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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f the Three-story Stone Pagodas in Hyeon-ri and Hwacheon-ri, Yeongyang - Focusing on Analysis of the Pagoda Relief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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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양의 <화천리 삼층석탑>(보물 제609호)과 <현리 삼층석탑>(보물 제610호)은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 양식을 계승한 석탑이다. 두 탑은 이중의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양식이나 기단부 결구(結構) 방식 등을 고려하면 늦 어도 9세기 중·후반 무렵에는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석탑의 탑신부와 기단부의 탑부조상으로도 확인된다.

사천왕상과 십이지상 부조는 8세기 후반의 <원원사지 삼층석탑>에서 처음으로 조합되어 나타났고, 팔부중상도 9 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유행한 탑부조 신중상이다. 그런데 영양석탑 두 기는 사천왕상(탑신)-팔부중상(상층기단)-십이지 상(하층기단)이 조합되는 특징적인 장엄을 갖추었고, 또한 석탑에 사용된 석재도 일반적인 화강암이 아닌 영양 지역 지 질층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사암 계통의 퇴적암이다. 이렇게 세 종류 도상의 신조합과 팔부중상이 좌상에서 입상으 로 변화한 점 등은 지역 자생적인 재료로 석탑을 구축한 사실과 함께 영양의 불교 신앙과 문화적 위상을 드높이려는 의 도로 읽힌다.

영양석탑의 팔부중상은 기존 팔부중 석탑의 두 가지 배치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일부 도상을 새로운 방위로 재배치하 였다. 동면에는 아수라-건달바, 남면에는 용-마후라가, 서면은 천-가루라, 북면에 긴나라-야차로 구성된 이 형식은 영양 지역만의 독특한 ‘팔부중 제3형식 배치’로 분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팔부중상 배치 형태와 자세의 변화는 탑부조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건달바상과 야차상이 각각 동면과 북면에 조각된 것은 이들이 지국천왕(동)과 다 문천왕(북)의 권속이기 때문이며, 용상과 마후라가상이 남면에 조각된 것은 반변천 북변이라는 두 탑이 처한 지리적 위 치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였다.

통일신라 전형 양식 석탑의 ‘구조’와 새로운 형식의 탑부조상 ‘장엄’을 함께 갖춘 <현리 삼층석탑>과 <화천리 삼층 석탑>은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는 한편 지역적 특성도 뚜렷한 9세기의 중요한 방계(傍系) 석탑으로 평가된다.

국 문 초 록

주제어 영양 현리 삼층석탑, 영양 화천리 삼층석탑, 탑부조상(塔浮彫像), 사천왕, 팔부중, 십이지 투고일자 2020. 09. 27 ● 심사일자 2020. 10. 20 ● 게재확정일자 2020. 10. 30

영양 현리와 화천리 삼층석탑 연구

- 탑부조상( 塔浮彫像 )의 도상 분석을 중심으로 -

한재원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Corresponding Author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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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경상북도 영양읍 화천리와 현리를 지나는 낙동강 상 류인 반변천(半邊川)가에는 탑신과 기단면에 다양한 도 상이 새겨진 통일신라시대 석탑 2기가 전한다. 바로 보 물 제609호 <영양 화천리 삼층석탑(英陽 化川里 三層石 塔)>과 보물 제610호 <영양 현리 삼층석탑(英陽 縣里 三 層石塔)이다(사진 1, 2).

1

두 탑 모두 하천의 북변(北邊)에 위치하고 있다. <현리탑>과 <화천리탑>(이하 ‘영양석 탑’으로 통칭)은 전형적인 3층 석탑의 형식을 갖추었고 1 층 탑신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 상층기단에 팔부중상 (八部衆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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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층기단에 십이지상(十二支像)이 부조되었 다. 두 탑과 똑같은 신중상의 구성을 보여주는 석탑으로 전라남도 구례의 <화엄사 서오층석탑>이 있다(사진 3).

<화엄사 서오층석탑> 탑신의 사천왕상과 하층기단의 십이지상의 방위와 배치는 영양석탑과 일치하지만 상층 기단 팔부중상은 도상이 불분명하여 배치의 차이점을 밝 혀내기 어렵다.

3

기존의 신라 석탑 연구에서 영양석탑은 9세기 전반 이나 중반경의 석탑으로 추정되면서 다른 석탑들과 함께 단편적으로 언급되는 정도에 그쳤고,

4

석탑 편년이나 부 조상 양식에 대해 본격적이고 독자적으로 고찰된 것은 2015년 간행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보고서 외에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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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보고서에 기록된 석탑의 구조 와 수치 분석은 대체로 정확하고 세밀하게 조사되었지만, 팔부중상에 대해서는 도상 파악에 일부 오류가 있었다.

이 글에서는 이들 영양석탑 부조상의 배치 현황을 도상

사진 1 영양 화천리 삼층석탑, 9세기, 높이 4.46m, 경북 영양.

사진 2 영양 현리 삼층석탑 , 9 세기 , 높이 4.10m, 경북 영양.

사진 3 화엄사 서오층석탑, 9세기, 전남 구례 화엄사 (ⓒ문화재청).

1 <영양화천리삼층석탑>과<영양현리삼층석탑>은이하각각<화천리탑>과<현리탑>으로약칭한다.이하출처나저작권표시가없는사진은모두필자 촬영하였음을밝힌다.

2 영양석탑의팔부중상에대한단편적인고찰은신용철, 2003,「統一新羅八部衆像의考察」,『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24, pp.172-173;한재원, 2015,「석굴 전실팔부중상의상징과해석」,『미술사연구』 29, pp.140-150.아울러논문은필자의학위논문(한재원, 2018,「한국고대신중상연구」,홍익대학교미술 사학과박사논문)Ⅴ장의내용일부를바탕으로하여영양석탑탑부조상각각의분석을사진과도면을통해전면재검토한것임을밝힌다.영양석탑의사천왕상 대해서는송우솔, 2019,「통일신라사천왕부조석탑연구」,동국대학교대학원미술사학과석사논문, pp.82-93 참고.

