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며
Ⅱ. 유흥과 오락을 위한 통속소설
Ⅲ.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공간의 등장
Ⅳ. 재현의 의도와 일제의 지배전략
Ⅴ. 나오며
국학연구론총 제11집 택민국학연구원 2013.6.30
1930년대 목포의 근대성과 대중매체
- 호남평론 수록 소설과 기사를 중심으로
최창근*1)
<국문초록>
한 시대의 풍경을 담아낸다는 측면에서 잡지와 같은 대중매 체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적지 않다. 대중매체는 한 사회가 포 용할 수 있는 가능성의 경계를 가장 적극적으로 담아내고 있 다. 1920년대의 잡지들이 민족주의와 계몽주의를 주로 역설했 다면 1930년대의 잡지들은 변화된 현실 속에서 좀 더 다양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 20년대 후반에 등장한 별건곤을 시 작으로 30년대에 등장한 잡지들은 대부분 식민지 현실과는 일
*전남대학교 강사
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일련의 흐름은 담론의 변화와 주 체의 변화를 동시에 가져오기 마련이다. 과거 민족의 문제에 사로잡혀 있는 상황에서의 담론과 주체가 이제 그 틀을 벗어나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담론과 주체의 변화는 필 연적으로 재현과 표상의 변화를 불러온다.
이 논문은 근대화로 인한 도시의 등장과 그로 인한 삶과 주 체의 변화,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식민지배전략에 대해 논하 고 있다. 국가와 민족의 문제에서 한 지역의 문제로 담론의 범 위를 재설정하는 과정은 근대화와 도시화의 복잡한 과정을 통 해 진행되었다. 도시라는 특수한 공간, 시민이라는 새로운 주체 는 기존의 국가담론, 민족담론의 틀을 벗어나 변화된 담론을 생 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잡지는 이러한 변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점을 고려해 1930년대 목포라는 실제의 공간과 호남평론에서의 재 현이 어떤 관계 속에서 상호 작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호남평론은 일차적으로 대중, 그리고 남성 소비자의 욕망 을 충족하는 통속소설을 다수 싣고 있다. 이는 당시 목포의 경 제적 환경이 일정 규모 이상이었으며 잡지의 주소비계층을 고 려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호남평론은 당 시 목포의 사회적 환경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1930년대의 목포는 부의회라는 합리적 의사결정체계와 근대적 법제도가 공 존하고 있었다. 이 안에서 피식민지인은 어느 정도 개인의 권 리와 자유를 누리는 존재로 자신들을 인식했었다.
그러나 이는 고도의 식민지배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합리적이고 비인격적인 사회체제는 식민지배자를 피식민지인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고 내면화된 통제 아래 피식민지인이 스 스로 복종하도록 만들었다. 피식민지인은 근대적 환경과 제도 로 재편된 도시 공간에서 전보다 자유로워졌다고 느끼지만 실 상은 더욱 철저한 감시와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 즉 그들
스스로가 식민지배전략에 내적으로 완전히 포섭되어 타자의 삶 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핵심어>
호남평론, 1930년대, 도시화, 근대화, 통속소설
Ⅰ. 들어가며
한 시대의 풍경을 담아낸다는 측면에서 잡지와 같은 대중매 체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적지 않다. 물론 대중매체가 당대의 총체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 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회가 포용할 수 있는 가능 성의 경계를 가장 적극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 일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수많은 잡지가 등장하며 복잡다단했던 그 시 대의 인식과 욕망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1930년대에 나타나는 일련의 경향은 확실히 1920년대 또는 그 이전과는 달라진 조선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전의 잡지들 이 민족주의와 계몽주의에 집중했다면 1930년대의 잡지들은 변 화된 현실 속에서 좀 더 다양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 단적 으로 말해 20년대 후반의 별건곤을 시작으로 30년대에 등장 한 잡지들은 대부분 식민지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이것이 의도된 것이든 또는 불가피한 것이든 그 변화의 양상은 실제적인 것이었다.
