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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ⅣⅠⅡ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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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일반 정보

1. 지리적 위치...6

2. 국가 상징...7

역사

1. 식민통치...12

2. 독립...13

3. 독립 이후 ~ 19세기...14

4. 20세기 이후...14

문화 및 사회

1. 시대별 문화적 특징...18

2. 대표적 문화...20

3. 음식 문화...29

4. 사회적 특징...37

5. 노사관계 및 사회보장제도...38

여행

1. 지역 현황...42

2. 관광 명소...43

(4)
(5)

Ⅰ 일반 정보

지리적 위치 국가 상징

U R U G U A Y

1 2

(6)

ㅇ. 국 명 : 우루과이 동방공화국(República Oriental del Uruguay) ㅇ. 수 도 : 몬테비데오(Montevideo, 인구 약 170만명)

ㅇ. 인 구(2018년 유엔 추정치 기준) . - 총인구 : 약 345만명

. - 인구 밀도 : 20명/km² . - 인구 증가율 : 0.37%

. - 도시화율(도시 인구) : 95.5%

. - 인종 구성 : ..백인 87.4%(스페인계, 이태리계), 메스티소* 9.6%, 흑인 2%, . 기타 1% (*메스티소 : 인디오-백인 혼혈)

ㅇ. 면 적 : 177,879 Km²(한반도의 4/5) ㅇ. 공용어 : 스페인어

ㅇ. 종 교 : ..천주교 47.1%, 개신교 11.1%, 유대교 0.3%, 초교파* 23.2%, . 무교 17.2%, 기타 1.1%

(*초교파 : 신을 믿고 있지만 특정 종교에 소속되지 않음, 이에 무교로 분류되기도 함) ㅇ. 시 차 : 한국시간 – 12

ㅇ. 1인당 GDP(2018년 IMF 추정치 기준) : 17,014미불

지리적 위치

1

(7)

일반정보

U R U G U A Y 7

국가 상징

2

1 국기

. 하늘색과 흰색의 9줄은 독립 당시 의 9개 주를 의미하고, 국기의 좌측 상단에 위치한 문양은 16개의 황금빛 을 발하는 5월의 태양(Sol de Mayo) 으로, 잉카문명에서 기원한 상징이며 자유와 독립을 의미한다. 우루과이 국 기는 미국 성조기와 아르헨티나 국기

우루과이 지형도

우루과이 국기

(8)

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1830년 7월 12일 국기로 제정되었으며, 19세기 스페인 으로부터의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국부 호세 아르티가스(José Artigas) 장군의 탄신일인 6월 19일을 ‘국기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2 국장

국장의 중앙 상단부에 위치한 5월의 태양은 국 기에서와는 달리 우루과이의 여명을 상징하며, 그 아래 네 개의 작은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는 타원이 있다. 왼쪽 상단은 평등과 정의를 상징하는 천칭, 오른쪽 상단에는 역량을 의미하는 성곽, 왼쪽 하단 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말, 오른쪽 하단에는 풍요로 움을 상징하는 소가 있다. 이러한 타원을 명예와 평 화를 의미하는 월계수 가지와 올리브 가지가 감싸 고 있고, 이 가지들은 하나의 리본으로 묶여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뜻을 가진 우루과이의 국장 은 1829년 3월 19일에 제정되었다.

3 국화(세이보, Ceibo)

. 우루과이의 국화는 세이보이다. 아르 헨티나의 국화이기도 한 세이보는 우 루과이 전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중북부와 브라질 중남부,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동쪽에서도 자 생한다. 우루과이에서 세이보는 국화 뿐만 아니라 우루과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교육정책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 다. 우루과이의 39대 대통령이자 현 41

우루과이 국장

우루과이 국화 세이보

(9)

일반정보

U R U G U A Y 9

대 대통령인 타바레 바스케스(Tabaré Vázquez)는 2007년 ‘플란 세이발(Plan Ceibal, 세이보 정책)’이라는 교육계획을 발표했다. 세이보 정책은 모든 국공립 교사와 모든 초등학생들에게 노트북을 무료로 제공하여 온라인 학습에 대한 접 근성을 높이는 교육 프로젝트였다. 이는 선진국과 개도국·빈국 어린이들 간 ‘디 지털 격차’로 인해 학력 격차, 빈부 격차가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계 획된 교육 프로젝트이며, 2009년에 전국 모든 공립 초등학생에게 노트북 지급 이 완료되었다.

4 국조(테로, Tero)

. 우루과이의 국조는 테로이다. 영어 권 국가에서는 서던랩윙(Southern Lapwing)이라고 불리는 이 새는 이름 에서 알 수 있듯이 남반구에서 서식하 는 물떼새과로 볼리비아, 칠레,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파라과이, 페루,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에서 관찰된다.

이 새의 가장 큰 특징은 굉장히 큰 울음 소리를 지녔다는 것인데, 이에 관한 이

야기가 우루과이에 남아있다. ‘옛날 옛적, 지금의 우루과이 영토에 아주 부유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 남자는 무역에 종사하며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불 행하게도 도박에 정신이 팔려 가정을 뒤로 하였고, 결국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부인의 만류에도 사치를 멈추지 못하였고 죽음에 이르렀다. 그의 부인은 한없이 슬퍼하였고 소리 내어 울다가 테로가 되었다.’ 라는 내용이다.

우루과이 국조 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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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국무(페리콘, Pericón)

. 우루과이의 국무는 페리콘으로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파라과이에서 행해지는 민속춤이다. 이 춤은 주로 8명의 남녀 간 짝을 맞춰 이뤄진다. 페리콘 은 주로 라플라타 강 지역에서 발달한 민속춤이며, Carlos Vega와 같은 작가들 은 이 춤이 ‘시엘리토(Cielito)’라는 춤에서 진화된 형태라고 말하였다. 시엘리 토는 컨츄리 댄스(County dance), 혹은 1730년 아르헨티나에 상륙한 영국의 스퀘어 댄스(콘트라단사 오리히날, Contradanza original)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반면 세다르 비글리에티(Cédar Viglietti), 미르타 아마 리샤 카피(Mirta Amarilla Capi) 등의 다른 학자들은 페리콘과 시엘리토 모두 스퀘어 댄스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말하였다.

우루과이 국무 페리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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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역사

식민통치 독립

독립 이후 ~ 19세기 20세기 이후

U R U G U A Y

1 2 3 4

(12)

. 1516년 스페인 탐험가인 후안 디아스 데 솔리스(Juan Días de Solís)가 라 플라타 강(Río de la Plata) 동쪽 지역인 우루과이에 도착하였으나, 원주민인 차루아(Charrúa), 과라니(Guaraní) 인디언의 거센 저항과 금, 은의 부재로 인 하여 이 시기에는 스페인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이후 1624년 최초로 스페 인인이 이주하면서 식민통치가 시작되었다.

. 그렇지만 우루과이가 가지는 통상과 군사 전략적인 중요성이 부각되며 포 르투갈과 스페인 간 분쟁이 1680년부터 1827년까지 장기간 지속되었고, 영국 또한 1806년 몬테비데오 및 일부 도시를 점령한 바 있으나, 현지인들의 항거로 인해 1807년 퇴각하기도 하였다.

1 식민통치

우루과이의 원주민 그림 헨드릭 오트센 저널, 1603년

(13)

역사

U R U G U A Y 13

. 나폴레옹 전쟁에 의한 스페인의 쇠 퇴에 따라 중남미 각지에서 독립운동이 발발하였으며, 우루과이에서도 1811년 부터 1820년까지 호세 아르티가스(José Artigas) 장군이 주도하는 저항운동이 시작되었다.