3 윤여창, 2018,「화엄사서오층석탑부조신장상연구」,『마한백제문화』 32, pp.121-146.한편<화엄사서오층석탑>의팔부중상은서면향우측상(아수라) 에는나머지상들을팔부중상이라고단정하기어려우므로글에서는일단도상비교대상에서제외하였다.

4 정영호, 1971,「慶北英陽地區佛敎遺蹟」,『사학지』 5, pp.126-129 140-142;정상수, 2006,「영양군半邊川邊에있는통일신라시대절터의位階에대하 여」,『경주문화연구』 8, p.3;신용철, 2008,「統一新羅二重基壇石塔의形式과編年」,『동악미술사학』 9, p.215;김지현, 2019,「울산영축사지동서삼층석탑에 대한연구」,『석당논총』 73, p.261.

5 국립문화재연구소, 2015,『경상북도의석탑Ⅸ』, pp.156-227<화천리탑>과<현리탑>의위치와연혁,실측도면,사진등이자세히실렸다.<표1>의 도면도보고서에서옮긴것이다.사진과도면파일은국립문화재연구소건축문화재연구실에서제공받았다.지면을빌어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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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을 통해 검토하고, 특히 기존에 보고된 팔부중상 배 치 형식과 달라진 점을 면밀하게 살펴보겠다.

이를 위해 우선 9세기 신라 석탑에 관한 선행 연구 등 을 참고하여 <화천리탑>과 <현리탑>의 결구 형태와 특 징들을 비교 파악해 보고, 이어 탑부조상 각각의 구성과 양 식을 상세하게 분석해 볼 것이다. 이로써 신라 석탑사에서 차지하는 영양석탑의 위상(位相)을 구조(構造)와 장엄(莊 嚴)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Ⅱ. 영양 현리 삼층석탑과 화천리 삼층석탑의 구조와 장엄

1

. 영양석탑의 결구 구조와 편년

결구의 측면에서 석탑의 편년을 추정할 수 있는 근 거는 전체적인 규모와 기단부 등을 구성하는 석재의 개 수이다. 8세기 석탑은 지대석과 하층기단, 상층기단에 사용된 석재의 수가 대체로 9세기 석탑보다 많다. 8세기 에는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나 <나원리 오층석탑>처 럼 상대적으로 더 큰 규모의 탑을 세웠기 때문이기도 하 지만, 목탑 구조의 모방으로 탄생했던 전형석탑의 영향 이 결구법에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화천리탑>

이나 <현리탑> 역시 기본적으로는 신라 전형양식 석탑 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하층기단부 석재의 개수는 <화 천리탑>이 8매, <현리탑>이 귀틀형 석재 4매로 구성되 었고, 상층기단은 <화천리탑>이 7매, <현리탑>이 4매 이다(표 1).

대략 78° 정도의 체감 각도를 보이는 높이 4.46m의

<화천리탑>은 이보다는 규모가 다소 큰(5.19m) 경북 성 주의 <법수사지 삼층석탑>과 비교가 가능하다. <표1>

의 <법수사지 삼층석탑>은 옥개석의 형태나 체감 각도 로 볼 때 대체로 9세기 전기로 편년되는데,

6

상층기단 면 석이 이른바 사다리물림식(H형)으로 짜인 결구 구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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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높이 4.10m의 <현리탑>과 유사하다. 따라서 <현 리탑>과 <화천리탑>의 기단부 결구만으로는 선후를 추 정하기 쉽지 않다.

8

영양석탑의 탑부조상 조합은 앞서 지적한대로 <화 엄사 서오층석탑>과 동일하지만 결구 구조와 체감 각도 등은 지역적으로 가까운 9세기 후반의 <경산 불굴사 삼 층석탑>(4.25m)이나 <영천 신월리 삼층석탑>(4.37m) 과도 비교된다.

9

한편 체감 각도가 82°인 <현리탑>은

표 1 영양석탑과 법수사지 삼층석탑 단면도와 기단부 결구 형태 영양 화천리

삼층석탑

영양 현리 삼층석탑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

석탑 도면과 체감도

상층기단 결구방식

하층기단 결구방식

6 김지현, 2015a,「통일신라시대眼象文석탑고찰」,『문물연구』 27, p.66.

7 ‘엇물림식’,‘사다리물림식’등의용어는한정호, 2004,「경주지역신라전형석탑의전개과정에관한연구」,『불교고고학』 4, p.108에서처음으로사용되었다. 신용철(2006, 2008),이근우(2007)도신라석탑의결구구조에대한글을발표했으며,이를종합한최근의연구로는김지현(2015b, 2018b)의논문이 다.이와같은결구구조에관한논문은석탑편년연구에서공학적·역학적검토의쓰임새를보여주는중요한성과들이다.

8 영양석탑기와<법수사지탑>을같은계통선상에서비교하기에옥개석의형태나규모에차이가있다는심사의견이있었는데,필자도이에동의하며영양 석탑의세부특징에비교할있는유사석탑들을검토할필요가있다고생각한다.이에본문에는다른석탑들과추가비교를통해내용을보완하였다. 탑의구조분석은부조상을고찰할때에도반드시고려되어야부분이며,이후진행되는연구에서도장엄과구조의모든면들을살필있도록유념하겠다.

