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논문은 2017년 10월 30일에 투고되어 2017년 12월 4일에 심사를 완료하 였고 2017년 12월 5일에 게재를 확정하였음.
later generations as well as accepting and altering the filial behavior tales of the previous times.
Keywords ; process of shift to Buddhist filial duty-based ruling,
character's voice, transmission grammar, Confucian filial duty, Buddhist
filial duty, Ilyeon, discipliner
龍門 趙昱의 생애와 시세계의 한 국면 고찰 -寧城錄을 중심으로-*46)
강구율
**47)<목차>
Ⅰ. 序論
Ⅱ. 生涯
Ⅲ. 寧城錄의 詩世界
1. 愁獨의 處地와 鳥雲의 憧憬 2. 仙界의 志向과 持續的 葛藤 3. 名宦의 謝絶과 澹泊의 追求
Ⅳ. 結論
<국문초록>
龍門 趙昱은 至治主義를 旗幟로 내걸고 급진적인 사회개혁을 주도하던 靜菴 趙光祖의 제자이다. 靜菴은 당시 士林派를 대표하는 己卯士林의 핵심으로서 그의 정치적 이상이 勳舊派에 의해 挫折되는 悲運을 맞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己卯士禍이다. 당시 龍門은 나 이가 어려서 士禍의 직접적인 해를 당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하여 舍兄 과 함께 옛 별장인 朔寧으로 물러나 은거 생활을 하게 된다. 여기서 龍門은 때로는 詩作 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울을 출입하기도 하면서 학문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렇지만 士禍로 인한 정치적인 제약 때문에 자유로운 처지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 계를 보인다. 아울러 심각한 내면적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 시기에 著作한 詩文을 모은 작은 시집이 「寧城錄이다. 이 작품집에 龍門의 심적 갈등을 포함한 내면적인 세계가 잘 투영되어 있다. 특히 寧城錄은 이후 그의 詩世界가 변모해가는 하나의 출발점이 된다고
* 이 논문은 동양대학교 교내학술연구지원비에 의해 마련되었음.
**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하겠다. 따라서 寧城錄은 龍門의 시세계가 어떻게 변모해가는지 그 변모양상을 살피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寧城錄에 나타난 龍門의 시세계는 대 체로 자신이 憂愁와 孤獨의 처지에 놓이면서 자유롭게 나는 구름과 새의 처지를 憧憬하 는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적 고통 때문에 神仙世界를 지향하고 있지만 자기가 살던 현실을 완전히 떠날 수 없어서 지속적인 갈등을 겪게 된다. 따라서 벼슬살이 를 단념하고 朔寧에서의 澹泊한 생활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이
寧城錄에 잘 형상화되어 있다고 하겠다.
<핵심어>
至治主義, 士林派, 己卯士林, 勳舊派, 己卯士禍, 隱居生活, 葛藤, 憂愁, 孤獨, 自由, 神仙 世界, 澹泊.
1. 序論
龍門 趙昱(1498-1557)은 중종 14년인 1519년에 일어난 己卯士禍로 인해 인생 최대의 시련과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士禍란 勳舊派에 의한 新進士林派의 逐出로 기묘사화는 南袞, 沈貞, 洪景舟 등 훈구파들이 靜 菴 趙光祖(1482-1519)로 대표되는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사회의 구현 을 주장하는 新進士類들을 驅逐한 사건이었다. 당시 용문은 22세였는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비록 처벌은 받지 않았으나 정신적인 충격은 深大하였다. 이에 과거를 통한 政界로의 진출을 斷念하고 舍兄인 養心堂 趙晟(1492-1555)과 함께 경기도 朔寧의 舊業에다 집을 짓고 학문을 講磨하였다.
본고에서 그의 詩世界를 살펴보는데 주로 朔寧에 살던 시기의 작품을 모은 寧城錄에 주목하는 이유는 기묘사화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현실 에서 오는 심적 갈등을 어떻게 작품으로 형상화했는가 하는 것이 용문 의 초기 시세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기묘사화 이후 가끔은 漢陽을 오가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의 시간은 삭녕
에 머무르면서 학문 연마와 詩作으로 보내게 된다. 따라서 삭녕에 머무 는 이 시기 용문의 시세계를 살펴보는 것은 이후 변모해가는 그의 시세 계 追跡에 하나의 출발점을 제공하고 아울러 기묘사화로 인한 현실적인 충격을 어떻게 정신적으로 극복하고 內面化해 가는지에 대한 문학적 對 應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寧城錄은 대체로 용문이 1520년 형과 함 께 삭녕으로 들어와서 1526년 忠北 報恩郡 三山을 유람할 때까지 6년 간에 걸쳐 삭녕에 있을 때의 시기에 산출된 작품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용문 조욱에 대한 연구는 疏略한 형편에 있다. 1편의 碩士學 位 논문
1)과 2편의 단행 논문
2)이 전부이다. 용문이 비록 현실적으로 영 달한 삶은 살지 못했어도 거의 500首에 이르는 문학 작품을 생산한 시 인으로서 당대 漢文學史에서 차지하는 位相에 견주어 볼 때 연구가 매 우 미진한 상황에 머물러 있다. 이 시기 주류 道學者들을 중심으로 이루 어지는 연구의 지평을 확장하여 앞으로 용문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서 己卯名賢 전반을 대상으로 한 연구 영역의 설정이 필요하리 라 생각한다. 본고도 이러한 연구 지평의 확장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 로 기획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본고는 그의 寧城錄을 중심으로 하여 龍門의 초기 시세계를 살펴보 는데 주목하여 愁獨의 處地와 鳥雲의 憧憬, 仙界의 志向과 持續的 葛藤, 名宦의 謝絶과 淡泊의 追求라는 순서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본고의 논의에 사용한 주요 자료로는 民族文化推進會에서 펴낸 標點影印 韓國 文集叢刊 제28집에 수록된 龍門先生集을 대상으로 하였다.
1) 鄭東雲, “龍門 趙昱의 詩世界 硏究-性理學的 思惟와 現實認識을 中心으로-”, 高麗 大學校敎育大學院 碩士學位論文, 1996.
2) 孫燦植, “龍門 趙昱 詩에 表象된 神仙思想”, 國文學과 道敎, 韓國古典文學會, 1998. 姜縤瑛, “龍門 趙昱의 道家詩 考察”, 東方學 8권, 韓瑞大學校東洋古典硏究 所, 2002.
Ⅱ. 生涯
龍門 趙昱의 생애에 대해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일정하게 수용하면 서 본고는 그의 年譜와 각종 관련 기록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상세하 게 생애를 재구성해보고자 한다. 이후 龍門에 대한 연구의 편의를 위해 비교적 자세하게 그의 생애를 기술하기로 한다.
龍門 趙昱은 字가 景陽이요 호가 龍門, 葆眞齋, 洗心堂, 愚庵이고 諡號 는 文康으로 본관은 平壤이다. 조선조 燕山君 4년인 1498년 8월 21일 에 서울의 대대로 살아온 世第에서 출생했다. 그런데 서울의 집은 세상 에서 전해오기를 靑坡里에 龍門의 옛 터전이 있었다고 하나 세월이 오래 되고 증거가 없어서 다만 서울 집이라고 한다는 관련 기록만 있다. 평양 조씨의 시조 仁規는 고려 忠烈王을 도와 공이 있었기 때문에 平壤伯에 봉해졌고 시호로 貞肅公을 받았는데 이후로 자손 대대로 大官들이 줄을 이었다. 증조부 휘 得仁은 通政大夫로 掌隸院判決事였고 조부 휘 揚門은 通善郞으로 成均館典籍이며 부친은 휘 守나으로 通訓大夫인데 定州判官 을 지냈다. 모친은 淑人 李氏로 宗室인 春陽君 휘 徠의 따님이다.
