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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의 상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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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남식유럽・아프리카연구부 교수

요약

Ⅰ. 문제의 제기

Ⅱ.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 1. 상대주의(Relativism)

2. 신고립주의(Neo-Isolationism)

3. 외교 우선(Diplomacy first),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강화 4. 군사개입 최소화

5. 오바마 독트린(Obama Doctrine):

비폭력 다원주의(Non-violent Pluralism)와 아시아 재균형

Ⅲ. 아랍 정치변동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현안 대응 1. 구조적 도전 요인

2. 세부현안 대응 상황 및 전망

Ⅳ.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대중동 정책에의 상관성 1. 대외 전략의 중심 이동 배경

2. 미국 내 양대 인식 논쟁: 대서양 동맹 vs. 태평양 동맹 3. 아시아 중시 정책과 중동 정책의 상관성

Ⅴ. 결론: 시사점 및 고려사항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의 상관성

목 차

2014-10 정책연구과제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공공외교의 구현과 외교정책 수립을 위한 참고자료로 작성된 것으로서, 외교부 및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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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약

행정부에 따라 대외 정책은 바뀌게 마련이다. 중동 문제에 대한 부시 (George W. Bush) 행정부와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의 접근방법 은 판이했다. 9·11을 겪은 후 민주주의의 전파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구 사했던 부시 행정부의 이상주의적 대중동 정책은 현실에 있어서 난제를 양산했다. 민주주의만 뿌리내리면 평화가 자동적으로 수반된다는 전제하 에 채택·시행된 정책이었다. 그러나 서구식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에는 중 동의 역사·문화적 맥락(context)이 크게 달랐고, 결국 상황은 악화되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 독트린 (Doctrine), 즉 ‘도덕적 절대주의’, ‘패권적 일방주의’ 및 ‘공세적 현실주의’를 탈피하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이른바 오바마 독트린(Obama Doctrine) 이다. 오바마 행정부 대외 정책, 특히 대중동 정책의 골간은 ‘다원주의’이 다. 민주주의 전파에 집착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고, 중동에서 더 이상 민 주화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는 입장을 취했다. 단, 미국이 특정 국가들에 대해 다원주의적 포용·인정을 약속함에 있어 ‘비폭력성(non-violence)’을 전제로 했다. 여기서 비폭력성이란 테러와의 절연 및 대량파괴무기(WMD:

Weapon of Mass Destruction)의 부재를 의미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에서 의미하는 다원주의는 단순히 상대주 의적 포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면에는 중동에서의 정책실패를 자각하고, 빠른 시간 내에 중동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도 함께 반영되어 있 던 것으로 평가된다. 즉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 끌어냄으로써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정착시키고 동시에 외교적으로는 ‘확 대 중동구상(The Greater Middle East Initiative)’을 통해 민주주의 기반 조성을 추진했으나, 여전히 중동 정세는 불안하고 심지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동 문제에 관해 미국은 ‘개입할수록 어려워지는’ 사안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차원에서 미국은 이라크 철군, 아프가니스탄 철군 및 테러와의 전쟁 종식을 선언하면서 중동은 유럽 및 역내 당사국들과 책임을 공유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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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적 관리’를 추진하려 했다. 현상 유지(status quo)를 전제로 일정 부분 관여하며, 오히려 대외 역량의 중점을 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이른바

‘아시아 재균형(Asia Rebalancing)’을 추진했다. 중동·북아프리카(MENA:

Middle East and North Africa)는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라는 다자 안보조약이 작동하지만, 중국의 부상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동아시아에서는 한미-미·일 양자 방위조약을 통해 움직여야 하는 미국으 로서는, 세계 경제의 핵심지역으로 변모해가는 동아시아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우선순위의 변경을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2010년 말 아랍을 강타한 정치변동, 즉 재스민 혁명(Jasmine Revolution, 또는 아랍의 봄(Arab Spring))으로 인해 중동지역 내 현상 유지 정책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현상 유지를 이끌 며 미국과의 협조하에 관리체제를 지탱해왔던 현지 권위주의 정권들이 추 풍낙엽처럼 무너져갔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정치 행위자들이 동시다발 적으로 출현했다. 그 대표적인 세력이 이슬람 정치세력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따라서 입체적·

조직적 대응을 할 수 없었다. 권력 공백 및 과격 이슬람 정파의 약진으로 인한 역 내외 불안정성의 심화는 미국이 추진하는 아시아로의 이동을 제한 하는 요인이 되었다. 시리아에서는 15만 명이 죽고, 심지어 화학무기가 사 용되었음에도 속수무책이었다. 이집트에서는 이슬람 정부가 집권했다가 다시 군부가 복귀하는 과정에서 인명피해가 다수 발생했음에도 미국은 정 치변동의 성격 규정도 쉽게 내릴 수 없는 딜레마에 노출되었다. 여기에 고 전적인 이·팔(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도 좀처럼 진척이 없어서 총체적 인 난관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난관의 과정에서 미국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즉 그동안 중동에 서 가장 대척점에 서 있던 이란과의 관계 개선 및 핵 협상에 나선 것이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화시켜 오던 중, 2013년 6월 이란 대선에서 하산 로하니(Hassan Rouhani) 중도파 후보가 당선되자, 미국은 이를 이란 국민 들의 변화 욕구가 발현되었다고 판단, 적극적 회담에 나서게 되었다. 결국, 같은 해 11월 24일 이란 핵 문제 관련 사상 처음으로 국제사회와 이란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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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문이 타결되었다. 미국은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이란과의 적극적 관계 개선을 통해 오히려 현재 난관에 봉착한 시리아, 테러, 아프가니스탄 등 여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카드로 활용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 다. 사실상 시리아 문제 배후에는 이란이 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이란 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바, 이란 카드를 통해 중동 안정화의 급소를 찾아내려 하는 일종의 도박이었다.

앞으로의 관심사는 과연 미국이 예정했던 대로 중동에서 관여의 정도를 줄여나가면서 아시아로 전력의 핵심을 이동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 를 놓고 미국 내 조야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전통적 민주당 전 략가들은 아·태지역에서의 중국 견제에 방점을 두고 있다. 반면 공화당 전 략가들은 고전적 대서양 동맹을 통해 러시아를 견제하고 테러의 근원인 중동 안정화에 적극 나서야 하는 시점이라는 반박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러 가지 상황 변수와 행위자들의 판단을 지켜보아야 하는 시점이지만, 현재로써는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예정대로 추진 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란과의 핵 협상은 가장 예민 한 부분이며, 협상에 전력을 기울여도 쉽지 않은 난제이다. 여기에 이스라 엘 및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에 대해 강력히 불만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최대 동맹국들의 불만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테러리즘의 성격 변화와 발호도 향후 미국으로 하여금 운신의 폭 을 제한할 수 있는 요인이다.

결국, 중동 상황의 결정적 안정화 요인이 부상하지 않는 한, 미국은 중동 에서의 불안정 상황 관리에 관여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당분간 아시아 재 균형 전략의 속도 조절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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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문제의 제기

미국 대외 정책의 핵심 투사지역 중 하나인 중동은 국제사회에서 체질적 인 불안정성(inherent quality of instability)을 가진 지역으로 인식되어왔 다. 중동의 불안정성은 단순히 역내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동발 분쟁의 이슈는 곧 국제사회의 문제이기도 했다. 실제로 2차대전 이후, 4차에 걸친 중동전쟁과 이란·이라크전, 걸프(Gulf)전, 이라크전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전면전만 해도 8차례 이상 발발했다. 그러므로 세계평화를 위한 첫 과 제가 중동에서의 안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냉전 종식 후 세계에서 단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자연스럽게 획득한 미국 은 진영론이 해체된 이후의 중동을 자신감을 가지고 관리하려 했다. 걸프 전 발발 시 미군이 압도적인 화력의 위용을 자랑하며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격퇴하고 바그다드로 진공해 들어갔을 때 국제사회는 강력한 패 권에 의한 안정의 시대(hegemonic stability)가 열렸다고 믿었다.

