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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와 테크놀러지의 변증법적 융합에 대한 연구- 도자공예의 ‘석고 캐스팅’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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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_2020.08.10 심사기간_2020.09.01-14 게재확정일_2020.10.05

공예와 테크놀러지의 변증법적 융합에 대한 연구 - 도자공예의 ‘석고 캐스팅’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dialectical convergence between craft and technology - Focusing on 'Plaster Casting' of Ceramic Crafts

방창현, 경희대학교 예술디자인 대학

Bang, Chang Hyun_College of Art & Design, Kyunghee University

차례 1. 서론

1.1. 연구목적

1.2. 연구내용 및 방법

2. 도자공예와 ‘석고 캐스팅’ 테크놀러지

2.1. 18세기 영국의 도자공방과 19세기 예술공예운동 2.2. 바우하우스: 도자공예에서 도자산업으로 2.3. 20세기 공방도자와 3D 프린터 시대의 도예가 3.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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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와 테크놀러지의 변증법적 융합에 대한 연구 -도자공예의 ‘석고 캐스팅’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dialectical convergence between craft and technology - Focusing on 'Plaster Casting' of Ceramic Crafts

방창현, 경희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Bang, Chang Hyun_College of Art & Design, Kyunghee University

요약

중심어 공예

산업 디자인 기술

3D 프린터 바우하우스 도자공예 석고 캐스팅

수공예와 테크놀러지에 관한 불협화음의 신화는 지난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특히 21세기 4차 혁명의 총아로 평가받고 있는 3D 프린터의 등장과 함께 공예와 테크놀러지에 대한 담론은 재점화되기 시작했 다. 이에 본 논문은 18세기 영국 도자산업, 19세기 예술공예운동, 20세기 바우하우스, 20세기 공방공 예운동, 21세기 3D 프린트 시대의 도자공예를 연구하면서, 공예와 테크놀러지의 변증법적 융합을 도 자공예의 석고 캐스팅 테크놀러지에서 찾고자 했다. 무엇보다 모더니즘 시대에 대량생산이라는 담론 아래 그 중요성이 간과되어 왔던 석고 캐스팅 테크놀러지의 연원을 고찰하면서 공예와 산업, 손과 기 계, 과거와 현재라는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융합적 특성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윌리엄 모리스, 에이드리언 포티, 래리 샤이너, 버나드 리치가 저술한 도자공예와 관련된 서적 중심으로 문헌연구를 하고, 실증적 사례는 호주의 도예 저널 󰡔Ceramics: Art & Perception󰡕에 실린 슬립 캐스팅을 이용하 는 도예가들을 중심으로 하였다. 결론적으로 도자공예는 이미 기원전부터 물레와 캐스팅과 같은 도구 테크놀러지의 발달로 도자기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이러한 친테크놀러지 성향은 18세기 영국 의 웨지우드 공방과 20세기 바우하우스 시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석고 캐스팅의 발달로 이어졌다. 무 엇보다 석고 캐스팅 테크놀러지를 이용하던 도자공방은 바우하우스 시대 그로피우스가 천명한 공예와 산업의 융합에 가장 실천적인 분야가 되어 모더니즘 디자인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3D 프린터와 석고 캐스팅을 이용하는 21세기 도예가들은 윌리엄 모리스가 이상화했던 중세 장인의 현대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도자공예는 공예와 테크놀러지라는 대립된 두 개념 이 공존하고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석고 캐스팅 테크놀러지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ABSTRACT

Keyword craft

industrial design technology 3D printer Bauhaus ceramic craft plaster casting

The myth of dissonance on handicrafts and technology has a long history. Especially with the advent of 3D printers, which are considered the vanguard of the fourth revolution in the 21st century, discourse on craft and technology began to be reignited. Thus, while studying the 18th century British ceramic industry, 19th century art and crafts movement, 20th century Bauhaus, 20th century studio craft movement, and ceramic craft in the era of 21st century 3D printer, this paper tried to find the dialectical fusion of craft and technology in the plaster casting technology of ceramic crafts. In particular, he considered the origin of plaster casting technology, which had been overlooked in the field of ceramic crafts under the discourse of mass production in the modernist era, and sought to discover the characteristics of convergence beyond the dichotomous confrontation between craft and industry, hands and machinery, and the past and the present. To this end, the literature study was centered on books on ceramic crafts written by William Morris, Adrian Porti, Larry Shiner, and Bernard Leach, while empirical examples were centered on potters who used slip casting in the Australian potter's journal "Ceramics: Art & Perception." In conclusion, ceramic crafts have already enabled mass production of ceramics from the development of tool techniques such as spinning wheels and casting since B.C., and this pro-technological tendency has led to the development of new plaster casting through the Wedgewood pottery studios in England in the 18th century and the Bauhaus era in the 20th century. The pottery workshop, which used plaster casting technology, became the most practical field for the convergence of craft and industry declared by Gropius during the Bauhaus period, which served as an important opportunity to mark the beginning of modernism design. Also, 21st century craftsmen using 3D printers and plaster casting are modern images of medieval craftsmen William Morris had idealized. This showed that the two opposing concepts of craft and technology coexist, and that plaster casting technology is at th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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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1. 연구배경과 목적

