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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tual Effect and Meanings of the Decoration Elements between Bracket Styles in the Mid-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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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1598-1142 (Print) / ISSN 2383-9066 (Online) https://doi.org/10.7738/JAH.2016.25.6.027

1. 서 론

공포의 형식을 구분하는 기준을 공포 多少로 한다면 익공식 공포는 주심포식의 범주에 포함된다. 1) 공포의 형 식이 주심포식과 다포식으로 대별되는 현실에서 익공식 공포의 자리는 상대적으로 비좁아 보인다. 실제 익공식 공포에 대한 연구도 공포 연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 은 편이며, 그나마도 기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2)

하지만 현존하는 건축의 상당수가 익공식이라는 사

* Corresponding Author : [email protected]

1) 이 글에서 ‘익공식(공포)’이라는 용어는 소위 ‘소 혀를 아래로 드리 운 것처럼 생겼다고 알려진 부재(익공)’가 포함된 공포로 기둥머리·주 두·살미 방향 부재(익공)가 밀착되도록 짜인 것을 의미하는 표현으 로 쓰겠다. 이외에 ‘주심포식(공포)’은 고려∼조선 초까지 지어진 柱 上에만 공포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다포식(공포)는 일반적인 견해를 따랐다.

2) 이달훈, 익공계 공포의 발생 및 변천과정 연구, 충남대학교 대학 원 박사학위논문, 1989; 주남철, 익공에 관한 고찰 , 대한건축학회논 문집, 8권, 10호, 1992; 류성룡, 출목익공 기원과 변천과정에 관한 연 구 ,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1; 전봉희, 조선시대 목조 건축 공포형식의 변천에 관한 연구

-갖은 삼포계를 중심으로-

, 서울대 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7. 이외에도 동일한 연구자들에 의해 학위논문이나 학회논문 등이 비슷한 주제로 발표되었다.

실을 볼 때 이러한 현실은 빨리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비중이 높은 익공식 공포는 그동안 서민적이고 경제적이라서 널리 지어졌다는 식의 이해로만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조선중기라고 할 수 있는 17세기를 중심으로 공포에 표현된 장식요소의 변화를 통해 익공 식과 다포식 공포의 상호영향을 파악하고자 한다. 두 형 식의 공포는 조선후기 공포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중에 광범위하게 사용된 익공식 공포를 중심에 두고 두 형식 간의 영향관계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익공식 공포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도모해 보고자 한다.

2. 익공의 인식과 유래

익공은 현재 공포를 짜는 방법을 칭하기도 하지만, 정 확한 의미는 공포를 구성하는 부재를 칭하는 것이다. 3)

3) 인정전의궤에는 인정전의 익공이 42개라고 기록되어 있다. 인정 전은 다포식 공포이기 때문에 주간포 38개와 귀포 4개에서 아래로 드 리운 촛가지를 익공으로 볼 수 있다. 주상포에는 보뺄목이 있어 수서

조선중기 공포형식 간의 장식요소 상호영향과 그 의미

The Mutual Effect and Meanings of the Decoration Elements between Bracket Styles in the Mid-Joseon Period

홍 병 화* 1) Hong, Byung-Hwa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문화부 전통사찰전수조사연구실 책임연구원)

Abstract

There were lots of changes of the wooden structure in the middle of Joseon Dynasty. It was the time of replacement from Jusimpo (simple bracket system) to Ikgong (wing-like bracket system) and each bracket had shown mutual variation as well as itself. The aspects of change were discovered that the decorative elements of Ikgong and Dapo (multi-bracket system) had accepted from each other. It was clearly shown that not only the Ungung (carved cloud-shape) and Chotgaji (shape of the acuminate leaf) of Ikgong had affected to Dapo, but also Gaang (pseudo-pointing cantilever) of Dapo had affected to Ikgong. It was mostly found in the Buddhist architecture because there was the conservatization of ruling hierarchy as well as the active growth of Buddhist society.