일련의 흐름은 담론의 변화와 주체의 변화를 동시에 가져오
기 마련이다. 과거 민족의 문제에 사로잡혀 있는 상황에서의 담론과 주체가 이제 그 틀을 벗어나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담론과 주체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재현과 표상의 변화를 불러온다. 인식의 변화는 표상의 변화로 나타나는데 이 때 표상의 변화는 표상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 문화적 약호 체 계의 변화를 의미하기 마련이다.1) 따라서 이 재현양상의 변화 를 연구한다면 당대의 실제적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근대화로 인한 도시의 등 장과 그로 인한 주체의 변화이다. 도시화는 민족의 문제를 벗 어나 일정 부분 독자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국가와 민족의 문제에서 한 지역의 문제로 담론의 범위를 재설정하는 과정은 근대화와 도시화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진행되었 다. 도시라는 특수한 공간, 시민이라는 새로운 주체는 기존의 국가담론, 민족담론의 틀을 벗어나 변화된 담론을 생성하는 원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잡지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대중 잡지는 개인의 의식과 취미를 변화시키는데 이 는 자본주의 소비문화, 대중의 탄생, 풍속, 교양 등의 개념과 교 차하면서 식민지 근대 주체의 구성에 긴밀하게 관여하게 된 다.2)
식민지하의 조선이라는 상상적인 관념 속에서 조선은 그 모 습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조선은 균질적이고 동일한 공간 이 아니라 비균질적이며 분열적이다. 이러한 점을 도외시한다 면 식민지하의 조선에 대한 이해는 그저 막연한 추상 속에 머 물고 말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 1930년대 목포라는 실제의 공간과 호남평론에서의 재현이 어떤 관계 1) 김진량, 근대 잡지 별건곤의 “취미 담론”과 글쓰기의 특성 , 어문학 88, 한국어문학
회, 2005, 334쪽.
2) 전혜진, 《별건곤》에서 드러난 도시 부르주아 문화와 휴양지 표상 , 한국언어문화
41, 한국언어문화학회, 2010, 6~7쪽.
속에서 형성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그 안에서 형성된 주체의 특성과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식민지배 전략까 지도 함께 밝히고자 한다. 본 논문의 해당 텍스트는 이런 의미 에서 1935년 목포에서 발행된 호남평론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Ⅱ. 유흥과 오락을 위한 통속소설
호남평론은 1935년 4월에 나온 목포 및 호남 지방을 기반 으로 한 대중잡지이다. 당시에 목포는 개항장으로서 활기를 띠 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 및 문화 면에서 조선의 다른 지역에 비 해 상당 부분 앞서 있는 곳이었다. 그런 면에서 호남평론이 라는 잡지도 근대적 도시에 어울리는 대중매체의 특성을 가지 고 있었다. 이 잡지의 초기에 실린 소설은 대부분 기생이나 카 페 여급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었다. 이들은 자본주의가 발전해 상품물신이 확대된 속에서 육체를 생계수단으로 삼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중에서도 카페 여급은 카페라는 근대적 유흥 공 간이 등장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대중매체는 이러한 점을 십분 활용해 여급이나 기생이 주인공인 소설들로 지면을 장식해 독자의 관심을 유발했다.3) 남성이 여성을 소비하는 방 식은 성스러움과 음란함의 두 가지인데 이는 뚜렷이 분리된다 기보다는 교묘히 결합되어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호남평론
에 실린 소설들 역시 여성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 시선이 잘 3) 1930년대의 기생은 과거 고급 예능인으로 자리매김 하던 것과는 달리 권번의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며 유행가와 사교춤 등을 익혀 활동했다. 기생이 되기 가 쉬어진 만큼 그들은 또 쉽게 카페 여급으로 전업하기도 했었고 기생에게서 ‘기(妓)’
의 성격은 상당부분 탈각되었다. 여성의 몸을 향락의 매개로 활용하는 근대 유흥산업 속에서 기생은 카페여급과 상호 교환되는 상품의 일부로 표준화되어 가고 있었다.(서 지영, 상실과 부재의 시공간: 1930년대 요리점과 기생 , 정신문화연구 116호, 한국 학중앙연구원, 2009, 174쪽. 참조)
드러난다.