9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경상북도의석탑Ⅴ』, pp.93, 160.불굴사탑체감각도는 78°,신월리탑은 8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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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리탑>보다는 다소 경사가 급한데, 이는 오히려 이른 시기의 훨씬 큰 규모의 석탑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9세기 초반 조성한 <월성 용명리사지 삼층 석탑>(5.83m)과 <경주 천룡사지 삼층석탑>(7.16m) 은 <현리탑>과 유사한 81°의 체감 각도가 측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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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9세기 조성의 <청도 장연사지 삼층석탑>은 82°(동 탑, 4.33m)와 83°(서탑, 4.53m)의 체감 각도를 갖춘데다 옥개석의 형태도 <화천리탑>의 평박함을 닮은 면이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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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개받침이 5단이면서 기단부에 팔부중상이 새겨 진 9세기 중반의 <청도 운문사 삼층석탑>은 체감 각도 가 <화천리탑>과 동일하며, 기단부와 탑신부에 다양한 부조상이 새겨진 9세기 후반의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

도 81° 정도의 체감 각도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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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규모는 <운문 사 동·서탑>이 5m가 넘는 큰 규모이고 <관덕리탑>은 3.39m로 작은 편이다. 한편 사천왕상과 십이지상이 새겨 진 8세기 중후기의 <경주 원원사지 삼층석탑> 역시 동 탑은 81°, 서탑은 83°로 측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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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영양석탑의 일부 요소들은 8세기 말부터 9세기 중후반에 해당되는 여 러 석탑들과 제각기 단편적인 유사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편년을 더욱 어렵게 한다.

장엄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화천리탑> 하층기단 십이지상의 둘레에 안상(眼象)을 마련한 것은 오히려 9세 기 전기 이후 전형양식 석탑의 하층기단에 안상을 조식하

는 경향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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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안상무늬와 탑 신의 사천왕상을 모두 새긴 석탑으로 국립경주박물관의

<남산승소곡사지 삼층석탑>이 있는데, 이 탑 역시 상층 기단은 사다리물림식이며, 전체 높이는 3.77m로 4m가 넘는 영양석탑들보다는 약간 소규모이다. 조성 연대는 대체로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사진 4).

영양석탑은 둘 다 인근에서 쉽게 채취 가능한 어둡 고 짙은 붉은 색조를 띠는 퇴적암 계통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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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암 석재를 사용한 일반적인 석탑들과 외관 상 차이가 뚜렷하다. <현리탑>과 <화천리탑>을 가까 이에서 보면 각각 표면 곳곳에 미세한 자갈들이 박혀 있 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종류의 퇴적암 석재는 화강암

사진 4 남산승소곡사지 삼층석탑, 9세기 후반,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 물관).

10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경상북도의석탑Ⅲ』, pp.53, 81.

11 국립문화재연구소, 2010,『경상북도의석탑Ⅳ』. pp.190, 193;한편김동욱, 2020,「서산보원사지오층석탑의양식특징과건립시기」,『미술사학연구』 307, p.42에서는<화천리탑>의평박해진옥개석이기단부에팔부중상과사자상이새겨진<서산보원사지오층석탑>옥개석출현의전조(前兆)였다고보았고, 원사탑의조성연대도고려초기가아닌 9세기후반의통일신라시대에이루어졌을가능성이크다는점을밝혔다.

12 국립문화재연구소(2010), pp.253, 257(운문사탑);국립문화재연구소, 2013,『경상북도의석탑Ⅶ』, p.85(관덕리탑).

13 국립문화재연구소(2009), pp.196, 199.

14 김지현, 2015a,「통일신라시대眼象文석탑고찰」, p.74에서는<법수사지탑>이나<범어사삼층석탑> 9세기전기이후하층기단에 3개의안상을새긴 탑이등장한다고보았고,<화천리탑>은 9세기중기~후기조성으로분류하였다.

15 영양반변천일대의지질은중생대퇴적암인청량산층과도계동층이분포하며,하부의청량산층은현무암류,역암,사암,이암이호층을이루고,상위의도계동 층은이암,사암으로구성되어있다.국립문화재연구소, 2019,『한국의지질다양성경상북도편』, p.118;국립문화재연구소(2015), p.196에서는<현리탑>

모래를많이함유한사암계통으로조성되었고,석질이비교적약하고훼손이심한상태라고하였다.이명성·김재환·이재만·이장존, 2011,「경북영양일대 조문화재의구성암석과풍화도를고려한표면강화제의현장적용효과」,『보존과학회지』273호, p.280에서도<현리탑>은적갈색내지자색계통의 역질사암으로구성되었고,표면풍화에의해석재자체의성능이크게저하되어재보존처리가필요하다고하였다.<화천리탑>의석재에대한구체적인 보고는없지만눈으로식별했을대체로<현리탑>의석재와비슷한종류로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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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석재보다는 대체로 강도가 무른 편이므로 결구에 맞게 재단하거나 표면에 부조상을 새기기도 쉬웠을 것이다.

다만 퇴적암은 견고한 화강암 석재보다 하중에 의한 전단 력(剪斷力)에 취약하므로 석탑재의 크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특히 수직으로 하중을 많이 받게 되는 기단 부의 갑석이나 면석, 지대석 등이 그렇다. 석재를 세로로 길게 재단할 때는 그다지 영향이 없겠지만 가로로 길게 재단된 퇴적암 석재는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재단된 화강 암 석재보다 더 큰 하중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법수사 지 삼층석탑>의 하층기단이 횡으로 긴 석재 4개로 엇물 림식 결구가 가능했던 것은 화강암이라는 재료의 견고성 이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화천리탑> 기단부는 전형양식 석탑의 결구 방식 중 이른바 4매 이상의 석재를 사용한 ‘결합형’을 반영하면 서도 상층기단의 결구는 ‘정립형’의 영향도 일부 보이는 애매한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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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 부분에 사다리물림식과 엇물 림식의 결구가 복합적으로 보인다(표 1). 따라서 <화천 리탑>은 석재의 형태나 치수를 철저하게 계획해서 짜맞 추었다고 보기에는 그 만듦새가 성글고 약간 비정형적 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결구 구조만으로 <화천 리탑>이 <현리탑>보다 좀더 선행하는 양식이라고 단 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석탑의 결구 방식은 편년의 참 고 자료는 될 수 있어도 절대적인 편년 기준으로서 삼기 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사암 계열의 무른 석재가 사용되었다는 점도 <화천 리탑> 결구 형태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탑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옆으로 긴 면석을 ‘정립형’

