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휘**86)
Ⅰ. 머리말
Ⅱ. 최제우의 깨달음, 시천주
Ⅲ. 동학의 수도 1. 시천주의 체험 2. 수심정기
Ⅳ. 주문수련의 의미와 방법 1. 주문 수련법의 의미 2. 주문 수련의 방법
Ⅴ. 맺음말
【국문요약】
동학(東學)은 수운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모든 사람들이 몸에 하늘님을 모시고 있음)에 대한 자각으로 탄생했다. 최제우는 이 시천 주 사상을 통해 이기심(各自爲心)에 빠진 당시 사람들에게 참된 경천 (敬天)의 방법과 새로운 인간의 길을 밝혔다. 이는 모든 사람들의 몸
* 본 논문은 2007년도 정부재원(교육과학부 학술연구조성사업비)으로 한국학중 앙연구원의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AKS-2007-GA-3002)
** 고려대 강사
에 영(靈)과 기(氣)로 모셔져 있는 하늘님을 체험하고, 그 영기(靈氣) 로서의 하늘님을 부모님처럼 섬기는 삶이다. 자기의 내면에서 신성 한 하늘을 발견한 사람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전면적인 인격의 전환 을 경험하며, 동시에 모든 사람들을 신분과 관계없이 하늘님으로 공 경하는 삶으로의 전환을 촉구받는다.
이 시천주의 실천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수심정기(守心正氣, 하늘 마음을 회복하여 지켜내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함)이다. 동학은 수심정기의 공부를 통해 마음과 기운을 항상 맑고, 밝고, 온화하고, 편안한 상태, 그러면서도 늘 깨어서 집중된 상태, 나아가 신령한 상 태로 만드는 것을 중시한다. 이런 마음 상태가 되어야 진정한 도덕 실천도 가능하고, 인의예지의 실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심정기를 위한 구체적인 수련은 주로 주문(呪文)수련을 통해 행해 진다. 동학의 주문은 동학의 핵심인 시천주의 의미를 담아 반복적으로 외게 함으로써 자연한 가운데 천심을 회복하게 하고 마음을 굳건(定) 하게 하는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수련법이다.
주문은 현송(소리를 내서 하는 주문수련)과 묵송(속으로만 주문을 외면서 하는 수련)을 통해 행해진다. 현송은 큰 소리로 주문을 외면 서 하는데 이를 통해 기운(몸) 공부를 하며, 속으로 잠잠히 주문을 외 는 묵송공부를 통해 성품공부(견성공부)를 겸하고 있는 것이 동학의 수련법이다. 또한 이를 통해 자연한 가운데 마음이 맑고 밝고 편안해 져 수심정기가 되므로 마음공부라고 할 수 있다. 큰 틀에서는 마음공 부이긴 하지만 한쪽으로는 기운을 바르고 조화롭게 하는 공부를 하 고, 한쪽으로는 그 마음의 본래자리, 비고 고요한 본성자리를 공부함 으로써 나의 근본(참나)을 깨닫는 공부를 한다. 이처럼 주문을 외우 는 가운데 자연히 천심을 회복하는 ‘무위이화(無爲而化-저절로 이루 어짐)’의 수련법이라는 점과, 인간의 존재를 성심신의 세 측면으로 이해하고, 그 각각의 성품과 마음과 몸 공부를 같이 겸한다는 것이
동학 수련의 특징이다. 이것이 우리 고유의 선도수련의 ‘셋을 하나로 닦는’ 공부를 계승하고 있음을 말할 것도 없다.
주제어 : 동학, 시천주, 수심정기, 주문 수련
Ⅰ
. 머리말
불안이 삶의 구석구석을 지배하고 있다. 물질적 편리와 풍요를 누 리고 있지만, 불안은 더 깊어졌다. 땅의 안정성과 포용성, 느림, 자연 과 가까이 하는 삶의 여유는 없다.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직접 생산하 던 자급자족의 삶과 멀어진 지도 오래다. 천하의 큰 근본(大本)을 잃 어버린 채 도시의 삶은 늘 바쁘고 분주하고 부품화 되어 있다.
자연과 문화가 분리되고, 몸과 머리가 분리된 삶에서 오는 괴리는 삶의 여러 국면에서 소외를 유발한다. 현대인의 삶은 물질적 편리성과 안락, 감각적인 자극에 끌려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을 종종 망각한다.
마음과 영혼은 늘 표피적 몸의 감각과 변덕스런 생각에 소외된다. 마 음은 자주 산만하고 어둡고 뒤틀려 있고, 영혼은 후미진 골방에 내팽 겨쳐진 채 신음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우리 시대는 육체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 또한 심각하다. 심리학과 각종 명상 수행이 유행병 처럼 범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문제를 마음의 문제로, 수양과 수행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 반 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외부적 요인도 있는 법이다. 객관적인 환경 과 법적⋅제도적 문제로 바꿔야 하는 것도 적지 않다. 아시아적 사유 는 지금까지 이런 객관적인 부분, 법적⋅제도적인 개선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가 유럽에서 태동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반면 유럽은 ‘인간의 선함’과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별반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제도적 장치와 합의를 통해서 풀어나가려 하였다.1) 하지만 민주주의는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최선의 사회는 아니다.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자유’는 아시아 적 사유에서 추구한 정신적 경계의 높은 성취에 대한 상상력과 비전 이 없다. 지금 시대의 불안과 위기는 그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이 시대는 서구가 성취한 제도적 장치의 토대 위에, 다시 과거 아시아적 삶의 상상력이 요구되는 시대라 하겠다. 지금의 문명 은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적극적인 희망과 비전이 필요하다.
다시 ‘수행’을 학문적 담론 안으로 끌여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다만 그 비전을 제도적 합리성 위에 세워야 한다.
나는 이 글에서 ‘인간이 무엇을 꿈꿀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자 한 다. 어떤 인격을 꿈꿀 수 있고, 어떤 사회를 꿈꿀 수 있는가? 동아시 아 사유의 전통에서 이 둘은 떨어져 있지 않다. 이 문제를 고민함에 있어 동학(東學)을 그 대상으로 한 이유는, 동학이 우리나라에서 자 생적으로 나온 철학사상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실천과 개인의 수행 을 늘 같이 고민하고, 인간 존재의 세 측면, 몸과 마음과 성품을 같이 수행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정신적 궁핍의 시대를 극복 하고 보다 품격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동학의 수도(修道)와 그 실천적 방법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Ⅱ
. 최제우의 깨달음, 시천주
동학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다. 그 중에 하나는 동학은 애초에 서학에 반대해서 나온 종교라는 것이다. 그런데 동학의 ‘동’은 서에 대한 동이 아니라, ‘동국’의 ‘동’ 그냥 ‘조선’을 의미하는 용어였다. 예
1) 카렌 암스트롱 지금, 정영목 옮김, 축의 시대, 교양인, 2010년, 참조.