. 아르티가스 장군의 주요 업적으로, 1811년 라스 피에드라스(Las Piedras) 전투에서 스페인군에 승리, 1813년 우 루과이 지역(반다오리엔탈, Banda Oriental: 우루과이 강의 동쪽과 라플 라타 강 북쪽의 스페인 식민지 지역을 일컫는 말)을 포함한 라플라타 강 전 지 역을 중앙집권 식으로 통치하려는 아르 헨티나에 대항이 있으며, 1816년 브라 질에서 침공해 온 1만명의 포르투갈 군

에 패배하면서 아르티가스 장군이 1820년 파라과이로 퇴각하였다.

. 이후 1825년 아르티가스의 부하 후안 라바셰하(Juan A. Lavalleja) 장군을 비롯한 33인의 애국지사가 아르헨티나의 지원으로 포르투갈에 대항하여, 전국 적인 규모의 저항운동을 펼쳤다.

. 이 결과로 1825년 8월 25일 우루과이 영토불가침을 내용으로 하는 몬테비 데오 조약이 영국의 중재 하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간 체결됨으로써 그 해 10 월 3일 독립하게 되었으며, 1830년 7월 18일에 헌법을 공포하였다.

2 독립

호세 헤르바시오 아르티가스

(14)

. 독립 이후, 자유주의 성향의 몬테비데오 중산층을 기반으로 하는 홍당 (Partido Colorado)과 보수적인 성향의 농촌 지주층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당 (Partido Nacional, 일명 백당 Partido Blanco)간 분쟁이 격화되었다. 이 과정 에서 국민당을 지원한 아르헨티나와 홍당을 지원한 브라질 등이 개입하게 되면 서, 1843~1852년 및 1865~1870년 동안 무력충돌이 발생하였다.

. 이후 1872년 홍당과 국민당은 정치적인 안정을 위해 상호협력에 합의함으 로써 분쟁종식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20세기 이후

4

. 1900년대 초 홍당의 호세 바트셰 이 오르도네스(José Batlle y Ordónez) 대통령 주도 하에 사회복지제도 확립, 국내산업 진흥, 노동조건 개선, 의무교육 제도 채택, 국가와 교회의 분리 등 국가 근대화 작업을 추진하였다. 또한 1950 년대 초반까지 육류와 양모 수출호조로 인해 우루과이 경제는 건실하게 성장하 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선진 복지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경제성장 이후 일 차 상품 수출 부진, 협소한 국내시장에 기인한 제조업 발달의 한계, 공공부문의 비효율성과 부패, 정파 간 분쟁 등으로 인해 우루과이의 경제는 침체되었으며, 사회적으로 갈등이 심화되었다. 또한 무장 노동운동과 도시게릴라 단체인 투파 마로스(Tupamaros)의 테러로 인해 혼란이 지속되었으며, 1971년에는 군대를 동원한 소탕작전을 6개월간 진행하기도 하였다. 1973년 군부와 집권 홍당에 의 해 의회가 해산되고 정당활동이 금지되었으며 노조해체 단행 이후 군사통치가

독립 이후 ~ 19세기

3

(15)

역사

U R U G U A Y 15

지속되었으나, 군사통치의 제도화를 위한 헌법개정이 1984년 국민투표에서 부 결됨으로써 1985년 3월 1일에 민정이 이양되었다. 특히, 군사 통치 기간 중 국 민 500명 당 1명이 정치범으로 6년 이상의 형을 선고 받았으며, 30~40만 명이 해외로 망명하였다.

. 이후 1990년대에는 홍당 산기네티(Sanguinetti) 대통령 및 국민당 루이스 알베르토 라카예 데 에레라(Luis Alberto Lacalle de Herrera) 대통령에 의 한 사회통합 및 경제자유화, 지역통합 전략에 따른 경제개혁으로 인해, 연 평 균 4%대의 경제성장 등 경제 및 사회적으로 안정되는 시기를 맞았다. 1990년 대 후반 브라질,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와 2001년 구제역 발생으로 인해 우루과 이 경제는 1999년~2002년 간 연 평균 실질 GDP가 5% 감소하는 등 경제난에 직면하기도 하였으나, 2002년 하반기 이후 경제회복이 진행되어 2010년에는 8.5%의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였다.

. 2004년 실시된 대선 및 총선에서 좌파 정당 광역전선(Frente Amplio)의 타 바레 바스케스(Tabaré Vázquez) 및 로돌포 닌 노보아(Rodolfo Nin Novoa) 후보가 정·부통령에 당선되고 광역전선이 상·하원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함으로 써, 전통 정당인 홍당과 국민당이 170여년 간 교차 집권해 온 정치구도가 종식 되었으며, 2009년 대선에서 광역전선의 호세 무히카(José Mujica)가 대통령에 당선, 2014년 대선에서 광역전선의 타바레 바스케스가 재당선되어 광역전선이 3기째 집권에 성공하였다.

. 광역전선 집권 초기부터 약 10년 동안 세계 평균을 상회하는 고도의 경제성 장률을 보이며 경기의 호조세를 이어나가는 듯하였으나, 2015년 이후 국제 원 자재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수출이 감소하고 재정 적자가 늘어나는 등 경제 성 장의 둔화가 지속되면서 이에 따른 실업률 및 범죄율 상승, 치안 악화 등이 사 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 이러한 사회경제적 문제가 광역전선 집권 3기 말까지도 지속되자 변화를 요구하는 여론이 일어 결국 2019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우루과이 국민은 15년 간 이어진 광역전선 정권에 실망감을 표출하는 선택을 하였고 그 결과

(16)

중도 우파 국민당의 루이스 라카예 포우(Luis Lacalle Pou) 후보(루이스 알베 르토 라카예 에레라 전대통령의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루이스 라카예 포우 당선인

(17)

Ⅲ 문화 및 사회

시대별 문화적 특징 대표적 문화

음식 문화 사회적 특징

노사관계 및 사회보장제도 U R U G U A Y

1 2 3 4 5

(18)

1 스페인 정복 이전

. 16세기 초 스페인 사람들이 우루과이에 도착하기 전 파라과이 및 브라질과 일부 우루과이 국경지역(리오, Río)에 소수의 인디언들이 석기시대 수준의 수 렵채집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원시적인 형태의 생활을 영위하였 으며 문화생활의 흔적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2 스페인 통치 시절

. 17세기 초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다리아스(Hernandarias)는 아르헨티나에 서 소 100마리와 말 두 마리를 들여오는데, 이는 불과 100년 만에 2,500만 마 리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드넓은 평야에서 소와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 는 남미지역의 카우보이인 가우초(Gaucho)들이 등장하며 이들을 중심으로 가 우초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인디언과 메스티소(인디오-백인 혼혈), 크리 오요(Criollo, 신대륙에서 태어난 스페인 자손)들은 함께 어울려 생활하면서 끝

시기별 문화적 특징

1

우루과이 원주민 차루아족 우루과이 가우초

(19)

U R U G U A Y 19

문화 및 사회

없이 펼쳐진 평야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이들에겐 식량에 대한 걱정이 없었 으며, 오히려 여자가 크게 부족해 가우초들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이들 은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용기를 중시했으며, 넓은 평야에서 향 수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기타연주와 시를 읊기도 하였다. 한편, 일부 농장을 보유한 농장주들은 아프리카로부터 들어온 흑인노예들을 받아들이면서 소수의 흑인노예들을 중심으로 한 문화도 형성되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유럽으로부 터 이주민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가우초들은 일꾼의 지위로 전락해가고 점차 유럽의 문화가 이식되기 시작하였다.

