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사 학 위 작 품
< 절 ,>
< T e m ple ,>
국 민 대 학 교 대 학 원
문 예 창 작 학 과
박 은 서
20 0 1
< 절 ,> 외 17편
< T e m p le ,> an d Ot h e r P i e c e s
지 도 교 수 신 대 철
이 작 품 을 석 사 학 위 청 구 작 품 으 로 제 출 함
200 1년 4월 26일
국 민 대 학 교 대 학 원
문 예 창 작 학 과
박 은 서
박 은 서 의
석 사 학 위 청 구 작 품 을 인 준 함
2 0 0 1년 5 월 일
심 사 위 원 장 (인 )
심 사 위 원 (인 )
심 사 위 원 (인 )
국 민 대 학 교 대 학 원
작 품 요 약
남도의 끝자락 여수에서 23년을 보내며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을 했었다. 우리는 사 소한 말과 욕심이 고여 있는 우물에 갇혀 있다는, 그리고 더 큰 세계의 양상이 축약 돼 있는 또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전자와 후자의 생각이 연결고리 를 가지고 묶여 있지만, 나는 그것들을 분리하여 후자의 생각에 중심을 두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쓰면서는 전자의 시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 시들은 제외시켰 다. 그렇게 쓴 시들을 모아놓았는데 처음의 생각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 다. 육체의 고향으로서의 여수에 대해서만 쓰고 말았다. 가족과 경험과 감정의 고향 이야기만 모으게 되었다. 부족한 시들과 함께, 한계를 알고서도 그 한계를 넘지 못한 자의 마음이 남았다. 이 시들을 졸업작품이라고 묶으니 더 아쉽다. 이제 또 하나의 숙제가 남았다. 멀지 않은 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정신의 원형으로서의 고향 에 대해 쓸 것이다. 더 많은 고비와 힘겨움이 있을 것이다. 내가 포기하지 않기를 바 란다.
시와 함께 삶을 가르쳐주신 신대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목 차
1. 배를 타고 - - - - 1
2. 화살기도 - - - - 2
3. 내가 아는 길 - - - - 3
4. 숨 - - - - 4
5. 금오산 - - - - 5
6. 절, - - - - 6
7. 쫑포 - - - - 7
8. 봄날 - - - - 9
9. 거꾸로 웃는 입 - - - - 11
10. 방 - - - - 12
11. 십칠세 - - - - 13
12. 침대 이야기 - - - - 14
13. 자꾸 나는 자라고, - - - - 16
14. 스물아홉에 조금 알다 - - - - 18
15. 어머니의 방 - - - - 19
16. 숨은 달 - - - - - 21
17. 페인트집 남자 - - - - 22 18. 최초의 집 - - - - 24
* A b str act - - - - 26
배 를 타 고
연못에서 배를 타고 밑이 검은 배를 타고
못의 경계와 경계를 다니고 있다 학교 빠진 나쁜 아이 몇