어려서부터 특이한 資稟으로 책을 받아서 한두 번 읽으면 곧 暗끊을 하였고 詩句를 지으면 사람들을 문득 놀라게 하였다. 1512년 12세가 되 던 해에 뱃놀이를 漢江에서 하였는데 그 당시에 一代의 文士들이 많이 모였다. 여러 사람의 文士들이 龍門으로 하여금 시를 짓게 하니 「遊漢江
」
3)이란 시를 應口輒對하여 座中을 驚歎케 하였다. 13세 때에는 비록 어 린 나이였지만 誠孝가 出天하여 어버이의 병환을 모심에 지극한 정성을 기울여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 伯氏인 養心堂 趙晟을 섬김에 공 경과 사랑을 지극하게 하여 이웃 사람들이 龍門의 孝友를 칭찬하였다.
17세 때에는 左尹인 靑城君 沈順徑의 따님에게 장가를 들었고 18세이던 가을에 漢城試에 나아가 生員進士 初試에 참여하였다. 19세가 되던 2월 에 生員進士 覆試에 나아가 모두 入格하여 비로소 靜菴 趙光祖
3) 龍門先生集 「年譜」,“靑山面面立 漢水悠悠下 峨洋山水間 誰是知音者” 166쪽
(1482-1519) 문하에 나아가 수업하였다. 일찍이 生員進士 시험에 入格 하자 遠近에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그의 재주를 사모하였지만 龍門은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어찌 다만 공명으로 일을 삼을 수 있겠는 가?”
4)라고 하고는 드디어 求道에다 뜻을 두었다. 靜菴 趙光祖와 老泉 金湜(1482-1520) 두 선생이 ‘古人義理之學’을 강론한다는 소문을 듣고 기쁘게 찾아가서 從遊하였다. 大學과 中庸의 뜻을 듣고 자신의 거처 에 ‘愚菴’이란 扁額을 걸고 沈潛하여 연구하느라 寢食을 잊는 지경에 이 르렀다. 靜菴이 일찍이 말하기를 “여러 제자 가운데 求道의 篤實함은 조 아무개와 같은 사람이 없다.”
5)라고 하였다.
20세에 張茂先의 「勵志詩」 운자에 次韻하여 자기 자신을 일깨웠으며 또 「自警詩」를 지어서 同志들에게 보이기도 하였다. 또 朱子의 「感興詩」
에 차운하는 세 수의 작품을 지어서 자기 자신을 일깨웠는데 마지막 작 품에는 ‘나는 성인의 학문을 배우기를 소원하며 성인과 더불어서 함께 돌아가기를 기대한다.’
6)라는 구절이 있다. 21세 봄에 表兄인 琴軒 李長 坤(1474-?)을 東郭 바깥으로 방문하였고 겨울에는 楊州의 檜巖寺에서 독서를 하였다.
22세 되던 봄에는 靜菴의 龍仁에 있는 別莊에서 독서를 하였는데 龍 門과 子源이 별장에서 독서를 할 때 하루는 靜菴이 사람을 시켜서 말하 기를 “내가 墓祭를 행하려고 하는데 우선에 山寺로 옮겨 있으라.”
7)라 고 하니 용문이 그날로 산사로 거처를 옮겼다. 어느 날 밤 꿈속에서 朱 子를 만났다가 아득하게 꿈을 깨고는 「學顔子吟」
8)2首의 시를 지어서 자기의 뜻을 부쳤다. 11월 15일 밤에 南袞 등이 士禍를 일으켜서 靜菴 과 大司成 金湜 등이 모두 被逮되어 下獄되었다. 용문이 이 소식을 듣고 앞으로 상소를 하여 이치를 分때하려고 상소문 기초를 하였으나 실제로
4) 龍門先生集 「年譜」,“人之生世 豈但以功名爲事” 241쪽 5) 龍門先生集 「年譜」,“諸子中求道之篤 無如趙某云” 241-2쪽 6) 龍門先生集 「年譜」,“我願學聖學 期與聖同歸” 242쪽 7) 龍門先生集 「年譜」,“吾欲行墓祭 姑移寓山寺” 242쪽 8) 龍門先生集 卷一, 「學顔子吟」 168쪽
올리지는 못하였다. 門生으로 연루되어 하옥되는 바람에 자기 뜻을 펼치 지 못하였는데 만약 상소가 올라갔더라면 재앙을 장차 예측할 수 없었으 나 오히려 상소를 올리지 못한 것으로 恨으로 삼았다. 靜菴이 전라도 綾 州의 유배지에서 賜藥을 받기에 이르자 용문은 통곡하는 심정을 이기지 못하고 드디어 시를 지어 자기 뜻을 말하였는데
9)이로부터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隱遯하려는 뜻을 가졌다.
23세 되던 봄에 경기도 朔寧에다 집을 짓고 伯氏인 養心堂 趙晟과 더 불어서 함께 거처하며 학문을 講論하였다. 한번은 용문이 養心堂에게
“泰山이 무너졌으니 내가 장차 무엇에 의지하며 두 賢人이 돌아가셨으니 누구와 더불어서 도를 강론하겠습니까? 내가 배운 바를 닦아서 처음 뜻 을 이룸만 같지 못합니다.”
10)하고는 날마다 형님과 더불어 講磨道義하 니 형제가 스스로 師友가 되어 당시 사람들이 송나라의 두 程子에 견주 었고 「寧城十詠」
11)을 지었다. 24세 때에 부친 判官公이 定州判官으로 나갔는데 10월에 母夫人을 모시고 判官公의 任所로 갔다. 25세 때에는
「大狂吟」 五十韻
12)을 지어 同志들에게 보여주었다. 26세 정월 28일에 判官公의 초상을 당하였는데 당시 判官公은 義州에다 새로운 성곽을 수 축하는 것을 감독하다가 發病으로 공사를 감독하던 장소에서 별세하였 으므로 運柩하여 와서 4월 14일에 高陽 多院里 乾之山 조부의 묘소 아 래에 장사를 지냈다. 이때 龍門이 지나치게 哀慟해 하여 여러 번 기절했 다가 깨어났는데 그로 인해 질병이 되어 보는 사람들이 위험하게 여겼 다. 28세가 되던 3월에 三年喪을 마치고 「中庸大學圖」를 지었고 自號를 葆眞菴으로 고치고 「四欲吟」
13)도 지었다. 母夫人의 명령으로 禮部의 과
9) 龍門先生集 卷一, 「自悼」 “雨雪交紛兮바霧凝 平路險隘兮山崚嶒 下土茫茫兮不見 日 鳳鳥飄飄兮焉可憑 蓬叢棘林兮萬里思飛騰(비와 눈이 서로 분분함이여! 컴컴한 안 개가 어려있네. 평평한 길이 험하고 좁음이여! 산이 높다랗도다. 이 세상이 아득함이 여! 해를 보지 못하겠네. 봉황새가 표표하게 날아감이여! 어디에 의지할 수 있겠는 가? 다북쑥 떨기와 가시 숲이여! 만리에 날아오르기를 생각하노나.)” 166쪽 10) 龍門先生集 「年譜」,“泰山頹矣 吾將安仰 兩賢沒矣 誰與講道 不如修吾所學 以遂
初志” 242쪽
11) 龍門先生集 卷一, 「寧城十詠」 170쪽 12) 龍門先生集 卷一, 「大狂吟」 170쪽
거에 나아갔으나 庭對에서 내쳐졌다. 龍門은 兩賢이 화를 당한 이후로 淡泊하게 당시 세상에 대한 생각을 접고 항상 高尙하게 世俗을 멀리하 기를 생각하였으나 당시 時論이 더욱 어긋나서 올바를 선비 보기를 원 수처럼 하였다. 이에 龍門은 항상 지목되는 인사 가운데 하나였는데 大 夫人이 이를 심히 두려워하여 힘써 과거시험 보기를 권유하므로 龍門이 부득이하게 한번 과거를 보아 2등을 하였으나 庭對에서 ‘格物致知誠意正 心’으로 대답을 하니 考試官이 己卯의 黨籍이라 여기고 龍門을 내쳤다.