우리의 참사랑-가정부인이 된 어느 기생의 일기중에서 는 젊은 기생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날씨가 화창한 봄날 꽃 구경을 나온 주인공은 그 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둘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남자에게는 숨겨둔 아내와 자 식이 있었고 그들의 사랑은 주위 사람들의 비난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여자는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굳건히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한때 기생이었던 신분도 버리 고 한 남자를 따르는 여자로서의 삶을 충실히 지켜갔다. 생활 의 궁핍함과 주위의 비난도 그녀의 뜻을 꺾지 못했다. 기생출 신여성이 지닌 성적 환상과 지조를 지키는 전근대적 여성상이 그녀에게서 함께 나타나고 있다. 특히 남자의 행실에 대해 그 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전통적인 희생적 여성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우에도 말하엿지만 그이가 술마시고 밤늦게 새르 세 시네시에 도라오는 때가 잇스나 나는 결코 냉정히 굴거나 성을 내여본때는 한번도 업섯다. 오이려 남의 안해로서의 취할바 그도리만을 행하엿슬때 그이는 도리여 나의 행동에 감격을 늣기고 열정에 타는 눈으로 나의 얼골을 갸웃이 들 여다보면서 그리고 그의가는 허리를 꼭 끌어안고 술긔운에 더워진 얼골을 내입에 꼭대인면서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그순간이 나는 얼마나 행복스러웟는지 몰낫다.4)
인용문은 기생과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 남성이 그 와중 에도 또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소 설의 여주인공은 이에 대해 절대로 질투나 원망을 하지 않는 다. 이러한 유교적 여성관과 가부장적 사상의 표현은 이 잡지 의 주 소비층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또한 남편의 외도를 참고 견디며 일방적으로 사랑을 갈구해야 한다 4) 호남평론, 1935 4월 창간호, 호남평론사, 62쪽.(이하 본문에 호수와 쪽수 표시)
는 왜곡된 사랑관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가로에 피는 꽃 은 한 여성의 기구한 삶을 담 고 있다. 카페의 고요를 깨는 날카로운 총소리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춘자(또는 정애)라는 여성의 복수극이 중심 줄거리이다.
춘자는 가족을 불행에 빠트린 원수를 찾아 칠년이라는 긴 시간 을 헤매다 마침내 그들을 살해하고 복수를 완수한다. 이 소설 은 겉보기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여자의 집념어린 복수극 이 주 내용이다. 그러나 소설의 세부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독자의 흥미를 끌만한 전형적인 통속적 요소가 다수 눈에 띈 다. 정애가 실상은 업둥이라는 출생의 비밀이나 남매간의 사랑 이라는 터부적인 설정은 복수와는 무관하게 독자의 관심을 유 발하는 성적이며 오락적인 요소임이 분명하다.
이팔청춘이란 인생의 봄을 마지한 정에는 남달리 숙성 하엿다. 제법 압가슴도 부득하여오르고 리성을 대할때에 아 지못하는 북그러움과 가슴을 울넝거리게하는 잔파동이 반 주한 포도주에 취한듯한 야릇한감정을 이르켰다. 그러나 이 러한 늣김은 누구보다도 옵빠로서 섬겨야 할 창식이를 호 젓한 곳에서 대할때마다 맛보는 감정이엇다. 물론 자긔의 내력을 안후의서부터이다. 그리고 정에는 자긔에 생에 대한 고적을 늣길때마다 말할수업는 은정으로 어루만져주는 창 식이가 고마웟고 동시에 그의 품안에 안켜들고십흔 이상한 애착심까지도 나종에는 늣기엇다.
(호남평론 1935년 6월호, 70쪽) 두 청춘남녀의 금기를 넘어선 사랑은 생계를 위해 가족이 정 애만을 서울에 남기고 만주로 이주하면서 이별을 맞이한다. 그 러나 만주에 간 정애의 가족들이 그곳에서 살해를 당하고 정애 가 이에 대한 복수를 기도해 결국 원수를 갚는 것으로 이야기 가 진행된다. 이는 1920년대 폐허, 창조와 같은 동인지 문 학잡지나 교양잡지, 정론지 등에 실린 소설들에서는 볼 수 없었
던 모습들이다. 즉 30년대의 잡지류 소설들이 근대 문학에 대 한 기법적 모색이나 민족주의 차원의 계몽적 태도가 강했던 1920년대 잡지의 한계를 벗어나 순수한 오락물의 경향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일례로 이광수의 무정에서 기생 영채는 기생 이기를 포기하고 민족의 문화 발전과 교육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자 한다. 즉 30년대 이전의 소설에서는 기생이라는 미 천한 신분조차 민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이타적 존재 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가로에 피는 꽃 에서 민족은 조금 다른 차원에서 다 뤄진다. 이 소설은 대중잡지의 오락성이 민족 문제를 어떤 식 으로 접근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초반부에는 정애 가 두 남자를 총으로 쏴 죽이면서 자신의 살해 이유를 구경꾼 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칠년전이올시다. 이 사람은 북만주호란이라는 곳에서 아모죄도 업는 아니요 우리민중의게 잇서서는 지도자요 투 사인 일가족 다섯 사람을 무참하게도 죽여버린 악마입니다.
