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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 리터러시 페스티벌 수상작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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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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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대학혁신지원사업

단국 리터러시 페스티벌 수상작 모음집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죽전캠퍼스 글쓰기센터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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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대학혁신지원사업

목 차

1. 그들과 나, 우리가 꿈꾸는 사회 ··· 김건우 / 1 2. 21세기 트루먼 쇼 ··· 이소정 / 9 3. 성숙한 시민사회를 향하여 ··· 고은서 / 13 4. 동·서양 사상의 뿌리에서 발굴한 반성적 사유의 토대 ··· 김 헌 / 17

: 오래된 미래인 고전은 한국 사회의 공동체 의식 분열에 무엇을 시사하는가

5. 난장이는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가 ··· 손승연 / 25 6.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 이재원 / 31

: 국민표결제와 Text Emoticon Algorithm

7. 자유의 시대 ··· 정민정 / 45 :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안전은 양립할 수 있는가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죽전캠퍼스 글쓰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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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나, 우리가 꿈꾸는 사회

김건우(체육교육과)

사회란 무엇일까? 우리가 속한, 그리고 우리만이 속한 사회는 보통 구성원이 있고 그 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있으며 어떠한 기준에 의해 나눠진 계층이 존재한다. 사회는 그 것을 이루는 사람의 공유물이기도 하고, 법과 질서에 의해 통제받는 것이기도 하며, 자 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여 자아 성장과 구성원의 존경을 받을 수 도 있는 곳이다. 미래에 유능한 교육자가 되기를 꿈꾸는 나는 선천적으로 가진 능력이 나 재물보다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과 노력을 통해 사람들이 각자 자신 의 능력을 바탕으로 인류 사회 발전의 한 역할을 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누구나 평 등하고 질 좋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공교육이 있는 곳이 바로 사회라고 믿는다. 모든 사람은 같은 사회를 살아가지만 저마다 다른 사회를 꿈꾸며 살아간다. 그리하여 사회란 명확히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고 하나이면서도 여러 개이며 우리를 수렴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회를 수렴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사회는 각자가 꿈꾸는 것과 다르다. 나의 사회가 그렇고 난장이 김불이(金不伊)의 사회가 그렇고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사회가 그렇다.

시대, 국가, 나이, 성별을 막론하고 대부분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와 현실의 사회 는 거리가 멀다. 난장이가 지향하는 사회는 ‘사랑’의 사회이다. 그곳에서 모든 사람은 서로를 사랑으로 보살피고 모두에게 동등한 사랑을 준다.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는 이곳에서는 차별‘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난장이가 비교적 현 대의 사람이라면 소크라테스는 고대 시대의 사람이다. 소크라테스가 꿈꾸는 사회이자 정체(政體)는 ‘정의’의 사회이다. 정의의 사회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에 맞는 역할을 충실히 하며 피치자는 치자를 따르고 치자는 피치자와 국가 전체를 위한 막중한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 정의이고 이는 가장 높은 미덕으로 칭송받는다. 이 사회에서는 빈부의 격차로 인한 갈등 없이 모두가 국가에 이바지하는 삶을 산다. 그러 나 난장이와 소크라테스가 사는 사회 어디에서도 그들이 원하는 사회를 찾을 수 없다.

난장이의 사회에서 은강 공장의 사용자는 노동자를 수단으로 이윤만을 위해 살아가며 사랑 대신 부, 성욕, 지배가 사람을 채운다. 이곳에서 난장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래서 그는 달에 가려 한다. 소크라테스의 사회도 그가 꿈꾸는 사회와는 다르다. 치자 는 그가 누릴 수 있는 권력과 부를 수단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여성과 피치자들을 차별 하는 사회가 그가 살아가는 사회이다. 이처럼 우리 셋이 살아가는(살아갔던) 사회는 사 랑, 정의, 법, 교육, 노력의 미덕이 존중받는 일반적인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국가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 두 권을 선정한 이유는 시대, 국가가 다르고 특히 ‘계층’이 다른 인물이 사회를 관조하는 시선과 사상을 통해 그들이 추구 하는 이상적 사회가 얼마나 같거나 다른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앞서 말했듯 사회에는 계층이 존재한다. 그것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이 되었든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상류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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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층으로 구분되고 그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도 다르다. 국가에 등장하는 소크라테 스와 이 책을 쓴 플라톤은 당시 그리스의 귀족이자 철학자였다. 그들의 삶에서 조급하 거나 긴장되거나 삶이 위협받는 순간은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야기에서 그들은 노 예를 데리고 신을 숭상하는 축제에 다녀오고, 다른 귀족 친구들을 만나 편안한 자리에 서 ‘정의’란 무엇이고 옳은 국가는 무엇인지, 훌륭한 지도자와 그를 보필하는 사람들 에 대해서 진지한 고찰을 한다. 그들은 객관적인 태도와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사회 를 비판한다. 반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주인공인 난장이와 그의 가족은 무 허가 철거 지역의 집에 살며 평생 노동만을 하는 하류층이다. 그들의 삶은 조급하고, 긴 장되고, 삶이 위협받는 순간이 대부분이다. 아니 평생 그런 순간뿐이다. 이들은 냉철한 이성보다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투쟁하고 사회를 바라본다. 두 부류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계층의 두 부류 모두 자신의 사회가 완전하지 않으며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이 부분에 주목 하여 이들의 생각을 자세히 살펴보고 우리 사회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국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50살의 소크라테스와 케팔로스의 아들인 폴레마 르코스, 그리고 아리스톤의 아들인 아데이만토스와 글라우콘, 제1권의 주요 대담자인 트 라쉬마코스 등의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이들은 대부분 소크라테스와 대담하고 조언을 구 한다. 1권부터 10권까지의 내용이 있는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문답법을 활용하여 상 대와 대담하는데, 처음에는 정의(正義)에 대해서 트라쉬마코스와 소크라테스가 논한다.

트라쉬마코스는 정의를 “강자에게 유익한 것”이라 하며 불의(不義)한 사람을 융통성 있고 훌륭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은 고매한 선의의 멍청한 사람이라 한다. 그 이유는 강 자가 자신에게 유익한 것만을 법으로 제정하여 약자들이 따르게 하고 이를 어기면 벌을 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의미의 선장, 의사, 치자란 어떤 것인가 정의한 후에 그 진정한 선장은 선원들을 위해, 의사는 환자를 위해 행동하는 것처럼

‘진정한’ 치자는 자신이 아니라 피치자를 위해 법을 제정한다는 설명으로 그의 주장 을 반박한다. 트라쉬마코스가 물러날 때쯤 글라우콘이 정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기 를 요청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의와 정의로운 사람과 정의로운 국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 된다.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생성되는 것은 우리 각자가 자족하지 못해 다른 많은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면서 사람은 태어날 때 금, 은, 흙을 내재하고 태어나는데 금을 내 재한 사람들은 국가의 수호자이자 치자, 철학자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나머지 사람들 은 각자가 가진 능력, 예를 들어 신발 제작 기술, 항해술, 의술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하 며 살아간다고 한다. 이를 ‘최선자 정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국가에서는 금을 내 재한 남자와 여자를 선발하여 어렸을 때부터 최고의 교육을 통해 수호자로 성장시킨다.

