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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_서영애 박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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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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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금강산전기철도에 의한 철원지역 근대 경관과 흔적 Modern Landscape and Traces of Cheorwon Area by Kumgangsan Electric Railway 서영애* ․ 박한솔**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 /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과정 Seo, Young-Ai* ․ Park, Hansol** *Director, ESOO Landscape Architects **Ph.D. Candidate, Interdisciplinary Program in Landscape Architecture, Seoul National University. 국문요약 본 연구는 철원역과 금강산전기철도가 가진 과거의 가치, 의미, 현재 남아 있는 흔적을 탐색하 여 미래의 가능성을 진단했다. 2장에서는 문헌과 일제강점기 기록을 통해 철원역과 금강산전기철 도의 물리적인 변화를 파악하고, 신문기사와 문학작품을 통해 근대경관체험의 의미를 고찰했다. 3장에서는 남아 있는 교량, 폐허, 농로, 도로, 지형 등을 통해 남북분단 이후의 경관 변화를 탐색 했다. 연구의 결론과 시사점으로는 첫째, 철원역과 금강산전기철도의 흔적은 선적인 경관자원으 로 평가하고 관리해야 한다. 둘째, 철원역과 금강산전기철도는 한반도의 특수상황인 분단의 결과 물로서 무형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식하고 다루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복원을 지양하고 유산적 가치를 미래세대에 전달해야 한다. 셋째, 통일을 여는 매개체로써 금강산전기철도 복원사업의 가 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남과 북이 협력하여 물리적인 연결을 넘어 전쟁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관광 자원화에 관한 연구의 확장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평화의 거점으로서 철원역과 금강 산전기철도의 가치를 인식하여 금강산전기철도의 복원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는데 필요한 실마 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values and meanings in the changing landscapes of Cheorwon Station and Kumgangsan Electric Railway, from the present to future possibilities. Chapters 2 will examine the meaning of modern landscape, experienced through the physical changes in Cheorwon Station and Kumgangsan Electric Railway, through newspaper articles, the literature, and records of Japanese occupation of the area. In Chapter 3, the remaining bridges, ruins, farms, roads, and terrain will be used to explore landscape changes in Cheorwon after the North-South division. The conclusions and implication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the traces of Cheorwon Station and Kumgangsan Electric Railway must be re-evaluated and managed as a linear landscape resource. Second, they should be recognized and treated as an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resulting from the division of the Korean 이 논문은 2019년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재원으로 통일기반구축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결과물임. 연구자에 의한 사진 촬영은 별도로 출처를 명기하지 않았음.. Corresponding author: Park, Hansol, Interdisciplinary Program in Landscape Architecture,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08826, South Korea, Tel.: +82-2-880-5660, E-mail: [email protected]. 34.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2) 금강산전기철도에 의한 철원지역 근대 경관과 흔적.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Peninsula. Third, the value of the Kumgangsan Electric Railway Restoration Project should be reassessed as a vehicle for peace. There is a need for an expanded study of tourism resources, with the message of war and peace, beyond physical linkages.. 주제어 : 철원, 기억, 폐허, 경관자원 Keywords : Cheorwon, Memory, Ruins, Landscape Resource. 1. 서론 남북분단 전까지 철원은 번성한 도시였다. 1914년 경원선으로 인해 철원역이 부설 되고 1923년 철원평야가 개척되면서 1924년 전국적으로 소작농 약 1,500호가 철원에 집단이주했다. 급격한 인구 증가로 1935년에는 강릉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가진 도시 이자 강원도청 이전을 추진할만한 중요 도시가 되었다(김영규, 2016). 철원에서 출발 하여 내금강까지 이어지는 금강산전기철도1)는 1924년 일부 개통되어 1931년에 완성 되었다(김지영, 2019). 당시 기사에는 “경원선의 중심이자 금강산전기철도의 기점으 로 더욱 번영하게 된 철원”, “대도시 철원”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동아일보, 1934. 6.12.).2)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추진된 남북철도 연결사업은 경원선, 경의선, 동해 북부선, 금강산선(금강산전기철도), 총 4개의 축으로 진행되었다. 이중 경원선 복원사 업은 광복 70년이 되는 2015년을 맞아 통일을 준비하고 유라시아의 대륙 철도망 연결 을 위한 사업이었다(김송주, 2015). 한국철도시설공단은 2015년 8월 5일 총 사업비 1,508억 원 규모의 경원선 남측구간인 백마고지역∼월정리역 9.3㎞ 구간의 단선철도 복원공사를 착공했으나 2016년 중단된 채 공사재개를 기다리고 있다(강원일보. 2019.07.02). 민간인통제선 내 경원선 복원은 금강산전기철도의 시발점인 철원역을 복 원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경원선 복원사업 착공과 더불어 금강산선(금강 산전기철도) 및 동해선 철도연결을 위한 사전기술조사용역도 진행했다(김송주, 2015). 최근 남북관계 변화 속에서 행정안전부는 2030년까지 13.2조 원을 투입하여 접경지 역을 한반도의 생태, 평화벨트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을 발 표했다(행정안전부, 2019). 철원군도 DMZ 생태평화공원의 안보관광 코스를 개방하기 로 제3사단과 협력했다(강원도민일보, 2019). 남북 정상회담으로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철원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지름길인 금강산전기철도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경원선의 중심이자 금강산전기철도의 시발점이었던 철원역은 단절된 역사를 연결하는 상징장소이다.. 1) 철원역에서 내금강역까지 노선의 금강산전기철도의 명칭은 기사나 자료에 따라 금강산철도, 금강산전철, 금강산선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본 연 구에서는 자료에 명기된 명칭을 우선으로 인용하며, 경원선, 동해선 등의 노선중 하나로 표기할 때는 ‘금강산선’, 그 외에는 ‘금강산전기철도’로 통일 한다. 2) 경원선의 중심저요 철원의 과문일 뿐아니라 금강산전철의 기점으로 근래 승강객의 격증하는 신흥도시인 철원에 철원번영회와 작년 이래 수차 철도 당국에 진정한 결과로 위선 과선교와 유개홈을 신설케되여 그간 사만오천원의 공비를 드려 최신식 설계로 공사중이던바 지금에 다 준공되엇으므로 번영회의 발기로 지난 구일오후한시 철원역 식당에 관민유지 백여명이 모여 성대히 낙성축하연을 개최하엿다. 그 모던식 웅장한 자세는 철원의 관 문에 우뚝 솟아 오가는 손님에게 대도시인 철원을 말하여 주는 동시에 일반 승강객의 선로횡단으로 생기든 위험은 이로써 일소되엇다 한다(동아일 보, 1934 6.12)..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35.