龍門은 이로부터 더욱 正道가 행해지기 어려움을 알았으나 결단코 과거 를 단념하지 못한 것은 母夫人께서 화를 두려워하는 뜻을 따랐기 때문 이었다고 하겠다. 琴軒 李長坤이 驪江에다 卜居를 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詩와 序文을 지어서 드렸다.
14)29세 되던 봄에 三山을 유람했고 가을에 高嶺의 普光寺를 유람하였으며 겨울에는 丈人이 燕京으로 使行 길에 나 서는 것을 두 번째로 전송하며 시를 지어 바쳤다.
31세 되던 2월 초10일에 아들 孔賓을 낳았다. 「壙記」를 살펴보면 龍門 의 장남인 元賓이 학문을 즐겨서 일찍이 성숙하였는데 16세에 對策을 바 치고 과거에 入格하였으나 그해에 夭折하였다. 그렇지만 집안에 生卒年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없어서 자세한 사정은 알지를 못한다. 34세 되던 8월에 寧城에서 출발하여 金剛山을 유람하였다. 35세 봄에 璿源殿 叅奉에 제수되었는데 이 당시에 黨禁이 조금 풀린 까닭에 이런 벼슬의 제 수가 가능하였다. 龍門은 어버이가 年老하셔서 叅奉의 직책에 나아갔다.
11월 15일에 仁賓이 출생했다. 龍門은 자제들에게 자애로우면서도 지극 히 엄격하여 나아가고 물러가는 절차에 조금이라도 차질이나 실수가 있으 면 반드시 小學의 「事親章」을 거론하며 그것을 읽히고 나무랐다. 지성
13) 龍門先生集 卷一, 「四欲吟」 “欲覽天下古今書 欲遊東國好山水 欲作東國一閑民 欲了天下一大事(천하 고금의 서책을 보고자 하고 동국의 좋은 산수를 유람코자 하고 동국의 한 한가한 백성이 되고자 하고 천하의 한 큰일을 마치고자 하노라.)” 이것 을 보면 용문은 우리나라의 일을 두 가지하고 천하의 일을 두 가지 해보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수가 있겠다. 180쪽
14) 그 시가 龍門先生集 卷一, 172-3쪽에 실려 있는 「上李相公長坤詩幷序」이란 제목 의 시이다.
스럽게 孝悌忠信의 도리로 가르치며 말하기를 “사람이 사람으로 되는 것 은 이 네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데 현인이 되고 성인이 되는 것은 또한 미 루어서 이것을 확대한 때문이고 입신양명하여 보모를 드러내는 것은 비 록 이것이 사람의 아들이 된 도리이기는 하지만 만약 부귀와 이달로써 마음을 삼는다면 어버이를 섬기고 임금을 섬김에 반드시 그 끝을 잘 마 칠 수가 없을 것이다. 너희 무리들은 간절하고 마땅하게 이를 경계할지 어다.
15)” 라고 한 까닭에 자제들이 일찍이 營利를 말하지 아니하였다.
36세에 順陵叅奉으로 옮겼으나 오래지 않아 遞職되었다. 39세에는 英陵 叅奉에 拜命되었으나 겨울에 병으로 사직하고 취임하지 아니하였다.
42세에 詩薦을 받았는데 이해에 명나라 사신이 왔으므로 조정에서 바 야흐로 文士를 구하였는데 慕齋 金安國(1478-1543)이 시로써 龍門을 추천하니 龍門이 이 소식을 듣고 민망하게 여기며 시를 지은 것이 있다.
43세 7월 21일에 母親喪을 당하여 9월 14일에 判官公 묘소에 祔葬하였 다. 시묘살이를 하면서 한 번도 집에 이르지 않았고 심한 병이 아니면 衰絰을 벗지 않았으며 다른 書冊은 읽지 않고 오직 禮經만 강독하였다.
45세 9월에 삼년상을 마쳤는데 이로부터 다시는 벼슬에 대한 생각을 끊 고 산에 들어가 숨어 살려고 하는 뜻을 가졌다. 46세가 되던 정월에 文 殊庵을 유람하다가 慕齋의 訃告를 듣고는 慟哭하고 挽詩를 지어서 哀悼 하였다. 47세에는 圭菴 宋麟壽(1499-1547)가 燕京으로 사행을 떠나갈 때 시를 지어 주었으며 玄軒 睦世秤(1487-?)이 來訪하였다. 48세 3월 에 砥平에 있는 龍門寺를 유람하였고 49세 2월에 砥平의 土最美洞으로 卜居할 뜻을 가졌다. 7월에 花潭 徐敬德(1489-1546)이 逝去함에 挽詩 를 지어 哀悼하였고 9월에 寧越의 錦江亭을 유람하였다.
50세 되던 봄에 砥平 土最美洞의 초가가 완성되어 시를 지었고 이때 부터 여기에 卜居하니 세상에서 龍門先生이라 일컬었으며 학자들이 많 이 몰려들었다. 55세에 조정에서 遺逸을 천거하라는 명이 있었고 이해 에 明宗大王이 어진 선비를 구하라는 傳敎를 내림에 竹雨堂 成守琛
15) 龍門先生集 「年譜」,“人之爲人 不出此四者 而爲賢爲聖 亦在推而大之也 立身揚名 以顯 父母 雖是人子之道 而若以富貴利達爲心 則事親事君 必不得善其終矣 汝輩 切宜戒之” 243쪽
(1493-1564), 南冥 曺植(1501-1572), 黃江 李希顔(1504-1559), 東 洲 成悌元(1506-1559)과 함께 遺逸로 천거되는 영광을 누렸다. 56세 에 특별히 宣務郞 內贍寺主簿에 제수되었는데 龍門이 처음에는 상소를 올려 사직하려고 하였으나 明宗大王이 힘써 정치를 하는 처음에 세상에 없는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드디어 취임하였다. 57세 정월에 長水縣監 을 제수받았고 19일에 任地로 출발하여 29일에 赴任하였다. 龍門이 任 地를 다스릴 때에 백성을 새롭게 하고 풍속을 착하게 하는 것으로써 急 先務를 삼아 가혹한 정치를 제거하고 大體를 보존하여 고요하면서도 번 거롭지 않으니 아전들이 순종하고 백성들이 편안하였다. 또 선비의 자식 들 가운데 우수한 자를 선발하여 이들을 모아서 교육을 시켰는데 고을 의 사람들이 학문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가까운 인근 고을의 선비들 도 또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58세 4월 13일에 伯氏인 養心堂이 별세하였다. 이해에 倭寇들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잇달 아 큰 鎭營을 함락시킴에 주요 장수들이 蒼黃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오직 살육함으로써 권위를 세우려고 하니 사람들이 모두 다리를 떨며 두려워하였으나 龍門은 홀로 義理로써 이것을 다투니 주요 장수들이 감 동하여 깨달아서 殺戮을 그치고 조금 도적을 막을 계책을 얻게 되었다.