주제어 : 다포(多包), 주심포(柱心包), 익공(翼工), 가앙(假昻), 촛가지, 삼분두(三分頭), 운궁(雲宮)

Keywords : Dapo, Jusimpo, Ikgong, Gaang, Chotgaji, Sambundu, Ung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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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포를 익공이라 부르는 경우는 익공이라는 부 재가 공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경우 편의적으로 사 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4)

이번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 우선 살펴봐야 하는 것 은 익공이라는 용어의 의미에 대해서이다. 익공이라는 용어는 부재의 형태를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포 간 장식요소의 상호영향을 살피는 이번 연구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 우선 되짚어 볼 것은 익공이 ‘날개를 닮 았다’는 인식의 문제이다. 익공의 모양을 설명하는 내용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삼국사기 옥사조 에 등장하는 花斗牙가 익공과 관련이 있는 가장 오래된 공포라는 견 해를 꼽을 수 있다. 5)

이런 설명이 유의미한 것은 拱牙와 화두아 간의 위계 차이에서 화두아의 위계는 현재 익공식의 위계와 연결되 고 있다는 점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 다. 6) 그리고 花斗牙의 ‘花’에서 연상되는 꽃잎과 익공의 촛가지 이미지가 상통하는 것은 이러한 연관이 충분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한다.

기록에 의하면 익공이란 용어가 공포 부재의 표현을 묘사하는 데서 출발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의궤 및 상 량문 등에서 찾을 수 있는 익공에 대한 표기를 모두 정 리해 보면 ‘葉工-立工(宮)-入工(孔)-里工’ 등이다. 이런 글자는 그 뜻보다는 음의 공통점이 더 중요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꽃잎 또는 넝쿨과 그 잎의 끝을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포에 넝쿨 표현이 장식되는 것은 동아시아 문화권의 공통적인 현상으로 건축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 니며, 당초문이라 불리며 풍요를 상징하는 의미로 다양 형 부재가 없지만, 보뺄목이 없는 주간포와 귀포에는 익공이 필요한 것이다. 화성성역의궤에서는 초익공과 이익공이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어 보 방향으로 뻗어 끝이 드리운 부재를 익공으로 설명하고 있다.

(김도경, 조선시대 영조의궤의 공포용어에 관한 연구 ,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2, 25∼76쪽 내용 참조)

4) 최근 제기된 의견에서는 익공이 부재를 칭하는 용어에서 공포를 구성하는 결구방식으로 이해가 확장되고 있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짠 공포를 익공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홍병화, 전통 건축구조: 새로운 이해, 선, 2013, 102∼105쪽); 물익공에서 더 나아가

‘직절익공’이라고 해서 익공식 표현이 없는 부재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익공이라고 하는 것이 부재를 칭하던 것에서 공포를 구성하는 방식으 로 변하는 징조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왕직, 알기쉬운 한국건 축 용어사전, 동녘, 2007, 132∼133쪽)

5) 이상해,

삼국사기

옥사 조의 재고찰 , 건축역사연구, 4권, 2호, 1995; 이 글에는 화두아에 대한 해석을 정리하였는데, 이 정리에서 김 정기의 주장이 여기에 해당하는 주장이다.

6) 拱牙는 6두품에게 금지되어 있으며, 花斗牙는 5두품에게 금지되어 있어 공아는 진골 이상, 화두아는 6두품 이상이 사용하는 장식기준이 라고 볼 수 있다.

한 곳에 장식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그동안 수많은 목조건축의 변화가 있 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건축물을 장 식하고 있으며 공포에서는 부재의 형태에 영향을 미치 기도 하였다.

익공을 기록하고 있는 사례 중에 현재까지 확인된 것 을 살펴보면 1648년 창덕궁수리도감의궤에는 入工·葉 工·里工으로, 1664년 피향정중건상량문 에는 葉工으로, 1776년 경모궁개건도감의궤와 1801년 화성성역의궤

에는 翼工으로 표기되어 있다. 7) 17∼18세기 동안 익공 이라는 부재의 형태는 큰

변화가 없었음에도, 18세 기 후반부터 이전의 표 기와는 다르게 ‘익공’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형 태는 유지되지만 표기는 변화한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翼’이라는 음가는 날개를 닮은 부 재를 사용한 공포라는 의 미에서 익공이라고 불렀 다기보다는, ‘잎’ 또는 ‘꽃

잎’ 모양의 부재를 사용한 공포라는 의미로 ‘잎’과 유사 한 음가인 ‘익’이 사용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좀 더 타 당해 보인다.