그러나 냉전 해체로부터 10년 후 미국은 미증유의 9·11 사태를 맞게 된 다. 이후 전선(戰線) 없는, 보이지 않는 적들과의 전쟁인 ‘테러와의 전쟁 (War on Terrorism)’은 냉전의 진영 갈등을 갈음했다. 9·11 이후 네오콘 (Neoconservatism)이 주도한 미국 중동 정책의 핵심은 ‘민주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에 근거한 민주주의 확산이었다. 전쟁을 통해서든, 아니면 압박과 회유를 통해서든 권위주의 체제를 민주화시켜야 테러가 기생하는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이었으나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고 중동 정책에는 일대 변환이 일어난다.

미국의 단독개입을 최소화하고, 다자주의를 통한 국제협력을 강조했다. 민 주주의를 강제하지 않고 체제와 문화, 종교를 인정할 것임을 천명하며 새 로운 중동 정책을 펴나갔다. 이른바 다원주의적 접근법이었다. 그리고 중 동에 쏟아 부었던 미국의 대외 역량을 이제는 경제의 중심권인 아·태지역 으로 옮기겠다는 소위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를 선언하고 중동 문제에 대해 일정 부분 관여를 축소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상황 변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아랍을 휩쓴 정치변동, 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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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한 테러의 준동, 이슬람 정치세력의 약진, 그리고 기존 중동 내 미국의 고전적 동맹국들과의 관계 악화 등 미국으로서는 예측하지 못했던 사안들 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오바마 행정부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중동 문제 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이런 돌발변수가 발생한 와중에도 대외 정책 의 중점을 옮겨야 하는 것인지, 고립주의적 입장으로 돌아가 일단 내치 안 정에 주력하는 것이 옳은지에 관한 일련의 고민들이 이어진 것이다.

본 보고서에서는 오바마 행정부 중동 정책의 궤적을 살펴보았다. 현재 중동 오바마 행정부가 최근의 중동 문제에 대해 구조적으로, 그리고 현안 에 따라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정리했다. 아시아 재균형과 관련된 역학관 계를 짧게나마 고려하여 분석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중동 정책이 향 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짚어보면서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도출하 려 했다.

Ⅱ.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은 부시 행정부와는 판이했다. 미국의 강력 한 경성 권력(하드 파워, hard power), 특히 국방력을 바탕으로 한 대외 정책 투사에 근본적으로 회의적이었다. 이념의 구도가 무너지고 이제 문명 담론의 장이 열린 상황에서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명을 정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문화 정복주의(triumphalism)는 끊임없는 분쟁을 초래한다고 본 것이다. 더 이상 미국의 초강대국적 지위를 가지고도 국가 하나를 평정하 지 못한다는 점을 목도하면서 발생한 회의론이다. 이에 따라 재스민 혁명 이후 미국의 입장, 특히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은 과거 부시 행정부와 다른 노선을 가일층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1

1_부시 및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 비교 관련, 인남식, “2011 아랍 민주화 운동과 미국의 대중동 정책 변화 연구” 2장, 4장 참조. 서정민·인남식, 「중동 민주화의 대내외 정치역학」

(서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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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대주의(Relativism)

아랍 정치변동을 통칭하는 재스민 혁명과 이에 따른 일련의 정치변동은 미국의 초관심사였다. 아랍의 새로운 정치체제와 정부구조에 대해 미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다. 과거처럼 민주주의에 관한 기본원칙과 본원적 자유주의 정치체제를 강력히 원하며 이와 연관된 정책을 구체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중동 민주화에 관한 반성적 성찰의 결 과로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 관한 쟁점이다. 초반부 오바마 행 정부는 다원주의적 입장, 즉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는 내재적 입장에서 중동 민주화의 결과를 주시하는 입장이었다. 단일한 가치와 원리 를 배제하고, 이규화(異規化, heterogeneity)의 명제에 대한 존중으로 귀결 되는 방향성이다.

이규화의 명제에 대한 존중은 도덕적 절대주의를 대신해서 상대방의 이 념과 체제가 갖는 독특성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오바마 취임 직후 이란 신념 기념일인 노루즈(Nowruz) 연설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은 더 이상 상대국의 체제 특성에 대한 교정 의지를 갖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 다. 이는 민주화 확산, 즉 정권교체(regime change) 및 정권변환(regime transformation) 대신 유럽의 환지중해 협력구상(Barcelona Process) 유의 장기적 협력을 통한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 방향으로 전환하였음 을 의미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기본 노선은 상대주의적 인식론에 근거한 다원주의적 입장 견지였다. 다원주의 입장을 견지하고 내재적인 접근을 시도하되, 다 만 폭력의 부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 노선을 설정했다. 이는 민주주 의의 가치 자체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강제적 방법으로 시도하는 정권교체와 민주화는 결국 역풍을 맞게 된다는 경험에 근거하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점진적인 변화의 구조를 창출하겠다는 방향 설정이다. 사 실 계속되는 고문과 인권탄압 사례에 대하여 미국은 강하게 중지를 요구한 다. 아프리카 연맹(Africa Union)의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 국무 장관 연설에서 드러나듯이 인권탄압이 임계점에 이른 상황의 아프리카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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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대해서도 미국은 정권교체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다. 이는 부시 행정 부의 민주화 구상과는 판이한 접근이다.

비록 비민주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정부와 체제라 해도, 폭압적인 정권 행태가 나타나지 않고 나름대로의 안정성을 추구하고 있다면 미국은 적대 적 정책을 펴지 않겠다는 노선에 가깝다. 따라서 온건 왕정 국가 및 민주 주의 완전 이행 이전의 조합주의와 심지어는 이슬람 원리에 의해 통치되 는 국가에서도 온건한 세력과는 협력이 가능할 전망이다. 테러리즘과의 결별, 대량파괴무기와의 무관성 입증, 국민에 대한 탄압 중지 등의 조건이 완결되면 파트너로서 인정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는 2011년 6월 30일 클린턴 국무장관의 연설을 통해 천명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이집트 강경 이슬람 전통주의 정파인 무슬림 형제단(Muslim Brotherhood)과도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언급했었다. 그러나 이후 무 함마드 무르시(Muhammad Mursi) 정부가 붕괴하고 엘-시시(Abdel Fattah el-Sisi) 군부 정부가 복귀하는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극도의 혼란을 드러냈다. 명확한 입장 정리가 없는 상대주의는 자칫, 모든 정파나 정치 집단에 관한 무원칙과 우유부단성을 드러낼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 이다.

2. 신고립주의(Neo-Isolationism)

상대주의적 입장이 강화됨과 동시에, 가능하면 미국은 향후 중동정치 쟁 점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내정에 집중하는 일종의 신고립주의 노선 방 향을 택했다. 이는 과거 양차 대전 이전, 대영제국이 표방했던 ‘영광스러운 고립주의(splendid isolationism)’와 궤를 같이한다. 세계평화를 담보하는 경찰국가로서의 미국 지위에 관한 회의론이 점증하면서 일정 부분 국제정 치 이슈와 거리를 두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이러한 신고립주의가 국제사회와의 완전 단절 및 미국 독자 생존 추구를 의미하는 바는 아니다. 독자적·전면적 개입과 이념적 선지자주의로 부터 벗어나 우선순위 자체를 국내 이슈로 옮기자는 입장이다. 이는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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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와 같이 최근 미국 내 여론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지지했 던 분위기와 맞물린다.