6월에 벼슬을 버리고 龍門의 옛 은거지로 돌아왔다. 9월에 聽松 成守琛 에게 (書를 보내고 겸하여 「次坡山四言詩」 2首
16)를 부쳐 보냈다. 59세 되던 2월에 海西를 유람하였는데 龍門이 文憲書院을 拜謁함에 여러 生 徒들이 이름 쓰기를 요구함에 절구 한 수를
17)써주었다.
60세 3월에 判官公의 墓表石을 세우고 龍門이 직접 바記를 짓고 碑文 의 글씨를 썼다. 12월 11일 靑城里 집에서 考終하니 享年이 60세였고 이듬해 2월에 砥平 龍門山 남쪽 자락 丑坐未向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이상 龍門의 생애를 槪觀해 볼 때 龍門은 나이가 젊어서 己卯士禍를 만 나 나이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放免되어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려는
16) 龍門先生集 卷四, 「次坡山四言詩」 233쪽
17) 龍門先生集 「年譜」,“客路栖栖久未還 天敎看盡海西山 不須姓字留書院 贏得狂名 滿世間” 245쪽
뜻을 접고 伯氏인 養心堂과 함께 朔寧에다 지은 집에 거주하며 학문연 구에 邁進하게 된다. 이후 兩親의 초상을 치르고 遺逸로 천거되어 宣務 郞 內贍寺主簿를 역임하고 이어 長水縣監으로 부임하여 善政을 베풀고 伯氏의 별세 이후 辭職하고 龍門의 옛 은거지로 되돌아온다. 여기에다 洗心堂을 짓고 세상과 絶緣하고는 窮理와 敎人으로 나날을 보내며 항상 聖賢이 되기를 스스로 기약하니 여러 賢人들이 “도학에 뜻을 독실하게 두었고 성인의 지역에 나아가기를 기약하였네. 길을 얻어 공부에 착수하 니 나아가고 나아가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네.”
18)라고 칭찬하였고 또 말 하기를 “유가의 공부의 길을 알아서 얻은 사람은 오직 공이 있을 뿐이 다.”
19)라고 평가를 받았다. 이로써 볼 때 용문은 잠시의 벼슬살이를 제 외하고는 거의 인생 대부분을 자연에 은거하며 學問과 詩作을 하면서 살아간 16세기 지식인의 한 典型을 이루었다고 하겠다.
Ⅲ. 寧城錄의 詩世界
본고에서 말하는 寧城錄은 대체로 龍門의 나이 22세이던 1519년 11월의 己卯士禍 이후 이듬해인 용문의 나이 23세이던 1520년 봄에 강 원도 朔寧에다 집을 짓고 伯氏인 養心堂 趙晟과 함께 거처하며 講學을 했던 시기에 지은 詩篇들을 모은 것을 말한다. 그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는데 대체로 용문의 나이 23세에서 28세까지이니 약 5년 남짓한 세 월 동안이 이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지어진 작품의 숫자도 용문이 지은 445題 767首의 전체 작품에 견주어 보면 29題 44首로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숫자로 보면 별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 렇지만 이 寧城錄 시기는 용문에게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용문의 일생 가운데 意識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가장 방
18) 龍門先生集 「年譜」,“篤志道學 期造聖域 得路着工 進進不已” 245쪽 19) 龍門先生集 「年譜」,“識得儒家工程 惟公而已” 245쪽
황하고 고민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곧바로 이어지는 三山 錄과 金剛錄 시기가 있는데 이 두 시기는 寧城錄 시기와 기간은 거의 비슷하지만 어찌 보면 寧城錄 시기의 연장선 내지는 보다 안정 되고 沈潛한 시기이기 때문에 寧城錄 시기의 고찰은 무엇보다 나름대 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지어진 작품을 보면 용문의 시세계가 한마디로 搖動을 치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태산이 무너졌 으니 내가 장차 어디를 우러르며 두 현인이 돌아가셨으니 누구와 더불 어 도의를 강론하겠는가?”
20)라는 言述은 바로 이 시기의 상황을 잘 나 타낸다고 하겠다. 따라서 용문 조욱의 시세계에서 寧城錄이 차지하는 位相과 比重을 勘案해 볼 때 이 시기의 작품을 살펴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그의 시세계를 살 펴 용문 시세계에서 차지하는 寧城錄의 位相을 규명하고자 한다.
1. 愁獨의 處地와 鳥雲의 憧憬
寧城錄 시기에 지어진 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詩語가 愁와 獨, 그리고 鳥와 雲이다. 바로 이들 시어가 이 시기 용문의 인식을 잘 드러 내 준다고 하겠다. 앞의 愁와 獨의 정서는 이 시기 용문의 의식 속에 자 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인식이고 鳥와 雲은 용문이 憧 憬하고 지향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구체적인 작품의 분석 을 통해 이를 확인해 보자.
먼저 愁와 獨이 나타난 작품인데 寧城錄의 첫 번째 작품인 「庚辰春 家兄在寧城 患舊疾(缺) 途中遇雨 入樓院作」을 보자. 1520년 봄 家兄인 養心堂 趙晟이 寧城에 있으면서 오래된 병을 앓고 있었는데 (缺) 도중 에 비를 만나 樓院에 들어가 짓는다는 제목의 작품이다. 원문에 缺落된 부분이 있어서 구체적인 사유는 알 수가 없는 실정이다.
20) 龍門先生集 「年譜」, “泰山頹矣 吾將安仰 兩賢沒矣 誰與講道” 242쪽
「庚辰春 家兄在寧城患舊疾(缺) 途中遇雨 入樓院作」
兄臥山村病未瘳 산촌에 누운 형 아직 병도 낫지 않았는데 短蓑疲馬向楊州 짧은 도롱이 지친 말 타고 양주로 향하네.
悵望落日春山外 봄 산 밖으로 지는 해 슬프게 바라보노라니 添却高樓遠客愁 높은 누각에 멀리 와있는 길손 수심을 더하네.21)
이 작품 기구와 승구는 병든 형이 療養次 楊州로 가는 상황을 노래하 고 있다. 그런데 그 행색이 짧은 도롱이에다 피로에 지친 말을 타고 있 다. ‘短疲’가 바로 현재 용문 형제의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거기다 형 은 병까지 걸려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전구와 결구에서는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 ‘悵愁’에 빠져 있는 시적 자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바로
‘落日’과 ‘添愁’가 그것이다. 형이 떠나고 없는 상황에 해마저 지는 저녁이 되니 더욱 쓸쓸하고 높은 누각에 올라 멀리 형을 떠나보내고 나니 서울서 멀리 떨어져 있는 길손이 느끼는 客愁가 밀려들고 있다. 客愁의 표면적 의미야 병든 형의 不在에서 오는 것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寧城으로 물 러나 있는 상황을 초래한 己卯士禍에서 基因했다고 할 수 있겠다. 더군 다나 ‘遠客’이 含意하는 근심은 個人事와 時代狀況이 더해져 이루어진, 극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근심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작품인 「曉發 寧城向安峽 途中口占」에서도 근심스러운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새벽에 영성을 출발하여 안협을 향할 때 도중에서 口占
22)한 제목의 작품이다.
「曉發寧城向安峽 途中口占」
夜雲橫帶山腰白 산허리엔 밤 구름 가로 둘러 하얗고 朝日浮光嶺首紅 고개 머리엔 아침 해 비춰 벌겋구나.
病客凄涼行色裏 처량한 행색으로 떠도는 병든 길손이 忍看隨處作愁容 가는 곳마다 근심에 찬 모습을 차마 보랴?23)
예시 작품 기구와 승구는 對句로 구성되어 있는데 새벽에 寧城을 출발
21) 龍門先生集 卷一, 「庚辰春 家兄在寧城 患舊疾(缺) 途中遇雨 入樓院作」 169쪽 22) 口占은 시를 지으려고 할 당시에 종이가 없어서 먼저 입으로 읊었다가 나중에 종
이에 옮겨 적는 형태의 創作方式을 지칭함.