(3)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서영애 ․ 박한솔. <그림 1> 1939년 한반도 철도 현황 (출처: 朝鮮鉄道状況 外秘. 第30囘 재구성). <그림 2> 연구의 범위. 금강산전기철도의 종착역인 금강산관광에 관한 연구(서기재, 2009; 신성희, 2016; 원두희, 2011; 2017; 유승훈, 2009), 문학가들에 의한 금강산 기행문에 관한 연구(구준 모, 2016; 서영채, 2004; 유정선, 2018; 이지훈, 2017)는 활발하지만, 철원과 금강산전 기철도에 관한 연구는 미진한 상황이다. 일제강점기 철원에 관한 연구로는 ‘구철원시 가지의 장소기억 재구성’(김지나 외, 2017)이 있으며, 금강산전기철도에 관한 연구도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김범수 외, 2015; 정만기, 2018). 본 연구는 철원역과 금강산전기철도에 관한 기록과 남아있는 흔적이 앞으로 다가올 통일 시대의 변화에 어떤 가치를 가지며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한때 번성했던 대도시 체험과 금강산으로 가는 철도여행은 근대성을 체험 하는 당대의 인식적 지평의 확장을 가져왔으나 남북분단으로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잃었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화려했던 시대의 가치와 의미를 탐색하고 현재의 흔 적을 추적하여 미래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연구의 범위는 철원역과 금강산전 기철도 구간이며, 시간적 범위로는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로 설정하되, 현재 접근 가능한 범위인 남방한계선까지로 한정한다. 통일 시대의 거점으로서 철원역의 위상과 금강산전기철도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향후 금강산전기철도의 복원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는데 필요한 실마리가 되고자 한다. 연구의 내용과 방법은 다음과 같다. 2장에서 식민지기 철원역과 금강산전기철도에 대한 문헌, 신문기사, 사진 자료 등을 고찰하여 철도부설로 인한 도시의 변화를 탐색. 36.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4) 금강산전기철도에 의한 철원지역 근대 경관과 흔적.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한다. 3장에서는 신문기사, 잡지, 기행문 등을 통해 관광과 철도에 의한 근대성의 경험 에 주목하여 금강산전기철도의 경관적 의미를 고찰한다. 4장에서는 현장답사를 통해 현재 철원역의 현황과 금강산전기철도의 흔적을 추적한다. 일제강점기 지도와 현재의 항공사진을 바탕으로 변화양상을 탐색하고 구간별 특성을 파악한다. 5장에서는 연구 를 요약하고 철원역과 금강산전기철도의 의미와 경관 변화에 관한 연구결과와 시사점 을 서술한다.. 2. 철원역과 금강산전기철도, 근대 경관의 체험 2.1 철원역과 금강산전기철도 일제강점기 철원은 지금의 철원과 비교할 수 없는 대도시였다. 1930년대 철원읍에 는 총 12,600여 명이 거주하였고, 1940년대 철원읍 구시가지에만 36,000여 명으로 거주 인구가 급증하고(김범수 외, 2015) 1943년 철원군 인구는 10만 명을 넘었다(김지나 외, 2017). 이는 현재 철원군의 인구인 45,590명3)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대도시 철원에는 지방법원지청, 도립의원, 금융조합, 은행 등 주요기관이 밀집하였다. 1926년 강원도청 철원 이전 운동이 추진되었고 실제로 광복 직후 1년간 강원도청이 철원에 위치했다(김범수 외, 2015)는 것으로 당시 철원의 위상을 짐작해볼 수 있다. 철원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중심이자 경원선의 중간 기착지이며 천수답이 많은 지 역이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철원을 식량 생산기지로 삼고자4) 1923년 평강군에 봉래 호를 조성하고 철원 이주정책을 실시했다(철원문화원, 2009). 1924년 전국에서 차출된 1,500호 농민이 철원에 있는 일본인 소유의 농장에 집단이주한 것을 시작으로 철원의 소작농 이주민은 점차 늘었다(김범수 외, 2015; 김영규, 2016; 정승진, 2019). 대도시 철원의 시작은 철도였다. 조선총독부는 물자수송 교두보 확보를 위하여 서 울에서 원산까지의 경원선을 부설하였고 철원역은 1912년 연천∼철원 구간 개통과 함 께 설치되었다(조선총독부 고시 제53호 1912.10.07.). 철원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철원 역에서 경원선을 타고 서울과 일본으로 이동하였다. 철원은 농업 식민도시로, 철원역 은 물자수송의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경원선은 일본이 북방의 물자 반출을 목적으 로 1914년에 부설한 용산에서 철원, 원산까지 이르는 223.7km의 철도이다(김범수 외, 2015). 일본이 부설 전부터 경원선을 군용철도임을 공표하였다는 점에서 경원선의 초 기 목적은 자원수탈과 대륙침략이었다. 교통의 발달은 철도역을 가진 도시의 발전이 라는 결과를 만들었으며 철원역을 중심으로 역세권을 형성했다.. 3) KOSIS의 2019년 7월 주민등록인구 기준이다. 4) 철원의 중앙수리조합 창설 이전 󰡔사업계획서(事業計劃書)󰡕(1922)에서는 철원평야의 지리적 이점을 소개한다. “江原道 平康, 鐵原 二郡이 자랑하는 平 野는 道內에 하나밖에 없는 드넓은 高原으로 그 면적이 일만 수천 町步에 달하는데 북위 38도 15분에 위치……. 