3 독립 후 이민자들의 영향

. 1828년 우루과이는 우루 과이동방공화국이라는 공 식적인 국가로 탄생하게 되 었다. 당시 국가 총 인구수 는 75,000명에 불과했다. 전 체 국토면적이 187,000 km² 인 점을 생각할 때(1 km² 당 0.4명) 국토의 대부분이 비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한국은

1 km² 당 476명, 서울, 인천은 16,700명). 독립 이후 스페인, 브라질,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폴란드, 러시아 등 유럽국가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오기 시작 하였다. 유럽인들의 이민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우루과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이 유럽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들 유럽이민자들은 18세기 이전까지 가우초 위주로 형성되어 온 사회문화를 대부분 유럽식으로 탈바꿈시 키며 현재에 이르게 된다.

. 현대에 접어들면서 우루과이 문화는 유럽문화 요소가 폭넓게 자리 잡은 가 운데 가우초, 인디언, 흑인노예문화 등 전통문화 요소가 어울려 발전해왔다고

우루과이로 온 유럽 이민자들

(20)

볼 수 있다. 라플라타 강(Río de la Plata)을 사이에 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양국의 문화는 여러 면에서 공통적인 문화요소를 갖고 있다.

대표적 문화

2

1 음악

(1) 탱고(Tango)

. 우루과이 및 아르헨티나 등 라플 라타 강(Río de la Plata) 지역의 대표 적인 음악으로, 아프리카 고유의 리듬 과 유럽의 리듬 및 악기가 결합하며 탱 고가 탄생하였다. 탱고의 찬가로 불리 는 ‘라 쿰파르시타(La Cumparsita)’

가 가장 대표적인데, 이 곡은 1917년 우 루과이인 헤라르도 마토스 로드리게스 (Gerardo Matos Rodríguez)가 작곡하였다.

(2) 칸돔베(Candombe)

. 식민지 시절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흑인 노예들이 시초가 되어 19세기 및 20세기를 거쳐 우루과이의 대표적인 전통 문화로 자리잡은 음악 중 하나이며, 2009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카니발에서 크기와 톤이 다른 3개 의 북을 단체로 연주하며, 일반적으로 식민지 시대 복장을 한 군무를 동반한다.

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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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 U G U A Y 21

문화 및 사회

(3) 무르가(Murga)

. 뮤지컬과 연극을 합친 일종의 크로스오버로 드럼 및 심벌즈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합창에 정치 및 사회 풍자적 내용을 가사에 다수 포함시켰다. 2~3월 카 니발 기간 중에 주로 공연되며, 무르가 역시 2005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지 정되었다.

(4) 민속 문화

. 각 지방의 전통적인 특색이 담긴 노래와 춤의 전통 민속 문화가 남아있는데, 스페인 식민시대 동안 들어온 기타가 주 악기로 사용되며, 보조 악기로 아코디 언이 사용되기도 한다. 가우초들의 즐거움과 애환이 서려있다.

2 미술

(1) 후안 마누엘 블라네스(Juan Manuel Blanes, 1830~1901)

. 19세기 화가인 후안 마누엘 블라네스는 우루과이 독립운동을 이끈 호세 아르티가스(José Artigas) 장군 등 역사적인 사건을 묘사한 작품을 다수 출품하 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은 인정을 받은 첫 우루과이 화가이다.

우루과이 칸돔베 우루과이 무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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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Joaquín Torres Garcia, 1874~1949)

. 몬테비데오 출생 조형 미술가이자 미술 이론가로, 1892년 바르셀로나 미술 대학에 입학하였으며, 1890년 후반에 피카소 등 유명 화가와 함께 Els Quatre Gats(4마리의 고양이) 카페 모임에 합류하였다. 호아킨은 뉴욕, 파리, 몬테비데 오에서 활동하면서 다수의 조각, 벽화 및 그림을 남겼으며, 1943년 구성적 보편 주의(Constructive Universalism) 이론을 발표하였다.

(3) 카를로스 파에스 빌라로(Carlos Páez Vilaró, 1923~2014)

. 칸돔베(카니발에서 연주하는 음악), 콤파르사(북 장단에 맞추어 추는 군무) 등 남미 흑인 전통 문화 및 장례식, 시장, 빨래터의 여인네들 등 서민들의 생활 상을 묘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데 주력한 화가이다. 피카소 및 달리의 영향을 받 았으며, 푼타델에스테(Punta del Este)에 위치한 동인의 작업실과 미술관인 카 사 푸에블로(Casa Pueblo)는 우루과이 주요 관광명소 중 하나이다.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의 작품 후안 마누엘 블라네스의 작품

(23)

U R U G U A Y 23

문화 및 사회

3 문학

(1) 호세 엔리케 로도(José Enrique Rodó, 1871~1917)

. 우루과이의 대표적인 작가로, 1900년에 출판된 소설 아리엘(Ariel)을 통해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는 동시에 정신적인 충만함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면 서 유럽 및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를 비판하였다.

(2) 후안 소리샤 데 산 마르틴(Juan Zorrilla de San Martín, 1855~1931) . 타바레(Tabaré) 및 라 레셴다 파트리아(La Leyenda Patria) 등 우루과이 역사에 대한 애국서사시를 저술한 작가이다. 그는 1888년부터 1891년까지 하 원의원을 역임하였고 수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하였으며, 몬테비데오에 위치한 생가는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3)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 1940~2015)

. 우루과이 언론인 겸 소설가로, 잊혀진 중남미의 역사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과 풍부한 지식을 보여주는 라틴아메리카의 노출된 혈관들(Las Venas Abiertas de América Latina) 및 불의 기억(Memoria del Fuego) 3부작은 2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는 허구, 언론, 정치적 분석, 역사를 통합하는 등 전 통적인 문학 장르를 뛰어 넘은 작가로 평가되었다.

호세 엔리케 로도 후안 소리샤 데 산 마르틴

(24)

4 축제

(1) 카니발(까르나발, Carnaval)

. 우루과이의 카니발 축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축제로, 1월 말~3월 초 사이 에 총 40일간 전국에서 열린다. 동 축제는 스페인 식민시대 당시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들어온 흑인들의 문화적 영향을 받았으며, 콤파르사(Comparsa), 무르 가(Murga), 파로디스타(Parodistas), 레비스타스(Revistas) 등 다양한 부문에 서 경연을 펼쳐 최종 우승팀을 선발한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카니발 공연이 열리는 베라노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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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 U G U A Y 25

문화 및 사회

- 개막 퍼레이드(Desfile Inaugural) : 매년 1월 마지막 주말에 시내 주요 거리인 아베니다 디에스이오초데훌리오(Avenida 18 de Julio)에서 카니발의 시작을 알리는 행진

- 샤마다 퍼레이드(Desfile de Llamadas) : 매년 2월 첫째 주말에 몬테비데오 남부 바리오수르(Barrio Sur)와 팔레르모(Palermo) 지역을 가로지르는 행진으로, 카니발의 주요 행사

- 카니발 참가팀 경연대회(Concurso Oficial de Agrupaciones Carnavalescas) : 베라노 극장(Teatro de Verano)에서 샤마다(Llamadas) 퍼레이드 전후로 약 일주일간 예선(Primera rueda) 및 본선(Segunda rueda)으로 나뉘어 개최 되는 경연대회

우루과이 카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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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크리오쇼 축제(Festival Criollo)

. 우루과이 각 지역에 걸쳐 다양한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이를 통해 각 지방 의 독특한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주로 가우초들이 주를 이루는 크리오쇼(신대 륙에서 태어난 스페인 자손)들이 즐겼던 축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남 미의 뜨거운 여름이 막바지에 이르고, 라플라타 강 지역 문화권 사람들이 마지 막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곳곳으로 떠나는 시기에, 몬테비데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로 크리오쇼 축제를 말할 수 있다.