3 익공식 공포의 대두

현존하는 건축들을 공포의 형식에 따라 분류해 보면 다포식 공포는 고려 이후 현재까지도 연속적이라는 느 낌이 드는 것에 비해, 주심포식과 익공식 공포는 분절 적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느낌 은 고려시대 주심포식의 자리를 조선시대에 들어 익공 식이 대체하였다는 식으로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큰 틀에서 수긍이 가는 설명이라고 할 수는 있 다. 그렇지만, 공포를 통해 표현되는 건축의 위계에 있 어서는 다르다. 주심포식이 다포식에 비해 위계가 낮다 고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에 비해서, 다포식과 익공식과의 위계 차이는 비교적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심포식과 익공식을 연속적으로 이해해야 한 7) 김재웅·이봉수, 영건의궤에 실린 목부재용어의 용례와 변천에 관한 연구 , 건축역사연구, 17권, 5호, 2008, 71∼94쪽; 이 글에 실린 <표 4>

의 내용에 보면 ‘立工’이나 ‘葉工’이 ‘翼工’으로 고착되는 현상이 있다고 한다.

그림 1.

 화성성역의궤의 익공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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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것은 조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계 차이에 대한 견해는 기간을 한정 하여 본다면 조금 달라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 면, 17세기 익공식 공포가 사용된 몇몇의 건축은 같은 시기 다포식 공포를 사용한 건축과 비교해 볼 때 위계 차이를 전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16세기가 되면서도 다포식은 지속적으로 지어지지만, 주심포식은 거의 지어지지 않고 대신해서 익공식이 본격 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궁궐에서 익공식 공포는 종 묘 정전과 같이 중요한 건축에 사용되기도 하지만 극히 이례적인 것이며, 대부분은 다포식이 사용된다. 불교건축 도 비슷한 양상이 이어지는데, 대체로 임진·병자 양란 이후의 중창에서 주불전은 주로 다포로 지어진다.

그러나 중요한 건물은 무조건 다포로 짓는다고 단언 하기도 어려운데, 법주사 팔상전 · 송광사 화엄전 · 마곡 사 영산전 · 봉국사 대광명전 등, 적어도 불교건축에서는 상당히 비중 있는 건축물에도 다포식이 아니라 익공식 이 사용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주심포식은 조선초기를 지나면서 사라지고 익공식이 그 역할을 잇고 있다는 이해는 설득력이 있다. 주심포식 과 익공식이 건축계통상의 상관성을 떠나 적어도 17세 기경에는 건축의 위계에서는 이어지고 있다는 입장에서 보면 두 형식을 연속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설득력을 가 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익공식 공포가 일부 주불전에 사용될 정도로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사례를 통 해 확인할 수 있다.

4. 다포식과 익공식 공포의 장식적 요소와 관계

초기 다포가 가지고 있는 장식적인 특징은 假昻과 三 分頭, 교두형 살미 등이다. 초기 다포는 이러한 장식요소 들의 반복과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조선중기부터는 연꽃 등 식물을 모티브로 한 첨차를 조각하기도 한다. 그 러나 도리안초공과 보아지 등은 초기부터 식물문양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초기 익공식 공포의 의장적 특징은 개심사 심 검당처럼 넝쿨이 둥글게 말린 표현인 운궁(雲宮/工)으로 표현된 보뺄목, 위로 휘면서 끝은 살짝 수그린 뾰족한 촛가지, 그리고 윤곽이 넝쿨의 유연하고 복잡한 형태로 표현된 첨차 등이다.

