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포항 지역 법조 문화 연구
4. 포항의 법률가들
1. 판검사들
2003년 10월 현재 포항 사회에는 모두 10명의 판사와 14명의 검사가 존재한다. 이 가운데 지원장을 포함한 두 사람은 부장판사이고, 지청장을 포함한 세 사람은 부장검사이다. 부장판사 두 사람은 각각 민사 및 형사합의부 를 이끌고 있으며, 지청장을 제외한 부장검사 두 사람은 각각 형사1부와 형사2부를 이끌고 있다. 다른 사람들 은 민사, 형사, 가사 단독판사들 또는 배석판사들이거나 서열에 따라 1호, 2호, 3호 …… 하는 식으로 번호가 붙어 있는 평검사들이다. 전국적으로 판사의 숫자가 검사의 숫자보다 약 4백여 명 더 많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처럼 검사가 많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포항 지역에 검찰이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는 의미일 것이다. 평판사 가운데에는 여판사가 2명 있고, 평검사 중에는 여검사가 2명 있다.
판사들과 검사들의 연령 분포는 거의 비슷하다. 지원장과 지청장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며, 모두 법조 경력이 20년 정도 된 사람들이다. 그 밖의 부장판사와 부장검사들은 모두 40대 초반이며 아마도 부장 승진 이 후 포항이 첫 번째 임지인 듯하다. 법원 쪽이 승진이 늦어서인지 법조 경력은 부장판사 쪽이 2~3년 앞선다. 평 판사와 평검사들은 모두 3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의 연령 분포를 보이고 있다. 법조 경력 역시 3년에서 10년 사이로 비슷하지만, 상대적으로 검찰 쪽의 법조 경력이 짧은 편이다. 후술하는 변호사들에 비해서는 판검사 모 두가 연령도 어리고 법조 경력도 짧은 것은 물론이다. 예컨대 변호사들은 거의 모두 40대 이상이고 50대도 상 당히 많기 때문에, 형사 단독 사건의 경우에는 30대 판검사에 40~50대 변호사가, 민사 단독 사건의 경우 또한 30대 판사에 40~50대 변호사가 관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출신 지역 및 출신 대학의 측면에서는 판사들과 검사들이 흥미로운 차이를 보이고 있다. 먼저 출신 지역에 있 어서, 판사들은 대부분 포항 인근의 대구 경북 지역 출신이고, 그 이외의 지역 출신이 오히려 소수이다. 출신 대학은 서울의 명문 법대인 경우가 많지만, 대구 경북 지역 출신의 경우에는 대체로 고등학교까지를 지역에서
마친 뒤 서울로 올라간 경력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흔히 향판(鄕判)이라고 불리는 지역 법관들이 포항 지원에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역 법관이란 흔히 수도권에서 4년을 근무하면 지방으로 3년을 내려가야 하는 판사들 의 순환 근무 제도를 선택하지 않고 스스로 특정 지역에서만 근무할 것을 법원행정처에 신청한 판사들을 말한 다. 전국적으로는 대구 경북 지역에 지역 법관들이 많아서, 심지어 서울의 법원행정처와 일정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는데, 대개 대구 지방법원에서 2년을 근무하면 그 소속 지원에서 2년을 근무하는 방식으로 인사 가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 판사들은 2년이 지나면 다시 대구 지방법원 본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검사들의 경우에는 이런 경향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출신 지역은 가히 전국에서 모였다고 할 만큼 다양하며, 포항 출신은 단 한 명밖에 없다. 출신 대학 역시 판사들에 비해 훨씬 다양하며, 모두가 검사로서 포 항에 부임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구성은 아마도 적극적인 수사를 통해 불법을 척결해야 하 는 검찰 조직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 연줄 망 조직이 대단히 중요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아 무래도 연고 지역에 검사가 부임하면, 청탁 등으로 신경을 쓰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 에는 지역 법관과 같은 제도는 없고, 인사는 전국을 단위로 이루어지며, 사법시험이나 사법연수원 성적이 작용 하는 판사들에 비해, 검찰 조직의 내부 평가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한다. 포항 지청에 부임하면 대개 2 년 정도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근년에는 수뇌부의 잦은 교체로 인해 그보다 자주 인사이동이 되는 경우 가 많았다. 전국의 지청들 가운데 포항 지청은 규모도 크고, 검사로서의 수사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대형 사 건도 적지 않기 때문에, 젊은 검사들이 비교적 선호하는 곳이며, 따라서 우수한 검사들도 많다고 한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거의 모두가 타지 출신인 검찰 쪽보다는 그래도 인근 지역 출신이 많은 법원 쪽이 포항 사회의 지역 사정 등에 훨씬 밝을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라는 것이 정설이다. 원래 소극적이고 내성적 인 사람들이 많은 판사들은 외부인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 점심 식사도 자기들끼리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 분이며, 특히 담당 사건에 관해서는 변호사는 물론 법원 직원들도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인터뷰에 응 한 한 판사는 심지어 청탁이 있으면 역효과가 나는 분위기라고까지 말할 정도다. 