지난 몇 세기 동안 테크놀러지의 급격한 발달과 산업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공예품 제작에 대한 관심과 공예 담론이 확산되어 왔다. 주지하다시피 존 러스킨, 윌리엄 모리스, 야나기 무네 요시, 하워드 리싸티, 글렌 아담슨, 이인범 등은 동서양의 공예 담론을 이끈 주역들이며, 이들은 공예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해 왔다. 본 연구자는 공예와 테크놀 러지의 변증법적 융합으로써 도자공예의 석고 캐스팅 기법을 주목해 왔다. 역사적으로 물레로 만든 작업을 공예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반면, 석고로 캐스팅한 작품은 대량생산과 효율성이라 는 이름 아래 모더니즘 시기에 지향했던 기계 미학의 일부로 저평가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역사 적으로 오랫동안 주입된 이러한 편견은 “테크놀러지와 공예는 공존할 수 없는가?” 또는 “기계기 술과 대량생산이 과연 도자공예 작품의 질을 저하시키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 만든다.

이에 본 연구는 18, 19세기 영국의 도자 산업, 바우하우스 시대의 도자공예와 산업디자인, 20 세기 공방도자의 발전, 21세기 3D 프린터 시대의 도자공예에 대한 담론을 통시적으로 연구하 고, 석고 캐스팅 기법을 통한 도자공예와 산업의 융합을 고찰함으로써 도자공예가 지닌 친테크 놀러지(Technology-friendly) 성향을 입증하고자 한다.

1.2. 연구내용과 방법

연구내용은 1장 서론에서 연구목적과 연구방법을 밝히고, 2장에서는 산업화되기 이전 18세기 영국의 도자공방과 이후의 웨지우드 도자공장을 연구하면서 테크놀러지의 역할과 의미를 고찰 할 것이다. 그리고 바우하우스 시대 도자공예의 석고 캐스팅 테크놀러지가 지니는 공예와 산업 디자인의 융합적인 특성이 어떻게 20세기 모던 디자인과 도자공방의 발전을 가져 왔는지를 연구할 것이다. 2장 후반에는 도자공예의 슬립 캐스팅 테크놀러지의 발전을 고찰하면서, 히더 메이 에릭슨(Heather Mae Erickson), 사샤 워델(Sasha Wardell), 히로에 하나조노(Hiroe Hanazono) 작가의 작품이 지니는 특징을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3D 프린터를 이용하는 도자 공예가 제이드 크롬프톤(Jade Crompton)의 작품을 통해 테크놀러지와 수공예의 융합이 21세 기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지 고찰하고자 한다. 결론에서는 연구내용을 요약하고 본 논문의 결론과 의의를 기술할 것이다.

연구방법은 에이드리언 포티(Adrian Forty)의 󰡔Objects of Desire and Society Since 1750󰡕,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Art and It‘s Producers & The Arts and Crafts Today󰡕, 래리 샤이너(Larry Shiner)의 󰡔The Invention of Art󰡕, 하워드 리싸티(Howard Risatti)의 󰡔A theory of Craft󰡕, 버나드 리치의 󰡔A Potter’s Book󰡕를 중심으로 문헌연구를 하고, 실증 사례는 1990년부터 2020년 사이에서 발간된 호주의 대표적인 도예 저널인 󰡔Ceramics: Art &

Perception󰡕에 게재된 도자공예 작가들 중에 슬립캐스팅을 이용하는 작가를 중심으로 사례연 구를 할 것이다.

2. 도자 공예와 테크놀러지

1923년에 열린 바우하우스 전시회에서 그로피우스가 주장한 ‘예술과 테크놀러지-새로운 통 합’이라는 연설문의 제목은 언뜻 보면 이해가 잘 가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테크놀러지라는 말은 인류의 문명과 함께 시작된 지난한 역사를 지닌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산업혁명이 시작된 지 200년이 지난 모더니즘 시기에 ‘테크놀러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인류의 기술 발전 속도가 가히 기하급수적임을 나타낸다. 즉 연설문의 테크놀러지는 어제와 다른 오늘 의 신기술이라는 함의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예술은 역사적으로 기술을 품은 적이 없었던가? 어원적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Techne)와 고대 로마의 아스(Ars)처럼 예술 과 기술이 통합된 의미를 지닌 시기도 있었지만, 여기서 예술은 서양의 회화와 조각을 가리키 며, 역사적으로 서양미술의 양식적 변화는 있었지만 기술적인 변화는 타 분야에 비해서 미미한 정도였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 ‘테크놀러지’의 개념은 자연을 개발하는 데 이용하는 수단에서 부터 도구와 기계를 포함하는 ‘생산기술’이라는 뜻으로 그 의미를 한정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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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에 대한 정의는 동서양의 여러 비평가들의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공예·디자인 평론가인 최범은 “공예는 손으로 만드는 물건(Choi, Bum.,2017, p.13)”이라고 정의하면서 기계 생산품 과는 다른 인간의 감정이 묻어나는 물건이며, 또한 단순한 물건 이상의 의미를 지닌 ‘가치’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버지니아 커먼웰스(Virginia Commonwealth) 대학 미술사학과 교수인 하워드 리싸티는 공예나 장인정신은 사물제작의 질적 수준뿐만 아니라 숙련된 손의 질적 수준을 의미했지만, 후기 산업사회의 그늘에 들어선 오늘날 공예는 “숙련된 손과의 직접 적인 연관성은 희미해졌다(Risatti Howard., 2007, p.14)”고 언급했다. 공예평론가 최공호는 개화 초기의 공예는 “오늘의 미술공예 개념과 달리 산업생산의 메커니즘을 뜻하는 문명적 관점 에서 수용(Choi GongHo.,2008, p.45)”되었다고 지적했다. 공예 평론가 변청자는 윌리엄 모리 스의 이상이 단순한 ‘수공예’로의 회기가 아닌 문화융합 측면에서 미술, 공예, 디자인을 아우르 는 “종합예술로서 공예(Byun, ChungJa., 2010, p.67)”라고 주장했고, 영국 현대 공예 저널 (The Journal of Modern Craft)의 편집장인 글렌 아담슨은 “공예는 오로지 행위를 통해서 존재 할 수 있다(Adamson, Glenn.,2007, p.4)”는 생각을 바탕으로 과정으로서의 공예와 순수미술의 자치적 성격과 반대되는 공예의 대리보충적인 면을 강조했다.