속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연못에 가늘은 줄 낚시를 날리는
밑이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배를 타고 배의 몸뚱에 몸을 기대고 배와 같이 못에서 휘적이고 있다 못의 공중에 뜬 뭍새 한두점처럼 못의 언저리를 끼룩거리고 있다
기꺼워하리, 사면이 뭍인 자의 안녕, 새싹 모자를 쓴 사내들 희게 소 독을 쏘아주고 간혹 철이른 바람 냉동공장에 유폐되는 땅, 주의하리, 질 서의 안녕, 못의 사면을 휘달리는 배를 타고 드높은 경계를 오고가는 부듯한 배를 타고,
연못에서 거죽배를 타고 거룩한 항해를 하고
옆구리에 자꾸 가쁜 물보라가 일고 캄캄한 물보라가 일고,
화 살 기 도
죽은 신의 겨울에 화살기도를 날린다 화살 뜬 차가운 공중에 가난한 바람 몇 점이
딱딱하게 등을 웅크리고 있다 기도서에 없는 자세로 서서 간절한 심장의 힘으로 하늘을 향해 쏘아올리는 기원은 바람을 위한 말이다 무서운 여행을 하는 바람의 발에는 검은 운동화,
낮이면 지하철 쳇바퀴를 돈다 신이 없는 몸으로, 모두를 몸에 인 바람의 발치에서 돌멩이들 얼어붙고
날을 세운 화살들 공중을 돌다 부메랑처럼, 쏜 자의 심장에 와서 박힌다 거짓말처럼 처음처럼 하늘이 멀다
내 가 아 는 길
내가 아는 건 이런 거다 눈에 보이는,
더운 얼굴 속의 그림자 속에 내가 있는 나 십자가에 못박힌 먼지 속에 내가 있는 나
먹이에 치어 죽는 꿈을 꾸는 어항 속의 물고기
속의 나
어둔 밤 술집 사이 젖은 쓰레기통을 굴리는, 마른눈 내리는 겨울 검은 하수구를 뒤엎는 그 속의 그를 모르는, 아직 내가 묻지 않은
내게 질문이 온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이런 거다 눈에 보이는,
무수히 일렁이는 산 사이로 헤엄치는 그 속에서 목이 메어 제 자리를 빙빙 도는 발목을 찌르는 햇살 속의 나
숨
냉장고에 넣어 두어도 마늘이 오그라든다
햇볕 바삭하게 잘 마른 날, 숫돌에 다듬어 칼날 세우고 냉장고에 잠자코 옹그린 마늘들 꺼내온다
철지난 신문 몇장 펼치고 앉아 마른 흙 털어내고
날선 칼로 마늘집 가르니 껍데기에 엉덩이 모아붙이고 방마다 자리차고 앉아 물렁하게 삭은 마늘들, 알알 떼어내고 벗겨내고
그 헐은 씨알들 노랗게 눌눌한 쪽 남김없이 도려내니,
아직은 숨구멍을 쏘여주는 마늘 햇살 남은 마당 한 구석
하얗게 새 살 세우고 옹기종기 윤기 뚝뚝 흘리며 내 몸과 대화하는
그 매운 떨떠름
금 오 산
눈송이들이 벼랑을 뛰어내린다 남해의 철계단길에서 눈과 뒤섞여 겨울산 동백꽃나무 사이
오래된 거북의 등에 오르니 지층처럼 굳어있던 지상의 바다는 흔적이 없고 어느새 가장 높은 바다에
내가 있구나
이슥한 구덩이 우물을 품고 구름을 띄우며 파랗게 우주가 섬을 키우고 있구나 누렇고 검은 멍들처럼 겹겹이 웅크려있던 시간들 몸을 섞고 둥글게 흐르고 있구나 지상과 공중을 하얗게
부수는 눈바람을 맞으며 소심한 몸이 운다
몸과 몸의 사잇길로만 다니던 몸 속의 몸들을 뒤섞으며 눈발들 흰춤을 추고 눈웃음을 흘리며 바람이 길게 팔을 휘젓는다 지상에 멎었던 작은 몸 가장 멀리 흘러라 멀리 가는 작은 몸 가장 크게 부서져라 부서져라
절 ,