23) 龍門先生集 卷一, 「曉發寧城向安峽 途中口占」 169쪽
하여 安峽으로 향하여 가는 도중에 본 情景이다. 산허리는 밤을 지낸 구 름이 가로로 감아서 하얗고 고갯마루는 아침 해가 떠올라 비춰서 벌건 광 경이다. 해가 떠도 쉬 사라지지 않은 구름은 작자의 愁心이 간단히 사라 지지 않으리란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전구와 결구에서 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그리고 있는데 병든 나그네가 근심스런 모 습을 보아야 하는 것이 그것이다. 처량한 행색으로 떠도는 病客은 가는 곳마다 근심스러운 모습을 차마 보아야만 하는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병든 길손을 괴롭히는 근심스러운 모습이 결국 시적 자아를 愁獨의 처지에 埋沒시키고 만다. 따라서 시적 자아의 愁獨은 그 강도를 더하고 이와 더불어 근심은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벗에게 준다는 제목의 「贈友二首」에서는 ‘愁緖’와 ‘愁懷’란 직접 적 시어가 등장하고 있다.
「贈友二首」
(前略)
兀然對黃卷 우뚝하게 앉아 책을 대면하고 있으나 疑義誰共討 의문 드는 의미를 뉘와 함께 토론할꼬?
終日掩荊扉 진종일 가시 사립문을 닫아걸고 있으니 萬端愁緖擾 만단의 근심 실마리가 마음을 뒤흔드네.24) (下略)
예시 작품에서 ‘의문 드는 의미를 뉘와 함께 토론할꼬?’ 라는 언급에 서 시적 자아는 아무도 없이 혼자 놓여 있는 고독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진종일 가시 사립문을 닫아걸고 있으니’ 라는 표현 역시 어떤 사람의 來往도 없는 절대적 고독의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시적 자아로서는 만 갈래의 근심 실마리가 마음을 뒤 흔드는 괴로운 처지에 빠져 있어서 고독하기 짝이 없다. 모든 것이 서울 에 머무를 수가 없는 시대적 상황이 초래한 愁獨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작품에서도 근심스러운 회포를 다 펼칠 수가 없다는 상
24) 龍門先生集 卷一, 「贈友二首」 173쪽
황을‘已矣何所言.愁懷難可宣(그만둘지어다! 무엇을 말하겠는가? 근심스 런 회포를 표현하기 어렵다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已矣’라는 표현 은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지칠 대로 지쳐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절 망적 상황에 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러니 근심의 회포를 쏟아내 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역시 시작 자아인 용문의 愁獨한 처지가 극대화되어 표현되었다고 하겠다.
다음은 고독한 정황을 노래한 작품들이다. 농막에 봄비가 내린다는
「春雨田舍」 제목의 작품이다.
「春雨田舍」
春雲靄遠空 봄 구름은 먼데 공중에 자욱하고 暮雨洒平野 저물녘 비는 평평한 들판에 뿌리네.
輟耕桑林外 뽕나무 수풀 밖에 밭 갈다가 쉬고 捲釣淸溪下 맑은 시내 아래에서 낚싯대 거두네.
茅茨掩短扉 띠와 납가새는 작은 사립 덮어있고 靑燈照深夜 푸른 등불은 깊은 밤을 비추네.
百感興幽抱 온갖 감회가 그윽한 마음에서 일어나니 展轉臥復坐 전전반측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앉네.25)
이 작품 두련은 구름이 하늘에 자욱하고 저녁 무렵 비가 들판에 뿌리 는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시적 자아의 심적 상태를 상징 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함련에서는 밭갈이와 낚시로 지내는 농촌에서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경련에서는 아무도 찾지 않는 농촌에서 선비 본연 의 자세인 독서를 하는 情景을 나타내고 있다. 미련에서는 마음에서 일 어나는 근심과 갈등으로 뒤척이며 잠 못 드는 시작 자아의 상태를 노래 하고 있다. 구름이 자욱하고 거기에 비까지 뿌려대는 을씨년스러운 날씨 에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농촌에 살며 서툰 농사를 짓기도 하고 선비 본연의 자세도 유지하려고 하는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근심과 갈등 이 결국 輾轉反側하며 일어났다가 눕는 행동을 반복하게 하고 있다. 시 작 자아의 심각한 근심과 고독의 상황을 이 작품은 잘 묘사하고 있다고
25) 龍門先生集 卷一, 「春雨田舍」 170쪽
하겠다. 영성에 머무르고 있을 당시 작자의 심리적 상태가 극심한 愁獨 의 처지에 있었다는 것을 위의 예시 작품을 통해 읽어낼 수가 있겠다.
그리고 영성에 있는 이 시기에 용문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특 징으로 鳥와 雲을 자주 노래한다는 점이다. 새와 구름이 아무런 거리낌 이 없이 자유롭게 날아다니거나 流行하는 모습에다 자신을 投影함으로 써 작자는 束縛과 拘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식을 보여준다. 다시 말 하면 새와 구름의 처지를 憧憬하고 있다고도 하겠다. 새와 구름의 처지 를 동경한다는 것은 그만큼 작자의 처지가 심각하게 拘碍와 束縛으로 點綴되어 있다고 하겠다. 친구를 생각하며 지은 작품이란 제목의 칠언율 시 「懷故人作」에서 이를 확인해 보자.
「懷故人作」
善入人間窮萬法 인간 세상 잘 들어가 만법을 연구하다가 歸來巖壑臥荊扉 암학으로 돌아와 가시 사립문에 누웠네.
孤雲獨鳥靑山色 청산의 빛은 외로운 구름과 한 마리 새요 遠水長天明月輝 밝은 달빛은 먼데 물과 긴 하늘을 비추네.
得意忘言皆妙道 뜻을 얻고 말을 잊음은 모두 오묘한 도인데 安心隨處盡天機 마음을 편하게 하면 곳곳마다 모두가 천기이네.
誅茅峽裏從茲近 골짜기 속에 지은 초가집 여기에서 가까우니 數向門墻莫見揮 자주 찾아와도 손을 휘두르며 거절하지 않겠네.26)
이 작품 두련에서는 세상에서 자연으로 밀려난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인간 세상에서 온갖 법을 잘 연구하다가 어떤 이유로 인해서 巖壑으로 돌아와 초가에 거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善入’은 自意였는지 몰라도
‘歸來’는 自意에 의한 것이 아니란 것을 엿볼 수 있겠다. 함련에서는 巖 壑에서 지내며 만나는 존재들에 대한 묘사이다. 청산 속에는 홀로 떠다 니는 구름과 혼자 나는 새들뿐이고 멀리 흘러가는 물과 긴 하늘엔 밝은 달만 비춰주는 상황이다. 시적 자아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구름과 새, 물 과 하늘 그리고 밝은 달이어서 모든 존재들이 巖壑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별로 관심조차 두지 않거나 자주 對面하지 못하던 것들이다. 이런 존재를
26) 龍門先生集 卷一, 「懷故人作」 170쪽
일상으로 대하며 이들에 자신을 투영하여 지내는 시적 자아의 삶은 일단 구속을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경련에서는 자연으로 물 러와 자연물을 대하면서 결국 속세를 超脫해 도의 경지에 거의 다다른 상 황을 노래하고 있다. ‘得意忘言’과 ‘安心隨處’가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로 妙道와 天機라고 할 수 있는데 거의 그런 경지에 육박하고 있다. 미련에 서는 안정된 상태에서 친구를 가볍게 맞을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表出 하고 있다. 골짜기에 草家를 지어놓고 살아도 전혀 부끄럽거나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정도로 안정되어 친구의 잦은 방문을 막을 이유가 없다는 표 현에서 자연 속의 삶에 적응하며 한가하고 여유롭게 살고 있다는 것을 엿 볼 수가 있겠다. 근심 속에 놓여 있다가 때로는 나름대로 벗어나 구름과 새, 물과 하늘을 보면서 자신을 이런 존재들에 투영함으로써 마음의 여유 를 찾는 시적 자아의 상황을 이 작품은 잘 그려내었다고 하겠다.