. 1925년에 시작되어 매년 20만여 명의 관람객을 불러모으는 크리오쇼 축제는 크리오샤 주간(Semana de Criolla)라고도 불리며, 전통복식을 한 가우초들의 진기한 말타기(히네테아다, Jineteada)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 밖에도 축제 기간 내내 음악 공연, 전시회, 가우초 전통 먹거리 등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크리오쇼 축제 1

(27)

U R U G U A Y 27

문화 및 사회

5 축구

. 우루과이는 제 1회 월드컵 개최국으로 역대 월드컵 2회 우승, 올림픽 2회 우 승, 코파아메리카(Copa América) 15회 우승이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을 가지 고 있다. 이에 걸맞게 우루과이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 또한 대단하다. 남 녀노소 없이 축구와 더불어 산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 우루과이는 1924년 파리올림픽, 1928년 암스테르담올림픽에서 축구를 연 이어 제패하며 일찌감치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어서 1930년에는 제헌 헌법 선포 100주년을 기념하여 몬테비데오에 센테나리오(Centenario) 경기장 을 건설하고, 이곳에서 역사적인 제1회 월드컵을 개최하기에 이른다.

. 국제무대에서의 화려한 이력 아래에는 남미 축구 강호다운 튼튼한 내실 을 갖고 있다. 우루과이 프로축구 1부 리그인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Primera División)’은 1900년부터 출발하였으며, 그 이전부터 아마추어 팀 인 페냐롤(Peñarol)과 나시오날(Nacional) 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 나 1970년 FIFA 월드컵이 끝난 이후부터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은 40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축구약체로 전락하였으나,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4위,

크리오쇼 축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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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코파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FIFA 랭킹 2위까지 올라 다시 한 번 축구 강국으로써의 면모를 발휘하고 있다.

. 현재 1부 리그인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는 총 16개의 팀이 리그를 치르고 있으며, 특이하게도 14개 팀이 수도인 몬테비데오를 연고로 하고 있다.

또한 2부 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Segunda División)’에는 총 18개의 팀이 등 록되어 있다.

우루과이 축구를 응원하는 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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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 U G U A Y 29

문화 및 사회

1 아사도(Asado)

. 아사도는 숯불에 고기를 구워먹는 석쇠 쇠고기 요리로, 우루과이와 아르헨 티나의 아사도 요리가 널리 알려져 있다. 우루과이는 나라 면적이 작은 데 비 해, 일 년에 한 사람이 먹는 고기의 양은 남미에서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높다.

이렇듯 두 나라에서 고기 소비량이 많기에 아사도 요리도 발달했다. 두 나라의 아사도 요리를 구분 짓는 것은 고기를 익히는 조리법 차이에 있다. 아르헨티나 에서는 센 숯불에서 고기를 익히고, 우루과이에서는 장작으로 불을 피워 나오 는 재로 약하게 그리고 천천히 고기를 익힌다. 와인이나 마테 차와 함께 먹으면 궁합이 좋다고 한다.

. 우루과이의 아사도 요리를 위해서는 소금, 석쇠, 장작나 무, 솔방울이 필요하다. 먼저, 솔방울을 이용해서 장작에 불 을 지핀다. 솔방울을 쓰는 이 유는 고기에 향을 머금게 하 여 풍미를 높이기 위해서다.

불이 지펴지는 동안, 고기에 소금 마사지를 해서 간이 잘

베도록 한다. 숯불이 만들어지면 석쇠 밑에 고루 퍼트려서 천천히 식힌다. 이후 고기를 올려 요리하는데 고기 윗부분에 핏물이 살짝 고이면 고기를 뒤집어 반 대편을 마저 익힌다.

. 고기의 익힘 정도는 다음처럼 스페인어(소리나는대로 표기)로 주문할 수 있다.

음식 문화

3

아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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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어(Rare, 핏기가 도는 정도) : “뽀꼬 에차”(Poco Hecha), “후고사”(Jugosa) - 미디움(Medium, 중간 정도) : “메디오”(Medio), “뜨레스 꾸아르또스”(Tres

Cuartos)

- 웰던(Well-done, 잘 익힌 정도) : “알 뿐또”(Al Punto), “비엔 꼬시도”(Bien Cocido)

. 아사도 요리를 먹는 데도 기본적인 순서가 있다. 먼저, 우루과이의 아사도 요리는 고기 외에도 내장, 소시지, 순대 등을 함께 익힌다. 내장을 먹고, 돼지고 기로 채운 순대 혹은 소시지를 먹은 뒤, 마지막으로 쇠고기를 먹는다.

. 아사도 요리에서 즐길 수 있는 주요 부위에 관한 스페인어 명칭(소리나는대 로 표기)은 다음과 같다.

소고기의 굽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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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 U G U A Y 31

문화 및 사회

- 아사도(Asado) : 갈비살

- 바시오(Vacio) : 플랭크 스테이크(소의 옆구리 부위의 서양배 모양의 살점) - 뿔뽄(Pulpón) : 치맛살

- 엔뜨레콧(Entrecot) : 등심살

- 오호데비페(Ojo de Bife) : 립아이(스테이크용 가슴살, 꽃등심) - 친출린(Chinchulín) : 곱창

- 모셰하(Molleja) : 흉선, 가슴샘 - 리뇬(Riñón) : 신장

- 모르시샤(Morcilla) : (선지, 양파, 향신료, 쌀 등을 넣은) 돼지 순대, 돼지 소시지 - 초리소(Chorizo) : 돼지 순대, 돼지 소시지

소고기 부위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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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이기에, 우루과이는 식탁에서 가족이나 친구 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며 먹는 먹거리 문화를 형성했다. 즉, 아사도 요리는 충 분한 시간을 가지고 음미하면서 먹는 우루과이 음식이다.

2 치비토(Chivito)

. 치비토는 우루과이 대표 음식 중 하나로, 우루과이식 햄버거라고 볼 수 있 다. 햄버거의 고기 패티 대신에 우루과이의 질 좋은 쇠고기를 요리해 끼워 먹는 것이 일반 햄버거와의 차이점이다. 빵과 함께 얇게 저민 등심과 치즈, 햄, 토마 토, 양상추, 올리브, 마요네즈로 만들어지며, 주로 튀긴 감자와 함께 먹는다. 가 장 대중적인 치비토는 치비토 코문(Chivito Común)이다. 메뉴에 따라 조금씩 들어가는 재료들이 상이한데, 치비토 알 플라토(Chivito al Plato)같은 경우는 빵 없이 속 재료들을 접시에 펼쳐서 나오게 된다.

. 치비토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안토니오 카르보나로(Antonio Carbonaro) 로, 푼타델에스테에 엘메히숀(El Mejillón)이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 느 날 정전이 되었고 외국에서 온 손님이 치비토에 들어가는 고기를 주문했으 나, 정전 때문에 고기를 구워줄 수가 없었기에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재료로 즉 석에서 요리를 했는데, 버터를 바른 빵에 햄과 석쇠에 구워놓은 고기를 넣어 주 었다. 손님은 매우 만족했고, 그렇게 치비토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치비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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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 U G U A Y 33

문화 및 사회

3 둘세 데 레체(Dulce de Leche)

. 둘세 데 레체는 우루과이뿐 만 아니라 남미에서 인기 있는 음식으로, 우유와 설탕, 바닐라 에센스, 베이킹소다를 넣은 잼의 일종이다. 이 음식은 디저트, 케 이크,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음 식에 넣어 즐겨먹을 수 있다. 둘 세 데 레체에 관해 우루과이, 브

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등 여러 나라가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2003 년 아르헨티나 정부가 자국의 문화 유산을 선언하기를 원했다. 이에 대해 우루 과이는 유네스코에 라플라타 강 지역의 음식으로 선언하도록 요청했으며, 국제 기구는 둘세 데 레체를 “라플라타 강 지역의 공동 문화 유산”으로 공식 발표했다.