삼분두와 가앙의 표현은 심원사 보광전 · 봉정사 대웅 전 등을 포함한 조선초기 다포 건축에서 일관되게 표현

되는 장식요소로, 그 기원이 어디서 연유되었든 古式 다 포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8) 특히 삼분두의 표현은 보뺄 목을 표현하는 수법으로, 실제 봉정사 대웅전처럼 보뺄 목이 없는데도 삼분두를 보뺄목처럼 표현한 것을 보면 삼분두형 보뺄목이 다포식 공포의 대표적 상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2. 심원사 보광전(좌)와 개심사 심검당(우)

그림 3. 봉정사 대웅전 공포 도면과 사진

그리고 가앙이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하앙을 사용하 는 건물처럼 겉보기를 꾸민 표현이며, 昻嘴는 가앙의 마 구리로 형태는 오각형이다.

초기 다포식 공포의 외형에 식물을 모티브로 한 표현 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元나라의 영향임을 부정할 수 없는 가앙과 둥글려 단순하게 표현된 살미나 첨차의 표 현은 초기 다포식의 핵심이며, 이것은 익공식 공포에서 볼 수 있는 자유로운 곡선의 넝쿨 표현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외형만으로도 두 공포가 전혀 다른 유형이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공아와 화두아 간의 위계, 다포 식과 익공식 간 위계의 상관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화두아와 익공식, 공아와 다포식을 직접 연결하는 것은 비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형식과 표현을 달리하는 두 유형의 공포가 공 아와 화두아의 구분처럼 건축적 위계의 上下를 분점하며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유지되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8) 평양 보통문의 경우, 가앙이 짧고 강직하지만 곡선의 요소가 가미

되어 표현되어 있다. 가앙이 있는 다포식을 원의 영향이라 본다면, 보

통문의 경우 원의 영향만으로 구성되지 않은 전형적인 사례라 할 것

이다.

(4)

5. 조선중기의 공포의 새로운 모색

조선중기는 건축에서도 전환기로 인식되는 시기로 공 포의 변화가 광범위하게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구조적 형태가 강조되던 공포에서 장식적 요 소가 강조되는 공포로 변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부터는 현존하는 건물도 월등히 많아지기 때문에 공포 간의 의미 있는 비교가 가능해 진 다. 주심포식 공포에서 익공식 공포로 대체되는 변화는 공포의 양식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도 볼 수 있는 데, 그 이유는 이 대체하는 변화가 공포 간의 변화를 자 극하는 환경을 만들어 더 적극적인 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5-1. 다포식 공포의 익공식 의장요소 수용

고려 말의 성불사 응진전과 16세기 중반의 청평사 극 락전의 보뺄목은 삼분

두로 표현되어 있지만, 주간포에서는 삼분두형 제공과 운궁이 같이 표 현되어 있다.

이후 16세기 후반에 서 17세기 초반인 부석 사 안양루, 화암사 우

화루, 장곡사 하대웅전, 갑사 강당, 전등사 대웅전과 약 사전 등에서는 삼분두의 표현이 없어지고 넝쿨 문양에 연꽃이 부가되는 장식요소가 사용되고 있다. 9)

그림 5. 장곡사 하대웅전(좌)과 갑사 강당(우)

이때 삼분두를 대체하고 있는 장식요소가 바로 운궁·

촛가지·연꽃처럼 모두 식물문양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 자면 청곡사 대웅전, 범어사 대웅전, 순천 정혜사 대웅

9) 다포식 공포의 상단에 나타나는 익공 및 운궁형 부재의 출현을 주 심포계 쇠서에 영향받은 것이라고 보는 연구가 있다. (이우종, 고려 시대 공포의 형성과 변천 ,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6, 206∼213쪽)

전, 기장 장안사 대웅전, 하동 쌍계사 대웅전, 여수 흥국 사 대웅전 등 운궁과 촛가지가 삼분두를 대체하는 경향 은 17세기 내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외에도 부여 무량사 극락전처럼 촛가지 대신 운궁이 반복된다거 나, 화엄사 대웅전처럼 연봉과 촛가지가 서로 우세한 것 없이 비슷하게 표현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림 6. 청곡사 대웅전(좌)과 정혜사 대웅전(우)

그리고 부석사 안양루, 화암사 우화루와 같은 건물에 서는 특이하게도 鳳頭의 표현이 보인다. 실제 이 장식요 소가 봉두이건 넝쿨로 표현된 운궁 혹은 촛가지이건 간 에 분명한 것은 전형적 다포식 장식요소인 삼분두를 대 체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는 바로 익공식의 장식요소를 다포식 공포가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16세기 후반으 로 밝혀진 정수사 법당 퇴칸 공포와 비교해 보면 영향 관계를 알 수 있다.