이처럼 공예에 대한 정의는 나라와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본고에서 주목하는 것은 공예와 ‘테크놀러지’와의 연관성이다. 즉, 수공예와 ‘테크놀러지’에 관한 불협화 음의 신화를 18세기 영국 도자 산업, 19세기 예술공예운동, 20세기 바우하우스, 21세기 3D 프린트 시대를 통해 고찰하면서, 이와는 다른 도자공예의 ‘테크놀러지’ 지향적 성향과 새로운 산업과의 융합의 효율성을 ‘석고캐스팅’ 기법을 통해서 찾고자 한다.

2.1. 18세기 영국의 웨지우드 도자 공방과 19세기 예술공예운동

많이 알려진 것처럼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가내수공업의 소량으로 물건을 생산 하는 방식에서 기계제대공업에 의한 대량생산으로 이어지게 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일어난 급 격한 테크놀러지의 발달을 모든 사람들이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18세기 제조업자들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3가지 접근 방식-고풍스러운 디자인(가장), 은폐하 기, 이상향 디자인(변형)(Forty, Adrian., 1992, p.12)”전략을 주로 이용하였다. 특히 영국의 대표 적인 도자 공방인 웨지우드도 도자 테크놀러지의 놀라운 성과를 고객들에게 충격 없이 드러내기 위해 겉으로는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위장하곤 했다. 신고전주의는 18세기 중엽 유럽을 휩쓸었던 바로크를 극복하고 “그리스 조각의 윤곽 속에서 자연미와 이상미를 하나로 통일(Jin, ZhongKwon., 2008, pp.277~285)”시키려 했는데, 이러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웨지우드는 신고전주의를 도자기 와 결합시켜 테크놀러지의 진보와 전통 예술이 모호하게 결합된 작품을 만들었다.

아래의 그림 <Figure 1>은 기원전 30년에 고대 로마에서 만들어진 카메오 유리 기법(Cameo Glass Technique, 카메오 에칭과 조각을 통해서 서로 다른 유리 색을 드러내는 기법)으로 만든 포틀랜드 화병이다. 조자이어 웨지우드(Josiah Wedgwood, 1730-1795)는 수년간의 연구 끝에 이 작품을 석고로 캐스팅(<Figure 3>)해서 도자기로 재탄생시켰다(<Figure 2>). 이처럼 18세기 영국 도자 공예에서 테크놀러지의 진보는 ‘석고 캐스팅 기법’을 중심으로 발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Figure 1> Portland Vase, Cameo Glass, AD 5-25, 영국 박물관

<Figure 2> Josiah Wedgwood, PortlandVase, 1790

<Figure 3> Cast Cameo Glass(Greenw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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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 몰드의 개발은 동서양 역사에서 모두 기원전에 시작되었지만, 석고를 이용한 몰드는 16세기경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프랑스의 몽마르트르(Montmartre)의 석고 광산에 서 만들어진 소석고(plaster-of-Paris)가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면서, 18세기 초중반부터 영 국의 스테포드셔(Staffordshire)와 런던 지역에 석고를 이용한 슬립 캐스팅(Slip Casting) 기술 이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Hildyard, Robin., 1999, p.74). 슬립 캐스팅은 석고틀에 흙물 (slip)을 주입하여 도자기를 만드는 방법인데 같은 형태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1740년 영국에서 슬립 캐스팅 기법이 개발되었다고 알려졌으나, 미국의 고고 학자 로렌스 더슨(Lawrence E. Dawson)은 세계 최초의 슬립 캐스팅은 현재 페루 지역에 있는 고대 모카 문명에서 만들어진 팬파이프(Panpipe)를 기원으로 보고 있다(Dawson, Lawrence E., 1964, pp. 107~111). 이처럼 18세기 웨지우드의 포틀랜드 꽃병은 석고 캐스팅이라는 영국 의 도자 테크놀러지 발전이 낳은 혁신의 산물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독일의 뵈트거(Johanne Friedrich Böttger, 1682-1719)가 1710년 자기를 처 음으로 개발한 이후 유럽은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동양 도자기 기술의 모방에서 벗어나기 시작 했다. 영국은 독일의 마이센과 네덜란드의 델프트에 비해 늦게 시작했지만 아게이트웨어 (agateware), 크림 웨어(cream ware), 자스퍼웨어(Jasperware)등을 개발하면서 유럽에서 새 로운 도자 산업을 이끌게 되었다. 바로 이시기에 도자 공예는 도자 산업으로의 이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면 수공업와 산업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에이드리언 포티는 1986년에 집 필한『Objects of Desire, Design and Society Since 1750』라는 책에서 “모든 산업의 역사에 서 있어서 한 사람의 장인이 기획부터 판매까지 모든 제조과정을 책임지던 시대가 끝나면, 디자 인 과정은 필연적으로 생산과정에서 완전히 분리 독립된 하나의 활동으로 대체된다.(Forty, Adrian., 1992, p.29)”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노동의 분업 체제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존재해왔 고 도자공예의 대량생산 체제도 이미 기원전 4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동서양 모두 도자기의 대량생산은 테라코다로 만든 거푸집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고대 그리스는 기원전 약 400년 전, 중국에서는 기원전 약 250년 전 진나라 시대(진시황 병마용)에 테라코타 거푸집이 본격적 으로 만들어졌다. 도자공예의 분업체계는 이미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 럼 도자기를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는 기계(도구)의 힘이 필수적이었는데 물레와 거푸집이 대표 적인 도구 테크놀러지에 속한다. 아래의 그림 <Figure 4>는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의