아래 작품 역시 아무런 拘碍 없이 自由自在로 날거나 떠다니는 새와 구름을 부러워하기조차 한다는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여름날 밤에 느낀 회포를 읊어서 백씨에게 바친다는 제목의 「夏夜感懷 呈伯氏」를 보자.
「夏夜感懷 呈伯氏」
雨餘生晩景 비 그친 뒤의 저물녘 풍경에 樹木含凄冷 나무들도 처량한 기운을 머금네.
歸鳥覓舊棲 돌아가는 새 옛 둥지를 찾고 行雲度南嶺 떠가는 구름 남쪽 고개를 넘네.
玩物起遐想 사물 구경하며 먼데 생각 일으키니 道心方淸靜 도심이 바야흐로 맑고 고요하네.
(下略)27)
이 작품에서도 새와 구름이 등장한다. 옛 둥지를 찾는 새와 고개를 넘 어가는 구름을 단순한 정경의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적 자아가 새와 구름처럼 아무런 구속이 없는 自由自在의 모습을 동경하고 부러워 하는 심경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 그만큼 현실에서 느끼는 압박과 구 속감이 크다는 것을 말하면서 자유에의 希求를 志向하고 있다고 하겠다.
27) 龍門先生集 卷一, 「夏夜感懷 呈伯氏」 169쪽
아래의 예시 역시 같은 맥락의 작품으로 읽을 수 있겠다. 느낌이 일어남 에 지기에게 부쳐 보낸다는 제목의 「感興寄知己」란 작품이다.
(前略)
松亭一登眺 소나무 정자에 한 번 올라 바라보니 晴空淡餘暉 갠 하늘에 넉넉한 빛이 담담하구나.
大野鳥飛迥 큰 들판에 새는 아득히 날아가고 高山雲去遲 높은 산에 구름이 더디게 가는구나.
(下略)28)
이 작품에서도 새와 구름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큰 들판에 새 는 멀리 날아가고 높은 산에 구름은 더디게 넘어가는 장면의 묘사가 단 순한 정경의 묘사가 아니라 새와 구름처럼 자유자재의 모습에 대한 강 한 희구를 담고 있다. 역시 시적 자아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에의 갈망 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龍門의 이러한 愁獨은 결국 서울을 떠나 있어야만 하는 상황 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겠다. 그의 작품 「自臨津 向祖江下」
29)의 경련과 미련을 보면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영성을 떠나 임진강을 거 쳐 조강으로 향하면서 느낀 감회를 노래한 이 작품에서 서울이 가까워 질수록 客愁는 완전히 줄어들어 기분이 高揚됨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 면 서울을 떠나 영성으로 향할 때 客愁는 더 커지고 깊어짐을 말한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용문의 愁獨은 전적으로 서울 떠나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인한 것으로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젊은 나이에 겪은 기묘사화의 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물론 여기에 개 인사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28) 龍門先生集 卷一, 「感興寄知己」 171쪽
29) 龍門先生集 卷一, 「自臨津 向祖江下」 “夜來石壁泊 曉向海門行 舟聞缺楫響 村送 午鷄聲 京洛山愈近 雲天雨乍晴 客愁全爲減 誰識此時情(밤에 석벽에다 정박하고 새벽 에 해문을 향하여 가네. 배는 노 젓는 소리 들리지 않고 마을에선 한낮의 닭 소리 보내네. 서울의 산이 더욱 가까워지니 구름 낀 하늘 비가 살짝 개네. 나그네 근심 온전히 줄어드니 이때의 심정 누가 알리오?)” 169쪽
2. 仙界의 志向과 持續的 葛藤
현실에서 당면하는 束縛과 不自由스러운 상황을 새나 구름과 같은 자연 물에 기대어 벗어나려는 것은 어쩌면 일시적인 慰安에 그칠 뿐이라는 차 원에서 좀 더 高次元的이고 高尙한 방법의 모색 결과 찾은 것이 仙界로의 志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 고 현실적 고통과 압박이 클 때 찾는 세계가 바로 신선의 세계이다. 그런 데 龍門의 경우에는 진정한 선계의 지향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難關을 벗 어나서 정신적인 안정을 취하기 위한 方便的 志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확고한 신념에 찬 선계의 지향이 아니라 도피의 방편적 수 단으로 사용하다 보니 곧이어 선계에 대한 지향과 현실적인 처지 사이에 서 持續的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다소 어정쩡한 상황이 나타난 다. 물론 여기에는 儒者들의 仙界에 대한 認識의 不徹底나 근본적인 肯定 의 限界가 있기도 하지만 용문의 경우는 철저하거나 긍정적 인식으로서의 선계지향이 아니라 방편적, 수단적 借用의 흔적을 엿볼 수 있겠다. 아래 에서 이 점을 확인해 보자. 먼저 李白이 지은 擬古詩 12수에 차운한다는 제목의 두 번째 작품인 「次李謫仙擬古韻二首」란 제목의 작품을 보자.
「次李謫仙擬古韻二首」
仙人控玉虯 신선은 규룡을 당겨서 타고
鸞鳳翔雲岑 난새와 봉황은 구름 낀 산을 나는구나.
下視人間世 인간 세상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茫茫何處尋 아득하기만 하여 찾을 곳이 없구나.
明月吸瓊漿 밝은 달 아래에서 좋은 술을 흡입하고 松風彈瑤琴 소나무 바람 불 때 거문고를 연주하네.
思之不可見 아무리 생각을 해도 볼 수가 없으니 緬焉傷我心 아득히 생각함에 내 마음만 상하네.
嗟哉利名客 슬프다. 이익과 명예를 좇는 나그네 生涯倚黃金 한 평생을 황금에다만 의지하네.
浮榮眞暫耳 뜬구름 같은 영화 참으로 잠시일 뿐 白首空歲月 흰 머리로 공연히 세월만 보내는구나.
寄語同心友 마음을 같이 한 친구에게 말을 붙이니 此道未宜忽 이 도를 마땅히 소홀하게 말지어다.30)
예시 작품 1구에서 8구까지는 신선처럼 높은 곳에 올라가 인간 세상 을 내려다보는 것을 노래하면서 동시에 자연 속에서 지내는 생활의 일 면을 그리며 마음이 상하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신선의 경지보다 자연 속에서의 생활을 긍정하는 부분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바로 밝은 달 아래에서의 飮酒와 松風이 불 때의 거문고 연주가 그것이다. 인간 세상 을 내려 보았으나 茫茫하여 찾기가 어렵다는 호소와 생각해도 볼 수가 없어서 마음이 상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9구 부터 마지막 구절까지는 儒道를 떠나 이익을 추구하는 무리에게 이익 추구의 허망함을 말하고 儒道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당부를 담고 있다.
황금으로 대표되는 이익과 명예는 뜬구름과 같은 영화일 뿐으로 이것을 추구하느라 백발이 될 때까지 세월을 보내는 것은 헛된 짓이라고 여기고 마음을 같이하는 친구에게 儒道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勸誘함 으로써 儒道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은 잠시 신선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가지기도 하였으나 결국 儒道의 길을 固 守하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심적 갈등을 겪고 있으며 仙界에의 志向이 목적이 아니라 方便的 手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겠다.