그림 7. 정수사 법당 퇴칸(좌)과 화암사 우화루(우)

5-2. 익공식 공포의 다포식 의장요소 수용

통도사 관음전과 천왕문, 운수사 대웅전 후면 공포처 럼 결구는 출목이 있는 익

공식이지만 다포식의 요소 인 삼분두와 가앙을 수용 한 익공식 공포가 이 시기 에 등장한다. 그리고 종묘 정전 · 사직단 정문 · 영변 언무루 하층의 경우는 가 앙을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림 4. 청평사 극락전 주간포

그림 8. 종묘 정전 제1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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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분두를 수용하고 있는 공포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분 명 다포식 장식요소를 익공식 공포가 수용한 사례이다.

이 중에서 가앙과 삼분두를 모두 수용한 익공식 공포 의 경우는 평방 유무의 차이는 있지만 다포식 공포가 기 둥머리로 한 단 내려갔다고 볼 수 있다. 이 관계는 고려 시대 주심포식 공포에서 헛첨차가 있는 공포와 없는 공 포의 관계와 비교해 볼 수 있는데, 다포식의 장식요소를 수용한 익공식 공포는 안초공이 사용된 공포에서 평방이 생략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익공식 공포인 운수사 대웅전의 후면 공포 와 다포식 공포인 남장사 보광전의 공포는 결구상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평 방의 유무만 다르다.

그림 9. 운수사 대웅전 후면(좌)과 남장사 보광전(우) 이처럼 익공식 공포와 안초공이 있는 다포식 공포의 결구 차이가 본질적으로 크지 않은 것은 당시 공포의 범 용적 성격을 알 수 있는 것으로, 구조적 관점에서 보자 면 이미 이 시기의 공포는 발달할 만큼 발달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 삼분두가 표현된 익공식 공포는 몇몇 사례에 그치는데, 이유는 이미 다포에서조차 삼분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볼 때 익공식과 다포식 공포 간의 왕성한 상호영향을 통해 조선중기 공포는 엄청난 변동 속에 놓 이게 되었으며, 그 결과 다포식과 익공식 공포 모두에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다.

17세기를 중심으로 한 조선중기는 다포식과 주심포식 공포의 對別에서 벗어나 다포식과 익공식이라는 새로운 구도가 생겨나는 큰 변화가 있었으며, 이러한 활발한 변 화에 영향받은 결과, 새로운 공포가 등장할 것이라는 가 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6. 새로운 익공의 형성

조선중기에 지어진 익공식 공포의 형태를 자세히 관 찰해 보면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익공의 형태를 파악 할 수 있다. 우선, 1624년 중건된 법주사 팔상전 5개 층 은 모두 4종의 공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 1·2·3·4층 이 모두 익공식 공포인데, 4층은 마곡사 영산전과 유사 한 촛가지를 표현하고 있으며, 1·2·3층은 다포식 공포의 가앙과 함께 운궁이 표현되어 있다.

이 건물에 표현된 가앙은 초기 다포식 공포에서 볼 수 있는 강직함은 아니지만 조선중기의 다포식 공포에서 볼 수 있는 좀 더 길어지면

서 약간 더 위로 휜 형태 를 취하고 있으며, 마구 리에 오각형의 앙취도 있 다. 현재까지 확인된 익 공식 공포 중에 가앙을 수용한 가장 이른 시기 의 공포가 바로 법주사 팔상전의 공포인 것이다.

