慰勞해 주는 “人間世上의 마당에 펼쳐진 하늘과의 만남의 祝 祭”가 다름 아닌 宗敎 行爲인 것이다.

그러므로 人類史를 通貫하여 出現한 모든 宗敎的 敎義에는 한결같 이 “새로운 世上의 到來”

에 대한 計劃과 方式과 日程이 그들의 經典 속에 친절하게 具備되 어 있는 것이며, 그러한 새로운 세상이 到來하는 情況과 契機를 믿고

說明함으로써(九六合德爲用法則) 正易은 後天到來의 必然性과 當爲 法則을 闡明하고 있다. 송재국 ‘易學으로 풀어보는 대한민국’ (상생출판. 20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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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인간의 念願은 이른바 “開闢 思想”으로 收斂되고 있는 것 이다. 이 점에서 볼 때, 開闢 思想은 인간의 未來的 期待値에 副應하 고자 하는 宗敎가 갖추어야 하는 普遍的 要素이고 裝置이며, 本質的 條件이 된다 할 것이다.

실로 지구상의 모든 宗敎가 開闢的 의미를 담고 있는 나름의 敎說 을 가지고 있는 바, 基督敎가 提示하는 天國. 佛敎의 西方淨土와 龍 華世界. 正易의 後天 등이 모두 “開闢的 敎說”의 範疇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正易의 後天 思想이 다른 종교가 제시하는 開闢的 敎說과 구분되는 점은 무엇인가?

基督敎와 佛敎는 비록 그 信仰하는 방식이 外向的이거나 또는 內 向的으로 서로 간에 구분되기는 하더라도, 그 궁극적 理念에 도달하 는 方式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信仰心에 全的으로 依存하는 것으로, 個別的 信仰 生活의 성취와 함께 그 종교적 成果도 보장되는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와 불교의 開闢的 論說은 信仰人 個人과 신앙적 對 象 간의 選擇에 全的으로 左右된다. 그런데 正易의 後天開闢 思想은 인간과 우주의 미래적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인 度數”를 提示함으로 써, 그 敎說의 必然性과 當爲性을 인간의 理性的 基盤 위에서 확보하 고 있다는 점이다. 특별하게도 正易은 이러한 종교적 次元에서 이루 어지는 開闢의 狀況에 대하여, 객관적인 度數를 근거로 하여 ‘人間의 言語와 숫자’로써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42)

실로 正易에서 提示한 종교적 理念과 開闢에 대한 說明은 인간의 理性的 思惟 속에서 理解되고 納得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事實的 이고 事件的이며, 그래서 開闢의 狀況 自體가 하나의 獨立的인 權威 를 스스로 具備하고 있는 것이다.

正易의 開闢思想은 “神明的 次元의 宇宙史를 설명하는 高次元的인 未來學”이라는 점에서, 個人의 好惡나 選擇의 有無와 關係없이 (正易 42) 특별히 正易은 言語와 숫자의 統一的 기능을 干支度數(十干十二支)라는 논

리적 구조(체계: 틀)로써 포괄하여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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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體系와 度數的 法則을 理性的으로 共感하는 경우에 限해서는) 그 曆數 變革의 理念과 四曆 變化의 方式을 수긍하고 信仰할 수밖에 없 는 絶對的인 敎說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正易에서 밝히는 後天의 世界는 情緖的 理念이면서 그대로 實相이며, 開闢의 到來는 心情的 所望이면서 동시에 實際的 狀況이 되는 것이다.

Ⅳ. 近代 新宗敎 運動의 理念的 背景으로서의 民間 易學

人類文明史에 있어서 近代的 性格을 대변하는 用語는 대체로 ‘理 性-科學-市民意識’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존재의 보편적 存在原理로 서의 理性에 대한 自覺과 宣言. 理性的 기능에 土臺한 人爲的 文明 성취에 대한 과학적 세계관의 定礎. 인간사회의 理念的 共同 價値로 서의 市民意識의 擡頭 등은 近代라는 時代相을 응축하고 있는 대표 적인 述語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世界史的 趨勢는 급기야 극동의 조용한 나라 朝鮮 社會로 도 파급되어, 19세기 조선에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이른바 ‘實學的 風土’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는 조선의 民衆들에게 새로운 삶의 方式 과 價値와 理念을 촉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다음의 敍述은 이를 적절히 요약하고 있다.