이러한 신고립주의와 관련하여 오바마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거대한 국 제정치 무대에서 국가전략을 효율성 있게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내적 안정과 활력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즉 지금까지 양차 대전 이후 냉전을 이끌고, 냉전 붕괴 이후 문명 담론의 전위에서 지속적으로 국제사 회 쟁점에 개입을 하다 나타난 피로현상이라는 결론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아프가니스탄 관련 연설에서 “국가 안보와 경제와의 상관성을 제 대로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경제 활력을 통해서만 우리의 안보가 보장되 고 외교력이 강화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국제사회의 주요 쟁점에 관 한 미국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있을 경우 개입을 포기하지 않겠지만, 우선 순위를 설정해서 정책을 펼 것이며, 이는 다시 말하면 전면적 개입에서 취 사 선택적 개입을 시도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막대한 전비 및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중동에서의 테러 와의 전쟁을 일단락 짓고, 새로운 구조적 균형을 위한 아시아 정책을 추구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3. 외교 우선(Diplomacy first),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강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부임 이후 대외 정책 수단의 우선순위에 변화를 시도했다. 즉 ‘3 Ds(Defense force, Diplomacy and Development)’

로 통칭되는 군사력·외교력·대외원조 등의 대외 정책 수단의 우선순위 가 그동안은 군사력에 집중되었으나 향후 외교와 개발을 우선으로 시행 하겠다는 의도였다. ‘4개년 외교·개발 검토 보고서(QDDR: Quadrennial Diplomacy and Development Review)’ 발간·배포의 핵심적 목적이기도 하 다. 이는 곧 국방부의 군사력 투사 위주의 대외 정책 수단을 재검토하고, 현지 국민들과의 네트워크 구축 및 개발과 공공외교 증진을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의 대전환을 의미하며, 중동 정책에 있어서 이슬람권에 대한 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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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입장, 이·팔 분쟁에 있어서의 불편 부당성 강조 등 일련의 정책적 변환 을 포함한다.

이러한 기조는 재스민 혁명 이후 중동에 대한 미국 정책에 있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2기 행정부의 존 케리(John Kerry) 국무장관 역시 같은 기조를 유지했다. 국방력 대신 외교와 개발 정책을 주요 수단으로 사 용할 것임을 천명함과 동시에, 국제사회와 함께 공조해 나가겠다는 입장이 다. 무엇보다 취임 초기부터 유엔(UN: United Nations)과의 관계 강화에 나선 오바마 행정부는 이러한 기조를 재스민 혁명 이후에 한 층 더 강화시 키는 방향으로 전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에 서 “유엔의 역할은 강화되어야 하고, 특히 평화유지 활동의 강화가 시급하 다. 더 이상 국제안보와 질서를 몇몇 주요 국가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는 상황이다.”며 국제공조의 중요성을 설파한 바 있다. 2010년 5월 미 웨스트 포인트(West Point) 육군사관학교 연설에서는 “국제사회 동참을 통해 더 많은 국가로부터 지지를 획득하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하 고 더욱 이상적이고 강력한 국제규범과 표준을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 고 강조했다. 국제주의와 다자주의의 강조는 향후 미국의 대중동 정책의 기조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즉 9·11의 충격 속에서 중동 질서 재편을 위해 나섰던 미국 중심의 공세 적 현실주의와 패권적 일방주의 국면의 군사작전 등 소위 부시 독트린 (Bush Doctrine)을 배제하고 외교와 개발을 주요 수단으로 하는 국제주의 와 다자주의 형태의 접근을 의미한다. 아랍의 정치변동이 가속화되는 과정 에서 미국은 철저하게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강조했다. 시리아의 정치적 혼 란기에도 미국은 아랍연맹(Arab League)과의 협조체제를 유지했고, 무엇 보다 리비아에 대한 일련의 군사조치(비행금지구역 설정)도 미국은 철저 하게 NATO 체제하에서 운용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본적으로 부시 행정부까지 관통하여 내려온 고전적인 미국의 역할에 대한 입장, 즉 미국의 예외주의에 대한 본질적 문제 제기 에 근거한다. 즉 자유의 수호자이자 본원적 민주주의의 이상적 모델이라 인식되어 온 미국은 이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수호하여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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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주의적 대외 정책을 포기함을 의미한다. 즉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및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으로 이어지는 선도국으로서의 미국 가치를 내려놓은 것이다. 일종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노선이 라 할 수 있다. 오바마는 첫 G20 정상회담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며 미 국 예외주의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다자주의·국제주의를 천명 했다.

“국제사회와 우리 미국과의 파트너십이 과거에 성공적이지 못한 사 례가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물러날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 약속합니 다. 우리 미국은 동등한 파트너십을 추구할 것입니다. 더 이상 미국의 대외관계에서 우위·열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호 존중과 공동의 이 익, 그리고 공유되는 가치에 근거한 관계를 구축해나갈 것입니다.”2

예외주의의 포기는 미국의 독단적 행위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 기반한다.

나아가 타 국가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응대하고 소프트파워를 최대한 활용 하여 미국이 가진 매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입장 전환은 미국이 향후 각종 조약을 확대하고,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예상하게 한다. 이를 통해 국제문제와 연관된 부담을 분담하고 외교적인 해결책을 우선으로 고전적 적국과 하나하나 관 계 개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고전적 동맹관계를 약화시킬 가능 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나, 국가 간의 관계에서 좀 더 겸손하고 경청하는 입장을 취하고 신사적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보인다면 오히려 향후 더욱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로 체질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공존한다.

이러한 입장은 취임 후 중동 관련 첫 종합적 연설로서 오바마의 대중동

2_“Obama’s Press Conference in Strasbourg,” April 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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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과 세계관이 용해되어 있는 2009년 6월 카이로(Cairo) 연설에 잘 나타나 있다.

“상호의존성이 심화되어가는 현재 시대에 한 특정 국가나 국민이 다른 국가를 지배하고 우위를 점하려 하는 노력은 필연적으로 실패로 돌아간다. 따라서 과거 미국이 어떤 인식과 사고를 가지고 정책을 폈 던지 간에 우리의 우위나 예외주의를 주장하는 사고의 감옥에서 탈피 하여야 한다. 우리가 조우하는 모든 국제문제들은 파트너십을 통해 해 결하여야 한다. 모든 진보와 발전은 공유되어야 한다.”3

카이로 연설을 계기로 이슬람권에 대한 오바마의 친화적 메시지가 전달 되었고, 아랍 대중들은 오바마에 대해 일정 부분 기대를 표명했으나, 중동 정책의 지지부진이 지속됨에 따라 실망을 표현해왔다. 최근 재스민 혁명 이후 다자주의의 강조가 다시 중동 친화적인 정책으로 구체화될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이 된다.

4. 군사개입 최소화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 전인 2003년 당시 이라크 전쟁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었다. 이후 이라크 상황이 악화되고 테러 및 무장투쟁이 발호하자, 오 바마는 이에 대해 실패한 전쟁으로 규정하고 출구전략 수립 및 시행을 주 장해왔다. 단순히 오바마 대통령이 반전주의자라기보다는 전쟁의 시행 과 정에서 배태된 고전적 대서양 동맹의 균열(프랑스와 독일의 반대 및 스페 인의 철군 등), 유엔 안보리의 이라크전 거부권 행사, 그리고 전쟁의 명분 상 대량파괴무기의 존재가 불확실했다는 점 등을 들어 잘못 시작된 전쟁으 로 규정했던 것이다.