이 건물에는 운궁은 있지만 익공식 장식요소의 전형적 표현인 끝이 뾰족한 촛가지는 없다. 이런 모양의 촛가지 는 조선후기까지도 대부분의 익공식 공포에서 줄곧 유지 되는 대표적 장식요소로, 이전의 전형적인 익공식 공포에 서는 운궁과 함께 등장하였지만 법주사 팔상전에는 없는 것이 특이하다.

이전까지 각각의 형식 안에서만 전개되던 익공식과 다 포식 공포는, 앞서 살펴보았듯 다양한 상호영향의 가능성 을 모색하다가, 다포식 공포에 운궁과 촛가지가, 익공식 공포에는 가앙이 수용되는 큰 흐름으로 변화가 굳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사례 중에 ‘운궁-촛가 지-가앙’을 모두 갖춘 전형적인 익공식 공포로는 남해 화 방사 채진루(1638)와 홍천 수타사 흥회루(1647), 그리고 여수 흥국사 무사전(1648) 등을 들 수 있다.

그림 11. 화방사 채진루 전면(좌)과 후면(우)

그림 10. 법주사 팔상전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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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루는 1990년에 수리된 건물로 문헌의 출처를 알 수 없지만, 1638년에 창건되었다고 알려져 있어 수리과 정에서 상량문이나 묵서명이 확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웅전채진루번와기 (1834)에 의하면 ‘肅廟丁巳’

에 이 건물이 중건되었다고 적고 있어 1638년 창건되고 그 후 39년이 지난 1677년에 중건되었으며, 다시 1834년 에는 번와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전면과 후면의 공포가 서로 다른데, 전면에 는 없지만 후면은 연봉과 연꽃이 표현되어 있으며, 모두 공포의 윗부분에는 운궁이 있다. 일반적으로 건물을 중 건하는 과정에서 구 부재를 한편으로 몰아 재사용하는 관행으로 보아 전면에 초창인 1638년의 공포가, 후면에 는 중수한 1677년의 공포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흥회루는 사적기에 의 해 창건시기를 알 수 있 는 건물로, 수차례의 중 수가 있었지만 대체적으 로 원래의 현상을 잘 유 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 인다. 다만 귀기둥과 평 주는 보머리 처리에서 서 로 차이가 나는데, 이것

은 평주의 공포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보머리를 장식 없 이 직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귀기둥의 경우는 장여형 부재를 퇴보처럼 사용하여 공포와 고주를 연결하고 그 뺄목은 외목도리를 고정하 는 운궁으로 표현된 도리안초공(운공) 역할을 하기 때문 에, 원래는 평주 위에도 귀기둥처럼 처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사전은 창건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 는 건물로 외목도리를 고 정하는 운궁이 있고, 그 아래에 있는 촛가지는 위 로 비스듬히 솟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앙 은 아직도 강직함을 엿볼

수 있을 정도로 경사지게 뻗어 있다.

이런 장식요소를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채진루, 흥 회루, 무사전 등을 통해 이러한 형식의 규모와 표현의 익공식 공포가 이미 폭넓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전형적인 공포형식 이외에도 좀 특이한 사

례로는 순천 송광사 화엄전(1635)과 여수 흥국사 법왕문 (1624)이 있다. 법왕문은 기둥머리에 있는 첫 번째 익공 이 하나의 부재에 두 개의 가앙이 표현되어 있으며, 화 엄전의 경우도 같은 위치의 부재에 역시 가앙과 촛가지 가 동시에 표현되어 있다.

그림 14. 송광사 화엄전(좌상), 흥국사 법왕문(우상), 남해 용 문사 천왕문(좌하), 송광사 우화각(좌하)

이는 하나의 부재에 두 개의 장식요소가 중복되어 표 현되는 것으로, 남해 용문사 천왕문(1702)과 순천 송광 사 우화각(1774)과 같이 이 이후에도 종종 찾아볼 수 있 는 현상이다. 보통 이러한 현상은 말기에 나타나는 양식 적 퇴행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많지는 않지만 17 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으로, 퇴행이라기보다는 다양한 현상으로 보는 것이 타 당해 보인다.