“19세기 한국은 안으로 전근대적 지배 체제를 개혁하여 근대 국가를 건 설해야 하는 과제와 밖으로 유럽과 일본 제국주의 열강의 국권 침탈에 맞 서 독립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이중의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와 같 은 역사적 과제 수행을 위해 實學運動, 開化派, 衛正斥邪派, 東學 農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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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정치 세력과 정신 운동이 등장하여 각각 實學을 통한 개혁 운동. 申政變과 甲午改革, 義兵 運動, 東學農民運動, 愛國 啓蒙運動 등이 일어나 근대 한국사회의 새로운 변혁이 일어났다...조선의 통치 이념인 정통 性理 學的 신념 체계를 지키려는 통치세력과 儒敎를 시대와 民衆에 맞게 개혁하 려 한 實學 세력과의 대립, 동양의 정신문화와 西學의 새로운 도입과 갈등, 士大夫를 중심으로 한 양반 지배 세력의 피지배 세력에 대한 무리한 과세 와 폭정은 농민을 중심으로 한 항쟁을 유발시켰다”43)

“19세기는 한국의 全歷史를 통틀어 가장 결정적인 전환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오백년을 지탱하던 왕조 사회의 성리학적 질서, 전통적 삶은 붕괴되고 있었고, 역사상 최초로 동서의 충돌, 서양의 이질적인 근대 문명 이 틈입함과 동시에 서양 제국주의의 폭력적 팽창으로 인한 국가적 존망의 위기는 민중들의 삶을 말할 수 없는 질곡으로 빠뜨렸다. 거의 유례가 없는 이 역사적인 굴절에 민중들은 고통으로 신음하였고, 정신적 아노미 상태에 서 갈 길을 잃고 절규하고 있었다. 이런 대혼돈의 상황에서 이를 구제하고 자 나온 것이 東學을 비롯한 한국 近代新宗敎이며 그들이 共通으로 내놓은 사상이 바로 開闢思想이다”44)

이러한 ‘近代的 삶이라는 변화된 環境’에 대한 民衆的 要請은 조선 사회의 精神文化를 주도하고 있던 儒學과 易學的 意識 全般에도 새 로운 自覺과 變容을 隨伴하게 되면서, 新宗敎 운동을 비롯한 사회적 개혁 운동과 사회 전반에 걸친 民衆意識이 대두하였는데, 이를 한마 디로 규정하면 ‘近代性의 社會的 所産’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近代 의 사회적 변화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民衆意識의 핵심은 ‘民衆의 主 體意識’과 主體的 삶의 ‘實踐的 傾向’이라 할 수 있는 바, 이는 從來 의 屈從的이고 宿命的인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우리(나)도 지금. 여 기(現實)에서 인간답게(주인답게)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라는 ‘人 43) 박광수. 한국 신종교의 개벽사상 소고. 한국종교 제 35 집. 원광대종교문제

연구소. 2012. PP 41-42.

44) 김용휘. 동학의 개벽사상과 새로운 문명. 한국종교 제 35 집. 원광대종교문 제연구소. 2012. P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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間性의 自覺과 宣言’이었던 것이다.45) 近代의 民衆 意識과 삶의 熱望 에 副應하여 東學 등의 사회적 종교적 자각이 전개되었고, 여러 방면 에서 制度的 改革과 文物的 革新이 촉발되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鄭鑑錄 등의 豫言書는 民衆들에게 현실적 苦難을 극복하고 未來的 새 삶을 所望할 수 있다는 정신적 慰安處가 돼 주었으며, 東武 李濟 馬의 새로운 醫學(四象醫學: 醫術)은 易學의 哲學的 生命原理와 倫理 構造에 근거한 ‘生命現象의 治癒 方式’으로서 韓國的 風土에 적합한 近代醫學의 成果로서 사회에 정착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오랫동안 傳統的인 權威와 價値로 여겨져 온 儒學의 道 德原理와 易學의 變化原理또한 一般 庶民 大衆(專門 官僚社會가 아 닌 民間 社會: 百姓)의 日常的이고 現實的인 욕구에 副應할 수 있도 록 구체적인 形式과 처방으로 道具化되면서 이른 바 ‘民間易學’으로 서 活用되기도 하였으니, 이를 統稱하면 ‘易術의 一般化 傾向’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 混亂과 激動으로 점철된 근대적 사회 에서 易學의 학문적 效用은 오히려 일반 사회(民間 社會)의 ‘易術的 價値’로 愛用되었고, 이후 力動的으로 전개된 한국의 歷史的 現場에 는 끊임없이 그 日用的 價値와 쓰임이 擴大. 深化되면서, 21세기 오 늘의 易術的 환경에 이르기까지 그 實用的인 影響은 如前히 常存하 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本 節에서는 民間易學에서의 日用的 價値로 機能하고 있는 易術의 本質的 性格이 本來的 易學(易道)과는 어떻게 구분하여 이해할 것인가에 대하여, 포괄적인 입장에서 간략히 검토 해 보고자 한다46)

45) 근대사회의 ‘시민’이나 ‘민중’ 개념에 부합하는 유학적(역학적) 어휘로는 ‘백 성’을 들 수 있다. 周易(師卦) ‘君子以 容民畜衆’, 孟子(盡心. 上) ‘行之而不著 焉 習矣而不察焉 終身由之而 不知其道者 衆也”에 언급된 ‘民’과 ‘衆’은 ‘百姓’

과 동의어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46) 易術의 체계나 내용. 그 학문적 근거나 배경 등에 대해서 論說하는 작업은 본 論文의 연구 범위를 벗어나는 것임으로 本 節에서는 단지 近代 民間 易 學으로서의 易術이 本來的 易學의 學問的 性格과는 어떻게 구분하여 理解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