저서 󰡔A Potter’s Book󰡕에 나오는 기원전 인도에서 사용했던 물레이 다. 버나드 리치는 이 책에서 도자기용 물레는 인간이 발명한 기계장 치(device) 중에서 가장 특이하고 친밀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나 무, 금속, 섬유, 유리 중에서 흙만큼 인간의 촉각에 반응하는 재료는 없다(Leach, Bernard., 1972, p.66)”라고 기술한 것은 주목할 대목이 다. 그것은 흙이라는 재료적 성질이 공예적 촉각성을 유지하면서 테 크놀러지와 잘 융합할 수 있다는 증거이면서 또한 대량생산이 수월하 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예시를 통해 도자공예는 그 태동과 함께 인간의 손과 기계의 테크놀러지가 함께 융화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에이드리언 포티는 수공예에서 산업으로 이행하는 시기를 왜 18세기로 본 것일까? 그것은 도자기의 대량생산과 분업은 앞에서 언 급한 것처럼 선사시대에도 존재했지만 18세기 웨지워드와 현격한 차이점이 있었기 때문이었 다. 즉 “선주문 후제작 방식, 완벽하게 균일한 상품 생산, 직공들의 재훈련, 전사지의 사용, 원형 제작자의 디자인 작업(Forty, Adrian., 1992, pp.29-36)”이 후대의 디자인 평론가들이 웨지우 드 공방을 디자인 산업의 시초로 보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선주문 후제작 방식은 경제적인 면에서 효용성이 높았지만 완벽하게 균일한 상품 제작되지 않으면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켜줄 수 없었다. 그래서 물레 작업보다는 석고 캐스팅 작업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발전하게 된 계기 가 되었다. 그러면 이 지점에서 또 다른 의문이 남는다.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는 왜 그토록 기계생산을 수공예와 적대적인 관계로 해석했을까? 그의 저서 󰡔Art and It‘s Producers & The

<Figure 4> Bernard Leach, Indian Wheel,

(s) A Potter’s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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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and Crafts Today󰡕에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공장을 경영하는 사람은 제품의 품질보다는 제품을 시장에 팔아서 발생하는 이익에 대한 생각 만을 하기 때문에, 그에게 이윤 창출이라는 목적을 제외시키면 실제 제품의 가치 자체에 대한 의미는 없는 것이다.(Morris, William., 2010, pp.33-39)”

위의 문장은 윌리엄 모리스가 생각하는 기계공업이 만든 영국의 현실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공장주는 제품의 질에 대한 관심보다는 저급한 물건들을 대량생산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모리스는 인간이 기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어 노예로 전락하는 상황을 비판한 것이었다. 18세기 웨지우드 공방이 공장으로 전환하 던 시기에도 급격한 노동 분화가 일어났다. 초기 공방으로 운영될 때에는 18세기 이전처럼 물레를 차는 사람과 중요도가 떨어지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로 분업화가 되었지만, 공장으로 체제가 바뀌면서 도자기 제품의 원형을 디자인하는 사람, 캐스팅을 하는 사람, 손잡이를 다는 사람, 유약을 시유하는 사람, 가마소성을 하는 사람같이 더욱 세분화된 분업이 일어났다. 하지 만 웨지우드 공장이 저급하고 단조로운 물건을 생산했던 다른 공장과 다른 점은 소지, 유약, 가마소성과 같은 테크놀러지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서 명품 도자기를 탄생시킨 것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일으킨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은 웨지우드와 같은 수 공예를 바탕으로 하는 도자 공장의 이미지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쳤으며, 이후의 많은 도예가 들과 비평가들에게 웨지우드의 산업도자 공정을 기계공업의 대량생산과 연관시킴으로써 부정 적인 편견을 만들었다. 다음은 니콜라우스 페브스너(Nikolaus Pevsner)가 지은 『Pioneers of Modern Design』에 나오는 내용이다.