이처럼 공포의 변화가 활발하게 모색된 결과 전형적인 익공식 공포는 가앙을 수용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물론, 도농서원 사당(1604) · 숭림사 우화루(1617) · 속초 신흥사 명부전(1651) · 완주 송광사 응진전(1657), 나주 금성관(17 세기 전반), 불암사 법당(現 칠성각, 17세기 중반)과 같이 아직도 다포식 장식요소에 영향을 받지 않은 익공식 공 포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림 15. 숭림사 우화루(좌)와 신흥사 명부전(우) 그림 12. 수타사 흥회루 귀포

그림 13. 흥국사 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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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앙의 수용 여부와 상관없이 이러한 공포들은 전형 적인 1출목에 2익공으로, 소위 ‘柱三包’로 불리는 공포이 다. 주삼포란 ‘갖은삼포’로도 불리는 것으로, 이처럼 특정 규모와 형식의 공포를 일반명사로 부른다는 것은 보편적 공포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0)

7. 변화의 배경

건축형식이 사용자의 신분이나 건물의 중요성, 그리고 지역성 등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일반적이다. 앞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다포식과 익공식 공포 간의 변화는 유 형 내의 변화가 아니라 유형 간의 변화이기 때문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이와 같이 ‘가앙-촛 가지-운궁(봉두)’이 조합을 이루는 익공식 공포가 전체에 서 어느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 만,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장식요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공포 가 17세기는 물론, 조금 넓게 보자면 18세기 초반까지도 주로 사찰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공포의 변화가 한참 진행되던 시기는 兩亂을 거 치면서 조선의 지배층은 주자성리학을 중심으로 당면한 붕당체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家禮를 강조하던 시 기였던 것에 비해, 불교는 국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서 존재감이 부각되었고, 전쟁 이후에는 國役을 전담하 다시피 하여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 던 시기였다.

사대부는 겸양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으며 향교나 서 원 등의 제례건축을 재건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규모의 건축활동이 거의 없었으나, 불교는 국가적 필요에 의해 산성수축과 방비를 포함하여 紙役까지 전담하였고, 이 외에도 상시적으로 왕실 원찰의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중요 군사적 요충지에 僧營사찰을 운영하는 등 새롭게 제기된 公的 역할을 통해 활발한 건축활동을 하였다.

17세기에는 궁궐, 관아, 향교 및 서원에서도 승려의 건 축활동이 자주 있었다고 알려져 있어 기술 집단으로서 僧匠은 국가적 재건사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했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종묘 정전, 나주 금성관, 정읍 피향정 등을 보면 규모는 크지만 공포가 검소하다고 인식되는 익공식

10) 전봉희, 앞의 논문; 여기서 주삼포는 삼포집 모두를 말하는 것으 로 익공 여부와는 상관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는 출 목익공 중 3포인 1출목 2익공을 말하고자 한다.

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다포의 의장적 상징성을 일부러 거부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이 겸양과 절제 라는 유교적 덕목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성균관 대성전 과 상주 향교 대성전을 제외한 모든 대성전이 익공식 이 하의 공포를 선택하고 있는 것은 이를 증명한다. 11)

여기서 좀 더 생각해 봐 야 할 문제는 앞에서 언 급한 대로 피향정(1664)의 사례에서처럼 승려가 주 도한 공사라도 관영건축 에서는 건축의 성격에 맞 게 공포를 선택하였다는 점이다. 이와는 반대로 익 공식 공포이면서도 다포 의 요소를 받아들여 건축 의 격을 높이려 하는 시 도도 발견할 수 있다. 이 러한 시도로는 성남 봉국

사 대광명전(1674)과 법주사 팔상전을 들 수 있다.