평균 고도가 해발 180m 내지 380 ∼390m 사이에 있으며 기온이 다소 낮더라도 여름철의 평균 온도가 25℃를 나타내고 주야 일교차가 10℃를 넘지 않으므로 벼농사에는 지장이 없 다. 다만, 日出, 關山, 龜尾 등 早生種, 中生種 벼를 재배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토지는 高原이므로 기복이 많지만 논을 만드는 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토지는 玄武巖이 풍화된 찰흙 양토로서 표토는 깊고 부식질이 적은 편이나 척박한 땅은 아니다.” (정승진, 2019).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37.

(5)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서영애 ․ 박한솔. <그림 3> 철원역. <그림 4> 철원역 경원선 개통기념식(1912.10.21.). (출처:철원의 변천사, 철원문화원, 2009). (출처:朝鮮鐵道四十年略史조선총독부 철도국, 1940). 철원의 규모가 점차 성장하면서 주로 물자이동으로 사용하던 경원선이 관광열차로 활용이 되기 시작했다. 경원선을 타고 철원의 궁예 도성, 안면의 석왕사, 원산해수욕장 으로 여행을 갔고 신풍리, 삼방으로 스키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하정희, 2015). 금강 산 또한 1914년 경원선의 개통 후 1915년 외금강 금강산 호텔이 운영되었고(원두희, 2011), 최초 금강산 단체 여행인 매일신보 주최 금강산 탑승회가 열리는 등(윤소영, 2008; 원두희, 2011; 원두희, 2017) 근대관광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림 5> 구철원 시가지 모습. <그림 6> 구철원 상가. (출처:철원의 변천사, 철원문화원, 2009). (출처:철원의 변천사, 철원문화원, 2009). 금강산전기철도는 철원에서부터 금강산 내금강까지 116.6km의 철도로, 최초의 관 광 철도이자 사철이다. 1924년 8월 철원에서 김화까지 최초 개통을 시작으로 1931년에 금강산전기철도의 전 구간인 철원에서 내금강까지 완공, 개통되었다(동아일보, 1931.4.3.). 1910년대까지는 원산이 명실상부한 금강산관광 거점도시였으나 금강산전 기철도 운영으로 철원이 원산과 함께 금강산관광 거점도시로 성장했다. 금강산전기철 도의 유람객 수는 1927년 종점이 창도역이였을 때 1,752명이었지만 내금강역까지 확 장되자 1930년 11,220명, 1931년 15,219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金剛山電氣鐵道株式會 社, 1939). 지속해서 늘어난 금강산전기철도 이용객 수는 철원 유동인구의 급증과 관 광 거점도시로의 성장을 의미한다. 금강산전기철도는 철원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철원은 쌀의 명산지였는데 금강산전 기철도의 개통으로 인해 쌀과 대두의 집산지로 더 유명해졌는가 하면(동아일보, 1933.12.13.)5) “경원선의 중심이자 금강산전기철도의 기점으로 더욱 번영하게 된 철 원”, “대도시 철원”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동아일보, 1934.06.12).6) 경원선과 금강산 5) 철원은 중앙어운 두수리 조합의 혜택으로 조선에 유수한 쌀의 산지가 되엇고 대두는 재래로 명산지로 되어잇다. 근자에 와서는 더욱이 금강산전기 철도의 개통으로 인하야 쌀과 대두의 집산지로 저명하게 되엇다.. 38.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6) 금강산전기철도에 의한 철원지역 근대 경관과 흔적.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전기철도의 분기점인 철원역은 80여 명의 역무원이 근무했고 연 이용객도 41만6천여 명에 달해 서울역 다음으로 큰 역이었다. 붉은 벽돌 2층짜리 건물인 철원역에는 매 점⋅휴게실 등 부수시설에 당시로는 보기 드문 ‘금강산행전’이라는 네온사인과 구름다 리 시설까지 갖추어져 그 자체로 명물 구실을 하였다(중앙일보, 1989.02.03.). 철원역 앞에는 상업 가로가 형성되었는데 그중 많은 상점이 금강산 관광객을 대상 으로 장사를 하였다. 경원선을 타고 철원에서 내린 금강산 관광객은 철원에서 하룻밤 을 머문 뒤 첫 전차를 타고 금강산을 가곤 하였기에 34개의 여관, 10개의 요리옥, 51개 음식점 등의 접객업소가 밀집하였다(철원문화원, 2009). 특히 금강산전기철도 주식회 사에 의해 1924년부터 전등이 보급된 철원의 화려한 밤거리(동아일보, 1923.11.17)는 관광객에게 더욱 매력적인 장소였다. 1936년 제작된 조선도별 현세지도에는 철원의 태봉도성이 관동팔경, 청평사, 월정사, 장릉, 건봉사 등과 함께 일제가 인정한 강원도 관광명소임을 명시하고 있다(강원도민일보, 2015.08.10). 이를 통해 철원이 금강산관 광을 위한 관문이자 자체적으로도 관광의 중심지였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림 7> 금강산전기철도와. <그림 8> 구름다리와 유개홈. 철원역의 ‘금강산행전’. (출처: 朝鮮鐵道四十年略史, 조선총독부 철도국, 1940). 네온사인 (출처: 철원의 변천사, 철원문화원, 2009). 2.2 금강산전기철도에 의한 근대 경관 체험 근대문인들을 중심으로 1920-30년대에 국토의 표상을 창출하기 위한 다수의 국토 기행문이 출현하였다. 