“기계는 산업 제품에서 취향이라는 것을 몰아냈고, 1850년에 이르면 겨우 살아남은 장인들까 지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산업발달과 기계의 발명 때문이라는 피상적인 해석이 옳다... 그런데 왜 기계는 예술에 있어 결국 재앙적인 존재가 되었는가?(Pevsner, Nikolaus., 1960, pp.42-43)”

니콜라우스 페브스너가 주장한 위의 말은 사실상 웨지우드 공장에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비록 웨지우드 공방이 공장으로 변화하면서 많은 테크놀러지의 발전이 있었지만, 에이 드리언 포티가 지적했듯이 “웨지우드의 도자기 제조 과정에서 기계적인 혁신(Forty, Adrian., 1992, p.37)”은 없었다. 당시 웨지우드 공장의 장인들은 기원전에 만들어진 물레보다 발전된 형태의 물레와 석고 캐스팅 기법을 이용하고 있었고, 다른 산업 공장의 제품과 비교해 보았을 때 기계나 대량생산 체제가 조악한 디자인을 만들어 낸다거나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기 힘들었다. 결론적으로 도자공예 분야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물레와 거푸집 이라는 도구 테크놀러지를 통해 대량생산을 이뤄냈고, 유럽인들은 동양의 자기를 만드는 비법 을 알기 위해 수세기 동안 재료공학 테크놀러지에 매진했다. 그리고 산업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노동의 세부적인 분업과 유약, 전사지, 석고 캐스팅과 같은 테크놀러지의 발전을 이루어 냈다.

이러한 도자 공예의 역사는 타 분야의 공예와 차별화되는 친테크놀러지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 다. 주목할 부분은 20세기 바우하우스 시대에 와서 도자공예의 친테크놀러지 성향이 바우하우 스의 이념을 현실화할 수 있는 가장 실천적인 분야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도 ‘석고 캐스팅’이라는 테크놀러지의 역할이 중심이 되었다.

2.2. 바우하우스: 도자공예에서 도자산업으로

1907년 영국의 산업혁명에 자극을 받은 독일에서 더욱 품질 좋은 공업 제품을 만들기 위해 헤르만 무테지우스(Hermann Muthesius, 1861~1927)는 독일공작연맹(Deutsche Werkbund) 을 결성했다. 그는 윌리엄 모리스에 영향을 받아 예술의 대중화를 추구했지만, 모리스만큼 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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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수공예에 대해 집착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리스의 말기 저서 『Signs of Change』에 기계에 대한 변화된 시각을 학습했기 때문이었다. 즉, “장인과 수공예의 전락의 원인이 기계뿐만 아니 라 산업 생산구조에 있다(Shiner Larry., 2001, p.240)”는 것을 말기에 깨달은 모리스의 전철 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예술과 산업의 조화를 주장했던 독일공작연맹을 계승한 바우하우스는 영국이 겪었던 수공예와 산업 간의 이원론적 대립을 피할 순 없었다. 그것은 마치 모던 디자인을 잉태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었다.

바우하우스는 전후 황폐화된 독일의 주택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재건 하기 위해 ‘표준화’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영국의 웨지우드 도자기 공 장에서 처음 이루어진 표준화처럼 바우하우스의 표준화는 제품에 대 한 고객의 기대와 요구에 정확히 부응하기 위한 산업 디자인의 핵심 적인 개념으로 발전했다. 바우하우스 초대 교장인 발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는 표준화라는 개념 위에 예술과 공예의 통합을 주 장했고, 그의 교육 이념의 실천의 장은 학교가 아닌 유리, 도자, 직물, 금속세공 등의 공방이었다. 윌리엄 모리스의 사회주의 이념에 영향을 받아 예술가와 공예가뿐만 아니라 학생과 교수 사이의 위계와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교수대신 마이스터(Meister), 즉 명인이라는 호칭을 섰다. 마이스터는 공예를 가르치는 공예 마이스터(Werkemeister)와 조형을 가르치는 조형 마이스터(Formmeister)로 구분되었다.

바우하우스의 도예공방은 바이마르(Weimar) 시기(1919-1925) 6년 동안 운영되었지만, 그 짧은 시기에 놀라운 산업 디자인의 역사를 만들었다. 바우하우스 초창기부터 도예공방은 공방 의 장소선정에서부터 기자재까지 많은 난관에 부딪혔지만 마침내 1920년에 도른부르크 (Dornburg)에 독립된 공방을 설립하게 되었다(<Figure6>). 도예 공방의 조형 마이스터는 조 각가 게르하르트 마르크스(Gerhard Marks)였고, 공예 마이스터는 막스 크레한(Max Krehan) 이었다.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공예에 대한 예술적 감성을 강조했던 두 마이스터는 다른 공방 (특히 직물)이 겪어야 했던 전통과 현대, 공예와 산업, 수공예와 기계에 대한 극심한 대립과 충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Connelley-Stanio, Trinity., 2014). 이들은 공동 작업을 주로 했 는데 형태는 크레한이 만들고 그림은 마르크스가 그리곤 했다(<Figure7>). 하지만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이 주도하던 바우하우스 예술의 신비적 표현주의적 경향이 디 스틸(De Still)의 기수인 테오 반 되스부르크(Theo van Doesburg)에 의해서 비판을 받자 1923년 이텐

은 홀연히 사임을 하게 되고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작업을 해온 헝가리 출신의 예술가 나즐로 모호리-나기(Laslo Moholy-Nagi)가 신임교수로 초빙되었다. 그는 기계를 시대의 정신으로 받아들였고, 예술과 테크놀러지의 통합을 강조했다. 당시 정부 지원금으로 학교를 운영해오던 그로피우스에겐 언제나 재정 문제가 학교운영의 걸림돌이 되어 외부 의뢰인의 주문을 받아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부터 그로피우스의 교육방침은 ‘예술

<Figure5> Bauhaus Manifesto, Walter Gropius, 1919, (s) Chris Mullaney

<Figure 6> Max Krehan's Ceramics Workshop in Dornburg, around 1923.