게다가 업무의 성격상 법정 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 사무실에서 사건 기록에 파묻혀 지내는 까닭에 실제로 포항 사회의 일반 시민들을 제대로 만날 시간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건 당사자들이나 법원 직원들 이외에 판사 들이 비교적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일반 시민들은 법원이 운영하는 가사조정위원들 정도에 국한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달리 말하면, 지역사회의 유력 인사들로 구성되는 가사조정위원들은 판사들과 대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이에 비해 검사들은 피의자들은 물론 고소 고발인, 피해자 등을 통해 포항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들여다볼 수 있으며, 나아가 수사관들을 동원해 그 이면을 적극적으로 파고들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지역 사 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없이 검사가 수사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정보만을 수집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판 단의 균형을 잃을 위험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검찰에서는 범죄예방위원들을 다수 위촉해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것은 거의 비슷한 중앙집권적 조직 구조를 가진 경찰이 방범 위원들을 위촉하는 것과 상당히 유사한 결과를 낳게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와 같은 관변 위원들이
사실상 검찰로 하여금 지역 사정에 대해 특정한 선입견을 가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한 변호사 는 이런 관행이 검사와 달리 한 곳에서 계속 근무하는 검찰 수사관들의 토착성과 엇물리면서 상당히 부정적인 결과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언급했다. 물론, 원래부터 조직 위주로 움직이는 검사들의 성향과, 훨씬 개인주의적 인 판사들의 성향도 차이를 발생시키는 요인임은 틀림없다.
여기서 얻어지는 결론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포항 사회의 판검사들이 포항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상당히 격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부가적인 요인들로는 판검사들의 업무 공간인 법원 청사와 검찰 청사가 건물 도 몇 개 없는 신개발지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거나, 판검사들 대부분이 지정된 관사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 또 한 지역 법관들의 경우에 주말마다 식구들이 있는 대구로 돌아간다는 것 등도 지적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사건 관계자들을 접하는 것 이외에는 포항 시민들의 생활공간에 참여할 기회 자체를 판검사들이 가지지 못하고 있 는 것이다. 게다가 포항 사회를 알 수 있는 주된 통로인 변호사와의 접촉도 그렇게 생산적이지는 않은 것 같 다. 일단 연배도 다른 데다가, 사건 문제로 항상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문제를 토론하는 차원까지 교분을 발전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퇴직 후 포항 지역에 변호사 개업을 할 생각이 아닌 다음에야 판검사들이 포항 사회를 관할구역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거나 대변하기는 애초부 터 불가능한 상황이다. 포항 사회와의 접촉은 업무 부담이 비교적 가벼운 지원장과 지청장 정도가 기관장으로 서 지역사회의 문제에 참여하는 것과, 일부 판사들이 관행적으로 책임져 온 선거관리위원 업무 등에 관여하는 것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형편이다.
2. 변호사들 기타
이처럼 현실적인 사법적 대표들인 판검사들은 상당히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업무에 관련해 선택적으로만 포항 사회와 접촉한다. 게다가 2~3년 동안 근무하고 나면 다른 곳으로 임지를 옮기게 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포 항 사회에서 뿌리를 박고 있는 변호사들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사법 과정의 성격상 형사사건의 대 부분과 민사사건은 상당 부분이 변호사의 참여를 필요로 하는데, 다른 지역 변호사들이 출장 오는 경우를 제 외한다면, 이 모두가 실질적으로 포항 지역 변호사들에 의해 수행되기 때문이다. 법조일원화가 이루어진 다른 나라들처럼 변호사들이 판검사로 임용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의 현실에선 소송대리인으로서 사 법절차에 참여하는 것 이외에 변호사들이 사법적 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많지 않다. 서울 등지 에 비해 다른 사회 활동의 기회가 현저하게 적은 포항 지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법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3년 10월 현재 포항 지역에는 모두 32명의 변호사가 존재한다(석동현 2003, 28).