으로 결구하는 것보다 작게 분할하여 ‘결합형’ 방식을 사 용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에서 <화천리 탑> 상층기단의 결구 방식이 4매가 아닌 크고 작은 7매

의 석탑재로 구성된 것은 인근의 암반 등에서 석재를 채 석할 때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수들 때문이었을 듯하다.

화강암과 달리 퇴적암은 무작정 원하는 크기대로 채석하 는 것 보다 석재 자체에 균열이나 단층 없이 구조재로 사 용 가능한 크기로 채석하는 것이 용이하다. 그렇다면 석 탑재의 재단과 구성의 차이는 수치(척도) 계산과 사용하 는 재료의 변수에 따른 선택일 뿐 기술적인 차이나 우열 로 볼 수는 없다. 달리 말하면 석탑 결구 등에서 산출되는 조영 계획은 어떤 석공들의 시그니처일 수도 있지만 몇 가지 상황에 따라 조금 가변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각은 조금 다르다. 조각 양식은 계산만으 로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부조 조각은 적절한 사면관의 표현이나 미묘한 양감을 통해 상의 사실성이나 동세, 방 향성 등을 이룩한다. 따라서 조각가의 조형 감각과 제작 경험이 상의 완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그래서 조각 은 편년을 파악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조각 양식은 시대에 따라 어느 정도 편차를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10세기 고려 초기의 석탑 으로 편년되었던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이 근래에 는 신라 9세기 후반에 건립된 석탑일 가능성이 제시되기 도 한다(사진 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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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9세기 신라 석탑부조상의 특징 들을 보여주는 상층기단 팔부중상의 도상과 양식이 석탑 의 편년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의 하나가 되었다(사 진 5B).

<현리탑>과 <화천리탑>의 탑부조 도상은 대체로 일치하나 양식은 서로 다르다. 결구 형태만으로 영양석 탑의 선후 관계를 확실하게 단정할 수 없다면 이러한 양 식 비교로써 조성 연대의 차이를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 다. 조각이 시대에 유행하는 양식을 벗어나서 고식(古式) 과 전통을 따르는 사례가 없지는 않겠지만, 9세기 신라의

16 김지현, 2015b,「통일신라典型樣式석탑의기단부유형과 8세기석탑의편년검토」,『신라문화』 45, pp.202-203에서 4매를초과하여여러석재를결합한 식을‘결합형’으로, 4혹은 4이하를결합한방식은‘정립형’,결구없이 1매로조성한방식을‘일체형’이라지칭하였다.

17 미즈노사야, 2018,「보원사지오층석탑의의의」,『서산의문화』 30, pp.199-211;김동욱, 2019,「서산보원사지오층석탑연구」(동국대학교대학원미술사학 석사논문), p.111;김동욱(2020), pp.48-50에서는신라 9세기웅주에서교종사원으로서위세를떨친보원사가 9세기후반경중창되었을무렵<보원사지 오층석탑>도신라왕실에버금가는단월의후원을받아건립된것으로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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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그런 복고적 조형이 쉽지는 않았을 듯하다. 그러므로 두 석탑의 조성도 시간차가 크 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2

. 영양석탑 부조상의 구성과 계보

다른 전형양식 석탑과 구별되는 두 석탑의 특징은 탑 표면에 조각된 부조상의 새로운 조합과 그 형태이다. 일 찍이 사천왕은 경주 지역의 탑이나 사리함 표면 등에 흔히 장엄되었던 도상이며, 팔부중은 8세기 중후반부터 유행한 통일신라 석탑 부조의 대표적인 도상이다. 십이지상은 신 라의 왕릉 호석 부조로 많이 조성되기도 하지만 경주 <원 원사지 삼층석탑>처럼 석탑의 기단부에도 등장하기 시작 한다(사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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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천왕상과 입상(立像) 형식의 팔 부중상, 그리고 십이지상까지 함께 조각되는 구성은 아마 도 영양석탑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듯하며, 전국에서 <화 엄사 서오층석탑>과 함께 단 3기에서만 보인다.

불탑 기단부와 탑신부에 여러 가지 상을 새기거나 배치하는 전통은 멀리 인도에서 시작되었지만 중국에서 도 꽤 많은 사례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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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 벽면이나 탑면에 부 조상을 새기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사찰 영내에서 경배하 고 예배하는 신도들을 고려한 것이며, 상징적 장소(석굴)

와 불사리(佛舍利) 등을 봉안한 성물(聖物)의 신성성과 격절성(隔絶性)을 강조하기 위한 건축적 장치이기도 하 다. 탑에 마련된 감실이나 문비조각 좌우에 수호신처럼 금강역사상과 천왕상을 배치함으로써 부처와 사리를 보 호하고 계율을 지키는 강력한 호계신(護戒神)의 이미지 를 시각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중국 석굴이나 불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조형이다(사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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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조성된 불탑에서도 신중상을 배치하는 양 식이 일찍부터 있었다. 남아 있는 유물을 보면 7세기의

<분황사석탑>에 금강역사상이, 낭산 사천왕사지의 목

사진 6 원원사지 삼층석탑, 8세기 후반, 경북 경주.