로부터 ‘동(東)’자는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우리민족을 동이 (東夷)라고 하였고 우리나라를 동국(東國), 우리 역사를 동사(東史), 우리 의학을 동의(東醫)라고 했다. 그러므로 ‘동학’의 ‘동’은 곧 조선 을 의미하는 것이며, 따라서 ‘동학’은 ‘동국의 학’, 조선의 학, 즉 ‘우리 학문’을 의미하는 것이다.2) 물론 서학을 염두에 두긴 했지만, 일차적 으로는 여전히 당시의 지배적인 학문이었지만 더 이상 현실에서 작 동하지 않는 중국의 유학에 대한 대안적 학문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동학은 1860년 당시 조선 백성들의 고통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서 유학과 서학과는 다른 이 땅의 학문을 정립하려는 의도 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최제우는 “도는 비록 천도나 학인 즉 동학”3)이라고 하였다. 도(道)는 서도(西道), 동도(東道)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천도(天道)일 뿐이지만, 공부하는 방법으로서의 학(學)은 지역적⋅문화적⋅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해서 구체적인 방법 의 다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하나이지만 그 진리에 도달 하는 길은 ‘지금 여기’에서, 당시 조선 백성이 안고 있는 문제에서 시 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동학은 유불선 삼교를 적당히 혼합한 유사종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4) 그러나 동학은 단지 유불선 삼교의 수평적 혼합이 아니라, 최제우의 종교체험과 그 반성적 작업을 통해 ‘시천주(侍天主)’라는 명 제를 발견함으로써 나온 사유의 ‘창조적 비약’의 결과이다. 처음에는 서양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대응과 부패한 정부, 지방수령들의 수탈로부터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계책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시작된
2) 졸저, 우리학문으로서의 동학, 책세상, 2006. 참조.
3) 東經大全, 「論學文」
4) 동학을 유불선과 무속, 기독교까지 혼합한 유사종교 정도로 보는 것은 일제의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어용학자들, 예를 들면 村山智順의 朝鮮の類似宗敎)
와 吉川文太郞의 朝鮮の諸宗敎)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구도(求道)가 결국 전일적인 하늘님 체험을 통해서 ‘시천주’를 자각함 으로써 독자성을 확보하였고, 결과적으로 서학마저도 껴안는 새로운 삶의 길(道)을 자각해냈던 것이다.5)
셋째, 동학의 핵심사상을 ‘인내천’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몸에 하늘님을 모시고 있고, 또 모든 만유가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가 원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이 시천주는 1860년 4월 5일 최제우의 신비체험과 그 이후 약 일년 간의 수련과 성찰을 통해 내놓은 것이다. 동학이 단지 유불선를 종합 한 것이 아닌 이유도 이 체험을 통한 질적 비약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종교체험은 모든 세계종교의 창시자들이 체험했던 ‘궁극적 실재’
의 체험이었으며, 그로 인해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의 열림과 함 께 자유롭고 원만한 인격으로의 대전환이 이루어지는 체험이었다.6) 그것은 한편으로 모든 인간들이 참으로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이며, 참 으로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체험이었다.
동학은 당시의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아 보려는 최제우의 ‘보국안 민(輔國安民)’의 열망에서 나온 종교이다. 최제우는 당시 세상이 어지 러워진 이유를 근본적으로는 천명을 돌보지 않고 천리를 순종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심(各自爲心)에 빠져 있기 때 문이라고 보았다.7) 그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고 존엄하게 하는 것은 자기 몸뚱아리, 자기 욕구에만 빠져 있는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 그의 구도는 일차적으로 각자의 이기심을 극복 하고 모든 사람들의 삶을 존엄하게 변화시키는 길을 발견하려는 것 이었다.
그는 7여년의 각고의 수련 끝에 1860년 4월 5일 하늘님으로부터
5) 윤석산, 동학교주 수운 최제우, 모시는 사람들, 2004, 121쪽 참조.
6) 표영삼, 東學1-水雲의 삶과 생각, 통나무, 2004, 98쪽 참조.
7) 東經大全,「布德文」, “又此挽近以來,一世之人, 各自爲心, 不順天理, 不顧天命, 心常悚然, 莫知所向矣.”
가르침을 받게 된다. 이때 하늘님은 자상하게 가르침을 내리는 인격 적인 존재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하늘님이 외재적 이고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내 몸에 모셔져 있는 영(靈, 內有神靈) 이며 기운(外有氣化)이라는 것을 체험을 통해 깨닫게 된다. 이 체험 을 그는 “몸이 몹시 떨리면서 밖으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고 안으로 강화의 가르침이 있으되, 보였는데 보이지 아니하고 들렸는데 들리 지 아니하였다”8)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체험들을 통해 그는 하늘 님이 밖에 계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 영과 기로서 모셔져 있다 는 시천주(侍天主)를 자각하게 된다.
최제우는 ‘시천주’라는 명제를 자각함으로써 동학을 창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천주야말로 동학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시(侍)’ 한 글자에 모든 의미가 다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제우은 ‘모심’(侍)’을 직접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모심이란 안으로 신령한 영(神靈)이 있고 밖으로 기화(氣化)작용이 있어 온 세상 사람들이 각자 알아서 옮기지 않는 것이다.9)
모심을 세 가지, 즉 ‘내유신령(內有神靈)’, ‘외유기화(外有氣化)’, ‘각 지불이(各知不移)’로 풀이하고 있다. ‘내유신령’은 하늘님은 저 하늘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신령한 영으로서 내재한다는 뜻이며,
‘외유기화’는 그 하늘님이 몸 안팎에서 기운으로서 끊임없이 생명의 교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각지불이’는 이 영과 기운으로 모셔져 있는 하늘님을 각자가 온전히 알아서 옮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늘 모심을 온전히 체득하여 여기서 이탈됨이 없는 실천을 해야 한 다는 것이다. ‘내유신령’과 ‘외유기화’가 하늘이 인간에게 영과 기운으
8) 東經大全,「論學文」, “身多戰寒, 外有接靈之氣, 內有降話之敎, 視之不見, 聽 之不聞.”
9) 東經大全,「論學文」, “侍字,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各知不移者也.”
로서 관계하는 모습, 즉 인간에게 ‘모셔져’ 있는 존재론적 실상을 의 미한다면, ‘각지불이’는 영과 기운으로서의 하늘님을 몸 안팎에서 온 전히 체험함으로써 하늘과 분리됨이 없는 참된 섬김(경천)을 해야 한 다는 실천적 의미로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내유신령’이다. 최제우는 용담유사
에서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捨近取遠) 하단말가”라고 하여, 하 늘님을 멀리 구하지 말고 가까운 데서 찾으라고 하였다. 자기 내면에 서 하늘님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종교전통에서도 ‘아트만’
‘내면의 빛’, ‘참나’, ‘신성한 지혜’, ‘내면의 목소리’, ‘불성’, ‘성품’ 등으 로 얘기해 왔던 것이다.10) 우리는 하늘님을 자연의 장엄한 경관에서, 또는 위대한 자연의 신비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님 을 굶주리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전에 골방에서 그리고 자기의 깊은 내면에서 하늘 님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학은 이처럼 최제우의 시천주 체험과 자각으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천주는 신관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담고 있다. 하지만 시천주의 자각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필연적으로 인간에 대한 새로 운 이해를 촉구한다. 자기 안에서 하늘의 신성을 발견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낡은 자기일 수 없다. 그는 그동안 보잘 것 없는 일 개 무지렁이 백성으로서 살았을지언정, 내면에서 하늘을 발견함으로 써 이제 새로운 자기로 거듭난다. 그는 자기의 잃어버린 존엄성을 발 견하고, 내면에서 초월적 차원을 열게 되는 동시에 다른 모든 존재들 에서도 거룩한 하늘님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시천주의 인식은 당시
10) 캔윌버는 “이미 각자에게 존재하지만 아마도 밝게 빛나지 않고, 이미 각자 에게 주어져 있지만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으며, 이미 세상을 돌보고 있지만 그 모든 시련들 속에서 어쩌면 잊혀졌을 그러한 신성을 발견하는 것 이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한다. 켄 윌버, 김명권, 인회준 공역, 켄 윌버의 일기, 학지사, 2000, 14쪽.
모든 사람들을 계급과 귀천에 관계없이 존엄하고 평등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하였을 터였다.
이렇게 최제우는 하늘님에 대한 이해와 경천의 방법을 새롭게 하 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촉구하였다. 이것이 당시의 계 급모순과 불평등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가져오게 하였고, 해월 최시 형에게 와서는 사인여천(事人如天)과 경물(敬物) 사상으로 이어졌으 며, 이후 동학농민혁명의 사상적 기반으로 계승되었다.