3_“Text: Obama’s Speech in Cairo,” The New York Times, June 4, 2009, at http://www.

nytimes.com/2009/06/04/us/politics/04obama.text.html (July 3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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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파장은 컸다. 무엇보다 이라크 민간인의 피해는 공식집계 13만 4천 명(실제로는 이의 몇 배, 100만 명 사망설까지 추산됨) 사망으로 확인 되었던바,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사망자 발생으로 인해 미국에 대한 반감 은 폭증했다.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미국 시민들의 세금 부담은 약 1.2조 달러(한화 약 1천4백조 원)로 추산되며, 이 비용을 이자 및 기회비용까지 감안, 다시 계산하면 총액은 약 3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전사한 미군 병사가 4,488명, 군속 및 지원요원 사망자는 약 3,400 여 명으로 공식집계 됨에 따라, 베트남전 이후 최대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이렇게 국내 젊은 병사 및 군속들의 죽음이 지속되면서 미국 내 반전 여론 은 높아졌고, 사실상 미국 내 경제위기와 더불어 이라크전의 지속이 가져 다준 전쟁 피로감과 정책실패에 대한 비판으로 버락 오바마가 집권하게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본인 스스로 미국의 군사개입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더 욱이 이라크 전쟁이 개전되는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가 보여주었던 일방주 의적 행태로 인해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다고 믿었다. 이러한 반전(反戰) 의식은 집권 후 미국의 대외 정책 기조를 군사·방위력 투사 우선 대외 정책 에서 외교 및 개발 전파 전략 및 공공외교 우선의 정책노선으로 전환시키 는 견인 요인이 된다.

집권 2기에 들어와서도 오바마 대통령의 군사개입 회피 현상은 지속되 고 있다. 2011년 말 이라크에서 전투병력 전면 철군이 이루어졌다. 겉으로 는 이라크의 민주주의 확립을 내세우며 더 이상 미군 주둔이 불요하다고 선언했으나, 실상 미군 철군 이후 이라크에서는 극단적인 종파주의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특히 시리아 내전에서 이러한 불개입 상황이 도드라진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아사드(Bashar al-Assad) 정부의 화학무기 살포 에 관해 여러 차례 ‘금지선(red line)’을 천명했고, 이에 케리 국무장관은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에 관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undeniable evidence)’를 확보했다고 선언하고도 아무런 군사조치를 하지 않았다. 단 호한 결단을 설파했으나, 정작 의사결정은 의회로 이관시켰다. 미국 내 대 시리아 군사조치 여론이 25% 내외에 불과하기도 했거니와 이 사안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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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회에서의 부결도 영향을 미쳤다. 사실상 대량파괴무기 사용 및 이 에 대한 증거를 채집하고도 별다른 군사 조치가 수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군사개입 회피’ 성향은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다.

5. 오바마 독트린(Obama Doctrine): 비폭력 다원주의(Non- violent Pluralism)와 아시아 재균형

상기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특성은 일방주의적 개입과 민주화를 골간으 로 하는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과는 판이했다. 상대주의 인식론과 다자 주의 우선 외교해법, 그리고 군사개입에 대한 거부감 등은 오바마 행정부 의 대외 정책 독트린을 구성한다. 이 대외 정책 기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비폭력 다원주의’라 할 수 있다.

기존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전파한다는 미국의 예외주의적 사 명의식은 일종의 절대주의(absolutism)적 입장이었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의 주장처럼 미국은 역사를 완성시켰고, 역사를 완성시킨 미국 이 21세기 수임한 새로운 사명은 완성된 역사의 가치와 신념을 세계에 전 파하는 것이라 믿었다. 부시 행정부 대외 정책을 주도했던 네오콘 및 보수 세력들은 이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중동 정책이 입안되었고, 소위 반민주주의 독재국가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부시 행정부 당시의 일방주의적 민주주의 구상은 실 패로 돌아갔다. 오히려 반미 감정을 악화시켰고, 전반적인 정세는 악화되 었다. 중동의 평화구상은 점차 요원한 것으로 판단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 에서 미국은 더 이상 중동의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작위적인 노력을 할 수 없음을 인식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행정부와는 다른 상대주의적 입장을 선호하는 분위기를 내비쳤다.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은 간결했다. 미국은 특정한 주권국가를 강제로 민 주화할 여력도, 의도도 없음을 천명한 것이었다. 타국을 강제로 민주화하 는 방법은 무력개입 혹은 외교역량을 동원해야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 럼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은 더 이상 전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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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 타국의 민주화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인식했다.

이에 오바마 행정부는 중동에 대한 외교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다원주의 (Pluralism) 입장을 취했다. 다원주의란 이전 부시 행정부가 지향하던 ‘민 주화’ 구상을 폐기함을 의미한다. 즉 중동 이슬람권 내의 권위주의 체제도 인정할 수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기존의 절대왕정 체제인 걸프 왕국이나, 여타 권위주의 공화정을 작위적으로 민주화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인 정했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의 전환은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이슬람권에서 성장한 경 험을 가진 오바마의 ‘이슬람 친화성향’ 및 무슬림이었던 생부와의 관계 등 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더불어 정책적으로는 미국 내 반전 여론, 중동에 대한 피로현상 및 국제 금융위기 및 재정적자에서 발원한 국 가 역량 약화 등이 중첩하여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권위주의 독재체제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정권교체 혹은 정권변환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다원주의적 입장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바로 ‘비폭 력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고유의 문화적 특성 및 정치적 맥락 (political context)을 존중하여 강제로 민주주의체제 이식을 시도하지 않겠 노라 선언하면서, 반드시 그 체제는 폭력성을 띠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전 제로 했다.

여기서 폭력성은 두 가지 측면을 내포한다. 첫째, 대량파괴무기의 부재, 둘째, 테러리즘과의 절연(disconnecting Terrorism)이다. 이 양대 조건에 부합되는 경우 중동 내 어떠한 정치체제이든(그것이 신정주의든 왕정이든 아니면 공화정이든) 인정하겠다는 노선이다. 부시 행정부가 민주주의 이식 을 추진하면서 이론적 근거로 신봉했던 ‘민주평화론’을 공식적으로 폐기하 고, 다원주의를 유지하면서 폭력을 배제하자는 일종의 점진론적 접근법으 로 해석된다.

이러한 오바마의 대중동 정책, 즉 비폭력적 다원주의 독트린은 중동에서 의 개입을 점차 축소하고, 국내문제에 집중함과 동시에 새롭게 경제적인 경합관계로 부상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아·태지역에서, 글로벌 차원에서 어 떻게 견제할 것인가에 방점을 찍으려 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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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전환은 곧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또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으로 귀결되었다.

오바마의 대중동 외교 전략, 비폭력적 다원주의는 그러나 완전한 고립 주의 노선의 확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중동에서 미국의 관여를 최소 화하고 국제정치 무대에서 일정 부분 거리를 이격시키는 방향이라기보다 는 전략적 재정비를 통해 선택과 집중의 구도를 추구하려 하는 것으로 보 인다.

Ⅲ. 아랍 정치변동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현안 대응

2010년 12월 갑자기 도래한 아랍 정치변동의 파고는 미국 대중동 정책에 일대 혼란을 초래했다. 예상치 못한 민주화 운동이 아랍 도처에서 발생하 면서 이 정치변동의 흐름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 (infrastructure)나 준비가 부족했다.