최고의 교육은 시가 교육과 체력 교육, 그리고 수학과 과학교육이다. 이를 통해서 금을 내재한 사람은 수호자가 되어 젊었을 때는 국가의 전사가 되며 그 후에는 철인(哲人)이 되어서 다른 일에서 벗어나 오직 국가 발전을 위해 살아간다. 이들은 모두 공동생활을 하며 시민들이 이들의 의식주를 지원한다. 따라서 수호자들은 사유재산이 전혀 없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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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아이를 낳아도 그 부모를 모르게 하고 수호자가 낳은 아이라도 금 이외의 것을 내 재하거나, 수호자 계급 외에 시민이 낳은 자녀라도 금을 내재한 아이는 그 품성에 맞게 자신의 역할을 맡는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통해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수호자들이 다스 리는 나라에서 절제란 피치자들이 치자(수호자)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며 정의란 구성원 모두가 다른 일이 아닌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한다. 소크라테스는 최선자 정체와 대비되는 부정적인 4가지 정체 즉, 승리와 명예를 사랑하는 ‘스파르테식 정체’, 부를 사랑하는 ‘과두제 정체’, 자유를 사랑하는 ‘민주주의 정체’, 그리고 독재자의 ‘참 주제 정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이들 정체는 내부 분열로 인해 결국 쇠퇴할 뿐이 다.

국가의 저자인 플라톤과 등장인물 소크라테스가 꿈꾸는 사회는 빈부격차로 인한 문 제가 나타나지 않는다. 지도자는 한 해 동안 그들이 필요한 만큼만 모든 시민의 지원을 받으며 생활하므로 사유재산이 없고 축적할 부가 없다. 시민들은 태어난 대로 자신의 능력을 통해 살아가므로 재산이 많다고 해서 직업을 바꾸지 못한다. 이러한 사회는 무 의미한 경쟁이 없으며 치자와 피치자로만 계층이 형성될 뿐 직업의 차이 없이 평등한 사회이다. 수호자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존경받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고귀하고 다른 사람이 미천해서가 아니라 수호자들은 국가를 올바르게 발전시키고 존립하게 하는 막중 한 책임을 맡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정의, 절제, 올바름, 정신적, 아름다움이 존경받는 사회이며 저자인 플라톤이 구현하고자 했던 사회이며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다.

전자가 조금 더 추상적인 형태의 내용이라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우리에 게 더 현실적인 내용이다. 이 책은 1960-70년대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와 인간소외를 배경으로 하층민들의 삶을 그려나가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은 철거 대상 건물에 사는 난장이 가족, 그들을 이해하는 사람이자 윤호의 전 가정교사였던 지섭, 상대적으로 부유한 집안의 윤호와 은희 등이다. 책에서는 이들의 이 야기가 교차하며 등장한다. 이렇게 서술되는 이들의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난장이 가족의 영수, 영호, 영희 남매는 학교를 중퇴하거나 가지 못하고 매일 노동을 해서 돈을 번다. 난장이 가족 모두가 일하지만, 필수적인 생활비도 메우지 못한 다. 난장이는 평생 불행한 삶을 살다가 자살한다. 그들의 선조의 선조가 지은 집은 철거 된다. 영희는 자신의 집을 찾기 위해 집을 산 사내를 쫓아가 잠자리를 갖고, 영수는 공 장에서 자신과 동료들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자 공장의 사장을 죽이려 하지만 그 와 닮은 동생을 죽이고 결국 사형을 선고받아 생을 마감한다. 그들과 다른 입장에서 서 술되는 이야기도 나온다. 윤호는 대입 준비를 위해서 집에 가정교사를 들이며 공부를 위한 자신과 같은 또래의 모임과 학원에 간다. 그 아이들은 공부와 사교를 위한 모임을 하고, ‘솔벤트’를 흡입하고, 잠자리를 가진다. 은강기업 회장의 아들인 경호가 서술하 는 부분은 형제들과의 대립에서 지면 설 자리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자신의 사 촌이 약한 사람이라 견제하지 않는다는 얘기나 들끓는 성욕을 말하는 서술이 대부분이 다. 이들은 노력과 재능으로 성공한 자신들을 사회악이라고 여기는 노동자들에게 불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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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감정을 표현한다. 같은 시대의 사람이라도 생각하는 부분이 다른 것을 작가는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층민인 난장이 일가와 그들의 주변인들의 모습과 생각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공장의 이윤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잠 안 오는 약을 먹어가며 새벽까지 일한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한 달 가족의 생계비를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영수는 책을 많이 읽고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었 지만, 동생의 ‘형은 이상주의자야.’라는 말에 화를 내며 ‘우리는 난장이의 아들이 야.’라고 한다. 이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인정받지 못하는 하류층들의 삶을 대 변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삶을 살며 평생 을 고통과 불안 속에서 살았다.

그들은 사람다운 삶을 원한다. 난장이는 사랑의 사회를 꿈꿨다. 그곳에서는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사랑으로 비를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룬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일하며 행복하게 살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관 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난장이가 꿈꾸던 사회도 결국 하층민이나 상층 민이나 모두 똑같은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사는 사회인 것이다. 난장이의 부인, 영수, 영 호, 영희, 지섭, 공장의 노동자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들 모두가 계층에 따라 차별받지 아니하고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경애와 같이 잘못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경호와 같이 자신들이 노력으로 일궈낸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을 악당 취급한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작가는 이러 한 여러 상황을 책 속에 풀어냄으로써 당시 사회의 상황이나 문제점을 비판하고, 차별 없고 사랑으로 서로를 보살피는 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다.

나는 두 권의 책을 통해서 서로 다른 등장인물이 당시 사회의 사태와 문제점들을 간 접적으로 알 수 있었으며,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본 후 여러 문제점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평등한 교육의 부재이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 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수하고 평등한 교육을 바탕으로 뛰어난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다. 많은 인재가 사회에 관여할수록 자연히 사회가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부의 차이에 따른 교육 불평등이 너무 심하다. 앞서 소크라테스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 이 평등한 교육을 통해서 금을 내재한 자를 선발하는 것과 달리 우리 사회는 부자의 자 녀는 마치 금을 내재한 것과 같이 온갖 사교육을 동원한 최고의 교육을 받는데 설령 금 을 내재한 자녀라고 해도 부모가 교육에 투자할 수 없는 수준의 아이는 흙을 가진 자녀 로 취급받는다. 마치 책을 많이 읽고 열린 시각을 가진 영수가 ‘난장이의 아들’이라 는 이유로 윤호와 똑같은 교육 기회를 갖지 못한 것과 같다. 시간이 지나며 이들의 격 차는 엄청나게 벌어진다. 이러한 교육 선발 제도는 결국 뛰어난 인재를 선발하지 못하 고 빈부격차만 심하게 만드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교육 시스템 이 결코 올바르게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 기술에 차별을 두는 문화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은 우리 삶에서 필수적인 농사 기술이나 신발을 만들거나 음식을 만드는 것에서 정치와 경영이나 의술 등 모든 인간의 기술을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만들어지고 발전하는 것에는 모든 기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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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을 하고 수호자를 포함해서 이들 모두가 각자의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 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자동차, 방직 산업 등의 기술이 중심에 있었고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가진 노동자가 있 었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효율적인 업무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모든 기술은 사회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그러 나 우리 사회는 기술을 차별한다. 법, 의술, 정치, 과학과 같은 영역은 높은 학문으로 대 우하면서 농업, 상업, 공업 기술은 격이 낮고 미천한 등급으로 분류한다.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는 변호사, 의사, 정치가 같은 직업은 존경하고 품격 있다 고 생각하는 반면, 자동차 정비사나 농부와 같은 직업은 괄시하고 천하게 대한다. 이러 한 문화의 사람은 자연스레 특정 학문만을 선호하고, 한정된 자리에 원하는 사람은 더 많아져 경쟁이 치열해지고 기술 간의 격차만 벌어질 뿐이다.