사진 7 신통사 용호탑(神通寺 龍虎塔) 탑신 세부, 唐 8세기, 중국 산동성 제남시 (中國石窟雕塑全集編纂委員會, 『中國石窟雕塑全集6 -北方六省』, 重慶出 版社, 2001, p.192에서 옮김).

사진 5 A: 보원사지 오층석탑, 9세기 후반, 충남 서산 (ⓒ문화재청), B: 보원사지 오층석탑 상층기단 남면 건달바상.

A B

18 원원사지석탑의십이지상은상층기단에조각되었고,이후통일신라석탑의십이지상은하층기단으로이동한다.

19 박경식, 2017,「한국불탑부조상의기원고찰」,『동양학』 67, pp.135-168.

20 엄기표, 2016,「중국隋唐代석탑의특징과新羅석탑과의비교」,『미술사학연구』 292, pp.157-158;박경식(2017), p.158.

(7)

탑기단에는 녹유소조 신장상이 배치되었고, 이후 조성 된 많은 전형양식 계통의 석탑들에도 사천왕, 팔부중, 십 이지, 천인, 보살 등 다양한 도상의 부조를 새긴 사례들이 있다.

21

8세기에 접어들면서 경주를 중심으로 수많은 석탑 들이 곳곳에 조성되었고, 그 가운데에는 <분황사석탑>

의 별석조각이나 사천왕사 목탑의 소조상과 달리 탑신석 이나 기단석 표면에 직접 신중상을 부조로 새긴 탑이 등 장한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사진 8>의 <장항리사지 오층석탑>, <간월사지 삼층석탑>, <원원사지 석탑>

등이 있는데, 특히 이 탑들은 쌍탑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22

758년 무렵에 조성된 김천 <갈 항사지 석탑> 역시 처음 조성되었을 때에는 탑신부에 사 천왕상을 새겼을 것으로 추정되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 중에 이 부분이 고의로 훼손되었다.

23

이상에서 예시한 석탑을 통해 통일신라에서는 적어 도 8세기 후반까지 쌍탑의 형식과 함께 금강역사 또는 사 천왕상을 탑신부에 새기는 현상이 유행이었음을 알 수 있 다.

24

다만 <원원사지 석탑>에는 여기에 더해 십이지상 을 상층기단에 조각하였는데, 이에 대해 탑을 오른쪽으 로 돌며 참배하는 예배자의 의식 과정(탑돌이)을 고려하 여 채택된 조형이었다는 견해가 있다.

25

이 석탑부조 십이 지상의 등장은 8세기 중·후반 이후 불탑에 대한 신라인의 관념과 인식의 변모를 예고하는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 다. 8세기말~9세기초 무렵에 조성된 경주 <창림사지 삼 층석탑>이나 <경주 남산동 서삼층석탑>에서 보이듯 기 존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신중상(팔부중)이 기단부에 등 장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인식의 전환을 반증한다 (사진 9).

팔부중상은 8세기 후반 이후 9세기까지 석탑부조의 대종(大宗)을 이루는 도상으로 <숭복사지 삼층석탑>과

사진 8 장항리사지 오층석탑, 8세기 중·후반, 경북 월성.

사진 9 경주 남산동 서삼층석탑 팔부중상 도면(3D),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경상북도의 석탑 Ⅱ』 , p.88에서 옮김).

21 탑부조상에관한연구성과는매우많지만대체로도상개별연구에집중한편이고여러종류의부조상을폭넓게고찰한글은장충식(1982)과김정희(1989), 허형욱(2008)의연구를참고할있다.

22 신라쌍탑가람의유행에대해서『금광명경』의유행에따른것으로견해는한정호, 2010,「신라쌍탑가람의출현과신앙적배경」,『석당논총』 46, pp.179-212. 23 고유섭, 1954,『한국탑파의연구』,을유문화사, p. 87;임재완, 2015,「갈항사지동·서삼층석탑에대한고찰」,『동악미술사학』 17, pp.651-673.

24 완전한석탑으로남아있는것은아니지만 7세기조성으로추정되는구황동폐탑지의금강역사상 6구가있으며, 8세기조성으로추정되는국립경주박물관소장 쌍석탑의탑신석이나황룡사서편사지탑신석등에도사천왕상이새겨졌다. 9세기에도운문사사천왕상석주나국립경주박물관소장의하동출토석물의금강역 사상 8구,천군동피막곡폐사지탑신석의사천왕상등을주요한사례로있다.이상의불탑탑신석부조상에대한전체적인개관은임영애, 2011,「신라 탑신부조상의추이」,『선사와고대』 35, pp.225-248 참조.

25 한재원, 2019,「한국고대신중상의의미와효용」,『미술사학연구』 302, p.20에서십이지상의시선이모두오른쪽으로향하다가북면축상(丑像)에서시선이 쪽으로바뀐것에대해오른쪽으로도는탑돌이의식이끝나는국면을의미한것으로해석하였다.

(8)

<운문사 삼층석탑> 등 경주 인근의 석탑뿐만 아니라 <진 전사지 삼층석탑>, <선림원지 삼층석탑>, <횡성 중금 리 삼층석탑>, <보원사지 오층석탑>, <지보사 삼층석 탑>, <신계사 삼층석탑> 등 당시 신라 세력이 미쳤던 거의 전 지역에서 널리 선택되었던 신중상이다. 팔부중 상은 경북 김천 갈항사지 전각의 부재였을 것으로 추정되 는 <갈항사지 팔부중상>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탑부조 상에 특화된 도상이다. 팔부신중은 경전에서 석탑에 예 배하고 부처나 보살의 가르침에 찬탄하거나 공양하는 존 재로 자주 나오므로 사원 건축에서도 이러한 경전 서사를 반영하여 팔부중상을 조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석탑 기단부의 팔부중상은 상 각각의 세부 표현에서 얼마간의 변화가 있었으며, 전체 도상의 배치도 두 가지 상반된 형식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26

9세기 이후 석탑부조의 주요 변화 가운데 하나는 팔부중상과 다른 존 상과의 결합 현상이다. 강원 양양의 <진전사지 석탑>에 는 탑신부에 사방불, 상층기단에 팔부중상과 하층기단에 천인상(또는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사진 10).