실제로 아랍 정치변동 이전까지만 해도 중동·아랍권에서의 민주화는 요 원한 것으로 보였다. 몇 차례 중동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상승했던 시점이 있었으나 늘 무위로 귀결되었기 때문이었다. 냉전의 강고한 진영론이 붕괴 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1990년, 국제사회는 진영론에 편승하여 권위 주의 체제를 유지하던 중동 독재정권들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보았다. 즉 미국과 소련의 안보우산 속에서 정권의 안위를 담보 받았던 친미 왕정과 친소 공화정 독재정권들은 위기에 처했다고 보았다. 미소의 진영론이 붕괴 된 후 더 이상 후견인 역할을 해줄 세력이 사라졌기에 곧 독재는 붕괴하고 민주주의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가 상승했다.

그러나 냉전 붕괴 이후에도 여전히 아랍의 독재는 살아남았다. 오히려 민주와 독재의 구도 대신 문명 담론의 등장에 따른 새로운 기독교·이슬람 간 갈등구조가 부상하면서 독재정권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히려 권위주의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연이은 중앙 아시아 및 동유럽의 민주화 혁명 흐름과는 전혀 상관없이 독재정권을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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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왔다. 부시 행정부 당시 중동 민주화 구상, 즉 확대 중동구상의 강력한 민주화 프로젝트가 가동되었을 때에도 일정 부분 제도 변경만 가능했지 독재정권이 민주화로 이행한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중동의 권위주의는 강 고한 체제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0년 12월 갑자기 도래한 아랍 정치변동은 미국 및 국제사회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상 미국 입장에서는 테러와의 전 쟁을 가동하고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수행되는 상황에서 중동에 서의 ‘현상 유지’를 선호해왔다. 수사학으로는 ‘민주화’를 언필칭 사용해 왔 지만, 미국의 속내는 ‘혼란스런 민주화’보다는 ‘안정적 권위주의’를 선호했 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부시 행정부가 추진했던 ‘민주화’ 추진 프로젝트 가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적 간섭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중동 내 민주화 과정에 미국은 적극적으로 대처하기에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1. 구조적 도전 요인

소위 ‘아랍의 봄’이 몰고 온 중동·아랍 내 정치 지각 변동은 컸다. 고전적 인 미국의 동맹국이었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대통 령이 하야한 것은 물론, 튀니지의 벤 알리(Zine El Abidine Ben Ali), 예멘 의 알리 압둘라 살레(Ali Abdullah Saleh), 리비아의 카다피(Muammar Gaddafi) 정권이 차례로 무너졌다. 정권붕괴 사례 외에도 시아파(Shiites) 다수 거주 지역으로 이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걸프 왕정 국가인 바 레인에서 정권붕괴 직전까지 가고, 상대적으로 평화롭던 오만에서조차 시 위가 일어나면서 아랍은 미증유의 정치적 혼란 상황에 접어들었다.

사실상 미국의 내심은 기존 중동의 권위주의 정권유지를 원하고 있었 다.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훨씬 편리했다. 보이지 않는 적인 테러 집단과의 싸움은 법적·제도적·민주적 절차를 뛰어넘는 강 력한 지도력과 공권력이 유용했다. 예방적 차원에서 선제적인 테러 근절 을 위해 미국과 서방은 중동 내 권위주의 정권과의 협력을 유지해오던 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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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갑작스럽게 도래한 아랍 정치변동의 여파로 인해 기존 권위주의 정부가 붕괴되면서 미국은 일대 혼란에 빠졌고, 정변 이후 지속된 아랍 권 위주의 공화국의 정치적 혼란상으로 인해 바뀐 환경에 조응하는 구체적인 중동 전략을 설정하지 못하고 ‘상황추수적’인 행태를 나타내게 되었다.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오바마 정부는 중동에서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다자적 차원에서 상황을 유지·관리하며 국내문제 및 아시아·태평양 세력 판도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돌발변수가 발생하면 서 상황 관리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현실이 도래했다. 현상 유지를 위해서 는 예측 가능한 행위자들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일순간 아랍의 고 전적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동시에 실각하면서 향후 이 지역의 정치 역학을 주도해 나갈 세력이 누군지에 대해서도 불투명한 상황이 발생했다.

민주주의·세속주의에 기반한 자유정부가 들어설지, 아니면 군부 권위주 의가 다시 힘을 회복하고 전면에 나설지, 혹은 이슬람 신정주의에 기반한 세력이 득세할지에 관해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다원주의 및 점진적 미관여 노선에 심각한 도전이 발생했 다. 과연 이 혼란기에서 오바마가 전제로 하는 비폭력성을 담보할 수 있는 가? 즉 기존의 권위주의 독재체제가 강제에 의해 테러리즘을 소탕하고, 대 량파괴무기 금지에 동의해 왔던 질서가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급변 상황에서 미국은 중동에서 벌어진 미증유의 정치변동에 적 극적·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본래 오바마 정부가 계획하던 ‘중 동에서의 관여축소·상황유지’ 및 ‘아시아에서의 적극적 행보’에 차질을 빚 기 시작했다. 이러한 중동에서의 상황 변화는 이슬람 부상 문제, 알-카에다 (Al-Qaeda)의 발호(跋扈), 그리고 기존 동맹체제의 재편이라는 현상과 맞 물려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가. 전략 부재: 이슬람 세력의 부상에 관한 전략 미흡

아랍 정치변동은 기존 권위주의 공화정을 붕괴시켰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및 예멘에서 정치변동으로 독재정권은 실각했다. 공화정 붕괴 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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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공백 상태에서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다양한 정파와 세력이 난립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로 정치권력을 획득·수임하여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정파나 조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랜 독재로 인해 야당세력이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없었고, 아직 시민단체가 정치 구조를 안정화시킬 만큼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조직화가 잘 되어 있는 세력은 결국 이슬람이었다. 가 장 유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물론 이슬람 세력은 정치 조직화나 통치 경 험은 일천하지만, 국민들의 지지를 가장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종교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변동 이후 미증유의 사태 속에서 정치 상황을 관망하던 각 세력들은 정파를 조직·형성하여 제도권 정치로 뛰어들었다.

오랜 권위주의의 유산으로 아직 민주정치 제도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 에서 각 정파가 난립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슬람을 기반으로 한 정파 가 가장 쉽게 대중 속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미국은 이에 대해 사실 개입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오바마 집권 후 ‘다원주의’ 입장을 취할 때에는 이슬람 종교에 기반한 정치체제 자체도 용인할 것임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문제는 정치 제도권 전면에 등장한 이 슬람 세력의 대부분은 온건·합리적인 이슬람 정파가 아니라, 과거 권위주 의 체제하에서 탄압당하며 무장투쟁을 지속해 오던 과격파 이슬람 정파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었다.

정치변동의 귀결점이 자유화·민주화·세속화이기를 국제사회는 희구했 다. 그러나 새롭게 도입되는 일련의 정치과정을 통해 이슬람 정파, 특히 과격·전통주의의 정파가 약진했다. 대표적인 세력이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 단(Muslim Brotherhood, al Ikhwan al Muslimin)이었고, 2011년 상반기 개헌의회 최대 세력으로 자리 잡았고, 동년 말에 무슬림 형제단 출신인 무 함마드 무르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무슬림 형제단의 집권은 국제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1920년 하산 알-반나(Hassan al-Banna)에 의해 결성된 무슬림 형제단은 지난 90여 년 역사 속에서 영국 식민주의에 저항했고, 후일 나세르(Gamal Abdel Nasser) 의 아랍 민족주의 및 사다트(Anwar Sadat)의 친서구 노선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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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정부 기득권 세력과 싸워온 조직이다. 특히 1981년 캠프데이비드 협 정(Camp David Accords)에 대한 반발로 사다트 대통령 암살을 주도했고, 1997년 어간, 남부 룩소르(Luxor)에서 독일 및 일본 관광객을 사살할 정도 로 호전성을 강하게 띄어왔던 세력이었다. 그렇기에 이 세력이 의회를 장 악하고 결국 최고 권력인 대통령까지 당선시켰다는 사실은 미국과 유럽에 게 큰 충격이었다.