요동치는 물고기 울음에 고개를 드니 처마 아래 낡은 용 잠시 나를 굽어보다 검은 꼬리를 치켜뜨고 담 너머 산을 본다 아버지 웃음을 묻어둔 흥국사 계곡에 우수수 바람 쏟아져 내리고 관음보살 머리에 머리를 이고 눈 달린 손을 모아 합장,
원통전을 돈다, 향내나는 보살에 일배(一拜), 불단벽 시계소리를 타고 돌돌 흐르는 담쟁이덩굴에, 낙엽과 새싹 틈의 흙 한줌 따스하게 차곡차 곡 접힌 돌담에 일배, 집을 잃은 것들의 손길의 허망한 눈초리에 일배 (日拜), 죽은 나무와 꽃나무 사이 와르르 씨를 품는, 멀리 가까이 봄새 에 일배, 소망을 읊는 세 치 붉은 혀를 찌르는, 대못박힌 용의 파르라한 입김에 일배, 절을 하고 절에서 돌아서는 돌아서는 뒷덜미에 일배,
쫑 포
바다는 서시장을 돌고돌아 뻘처럼 질척이는 연등천을 품고 한낮의 여수와 돌산을 오가고 있다 목청탁한 어부의 얼굴은 질기고 검은 물빛의 쫑포와 닮았다
뭍과 섬 사이 서로 출렁이다 함께 머무는 부두,
느린 숨을 토하는 어선에 앉아 어부들은 할머니의 치맛자락처럼 늙고 성긴 그물의 구멍을 깁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배 한척이 떠온다 어부 한명이 일어나 배를 묶은
동아줄을 힘껏 잡아당기더니 당겨진 배로 훌쩍 뛰어 건넌다 제 뱃줄을 던지는 팔뚝과 그 뱃줄을 제 배에 묶는 팔뚝 사이에는 말이 필요 없다
빠른 땅의 하늘에만 있는 우주가 아니다 여수와 나란히 강인듯 흐르다
어부의 살을 에이며
소용돌이치는 쫑포의 물살 위로도 번쩍이며 태양이 깃든다
소금바람에 깨어진 곳마다
흘러와 고인 모래흙으로 쪽빛 풀이파리 돋아나고
하나뿐인 아랫니를 드러내며 웃음을 흘리는 어부의 배 밑창에 어린 물고기들이 바다이끼를 떼먹는다 검은 바다 물비늘이 번쩍인다
봄 날
소년은 처마 밑 툇마루에 앉아 겨울 지나 오겠다던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고갯길 아래 진남교 아래 지하도를 건너 그 크고 두터운 손으로 233번지의 대문을 활짝 열고
금방이라도 아버지가 들어설 것만 같다.
당장이라도 소년은,
집 없는 곳에 집 짓고 있다던 아버지를 찾아 나서고 싶다.
소년은 잠자코 툇마루에 걸터앉은 제 발목을 내려다본다.
검은 집뒤꿈치에 눌려
그림자처럼 딱딱해져 가는 저녁,
마당에서는 한 소녀가 작은 옷을 빨고 있다.
소년의 눈길이 닿는 즈음에 발개지는 소녀의 볼과 목덜미,
소년은 가만히 눈길을 돌린다.
방을 이은 지붕들 옆을 지나며 아카시아 나무는 달고 흰 꽃뭉텅이를 열매처럼 매달고 흔들리고,
빨래집게에 집힌 작은 손목들 물기를 툭툭 떨군다.
어스름 짙어가는 담과 담 사이 집짓기 놀이를 하며
아이들, 목청이 환하도록 크게 웃는다.
모래흙 속에 손들을 모아 넣고 손등을 두들겨 다지는 노랫소리,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헌집 가져가고, 새집 다오.
어둔 골목을 타고 흐르는 개울 물줄기,
반짝이며 소년의 발목을 휘감고,
어머니, 등돌리던
헌집 지하계단, 눈길한번 되돌리지 않던 골목 끝, 아버지,
손을 놓고 돌아서던 담벼락, 그 창살에 찔려 붉은 울음 흘리던 한겨울들 줄게, 새봄 다오.
그 춥고 낡은 헌집 줄게, 따듯하고 오목한 새집 다오.
소년은 아버지를 닮은 도타운 양손을 마주 쥐어본다.