이중 금강산은 20세기 초 여행의 형태와 목적이 변화하는 등 성 격이 점차 변화하면서 다양한 인식의 스펙트럼을 형성했다(유정선, 2018). 첫 구간이 개통된 1914년 매일신보에는 “금강산 구경하기가 썩 편리, 기차에 자동차까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으며(매일신보, 1914.4.28.) “차창을 열어놓고 마음대로 바람이 들 어와도 연기가 나지 않으니 여간 상쾌한 것이 아니다.”라고 전기 기차의 쾌적함을 묘 사한 기사도 눈에 띈다(정내동, 동아일보 1939.9.16.). 1914년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에 는 경원선과 새로 개통되는 기차와 도로의 수리로 인해 금강산을 여행하기 좋아졌다 고 하면서 교통수단의 발달로 다양한 풍경 체험이 가능해짐을 전하고 있다(매일신보, 1914.4.28.). 6) 경원선의 중심저요 철원의 과문일뿐아니라 금강산 전철의 기점으로 근래 승각객의 격증하는 신흥도시인 철원에 철원번영회와 작년이래 수차 철도 당국에 진정한 결과로 위선 과선교와 유개홈을 신설케되여 그간 사만오천원의 공비를 드려 최신식 설게로 공사중이던바 지금에 다준공되엇으므로 번영회의 발기로 지난 구일오후한시 철원역식당에 관민유지백여명이 모히여 성대히 낙성축하연을 개최하엿다. 그 모던식 웅장한 자세는 철원의 관 문에 우뚝 솟아 오가는 손님에게 대도시인 철원을 말하여 주는 동시에 일반 승강객의 선로횡단으로 생기든 위험은 이로써 일소되엇다 한다..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39.

(7)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서영애 ․ 박한솔. 김도학은 기행문에서 금강산전기철도가 개통되면서 철원에서 기차를 갈아타는 여 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1931년 당시 대구 조선민보 기자였던 김도학은 철원을 통 해 내금강에서 해금강으로, 다시 외금강으로 10박 11일 동안 금강산 대부분을 구석구 석 돌아보고 쓴 일기체 형식으로 적은 󰡔금강산유람기󰡕를 출간했다. 그는 7시 48분 서 울역 출발해서 10시 35분 철원에 도착한 후 금강산전기철도로 갈아타서 2시에 창도리 역 하차한 후 철도국 자동차로 장안사 입구 도착했다(김도학, 1999). 기차를 갈아타고 철원을 떠나면서 보이는 경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느낌을 표현했다. “철원에서 즉시 전철을 갈아타고 10시 28분, 철원을 떠나 금강산 입구로 향했다. 도 중 철로가에 생생히 보이는 논들은 모두가 신개간지였으며 산판 같은 것도 대개가 화 전으로 되어 가고 있었다. 더구나 산이 높은 산이 없고 대개가 들판에 경사가 져 있으 므로 개간의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김도학, 1999: 32-33). 이광수는 두 차례 금강산 다녀왔다. 그는 󰡔금강산유기󰡕를 1922년 3월부터 8월까지 잡지 󰡔신생활󰡕에 연재했으며 두 번째 여행까지 포함해서 1924년 신문사에서 책으로 출간했다(이광수, 1921:5-7). 경원선을 타고 철원 들판이 보이는 경관과 지형을 세밀 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철원에 도착해서는 태봉국을 소개하며 ‘황망한 초원’ 가운데 있 었던 대제국을 그리워한다. 철원을 지나면서는 쓸쓸한 고원지대의 경관을 노래하고 있다(이광수, 1921:17-20). 최남선의 󰡔금강예찬󰡕이 나왔던 시기는 금강산전기철도의 1차 개통 후로 보인다. “금강산전기철도는 아직 창도까지 밖에 개통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자동차를 갈아타고 가는데, 갈수록 협곡이 깊어지고 고개가 높아지는 속으로 무릇 1백 리를 달 려서 묵파령이란 높은 고개를 넘습니다.”라고 여정을 묘사하고 있다(최남선, 2000: 41). 그는 구체적으로 기차, 전차, 자동차 등을 이용해서 금강산으로 가는 여행이 손쉬 워진 점을 신문물로 일대 사건이라고 경탄한다. 다양한 탈 것을 갈아타며 가는 여정을 유형화해서 구분하여 각 여정의 장단점을 비교하기도 한다(최남선, 2000: 35-36). 현진건은 금강산 여행기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며 구체적으로 일정과 감회를 서술하 고 있다. 그는 일요일부터 화요일 오전까지 무박 3일간의 관광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 여준다(현진건, 동아일보, 1935.8.18). 또 금강산전기철도를 타고 가면서 전기철도에 대한 장점과 특성에 대해서도 묘사하고 있다. 전기철도가 매연이 없으니 훨씬 쾌적하 고 상쾌하고, 기존 기차와 비슷한 줄 알았으나 서울에서 타고 다니던 전차와 비슷하다 고 표현했다. 서울의 전차와 다른 점으로는 화물차를 단것과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점이라고 묘사했다(현진건, 동아일보, 1935.8.20.). 이 밖에도 정지용은 조선일보사, 동아일보사의 후원으로 1936년과 1937년에 금강산 을 두 번 다녀온 후 시와 산문으로 감회를 적었다. 그는 기차 안에서 승객으로서의 공 간 체험을 시의 소재로 다루고 있다. 기차에 탑승하여 빠르게 지나쳐 가는 창밖의 풍 경과 멀어져 가는 출발지 등에서 오는 소외의 정서가 슬픔을 유발하기도 하고, 이 모 든 것으로 빠르게 멀어지는 것은 여행의 자유를 만끽하게 해주는 심정적 가벼움을 느 끼기도 했다. 다소 상반된 정서를 갖게 되는 것은 기차의 속도감으로부터 유발된 것으 로 보인다(정수연, 2017).. 40.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8) 금강산전기철도에 의한 철원지역 근대 경관과 흔적.