세 번째, 정의와 윤리가 존중받지 못하는 인간성이다. 앞서 설명한 두 가지 문제점으 로 인해 우리 사회는 제한된 직종의 사람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경쟁하고 도태되면 사회의 쓰레기로 전락하고 끝까지 살아남아도 남는 것은 없다.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자녀가 자신과 같은 길을 가도록 다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 지 않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을 성찰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며, 남을 존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미덕을 지닌 사람은 멍청이로 생각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한 사 람은 훌륭한 사람으로 여긴다. 이 사회는 소크라테스적 사고가 아닌, 정의는 고매한 선 의로 취급하고 불의를 훌륭한 미덕으로 여기는 트라쉬마코스적 사고를 정상적으로 여기 는 정의관을 지닌 사회이다. 또한 행복동 주민과 은강시 노동자에게 공감하고 그들 편 에 서서 싸우기보다는 누구나 다른 사람을 기계처럼 부릴 수 있는 사용자가 되고 싶어 하는 몰인간성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세 가지의 문제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는 순기 능보다 역기능을 훨씬 더 많이 만들어내어 존립 불가능한 사회이다.

물론, 무수히 많은 문제점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여 이들을 다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앞선 세 가지를 해결하는 것으로도 우리 사회에 많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해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교육 수준의 평준화와 공교육 장려 정 책이다. 이는 첫 번째 문제인 교육의 기회 측면에서의 대안이다. 우리 사회의 입시 제도 는 학생의 성적 수준이 계속 높아지면서 상향평준화되고 있으며 이 중심에는 엄청난 사 교육이 성행하고 있다. 입시 자체가 어떻게든 학생을 줄 세우는 상대평가 제도이기 때 문에 국가에서는 대다수의 높은 성적의 학생을 변별하기 위해 높은 수준, 많은 범위의 문제를 내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험 제도를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평가 기준은 학문의 핵심적인 부분을 묻고 학생이 이를 숙지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학 영역을 평가할 때는 이차방정식을 활용하여 점차 높아지는 수준의 문제 를 주고 점수 득점 1등~10등을 가려내는 기준이 아니라, 이차방정식의 기초를 이해하고 더욱 심화 과정의 문제를 학생이 온전하게 이해했는가를 기준으로 점수를 산출하고 평 가해야 한다. 애초에 절대평가의 취지가 학생의 성취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므로 이 제도 의 시험에서는 무의미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며, 모든 학생은 각 과목의 핵심적(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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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개념과 활용을 학습하고 다른 학생보다 많은 득점을 위해 지엽적인 영역까지 무리 해서 학습하지 않아도 된다. 대학 입시 등에서의 변별력이 감소한다는 점은 국영수 등 특정 주요 과목만을 평가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평가 과목을 국어, 수학 등의 학 문과 함께 체육, 음악, 사회, 도덕 영역으로 전반적으로 확대하고 단기간의 시험이 아니 라 학교생활 전반을 준거로 해서 학생의 ‘신체적’, ‘인지적’, ‘정의적’ 영역을 종 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전인(全人)’교육을 지향한다면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사 회에서의 학생은 지나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고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교육 제도는 자연적으로 쇠퇴하고 공교육 제도가 활성화될 것이다. 공교육 제도는 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혜택이기 때문에 자연스럽 게 모든 학생이 평등한 교육을 받는 사회 문화가 형성되리라 확신한다.

두 번째, 기술 장려정책과 인식 개선이다. 이는 두 번째 문제인 기술과 학문의 불평등 문제의 대안이다. 첫 번째 대안에서도 설명한 바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시험 등에서 자주 평가하는 특정 영역의 수준만 절대적으로 높고 그 외의 다수 학문에 대한 관심도 는 매우 낮다. 따라서 무리한 경쟁이 끊이질 않고 불평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해결 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특성화 계열 진학이나 기술 학습을 장려하고 충분한 지원을 받 을 수 있는 장학 제도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에서

‘자유학기제’를 확대 도입해야 한다. 자유학기제란, 중학교 과정 1학기 정도를 지필고 사를 하지 않고 정규 수업 시간 또는 방과 후에 다양한 체험을 통해 진로 가치관 확립 을 돕는 제도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가치관을 확립하는 어린 시절부터 충분한 제도 적 지원과 시간을 제공하고 성적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어 많은 영역과 직종을 직접 체 험하고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제도와 교육 수준 평등화가 함께 이루어진다면 학생들은 가정과 학교, 사회의 압박 없이 어렸을 때 부터 본인의 흥미과 적성을 개발할 수 있고, 만약 공부하는 영역을 바꾸고 싶더라도 충 분히 다른 이들과 같이 공부하여 따라잡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마지막 세 번째, 윤리 관련 교양 과목 확대와 국가적 캠페인 활동이다. 이는 세 번째 문제인 인간성 소외의 대안이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이수해야 하는 과 목으로 정의, 양성평등, 인권 등과 같이 인간 사회, 그리고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덕목 을 가르칠 수 있는 필수 과목을 제정해서 학생이 이수하게 한다. 이때 이론 중심이 아 니라 현장 체험의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면 학생들이 정규 수업 시간에 직접 봉사활 동,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서 각자의 방법으로 우리 사회의 미덕에 대해 체험하고 인식 을 개선할 수 있다. 이때에는 ‘블록 타임제’와 같은 제도를 통해 시간 누수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 학교뿐만 아니라 국가에서도 주도적으로 인간성 있는 사회 문 화를 위해 적극적인 캠페인을 해야 한다.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유튜브’ 등의 동영 상 채널을 통한 공익광고, 프로그램 등을 통해 사람들이 즐겁게 보며 집중할 수 있는 여러 플랫폼을 조성하고, 다양한 사업과 자발적 프로그램을 조성하여 사회의 구성원이 주변에서 쉽고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의식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이번 COVID-19 사태에서 ‘덕분에 챌린지’ 등과 같은 캠페인은 쉬운 방법과 SNS를 통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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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홍보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예시와 같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공정 하게 경쟁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면 머지않아 공유되는 일반적인 개념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인식은 곧 사회를 대표하는 문 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가 지향한 최선자 정체와 난장이와 노동자들이 지 향한 인간다운 사회를 통해서 다른 시대, 다른 계층, 다른 사회 구성원의 생각을 들여다 보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았다. 그리고 각 문제점 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해보았다. 우리 사회는 엄청난 경쟁과 인간소외로 인해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고착되고 있으며, 인간 사회에 필요한 모든 학문 중 입시와 취업을 위 한 주요 과목은 사랑받고 나머지는 괄시당하고 있다. 또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 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더러운 결과’를 지향하고 정의롭고 올바른 ‘깨끗한 과정’