27

<보원 사지 석탑>과 <지보사 석탑>에도 하층기단부에 사자

상과 상층기단에는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한 편에서는 탑신부에 조각된 사천왕상, 하층기단의 십이지 상과 함께 상층기단부에 입상 형식의 팔부중상을 조각한 석탑이 영양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현 리탑>과 <화천리탑>이다.

Ⅲ. 새로운 신중 도상의 조합과 팔부중 제3형식

1

. 영양석탑의 사천왕상과 십이지상 도상 분석

1) 사천왕상의 비교 분석

영양석탑 두 기 모두 초층탑신 4면에는 갑옷을 착용 하고 악귀의 등과 머리를 밟고 선 사천왕상이 한 구씩 새 겨졌다. 이러한 입상 형태의 사천왕 도상은 7세기 사리기 등에 처음으로 보이다가 건축 의장으로서는 8세기 석굴 암에 등장한 이후 <원원사지 삼층석탑>과 같은 다수의 석탑 탑신부에 조각되었다.

28

두 탑의 사천왕상은 도상의 모본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표 2, 3). 우선 북면 다문천왕상을 빼면 각 방위의 사천왕들은 서로 아주 다른 자세이다. 동면의 지국천왕 의 경우 <현리탑>은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올려 칼자루 를 쥐고 왼쪽 허리춤으로 칼날을 내려뜨려 왼손으로 받친 형태지만 <화천리탑>에서는 칼을 오른손으로만 잡고 손등을 보인채 수직으로 땅에 세워둔 형태이다. 남면의 증장천왕은 <현리탑>에서는 왼손으로 칼로 추정되는 지물을 옆구리 쪽에서 잡고 그대로 수직으로 내려 엎드린 악귀의 허리에 대었고, <화천리탑>에서는 배 앞에서 두 손으로 맞잡아서 내린 칼끝을 악귀의 등에 대었다.

서면 광목천왕은 왼손에 지물을 든 모습은 같지만

사진 10 진전사지 삼층석탑 부조상, 9세기, 강원 양양.

26 한재원, 2006,「통일신라석탑부조팔부중도상과배치연구」,『미술사연구』 20, pp. 217-223.

27 진전사지석탑하층기단부조상은기존에는보통천인또는공양상등으로파악하였는데,최근에는상들을공양보살상으로보기도한다.한지연, 2018,「陳 田寺址三層石塔浮彫像硏究」충북대학교대학원고고미술사학과석사논문, p.26.

28 신라석탑탑신부등에조각된사천왕상에대해고찰한연구로문명대, 1980,「新羅四天王像의硏究:韓國塔浮彫像의硏究 2」,『불교미술』 5, pp.10-55;심영신, 1997,「통일신라시대四天王像연구」,『미술사학연구』 216, pp.5-47;권강미, 2003,「統一新羅四天王像硏究」,『文物硏究』 7, pp.45-102;김지현, 2010,「통 일신라佛塔의四天王像과의미」,『文物硏究』 17, pp.83-112 등이있다.

(9)

그 종류가 다르다. <현리탑>에서는 칼, <화천리탑>에 서는 천왕 자신의 키보다도 긴 장창을 잡았다. 또 <현리 탑>의 광목천왕의 자세는 두 다리가 나란하지 않고 왼다 리가 오른다리 앞으로 한 발 나선 것처럼 역동적으로 표현 되었는데, 이것은 경주 석굴암의 광목천왕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자세이다(사진 11). 반면 <화천리탑>의 광목천 왕은 귀를 덮은 투구를 쓰고 정면을 향한 모습으로, 보관 을 쓴 <현리탑>의 광목천왕과는 전혀 다른 도상이다.

영양석탑의 사천왕상은 다문천왕 외에는 모두 칼과 창을 지물로 들었다. 석탑 표면의 풍화로 희미한 부분도 있지만 천왕의 머리 뒤에는 원형 두광이 확인된다. 북면 의 다문천왕은 무기 없이 두 상 모두 왼손에 보탑을 받쳐 서 얼굴 높이로 올린 모습인데, <현리탑>의 다문천왕상 이 들고 있는 보탑이 더 높고 옥개석의 수도 많다.

두 탑의 사천왕상에서 보이는 또 다른 차이점은 머 리와 팔뚝 등에 걸친 천의의 형태이다. 머리 뒤쪽으로 휘 날리는 천의의 모습은 서로 유사하다. 그러나 팔뚝과 하 체 옆의 천의는 <현리탑> 사천왕상의 천의가 자연스럽 게 아래쪽으로 늘어져서 부분적으로 가벼운 움직임을 보 여주는 반면, <화천리탑> 사천왕상의 천의는 끄트머리 가 옆과 위쪽으로 향하였고 마치 강한 바람에 펄럭이듯

구불구불하고 두껍게 다소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무엇보다 두 탑 부조상의 양식적인 차이점은 신체 의 입체감 표현에 있다. <화천리탑>의 부조상들은 얼굴 의 입체감을 살리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지만, 신체 와 갑옷의 적절한 결합은 이루어내지 못하였다. 즉 몸의 전체적인 표현은 실제로 갑옷을 착용한 듯한 개연성 있는 형상이 아닌 마치 두꺼운 판석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 나 <현리탑>의 사천왕상은 남방과 북방천왕처럼 상 자 체가 약간의 미묘한 측면관을 지닌 상도 있으며, 앞서 살 핀 광목천왕상처럼 앞으로 한 발 내딛는 역동적인 동세 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도 보인다. 더욱이 <현리 탑> 부조상들의 신체는 갑옷의 세부를 선각으로만 평면

사진 11 석굴암 광목천왕상, 8세기 중반, 경북 경주. (국립문화재연구소, 『석굴 암, 그 사진』, 2020, p.102에서 옮김).