빨래하던 소녀, 소년을 바라보다 제 손을 바라보다 하고,
소년은 소녀 곁으로 쭈그려 앉아 찬물에 두손을 모아 담그고, 저무는 봄빛 한줄기
따라가 그 물에 일렁이고,
거 꾸 로 웃 는 입
잠시 바람의 눈을 보았을까
흥국사 얼은 기와지붕 사이 맺힌 어깨를 풀고 그가 검은 눈을 열고 나를 보네 내 손톱만한 눈알 너머 산죽 흐드러지는 바람을 보네
하루낮 그의 미소 붉게 뒤집힌 반달처럼 공중에 점점이 흩어지고, 미더운 계절 지나온 고동색 바람 그의 어깨를 타고 흐르고,
딱딱한 땅에 돋은 봄풀 이파리처럼 웃는 그 입술 거꾸로 웃네 그 입술에 거꾸로 물린 겨울 담벼락에 내가 엉키네 마른 땅넝쿨처럼 내가 엉키네
방
방이 있다 네가 있다 네가 문을 열고 방을 본다 방에는 낡은 연습장 과 연습하는 책상과 책상 앞의 창과 창을 가린 커텐과 커텐을 묶는 끈 들이 있다 너는 문을 열고 들어온다 방이 너를 본다 네가 움직이는 것 을 본다 너의 발길이 가는 길을 본다 너의 발자욱에 남은 너의 방도 본 다 보는 만큼 보이는 방 한 곳에 네가 있다 네가 원하는 만큼 와도 방 이 원한 자리에 있다 움직이는 방 안에서 네가 움직인다 연습장을 열어 보고 글자를 만져보고 창을 열고 커텐을 날린다 다가올수록 커지는 표 정으로 너는 말한다 너와 여기 있고 싶어
아무도 없던 책상에서 네가 웃는다 너의 미소는 읽지 못한 책의 노란 냄새다
너는 너를 펼치고 방은 방을 키운다 노란 네가 쏟아진다 방은 너를 담는다 바닥에 쌓이는 네 숨결들을 담는다 노랗게 올라서는 네 노래들 을 담는다 방은 더 크게 둥글게 방을 열다 멈춘다 너는 자꾸 너를 펼치 고 더이상 클 수 없는 방이 기우뚱거린다 둥글게 닫힌 방 안에서 둥글 게 네가 구겨진다 천장까지 차오른 너의 노래가 구겨진다 가쁜 호흡을 하며 방이 너를 본다 네 노래로 노랗게 가득찬 방을 본다 네가 말한다 너와 있기 어려워
둥글은 방에서 네가 작아진다 너는 바스락거리는 노란 점이다
둥글은 방이 있다 방 밖에서 발자욱 놓는 소리가 들린다 방이 기우뚱 구른다 내다본 방에는 동그란 밤색 눈동자와 눈동자에 어리는 낡은 책
십 칠 세
모래알 단단한 운동장 구석, 질긴 바람의 끄트머리에 목이 메여 엎디어 누에처럼 엎디어 들이마시고 내쉬고 같은 자리 맴돌다 가끔 고개든 눈동자 속 검은 주름의 골에 소리 없이 아침놀, 가득 나부끼는 학교, 동그라미 한 자리
침 대 이 야 기
오래 지내온 침대가 없어졌다 어린 자궁을 담은 배를 맞추고 핏물배인 초경을 품어주던 잠자리, 데모쟁이 막내삼촌의 화염병 불내 나는 맞춤법을 배우고 실땀마다 식은땀 새겨 누르던 잠자리가 사라졌다
마른버짐 번진 곳에서 엄마도 없이 매운 밥 먹는 아이와 있다 혼자 돌아와 어둑한 마음 눕히던 자리, 아이 매운 숨결 흘러와 고이던 캄캄한 새벽, 조용히
숨길 사이 스미던 작은 서늘한 불덩이
오래 있던 자리가 없어졌다 버려진 담벼락에 기대서서, 다가가 귀기울이면, 아직 가슴 속에 스프링을 세우고 울컹거리며 박동질치고 있을, 지내온 자리가 치워진
웃는 눈을 한다 환하게 매운 눈을 한다
자 꾸 나 는 자 라 고 ,
아침에 눈을 뜨니
나보다 먼저 눈뜬 네가 와있다 어머니가 지어준 베개 위에 자리 잡고 누운 너는 밤 사이 한 뼘이 더 자랐다 지난 밤 T V를 시청하다
아픈 아이 성금으로 천원을 넣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우며 나는 조금 편해졌었다, 그 사이 너는 한 뼘이 더 자랐다
머리를 감고 집을 나선다 기름때 빠진 가지런한 머리칼을 가만히 만져보는 눈길에