그중에는 연로하거나 다른 이유로 변호사 업무를 중단한 사람들이 있어 실제로는 28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김천의 변호사가 20명이고 안동의 변호사가 12명 정도인 것에 비하면, 이는 규모가 상당히 큰 것이며, 전국의 지원 지청 소재지 가운데서도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변호사들은 모두 대구지방변호사회 포항 지회에 소속 되어 있고, 무료 법률 상담과 같은 공익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여성 변호사는 한 명도 없으며, 변호사들은
거의 모두가 40대 이상이고, 50대 이상도 7~8명가량 된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곧바로 개업한 변호사들은 상대적으로 법조 경력이 짧지만, 같은 경력의 판검사들에 비해서는 나이가 훨씬 많은 편이다. 아마도 사법시험 의 합격 년도가 대체로 늦은 까닭일 것이다. 군법무관 시험 출신인 변호사들도 2명이 있다.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포항의 변호사 사무실들은 크게 두 장소에 몰려 있다. 하나는 법원 청사와 검찰 청사 가 나란히 자리 잡은 북구 장성동의 속칭 법조 타운이다. 이곳은 말이 법조 타운이지, 주위가 전혀 개발이 되 지 않아, 변호사 간판을 내건 몇 개의 신축 건물들만이 을씨년스럽게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1998년 이후에 경주 등지에서 옮겨 온 변호사들이 주로 개업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포항의 구도심인 북구 덕산동, 신흥동 일대이다. 이곳은 시청 구청 경찰서 세무서 등이 몰려 있어 상대적으로 의뢰인들의 접근이 용 이한 까닭에 법원과 검찰청이 설치되기 이전부터 몇 명의 변호사들이 사무실을 갖고 있었다. 두 장소 모두 변 호사 사무실 주위에는 법무사 행정사 세무사 공인회계사 등의 사무실이 있으며, 특히 신개발지인 장성동 지역 에는 공인중개사 사무실도 상당히 많다.
출신 지역 및 출신 대학에 있어서 변호사들은 판검사들과는 또 다른 차이가 확인된다. 출신 지역은 압도적으 로 대구 경북 지역이 많고, 그중에서도 포항(영일)이나 인근의 경주, 영천 출신들이 대다수이다. 경력이 오래된 변호사들 중에는 경주나 대구에서 개업을 했다가 법원과 검찰청이 설치되면서 사무실을 이전한 사람들이 상당 수이다. 판검사 출신인 변호사들은 대개 경주나 영덕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법원과 검찰청이 생긴 뒤 4~5 년이 지나면서 최근에는 포항에서 판검사로 근무했던 변호사가 개업한 경우도 생겼다. 출신 대학은 다양하지 만,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바로 개업한 변호사들 중에는 대구 경북 지역에 서 대학을 마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판검사를 거친 변호사들은 서울의 명문 대학 출신들이 많다. 물론 이 경우에도 대개는 고등학교를 대구 경북 지역에서 마쳤고, 판검사 경력 가운데 경주나 대구에서 근무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요컨대 포항의 변호사들은 어떤 형태로든 포항 또는 인근 지역과 연고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외지에서 들어왔다가 2~3년 만에 떠나가는 판검사들에 비해, 이처럼 지역사회에 연고를 가진 변호사들은 아무 래도 정보가 많고 사정에 밝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와 같은 장점을 바탕으로 이를테면 적극적인 공 익 소송 개발 활동을 통해 포항 사회에서 사법적 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지만 포항 사회에서 실제 로 그런 활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변호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1) 사법 과정을 통한 정치적 문제 제 기들에 관해서도 변호사들은 그 과정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소송수행에 머무르는 인상이 다. 대체로 포항 사회에서 변호사들의 공익적 사회참여는 관심사에 따라 각종 시민 단체의 이사진에 참여하는 정도라고 생각된다.2) 서울의 경우와 달리 지역 텔레비전의 토론 프로그램에도 변호사가 등장하는 예는 거의 없다. 물론 정치적 포부를 가지고 시장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다.
이처럼 변호사들 역시 정치적으로 상당히 소극적인 까닭은 부분적으로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서울이나 외
1)_최근에 포항의 한 중견 변호사가 부패방지신고센터의 운영위원장을 맡은 것은 이런 점에서 상당히 신선한 충격 이었다.