Ⅲ
. 동학의 수도
동학은 출발자체가 보국안민을 목적으로 하고, 동학농민혁명 등 사회실천적 성격이 강한 단체이다. 그러나 그 탄생 자체가 최제우의 득도체험에서 비롯되었듯이, 수도를 통한 득도(得道)를 중시하는 ‘수 행과 깨달음의 종교’이기도 하다. 최제우는 그것을 도성덕립(道成德 立)으로 표현한다.11)
동학은 서민의 종교이기에 엄정한 출가수행을 권하지 않고, 일상에 서의 수도를 중시한다.12) 그래서 매매사사를 하늘님께 고하는 ‘심고 (心告)’, 일상에서의 ‘대인접물(待人接物)’, 매사에 정성⋅공경⋅믿음(誠 敬信)의 실천 등 일상에서의 수도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동학의 수도는 신앙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동학이 무사불섭(無事不涉), 무사불명(無事不命)하는 하늘님의 실재성 을 믿고 그 하늘님을 내 몸에서 내유신령(內有神靈)과 외유기화(外有 氣化)로서 체험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수도의 출발로 삼고 있기 때문 이다. 이런 연유로 동학은 타력적 신앙과 자력적 수도가 결합되어 있다.13) 11) 東經大全, 「修德文」, “雖然, 道成德立, 在誠在人.”
12) 특별수련이 있긴 해도, 그 기간은 21일, 49일, 105일에 한정된다.
하늘님이 처음에는 인격적 실재로 경험되긴 하지만, 수도가 깊어짐에 따라 그 ‘하늘님’을 영과 기로 체험하게 되고, 나중에는 나의 본래 마 음(心靈, 心卽天)으로, 최종적으로는 본래 하나였다는 것(人乃天)에 이 르기까지 수도의 심화에 따른 인식의 확대가 일어난다는 점을 유의해 야 한다.14) 그러므로 동학의 ‘하늘님’ 개념을 일의적으로 파악해선 안 되며, 그 중층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동학은 신앙과 수도가 분리되지 않으며, 그 수도의 단계에 따라 하늘님에 대한 관념과, 그 천인(天人) 관계의 주객이 달라진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15)
1. 시천주의 체험
동학의 수도는 내 몸에서 시천주를 체험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앞 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늘님은 내 몸에서 내유신령과 외유기화로 체 험될 수 있다고 한다. 최제우는 몸에 ‘기화지신(氣化之神)’16)이 있는 것이 서학과의 차이점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동학의 2세 교 조(敎祖) 해월 최시형은 “밖으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음과 안으로 강
13) 성해영, 「수운(水雲 崔濟愚) 종교체험의 비교종교학적 고찰」,동학학보, 제 18호, 2009년 12월. 참조
14) 이는 동학의 역사적 전개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나타낸다. 큰 틀에서 보면 최제우는 하늘님의 실재성에 대한 체험을 강조하고, 최시형은 그것이 본래 마음이며, 심령이라는(心卽天) 점을 강조하고, 손병희는 흔히 동학의 핵심으 로 잘 알고 있는 ‘인내천(人乃天)’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는 강조점이 그렇다는 것이지, 다른 측면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살펴야 한다.
15) 여기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보라. 졸고, 「동학 신관의 재검토-수 양론적 관점에서 본 신관」, 동학학보, 제9권1호 2005년 6월.
16) 東經大全, 「論學文」, “曰: 與洋道無異者乎? 曰: 洋學如斯而有異, 如呪而無實, 然而運則一也, 道則同也, 理則非也. 曰: 何爲其然也? 曰: 吾道無爲而化矣. 守 其心正其氣, 率其性受其敎, 化出於自然之中也. 西人, 言無次第, 書無皂白, 而 頓無爲天主之端, 只祝自爲身之謀, 身無氣化之神, 學無天主之敎, 有形無迹, 如 思無呪, 道近虛無, 學非天主, 豈可謂無異者乎.”
화의 가르침이 있음을 확실히 투득해야 가히 덕을 세웠다 말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탁명이나 했다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17)이라고 했다.
‘외유기화’를 ‘외유접령지기(外有接靈之氣)’로, 내유신령을 ‘내유강화 지교(內有降話之敎)’로 해석하고 있다. 밖으로 온 몸이 천지의 기운에 휩싸여 기화되는 체험을 하고, 안으로는 하늘님의 가르침을 받는 체 험을 해야 비로소 입문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제우는 기(氣)를 “허령이 창창하여 일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 고 일에 명령하지 아니함이 없으나, 그러나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듯하나 보기는 어려우니, 이 또한 혼원한 한 기운이다.”18) 라고 풀이하고 있다. 기를 단순히 만물의 질료나 에너 지로만 보지않고, ‘무사불섭(無事不涉) 무사불명(無事不命)의 허령(虛 靈)’이라고 생각한다. 영과 기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하나의 혼원한 실재라고 보는 것이다. 기 자체가 원래 영이기도 하다는 데서 성리학 의 기론과 갈라지고, 서양의 유신론적 종교와 만나는 지점이 생긴다 고 할 수 있다.19) 물질과 정신이 둘이 아니고, 기와 영이 둘이 아니 라 하나의 궁극적 실재의 양 측면으로 보는 것이다. 이 하나의 혼원 한 일기(一氣), 또는 지기(至氣)가 인간에게 경험될 때, 밖으로는 기운 의 떨림으로 체험되고, 안으로는 강화(降話)의 가르침으로 체험된다 는 것이다. 이것이 시천주의 ‘모심’ 체험의 두 측면이다.
최제우의 깨달음은 하늘님이 실재하되, 저 하늘에 계신 초월적 인격 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기(靈氣)로서 우주에 두루 존재하며, 그 영기가 나를 낳고 또한 내 몸에 모셔져 있다는 것을 깨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님은 사변적 증명의 대상이 아니며, 바로 내 몸에 모셔 져 있음을 기운과 신령으로 체험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17) 해월신사법설, 「심령지령」
18) 東經大全, 「論學文」, “氣者, 虛靈蒼蒼, 無事不涉, 無事不命, 然而如形而難狀, 如聞而難見, 是亦渾元之一氣也.”
19) 김경재, 「東學의 神觀」, 東學思想論叢 제1집, 天道敎中央總部, 1982, 218쪽 참조.
소춘 김기전은 다음과 같이 시천주 체험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주문을 외우려 할 적에 맨 먼저 가져야 할 것은 이 ‘송주’에 대한 의욕이다. 어떻게 하든지 이 주문 속에 씌어 있는 그대로의 지기대강(至氣 大降)을 얻고 내유신령을 증험하고 지화지기(至化至氣)를 체득해보고야 말 겠다는 강한 의욕이다. 그래서 이 삼칠(三七)자를 체험해 보는 일을 자기 평생의 일대사(一大事)로 꼭 인정하는 그것이다. 삼칠자의 체험은 곧 시천 주의 체험이요, 시천주의 체험은 곧 내유신령의 무궁생명의 체득이니, 이것 이 인간 일생의 큰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20)
김기전은 주문 수련을 통해 지기가 몸에 내리는 기화체험과 내유 신령을 꼭 체험하겠다는 강한 의욕을 가지고 송주를 하라고 강조하 면서, 이 시천주를 체험하는 것이 인간 인생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 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또 접령, 강화의 체험이 수도의 가 장 핵심이며, 이것이 하늘님과 스승님을 친면(親面)하는 것이라고 언 급하고 있다.