당장 미국 내 강경파는 강력한 우려를 나타냈다. 중동 내에서 미국의 최 고 동맹국이라 할 수 있는 이집트에서 일종의 알-카에다와 비슷한 성향으 로 인식되는 무슬림 형제단이 권력을 장악했다는 사실을 쉽게 수용하기 힘들었다. 존 매케인(John McCain) 및 보수성향의 티파티(Tea Party) 의 원들은 이집트에 적극 개입해서 이슬람 세력을 눌러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경고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정당한 선거를 통해서 집권한 무슬림 형제단에 대해 압박을 가할 명분이 없었다. 결국, 무슬림 형제단의 집권을 인정, 순조 로운 관계를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이슬람 집권 또는 약진 현상은 이집트뿐 아니라 튀니지의 이슬람 정파 엔나흐다(Ennahda) 당의 집권, 리비아의 이슬람 투쟁 그룹(Libyan Islamic Fighting Group)의 약진 등 정치변동을 겪은 국가에서 보편적인 현상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무슬림 형제단과의 우호 관계를 추구하는 과정 에서 딜레마에 봉착했다. 비록 무슬림 형제단은 미국과의 협력관계하에 포 섭할 수 있다고 해도, 숱한 이슬람 정파는 각기 성향이 다른 데다 다수가 근본주의적 목표를 설정하고 있어, 미국으로서는 섣불리 협력할 수 없었 다. 특히 리비아 내 이슬람 정파는 ‘알-카에다 북아프리카 지부(AQIM:

Al-Qaeda in the Islamic Maghreb)’와 밀접한 연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조심스러웠고, 사실 이들 중동의 이슬람 정파에 대한 미국의 조직화 된 구체적 대응 전략은 부재한 상황이었다.

결국,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이슬람 세력의 약진과 더불어 제도권으 로 침투할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세력의 집권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비 폭력적 다원주의’ 노선을 거듭 강조하며 테러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막으려 했지만, 사실상 제 정파의 구체적 배경과 노선을 추적·감시하기도 어려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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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상대적으로 공정한 보통선거를 통해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이슬람 근본 주의 테러세력을 막아낼 명분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2013년 이집트에서 무함마드 무르시가 군부에 의해 실각하게 되었다. 사실상 미국은 곤경에 처했다. 어떻든 무슬림 형제 단을 지지했고 국제사회에서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군부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압둘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이 주도한 이 정변에 대 해 미국은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쿠데타로 선언할 수도, 그렇다고 정당성 을 확보한 혁명으로 규정하지도 못하고 단순히 상황 안정만 독려했다. 미 국 내 여론은 갈렸다. 기존의 오바마 정책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군부의 귀 환을 규탄하고 쿠데타로 규정, 정당한 선거를 통해 당선된 이슬람 세력을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이슬람의 약진을 위험으로 인식하는 보 수 세력의 경우 군부의 귀환을 반기는 등 첨예하게 갈렸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엘-시시가 이끄는 군부세력의 강력한 불만을 샀고, 현재까지 양국 간 관계는 악화 상황이 유지되고 있다.

결국, 미국은 다원주의를 취하면서 이슬람 세력의 약진을 어느 정도 예 견할 수 있었으나, 이슬람 세력이 등장한 이후 국가건설이나 통치기반 확 충 과정에서 내부의 반발에 부딪혀 제대로 협력구도를 형성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일부 이슬람 정치세력에 대한 우려와 의혹으로 인해 적극적인 협력 구도 형성도 제한받아왔다. 이 과정에서 결국은 군부 기득권 세력의 귀환 현상이 일어났고, 오바마 정부는 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슬람 정파에 대한 미국의 미온적·우유부단한 태도는 결국 스스로의 영 향력을 중동에서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된 셈이다.

나. 신냉전 시대의 징조: 시리아 사태 및 크림반도 사태로 인한 미·러 갈등구도 형성

21세기 최대 비극으로 묘사되는 시리아 사태로 인해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 정책은 도전에 직면했다. 미국 외교 정책이 중동에서의 현상 유지를 통해 아시아 재균형으로 전이하기 위해서는 상황의 안정화가 필수적인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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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이다. 이슬람 세력의 약진 또는 집권을 용인하더라도 안정을 담보할 수 있다면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불안정성 이 지속될 경우 일단 미국 내 여론이 들끓게 된다.

시리아 사태는 미국의 외교 정책 중점의 아시아 이동을 가로막는 방해요 소로 지속되고 있다. 지난 4년간 23만 명의 사망자 및 600만 가까운 시리아 영토 내외의 난민이 발생했다. 시리아 반정부 세력 및 역내 여론은 국제사 회의 책임 있는 개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과 유럽은 시리아 아사드 정 권이 하야하고 빠른 시일 내에 정부 측 알라위(Alawite)파 세력과 수니 (Sunni)파가 주도하는 반군세력 간 대타협을 추진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전세에서 승기를 잡은 정부 측에서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 은 점차 희박해져 간다. 유엔 차원에서 ‘보호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을 발동, 과거 리비아 개입 사례를 적용하려 했으나 러시아의 완 강한 반대와 중국의 기권으로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세계경찰 역할을 자임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수임하던 이전 부시 행정부 와는 달리, 오바마 행정부는 최소관여를 추구하고 있으나, 시리아에서의 대량 학살이 지속됨에 따라 미국의 적극적·주도적 역할을 요구하는 여론 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단독 군사행동을 할 수 없는 상황 이다. 시리아 반군 내 세력이 분열되어 있으며, 그중에는 테러세력이 포함 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결국 정부군에 의해 화학무기가 사용되었다는 명확한 정황 증거를 확보하고서도 여하한 군사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등 미국은 무기력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러시아의 경우, 시리아의 지중해 연안도시 타르투스(Tartus) 군항 사용권을 아사드 정부로부터 확보하였고, 사실상 시리아는 러시아의 중동 내 유일한 군사 동맹국가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여하한 경우에도 러시아는 시리아 아사드 정부를 포기하기 어렵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푸틴(Vladimir Putin)의 귀환 당시 거대한 외교 정책 구상으로 내걸었던 유라시아 연합 (Eurasia Union)의 성사를 위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설득과 회유에 진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전적 동맹국인 시리아 아사드 정부를 버릴 수 는 없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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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에서 시리아 문제를 둘러싸고 자연스럽게 미·러 간 갈등구 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기존 리비아와 이집트 문제 등 여타 아랍 공화국 정치변동에 있어서는 군사개입을 통한 권위주의 정권 하야 프로세스에서 러시아가 기권 입장을 취했으나, 시리아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막대한 사망 자가 발생하여 러시아에 대한 비난이 점증하고 있음에도 견고하게 아사드 를 지지한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크림반도 병합을 둘러 싸고 미·러 양자 간 갈등은 극에 달하고 있다.