(s) Bauhauskooperation

<Figure 7> Pitcher with Figure Form: Max Krehan/

Painting: Gerhard Marcks, around 1923.

(s) Bauhauskooperation

<Figure 8> Laszlo Moholy- Nagy:Light-Space Modulator, 1930 (s) Sm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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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공예’의 통합에서 ‘예술과 기술의 통합’으로 바뀌었고,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되었다(Kim, JongKyun., 2019). 공예공방에서 대량생산체제로의 이행은 많은 이념 적 충돌과 혼란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러한 혼란 속에서 도예공방은 그로피우스의 이념을 실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은 전통적인 물레보다는 영국의 웨지우드 공방에서 높은 품질 로 대량생산에 성공했던 ‘석고 캐스팅’ 테크놀러지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도예 공방은 교육을 위한 견습 공방과 실험 및 생산 공방으로 구분되었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상품의 원형 제작 과 캐스팅을 모두 석고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1923년 8월 15일부터 19일까지 개최된 바우하우스의 첫 전시에서 유럽 각지에서 1만 5천명에 이르는 방문객들이 찾아와 성황을 이루 었다. 모던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는 바우하우스가 만든 최초의 시범주택(모델 하우스) 을 보면서 “건축은 사람이 주거하는 기계”라고 언급했고, 그로피우스 는 “수공예 기반의 독일 산업은 기계 기반의 대량생산 체제로 전환”해 야 하며, “의욕적인 대기업과 연계를 추진”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Kim, JongKyun., 2019, p.56). 무엇보다 이 전시회에서 도자 공방 이 제작한 모던하고 단순한 도자 제품은 큰 인기를 얻었으며 많은 주문과 주목을 받았다(<Figure9>). 당시 다른 공예 공방에서 실현 하기 힘들었던 수공예에서 산업디자인으로의 이행을 도예 공방이 실 현한 것은 도예분야뿐만 아니라 산업 디자인에서도 매우 주목할 성과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공 이 단순히 새로운 산업기계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석고 캐스팅이라는 전통적 테크놀러지를 바탕을 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도자공예의 자생적 친테크놀러지 성향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에 들어 도자 공예는 공방도자(Studio Pottery)와 산 업도자(Industrial Pottery)라는 두 방향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공방도자는 공예의 예술성을 추 구하면서 유일무이한 작품을 만드는 예술 도자와 물레나 석고캐스팅을 이용해서 실용적인 도 자기를 만드는 실용 도자로 나눠지게 되었다.

2.3. 20세기 공방도자와 3D 프린터 시대의 도예가

마르크스가 그로피우스와의 이념적 갈등으로 바우하우스를 떠나자 그의 제자인 오토 린디히 (Otto Lindig, 1895-1966), 테오도르 보글러(Theodor Bogler, 1897-1968), 휴베르트 그리 멜트(Hubert Grimert) 등은 바이마르 시대 이후 공방을 운영하거나 산학협력을 통해서 독일의 기능주의 디자인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비록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가 그들의 시도를 “지 나치게 지적인 노력(Leach, Bernard., 1986, p.125)”로 폄훼했지만, 버나드 리치, 하마다 쇼지 등과 함께 20세기 공방 도자(studio pottery)에 큰 영향을 주었다.

주지하다시피 영국의 버나드 리치의 공방도자는 민예운동의 창시자인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 의 이론에 빚지고 있다. 윤소림은 그의 박사 논문 「버나드 리치의 공방공예 연구: 공동체적 실천을 중심으로」에서 리치의 공방공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직관적인 태도에 기초한 협단의 공동체적 제작방식을 끌어들이면서도 동시에 자유주의에 기초한 서양의 제작활동을 가능하게 했다(Yoon, SoRim., 2019, p.6)”고 평가하고 있다. 결국 도자공예가가 협단을 통해 공동작업, 분업, 생산, 교육하는 시스템은 바우하우스의 도자공방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야나기 무네요 시가 제안한 도공의 무심의 미와 익명성을 현대 예술가들의 개인적 욕망과 결합시킨 독특한 방식이 큰 차이점이었다(Yanagi, Muniyoshi., 1988). 버나드 리치의 공방도자는 미국의 공방 공예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고, 순수예술을 추구하는 공방도예가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계 기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운동에 대항해 야기 가즈오, 스즈끼 오사무, 야마다 히카루 등이 주도한 쇼데이샤(走泥社) 운동이 일어났다. 이로써 도자미술은 흙과 불이 라는 물질의 순수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추상조각의 형태를 띠는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한편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석고 캐스팅을 이용하는 도예가들은