은 중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교육 수준의 평준화와 공교육의 활성화로 마치 금 과 은과 흙을 내재한 것과 같은 사람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 다. 또한 기술 장려정책과 인식 개선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각자의 능력을 바탕으로 자 신의 역할에 행복하게 종사하는 ‘정의’를 구현하여 자동차와 방직 기술을 가진 영수, 영호, 영희와 경영을 하는 은강 기업의 사용자 모두를 존중할 수 있는 사회를 조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아름다운 미덕인 공정함, 진실함, 타인에 대한 존중, 평등과 같 은 요소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국가적인 캠페인 활동과 배울 기회의 확대로 지혜, 용 기, 이성, 절제, 아름다움의 사회인 ‘이데아(IDEA)’적이고 ‘인간적’인 사회로의 발걸 음을 지향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찰한 우리 사회에 관 한 내용이다. 교육자를 꿈꾸는 사회인으로서 내 생각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훌 륭한 교육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대해 성찰하고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많아져 서 나와 동류의 생각을 구체화하고 수정해서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구상해 낸다면 분명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인정하는 이상 사회에 다가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된다면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와 사랑을 사랑하는 난장이도 우리 사회 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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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트루먼 쇼

이소정(경영학부)

“100%의 거짓말보다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의 배합이 효과적이다.” 독일 나치 스 정권의 선전 장관이자, 언변 기술만으로 독일 국민의 대부분이 나치를 지지하도록 선동한 파울 괴벨스의 명언이다. 최근 한 유튜버의 거짓 폭로를 담은 단 하나의 콘텐츠 에 의해 네티즌들이 선동당하고 허위 사실로 인해 다른 인물들이 피해를 본 사건이 있 었다. 파울 괴벨스가 1930년대에 선동의 파급력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까지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통통신의 발달은 나라 간의 시·공간을 단축시켰고, 정보통신 발달에 의해 방대한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는 시대까지 발전했다. 특히 사람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인 터넷에 접속 가능한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플랫폼이 발달했 고 사람들은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고 하던가. 인터넷을 활용한 통신 기기의 대중화는 실시간으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함으 로써 정보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시대를 야기했고, 사람들은 쏟아져 나오는 지식 에 무감각해지고 관심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최근 여러 플랫폼에서는 인공지능 이 사용자의 사용 패턴을 분석해 사용자의 관심 분야를 파악하고 해당 관심사와 관련된 콘텐츠를 제공하는 알고리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오히려 관심이 있는 분야에만 노출 되면서 도리어 편협한 시각을 가지게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요컨대 정 보의 무관심과 선택적 정보 수용이 합쳐질 때 인간은 선동당하기 쉬워진다.