4 알파호르(Alfajor)

. 알파호르는 중남미권에서 빵 사이에 둘세 데 레체(Dulce de Leche)를 발라 먹는 한국의 초 코파이와 같은 간식이다. 알파호 르는 본래 아랍에서 유래한 음식 인데, 이는 안달루시아 지방 출 신의 스페인 이민자들에 의해 전 해진 것으로 추측한다. 둘세 데

레체(Dulce de Leche)와 함께 발전한 것은 라플라타 강 문화권에서부터 시작 되었다고 한다. 우루과이에서는 라바셰하 주, 말도나도 주, 수도 몬테비데오가 알파호르 산업이 발전했으며, 라바셰하 미나스에 가면 유명한 알파호르 브랜드 가 있어 사람들이 그 곳을 방문하면 한 상자씩 사오기로 유명하다.

둘세 데 레체

알파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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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테(Mate)

. 마테 차를 즐기기 위해서 먼저 준비 물이 필요하다. 마테 차, 마테 차 전용 빨대인 봄비샤(Bombilla), 차를 넣어 마시는 통인 마테(Mate), 뜨거운 물을 담을 수 있는 보온병(테르모, Termo) 이다. 마테는 차를 우려내는 용기 자체 를 마테(Mate)라고 부른다. 박의 속을 파서 가죽을 덧댄 전통적인 방식의 마 테가 있고, 세라믹으로 만들어 가죽을 덧대어 청결에 더욱 신경 쓴 현대적인 방 식의 마테가 있다.

(1) 마테 마시는 법

. 마테에 차를 2/3 정도 채운 뒤, 마테의 입구를 손바닥으로 잡고 마테를 뒤집 어 작은 입자의 가루들을 위로 올라오게 한다. 이는 마테 차를 마실 때 빨대에 가루들이 함께 들어와 떫고 쓴 맛의 가루를 마시는 것을 줄이기 위함이다. 마테 차를 한쪽으로 기울여 경사를 만든다. 움푹 패인 곳에 차가운 물을 넣고 차 잎 이 물을 흡수하게 놔둔다. 이후 봄비샤를 경사가 낮은 곳에 꼽고 빨대 옆으로 뜨거운 물을 붓는다. 물은 반대편의 잎이 다 젖지 않을 정도로 붓는다. 차를 다 우려먹어 맛이 사라지면, 빨대를 빼서 반대쪽에 꽂아 마신다.

. 마테를 마시는 데에도 매너가 필요하다. 첫 번째, 상대방이 주는 마테 차는 거절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마테 차를 대접받으면, 2번에서 3번 정도로 나눠 마신다. 차를 다 마시고 바닥에 물이 남아 있지 않다는 의미로 소리를 내는 것 은 차를 대접한 사람(세바도르, Cebador)에 대한 예의이다. 일반적으로 마테 차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번갈아가면서 마시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차 를 그만 마시고 싶을 때는 그라시아스(Gracias,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마지 막이라는 의미가 된다. 두 번째, 다 함께 마테 차를 마실 때에는 오른손으로 오

마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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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 U G U A Y 35

문화 및 사회

른쪽 방향으로 마테 차를 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이 준 마테 차의 빨대 를 닦거나 주인의 동의 없이 빨대의 위치를 바꾸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차를 대접하는 사람, 만드는 사람을 세바도르(Cebador)라고 하는데, 세바도르에 대 한 예의에 어긋난다.

우정의 의미로 마테를 즐기는 우루과이 사람들

. 마테 차는 우루과이 사람들의 생활에 중요한 부분이다. 커피 대신 하루를 시작하는 음료이자, 사람들과 나누어 마시면서 결속을 다지는 연결 고리이다.

마테 차는 혼자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함께 마시는, 즉 ‘그 순간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과 마시는 차’이다. 우루과이에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 대접하는 마 테 차는 환영의 의미이고,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는 마테 차는 우정의 의미이다.

6 와인

. 19세기 후반, 스페인 사람들은 고향 땅에서 올리브와 포도 묘목을 가져와 우루과이에 심기 시작했다. 당시 각 가정에서 테이블 와인을 직접 만들어 마실 정도로 포도 재배가 소규모로 이루어졌으나, 1825년 우루과이 독립 이후 상업 적인 포도 재배가 시작되었다. 이 무렵, 프랑스 바스크 출신 이민자인 파스쿠알 아리아게(Pascual Harriague)는 아르헨티나에서 들여온 프랑스 포도 품종 타 낫(Tannat)을 우루과이 북부 200여 헥타르 땅에 재배하였고, 수년 간 시행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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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 결실을 거둬 현재 타낫이 우루과이 대표 포도품종으로 자리잡고 있다(우 루과이 전체 포도재배 면적의 약 1/3 차지).

우루과이 와인

. 우루과이에 머문다면 반나절 정도 시간을 내어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시내 중심에서 불과 20 km 가량 떨어진 곳에 다수의 와이너리들이 자리잡고 있어 접근성이 좋으며,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포도밭과 양조시설을 둘러보고 2~3가지 와인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우루과이의 가을이 시작되는 3,4 월에 대부분 와이너리들이 자체적인 포도수확 행사(Fiesta de Vendimia)를 마 련하여 손님을 맞이한다.

우루과이 와이너리 2 우루과이 와이너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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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 U G U A Y 37

문화 및 사회

. 19~20세기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들의 후손이 다수를 점하였으 며, 프랑스와 영국의 후손도 소수를 차지하였다. 초기 정착자들은 아르헨티나 와 파라과이를 거쳐서 우루과이로 이동하였다고 알려진다. 현재 원주민들은 사 라졌으며, 유럽인종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약 10%를 차지하고, 흑인 은 2%에 불과하다.

. 우루과이는 스페인어가 공용어로 전국에서 통용되나, 리베라 주와 브라질 접경 도시에서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가 섞인 포르투뇰(Portuñol)도 사용 되고 있다. 또한 종교적인 면에서는 명목상 가톨릭 신자가 많으나, 절반 정도가 종교에 냉담한 편이다.

사회적 특징

4

브라질 접경 도시 리베라에 있는 양국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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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사관계

. 우루과이의 헌법을 통해 노동조합 을 결성하고 파업의 권리를 보장하며, 노동자 권리와 대우를 중시하고 있어 사회복지 관련 지출이 높은 편이다. 이 로 인해 사회보장제도가 고용주들의 임금 부담을 30% 정도 가중시키고 있 다. 특히 바스케스(Vázquez) 1기 정부 (2005~2010년)는 노조의 작업장 점거 를 합법화하는 대통령령(165/2006)을 2006년에 도입하는 등 노동 관련법 36개 를 통과시킴으로써 노동 정책에 있어 노동자 권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대대적 인 변화가 이루어졌으며, 우루과이 총 노동조합 연합인 PIT-CNT에는 약 40만 노동자가 가입하였다.

2 사회보장제도

. 우루과이에 복지제도가 도입된 것은 20세기 초반으로, 굉장히 이른 시기에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1세대 복지국가대열에 비유럽국가, 특히 라틴아메리카 국가가 속해있다는 것만 해도 굉장히 색다르다. 우루과이는 복지국가를 지향한 각종 진보적인 입법을 마련하였으며, 중남미에서 가장 선구적인 사회보장제도 를 확립하였다.