<Figure 9> Theodor Bogler‘s Mocha Machine, (s) Bauhauskoop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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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도자와 공방도자 분야에서 이제야 새로운 ‘기계기술’의 발전을 이루어 내고 있었다. 특히 전기 물레, 전기 가마, 유약, 소지, 작업 라인 등의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전자기계의 발전에 힘입어 작업의 편의성과 대량생산의 효율성이 더욱 높아졌다. 특히 웨지우드, 로얄 코펜하겐, 레녹스, 마이센 등의 유럽 도자회사들은 석고 캐스팅을 바탕으로 한 작업공정들의 기계화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공방도자 분야에서는 여전히 석고 캐스팅 중심의 수작업이 이루어 졌다. 특히 헝가리계 미국인 인 에바 자이젤(Eva Zeisel, 1906-2011)은 바우하우스 시기의 기계미학이 추구했던 기하학 적인 선을 피하고, 인간의 감성을 느끼고 관객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유기적인 디자인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Zeisel, Eva., 2004). 에바는 야나기 무네요시가 공예의 본질로 언급했던

“미와 다량생산(Yanagi, Muneyoshi., 1994/1928, p.54)”의 추구에서는 결을 같이 했지만, 무 명이 아닌 한 명의 예술디자이너로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이후 석고 캐스팅을 이용하는 많은 공방도자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미국 출신의 히더 메이 에릭슨과 일본 출신의 히로에 하나조노가 대표적이다.

<Figure 10> Eva Zeisel, (s)Artist’s Homepage

<Figure 11> Heather Mae Erickson, (s)Artist’s Homepage

<Figure 12> Hiroe Hanazono

(s)Artist’s Homepage

<Figure 13> Eva Zeisel’s Plaster mold (s)Artist’s Homepage

<Figure 14> Heather Mae Erickson’s Plaster Prototype, (s)Artist’s Homepage

<Figure 15> Hiroe Hanazono’s Wood Prototype, , (s)Artist’s Homepage

히더 메이 에릭슨과 히로에 하나조노는 제의적(祭儀的) 디자인을 통해서 음식을 먹는 행위를 하나의 의식(Ritual)적 행위로 간주했다. 두 작가 모두 작품의 원형을 석고나 나무로 직접 제작 했는데, 18세기 웨지우드 공방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것은 매우 어렵고 지난한 수공적 과정이었 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석고 캐스팅 테크놀러지를 기계기술의 대량생산과 연관시켜 수공 예와는 대립적 관계로 보는 작가와 비평가들의 오인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서 덴마크 출신의 보딜 만츠(Bodil Manz, 1943~), 영국의 도예가 사샤 워델(Sasha Wardell), 벨기의 피엣 스탁만스(Piet Stockmans, 1940~)의 등장은 석고 공정이 가져다주는 단조로운 결과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예술적 방향으로의 확장을 가져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보딜 만츠는 투광성이 좋은 슬립(이장, slip) 매우 얇게 캐스팅해서 소성한 후에 기하학적 문양이 있는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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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붙여서 건축적인 공간이 드러나는 작품을 보여주었고, 피엣 스탁만스는 석고 몰드 안에 형성된 얇은 슬립을 변형시켜 비정형적인 형태로 만든 후에 염화 코발트라는 안료를 발라 고온 으로 소성하는 방식으로 석고 캐스팅의 예술성을 부각시켰다. 사샤 워델은 색이 다른 슬립을 석고 몰드에 부은 다음 표면 내부를 조각해서 내부의 다양한 색의 층을 보여주는 다중 캐스팅이 라는 방법을 고안해서 후대의 많은 도예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이 이용하는 석고 캐스 팅 테크놀러지는 수공예와의 대립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공예의 예술적 위치로의 상승 욕구에 더 부합했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인간의 테크놀러지 발전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중에서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불리는 3D 프린터는 예술과 디자인 분야에서 그 활용도가 더욱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 다. 3D 프린터라는 새로운 테크놀러지의 등장은 공예 분야에서 지난하게 반복되어온 수공예와 산업, 전통과 현대, 손과 기계라는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직접 흙이나 타 재료를 출력하는 3D 프린터를 차치하더라도 도자 공예분야에서 3D 프린터는 ‘원형 제작의 용이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활용도가 높은 테크놀러지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영국의 웨지우드 공장에서 원형을 만드는 “모델러(Modeller)”의 중요성은 웨지우드가 영국을 넘어 이탈리아에서 원형을 만드는 장인을 초빙해야할 만큼 어려운 난제였다(Forty, Adrian., 1992, p.35). 무엇보다 20세기에 석고 캐스팅을 이용하는 도예가들에게 석고나 나무로 원형을 만드는 일은 여전히 특별한 ‘공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로 여겨져 왔다. 그러면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윌리 엄 모리스가 언급한 것처럼 “공예라는 것이 반드시 비효율적인 시간과 노동을 투자해야만 하는 공력의 산물이어야만 하는 것인가?(Morris, William., 2016, p.126)”.

윌리엄 모리스가 추구한 이상적 장인은 중세 수공예 길드에 소속된 장인이었다. 그들은 지배층 의 강요된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작품의 디자인에서부터 모든 제작과정에 참여해 자유롭게 작 품을 만들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었다. 그러므로 모리스가 생각한 노동은 중세 장인처럼 ‘일 자체에 대한 흥미와 기쁨’을 줄 수 있는 노동이었다. 모리스 말년의 저서 󰡔Signs of Change󰡕를 보면 전성기 시절의 강건한 공예주의자에서 벗어나 기계수용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 담고 있다.