선동이라는 사회 문제와 관련해 플라톤과 존 스튜어트 밀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고정 관념을 원인으로 보았다. 우선 19세기 자유주의 사상의 대표적인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로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개인의 사고와 판단에 대한 절대적인 믿 음이 선동이라는 사회 문제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쉽게 선동되는 계기로 작 용된다는 것이다. 그가 집필한 자유론에서 인간은 그들이 속한 집단의 권위에 대한 믿음이 견고하며 자신이 속한 집단이 다른 시대나 국가, 집단, 교회, 계급, 그리고 정당 등과 반대되는 의견을 행사하고 고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라도 부동의 태도를 계 속한다. 더불어 그는 인간에게 제약 없이 표현의 자유를 허용시킨다고 해도 분파주의의 해악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고의성을 가지고 콘텐츠를 제작해 시청자들에게 내용을 각인시키면, 후에 사실이 밝혀지고 그 사실이 보도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주입된 인식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한편 플라톤(Plato)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왜곡된 매개 혹은 개인의 편견으로부터 선동이 만연해지는 사회적 오류를 범한다고 지적한다. 그의 관념을 사회 문제와 대응시 키기 전에 ‘동굴의 비유’부터 설명하고자 한다. ‘동굴의 비유’에서 등장인물들은 모두 동굴 속에서 불을 등지고 쇠사슬에 묶여 그림자만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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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게다가 각 등장인물은 앉은 위치에 따라 그림자의 모습이 달리 보이는 상황이다. 하 지만 그림자는 실체가 아니며 실체를 보거나 이를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을 옥죄이는 쇠 사슬을 끊고 실체가 있는 뒤쪽으로 몸을 틀어야 인지 가능하다. 여기서 등장인물은 대 중, 그림자는 ‘정보의 홍수’ 또는 선동성 콘텐츠를 의미하고 그림자로만 사물을 인식 하는 대중들의 생각을 ‘의견’으로 구분 짓는다. 동굴 안의 그림자만이 실존 인물이라 는 고정관념을 뒤로하고 햇빛이 오는 반대편 세계로 나가지 않으면 그 세계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대중들도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다 보면 결코 진정한 진리를 깨달 을 수 없게 되며 이것이 선동의 시초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선동 문제는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세 관점으로 나누어 설명 가능하 다. 첫 번째는 경제성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GDP는 1조 6,463억 달러로 세계 12위를 기 록했으며, 경제성장률의 경우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1.9% 성장해 회 복세를 보였다. 이는 각종 매체에 경기회복과 미래성장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라고 보도 되었다. 하지만 같은 GDP 수치라고 하더라도 상류층과 하류층으로 양분된 모래시계형 을 띠는 경제 모형보다 중간층이 두터운 다이아몬드형이 더 발달된 국가라고 판단된다 는 사실을 아는가? 우리나라 경제는 코로나19에 각종 규제들까지 맞물려 중간 소득층이 무너졌고 대기업과 일반 중소기업 및 자영업의 격차가 심화된 상황이다. 즉 우리나라는 모래시계 경제 모형에 해당되며, 단순히 지표가 상승곡선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경제가 성장했다는 결론을 확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도 자료에는 이러한 사실이 표기되지 않았으며 이를 모르고 보도된 자료만 접한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좋다고만 인지할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한다. 표면적인 지표와 수치 상승으로 우 리나라의 경제가 긍정적으로 비춰지지만 그 이면에는 서민 경제가 죽고 부가 양극화되 는 문제가 숨어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역사적인 관점이며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독도 분쟁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각 나라는 그들의 교육 과정에 따라 책을 편찬하여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를 교과서라고 칭하며 자국에서 교과서를 편찬하는 기준은 그 나라에서 협 의를 통해 진행된다. 그러나 기술된 내용이 타 국가와 관계가 있으며, 기술 과정에서 왜 곡된 사실이 발견되면 그것은 국내적인 문제를 벗어나 국제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문제가 이 부분에 해당된다. 일본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전 제로 교과서를 편찬했고 현재의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독도는 현재 우리나라의 관리하 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교과서를 넘어서 전 세계적인 플랫폼인 google 지도까지 그 명칭을 죽도 또는 다케시마로 표기함으로써 그들의 주장을 굳혔다. 그들이 단순히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과서라는 수단을 통해 미래에 일본을 이끌어나갈 국민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존 스튜어트 밀 의 자유론에 근거하면, 일본의 독도 왜곡 기술은 자국민들에게 잘못된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투입해 절대적인 믿음으로 자리 잡게끔 만든다. 이 경우 사실이 아 니라고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도록 옥죄이며 독도 영토 문제 의 핵심에 관한 양국 국민들 간의 관점 차이를 벌려 대립과 갈등을 더욱 고조시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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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는 역사적인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양국의 역사적 문제에 있어서 선동이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인 부분이 세 번째 관점이다. 현대인들은 흔히 말해 혐오 사회 속 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남녀차별, 난민수용, 성소수자 등 실생활에서도 느낄 수 있을 만 큼 심각해진 수준이다. 물론 사람들이 조화로운 환경에서 서로를 포용하며 살아가지 못 하고 혐오가 만연한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건 사실이지만, 문제 는 단순히 혐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특정 단체의 목적 을 위해 혐오가 조성되며 불난 집에 기름 붓듯 미디어와 언론이 가세해 선동을 조장한 다는 것이다. 「트랜스 젠더가 여대 들어가려다 입학을 포기했다」. 올해 초, 한 번쯤은 접해봤을 기사다. 해당 트랜스 젠더는 성별 정정을 신청함으로써 주민등록 번호가 2로 시작하며,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할 때도 이미 법적으로 여성으로 인정받 은 상태였으므로 여대 입학과 관련해 절차상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물론 ‘xx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만 여자고 이 여자들은 생물학적 차이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차별을 겪는다’고 주장하는 서울 6개 여대의 터프 동아리의 반대가 있었지만, ‘입학에 전혀 문제없다’고 게시한 학교 측과 ‘트랜스 여성 입학을 환영한다’는 글을 올림으로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숙대 동문들의 행동을 통해 일단락되는 듯싶었다. 그렇다면 이 트랜스 젠더를 몰아낸 사람은 누구였던 것인가? 학교도, 보수단체도, 종교단체도 아닌 바로 언론과 미디어였다. 언론들은 ‘무서워서 못 다니겠다’며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달아서 제3자인 대중들의 싸움을 부추겼고 숙명여자대학교 학생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한 사람이 입학을 포기하게 된 사건이라며 팩트를 왜곡시켰다. 이때 조회 수 경쟁을 위 해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는 언론은 위에 말한 특정 단체의 목적을 위해 혐오가 조성 된다는 측면과 상응한다. 그리고 교내에서 해결될 수 있던 문제를 언론이 가세해 선동 을 조장했다는 것과 연결된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사건들 중 단 한 사건이었지만 이 를 확대 적용했을 때 우리 사회는 혐오를 혐오로 받아치는 모습들이 목격되면서 발전적 인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이 심각해졌다. 이목을 끌기 위한 미디어와 언론의 부 적절한 행동이 대중들에게 옳지 못한 인식을 만들어내고 결국 확신으로 굳혀 편견을 심 어준 것이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는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 선동에 휩쓸리는 무책임한 네티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두 가지 노력이 요구된다. 거시적으로 정부는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는 교육을 제도화시켜야 한다. 플라톤의 교육관은 인간이 감각의 영역이 아닌 이 성의 영역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을 기존의 지식에 속 박돼 무반성적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것은 어려우므로 이를 이끌어 줄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교육의 필요성이 드러난다. 이때 교육은 단순 히 지식들을 머리에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 수많은 지식 중에서 진실된 내용만을 선별하 고 숙지할 수 있는 능력인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는 것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국가 는 타인에게 악영향을 행사하는 콘텐츠 또는 개인에 관해 통제를 가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존 스튜어트 밀은 다수의 의견과는 다르게 단 한 사람만이 다르게 생각한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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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제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며 개인의 자유를 피력했다. 하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본인 스스로에게만 영향을 행사하는 행위에 한해서 자유를 보장해준다 는 것이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의성을 가지고 타인을 선동하고자 한다면 이는 옳지 못하다고 주의한다.

감각에 속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성찰의 태도를 함양시켜야 한다는 미시적 인 방안도 존재한다. 개인은 무방비하게 정보를 수용하기에 앞서 정보의 의도와 사실관 계를 파악해야 한다.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더라도 사적인 감정과 이념은 철 저하게 배제하고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그 사실 관계를 추론해야 한다.

물론 타인의 결론과 자신의 입장이 상충되는 경우가 없을 수만은 없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토론의 필요성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일단 토론이 진행되면 명확한 근거를 기반 으로 세워지지 않았던 신념은 역린(逆鱗)이 공격당해 무너져 내리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는 옳은 의견으로 생각할지라도, 그 판단이 증거나 근거가 없는 편견으로 자리 잡고 있던 것이라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그럴듯한 언어로 포장된 거짓일 뿐이라고 비 판한다. 그러므로 다른 의견을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 을 통해 정확한 증거와 근거, 사실에만 기초하여 무엇이 진실인지 모색한 후에 무엇이 옳은지 판단해도 늦지 않다.

어느 누구든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는 이 사회에서,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믿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현상이 존재한다고 해서 선 동과 같은 부정적인 흐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를 인지하고 사고가 세뇌되어 틀에 갇혀 선입견에 휩쓸리는 것으로부터 ‘나’를, 그리고 ‘우리’를 지켜야 한다. 비판적 사고를 함양하고 이로써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해갈 때 사회는 더욱 발전된 미래로 도약 할 수 있다. 비록 시작은 미미하지만 과도기 과정을 모두 거치고 나면 보다 건전하고 성숙한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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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시민사회를 향하여

고은서(영미인문학과)

시민 다수가 어떤 자유를 외치면 외칠수록 역설적으로 다른 시민의 목을 심하게 조르 는 경우가 있다. 바로 ‘표현의 자유’라는 가면을 쓴 ‘혐오 발언’을 일컫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하에 나와 타인을 자꾸만 구별하려고 하고 동시에 타인을 배제하 려고 하는 모습 말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으나 모든 곳에서 쇠사슬에 얽혀 있다.”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이 문장에서부터 출발한다. 루소는 사회제 도에 의해 부자유스럽고 불행한 상태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이와 같이 직시한다. 나는 이 문장이 굉장히 와 닿았다. ‘나’라는 개인의 외적 혹은 내적 모습이 남들과 다르다 는 이유로 혐오스러운 말들을 감내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이 함께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개인의 개별성을 최우선적 가치로 여겼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사회는 각자의 개성이 모두 존중되는 진보적 사회이다. 그렇다 면 우리 사회는 밀의 이상사회 모습에 부합하는 성숙한 시민사회인가? 더불어 누군가에 게 혐오로 느껴지는 표현도 표현의 자유의 실현으로 보아야 하는가?