. 우루과이에 복지제도를 정착한 장본인은 제 19대 및 21대 대통령인 호세 바트셰 이 오르도네스(José Batlle y Ordónez)로, 보수주의로 대표되는 홍당의 개혁파로서 집권과 동시에 내란을 종식시켰고, 수많은 복지정책을 통해 우루과이

노사관계 및 사회보장제도

5

우루과이 총노동조합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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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 U G U A Y 39

문화 및 사회

국민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 진다. 그는 연임이 불가한 우루과이 헌법에 의해, 20대 대통령 집권기간 에는 스위스에서 복지에 대한 학문 을 연구하고 왔을 정도로 민생안정 과 분배정책에 대한 관심이 뛰어났 다. 그의 집권 기간 및 그 후 실시된 복지제도를 살펴보면, 국영은행 설 립, 국영철도회사 설립, 실업수당제

도입, 주 48시간 노동제 도입, 무상교육 및 교육제도 개혁, 정교분리, 여성참정 권, 퇴직연금제 등이 있다.

. 하지만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우루과이에는 우익독재정권이 자리 를 잡고, 외세 개입이 심해져 사회복지정책이 제대로 실천되지 못했으며, 인 플레이션까지 겹쳐 국민들의 생활고가 더욱 심해져만 갔다. 그러나 2000년 이 후 15년간 집권한 좌파 정권에 의해 그동안 부족했던 복지정책이 다시 강화되 었다. 문화활동의 보편화를 위해 창의산업청(Departamento de Industrias Creativas)을 설치하였고, 교육문화부 예산안에 문화산업 기금을 포함시켰다.

이로써 문화산업의 시장을 형성하고, 지적재산권 보호, 문화상품에 대한 접근 성 보장 및 창의적 사업관련 정책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우루과이 국기를 흔들고 있는 우루과이 국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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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Ⅳ 여행

지역 현황 관광 명소

U R U G U A Y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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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미의 남동부 해안에 위치한 우루과이는 대륙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인접한 지리적 특성으로 문화 및 역사적 측면에서 이들 이웃국들과 일정 부분 영향을 주고 받았다. 우루과이의 역사가이자 소설가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는 “지도에서 보면 큰 이웃들에게 둘 러싸인 우루과이는 아주 작아보인다.”라고 우루과이를 표현하면서, “하지만 그 렇지 않다. 우리는 네덜란드보다 5배나 넓은 영토에서 그들보다 5배나 적은 국 민들이 있다. 우리는 일본보다 더 넓은 경작 토지를 갖고 있으면서 그들보다 40 배나 적은 국민들이 있다.”라고 말하였다.

. 이처럼 넓은 터전과 낮은 인구 밀도의 조합은 경제발전을 위한 많은 기회를 우루과이에 제공하였다. 1828년 이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와 긴밀한 유대 관 계를 맺고 있는 우루과이는 20세기 초반 정치적 안정, 선진 사회법 등으로 남미 내 진보적인 국가 중 하나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1973~1985년의 기간 동안 억 압적인 군사력으로 인해 민주주의 통치가 회복된 이래 수십년 동안 경제 쇠퇴 와 파벌 투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국가의 어려움으로 인해 많은 우루 과이인들이 유럽과 북미로 이주하게 되었고,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우리는 젊음을 수출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 역사적인 어려움을 딛고 경제 성장을 달성한 현재의 우루과이에서 거의 전 체 인구의 절반이 수도인 몬테비데오에 거주한다. 몬테비데오는 라플라타 강 (Río de la Plata)과 접하며 역사적 의미를 지닌 지역과 화려한 고층 건물부터 잘 정비된 상업시설들까지, 고전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이다. 특히 수많은 박물관, 야외 시장 및 레스토랑이 있는 구 시가지는 몬테비데오의 심장 부이며,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몬테비데오 외에도 해변 휴양지로 꼽히는 푼타델에스테(Punta del Este)와 피리아폴리스(Piriápolis), 스페인 식 민통치 시절의 걸작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Colonia del Sacramento) 또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지역이다.

지역 현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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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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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명소

2

1 몬테비데오(Montevideo)

.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는 전통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도시이다. 카빌도 박물관(El Cabildo), 마트리스 성당(Iglesia Matriz), 시우다델라 성문(Puerta de la Ciudadela)과 같이 고대, 아르누보 및 아르데 코 형식을 갖춘 고전적인 건축물과 더불어, 커뮤니케이션 타워(Torre de las Comunicaciones)와 같은 현대적인 건축물도 볼 수 있다.

. 산책로(람블라, Rambla)에서는 아름다운 해변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으며, 산책로 곳곳에서 마테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몬테비데오 내 솔리스 극장(Teatro Solís)과 같이 웅장한 장소에서 다양한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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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며, 곳곳의 박물관에서 후안 마누엘 블라네 스(Juan Manuel Blanes), 라파엘 바라다스(Rafael Barradas), 페드로 피가리 (Pedro Figari),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Joaquín Torres García), 호세 쿠네 오(José Cúneo) 및 이그나시오 이투리아(Ignacio Iturria)와 같이 국제적 명성 이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1) 몬테비데오 해안산책로 & 푼타카레타스 등대(Rambla de Montevideo

& Faro de Punta Carretas)

. 세계에서 가장 긴 산책로로 몬테비데오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람블라 거 리는 몬테비데오 시민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장소이다. 라플라타 강(Río de la Plata)를 따라 30 km나 이어진 긴 산책로인 만큼 람블라 거리를 따라 걷 다 보면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몬테비데오 시민들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산 책을 하거나 마테차를 마시면서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포시토스 해변(Playa

몬테비데오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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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U R U G U A Y 45

Pocitos), 라미레즈 해변(Playa Ramirez) 등 강가 해변에서 해수욕 과 비치발리볼을 즐기며, 파도가 잦 은 말빈 해변(Playa malvin)에서는 수상레저를 즐기기도 한다. 그 외에 도 람블라 거리에 나 있는 라틴아메 리카통합기구(ALADI)사무국, 남 아메리카 공동 시장인 메르코수르 (Mercosur) 사무국, 한국의 유영호 작가의 작품 인사하는 사람(그리팅

맨, Greeting Man)을 볼 수 있다. 특히, 12월 24일과 31일에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아 몬테비데오 시민들이 불꽃을 터뜨리며 자축을 하기도 한다.

푼타카레타스 등대

몬테비데오 해안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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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 시가지(Ciudad Vieja – Peatonal Sarandí, Puerta de la Ciudadela) . 구 시가지인 시우닷 비에하(Ciudad Vieja)를 방문하게 되면 우루과이의 생동감이 있는 문화를 접할 수 있다. 항구를 중심으로 세워진 도시인 만큼, 몬 테비데오 구시가지의 자랑은 단연코 항구에 위치한 재래시장(Mercado del Puerto)이다. 우루과이의 대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소고기 구이 아사도 (Asado)와 이러한 소고기 구이를 전문적으로 파는 음식점을 지칭하는 파리샤 다(Parrillada)가 재래시장 내에 위치해있으며,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가게가 다수 입점해 있다.

. 또한 구 시가지는 박물관들이 집중적으로 위치해 있는 구역으로, 몬테비데 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카빌도 박물관(El Cabildo), “우리의 북쪽은 곧 남쪽이다”라는 그림으로 잘 알려진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Joaquín Torres García) 미술가의 박물관, 공예품 박물관, 스페인 문화 센터(Centre Cultural Española) 등 골목 곳곳에 각양각색의 박물관을 찾아볼 수 있다.