저편에 죽은 늙은자는 만주사람이오 이편에서 죽은 젊은놈 은 조선놈이올시다
(호남평론 1935년 창간호, 65쪽) 그녀가 말한 내용만을 살펴보면 이는 마치 독립운동의 차원 에서 민족의 원수를 처단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살인을 행하는 듯하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소설은 남매의 사랑이 야기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마치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보이는 이 살인은 그저 복수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동원된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다. 정애의 이 발언으로 인해 그녀의 살 인이 단순히 가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더 중요한 가치 를 가진 행위로 격상된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복수의 실상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정애가족의 불행 은 만주로 이주한 후 그곳의 중국인 지주 왕청이 창식의 친동
생 순례를 겁탈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에 대한 앙갚음으 로 그들을 고발해 죽음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같 이 죽은 남자는 왕청의 조선인 서기 이수철로 왕청의 패륜적인 일을 옆에서 도와주었다. 민족적 차원의 문제라면 일본인이 등 장할 법도 하지만 이 소설에서 일본인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을 뿐이며 어떤 면에서는 최후에 의지할 수단으로 그려지기도 한 다. 즉 이 소설에서는 민족이 처한 비극도 남녀의 연애와 복수 에 대한 이야기를 꾸미는 극적 재료로만 활용될 뿐이다.
또 다른 소설인 S의 정사 는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이 인상 적인 작품이다. 주인공은 한때 S라는 여성과 사랑을 나눴으나 부유한 남자와의 호화스러운 삶을 선택한 S에게 버림을 받았 다. 그러던 어느 날 S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은 남자는 배 신의 아픔 때문에 그녀와의 만남을 거부했고 며칠 후 그녀가 남편을 죽이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시간이 지나고 밝혀진 진실은 S가 남자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남편에 게 강간을 당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게 됐으며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그녀가 남편을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는 것 이었다.
이 소설은 정절과 순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여성의 이야기로서 전근대적인 남녀의 사랑관을 답습하며 남성 들의 욕망과 환상을 대리만족시켜주고 있다. 근대화의 여파로 여성의 주체화가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이러한 소설이 등장하는 것은 이 잡지가 주로 남성독자를 겨냥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 다. 또한 카프나 여성작가의 활동이 활발해 여성에 대한 인식 이 바뀌어 가는 시기에 이처럼 유교적 가치를 담고 있다는 것 은 철저히 가부장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남성계층을 독자로 상 정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소설들은 호남평론의 창간호와 2호에 실 린 소설들이다. 이외에도 처시하 , 모던부부금슬기 같은 희
곡이 실려 있는데 이 두 소설은 경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부부 사이의 사소한 일상과 갈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호남평론에 실린 소설의 이런 특성은 잡지라는 대중매체의 속성을 재환기시킨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1935년도 발행의 호남평론 속 소설들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무 엇보다 대중성과 오락성이다. 대중들이 잡지를 자발적으로 구 매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출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만 한다. 즉 기회비용의 측면에서 그만큼의 매력이 충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에 우선적으로 잡지의 주 소비계층인 남성 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남성독자를 위해 남 존여비의 유교적 가치관 또한 자연스럽게 반영될 가능성이 크 다. 호남평론에 수록된 소설들은 이런 점에서 독자들의 욕망 과 오락에 대한 욕구를 적절히 채워주는 흥미위주의 내용을 담 고 있다.
여기에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들 소설이 민족이 처한 현 실과는 무관한 소설적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들 은 식민지치하 조선의 상황에 대해서 굳이 환기하려 하지 않는 다. 철이 되면 꽃구경을 가고 카페와 요리점이 번성하며 남녀 의 연애가 자유롭게 일어나는 소설 속 공간은 식민지의 고단한 현실과는 사뭇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서 목포라는 공간이 차지하는 독특한 성격을 발견할 수 있다. 목포는 단순히 배경 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로 다가온다. 이때 목포 는 일제 강점의 어느 도시, 식민지치하에서 수탈 받는 고통의 공간이 아니다.