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3. 철원역과 금강산전기철도의 흔적 3.1 한국전쟁 이후 철원역의 변화와 흔적 광복 이후 철원역은 소련 군정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의해 운영되었다. 한 국전쟁으로 인해 1950년 6월 25일부터 사용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되었다. 지적도상 철원역은 민간인통제선 이북에 철도로 지정되어 있으며(그림 9, 10참조) 일부 철로와 승강장이 남아있다. 승강장에는 파손된 채 남아 있는 역명표와 승강장의 통표걸이를 관찰할 수 있다. 철원역 주변은 농지로 사용되고 있으며 접근로는 비포장도로로 방치 되어 있다(그림 11참조). 철원역의 역세권이었던 노동당사에서 얼음창고까지의 도로 는 정비되어 철원의 근대문화거리로 관리⋅운영되고 있다(그림 12참조). 근대문화거 리는 고석정과 백마고지역 평화관광(구, 안보관광)를 신청하여 방문할 수 있으나 철 원역은 정식 관광 코스에 포함되지 않는다. 철원역의 방문은 담당 해설사에게 별도 요 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철원군 관광문화과). 단, 2019년 현재 토요일마다 노동당사 앞에서 열리는 DMZ마켓에서는 사전예약이 필요 없는 투어(짚풀마차)가 철원역까지 진행하고 있다. 철원역 주변은 1988년에 철의 삼각지 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제2땅굴, 노동당사, 월정리역 등과 함께 정비한 바 있다((사)의정부시향토사연구회, 2001). 현재는 경원선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다. 2012년 11월 기존 신탄리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연장을 시 작으로 2015년 남북분단 70년을 기념해 경원선 백마고지에서 월정리역(군사분계선) 까지의 복원공사를 시작했다(연합뉴스, 2015.06.28). 경원선은 기존 경원선에서 동쪽 으로 이동하여 복원될 예정이다(그림 9, 10참조). 기존 철로가 궁예토성 터를 가로지 르고 철새 도래지 등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림 9> 과거 철원역과 철도. <그림 10> 현재 철원역과 철도. (출처: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 위 표기, 1938). (출처: 지적도 위 표기, 국가공간정보포털, 2019). <그림 11> 철원역 현황. <그림 12> 근대문화거리 흔적. (출처: 주신하 촬영, 2019). (출처: 주신하 촬영, 2019).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41.

(9)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서영애 ․ 박한솔. 3.2 한국전쟁 이후 금강산전기철도의 변화와 흔적. <그림 13> 연구 범위와 구간 설정 (출처: Google Earth 위성지도 위 표기). 금강산전기철도는 1944년 10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창도∼내금강 사이의 철도가 철거되면서 운행이 중단되었다. 철원역과 사요역이 있던 위치는 민간인통제선 이북이 며, 동철원역, 동송역, 양지역의 위치는 민간인통제선 이남으로 경계를 따라가고 있다. 이길역, 정연역, 유곡역의 노선은 다시 북쪽으로 진행되어 민간인통제선 이북에 위치 한다. 금곡역 구간은 남방한계선 이북으로 비무장지대에 위치하여 현재 접근이 불가 능하다. 김화역 구간에서 다시 남쪽으로 향하여 민간인통제구역으로 이어지다가 광삼 역 구간부터는 군사분계선을 넘어간다. 본 연구의 구간은 경계와 접근성에 따라 설정 한다. 구간 Ⅰ(철원역∼사요역∼민간인통제선), 구간 Ⅱ(민간인통제선∼동철원역∼동 송역∼양지역∼민간인통제선), 구간 Ⅲ(민간인통제선∼정연역∼유곡역∼남방한계 선), 구간 Ⅳ(남방한계선∼김화역∼남방한계선)로 설정한다(그림 13참조). 3.2.1 구간 Ⅰ-Ⅱ의 현황. <그림 14> 구간 Ⅰ-Ⅱ 현황 (출처: Google Earth 위성지도 위 표기). 42.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10) 금강산전기철도에 의한 철원지역 근대 경관과 흔적.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구간 Ⅰ(철원역∼사요역∼민간인통제선)의 출발점인 철원역은 철로가 일부 남겨져 있다(그림 14참조). 철원역 부지를 넘어서 사요역까지는 농로로 바뀌었다(그림 15참 조). 사요역이 있던 부근에 제사공장지의 폐허가 존재한다. 사요역 앞에 위치했던 제 사공장지는 종연방직주식회사 철원공장으로 명주실을 생산하여 외국에 수출하던 공 장이다. 1936년 철원읍지에 의하면 당시 공장 종업원은 550명에 달하였던 큰 규모의 공장이었다. 목조건물이었던 제사공장은 현재 진입문주, 기단, 벽 일부가 남아 있는 상 태이다(그림 16참조). 사요역에서 민간인통제선까지의 노선은 지뢰지대로 출입할 수 없지만, 위성사진에서 길의 흔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5> 철원역∼사요역 사이 농로. <그림 16> 제사공장지. <그림 17> 사요역에서 동철원 방향의 농로. <그림 18> 대교천 교량. 구간 Ⅱ(민간인통제선∼동철원역∼동송역∼양지역∼민간인통제선)는 남한에 남아 있는 흔적 중 유일하게 접근이 자유로운 구간이다(그림 14참조). 민간인통제선에서 동철원역 구간은 농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17참조). 