.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구 시가지와 시내는 사무실이 밀집해있는 지역 이기 때문에 퇴근시간인 6시 이후나 주말의 경우 가게들이 이른 시간에 문을 닫고, 비교적 사람이 적어 한적해지므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3) 독립광장(Plaza Independencia)과 살보궁전(Palacio Salvo)

. 초기 몬테비데오 시가지 전체를 둘러싸던 벽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있 는 부분은 다름아닌 시우다델라(Ciudadela) 성문이다. 이 문은 초창기 몬테비 데오를 지키던 별 모양 요새의 입구이자, 몬테비데오 시내의 시작점으로서 현

몬테비데오 구시가지 독립광장과 그 주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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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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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도 이 문을 기점으로 몬테비데오의 구시 가지와 신시가지가 분리되며, 문 너머 이전에 요새였던 곳은 우루과이 독립광 장으로 변모하였다. 독립광장의 중앙에는 이 나라의 영웅 호세 아르티가스 장 군의 동상(Mausoleo de Artigas)이 위치해 있으며, 아르티가스 장군의 동상 바로 밑 지하에는 그의 유골함과 그의 생애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 독립광장을 가로질러, 시우다델라 문을 마주보고 있는 건물은 바로 몬테비 데오의 랜드마크, 살보 궁 전(Palacio Salvo)이다. 호 텔로 사용될 목적으로 지 어진 이 건물은 1928년부 터 1935년까지 남아메리카 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

며, 우루과이의 대표 탱고곡인 쿰파르시타(la Cumparcita)가 처음으로 연주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는 사무실 및 가정집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 되고 있으며, 내부 투어도 가능하다.

. 이 외에도 독립광장을 중심으로 대통령 집무실 및 전(前) 의회 건물, 다양한 국제기구 및 정부기관이 위치해 있어, 몬테비데오 내 유서 깊으면서도 건축적 으로 훌륭한 건물을 구경할 수 있다.

(4) 로도 공원(Parque Rodo) & 프라도 공원(El Prado)

. 로도 공원은 람블라 거리와 가까이 위치해있어 몬테비데오 시민들의 쉼 터로 자리매김한 공원이다. 매주 일요일, 로도 공원에서는 정기시장(페리아, Feria)이 열리며, 크리스마스 시즌 전후로 로도 공원에서는 수공예품 위주의 대 규모 야시장이 열리곤 한다. 공원의 중심에는 호수가 위치해 있어 친구와 연인

몬테비데오 독립광장과 살보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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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끼리 오리 보트를 타며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로도 공원 주변 지역 또한 펍 (Pub), 레스토랑, 바(Bar)와 같은 다양한 즐길 거리가 위치해 있어 밤이 되면 몬테비데오의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지역으로 꼽힌다.

프라도 공원은 몬테비데오의 중심 지와는 다소 떨어져 있어 자연을 마음 껏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공원 내에 위 치한 식물원(Jardín Botánico)에서 산책을 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다.

. 특히, 프라도 공원의 자랑거리는 매년 이 곳에서 개최되는 프라도 박람회 (Expo Prado)이다. 목축업이 주요 산업인 우루과이에 걸맞는 행사로서, 이 기 간동안 말, 소, 양 등 최고의 가축을 가려내기 위한 경연 대회가 열리고, 농기계 전시회, 목축업을 주제로 한 다양한 워크샵, 컨퍼런스가 개최된다. 몬테비데오 시민들이 많이 방문하는 일종의 축제인 만큼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도 제공된 다. 이색적인 먹거리를 판매하는 푸드트럭이 즐비해 있으며, 저녁에는 클럽을 방불케 할 만큼 다양한 공연들로 꾸며진다. 그 외에도 봄과 여름이 되면 프라도 공원에서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몬테비데오 로도 공원

몬테비데오 프라도 공원

로도 공원에서 열리는 수공예품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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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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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Colonia del Sacramento)

. 1680년에 포르투갈인 마누엘 로보에 의해 설립된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 (Colonia del Sacramento)는 1825년 반다오리엔탈(Banda Oriental, 우루과 이 강의 동쪽과 라플라타 강 북쪽의 스페인 식민지 지역을 일컫는 말)의 독립 전까지 수 세기 동안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통치가 번갈아가며 이어졌던 지역 임을 여실히 드러내듯,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꼽힌다. 도시 곳곳 에서 보이는 아술레호(Azulejo, 타일)로 알 수 있듯이, 포르투갈 식민지 양식과 스페인식의 주택이 공존하는 색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프라도 박람회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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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 는 이전 식민지 시대의 유산을 보존하며 마치 시간 여행을 한 듯한 여행지로 꼽 힌다. 콜로니아 내 역사지구(Barrio historico) 중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단연 시우다델라의 문(Puerto de la Ciudadela)에서 시작되는 산책로와 수스피로의 길(Calle de los Suspiros)이다. 특히 시우다델라의 문에서부터 콜 로니아의 해변가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는 여유를 즐기며 역사가 깊은 이 도 시를 구경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울퉁불퉁한 자갈길 위를 걸으며 이국적인 정취 를 느낄 수 있고, 식민지 시대의 상태 그대로 남아있는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며 마치 이전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콜로니아는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간의 페리가 운행되는 도시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고속 페리로 1시간 가량 소요된다.

3 말도나도(Maldonado)

(1) 푼타델에스테(Punta del Este)

. ‘남미의 모나코’라고도 불리는 푼타델에스테는 반도지형의 도시로, 우루과 이를 대표하는 휴양지이다. 아르헨티나 남부를 지나는 크루즈 선들이 빠지지

콜로니아 시우다델라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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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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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고 정박하는 도시로, 휴가철에는 해수욕을 하는 인파와 더불어 서핑, 요트 등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 푼타델에스테의 랜드 마크는 모래 속에서 뻗어 나오는 듯한 손가락 모양 의 조형물, 손가락상(la mano 또는 los dedos) 으로, 칠레의 조각가 마 리오 이라라사발(Mario Irarrázabal)의 작품이

다. 1982년도에 개최된 제 1회 세계 현대 조각 전시회에 출품 되었던 작품으로, 스페인 마드리드, 케냐 나이로비,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 이탈리아 베니스에도 이와 비슷한 작품이 있다. 푼타델에스테의 대표 격인 브라바 해변의 모래 속을 헤집고 나오는 듯한 역동적인 작품으로, 펼쳐진 손가락은 사람과 사람 간의 만 남을 상징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손’은 연작 중 한 작품으로, 푼타델에스테 도 시 초입에 있는 아메리카 대로(Paseo de las Américas)를 따라 전시되어있는 연작의 나머지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푼타 델 에스테

푼타 델 에스테 손가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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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인만큼, 여름에는 재즈페스티벌, 영화 페스티 벌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어 아름다운 휴양지에 즐길 거리를 더한다. 역사적 으로는 1994년 WTO의 창립의 근거가 된 우루과이 라운드가 이 곳, 푼타델에 스테 소재의 산 라파엘 호텔(Hotel San Rafael)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의 의가 있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호텔이 폐업한 상태이며, 우루과이 라운 드 타결 당시의 역사가 담긴 건물은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 다양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푼타델에스테는 남반구 최대의 바다사자 서식지 로서, 해양생태계에 해를 주지 않으면서 관광을 할 수 있는 친환경 관광코스가 구성되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곳은 푼타델에스테의 항구에서 배로 4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바다사자들의 섬(Isla de lobos)이다. 국가에서 지정한 국립공원 이니만큼 환경 친화적 관광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으며, 7월에 서 11월 사이에는 바다사자뿐만 아니라, 인근 바다에서 고래도 구경할 수 있다.