접령 강화하도록 닦는 것, 이것이 내가 본 문제에서 말하고자 하는 전체 이며, 또는 남녀 도우 여러분에게 권하고자 하는 전체이다. 접령은 물론 한 울님의 신령에 접한다는 것이니 한울님의 신령에 접하면 스스로 스승님의 신령에 접할 지요, 강화(降話)라 하면 물론 한울님의 말씀을 받아 내리는 것이니 한울님의 말씀을 받으면 스스로 스승님의 말씀을 받을 지니 접령 강화라 함은 달리 말하면 곧 천사친면이다.21)
한편 김경재는 최제우의 시천주 체험은 “단순히 정신과 구별되는 신체의 체험이 아니라 그것이 통합된 구체적이고 전일적인 몸으로 체
20) 소춘김기전선생문집 편찬위원회, 소춘김기전선생문집 3, 국학자료원, 2011, 137쪽.
21) 같은 책, 140쪽.
험되고, 그 생명체 심령의 중심부에서 체험되며, 그 몸 안에 신령한 궁극적 실재가 현존한다는 체험”이라고 한다. 이 체험을 통해 인간생 명을 영험하게 하고, 투명하게 하고, 황홀하게 만들면서, 일상적인 인 식론적 주객구조를 돌파하게 하는 체험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한다.22) 이렇게 외유접령지기와 내유강화지교를 체험함으로써 ‘시천주’의
‘참뜻을 이해하게 되고, 참된 경천(敬天)이 시작될 수 있으며, 비로소 도성덕립의 수도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천주의 체험 은 동학 수도의 가장 중요한 관문이자 다른 종교전통이나 여타의 명 상수행과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수심정기
시천주의 접령, 강화 체험이 동학 수도의 입문으로 가장 중요한 부 분이라면, 수심정기(守心正氣)는 동학 수도에서 가장 중요한 수도법 이라고 할 수 있다. 수심정기는 하늘 마음(天心)과 기운을 회복하여 그것을 늘 일상에서도 보존하여 지켜내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물들 고 습관된 마음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받은 본래의 맑고 밝고 신령한 마음과 기운을 회복하여 그것을 매사에 잘 지켜내는 것이 동학 수도 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는 것이다.
최제우는 10여년 동안 주유천하하면서 현실에서 유학의 가르침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유도불도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라고 한탄하였다. 유학의 근본적 가르침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고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보았다. 최제우는 말끝마다 삼강오 륜과 인의예지를 부르짖으면서도 현실의 삶에서는 전혀 실천되지 못 하는 것을 보고 그것보다 우선하는, 그것이 실천될 수 있는 보다 근 22) 김경재, 「수운의 시천주 체험과 동학의 신관」, 동학연구 제4집, 29쪽.
본적인 마음의 바탕, 그리고 실천력을 확보하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인의예지는 옛 성인의 가르친 바요, 수심정기 는 내가 다시 정한 것이니라.”23)라고 하여 수심정기의 공부법을 내놓 았다. ‘수심정기(守心正氣)’는 시천주의 사유를 실천적 관점에서 내놓 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수심(守心)은 하늘로부터 본래 품부 받은 하늘마음(天心)을 회복하여 그 마음을 늘 유지해 나가려는 것을 의미한다. 정기(正氣) 란 몸의 기운을 조화롭게 바로잡는 것을 말한다. 동학 수도법은 이처 럼 마음을 기운과 항상 같이 언급한다. ‘수심정기’라 할 때도 그렇고
“군자의 덕은 기운이 바르고 마음이 정해져 있으므로”24)라든지 “마 음이 화하고 기운이 화하여(心和氣和) 봄같이 화하기를 기다리라”25) 등 마음을 단독으로 쓰기보다는 항상 기운과 같이 사용하고 있다. 기 운은 몸과 감정의 현재적 상태와 관련된 생명에너지의 흐름이므로 기운공부는 곧 몸공부와 직결된다.26) 마음이란 수시로 변하는 것이 라서 몸과 직접 관련된 기운공부가 먼저 선행되지 않으면 실지가 없 을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운공부를 통해 몸의 기운을 바르고 조화롭게, 그리고 신체적 에너지를 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이다. 기운이 바르게 되면 이에 따라 마음 상태도 조화롭게 될 뿐만 아니라 감정과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심정기의 이치는 마음과 기운을 같이 공부하 여, 항상 올바른 상태로 유지시킴으로써 도와 덕을 실천하는 데 실질 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최시형도 “만
23) 東經大全, 「修德文」, “仁義禮智, 先聖之所敎, 修心正氣 惟我之更定.”
24) 東經大全, 「論學文」
25) 東經大全, 「題書」
26) 기라고 하는 것은 초월적 차원과 경험적 차원을 연결하고, 형체가 있는 것 의 뒤에서 움직이면서 그것을 생성시키는 일종의 생명에너지의 흐름이다.
주체의 실천적 체험을 통하여 직관적으로 감지되지만 보이지는 않는 생명적 에너지의 유동이다. 유아스 야스오, 몸과 우주, 지식산업사, 2004. 참조.
일 수심정기가 아니면 인의예지의 도를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였다.27)
그렇다면 수심정기가 의미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인가?
최제우는 여기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남기고 있지 않기에 최시형 의 법설에서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해 볼 수 밖에 없다.
첫째, 마음과 기운이 맑고 밝은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이 능히 그 마음의 근원을 맑게 하고 그 기운바다를 깨끗이 하면 만 진이 더럽히지 않고, 욕념이 생기지 아니하면 천지의 정신이 전부 한 몸 안 에 돌아오는 것이니라. 마음이 맑고 밝지 못하면 그 사람이 우매하고, 마음 에 티끌이 없으면 그 사람이 현철하느니라.28)
우선 수심정기는 그 마음의 근원을 맑게 하고 기운을 깨끗이 하는 공부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마음의 티끌을 제거하면 자연히 맑고 밝 아지며 현철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하늘로부터 받은 본래의 마음의 근원을 맑고 밝게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마음이 화하고 기운이 화한 상태, 즉 ‘심화기화(心和氣和)’가 되어서 마음과 기운이 평정하고 온화한 상태를 가리킨다. 최시형은
“성품이 중심에 이르면 백체가 자연히 편안하고”라고 하여, 지극한 수련를 통해서 마음과 기운이 하늘의 기운과 화해지면 자연히 심화 기화(心和氣和)29)가 되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한가로우며 평정 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또한 수심정기는 마음이 기쁘고 즐거운 상태 이다. 최시형은 “마음이 기쁘고 즐겁지 않으면 하늘이 감응치 아니하 고, 마음이 언제나 기쁘고 즐거워야 하늘이 언제나 감응하느니라.”30)
27) 海月神師法說, 「守心正氣」
28) 海月神師法說, 「守心正氣」
29) 東經大全, 「題書」, “得難求難, 實是非難, 心和氣和, 以待春和.”
라고 하였다.
셋째, 항상 깨어서 집중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냥 마음만 맑고 편안한 상태가 아니라 도덕적 의지로 충만하고 항상 깨어서 집중해 있 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최시형은 “비록 잠잘 때라도 능히 다른 사 람이 나고 드는 것을 알고, 능히 다른 사람이 말하고 웃는 것을 들을 수 있어야 가히 수심정기라고 말할 수 있다”31)고 한다. 잠잘 때라도 들고 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32)
넷째, 신령한 상태를 가리킨다. 최시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울이 티끌에 가리우지 않으면 밝고, 저울에 물건을 더하지 않으면 평 하고, 구슬이 진흙에 섞이지 않으면 빛나느니라. 사람의 성령은 하늘의 일 월과 같으니, 해가 중천에 이르면 만국이 자연히 밝고, 달이 중천에 이르면 천강이 자연히 빛나고, 성품이 중심에 이르면 백체가 자연히 편안하고, 영 기가 중심에 이르면 만사가 자연히 신통한 것이니라.33)
마음이 맑아지고 고요해지면 자연히 지혜가 나와 만사가 저절로 알아지고 형통해진다는 것이다. 이 지혜가 바로 내유강화지교(內有降 話之敎)이며, 하늘님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최시형은
“사람은 마음에 하늘님의 가르침을 얻은 뒤에라야 뜻과 생각이 신령 한 것이니라”고 하였고, 수심정기가 되면 저절로 천지의 정신과 하나 가 된다고도 하였다.