표 2 현리 삼층석탑 사천왕상

표 3 화천리 삼층석탑 사천왕상

(10)

적으로 새긴 것이 아니라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신체 에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실재감을 부조 특유의 미세 한 입체감을 살려 표현했다. <현리탑> 부조상의 이러한 양식적 특징은 8세기 석탑의 부조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그 영향이 <현리탑>이 건립된 시기까지도 여전 히 남아 있음을 알려 준다.

2) 십이지상 비교 분석

사천왕상 아래 상층기단에는 팔부중상이 배치되었 는데, 팔부중에 대한 고찰은 다음 절에서 따로 하고 여기 에서는 먼저 사천왕상처럼 방위신의 성격이 강한 하층

기단의 십이지상부터 살펴보겠다. 영양석탑의 십이지상 은 각 상의 고유한 방위대로 배치되었다(표 4, 5). 즉 북면 중앙에는 쥐[子]상, 남면 중앙에 말[午]상이 배치되어 자 오선을 이루며 동면 중앙에 토끼[卯]상 서면 중앙에는 닭 [酉]상이 위치한다. 따라서 예탑자(禮塔者)는 동쪽부터 우요(右繞)하게 되면 동면 향우상부터 인-묘-진상, 남면 에 사-오-미상, 서면에 신-유-술상, 북면에 해-자-축상을 차례대로 마주할 것이다.

십이지상들의 시선은 <현리탑> 동면부터 (탑돌이 순서대로) 우-우-우/좌-중(정면)-좌(?)/우-중-좌/우-우-좌 향인데, 우요불탑의 방향과 마무리 시점(축상)을 반영했

표 4 현리 삼층석탑 십이지상

사진 도면

표 5 화천리 삼층석탑 십이지상

사진 도면

(11)

던 <원원사지 석탑>의 십이지상과는 달리 어떤 원칙에 의해 상들의 시선이 정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표 4 도 면). <화천리탑> 십이지상도 동면 향우상부터 좌-우-우/

우-우-좌/우-우-좌/우-좌-중(?)향으로 특별한 원칙은 없었 던 듯하다(표 5 도면). 따라서 영양석탑 십이지상의 시선 은 탑돌이 의례 등을 의식하여 결정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이 시기에는 탑돌이 의례의 절차를 반영하는 부조 상을 새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예탑 의례가 정형화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고, 혹은 탑과 부조상을 대하는 불교도들 의 인식에 어떤 차이가 발생했었을 가능성도 있다.

29

두 탑의 부조상 표면의 마멸과 탈락이 매우 심하기 때문에 부분 부분 형상이 확실하지는 않은 곳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탑신의 사천왕상과 마찬가지로 십이지상 역 시 두 탑은 같은 도상본을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같 은 방위의 상끼리 시선의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고, 지물 을 든 형태도 대부분 서로 다르다(표 4, 5 도면). 예를 들 어 <현리탑>의 닭[酉]상은 정면을 향하고 창으로 보이 는 긴 지물을 지면과 수평이 되도록 두 손으로 받쳐 잡았 는데, <화천리탑> 닭상의 시선은 오른쪽을 향하였고 왼 손에 칼을 들었다. 호랑이상도 시선의 방향이 서로 다르 고 뱀상의 시선도 서로 반대이다. 그나마 방향이 일치하 는 토끼, 용, 양, 원숭이, 개, 돼지상도 지물은 각기 다르 다. 물론 동일한 도상본으로 조각을 새기더라도 조각공 의 재량에 따라 부분적인 변형은 시도할 수 있겠지만 이 렇게 두 탑에서 같은 방위의 상들끼리 서로 형태가 완전 히 다르다는 것은 부조상을 새길 때 서로 다른 모본을 사 용한 게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렵다.

30

2

. 팔부중상 도상 분석: 제

3

형식 팔부중 석탑의 성립31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부조상의 구성이 영양 석탑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전술한 바와 같 다. 즉 상층기단에 단독으로 조성되었던 팔부중상이 사 천왕상·십이지상과 함께 무리를 형성하여 배치되었다.

여기에다 주로 좌상이었던 팔부중이 영양석탑에서는 입 상으로 바뀌었다. 이 새로운 신중상 형태와 조합의 의미 를 이해하는 것은 일단 각 면석 부조상의 정확한 도상(특 히 팔부중상)의 판독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각 부조상의 이름이나 위치를 모른다면 석탑의 총체적인 의미도 파악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절에서는 <현리탑>과 <화천리탑> 상층기단의 팔부중상을 도상별로 함께 분석하되 일반적인 예탑의 방 향에 따라 동-남-서-북의 순서로 살펴보겠다. 석탑 표면의 구조적 파손이나 무른 석질(石質)에 따른 부분적인 상들의 탈락이 많아 완전한 도상의 파악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두 탑의 팔부중 배치가 일치하기 때문 에 같은 위치의 도상끼리 상호 비교 고찰이 가능하다. 특 히 한쪽 탑의 상이 탈락과 마모가 심해 도상 판별이 어려워 도 다른쪽 상을 통해 원래의 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아래 에 살펴볼 <현리탑>의 아수라상이 바로 그 경우이다.