정부가 「차별금지법」을 추진하려고 한다. 「차별금지법」이란 개인 인권 보호를 위해 합리적이지 않은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다.1) 성별, 장애, 병력, 성적 지향 성, 고용기관 등에서 일어나는 모든 차원의 비합리적 차별을 포괄한다. 이는 개인이 충 분히 어느 상황에서 차별을 받을 수 있음을 내포한다. 이미 유엔인권이사회는 우리 정 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여러 차례에 걸쳐 권고한 바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 「 차별금지법」이라는 보호막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정부와 국회가 「차별금지법」 법제화 를 계속해서 미루는 이유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며 눈치를 주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 마치 성소수자를 국가가 합법적으로 인정하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와전이 되어 일부 기독교 집단에서는 「차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일종의 독재법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밀은 자유론에서 침범 불가능한 자유의 영역을 내면적 의식과 생각의 자유, 개성과 취향의 자유, 그리고 결사의 자유라고 밝힌다. 특히 개성과 취향의 자유는 자신의 기호 를 즐기고 자신이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다. 밀은 개인의 개별성을 강조할 때 관습 의 횡포가 심각한 사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개성이 상실되는 동일화와 획일화를 비판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할 때 밀은 정작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쪽은 소 수의 의견임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유론에서 민주정부에서의 다수 의 횡포를 큰 해악으로 여기며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할 수 없다고 하 였다. 밀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his or her own mode) 살아가는 사회를 바란 것이다. 그 러나 밀의 자유론을 바탕으로 표현의 자유와 비성숙한 혐오 발언 사이에서 실질적 해

1) 「차별금지법」, 다음백과.(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47XXXXXXb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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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안을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밀은 좋은 표현과 나쁜 표현, 혹은 고차원 적인 표현과 저차원적인 표현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는 질 낮은 표현 의 독자적 자유 범주를 구획하지 않았다.2) 이와 같은 밀의 중립주의 원칙은 우리가 직 면한 문제를 완벽히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통해 자유가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절대적인 가치임을 밝혔 다. 그는 자연 상태에서 원시인이었던 인간이 누렸던 자유를 자연적 자유로, 그리고 사 회계약하에서 주권자인 시민이 누리는 자유를 시민적 자유라고 한다. 우리가 자연인일 때 누릴 수 있었던 자유를 ‘일반의지’를3) 통해 시민적 자유로 재탄생시키고자 한 것 이다. 이를 바탕으로 할 때 표현의 자유가 과연 진정한 시민적 자유라고 볼 수 있을까?

표현의 자유가 시민적 자유가 되려면 보편적 자유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즉, 표현의 자유는 표현 주체의 의지와 그 대상의 보편성이 모두 확보될 때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에 대해, 특히 권력을 가진 쪽이 그렇지 못한 쪽에 대 해 다수가 소수에게 행하는 폭력적 표현은 보편성을 획득할 수 없다. 혐오 발언은 표현 의 자유라는 틀 속 시민적 자유의 일환으로 합리화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혐오 발언은 일반의지에서 비롯된 산물이 아니기에 표현의 자유로서 더욱 보장될 수 없다. 루소의 일반의지는 단순히 다수의 평균적인 의견들의 조합이라기보다는 사적 이익들 간의 차이 를 수렴한 결과다.

그렇다면 21세기 현재 우리는 루소와 밀이 살았던 18~19세기 사람들에 비해 성숙한 시민일까? 물론 그들보다 지적 능력 및 생활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사회를 살아가 고는 있다. 그러나 그에 비례하는 만큼 우리 사회의 시민 성숙도가 높아졌다고 단언할 수 없다. 사실 혐오 표현 행위는 차별을 자행하고 영속화하며 유지하는 발언이다. 그리 고 피해자 집단 구성원에 대한 차별의 결과는 이에 대한 대응이 아예 불가하게 되며 그 들을 침묵하도록 한다. 국가는 개인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루소 의 사회계약론만 보더라도 개인은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보장받기 위해 모두가 똑 같이 자신의 권리를 국가에 기꺼이 내놓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국가는 그에 합당한 권 리보장을 확실히 해야 하지만 혐오 발언에 대한 마땅한 규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타인과 ‘나-그것’4)의 관계를 바탕으로 그들을 타자화하는 것에 그치 지 않고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에 익숙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인 원인은 시민교육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가치관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유아·초등기 부터 학교에서 보편적 교육의 일환으로 시민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나 라는 각자의 가치관이 이미 어느 정도 확립된 시기에 대학에서 시민교육을 받도록 한 다.

시민교육은 권리를 가진 존재로서의 개인에 초점을 두고 큰 틀에서 자유민주적 기본

2) 캐서린 갤버, 유민석 옮김, 말대꾸, EITUS, 2019, p.72.

3) 일반의지란 개별의지들의 총합인 전체의지 중에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의지이다. 자유나 평등, 평화가 그것 이다.

4)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타인을 전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대하는 비인격 공동체의 모습을 ‘나 -그것(I-It)’의 관계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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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에 입각한 교육이다. 미국 루이스빌 대학 시민교육연구소(Civic Education Engagement, University of Louisville)에서는 열린 마음, 협상 및 절충, ‘옳은 답’이 하 나 이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는 자세, 타인의 권리 존중(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하라), 공동선, 친절과 배려 등을 시민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길러야 할 시 민적 가치 및 성향으로 제시한 바 있다.5) 이 시민적 가치들은 숙의(deliberation)를 통해 발달되어야 한다. 즉, 학생들은 학교에서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어떤 일에 대해 서로 타 협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추상적인 이름의 도덕과 보편적인 이름의 사회과목이 시민교육을 대신한다. 그나마 현행 초등사 회과 교육과정상 시민교육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정치·법 내용은 4학년에서 지방자치에 대해, 그리고 6학년에서 우리나라의 민주정치에 대해 다루는 정도이다.6)

그렇다면 우리 교육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시민교육을 펼쳐야 할까? 우선 타자 이해를 바탕으로 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를 교육해야 한다. 인터넷을 접하는 연령대 가 갈수록 낮아지면서 어린 학생들은 혐오 발언이 미치는 영향력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학생들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적 특성하에 자행되고 있는 혐오 발언 문제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자신과 다른 타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에리히 프롬’은 나를 이루는 생각은 사 회와 유기적 관계로 갖게 된 것이라며 다수가 지지하는 통설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였 다. 학생들은 비판적 사고가 아직 온전히 길러지지 않았기에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접 할 때 미디어가 이른바 ‘인정’한 혐오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이다. 미디어의 주류는 기득권에 의해 형성되고 공고화되기에 학생들은 소수의 입장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고 그들에 대한 차별적 행동을 정당화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민교육 의 일환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포용의 원리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시민 성숙도를 향 상해야 한다.