월화리 마 을로 변화한 구간에서는 농지 사이에 둑 형태로만 남아 있다. 둑도 농지로 끊어지다가 대교천의 한다리 근처에서 교량의 흔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교량의 상부 구조물은 유실되고 하부구조물만 남아있다. 구조물로 노선을 예측할 수 있었으 며, 교량과 연결되는 언덕의 지형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그림 18참조). 교량을 지나 농로로 이어지던 노선은 나지막한 산자락을 가로질러 숲속 보도로 이 어진다. 산허리가 잘린 지형과 전신주의 배치로 보아 전기철로의 흔적으로 확인된다. 항공사진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산허리 부근이 동송역이 위치했던 장소이다(그림 19 참조). 산책로에서 농지로, 농지에서 농로와 둑과 옥수수밭으로 흔적들이 있는 구간을 지나면 대위교 부근에 교량의 흔적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교량에는 ‘금강산 가던 철길’ 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고 현재 사용하지 않은 채 수풀이 우거져있다(그림 20참조)..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43.

(11)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서영애 ․ 박한솔. <그림 19> 동송역터 부근의 산책로. <그림 20> 대위교 부근 교량. 대위교 교량을 지나면 농로로 이어지다가 도로로 합쳐진다. 과거 철길이 현재는 도 로로 활용되고 있으며 도로명도 ‘금강산로’이다(그림 21참조). 도로로 사용되는 구간 은 대위리 교량부터 이길리 초소까지이며 금강산로는 민간인통제구역의 민북마을(이 길리, 정연리, 유곡리)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양지역이 있던 위치를 지나면 도로에서 벗어나 도로와 나란히 농로로 이어지다 비 교적 원형 모습대로 보존되어있는 솔안다리가 발견된다. 아치형의 하부구조물에는 넝 쿨 류가 덮여 있으며 상부는 자전거 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안전난간이 설치되어 있으 며 농로로 활용되고 있다(그림 22참조).. <그림 21> 금강산로. <그림 22> 양지리 솔안다리. 3.2.2 구간 Ⅲ-Ⅳ의 현황 구간 Ⅲ(민간인통제선∼정연역∼유곡역∼남방한계선)의 이길역과 정연역에 이르 는 철로 흔적은 농로로 남아있다(그림 23, 24참조). 농로는 현 도로인 ‘금강산로’와 나 란히 위치한다. 정연역으로 추정되는 부근의 금강산로 변에는 정연리 금융조합금고 터가 발견된다. 정연리 금융조합 건물의 금고 중 건물은 한국전쟁 시 소실되었고 금고 만 농지 사이에 남아있다(그림 25참조). 농로로 남아 있는 철도와 역 앞에 금융조합이 위치하였고 현재의 금강산로 또한 당시 철도 앞 주요 가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연역을 지나면 한탄강을 건너는 정연리 철교가 발견된다.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키로’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으며 비교적 형태를 유지한 채 보존되고 있다. 교량 상부 의 도보체험은 가능하지만, 동선은 이어지지 않고 숲이 무성한 채 출입이 금지되어 있 다. 교량은 단순한 관광 구조물로 기능하고 있다(그림 26, 27참조).. 44.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12) 금강산전기철도에 의한 철원지역 근대 경관과 흔적.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그림 23> 구간 Ⅲ-Ⅳ 현황 (출처: Google Earth 위성지도 위 표기). <그림 24> 이길역∼정연역 사이 농로. <그림 25> 정연역 앞 철원금융조합 금고. <그림 26> 정연리 금강산전기철도 교량. <그림 27> 정연리 금강산전기철도 교량 상부. 구간 Ⅳ(남방한계선∼김화역∼남방한계선)에는 DMZ 생태평화공원7)이 조성되어 있으며 십자탑 탐방로와 용양보 탐방로로 나누어진다. 용양보 탐방로에서 금강산전기 철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그림 29, 30참조). 암정교는 금강산전기철도는 아니었 7) DMZ 생태평화공원은 환경부와 국방부(육군 제3사단)와 철원군이 공동협약을 맺고 전쟁, 평화, 생태가 공존하는 DMZ의 상징적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달하는 곳으로 민간인에게 한 번도 개방되지 않았던 탐방코스를 제공하고 있다. 제1코스로는 십자탑탐방로로 성재산 위에 설치한 십자탑을 전망 시설로 활용하여 남북한의 철책과 진지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이다. 제2코스 용양보 코스는 한국전쟁 때 피의 능선 전투 등 치열한 격전지의 한가운 데 위치한 곳으로 현재에는 암정교와 금강산 전철의 도로원표에서 전쟁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용양보는 DMZ통제 구역내에 위치하여 국내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호수형 습지의 자연환경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www.cwg.go.kr/site/dmz_tracking/main.do).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45.