1) 동면: 아수라-건달바(표 6)

<화천리탑>의 동면 향좌측에는 아수라상이 조각 되었다. 오른쪽 얼굴이 떨어져 나갔지만 왼쪽 옆얼굴은 남아 있어 원래 삼면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팔은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은 한 쌍, 머리 높이로 올려서 각각 지물

29 신라석탑의부조상조합과의미에대한가지중요한논제는김지현, 2018a,「통일신라시대塔浮彫像연구–서로다른도상으로조합된부조상을중심으 로」,『신라사학보』 43, pp.169-215참고할있다.

30 김지현, 2019,「경주지역석탑에부조된八部衆像과圖像本에대한試論」,『불교미술사학』 29, p.60에서 2차원적인불화나석탑부조상의경우도상본을토대 상황에따라부분적으로다르게제작할여지는인정하였으나그럼에도같은도상본을사용한부조상들에는가지뚜렷한공통요소들이보인다고하였다.

<현리탑>과<화천리탑>의사천왕상과십이지상의형태에차이가나타난다는점은결국상들의도상본은같지않았음을대변하는것이다.

31 영양석탑팔부중상배치에대해서는필자의선행논문(2015), 144각주14에서처음으로제기했었고,앞서밝힌바대로필자의학위논문(2018) 165-170 에서팔부중1형식,2형식배치와함께새로운배치형식으로분류하여살펴본있었다.그러나이전의글에서는영양석탑팔부중도상의철저한분석을 거친논증까지는이르지못하였다고판단하였다.이에‘팔부신장’으로도지칭되기도하는상들을과연팔부중으로있는가를우선검토해보려는것이 글의중요한목적가운데하나이다.

(12)

을 든 한 쌍, 머리 위로 높이 올려서 해와 달을 상징하는 둥근 지물을 받친 한 쌍을 갖추었다. 이로써 삼면육비(三 面六臂) 또는 팔비(八臂)에 벗은 상체, 짧은 하의와 맨다 리를 보이는 아수라의 전형적인 도상임이 확인된다.

32

반면 <현리탑>의 동면 향좌측상은 상체와 머리 부 분이 대부분 결실되어 있어 도상 파악이 매우 어렵다. 그 러나 파손된 부분의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희미하게 남 은 오른쪽 팔 두 개와 꼭대기 부분에 둥근 지물을 받쳐 든 왼손 일부를 판별할 수 있기 때문에 짧은 하의를 착용하 고 맨다리와 맨발을 드러낸 하체의 형태까지 감안한다면 이 상은 아수라상임을 알 수 있다(사진 12). 아수라상을 제외한 다른 팔부중상들은 상·하체 모두 갑옷을 착용하 였고, 특히 정강이 부분은 경갑(脛甲)으로 감싼 형태로 묘

사되었기 때문에 아수라상과의 차이가 뚜렷하다.

<화천리탑> 동면 향우상은 목 앞에서 짐승 다리가

표 6 영양석탑 동면 상층기단 팔부중상

현리 삼층석탑 화천리 삼층석탑

사진 12 현리 삼층석탑 동면 아수라상 (세부).

사진 13 현리 삼층석탑 동면 건달바상 (세부).

32 아수라형상에대해『法苑珠林』에서는“체모가누추하고언제나분노의독을품고있다.머리는개가함께달렸고여덟팔을겹으로가졌다(體貌鄙每懷 瞋毒.出三頭重安八臂).”고하였다.(T.53-2122, p. 308 中).

(13)

교차하는 것으로 보아 사자 가죽을 쓴 건달바상이다.

33

<현리탑>의 동면 향우상도 얼굴은 완전히 탈락되었지 만 머리 둘레에 사자관으로 추정되는 관을 덮어 썼다(사 진 13). 쇄골 부근에서 앞발이 교차하고 있는 모습은 전형 적인 건달바 사자관의 특징이다. 또한 두 상은 아수라상 과 달리 모두 갑옷을 입었는데, 탑신의 사천왕상처럼 화 려한 장식이 있거나 <현리탑>의 광목천왕처럼 명광개 (明光鎧) 형식은 아니고 일종의 의장용 갑옷으로 보인다.

양 팔뚝 밑으로 소매가 무릎 부분까지 길게 늘어진 것을 보면 오히려 격식을 갖춘 옷[大袖衣] 위에 경갑옷을 착용 한 것처럼 보인다. 다른 모든 팔부중상들 역시 건달바상 처럼 긴 소매의 상의를 입었지만 오직 아수라상만은 상

의를 입지 않기 때문에 늘어진 소매도 보이지 않는다. 상 체 대부분이 파손되었음에도 <현리탑>의 동면 향좌측 상을 아수라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는 <화 천리탑> 아수라상이 그렇듯이 무릎 옆에 팔뚝부터 늘어 진 긴 소맷자락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 남면: 용-마후라가(표 7)

많은 석탑이 그렇듯이 영양석탑에서도 남면은 부 조상의 상태가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다. 상층기단 남면 의 향좌상은 두 탑 모두 머리 위에 용머리가 보이는 용상 이 배치되었고 부조의 상태도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화천리탑>의 용상은 머리카락과 이목구비도 뚜렷하

표 7 영양석탑 남면 상층기단 팔부중상

현리 삼층석탑 화천리 삼층석탑

33 미즈노사야(水野さや), 2017,「慶州石窟庵前室の八部神將像」,『八部衆像の成立と展開』(中央公論美術出版), p.308에서도<화천리탑>의상을사자가죽을 건달바로보았다.그리고동면향좌상을아수라상으로,남면향좌상을용상으로,북면향우상을야차상으로외에나머지상들은도상이명확하지않다 하면서,<현리탑>이나석굴암전실의상들과함께팔부중상의도상적특징을일부포함한8구의신장상군(神將像群)’으로규정하였다.주장은미즈노 야, 2011,「토함산석굴의八部衆像」,『토함산석굴불상』(한국미술사연구소), pp.209-228에서처음으로제기된것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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