또한 어린 연령에서부터 정치사회화 시민교육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야말 로 분열과 갈등의 공간이다. 우리는 정치 비판으로 둔갑 된 온갖 인격모독을 자행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올바른 정치적 태도를 제대로 확립할 수 있는 교육이 전무했기 때 문이다. 각자가 자신의 정치철학을 갖고 의미 있고 건강한 토론을 할 때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이상적인 입법자는 생각하는 바가 일반의지 와 일치할 가능성이 큰 사람이라고 하였으나 현행 시민교육 수준으로는 어려운 실정이 다. 입법자도 입법자이기 이전에 시민인데 그들이 제대로 된 입법을 실행하기 위한 역 량이 애초에 충분하지가 않은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은 개인 의견이 제도와 정책 에 어떻게 반영 가능한지 등을 충분히 체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몸담은 국가 나 사회가 어떤 가치점을 지향하는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운영 원리는 무엇인지 등 을 교육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7)

5) 서재천, 초등사회와 시민교육, 학지사, 2012, p.27.

6) ______, 위의 책, p.191.

7) 김지윤,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한겨레, 2019. 6. 17.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982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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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은 자유론에서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 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라고 한다.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본질 이라는 것이다. 각자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려면 자기가 선택한 삶이어야 하며 그래서 개별성이 중요하다.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견해일지라도 모두의 의견 하나하나를 무조 건 비난하지 않고 포용해줄 수 있는 성숙한 시민사회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참고 문헌 1. 논문, 저서

서재천, 초등사회와 시민교육, 학지사, 2012.

캐서린 갤버, 유민석 옮김, 말대꾸, EITUS, 2019.

2. 인터넷 기사, 사이트, 블로그

김지윤,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한겨레, 2019. 6. 17.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98265.html)

「차별금지법」, 다음백과.(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47XXXXXXb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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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사상의 뿌리에서 발굴한 반성적 사유의 토대

-오래된 미래인 고전은 한국 사회의 공동체 의식 분열에 무엇을 시사하는가-

김 헌(한문교육과)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이슈가 되었던 담론들은 ‘남성과 여성의 대립에서 비롯 된 레디컬 페미니즘’, ‘금수저와 흙수저로 극명하게 비유되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 화’, ‘헬조선 혹은 탈조선과 같이 우리나라를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신조어를 통해 바 라본 젊은이들의 자조적인 의식 세계’ 등으로 압축시켜 볼 수 있다. 융합기술과 인공 지능 등의 발달이 인류 문명을 이전보다 훨씬 풍요롭고 살기 좋게 변화시키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의 내부적인 균열들은 이제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이 곪아왔던 자신의 슬픔과 상처를 아프게 열어 보이는 중이다. 곧 중년층 이후의 나이가 되어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대다수의 20~30대 청장년층은 사회 속으로 제 몫을 찾아 비집고 들어가기도 전에 ‘결혼’, ‘취업’ 등처럼 인생의 커다란 관문 앞에서 망연자실한 상태로 자신을 이토록 괴롭게 만드는 세상의 관습과 불 합리와 마주하여 자연스레 혐오와 외면을 내면화한다. 이러한 청장년층을 자녀로 두고 있는 부모님들 역시 자녀를 걱정하는 마음과 노후 문제 등으로 마치 두껍고 짙은 안개 가 드리워진 듯한 불투명한 순간들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마디로 성별, 계층 등 다양한 층위에서 발생하는 ‘대립’과 여기에서 비롯된

‘반목(反目)’과 ‘불신’ 그리고 이러한 대립 및 반목과 불신이 촉매제가 되어 불평등 한 사회로 빠르게 뒷걸음치고 있는 게 현 한국 사회의 민낯인 것이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황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살펴본 후 그 기저에 놓인 근본적 원인을 제대로 분석해야 해결 수 있듯,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 역시 현상만 보는 데 경도되어 산발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핵심 원인 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즉 사회․문화․경제 등의 측면에서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한국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목도(目睹)할 수 있으나 ‘무엇’이 그 모든 문제를 관통하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 으로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머리를 맞대어 고민할 암묵 적인 의무가 있다고 믿기에 이 글을 작성하고자 마음을 먹고 나서 여러 자료들을 살펴 본 결과 흥미롭고도 씁쓸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2020년을 살아가는 많 은 사람들의 울분을 터뜨려 놓은 원인이 약 45년 전의 모습인 1975년의 우리나라가 겪 었던 갈등의 양상에서 비롯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는데, 비록 그 결은 달 랐으나 놀랍게도 분명 과거와 현재의 대한민국은 데칼코마니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두 모습을 당대의 언론 등의 자료를 통해 현 상황과 구체적으로 대조해 볼 수도 있으나

‘시대적 거울’로 상징되는 ‘문학’을 매개 삼아 ‘표면적 상황’ 분석에 그치는 것 이 아닌 ‘보이지 않는 이면에 자리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 어떠한지 다각적이고 심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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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각도에서 스케치해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1970년대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조세희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드러난 문제의식을 반추해보며 2020년 현재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가 무엇인지 성찰해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양’ 정치 철학의 근간이 되는 플라톤의 국가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 즉 사회 변혁기의 사상이 담긴”(p.21) 주역, 논어, 맹자, 한비자 등과 같은

‘동양’고전들을 현대적 관점에서 풀어 쓴 신영복의 강의를 중심으로 해결책을 모색 해 볼 것이다. 신영복에 의하면 사회 변혁기는 “사회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담 론”(pp.21~22)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또한 철학의 출발은 세계에 대한 철학자들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다. 즉 정의, 평화, 인간관계 등과 같은 근본적인 담론과 사유 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로 ‘고대’라는 시점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동․서 양 철학의 뿌리가 되는 고전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우리 사회를 냉철하게 관찰하고 사 유할 수 있는 반성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특히 동양사상을 기반으로 현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이 더 많기에 이 글에서는 플라톤의 국가보다 신 영복의 강의를 더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플라톤의 국가를 살펴본 이유는 동양 적 관점에 치우치지 않고 사상적 균형을 취하기 위함임을 밝혀둔다.

조세희는 1975년 문학사상에서 소설 「칼날」을 시작으로 1978년 창작과 비평에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를 발표할 때까지 총 12편의 작품을 4년 동안 꾸준히 세상에 내놓는다. 각각의 작품은 한 편으로 완결되는 단편소설이면서 동시에 세계관과 등장인 물 등을 공유하고 있는 연작소설의 특성을 보여주므로 그 분석과 해석은 작품이 발표된 시기부터 지금까지도 연구자들에 의해 다양한 방법론적 측면에서 조명되고 있다. 난장 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집의 제목은 12편의 작품들 중 1976년 문학과 지성