결국, 시리아 사태를 둘러싸고 ‘미국-유럽-수니파-이스라엘의 반 아사 드 연대’와 ‘러시아-중국-시아파-이란 연대’가 대척적 입장에서 상호 각을 세우는 국면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 팽팽한 긴장 속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 다. 이 구도를 둘러싸고 영국의 윌리엄 헤이그(William Hague) 외무장관 은 새로운 21세기의 냉전 구도에 진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림 1> 시리아와 중동지역 세력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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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테러리즘의 속성 변화 및 재발호: IS의 등장에 따른 혼돈 심화

오바마 행정부가 중동에서 아시아로 영향력 구도를 전환시키려 하는 데 제시되었던 중요한 명분 중 하나가 테러와의 전쟁 종식이었다. 이라크에 서 2012년 말 철군을 완료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2014년 말 대부분의 전투병력을 철군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양 전쟁에서 미국의 피해와 부작용 이 막대했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정치권과 국민 모두 주지하는 바이다. 그러 나 미국의 정치적 수사학에 따르면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을 거세하고 자유민주주의 제도화가 뿌리내리고 있다고 주장한 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어찌 되었든 탈레반(Taliban)을 실각시키고 하미 드 카르자이(Hamid Karzai) 정권을 통해 민주주의가 조금씩 퍼지고 있다 고 선전한다. 따라서 더 이상의 전투병력 유지는 불필요하다는 논지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민주화보다 더 앞세웠던 테러와의 전쟁은 오 사마 빈라덴(Osama bin Laden) 사살을 통해 일단계가 완결되었다고 주장 한다. 이를 명분으로 중동·아랍권에서 미국이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하드파 워의 상당 부분을 본토로 귀환시키거나, 아니면 아시아·태평양권으로 이동 시킨다는 전략을 공공연히 발표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의 반전이 일어났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자국의 대사가 주 재국에서 테러 집단에 의해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공언했으나, 여전히 테러세력이 미국을 겨냥하고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실제로 중동발 이슬람 테러리즘은 궤멸되지 않았다. 소위 ‘이슬람국가 (IS: Islamic State, 또는 ISIL: Islamic State of Iraq and Levant)’는 세계 를 강타하고 있으며, 여전히 알-카에다 테러세력도 세를 유지하면서 성격 을 바꾸어가며 잔존하고 있다. 태동기를 거쳐 과거 오사마 빈라덴이 이끌 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접경지역에서의 투쟁의 테러활동 시대는 마감 했으나, 최근에는 프랜차이즈(Franchise)화, 네트워크(network)화 및 미디 어를 이용한 기법의 첨단화 등으로 설명되는 ISIL의 시대, ‘테러리즘 3.0의 시대’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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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이슬람 테러리즘의 역사적 성격변화 양상

제1세대(알-카에다 1.0) 제2세대(알-카에다 2.0) 제3세대(ISIL)

1990~2001 2001~2011 2011~현재

배아기·태동기·실행기 투쟁기 전환기·확산기

· 무자헤딘 출신의 각국 귀환

· 오사마 빈라덴의 조직화

· 무장투쟁 기반 조성

· 2001년, 9·11 테러 발생

· 부시 독트린

· 테러와의 전쟁

· 알-카에다 본부의 은둔

· 테러거점의 이동 및 산개

· 빈라덴 피살

· 미국의 Pivot to Asia 정책

· ‘아랍 스프링’ 변수 발생

· 중동·아프리카 테러 확산

결국, 성격을 변화시킨 테러세력이 더욱 다양하게 분기하고 폭넓게 확산 됨에 따라 미국은 이러한 테러세력이 중동지역을 근거로 활동하는 한, 오 바마의 대중동 관여 축소 노선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이러 한 추세에 조응하는 대테러전을 기획·실행하지 않는 한, 중동발 테러리즘 은 미국 및 국제사회를 흔드는 중요한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2. 세부현안 대응 상황 및 전망

가. 시리아 정책: 혼돈 속 관망

배경 및 현황 평가

2011년 상황 초기 단계에서는 파죽지세였던 당시 아랍 정치변동의 파급 속도와 맞물려 시리아 아사드 정부군은 일방적 수세에 몰리며 곧 실각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그해 가을부터 교착국면으로 접어들더 니, 2012년 봄 이후 전열을 가다듬은 정부군이 반격하여 홈스(Homs)와 다 마스쿠스(Damascus) 외곽 지역을 평정하며 상황을 반전시켰다. 이후 전략 적 요충지인 이들리브(Idlib)까지 장악하면서 줄곧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3년 초부터 사우디 및 요르단이 반군에 대한 무기지원을 확대하고 국제사회의 대 아사드 비난 여론이 급등하면서 정부군은 다시 수세에 몰리 는 듯했으나 전력 대부분을 다마스쿠스와 알레포(Alleppo) 등 정부 거점 도시에 집중하여 반군의 공세를 막아냈다. 이후 레바논에서 급파된 시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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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Hezbollah)의 도움으로 전략적 거점인 쿠사이르(Qusayr)를 탈환 하면서 정부군 우세 상황이 유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직접적 개입은 하지 못하고 있다. 기 본적으로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전제로 논의를 주도하려 했지만, 일단 국 제사회의 다자 개입은 유엔 안보리의 러시아 비토(veto)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유엔 결의 없는 무력개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협상에 의한 해결책은 지지부진한 형편이다.

시리아 미래에 관한 ‘명확한 목표설정, 이를 추진하기 위한 전략 결정, 달성을 위한 수단 확보 및 실행 프로세스에 관한 단계별 전략의 부재’로 인해 미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에 처해있다. 유엔 차원에서의 개입 및 직접 군사개입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유일한 정책이 반군의 저항 능력을 격상시킬 수 있도록 독려하고, 이들에 대한 물자 및 화기 지원뿐 아니라, C4I(Command, Control, Communications, Computers, Intelligence) 의 기술적 지원까지도 제공함으로써 시리아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섣불리 반군 지원에 나설 수 없는 고민이 있다. 바로 혼란 스런 반군 세력구도이다. 현재 반군 내 세력은 크게 3개 세력군으로 대별 할 수 있다. 각각 1) 반군 최대 세력을 자임하는 시리아 국민연합(Syrian National Coalition) 및 산하의 자유 시리아군(Free Syrian Army), 2) 이슬 람 전통주의 세력(Salafist), 그리고 3) 알-카에다 연계집단, 즉 알-누스라 전선(al-Nusra Front)과 ISIL 등이다.

정통성을 확보한 시리아 국민연합 및 자유 시리아군에 대한 물자지원은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으나, 상당량의 물자 및 정보가 알-누스라 전선 및 ISIL로 넘어가고 있는 정황이 보고되고 있다. 무엇보다 자유 시리아군의 전투력보다 이슬람 이념으로 무장한 ISIL의 폭력적 투쟁노선이 선명하게 부각되면서, 향후 아사드 정부가 실각할 경우 알-카에다류의 극단적 폭력 조직인 ISIL이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고조되 고 있다. 이들 ISIL은 이라크 서부 안바르(Anbar)주의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와 연계하여, 소위 이라크·시리아 접수 후 이슬람 신정주의 공화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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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을 이미 천명했다.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폭력적 극단주의 테러 집단이 양대 아랍 국가를 통합해서 신정주의 공화국을 세운다는 이 목표는 대재앙 이다. 빠른 시간내에 궤멸시키지는 못할망정 이 세력의 일부를 지원하는 형국으로 접어드는 이 상황 자체가 매우 곤혹스럽다.