가지지 못한 네 쪽 대문과 가지지 못한 골목 사이 간판 사이 떠돌던 바람들 머리칼을 휘감고
약한 몸의 모퉁이에 살던 작고 까만 때들이
사락사락 고개를 내민다
반들거리는 쇼윈도 속에 발끝까지 담은 나를 본다
너는 스스로 아들에 이르고자 할 테고, 나는 아직 가지지 못한 아들을 떠올리고,
헝클어진 마음을 묶는다 살가죽을 뚫고 솟아나
눈을 덮고 가리며 자라고 죽고 나는 포악한 생명
너를 묶고 가던 길을 간다 바람은 자꾸 흙먼지를 세우고 나는 이발소의 문을 연다
스 물 아 홉 에 조 금 알 다
발갛게 부풀은 젖가슴을 앓다 반년만에 붉은 생리를 한다 희고 보송한 생리대를 하고 앉아 당신의 봄쑥국을 먹으며
스물아홉에 조금 알겠다
당신처럼 아이를 낳을 자궁이 아이도 아닌 피를 낳은 것이 아직 피를 낳을 수 있는 것이 기쁜 것이었구나 당신은 고마운 것이었구나
사백킬로 멀리서 들려온 묵은 된장 알갱이 진한 향쑥이 혀를 깨물고, 어서 시집가서 아이 낳자는 당신 이야기 사이 늙은 이빨이 내 목구멍을 깨물고,
봄빛 화창한 밥물과 국물과 눈물을 삼키고 앉아
아이도 없이 나는
자궁이 고마웁다 당신처럼 나를 낳을 당신이 고마웁다
어 머 니 의 방
환한 물의 아래로 저물다 시간과 같은 속도로 날으는 눈발들을 보았다
날리는 눈발들 속에서 수초들 흐르는 벽에서 조금 흔들리더라 그대 유리혈관으로 붉은 피 점점이 떨구다
하얗게 끓어오르던
그대 보는 눈마다 최초의 집이 어린다
햇빛 쏟아지는 수면을 얹고 눈부시도록 투명했구나 천장도 환한 방에 그대 누워 물빛 심장 두근거리는 최초의 나이가 찬란했구나
켜켜이 쌓인 물결의 더 검은 밑으로 가라앉는 마지막 빗장을 붙들고 산산히 주저앉아 유령처럼 웃음 흘리는 그대에게로 송이눈 흘러와 다시 스미고
얼어붙은 유리창으로 파도치는
검은 얼굴 몇 몇의 미소
숨 은 달
그곳에는 달이 숨어 있다 불가사리처럼 얽힌 방파제 사이 바람을 가두고 파도를 가둔 블랙홀, 그곳에 달이 숨어 있다 양팔로 방파제를 디디고 고개를 들이밀면 거기, 한쪽 어깨를 기울고
하얗게 누워있는 달이 보인다 오래된 우물처럼 짠내 나는 물과 이끼를 담고
찰랑거리는 어둠 속, 젊은 아버지 목덜미에 걸린 어머니 웃는 배꼽이 보인다 어느 단칸방 귀퉁이를 떠나 낮일낮술에 삭은 파도처럼 부서진, 처음 마신 소주에 모래알 담아 갈매기처럼 울음 웃던,
달이 웃는다 처음처럼
오려진 절벽에 앉아 반짝이며 햇빛 지나간 일기를 쓰고 출렁이는 검은 하늘 속 흰달이 숨어 웃는다
페 인 트 집 남 자
떨이장사를 시작하는 서시장, 아낙네들의 목청이 높아진다 네벽에 가득찬 페인트통들을 보다 남자는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가게 구석의 기둥 뒤에서 아내가 남자를 본다
손님에게 인사 한번 못한, 부끄러운 아내는 선녀같다 천치같다 한다
그 눈빛이 뾰죽했나 남자는 아내에게 꽂히는 제 눈길에 제가 맵다
작은 집에 얹혀 사는 남자는 아내에게 더운 물 나오는 수도꼭지와 피로한 몸을 누일 둥그런 욕조와 냄새 없는 수세식 변기를 주고 싶다 부엌에는 하양페인트를 바르고 욕실에는 하양과 빨강을 섞어 진달래 꽃잎색을 바르고 싶다 결이 고른 붓을 새로 꺼내고 싱싱한 빨강페인트 뚜껑을 따면 아내는 페인트를 휘휘 섞을 것이다
듬뿍 새잎을 입히리라
검정빨강하양 페인트 얼룩진
바닥으로 저녁어스름이 떨어져 내린다 아내가 문가로 간다
문턱에서 잠시 서성이다
활짝 가게문을 여는 아내의 손길 건너 가게안을 기웃거리는 사내가 있다
- 어서 오세요 !