2)_예컨대 포항시고교평준화추진위원회, 포항 십대들의 둥지, 포항 YMCA, 포항 녹색소비자연대 등의 이사진에서 변 호사들을 확인할 수 있다.
국의 경우 다양한 공익법 활동에 토대가 되고 있는 중규모 이상의 로펌 형태를 포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월급 변호사를 두고 있는 실질적인 법무 법인은 단 하나(일월)지만, 그것도 아주 소규모이고, 그 밖의 경우는 공증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형식적으로만 법무 법인의 형태를 갖추고 있을 뿐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타 지역 의 변호사들과 법무 법인을 구성한 뒤, 분사무소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예도 있다. 따라서 포항 변호사들의 개 업 형태는 거의 전부가 단독 개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변호사 한 사람이 사무장과 사무 보조원, 그리고 운전 기사 등을 고용해 소송 업무를 수행하는 형태가 그것이다. 이처럼 사무실을 유지할 책임이 자신에게 직접 돌 아오게 되면, 변호사가 자영업자와 유사한 심리 구조를 가지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변호사들의 수입은 의뢰인들의 수임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앞서 포항의 일반 시민들 및 하위 법조 직업 종사자들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나듯이 의뢰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중간의 매개자들을 거쳐 서 변호사를 선임하게 되므로, 결국 이 매개자들을 관리하는 것이 변호사 업무의 일차적인 과제가 되는 것이 다. 인터뷰에 응한 변호사들은 변호사 영업에 있어서 관건이 해당 변호사의 능력에 대한 평판(입소문)과 그것 을 사건 수임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사무장의 영업력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특히 형사사건의 경우에 는 한 변호사가 ‘업자들’이라고 지칭한 매개 집단을 ‘끼는’ 것이 핵심이며, 이를 도외시할 경우에는 차라리 민 사사건에 전무(專務)하는 것이 낫다는 평가였다. 물론 포항 지원이나 포항 지청에서 판검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전관 변호사이거나, 지역사회에 탄탄한 연고가 있는 변호사라면 다른 조건이 조금 나쁘더라도 나름대로 경쟁력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순식간에 사무실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수입이 격감 하는 예도 있다고 한다. 평판이 좋은 일부 변호사들에게만 사건이 몰리기 때문이다.3)
이런 조건에서 판검사와 동등한 법률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변호사들이 자영업자와 비슷한 심리 구조 및 경 제적 조건에 적응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포항 변호사들은 최소한 변호사 사무장이 하는 일을 변호사 가 직접 해서는 안 된다는 수준에서 묵시적 카르텔을 맺고, 소송수행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공론장의 전면 에 나서길 꺼려하는 ‘지역 유지’로서의 정체성을 점차 갖게 되는 것 같다. 이는 사실 각종 연줄 망 조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신들의 연고지에서 변호사들이 스스로를 관리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민형사 소송과 직접 관련된 영역에 자신을 국한시킨 뒤, 잠재적인 의뢰인 집단과의 사이에 너무 많이 기대하지도 않 고, 너무 적게 기대하지도 않는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그 관계를 변호사 사무장과 같은 매개자들 을 통해 관리하는 것이 변호사들로서는 가장 적절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잠재적인 사법 적 대표로서의 변호사라는 명제는 뒷전에 물러서게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첨언할 것은 근년 들어 포항 사회에서 변호사들이 사실상 방치한 공론장에서의 사법적 대의 기능을 법학 교수들이 대행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동대학교와 위덕대학교에 법학 전공 과정 이 개설되면서 약 7~8명의 법학 교수들이 포항 사회에 등장하게 되었고, 그중 비교적 지역사회에 일찍 정착한 이들에 의해 각종 법적 담론이 공론장에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4) 비교적 역사가 짧은 이들 대학교의 법학 전 3)_인터뷰에 응한 변호사들 중 두 사람은 포항의 소송사건 수임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진단하면서, 특 히 전관 출신의 일부 변호사들에게 사건이 집중되는 현상 때문에 포항의 일부 변호사는 사실상 개업을 포기했고, 다른 지역에서 변호사들이 옮겨 왔다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간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공 과정이 법률 상담소 등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이런 활동을 지원하고, 나아가 포항 사회에 법률가들을 공급 할 수 있게 된다면, 법학 교수들의 공익적 변론 활동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4)_앞서 언급한 포항부패방지신고센터의 소장 역시 위덕대학교에 근무하는 법학 교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