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성( 阿且山城 )
한강변의 광장동과 구의동에 걸쳐 있는 아차산(峨嵯山) 정상에 삼국시대의 유적인 아차산 성이 있다. 원래 이 성의 이름은 아단성(阿旦城), 장한성, 광장성 그리고 아차성 등으로 불 렀으며, 한강 이남의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과 함께 백제의 서울 하남위례성을 지키던 중 요한 산성이었다. 뿐만 아니라 삼국이 군사적 요충지로 삼기 위해 침공이 잦았던 곳으로, 백제 초기에 개로왕이‘아단성(지금의 아차산성)’아래서 고구려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곳 이라고 한다. 또한,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 온달장군이 신라군과 싸우다 화살에 맞아 전사 한 곳도 바로 이‘아단성’이라고 전해온다.
사적 제234호로 지정된 아차산성은 표고 198m의 산정에서 시작하여 동남쪽 한강이 바 라보이는 산중턱을 따라 약 1km가 넘게 뻗어 있는 토성으로, 축성방식은‘테뫼식’이다.
‘테뫼식’이란 산봉우리 정상의 흙을 깎아내려 성의 모양을 만들고 그 위쪽 변을 따라 낮게 돌아가면서 테(띠)를 두른 듯이 돌을 쌓는 방식이다. 이 산성의 성벽 높이가 바깥쪽은 약 10여m가 넘지만, 안쪽은 1~2m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일부 등산객과 탐방객들이 무관심하 게 밟고 넘어 다니는 등 훼손이 심해져 문화재 당국에서는 성벽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근 구조물을 설치해 유적을 보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영순|수필가 한강 800리와 강남벌판을 달려온 매서운 바람도‘아차’하고 놀라 쉬어간다는 아차산성
우리 문화유산의 향기 72
아차산성( 阿且山城 )
한강변의 광장동과 구의동에 걸쳐 있는 아차산(峨嵯山) 정상에 삼국시대의 유적인 아차산 성이 있다. 원래 이 성의 이름은 아단성(阿旦城), 장한성, 광장성 그리고 아차성 등으로 불 렀으며, 한강 이남의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과 함께 백제의 서울 하남위례성을 지키던 중 요한 산성이었다. 뿐만 아니라 삼국이 군사적 요충지로 삼기 위해 침공이 잦았던 곳으로, 백제 초기에 개로왕이‘아단성(지금의 아차산성)’아래서 고구려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곳 이라고 한다. 또한,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 온달장군이 신라군과 싸우다 화살에 맞아 전사 한 곳도 바로 이‘아단성’이라고 전해온다.
사적 제234호로 지정된 아차산성은 표고 198m의 산정에서 시작하여 동남쪽 한강이 바 라보이는 산중턱을 따라 약 1km가 넘게 뻗어 있는 토성으로, 축성방식은‘테뫼식’이다.
‘테뫼식’이란 산봉우리 정상의 흙을 깎아내려 성의 모양을 만들고 그 위쪽 변을 따라 낮게 돌아가면서 테(띠)를 두른 듯이 돌을 쌓는 방식이다. 이 산성의 성벽 높이가 바깥쪽은 약 10여m가 넘지만, 안쪽은 1~2m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일부 등산객과 탐방객들이 무관심하 게 밟고 넘어 다니는 등 훼손이 심해져 문화재 당국에서는 성벽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근 구조물을 설치해 유적을 보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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