동그랗게 아내를 바라보는 남자, 확 달아오른 뺨을 부비는 아내, 발간 웃음 한통 사내에게 들려보내고 제 손을 만지작거리는 남자에게로 아내가 다가와 등을 안는다
두 몸이 통꽃으로 붉다
최 초 의 집
포대기에 싸여 혼자 있다 그들은 낮이면 자취가 없다
저녁이 되어야 리어카를 끌고 돌아와 땀흘린 겨드랑이에 나를 끼었다 품에 넣었다 하며 논다 그는 오래 묵은 장내 같은 땀내가 난다 천장 가까이 난 창으로
오후 햇살 한줌이 스민다
공중에 떠 있던 먼지 몇개가 선명해진다 나보다 작은 먼지들이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리며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먼지를 잡아보려 몸을 움직여보지만 팔다리를 버둥거릴 뿐이다
문턱을 넘는 발소리가 들린다 방바닥 긁히는 소리가 날카롭다 번쩍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소리나는 쪽을 노려본다 이런, 나를 마주 노려보는 건 분명 쥐의 눈이다
회색털을 세우고 다가오는 쥐를 보며 나는 두렵지 않은 척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쥐는 코웃음을 치며 나의 엄지손가락을 물어 제낀다
좁은 골목의 뛰는 발자국 소리, 창끝에 걸린 나비 비명 소리,
먼지를 따라 가라앉아 간다 태양이 가늘게 스미는 까만 심해로 심해로 까무룩 눈을 감다
그녀의 비명 소리에 눈을 뜬다
나를 안고 그녀가 울음을 쏟는다 굵은 눈물방울을 내 얼굴에 떨구는 그녀에게서 포근한 젖내가 난다 달고 따뜻한 젖이 젖는다 그가 소리친다
쥐새끼 잡았어!
A B S T RA CT
< T e m p le ,> an d Ot h e r P ie c e s
by P ark , E un - S eo
D ep t. of Creativ e W riting Grad uate S chool, K ook m in Univ e rs ity
S eoul, K orea
While spending 23 y ear s at the sout hern - m ost part , Yeo soo, I hav e com e t o think ov er t w o thing s . T heir cont ent s w er e that w e ar e confined t o a fount ain wher e trivial w or ds and greed are st agnant and live in another w orld w here the phase of a bigger w orld is implied.
T he form er thought and the bett er one are bound t o one with a coupling device, but I st art ed t o separat e them , compose poetry focu sing on the latt er one. Of cour se, in t he cour se of com posing them , the poem s belonging t o the form er cam e out . I collect ed those poem s , but I think they are far short of what I fir st t hought . I cam e t o w rit e about Yeosoo, the phy sical hom et ow n .
I gather ed only st ories about family , experience and em otional hom et own . With unsatisfact ory poem s , the mind of the m an who w as
Now another t ask is left . In a near future, I w ill writ e about a hom et own as the spiritual prot otype of m any people including m e . I w ill face m ore crises and difficulties . I hope I w ould not giv e them up .
I sincer ely ext end acknowledgem ent t o profes sor , Shin , Dae- cheol t eaching m e poetry as w ell as lif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