“왜 이성적인 인간이 기계를 사용하는가? 그것은 노동의 수고를 덜기 위해서다... 기계를 사용 한다하더라도 예술의 아우라가 상실되는 것도 아니고, 여가와 즐거운 노동을 얻을 수 있 다.(Morris, William., 2016, p.126)”

말년의 모리스는 자신이 주장한 공예주의의 모순을 인식하면서 기계의 수용을 인정했다. 그러 므로 모리스에게 이상적인 예술이란 장인이 ‘기계 활용’을 통해 노동과 소비시간을 줄여 여가를 얻을 수 있는 행위였다. 그런 면에서 21세기 3D 프린터를 이용하는 영국 출신의 도예가 제이드 크롬프톤은 윌리엄 모리스가 언급한 이상적 장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는 컴퓨터 3D 모델 링 프로그램을 이용해 원형과 거푸집을 디자인하고 3D 프린터로 출력해서 슬립캐스팅한다.

18세기에 수년 동안 익힌 모델링 기술을 가진 장인이 했던 일을 이제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3D 프린터가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무엇보다 크롬프톤의 모델링 작업에

<Figure 16> Bodil Manz, (s)Artist’s Homepage

<Figure 17> Sasha Wardell, (s)Artist’s Homepage

<Figure 18> Piet Stockmans, (s)Artist’s Home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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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단순히 원형을 모델링하는 것이 아니라, 원형의 거푸집을 모델링 (<Figure 17>)해서 석고틀 만드는 과정(<Figure 18>)을 매우 단순하게 한 점이다. 즉, 기존 의 모델링 작업이 원형을 출력한 후에 원형을 다시 석고캐스팅하는 방법을 이용했다면, 크롬프 톤은 원형과 석고틀을 모두 모델링한 후에 3D 프린트로 출력한 원형 거푸집의 틀에 석고액을 부어 다량의 석고틀을 제작한 것이다. 이러한 석고캐스팅 과정은 앞서 언급한 흙이나 타 재료를 출력하기 위해 3D 프린터를 이용하는 작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즉, 인간의 손과 흙의 교감, 흙의 예민한 물성을 통제하기 위한 손의 기교(공력), 기물의 마감처리, 기물의 소성과 유약시유 과정과 같은 도자기 제작의 공예적 경전(Canon)은 21세기 3D 프린터 시대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이처럼 도자공예의 ‘석고 캐스팅’ 테크놀러지는 21세기에 와서도 수공예와 산업, 손과 기계, 과거와 현재의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중용적인 지점에 위치해 있음 을 알 수 있다.

3. 결론

본 논문은 18세기 영국 웨지우드 도자기 공방을 시작으로 19세기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공예운 동, 20세기 바우하우스, 20세기 공방공예운동, 21세기 3D 프린터 시대의 도자공예를 통해 공예 와 테크놀러지의 지난한 대립을 통시적 관점에서 고찰했다. 이를 통해 도자공예는 기원전부터 흙이라는 재료의 특성을 바탕으로 물레과 석고 캐스팅과 같은 테크놀러지를 꾸준히 발전시켜왔 음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산업혁명이 야기한 기계공업이 노동수단을 도구에서 기계로 전환시켰 지만, 도자공방은 여전히 도구 테크놀러지를 바탕으로 예술성과 대량생산의 진작을 가져왔다.

본 연구는 공예와 테크놀러지의 변증법적 융합을 이루게 만든 도자공예의 석고캐스팅 테크놀 러지를 연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슬립 캐스팅 공정은 도구 테크놀러지를 이용하지만 기계 테크놀러지 이상의 효용성을 지니고 있어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도자 공예 분야에서 지속될 수 있었다. 둘째, 18세기에 시작된 슬립캐스팅 테크놀러지는 노동의 분 업화와 단순화를 가져왔지만, 타 분야의 기계적 인간과는 달리 도자 공장 장인들의 전문적인 공력은 공장의 표준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셋째, 이미 알려진 사실과는 다르게 도자공 예와 테크놀러지의 대립은 다른 공예분야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다. 즉, 타 공예분야에서 유난히 반복되어온 수공예와 테크놀러지와의 대립과 충돌은 ‘기계기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데 반해, 도자공예에서 ‘기계기술’과의 마찰은 거의 미미한 수준이었다. 넷째, 석고캐스팅 테크 놀러지를 이용하던 도자공방은 바우하우스 시대 그로피우스가 천명한 공예와 산업의 융합에 가장 실천적인 분야가 되어 모더니즘 디자인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다섯째, 21세기 3D 프린터를 이용하는 도자 공예가들은 원형을 만드는 수고를 크게 덜지만, 여전히 손, 노동, 재료, 공력, 장인정신이라는 도자공예의 경전을 지켜가고 있었다.

위의 결론을 통해 도자공예의 석고캐스팅 테크놀러지는 수공예와 산업, 손과 기계, 과거와 현재 를 이어주는 변증법적 융합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Figure 19> Jade Crompton, Computer 3D Prototype Modelling, (s)Artist’s Homepage

<Figure 20> Jade Crompton, Computer 3D Prototype Mold

Modelling, (s)Artist’s Homepage <Figure 21> Jade Crompton, Real Cast Object,

(s)Artist’s Home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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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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