따라서 수심정기는 마음을 항상 맑고 밝고 온화하고 평정하며, 늘 깨어 혼미하지 않고 마음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 나아가 신령한 마음 이 되어 고요한 가운데 하늘의 지혜를 받을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30) 같은 글.
31) 海月神師法說, 「守心正氣」
32) 이는 성철스님이 늘 강조했다는 ‘寤寐一如’와 상통하는 의미이다.
33) 같은 글.
이런 마음이 되어야 비로소 인의예지의 도덕 실천도 가능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한마디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불 안’이라는 심리적 정조가 지배하고, 옆 친구조차도 경쟁자로 생각하 고 처음 만나는 사람은 늘 경계하는 마음으로 사는 우리들에게 맑고 밝고 편안하고 온화한 마음의 상태를 강조하는 수심정기의 필요성은 더욱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럼, 이런 수심정기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 최시형은
“수심정기 하는 법은 효⋅제⋅온⋅공이니 이 마음 보호하기를 갓난아 이 보호하는 것같이 하며, 늘 조용하여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늘 깨어 혼미한 마음이 없게 함이 옳으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효제온공(孝悌溫恭)’이라고 한 것은 자기 마음에 대해서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누구에게든 따뜻하고 공손하게 대하는 그런 자세로 자기의 마음을 늘 보살펴 그 맑고 밝고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효제온공의 대상이 자기의 마 음이다. 그래서 갓난아이를 보호하듯이 마음을 늘 살피라고 한다.
또한 동학의 3세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 1859-1922)는 다음과 같 이 설하고 있다.
第一은 守心이니 人이 心을 暫時도 精脈에서 떠나지 않게 할 것이라. 떠나 지 않게 하는 方法은 日用行事間 念念不忘하여 三端을 相違케 말것이며...34)
의암은 마음이 잠시라도 자기의 몸에서 떠나지 말 것을 중시하였다.
그 방법은 일용행사에서 항상 마음을 붙잡아 염념불망(念念不忘)하 는 것, 즉 생각이 주문과 하늘님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삼단은 성품과 마음과 몸을 의미한다.
매매사사를 하늘님께 고하는 ‘심고(心告)’는 동학의 가장 주요한 일 34) 義庵聖師法說, 「衛生保護章」
상의 수도법(修道法) 중의 하나이다. 특히 수심(守心) 공부를 위해서 는 심고가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최시형이 「내수도문(內修道文)」
을 통해 가장 강조하는 점도 여기에 있다.
잘 때에 「잡니다」 고하고, 일어날 때에 「일어납니다」 고하고, 물 길러 갈 때에「물 길러 갑니다」 고하고, 방아 찧으러 갈 때에 「방아 찧으러 갑니다」
고하고, 정하게 다 찧은 후에 「몇 말 몇 되 찧었더니 쌀 몇 말 몇 되 났습 니다」 고하고, 쌀을 그릇에 넣을 때에 「쌀 몇 말 몇 되 넣습니다」고하옵소서.
먹던 밥 새 밥에 섞지 말고, 먹던 국 새 국에 섞지 말고, 먹던 침채 새 침채 에 섞지말고, 먹던 반찬 새 반찬에 섞지 말고, 먹던 밥과 국과 침채와 장과 반찬 등은 따로 두었다가 시장하거든 먹되, 고하지 말고 그저「먹습니다」 하 옵소서.35)
이처럼 심고는 항상 마음이 하늘님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법 으로 수심정기를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소춘 김기전은
“심고는 자기 행위의 일체를 계획화시키며 구체화시키는 시작이요 시종의 조리를 분명히 하는 유일한 방법”36)이라고 강조한다.
정기(正氣)에 대해서도 손병희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第二는 正氣니 喜怒哀樂을 過度히 말 것이라 怒가 過하면 驚脈이 不通 하고 哀가 過하면 靜脈이 不化하고 喜樂이 過하면 散脈이 不調하나니 必是 大害가 有할지니 愼之愼之하라. 第三은 飮食調節이니 飮食이 過하면 胃가 溢하고 胃가 溢하면 經絡이 不調하여 消化치 못하는 故로 害가 多하니라.37)
사람이 희노애락을 너무 지나치게 하면 큰 해로움이 있게 되며 몸
35) 해월신사법설, 「內修道文」, (내수도문에 대한 최초의 자료는 東學文書를 볼 것. (韓國民衆運動史資料大系,1894年의 農民戰爭篇), 驪江出版社, 1985) 36) 소춘김기전선생문집 편찬위원회, 소춘김기전선생문집 3, 국학자료원,
2011, 134∼135쪽 참조., 37) 義庵聖師法說, 「衛生保護章」
의 기운을 상하여 어긋나게 되므로 항상 희노애락을 잘 조절하여 기운 을 바르게 하고, 감정과 육신에 사로잡힌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과 음식을 조절하여 몸의 기운을 조화롭게 하고, 생활이 항상 절도에 맞음으로써 몸과 마음을 평정하게 하는 것이다.
요컨대 동학의 수심정기 수도는 ‘마음을 하늘’(心卽天)로 보고, 그 마음을 갓난아기 보호하듯 잘 지키고 늘 깨어서 매매사사 잘 살피고 가꿔나가는 공부이며, 일상에서 기운을 상하지 않고 좋은 습관을 유 지함으로써 일상이 성화(聖化)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시천주의 모심 체험으로 그치지 않고, 이제 ‘내유신령’이 바로 본래의 ‘심령’이 며 ‘마음’이라는 자각으로 나아갔다. “마음이 바로 하늘이며 마음 밖 에 따로 하늘이 없다.”38) 제 마음을 붙들고 그 마음을 섬기고 공경하 는 것, 비유하자면 마음의 밭에 뿌려진 하늘의 씨앗을 매일 잘 가꿔 서 마음 전체가 하늘의 꽃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이루게 하는 것이 동학의 수심정기의 수도이다.
Ⅳ
. 주문수련의 의미와 방법
1. 주문 수련법의 의미지금까지 일상에서의 수도에 대해 논했다면, 이제 구체적인 수련법 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동학은 일상에서의 수도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잘되지는 않기 때문에 특정한 시간을 정해 앉아서 특정한 방법으로 마음과 기운을 단련하는 공부가 요구되어진다. 동 학의 수련법은 주문을 비롯하여 영부(靈符),39) 검무(劍舞),40) 필법(筆法)41) 38) 해월신사법설, 「천지인⋅귀신⋅음양」, “心在何方, 在於天, 天在何方, 在於心,
故心卽天, 天卽心, 心外無天, 天外無心, 天與心本無二物.”