연이은 다음 작품도 살펴보자.
(前略)
仙人邀相呼 신선이 서로 불러서 맞이하면서 遺我白玉飯 내게 백옥 가루로 지은 밥을 주네.
食之欲輕擧 밥을 먹으니 몸이 가벼워지려 해서 更覺塵世遠 다시 티끌 세상과 먼 것을 깨닫겠네.
飄颻自不定 나붓거려서 저절로 정해지지 아니하니 滅影何時返 그림자 없어진 어느 때에 돌아오려나?31)
예시 작품은 신선이 준 白玉飯을 먹고 몸이 가벼워지며 塵世를 멀리 떠난 것처럼 느끼게 되었으나 결국 인간 세상으로의 복귀에 대한 강한 의지를 행간에서 읽을 수가 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인 ‘滅影何時返’에서
30) 龍門先生集 卷一, 「次李謫仙擬古韻二首」 174쪽 31) 龍門先生集 卷一, 「次李謫仙擬古韻二首」 174쪽
인간 세상에로의 回歸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읽을 수 있겠는데 이것은 그만큼 시적 자아가 仙界와 人間界 사이에서 어느 한 세계로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彷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가을밤에 회포를 말한다.’ 라는 제목의 五言古詩에서도 신선 세계를 동경하나 곧바로 떠날 수가 없는 고민을 읽을 수 있다.
「秋夜言懷」
我性不諧世 내 성품이 세상과는 맞지 않으니 高想在雲林 고상한 생각이 운림에 있다네.
淡泊敦素履 담박함은 내 본분을 돈독하게 하고 幽閑保此心 유한함은 이 마음을 보존케 하네.
有時發浩歎 때때로 크나큰 탄식을 발동하니 所懷古非今 생각하는 바가 지금이 아닌 옛날이네.
淳風日已遠 순박한 풍속이 날마다 이미 멀어지니 大朴何由尋 크게 순박함을 무엇으로 하여 찾을꼬?
飄飄鳳皇侶 표표하게 봉황을 짝으로 삼아서 冥棲玉山岑 옥산 산봉우리에 은거하였다네.
丹桂雜珠樹 단계에 구슬 나무가 섞여 있어서 綵雲深復深 채색 구름이 깊고도 다시 깊다네.
浮遊戲三淸 여기저기 놀면서 삼청을 희롱하니 下界無遺音 인간 세상에 남긴 소리가 없다네.
嗟哉不可往 슬프다! 갈 수가 없으니
佇立空哀吟 우두커니 서서 공연히 슬피 읊조리네.
古人貴自晦 고인들은 스스로 숨는 것 귀하게 여겨 被褐懷珍金 갈포를 입어도 진귀한 금을 품었다네.
去矣勿復疑 떠나 버리고 다시는 의심하지 않으리.
富貴非所欽 부귀는 부러워할 바가 아니라네.32)
예시 1구에서 14구까지는 현실을 떠나 신선 세계로 지향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순박한 풍속이 사라져서 현실에서는 도저히 그 拙朴한 가치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인간세계의 煩雜함을 떠나 仙 界로의 지향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그렇지만 15구와 16구에서는 떠날 수 없는 단호한 현실적 입장이 드러난다. ‘슬프다! 갈 수가 없으니 우두 커니 서서 공연히 슬피 읊조리네.’라는 표현에서 ‘갈 수가 없다.’ 와 ‘공
32) 龍門先生集 卷一, 「秋夜言懷」 171쪽
연히 슬피 읊조리네.’ 라는 표현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나 그럴 수가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17구에서 마 지막 구절까지를 보면 다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희망을 노 래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두 구절에서는 세속적 가치를 완전히 떠나는 것을 의심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장면에서 떠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공 허한 외침을 내지르는 龍門의 심각한 갈등을 엿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때로는 신선 세계에 대한 강한 희구와 갈망을 하면서도 일 정하게 갈등을 겪기도 한다. 그만큼 儒者로서의 본분을 지키려는 현실적 인 자각과 强固한 현실 앞에서 답답함을 느껴 그것을 벗어나려는 수단으 로서의 신선 세계에 대한 지향 사이의 고민과 갈등이 드러나고 있다. ‘전 사에서의 회포를 쓰다.’ 라는 제목의 작품을 통해 이 점을 확인해 보자.
「田舍書懷」
空山歲云暮 텅 빈 산속에 한 해가 저무니 落葉飛無數 떨어진 나뭇잎 무수히 날리네.
淸風度前溪 맑은 바람은 앞 시내를 건너오고 明月來座右 밝은 달은 오른쪽 자리로 오네.
深林鳥號群 깊은 수풀엔 새들이 무리를 부르고 晴天雁叫友 갠 하늘엔 기러기가 벗을 부르네, 翛然長松下 갑자기 키 큰 소나무 아래에서 坐臥仍成趣 앉고 누우니 그대로 취미가 되네.
富貴已籧篨 부귀도 이미 추악한 것이거늘 功名非我有 공명은 내 소유가 아니라네.
丹丘在縹緲 아득히 먼 곳에 단구가 있는데 仙鶴歎未遇 신선 학을 만나지 못함을 탄식하네.
良朋亦悠哉 좋은 벗들은 또한 유유한지라.
白日空回首 백주에 공연히 머리를 돌리네.
雲歸舊山碧 구름은 푸른 옛 산으로 돌아가고 水流滄江口 물은 창강 어귀로 흘러가네.
蕭散得餘意 소산한데다 넉넉한 뜻을 얻으니 心源淨不垢 마음 근원은 때 없이 깨끗하네.
永言懷君子 길이 군자를 생각하노니
莫使幽期負 그윽한 기약을 저버리지 않으리.33)
33) 龍門先生集 卷一, 「田舍書懷」 171쪽
오언 고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용문은 田舍로 물러나 은거하며 속세의 부귀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단념하고 신선 세계를 지향 하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부귀도 이미 추악한 것이거늘 공명은 내 소 유가 아니라네.’ 라는 구절에서 용문이 이미 세속적 가치에 대한 단념 내 지는 초월의 인식을 엿볼 수 있고 ‘아득히 먼 곳에 단구가 있는데 신선 학을 만나지 못함을 탄식하네,’ 라는 표현에서 신선 세계를 지향하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는 신선 세계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러한 세계 로의 지향에 대한 의지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어서 선계에 대한 지향을 확인할 수 있겠다.
다음은 ‘스스로 답답하게 여긴다.’ 라는 제목의 「自憫」이란 작품을 보 자. 형식은 오언과 칠언이 混在된 雜詩의 형식을 보인다. 답답한 현실을 떠나 신선 세계를 지향하려는 용문의 의지가 읽히는 작품이다.
「自憫」
太息復流涕 크게 탄식하고 또 눈물을 흘리니 吾生眞可憫 내 인생이 참으로 답답하구나.
欲語恐多談 말하려 해도 말 많을까 두렵고 欲默恐不忍 가만히 있자니 참지 못할까 두렵네.
少年不知行路難 소년 시절엔 가는 길 어려움 알지 못해 觝觸藩籬卽見窘 울타리에 뿔을 받아야만 군색함을 알리라.
邇來衰病臥空屋 근래에 쇠약한 병으로 빈집에 누우니 咄咄平生意難盡 괴이하게 평생의 뜻 다하기가 어렵네.
功名於我已非分 공명은 나에게 이미 분수가 아니고
學道無成長蠢蠢 도를 배워도 이룸이 없어서 길이 굼뜰 뿐이네.
雲山何處不可往 구름 낀 산 어느 곳인들 가지 않으랴마는 在世未免爲物引 세상에 있으면 사물의 유혹 면키 어렵네.