미국이 떠안은 딜레마 상황의 절정은 아사드 정부의 대민 화학무기 사용 과 관련 논란이었다. 2013년 8월 다마스쿠스 인근 구타(Ghouta) 지역에 화 학무기인 사린(Sarin) 가스탄이 살포되었다. 어린이 400여 명을 포함 1,300 여 명이 비극적인 죽임을 당했다. 사실 미국 정보당국은 아사드 정부군이 보유한 화학탄 사용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경고해왔다. 오바마 대통령 자신이 이 화학무기 사용은 곧 금지선을 넘은 것으로 간주하고 즉각 상응 조치를 취하겠노라 공언해왔다. 획득된 정보에 의하면 확실히 아사드 진영 에서 사용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고 존 케리 국무장관이 공언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대량파괴무기 사용에 관한 어떠한 응징조 치도 시행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몇 차례 확증하는 강경 발언 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의회에 최종 추인을 의 뢰하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부시 행정부 때와는 판이 한 흐름이다. 당시에는 확인되지 않은 대량파괴무기의 존재를 강력히 주장 하며 군사행동에 나섰는데 반해, 금번에는 확증 증거가 있음에도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의회 추인 결과가 나오기 전, 러시아의 개입 으로 시리아 정부가 자발적으로 화학무기 반출에 동의하고 나섰다. 결국, 미국은 러시아와 시리아 간 자체 협상 결과를 보고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게재가 아니라고 판단, 사안을 종료했다.

향후 전망

본 대량파괴무기 관련 일련의 사안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즉 미국은 중 동에서의 관여 수준을 낮추려 하고 있고, 아시아로의 중심 이동을 추진하 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하한 경우라도 대량파괴무기 사용은 최대 금 기이며, 이에 대한 즉각 보복을 공언해왔다. 대량파괴무기 사용 금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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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은 미국이 끝까지 지켜야 할 원칙이었지만, 금번 시리아 화학무기 사 용과 관련된 대응에서는 완전히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줌에 따라 국제사 회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바마 독트린, 즉 비폭력적 다원주의 기조에 의거 아사드 독재정권에 대해 유연성을 발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중요한 전제인

‘비폭력성’의 핵심인 대량파괴무기 문제를 간과한 것은 향후 미국의 대외 정책 투사에 있어 계속 부담으로 남을 것이 확실시된다. 시리아 문제는 최 악의 딜레마 상황이며 미국은 이에 따라 국제사회 다수국가를 시리아 문제 당사국으로 회집시키려 하고 있으나, 정작 정부군·반군 간 역학 구도에 근 본적인 변화가 도래하지 않는 한, 상황 타개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시리아 는 미국의 대외 역량을 약화시키는 최악의 사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 이집트 정책: 우유부단

배경 및 현황 평가

이집트는 중동 내 최대 친미 동맹국이다. 지정학적으로 수에즈(Suez) 운 하를 관할하고 있어 미국 버지니아(Virginia)주 노퍽(Norfolk)에서 출항하 는 5함대 항모전단이 페르시아만(Persian Gulf)으로 이동하는 상시 항로 중간에 있다. 정치적으로는 아랍 최대 인구 국가이자 아랍 민족주의를 견 인해온 국가로 중동지역의 각종 정보와 인맥이 종합되는 곳이다. 비록 걸 프 왕정과 같은 대규모 산유 부국은 아니지만, 정치·문화·종교적으로 아랍 의 대표국가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시나이반도(Sinai Peninsula)에서 이스라엘과 접경하고 있기에 미국의 최대 관심사인 ‘이스라엘 안보’ 구축을 위해서는 이집트와의 협력 은 필수적이다. 반이스라엘 감정을 지닌 이집트 국민들을 위무하면서 이스 라엘과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미국은 최선을 다해왔다. 이러한 맥 락에서 미국은 중동권을 망라해서 이스라엘 다음으로 이집트에 막대한 군 사·경제 원조를 시행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집트는 미국의 중동·아프리카 전략 투사의 거점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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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집트와 미국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며 관계 악화 국면이 진행될 경우, 미국의 전반적인 지역 전략에 차질이 빚어진다. 그러 므로 미국으로서는 여하한 경우에도 이집트의 집권층과 대립구도를 장기화 하지 않으려 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냉전 초기인 1952년 나세르 정권이 등장했을 때, 미국의 판단착오로 이집트가 반미·친소(후일 비동맹으 로) 전략을 택하면서 냉전 관리에 위기가 왔던 것을 기억하는 미국으로서는 어떤 정부가 들어오든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전략적 선택일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집트가 갖는 전략적 가치가 이렇게 엄중하기에 사실 상 무슬림 형제단 출신의 무함마드 무르시가 당선되었을 때, 워싱턴 내 반 발에도 불구하고 우호적 관계를 설정했다. 비록 미국의 전통적 시각에서는 무슬림 형제단이 과격 이슬람 세력이지만, 아랍 정치변동 이후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했기에 그 정통성을 인정한 것이다. 절차적 정당성을 획 득한 이상, 오바마의 다원주의적 접근 기조에 따라 향후 협력기반을 구축 하려 했던 것이다. 과거 미국과의 밀접한 관계를 이어왔던 주역인 군부는 이러한 미국의 친 이슬람 입장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상기 설명한 이집트의 전략적 가치를 고려하면 이슬람 정부라고 해서 배척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권한 군부는 기회를 다시 노렸다. 무르시 정부의 독단과 무능함에 대 한 불만이 고조되던바, 2013년 7월 3일 엘-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은 무력을 동원 대통령궁을 점령, 무르시 대통령의 권한을 전격 박탈하고 아들리 마 흐무드 만수르(Adly Mahmud Mansour) 헌법재판소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이로써 무르시 정부는 1년 3일 만에 실각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시종 우유부단한 입장을 취했다. 한번 인정하고 우 호협력 관계를 약속한 정부가 무력에 의해 퇴각하게 된 상황은 법적·절차 적으로 볼 때 명백한 쿠데타였다. 그러나 한편 무르시 정부에 대한 국민 다수의 반발이 폭증하던 터였고, 무르시의 복권 가능성이 전무한 상황에서 미국은 기존 무르시 정부를 명시적으로 지지할 수도, 재집권을 노리는 군 부와의 관계 개선을 천명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목 소리를 거의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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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정변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의 우유부단한 행태는 역내 주변 국가 들로 하여금 미국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실제로 미국의 주요 우 방국에서(특히 권위주의 정권) 정치변동이 발생했을 때, 미국은 유사한 패턴을 보여주기는 했었으나 금번 이집트 사례는 더욱 갈팡질팡하는 행 태를 보였다. 한편 국무부는 시종일관 이집트 사태에 관한 구체적 커멘트 (comment)를 거부했다. 반면 현지 대사였던 앤 패터슨(Anne Patterson)은 사태 초기부터 명확히 쿠데타임을 선언, 무르시의 복귀를 주장했었다. 즉 본국과 현재 공관 간의 이견이 노정되었던 것이다. 현 엘-시시 휘하의 군 부세력은 이러한 앤 패터슨 대사의 발언으로 인해 미국에 대한 강력한 반 감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미국이 매년 13억 불씩 지원하던 대 이집트 군사경제 원조가 집행되어왔으나, 이 중 2억5천만 불의 현금 지원 을 ‘폭력진압’을 구실로 중단하게 되면서 이집트 군부 내 반미정서가 폭증 했다.

향후 전망

이러한 맥락에서 향후 이집트·미국 관계는 몇 차례 중대 고비를 지날 것 으로 보인다. 실제로 엘-시시를 비롯한 군부 지도자들은 향후 정치 일정이 진행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설정함에 있어 러시아를 지렛대로 활용할 가 능성이 있다.

아랍 정치변동 이후 전반적으로 미국의 존재감에 관해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최대 동맹국 중 하나인 이집트에서 정변이 일어나고 유혈사태가 지속되었음에도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줌 에 따라 미국의 ‘가치 외교’는 손상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의 아 시아 재균형 전략과 맞물려 최근까지 미국의 중동 정책은 전면 개입 및 민주화 추진 대신 ‘가벼운 개입(light foot, 슬쩍 발 담그기)’ 행보를 보여왔 다. 그러나 이집트의 정변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됨에 따라 미국은 이 러한 껄끄러운 이집트와의 관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 고 있다.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