등의 공부가 있지만 주문 송주가 가장 주요한 수련 방법이므로 여기 서는 주문 수련에 한해서 논한다.42) 주문은 영부와 더불어 1860년 최 제우의 득도체험에서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하늘로부터 받은
‘하늘 글’이다.43)
주문은 흔히 오해되듯이 단순히 주술적인 효과를 바라는 기원의 도구가 아니라, 수심정기를 하기 위한 수도법이다. 최제우는 “열세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 심학이라 하였으니 불망기의 하였어라”
라고 하여 주문(열세자)만 열심히 외워도 누구나 현인군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최시형도 주문 삼칠자는 대우주⋅대정신⋅대생명 을 그려낸 천서(天書)라고 하였고 시천주 조화정(侍天主造化定)은 만 물 화생의 근본을, 영세불망 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는 사람이 먹고 사는 녹의 원천을 밝힌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였다.44)
39) 최제우가 경신년 하늘님 체험에서 ‘주문’과 더불어 받은 것으로 종이에 하늘 의 기운을 형상화한 것을 가리킨다. 그 이름은 선약(仙藥)이요, 그 형상은 태 극(太極)과도 같고 궁궁(弓弓)과도 같다고 하였다. 우주의 약동불식하는 기운, 생명(력)의 상징이며, 우주의 마음, 우주적 영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기의 화생작용을 알게 되면 그것이 곧 선약이 된다는 것이다. 수도의 초 기에는 종이로 그리기도 하지만, 수도가 어느 정도 되어 하늘의 약동불식하 는 영기가 곧 심령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마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려서 병을 낫게 할뿐 따로 영부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해월신사법설, 「이심치 심(以心治心)」 참조.
40) 검무(劍舞)는 최제우가 남원 은적암에 은거할 때 지기(至氣)의 기운이 왕성 함을 금치 못하여 목검을 들고 검가(劍歌)를 부르면서 칼춤을 추었다는 데 서 처음 등장한다. 정기(正氣) 공부의 한 방편이었으며, 천제(天祭)의 의식에 도 사용되었으나, 최제우가 칼로써 역모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은 이후 로는 끊겨서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41) 글쓰기(서예)를 통한 마음공부를 가리킨다. 동경대전, 「필법」 참고.
42) ‘수도’는 수심정기와 도성덕립이 되기 위한 공부의 전체를 가리킨다. 일상에 서의 심고로부터 성경신, 그리고 주문수련까지를 포함한다. 그냥 ‘수련’이라 고 할 때는 주문 송주만을 가리킨다.
43) 東經大全, 「布德文」, “曰然則西道以敎人乎, 曰不然, 吾有靈符, 其名仙藥, 其形太極, 又形弓弓, 受我此符, 濟人疾病, 受我呪文, 敎人爲我, 則汝亦長生 布 德天下矣.”
따라서 주문은 하늘님을 염념불망(念念不忘) 잊지 않는 방법이며, 하늘님을 지극히 위하고 섬기는 글이며, 천심을 회복하는 공부법이다.
그래서 최제우는 주문 21자를 풀이한 후 “그러므로 그 덕을 밝고 밝 게 하여 늘 생각하며 잊지 아니하면 지극히 지기에 화하여 지극한 성인에 이르느니라.”45)라고 하였다. 동학 주문은 동학의 핵심을 압축 적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중요한 수도법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문이나 염불 수련은 기존의 전문가 위주의 수행에 비해 대중적인 수련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대중적이라 해서 깊 은 체험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이 깊은 체험을 하기 힘 든 것은 간이한 수행법을 택해서라기보다는 큰 목적을 세워서 그 한 생각에 매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생활하면서 한 생각에 매진하 기 어렵기 때문에 방편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주문이나 염불이다.
20세기 한국불교에서 염불선을 다시 주창한 청화스님은 “범상한 사 람들은 좀처럼 마음을 통일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럴 때 가장 쉬 운 방법이 염불을 통해 마음을 모으는 것”46)이라고 한다. 또 염불이 결코 낮은 차원의 수행이 아니라, “우리 눈앞의 궂다 시비분별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우리 본각(本覺)의 참 성품임을 각오(覺悟)하는 것 이요, 부처와 내가 본래 하나임을 재확인하는 공부”47)라고 한다. 이 처럼 염불은 매우 간이해서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어느 때나 어느 장 소에서나 할 수 있는 대중적 수행법이면서도 결코 낮은 차원의 수행 이 아니라 우주의 본바탕인 진여불성을 깨닫게 하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주문 수련은 간단한 몇 구절을 반복적으로 외움으로써
44) 해월신사법설, 「영부⋅주문」
45) 東經大全, 「論學文」
46) 청화, 생명의 고향, 마음자리로 돌아다는 가르침, 도서출판 상상예찬, 2007, 36쪽,
47) 같은 책, 196쪽.
빠르게 정신집중을 하게 한다. 하나의 음절에 집중하게 되면 평소 복 잡하고 산만했던 뇌파가 그 소리가 내는 단일한 주파수대로 수렴하 게 되므로 뇌파를 안정시켜준다. 그래서 복잡했던 마음이 편안해지 는 효과가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한 호흡에 주문을 여러 번 반복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단전호 흡이 된다. 그러므로 호흡법을 통해 몸의 변화가 일어나는 거와 마찬 가지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주문이나 염불을 위주로 수행하는 단체에서 치유의 효력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이다. 또한 주문을 반복 하면 기운이 모이고 마음이 모여 마음의 힘(心力)이 생긴다. 마음의 힘이 강해질수록 실천력도 강해진다. 주문은 마음이 오로지 한 곳으 로 수렴되어 일심(一心)이 되게 하므로 자연스럽게 수심정기가 되는 공부이기도 하다.
요컨대 주문은 짧은 음절의 반복이 주는 빠른 집중력과 심신의 효 과가 그 핵심이다. 짧은 음절의 주문, 혹은 기도문을 반복하는 것이 주는 심리적 육체적 효과에 대해 가장 잘 표현한 글은 19세기 러시 아의 한 순례가가 쓴 예수의 기도라는 책이다.
“예수의 기도가 가져오는 효과가 세가지로 곧 영으로, 느낌으로, 계시로 나타나는 것을 주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에 나타나는 것으로는 하느님 사랑의 감미로움, 내적 평화, 정신적 황홀, 순결한 생각, 하느님에 대한 즐 거운 회상 등이었습니다. 감정에 나타나는 것으로는 가슴이 유쾌할 정도로 따뜻해지는 것, 팔 다리로 퍼지는 감미로운 쾌감, 심장에 기쁨으로 거품이 이는 것, 내적 경쾌함과 생동감, 살아 있음에 대한 기쁨, 병이나 기타 화나 게 하는 일에 대해 초연해지는 것, 계시로 나타나는 것은 지성이 밝아지는 것, 성경을 깨닫게 되는 것, 모든 피조물의 언어를 알게 되는 것, 모든 근심 걱정에서 초연하게 되는 것, 내면적이고 영성적인 삶의 감미로운 기쁨, 하 느님의 가까운 임재하심과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는 것 등 이었습니다.”48)
48) 오강남 엮어옮김, 기도-영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수의 기도, 대한기독
이 책은 러시아의 한 시골 청년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성경구 절의 의미를 알기 위해 순례의 길에 나선 가운데 큰스승님을 만나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예수의 기도’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전해 받는다. 그때부터 그 청년은 14년을 떠돌아다니며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말을 쉬지 않고 외우 면서 말할 수 없는 큰 위안을 받고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하는 것을 이 책에서 실감나게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주문이나 염불은 신앙의 대상, 또는 소의경전을 외우면서 그 대상에 귀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냥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짧은 음절을 반복해서 외워도 집중력과 단전호흡과 같은 효과 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 대상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반복할 때 신앙심이 깊어지고, 마음의 위안을 얻고 마 음의 힘이 더욱 생기게 된다. 무엇보다도 삶의 자세가 세속적이고 육 신적인 삶에서 영적이고 진리 중심으로 마음이 정(定)해지게 된다.