(13)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서영애 ․ 박한솔. 으나 1930년대 건설되어 북으로 연결되는 주요한 다리였다. 금강산전기철도 이전에는 암정교를 건너 광삼리 계곡을 따라 금강산을 갔다고 전해진다.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상하부 구조물이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한국전쟁의 총탄이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안 전상 통행은 불가하다. 암정교는 철원역과 사요역 부근의 근대문화거리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도시경관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용양보는 기존 교량의 하부구조물이 남아 있는데, 교량 구조는 현재 용양보의 제방 으로 사용되고 있다(한국일보, 2019.06.04). 용양보는 생창리 지역 농경지에 용수 공급 용으로 설치된 저수지로 사용되었으나 DMZ에 포함된 이후로 민간인 통제지역에 위 치하여 자연적 습지형 호수로 보존되어오면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변모하였다(DMZ 생태평화공원 홈페이지).. <그림 28> DMZ 생태평화공원 탐방로 코스 중 용양보 탐방로 안내도 (출처: www.cwg.go.kr/site/dmz_tracking/sub.do?key=2516). <그림 29> 암정교. <그림 30> 용양보. 3.3. 소결 철원역은 민간인통제선 이북에 위치하여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으며 현재는 철원역 임을 알려주는 철로 일부와 표식만이 폐허로 남아 있다. 근대문화거리와 함께 관광코 스로 운영 중이나 자유로운 접근이나 관찰은 어렵다. 금강산전기철도는 일부 민간인통제선 이북에 위치하여 접근이 제한적이고, 금곡역. 46.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14) 금강산전기철도에 의한 철원지역 근대 경관과 흔적.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구간은 DMZ에 위치하여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금강산전기철도는 항공지도와 예전 노선도를 겹쳐서 살펴본 결과 그 선적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남아 있는 교량과 하부 구조물의 잔해를 중심으로 농로, 둑, 전신주의 배열은 철도 노선의 흔적을 확인하는 단서가 된다. 금강산으로 가는 철도는 현재 농로로 사용되고 있는 구간이 가장 많다. 일부는 현재 도로(금강산로)와 겹치는 구간도 확인된다. 민간인통제선 이남인 구간 Ⅱ의 경우 대 부분 농로나 도로로 그 흔적을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 구간은 사유지로 변용된 것으로 보인다. 둑 형태로 지형이 남아 있어서 노선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신주 또한 기존 철로 와 나란히 배치되고 있어서 끊어진 부분의 단서가 된다. 금강산전기철도 구조물 흔적으로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것은 교량이다. 온전한 형태 를 유지하고 있는 교량은 대위리 교량, 정연리 교량, 솔안다리이다. 이 중 솔안다리는 자전거 교량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그 외에는 폐허인 상태로 경관 요소로만 기능하고 있다. 대교천에서 발견한 교량의 흔적인 하부구조물은 어떠한 안내판도 없이 폐허로 방치되어 있다. 용양보는 교량 구조물의 형태를 일부 유지하고 있으나 현재는 호수형 습지를 위한 보로 변용되었다.. 4. 결론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의 철원역과 금강산전기철도의 물리적인 변화와 체험담을 통 해 경관적 의미를 고찰하고 현장답사를 통해 남북분단 이후의 경관 변화를 추적했다. 대도시 철원은 경원선과 금강산전기철도의 건설이 기폭제가 되어 급성장하였다. 근대 관광의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금강산전기철도의 기행문을 통해 당시의 경관을 탐색하였으며 철도건설로 인한 여가행태의 변화 또한 감지할 수 있다. 현재의 경관은 답사를 통해 철원역과 금강산전기철도의 흔적을 추적하여 변화의 양상을 파악 하였다. 대위리 교량, 정연리 교량, 솔안다리 등이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으며 대 교천 교량은 하부구조물만 남은 채 방치되어 있고, 용양보는 교량에서 기능이 변용된 것을 확인했다. 역사의 흔적과 철로는 철원역에서 유일하게 발견되며, 역사 주변에 있 었던 제사공장지와 금융조합의 금고, 암정교 등이 폐허로 남아 있어 철도 주변의 도시 적 경관을 상상할 수 있다. 남아 있는 지형의 흔적, 둑, 전신주와 같은 요소도 노선확 인의 단서가 된다. 파편적으로 남아 있는 구조물을 중심으로 뚜렷하게 남아 있는 농로 나 도로를 통해 전체 노선을 확인할 수 있다. 철로는 농로로 주로 변화했으며 일부 도 로(금강산로)와 겹치기도 한다. 연구에 따른 결론과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철원역은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대 도시의 모습을 잃었고 금강산전기철도도 오랜 시간 동안 폐선된 채 방치되었으나 현 재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 노선의 재구성이 가능하다. 따라서 선적인 경관자원으로 평 가, 관리해야 한다. 둘째, 철원역과 금강산전기철도는 한반도의 특수상황의 결과물인 무형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식하고 다루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복원을 지양하고 시 간의 흐름과 분단의 상처를 의미하는 유산적 가치를 미래세대에 전달할 수 있도록 노 력해야 한다. 셋째, 통일의 상징으로서 금강산전기철도 복원사업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물리적인 선로 연결을 넘어 전쟁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남북의 통합적인 관광자원 연구로 확장해야 한다. 본 연구는 민간인의 접근이 자유롭지 않은 구간에 대해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47.