같은 시기 사찰에서는 가앙이 수용되기 이전의 익공 식 공포도 끊이지 않고 계속 지어지는데, 이것을 보면 전통적 양식의 익공식 공포도 유지되지만 다포식 장식 요소를 수용한 익공식 공포의 등장이 대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불교건축 안에서 전통의 유지와 새로운 시도 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전환기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사대부는 가례를 통해 강화된 성리학적 근 본주의의 입장을 취하며 사회적 분위기를 완고하게 잡 아가고 있었지만, 불교는 전후 재건되는 사원에서 창의 력이 넘쳐나는 새로운 불교건축의 시기를 누리고 있었 기 때문에 불교건축이 상대적으로 당시 건축의 르네상 스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8. 결 론

17세기를 중심으로 조선은 크게 변하는데, 이 시기 목 조건축의 변화도 역시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무관하지 않았다. 16세기를 거치면서 내재된 공포 변화의 가능성 은 17세기에 들어서면서 구체적으로 발현되었다.

변화의 경향은 주심포식 건축이 사라지면서 익공식 건축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계통이나 유형상의 변화도 있었지만, 동시에 공포의 장식요소가 변화하는 양식적 11) 박왕희, 한국의 향교 건축, 문화재관리국, 1998, 106∼112쪽

그림 16. 피향정(상)과 봉국사

대광명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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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도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결과적으로 익공식과 다 포식으로 정리되면서 공포에서는 자연스럽게 상호영향 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 변화의 핵심은 다포식 공포가 익공식 장식요소를 수용하고, 익공식 공포는 다포식 장식요소를 수용하는 변화이다. 하지만 다포식보다는 광범위하게 지어지는 익 공식의 성격상 익공식의 변화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운궁(봉두)-촛가지-가앙’으로 구성된 1출목 2익공의 공포를 ‘三包’라는 보통명사로 불릴 정도 로 일반화되었다. 전형적인 장식요소를 갖춘 익공식 공 포는 다포식 공포 우위의 경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17세기 중요 건물에도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요 소인 다포의 장식성을 받아들인 익공식 공포의 강화된 표현력에 맞는 사용이 시도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점차 중심전각 이외의 건물에 폭넓게 선택되는 공포로 자리 잡는다.

사회적 배경 역시 17세기는 가능성과 대중성, 창의력 이 높았던 불교를 중심으로 건축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엄숙한 숭고주의와 형식주의로 대변되면서 절제와 검 약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성리학보다는 폭넓게 민중과 함께하며 시대적 위기를 타개해 나가던 불교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이러 한 현상이 17세기를 지나 18세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들 면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흐려지고 폭넓게 확산되면서 사회 전반에 이 같은 형식의 공포가 퍼졌다. 그러나 궁 궐건축에 한해서는 끝까지 익공의 초기 정체성을 유지 하는 독특함도 있었다. 12)

참고문헌

1. 김동욱, (개정) 한국건축의 역사, 기문당, 2013 2. 김왕직,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동녘, 2007 3. 홍병화, 전통건축구조: 새로운 이해, 선, 2013 4. 한국건축개념사전 기획위원회, 한국건축개념사전, 동녘,

2013

5. 주남철, 익공에 관한 고찰 , 대한건축학회논문집, 8권, 10호, 1992

6. 전봉희, 조선시대 목조건축 공포형식의 변천에 관한 연구 -갖은 삼포계를 중심으로- ,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 문, 1987

12) 김현범, 19세기 말 서울·경기지역 사찰에서 나타난 궁익공의 형 성과 전개 ,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7. 박왕희, 한국의 향교 건축, 문화재관리국, 1998 8. 이달훈, 익공계 공포의 발생 및 변천과정 연구, 충남대

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89

9. 김재웅·이봉수, 영건의궤에 실린 목부재용어의 용례와 변천에 관한 연구 , 건축역사연구, 17권, 5호, 2008 10. 류성룡, 출목익공 기원과 변천과정에 관한 연구 , 고려

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1

11. 이상해, 삼국사기 옥사 조의 재고찰 , 건축역사연구, 4권, 2호, 1995

12. 김도경, 조선시대 영조의궤의 공포용어에 관한 연구 ,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2

13. 김현범, 19세기 말 서울·경기지역 사찰에서 나타난 궁 익공의 형성과 전개 ,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6

14. 이우종, 고려 시대 공포의 형성과 변천 ,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6

접수(2016. 8. 9)

수정(1차: 2016. 10. 29)

게재확정(2016. 11. 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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