安得翻飛從赤松 어떻게 하면 뒤쳐서 신선 적송자를 따라가서 棲神恬漠養玄牝 정신을 담박하게 하여 현빈을 기를까?34)
예시의 오언으로 구성된 표현에서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읽힌다. 탄식과 눈물로 點綴된 현실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말을 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침묵하기도 어려운 進退兩難의 현실에서
34) 龍門先生集 卷一, 「自憫」 174쪽
갈등하고 있다. 거기다가 쇠약한 병으로 앓기까지 하고 도를 배워도 진 척이 없어서 답답하기만 한 상황이다. 세상에 있으면 여러 가지 사물들 의 유혹을 면하기가 어려우니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거린 다. 그래서 신선인 赤松子를 따라 정신을 澹泊하게 하여 玄牝을 기르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생긴다. ‘어떻게 하면 뒤쳐서 신선 赤松子를 따라가 서 정신을 담박하게 하여 현빈을 기를까?’ 라는 표현을 통해 그만큼 强 固한 현실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吐露하고 사물의 유혹이 없는 신선 세 계를 희구하려는 굳센 갈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만 의문형 문장을 통하여 비록 신선 세계를 지향하고자 하는 의지는 드러내고 있으나 현 재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용문은 현실에서의 고민과 갈등이 너무 나 크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는 수단과 방편으로서의 선계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신선 세계로의 지향이 제대 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신선 세계로의 지향과 현실의 자기 처지 사이에 서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갈등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만큼 현실적 고통이 강렬하여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3. 名宦의 謝絶과 澹泊의 追求
이 절에서는 현실에서의 벼슬살이를 謝絶하고 澹泊한 삶을 추구하려 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시적 자아는 자신 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현 실 앞에서 절망과 좌절을 느끼고 현실을 떠나 아무런 욕심도 부리지 않 으며 자연 속에 묻혀서 담박한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만큼 모순된 현실이 주는 고통이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따라서
현실적 고통의 무게를 벗어나 담박한 삶을 추구하려는 용문의 강한 의
지를 읽을 수가 있겠다. 먼저 ‘영성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느
낌이 있어서 지은 두 수’ 라는 오언율시 작품을 보자. 첫 번째 작품이다.
「思歸寧城 有感而作 二首」
物色驚春晩 늦은 봄의 물색이 사람을 놀라게 하나 寧城猶未歸 영성 땅을 오히려 돌아가지 못했네.
孤雲依嶺樹 외로운 구름은 고개의 나무에 의지해있고 芳草掩荊扉 꽃다운 풀은 가시 사립문을 가려있네.
山水心常靜 산과 물에 마음은 언제나 고요해지는데 功名事轉非 부귀공명의 일은 점점 그릇되고 있네.
病兄何日起 병든 형님 어느 날에 털고 일어나서 雙雁任高飛 두 기러기가 마음껏 높이 날아볼꼬?35)
예시 작품 두련에서는 떠나고자 하나 떠나지 못하는 심적 갈등을 드 러내고 있다. 현재 자기가 거처하고 있는 곳의 物色도 아름다운데 돌아 가고자 하는 영성 땅의 물색은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猶’라는 표현으로 읽을 수 있고 현재까지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서 시적 자아는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함련에서는 영 성의 경관과 상황에 대한 짐작을 노래함으로써 그 갈등을 高調시키고 있다. 외롭게 둥실 떠가는 구름은 고개 위의 나무에 걸려 있고 향기가 나는 풀은 가시 사립문을 가리고 있는 장면을 짐작하고 있다. 구름이 걸 려 있는 나무는 고갯마루에 덩그렇게 서 있는데 바로 이 나무는 속세에 매여있는 자신의 상징으로도 볼 수가 있겠다. 현실에 매여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니 돌아갈 수가 없고 따라서 영성의 가시 사립문에는 꽃 다운 풀이 우묵하게 나 있는 장면을 상상만 하는 것에서 시적 자아는 돌아가고자 하나 가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처지에서 더욱 갈등만 겪고 있다. 경련에서는 자연과 인간을 대비시켜 자연이 인간보다 나은데 돌아 가지 못하고 있는 답답함을 넌지시 나타내고 있다. 山水로 대표되는 자 연은 사람의 마음을 항상 고요하게 해주는데 인간 세상 富貴功名은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점점 그른 곳으로 굴러가기 때문에 추구하기 어려운 가치이다. 따라서 손에 쥐기 어려운 무지개를 좇아가기보다 마음을 안정 시켜 주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나은데 현재는 그러지를 못해 갈등을 겪는 것이다. 마지막 미련에서는 병든 형과 나란히 영성으로 돌
35) 龍門先生集 卷一, 「思歸寧城 有感而作 二首」 169쪽
아가 마음껏 자유를 謳歌하고픈 강렬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현재는 영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으나 형과 함께 돌아갈 날을 苦待하며 자연 속에서 세속의 名利를 벗어나 澹泊한 생활을 營爲하고자 하는 시적 자아 의 강렬한 소망을 읽을 수 있겠다. 그리고 두 번째 작품을 보자.
歸田知有日 전원으로 돌아갈 날이 있을 줄 아니 何必待成功 어찌 반드시 성공을 기다릴 것인가?
把釣呼溪友 물가에 사는 벗을 불러 낚싯대를 잡고 尋山問牧童 목동에게 길을 물으며 산을 찾아가네.
雲埋古洞白 구름이 뒤덮은 옛 골짜기는 하얗고 花壓石門紅 꽃이 가득 핀 돌문은 색이 붉구나.
夢想今如許 꿈을 꾸는 생각이 지금 이와 같으니 浮生任轉蓬 굴러다니는 쑥처럼 인생을 살까?36)
예시 작품 두련은 성공의 여부를 따질 것 없이 歸田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성공을 기다리다 보면 예상치 못한 橫厄을 당할 수도 있는 시기여서 전원으로 돌아감을 서두르고 있다. ‘何必’이란 시어가 歸田의 必要性과 切 迫性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세상 인정은 錦衣還鄕을 귀하게 여기지만 그것 은 태평한 시기의 일이고 지금은 非常한 시기이기 때문에 성공을 기다려 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하겠다. 함련과 경련은 寧城에서의 생활을 상상하고 있다. 벗들을 불러 시냇가에 가서 낚시하고 목동에게 길을 물어가며 산을 찾아 나서는 등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을 憧憬하고 있다. 오래된 동네는 구름이 뒤덮어 하얗고 돌문은 꽃이 흐 드러지게 피어 붉게 빛나는 朔寧의 경관을 아울러 묘사하고 있다. 歸田하 면 아무런 제약도 없이 마음껏 바라보고 누릴 수 있는 情景이다. 미련에 서는 歸田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현재처럼 꿈만 꿀 것이 아니라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삶은 다북쑥이 바람에 굴러다니 는 것처럼 뿌리 뽑혀 定處가 없는 삶이다. 현실적, 정신적으로 뿌리가 뽑 혀서 정착하지 못하는 불안한 현실의 삶을 접고 歸田을 해야 했기 때문에 꿈만 꾸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하고도 强烈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36) 龍門先生集 卷一, 「思歸寧城 有感而作 二首」 169-170쪽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용문은 세속적인 名利의 하나인 名宦에 대한 꿈을 접고 자연 속에서의 澹泊한 생활을 營爲할 수 있는 寧城으로 의 歸還을 강력하고도 절박하게 希求하고 있다. 그만큼 현실 속에서 느 끼는 고통과 고민의 강도가 크기 때문에 용문의 歸田에 대한 의지는 강 하다고 하겠다. 이러한 점을 위의 예시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Ⅳ. 結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