(15)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서영애 ․ 박한솔. 못한 한계를 가진다. 향후 군부대와 지자체의 협조 등을 통해 지뢰가 매설된 지역과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구역에 관한 연구 조건이 개선되기를 희망한다. 본 연구의 성과 로는 현재 남아 있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 존재하는 폐허와 흔적을 통해 철원역과 금 강산전기철도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복원에 대한 기초적인 자료를 구축하고 방향 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1. 강원도민일보(2015.08.10.) 1930년대 초 강원 인구 ‘146만 명’ 2. 강원일보.(2019.07.02.) 4년째 방치 경원선 복원공사 재개 주목 3. 강원도민일보(2019. 8. 5.) DMZ 생태평화공원 안보관광 3코스 추진 4. 김도학(1999) 금강산유람기. 서울: 경희대학교 출판국. 5. 김범수, 조명호, 권오영(2015) 경원선, 금강산선 그리고 철원. 강원발전연구원 정책메모 제 519호 6. 김송주(2015) 경원선 철도복원사업의 의의 및 향후 과제.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1044. 7. 김영규(2016) 철원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되찾자. 환경논총 57: pp.32-38 8. 김지나, 조경진, 박한솔(2017) 구철원 시가지의 장소기억 재구성. 국토연구 93: pp.105-125 9. 김지영(2019) 일제시기 철도여행안내서와 일본인 여행기 속 금강산 관광 공간 형성 과정. 대한지리학회지, 2019, Vol.54(1), pp.89-110 10. 동아일보(1923.11.17.) 철원 전등은 가설중 11. 동아일보(1931.04.03.) 금강산장안사에 직통기차운영 12. 동아일보(1933.12.13.) 강원북부오군과 원산곡상간담 경인수출방지책 협의 13. 동아일보(1934.06.12.) 철원역신장 14. 동아일보(1934.09.12.) 가을의 금강산 탐승임시열차 15. 동아일보(1935.08.18.) 一日半의 금강산(1) 16. 동아일보(1935.08.20.) 一日半의 금강산(2) 17. 사단법인 의정부시 향토사 연구회(2001) 향토사적 측면에서 본 경원선. 의정부: (사)의 정부시 향토사 연구회 18. 서영채(2004) 최남선과 이광수의 금강산 기행문에 대하여. 민족문학사연구 24: pp.242280 19. 신성희(2016) ‘자연’의 생산과 근대적 ‘관광’의 형성. 문화역사지리 28(2): pp.81-100 20. 연합뉴스(2015.06.28.) ‘광복70년 기념’ 경원선 남측구간 7월 말 착공 21. 유승훈(2009) 근대 자료를 통해본 금강산 관광과 이미지. 실천민속학연구 14: pp.339-368 22. 윤소영(2008) 관광 명소의 탄생과 숙박시설(국사편찬위원회편, “여행과 관광으로 본 근 대”). 서울: 두산동아. pp.134-191 23. 원두희(2011) 일제강점기 관광지와 관광행위 연구: 금강산을 사례로. 한국교원대학교 대 학원 석사학위논문 24. 원두희(2017) 일제강점기 근대 관광지로서의 금강산. 기전문화연구 38(2): pp.1-22 25. 유정선(2018) 1930년대 금강산 기행가사에 투영된 여행체험의 의미 44: 213-242. 26. 이광수(1998) 금강산유기. 서울: 실천문학사. 27. 이지훈(2017) 한국 근대문학 형성기의 여행서사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8. 정승진(2019) 1922 중앙수리조합의 설립과 철원 지역사회의 변동. 사림 67: pp.257-293 29. 조선총독부 고시 제53호 2019.10.07.. 48.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16) 금강산전기철도에 의한 철원지역 근대 경관과 흔적. 한국경관학회지 11(2): 2019. 12.. 30. 조선총독부 철도국(1940) 朝鮮鐵道四十年略史. 31. 중앙일보(1989.02.03.) 기적 끊긴 금강산 관광열차|눈감기전 다시 탈수 있을지… 32. 철원문화원(2009) 사진으로 보는 철원 100년 철원의 변천사. 강원: 철원문화원. 33. 철원읍(1936) 철원읍지. 강원: 철원읍 34. 최남선(2000) 금강예찬, 서울: 동명사. 35. 한국일보(2019.06.04.) 비경마저 눈물겨운…전쟁의 상흔 품은 비밀의 정원 36. 하정희(2015) 일제강점기 조선의 스키장에 관한 연구. 한국체육사학회지 20(3): pp.45-56 37. 행정안전부 보도자료 (2019.02.08.) 38. 金剛山電氣鐵道株式會社(1939) 金剛山電氣鐵道株式會社20年史 39. 朝鮮鉄道状況 外秘. 第30囘 40. DMZ 생태평화공원 http://www.cwg.go.kr/site/dmz_tracking/main.do. 원 고 접 수 일: 2019.10.29 심 사 일: 2019.11.20 게 재 확 정 일: 2019.12.04 3인익명 심사필. 한국경관학회지 제11권 2호(2019년 12월).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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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