다시 말해 천심을 회복하고 기운이 변화되는 체험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전면적인 인격의 변화가 수반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동학의 주문이 가진 또 하나의 의미는 바로 의미론적 인 측면이 하나 더 들어간다는 것이다. 최종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문의 암송이 지닌 발화의 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보다 주문 의 문장론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주문은 의미 없는 언어 의 조합이라기보다는 초기동학의 핵심적인 가치와 내용을 정제된 언어의 형태로 압축하고 있는 고민의 산물이기 때문이다.49)
주문 자체가 최제우의 깨달음을 압축적으로 요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의 ‘화두’의 역할을 한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
교서회, 2003. 95-96쪽.
49) 최영성, 동학의 테오프락시, (민속원, 2009년), 153쪽.
망 만사지’을 반복적으로 외우는 가운데 그 깊은 의미를 저절로 되새 기고 깨닫게 한다. 한마디로 동학의 주문 수련은 동학의 핵심인 시천 주의 의미를 담아 반복적으로 외게 함으로써 자연한 가운데 천심을 회복하게 하는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무위이화(無爲而化)’50)의 수련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동학의 주문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강령주문이고, 하나는 본주문 이다. 강령주문은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의 8자이고, 본 주문은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의 13자이다. 강령주문의 뜻은 “하늘기운이 이제 이르오니 원컨대 크게 내리소서”라는 기운 접함을 청하는 뜻이고,51) 본 주문의 뜻은 “하늘 님 모심을 온전히 체득하면 무위이화로 내 마음이 정(定)해지리이고, 이를 평생토록 잊지 않으면 만사가 모두 깨달아지리이다.”는 뜻이 다.52) 이 의미는 하늘님 모심을 외유접령지기와 내유강화지교로 확 실하게 체험하면,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육신적인 삶이 아니라, 하늘 님의 무위이화의 덕에 합일하여 마음이 정해지고 굳건해진다는 의미 이다. 육신에 물든 습관과 티끌에서 벗어나 마음이 천심을 회복하여 수심정기가 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심정기 되어 정 (定)한 마음을 한시라도 잊지 않고 잘 지켜나가면 어느 순간에 만사 가 다 알아지고 신통해져 도성덕립이 자연히 되리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여기서 ‘지(知)’는 머리로 아는 ‘앎’이 아니라 실천지나 체득지 를 말한다. 몸이 물에 익숙해져 자연히 수영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온몸이 스스로 그러함을 체득하여 자연한 가운데 만사를 깨달아 달
50) 東經大全, 「論學文」, “曰吾道無爲而化矣. 守其心正其氣, 率其性受其敎, 化 出於自然之中也. 西人, 言無次第, 書無皂白, 而頓無爲天主之端, 只祝自爲身之 謀, 身無氣化之神, 學無天主之敎, 有形無迹, 如思無呪, 道近虛無, 學非天主, 豈可謂無異者乎.
51) 동경대전, 「논학문」, “今至者, 於斯入道, 知其氣接者也. 願爲者, 請祝之意也.
大降者, 氣化之願也.”
52) 동경대전, 「논학문」, “造化者, 無爲而化也. 定者, 合其德定其心也.”
통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요컨대 동학의 주문 수련은 기존의 짧은 음절을 반복하는 것이 주는 심신의 효과에다가, 시천주의 의미론적인 측면이 보태져서, 자연한 가운 데 천심을 회복하게 하고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천도의 이치를 깨달아 만사지에 이르게 하는,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수련법’이라고 할 수 있다.
2. 주문 수련의 방법
동학의 주문수련은 크게 두 가지로 진행된다. 하나는 현송법이라 고 해서 큰 소리로 21자(강령주문 至氣今至願爲大降 8자와 본주문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13자)를 일정하게 반복해서 외우는 것 이다. 주송하는 요령은 단전에 기운을 모으고 한 호흡에 여러 번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마음은 하늘님을 염념불망(念念不忘)하는 간절 한 마음으로 해야 하며, 의식은 단전에 두고 주문은 힘차게 하되 호 흡이 자연히 실려 리듬이 형성되게 한다.53)
현송법은 일종의 기운공부, 양기(養氣)공부라고 할 수 있다. 더 정 확하게 표현하면 기운공부를 통한 마음공부라고 할 수 있다. 기운을 조화롭고 강건하게 함으로써 마음을 맑고 밝고 원만하게 하는 공부 이다. 몸이 건강하지 못하거나 마음이 어둡고 우울하거나 불안하고 산만하면, 대부분 기운도 조화롭지 못하고 기력이 없어 처지는 경우 가 많다. 그러므로 기운을 맑고 밝게 함으로써 마음을 맑고 밝게 하 는 것이다. 현송을 통해 ‘외유접령지기’를 받게 되면 자연히 마음과 기운이 맑고 밝아지며, 기력이 생길뿐 아니라 마음의 힘(心力)도 생 긴다. 이처럼 현송법은 기운을 바로잡아(正氣) 지친 기운이 회복되고 마음이 밝아질 뿐만 아니라 마음에 힘이 생기게 하는 공부이다.
53) 현송 묵송의 주문 외우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임운길, 수도 와 인생, 천도교중앙총부, 1992, 149∼150쪽.
다음으로 묵송법은 강령주문을 뺀 본주문 13자를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읊어 마음의 본체와 우주의 근본을 관하는 공부다. 묵송은 견 성(見性)공부이며, 성품의 비고 고요한 경지로 들어가는 공부를 통해 마음(의 본체)을 깨닫는 공부라고도 할 수 있다. 성품의 본성은 본래 생함도 멸함도, 죽고 사는 것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54) 마음이 성품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고 모든 것에 걸림 이 없는 대자유의 쇄탈자재한 인격에 도달하게 되고 저절로 참된 지 혜가 나온다고 한다. 따라서 묵송법은 본래의 비고 고요한 본성(성 품)을 회복하는 공부이며, 무형한 한울이 유형의 한울이 된 이치, 즉 인내천(人乃天)을 깨닫고, 참 나를 찾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55)
이런 현송과 묵송을 하는 가운데 자연히 지난날의 잘못과 실수를 참회하게 되어 마음이 정화되며, 그동안 상처받고 억눌린 모든 부정 적인 감정들을 풀어내고, 또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했던 모든 마 음을 털어냄으로써 본래의 맑고 밝고 신령한 하늘 마음을 자연히 회 복되므로 결국 주문 공부는 마음공부(心學)이기도 하다. 그동안 마음 에 잘못 기억되고 습관화된 구조에서 벗어나서 항상 심화기화(心和 氣和), 마음이 화하고 기운이 평정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원만한 덕 을 갖춘 인격의 바탕을 마련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현송을 통해 기운(몸) 공부를 하며, 묵송을 통해서는 성품 공부를 하며, 이 현송과 묵송을 하는 가운데서 자연히 마음이 닦이는 것이 동학의 수도법이다. 손병희는 이 세 가지의 공부에 대해 다음과
54) 無體法經, 「神通考」 “性本無無, 無有, 無現, 無依, 無立, 無善, 無惡, 無始, 無終.
心本虛, 萬思萬量, 億古億今, 無形無迹, 千事萬事, 思量中得生, 故心在性裏, 變化無雙, 造化不測, 性心兩間變化自成.” (천도교중앙총부, 천도교경전, 1992) 55) 이는 표현은 좀 다르지만, 청화스님이 매번 강조하는 염불선의 목적과 상통한다.
청화스님은 염불이란 진여불성, 본각진성을 자각하는 공부이며, 본래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므로 꾸준히 염불을 하여 마음이 모아지면 결국은 우주의 본바 탕인 진여불성과 하나로 계합되며, 생각마다 부처를 여의지 않고 염하는 것이 참다운 상근인의 염불선이라고 강조하였다. (청화, 앞의 책, 참조.)
같이 말한다.