 겨울호에 발표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가져온 것인데, 「난장이가 쏘아올 린 작은 공」이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 의식을 가장 잘 응축시키고 있기에 작가가 소설집 제목으로 선정한 것이라는 점은 소설의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는 점이다. 설령 주제 의식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해도 다른 등장인물에 비해 ‘난장이’가 언급되는 경우가 소설집 전체에서 압도적으로 많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외의 11편 작품에 어떻게든 ‘난장이’가 중요한 순간마다 엮여있다는 점을 보았을 때 이 소 설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난장이’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우선적 으로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 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p.80)라는 애처로운 문장이 담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표면적인 서사를 살펴본 후 이를 기반 삼아 소설집 전체에 흐르는 심층적인 서사에 주목하여 문제의식을 구체화시켜 보고자 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등장인물인 영수, 영호, 영희 각각의 시점에 따라 1, 2, 3부로 나뉜다. 이 글에서는 1부와 2부를 각각 나누어 분석하기보다 작품 속의 ‘문제 의식’을 추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중요한 장면 위주로 서술하였음을 밝힌다. 우선 장면 분석에 앞서 1부의 첫 문장인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p.80)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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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우리가 문학을 읽을 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바로 ‘함 축’과 ‘상징’이다. 이 소설은 군더더기 없는 단문을 구사함으로써 마치 시(詩)와 같 은 ‘함축’과 ‘상징’의 미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 예가 바로 ‘난장이’라는 표 현이다. 여기에서 ‘난장이’1)는 말 그대로 키가 아주 작아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나 멸 시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회 및 경제적으로 낮은 위치에 놓인 사람 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겠다. 어찌되었든 ‘사회의 대표적인 약자’인 ‘난장이’는 한 식구의 가장으로 세 자녀인 영수, 영호, 영희를 두고 있다.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아 이러니컬한 이름의 동네에서 가난을 대물림받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던 이들의 평범 한 일상을 깨뜨려버린 것은 다름 아닌 재개발 사업 구역 및 고지대 건물 철거 지시와 관련한 철거 계고장이다. 행복동 주민들 역시 철거 계고장을 받아 동사무소로 가서 항 의를 하지만 영수는 “쓸데없는 짓이었다. 떠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p.82)라 고 서술하며 체념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호는 “어떤 놈이든 집을 헐러 오는 놈은 그냥 놔두지 않을 테야.”(p.84)라고 화를 내지만 영수는 “그들 옆엔 법이 있다.”라는 말로 난장이 가족이 부당한 상황에 저항할 수 없었던 원인을 날 것의 형태로 드러낸다.

결국 아파트에 입주할 돈이 없는 난장이 가족은 아파트 입주권을 싼 값에 팔게 된다.

어머니는 인쇄소 제본 공장에 나가 접지 일을, 영수는 인쇄소 공무부 조역으로 일을 하 며 영호와 영희도 몇 달 간격을 두고 학교를 그만두는 상황(p.96)에 이른다. 결국 학교 를 그만둔 영호는 형인 영수와 함께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이들이 다니는 공장은 점심시간이 삼십 분밖에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 모두 격리된 상태에서 일만 할 수 있도록(p.106) 시스템이 짜여 있다. 공장은 노동자들에게 탁한 공기와 소음 속에서 밤중까지 일만 하게 했고 사장은 종종 불황이라는 말로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데 이용한 다. 한편 영희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입주권을 25만 원에 사서 다른 사람에게 45만 원에 팔아넘겨 큰 이익을 남긴 사나이를 따라가 그에게 순결을 내어주고 첩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이렇게 사나이를 방심하게 하는 데 성공한 영희는 입주권과 돈을 훔쳐 달아나 가족을 찾아오지만 이미 아버지는 자살한 후였다.

담백한 단문이 오히려 등장인물들의 절제되고 응어리진 슬픔을 느끼게 만드는 이 작 품에서 주목할 만한 문제의식은 현 사회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인 ‘경제력의 양극화’

와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 및 열악한 노동 환경’과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 가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은 이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 양상이 아니다. 이러한 문 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에 대해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지점을 섬세하게 독해함으로써 심 층적인 서사를 발견하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 면 ‘공정성(公正性)이 결여된 사회’와 이로 인해 발생된 ‘사회 구성원들의 ‘불신’

으로 인해 점차 붕괴되어 가는 사회 공동체의 모습’이 소설의 심층적인 서사라 할 수 있다. 입주권을 팔고 사는 것은 ‘법’으로 문제시될 점이 없고, 오히려 이에 반발하는 이들은 ‘법’으로 처벌된다는 점을 난장이의 큰 아들인 영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 다. 따라서 “그들 옆엔 법이 있다.”와 같은 영수의 대사는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는 것

1) ‘난장이’의 본명은 ‘김불이’지만 소설에서는 본명보다 ‘난장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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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이 대목에서 ‘법’의 존재가 사회의 ‘공정성’을 반드시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 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신영복의 강의에서 ‘10장 법가와 천하 통일’이라는 내용 과도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442쪽에서 “법가의 법치 원칙은 누구를 위한 법치인가 하 는 점에서 오늘날의 민주 법제와 구별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법가의 법은 군주의 권력 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핵심입니다. 바로 이 점이 법가 비판의 출발점 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역시 군주는 아니더라도 지배 계층이 법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해야 합니다. 입법과 사법을 동시에 장악하고, 금(金)과 권(權)을 동시에 장 악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지요.”라고 지적한다. 법 지상주의로서의 법가 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사상으로 다른 사상보다 더 공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1970년대와 2020년의 우리 사회에 드러난 병폐의 근원으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저자는 현재 우리 사회의 범죄관을 범죄와 불법 행위라는 전혀 다른 두 개의 범주로 나누면서 “범죄 행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매우 가혹한 것임에 반하여,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더없이 관대하다”(p.443)는 점을 꼬집는다. 법가는 ‘군주권을 강화하여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만들어야만 전국시대의 혼란을 해결할 수 있었기에

‘중앙집권적인 권력의 경도 현상’이 치명적인 단점으로 지목되었는데, 이러한 법가의 단점이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법 지상주의 사상’인 법가가 지상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공개성, 공정성, 개혁성이라는 법가 사상의 핵심 체 계”(p.444)가 갖추어져야 한다. 1970년대와 2020년의 ‘우리’는 ‘법’이라는 실체를 인지하고 있으나 ‘법’이 탄생하게 된 사상적 뿌리와 근본 체계를 성찰하는 데 미흡한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입법 취지와 법률의 내용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소설 속 영수처럼 냉소적인 자세로 한 걸음 물러나 있기보다 법의 이면에 담긴 사상과 철학을 보는 눈을 길러 사회 문제를 논하는 데 있어 단호하고 준열한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 다. 즉 강의에서 법가의 장단점과 한계 및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오히려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법치주의의 맹점을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 었듯, 오래된 미래인 고전에서 현재를 읽을 수 있는 혜안을 길러 우리 사회를 통찰할 수 있어야겠다. 또한 ‘경제력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회 복지 정책을 마련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동양고전의 사유에서 문제 해결의 단서를 찾 을 수 있다. “부의 형성 과정이 정당한 것인가, 그 사람의 출세가 그 능력에 따른 정직 한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인 물음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질문”(p.177)이지만, “빈천의 결과를 당사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세태”(p.177)이므로 “우리는 부귀와 빈천의 역 사를 주목”(p.177)할 필요가 있다. 드러난 현재가 아닌 은폐된 과거를 추적함으로써 우 리는 더욱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소설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바로 ‘비인간적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와 환경’이라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비인간적’이라는 말은 곧 노동자를 ‘인간’으 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동자는 ‘일’만 하면 되는 존재, 즉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 아닌 것이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노동자에 대한 처우는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여전히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비정규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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