(2) 푼타 바셰나(Punta Ballena)

. 푼타 바셰나(Punta Ballena)는 우루과이가 자랑하는 화가이자 건축가인 카를로스 파에스 빌라로(Carlos Páez Vilaró)의 건축물, 카사 푸에블로(Casa Pueblo)로 잘 알려져 있다. 외형적으로는 흡사 가우디의 건축물이나 산토리니 의 카사블랑카를 연상시키는 이 건물은 사실 우루과이에서 서식하는 가마새의 둥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사 푸에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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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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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사 푸에블로는 총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물 내부에는 갤러리, 박물 관, 호텔과 카페 등이 있다. 이 중 카사 푸에블로의 하이라이트는 테라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대서양의 모습이다. 바다를 향해 계단 모양으로 설계 되어 탁 트인 시야의 바다 풍경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푼타델에스 테에서 까사 푸에블로 앞 바다까지 유람선을 타고 이동하여 석양을 보는 투어 또한 마련되어 있는 만큼, 이 곳에서 보는 석양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3) 피리아폴리스(Piriápolis)

. ‘피리아의 도시’라는 뜻의 도시의 이름에서 유추가 가능하듯, 피리아폴리스 를 설립한 사람은 1847년 8월 21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출생의 프란시스코 피 리아(Francisco Piria)이다. 피리아폴리스도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해변으로 우 루과이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이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푼타델 에스테와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해변은 상대적으로 한적하여 우 루과이 사람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꼽힌다.

카사 푸에블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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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의 설립 역사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면, 1897년에 건축된 피리아의 . 생가를 방문해볼 수있다. 피리아 스스로 본인의 이름을 본 따 자신의 생가를 기반으로 성을 건축했고, 드넓은 공원과 분수, 조각상들로 정원을 꾸몄다. 르네 상스 양식의 건축물인 성 내부 또한, 피리아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도록 정갈 하게 꾸며져 있다. 피리아가 생활했던 방에 그가 당시에 사용하던 시계, 탁자, 의자 등이 그대로 비치되어 있어 마치 피리아의 시대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느 낌을 준다.

. 피리아폴리스의 자랑거리, 아름다운 해변을 한눈에 보려면 산 안토니오 언덕(Cerro San Antonio)에 오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919년 정상에 성인 산 안토니오의 조각상이 있는 작은 예배당을 만들면서 언덕의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속설에 의하면 산 안토니오 동상을 향해 기도를 하면 연인이 생긴다고 도 한다.

피리아 성 산 안토니오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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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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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살토(Salto)

. 살토는 수도인 몬테비데오에서 북서쪽으로 498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우루과이 강의 동쪽 면을 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콘코르디아 (Concordia)와 국경을 접하고 있기도 하다. 살토는 1756년을 시작으로, 19세 기 중반에 성장하여 우루과이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인식되기도 하 였다. 현재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우루과이 사람들에게 휴양지로서 각광받고 있 다. 특히 우루과이인들이 살토로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살토의 편리한 인프라와 풍부한 휴양 콘텐츠이다. 살토는 다양한 편의시설이 이용하기 편리하 게 구비되어 있으며, 온천, 스파 서비스 등이 발달되어 있어 일상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아온다.

. 우루과이의 기후를 살펴보자면, 1년 내내 주기적으로 비가 내리는 다습한 아열대성 기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여름엔 최고 기온이 35도에 육박할 정도로 더우나, 겨울엔 종종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질 정도로 쌀쌀한 편이다. 우루과이

산 안토니오 언덕에서 내려다본 피리아폴리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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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지방에 비해 평년 기온이 높기 때문에 비교적 과실의 풍미가 좋은 편이다.

도시 전체가 레몬, 오렌지, 블루베리 등 다양한종류의 과수원으로 둘러 쌓여 있다. 또한 살토에서 하리아구라고 불리는 타낫(포도 품종의 일종)이 생산되는 데, 우루과이 와인 생산의 주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프렐루디오라는 우루과이 와인은 타낫을 비롯한 6가지 포도 품종을 조화롭게 블렌딩한 우루과이 와인으 로, 와인박람회 빈이탈리아(Vinitaly) 최초로 비(非) 이탈리아 와인 중 대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1) 살토 그란데(Salto Grande)

. 살토에는 살토 그란데라는 댐과, 그로 인해 저수지 형태로 형성된 호수가 있 다. 아르헨티나 콘코르디아 지역과 전통적으로 살토 그란데(Salto Grande) 댐 을 공용하기 위해 철도와 도로를 건설해 왕래를 유지하고 있다.

. 살토 그란데 댐은 길이 69 m, 높이 39 m의 규모로 14개의 터빈을 갖고 있다. 연간 에너지 생산량은 11,135,779 mw/h이며, 이는 아르헨티나 및 우 루과이 에너지 소비량의 6%를 차지하고 있다(무료 입장, 입장시간: 월~일 07:00~16:00, 매주 일요일마다 가이드 투어 진행, 2019년 기준). 이 댐으로 인 해 형성된 살토 그란데 호수는 75,000 헥타르의 면적으로 모래사장, 숲 공원,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 살토의 관광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

살토 온천 살토 그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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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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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타쿠아렘보(Tacuarembó)

. ‘국가의 심장’, ‘아름다운 고향’, 그리고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의 고향’이라 불리우는 타쿠아렘보는 심장 모양의 지형을 갖고 있다. 수도인 몬테 비데오에서 400 km나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명성 있는 솔리스 극장이나 콜론 극장보다 먼저 타쿠아렘보의 에스카숄라 극장 (Teatro Escayola)에서 연극을 선보였다. 이처럼 많은 위대한 작가, 음악가, 예 술가 및 스포츠선수가 살고 있는 타쿠아렘보의 주민들은 항상 우루과이 문화에 있어서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로 인해 우루과이의 북쪽에 위치한 타쿠아렘 보는 문화적 정체성이 일상 생활과 융합되어 있다.

. 언덕과 초원과 같은 자연의 경이로운 풍경은 불의 심장(Corazón de Fuego),.

아르티가스의 이야기(Artigas: La redota), 미스 타쿠아렘보(Miss Tacuarembó) 영화의 배경으로도 등장한다. 또한 타쿠아렘보 출신의 배우로 페데리코 루피(Federico Luppi), 엑토르 알테리오(Héctor Alterio), 나탈리 아 오레이로(Natalia Oreiro)가 있다. 특히 탱고의 황제라고 불리는 가수 카를 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의 고향이라는 설이 있는데, 아르헨티나에서는 아 르헨티나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며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 다. 이처럼 다양한 예술가들이 발굴된 곳이자,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 술작품을 통해 타쿠아렘보는 우루과이 내 예술의 도시라고 칭할 수 있다.

타쿠아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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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포라(Iporá)

. 타쿠아렘보 시내에서 7 km 떨어진 이포라 온천은 그림 같은 인공호수를 배 경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 곳에 있는 캠핑장은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축구, 농구, 테니스, 배구. 수영 등의 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 활동적인 외부활동 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뿐만 아니라 호수에서 낚시를 하거나 카누를 타 면서 호수에서의 액티비티를 만끽할 수 있다.

(2) 바셰 에덴(Valle Edén)

. 바셰 에덴은 타쿠아렘보 시내에서 25 km 정도 떨어져 있는 근교 도시로, 이 포라와 유사하게 캠핑장과 야외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온도 샘(Pozo Hondo), 치보 동굴(Cueva del Chivo), 페라도 절벽(Perado Caído) 등 다양한 자연경관을 볼 수 있으며, 타쿠아렘보의 자랑인 카를로스 가르델 박 물관(Museo de Carlos Gardel)이 있어 그의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포라

바셰 에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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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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