“성품이 있고라야 몸이 있고, 몸이 있고라야 마음이 있으나 그러나 성품 과 마음과 몸 세가지에서 어느 것을 먼저 할 것인가. 성품이 주체가 되면 성품의 권능이 몸의 권능을 이기고, 몸이 주체가 되면 몸의 권능이 성품의 권능을 이기느니라. 성품을 주체로 보고 닦는 사람은 성품의 권능으로써 비 고 고요한 경지를 무궁히하고 그 원소를 확충하여 불생불멸을 도라 말하고, 몸을 주체로 보고 닦는 사람은 몸의 권능으로써 활발하고 거리낌없이 현 세계에서 모든 백성을 함양함을 도라고 말하느니라. 그러므로 성품과 몸의 두 방향에 대한 수련을 보이어 도 닦는 사람에게 밝혀서 말하려 하노라.56)
마음을 중심으로 한편에서는 성품공부, 다른 한편으로는 몸공부를 겸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손병희는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듣는 것은 성⋅심⋅신 삼단이 합하여 보이고, 나누어 보임이니 세가지에 하나가 없으면 도가 아니요 이치가 아니다”57)고도 하였다. 큰 틀에서 는 마음공부이긴 하지만 한쪽으로는 그 마음에서 기운이 어떻게 일 어나는지 그 활용을 익히며 실제 기운을 일으키고 화하게 하는 공부 를 하고, 한쪽으로는 그 마음의 본래자리, 비고 고요한 본성자리를 공부함으로써 나의 근본을 깨닫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학의 수도는 접령, 강화를 체험하는 데서 출발하여 마음이 하늘이 라는 것을 깨닫는 데로 나아가며(心卽天, 自天自覺), 최종적으로는 비 고 고요한 성품을 깨달아, 나와 하늘이 둘이 아니고(人乃天), 나의 성 품이 우주의 본체와 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아 모든 의심과 모든 세 상티끌과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나 본래의 물들지 않고 걸림이 없고 자 유로운 해탈(解脫), 견성(見性)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58)
56) 無體法經, 「性心身 三端」
57) 같은 글.
58) 無體法經, 「眞心不染」, “聖賢不然, 恒不忘我本來, 固而守之, 强而不奪, 故 觀得萬理根本, 萬理具體, 徘徊心頭, 圓圓不絶, 自遊遊不寂于慧光內, 萬塵之
이처럼 동학 수련은 인간 존재를 몸과 마음, 성품의 세 차원에서 보고, 성품과 마음과 몸의 삼단(三端)을 같이 닦는 것이 특징이다. 이 런 동학의 수련은 세 가지를 하나로 닦는 공부, 셋이 본래 하나요, 하 나가 셋으로 나눠진다는 우리 고유의 삼일철학과 맥이 닿는다. 이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고유사상, 최치원의 낙랑비 서문에 나오는 포함삼교(包含三敎),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풍류도, 유교의 수기치인 (修己治人)과 불교의 각성(覺性)공부와 도교의 양기(養氣)를 겸해서 나온 우리의 선교 전통에서 비롯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59) 이런 측면이 동학의 수련이 몸과 마음과 성품을 같이 닦고, 또한 수도가 개인의 깨달음에 그치지 않고 늘 사회적 실천으로 연결되었던 까닭 이 아니었나 한다.
Ⅴ
. 맺음말
동학은 최제우의 시천주에 대한 자각으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최제우는 이 시천주 사상을 통해 이기심(各自爲心)에 빠진 당시 사람 들에게 참된 인간의 길은, 본래 인간의 내면에 모셔져 있는 거룩하고 신령한 하늘님을 나의 삶의 주체로 모시고 섬기는 삶임을 밝혔다. 그 것은 단지 외재적인 하늘님에게 의존하는 타력적인 신앙이 아니라,
念, 自然如夢想, 是謂解脫心. 1解脫卽見性法, 見性在解脫, 解脫在自天自覺.
自心自守而不失, 固而不流, 自心自然解脫, 萬法萬相一切具心, 事理不錯, 我天 不二, 性心不二, 聖凡不二, 我世不二, 生死不二.” 월산 김승복은 수도의 계단 을 잘 알아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수도 계단을 접령, 강화, 자천 자각, 해탈견성의 네단계로 제시하고 있다. 김승복, 天在何方-한울은 어디 있는가, 모시는사람들, 2009,17-19쪽.
59) 손병욱은 동학의 주문 삼칠자를 통해 동학이 한국 고유의 선교(禪敎)의 삼 대요소를 겸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손병욱, 「동학의 삼칠자 주문과 다 시 개벽의 함의」, 동학학보 제18호, 참조.
자기의 내면의 신령성과 신성, 또는 본성을 회복함으로써 자아실현 을 추구하는 길이었다.
그런 점에서 시천주는 천인관계를 새롭게 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진정한 경천(敬天), 참된 인간의 도리(길)은 내 안에 있는 하늘님을 발견하고, 그 하늘님을 부모님처럼 모시고 섬기는 것 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던 것이다. 이는 다른 종교전통에서도 없 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이 모든 보편종교의 창시자들이 직접 체험했던 영성의 중핵이었을 것이었으나, 이후의 제도적 종교로 전 개되면서 종교지도자들은 궁극적 실재와의 직접적 체험을 위험한 것 으로 경계해 왔던 터였다. 그렇게 잃어버리고 퇴색되었던 것을 이 땅 의 최제우가 다시 살려내어 가장 핵심적인 사유로 명시했다는 데 동 학사상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 시천주의 실천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수심정기이다. 동학 은 수심정기의 공부를 통해 마음과 기운의 상태를 맑고, 밝고, 온화 하고, 편안한 상태, 그러면서도 항상 깨어서 집중되어 있으며 나아가 신령한 상태로 만드는 것을 중시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저런 마음의 문제를 안고 있다. 마음이 맑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둡고 불안하고, 꼬여있고, 어딘가 사로잡혀 있거나 산만하여 집중 하지 못하며 우울증에 빠져 있는 경우도 많다. 이것이 오래 반복되면 그것이 그 사람의 인격이 된다. 이런 마음상태, 기운상태를 변화시켜 주는 것이 동학의 수심정기의 수련이다. 그러므로 인의예지를 실천 하려고 해도 수심정기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수심정기를 위한 구체적인 수련은 주로 주문을 통해 행해진다. 동 학의 주문은 짧은 음절을 반복함으로써 빠르게 정신집중이 되고, 호 흡이 저절로 되는 심신의 효과에다가, 시천주의 의미를 되새기는 가 운데 자연히 하늘님 모심을 체험함으로써 하늘의 지극한 기운과 화 해지고, 마음이 신령해져서 하늘의 가르침을 묵묵히 들으며, 자연히
천심을 회복하고 마음이 하늘마음과 합하여 굳건(定)해져서 하늘과 그 덕을 합함으로써 만사가 다 신통한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노정 절차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을 주문에서 ‘시정지(侍定知)’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주문은 다시 현송과 묵송을 통해 행해진다. 현송을 통해 몸과 기운 공부를 하며, 묵송을 통해 성품공부를 겸하고 있는 것이 동학의 수도 법이다. 큰 틀에서는 마음공부이긴 하지만 한쪽으로는 그 마음에서 기운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 활용을 익히며 실제 기운을 일으키고 화하게 하는 공부를 하고, 한쪽으로는 그 마음의 본래자리, 비고 고 요한 본성자리를 공부함으로써 나의 근본을 깨닫고 ‘참나’를 깨닫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문을 외우는 가운데 자연히 천심을 회 복하는 ‘무위이화(無爲而化-저절로 이루어짐)’의 수련법이라는 점과, 인간 존재의 세 측면, 성품과 마음과 몸 공부를 같이 한다는 것이 동 학 수련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