실제로도 목포는 일정 규모 이상의 경제적 환경을 갖추고 있 으며 활발한 경제활동으로 소비와 유흥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공간이었다. 목포는 조선의 여느 도시와는 다르게 경제적으로 는 상당히 풍요로운 공간이었다. 물론 그것이 수탈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었다고 할지라도 민중들은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풍요를 나누게 되었으며 생 활의 곤궁함을 해결하는데 이는 상당히 주요했을 것이다. 즉 목포시민의 삶의 환경은 분명 다른 지역의 민중들과는 그 조건 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화성의 소설 추석전야 에는 당시 목포의 발전된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하루에 네 번씩 나가고 들어오는 기차를 보내며 많은 정거장을 중심으로 선인과 일인의 상점이 즐비한 중앙은 조선의 몇 째 안 가는 도회로 부끄럽지 않으며 크고 작은 섬이 둘러 있는 푸른 바다에 점잖은 기선과 어여쁜 흰 돛 대, 방정스러운 발동선들이 들고나는 항구의 특색은 남편 해안에 있다.5)
소설에서 묘사되는 목포는 조선에서 몇 째 안 갈 정도로 화 려하고 번화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거 주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와 상점이 성업 중이었 다. 또 서양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의 주택지도 도시 곳곳에 위 치해 있었다. 즉 목포는 자본주의체제의 도시적 환경이 모두 완비된 곳이었다.
기생과 여급이 소설과 그 외 다양한 기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목포의 부유했던 경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기 생과 여급은 요리점이나 카페처럼 이들을 고용할 수 있는 곳이 있고 유흥을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전제되어야 존재할 수 있다. 특히 당시 유행하던 카페는 지금의 모습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던 곳으로 음주와 유흥을 충족할 수 있는 향락의 공간이었다. 카페에서 술을 마시기 위해 필요한 돈도 적게는 몇 원에서부터 많게는 10~20원 정도가 들어 일반 노동자의 수 입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편이었다.6) 박화성의 5) 박화성, 추석전야 , 박하성 전집 16, 푸른사상, 2004, 33쪽.
6) 당시 경성의 카페는 술 한병에 삼십오원의 폭리를 취하기도 해 신문지면에 보도되기도 했다.( 술 한병에 삼십오원야-폭리의 선봉대 카페와 빠 , 동아일보 1939.10.06)
1932년 작인 하수도공사 에서는 목포의 일용 노동자들이 받는 일당이 많으면 1원이고 대부분이 고작 50전 이내의 수준인 것 으로 나와 있다. 따라서 요리점이나 카페의 주손님들도 씀씀이 에 구애받지 않는 부유층이나 엘리트 등이었다.
꼭 부유층들만이 아니더라도 목포는 생활의 곤궁함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적었다. 목포가로의 새벽풍경 , 목포 골불견 공개 상 이나 술은 마셔야 할 것인가? 특히 목포에 유행되는 먹더 리 계를 보고 등의 기사는 풍요의 부작용에 몸살을 앓고 있는 목포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개항장으로서 그리고 수탈의 핵 심 도시로서 목포의 풍요는 그렇게 목포시민의 일상을 구성하 고 있었다.
호남평론에 실린 소설이나 희곡 그리고 기타 다른 기사들 의 내용을 고려해본다면 목포가 하나의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경제 공간으로서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비단 경제적 현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목포는 제도적 차원에 서도 여타의 도시와는 다른 독자성을 구축해 나가고 있었다. 호남평론에서 그려지는 목포는 피식민지의 정치적 환경과는 무관한 독립된 정치적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잡지에 실린 다수의 글과 사설들은 목포라는 공간에 작 동되는 독자적인 사회적 시스템을 보여주고 있다.
Ⅲ.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공간의 등장
도시는 물자와 인력을 한곳에 집중해 이를 효율적으로 재배 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본주의적인 공간이다. 화폐경제와 이 성의 지배는 사람과 물건을 대함에 있어 순수한 객관성을 추구 하며 형식상의 정의와 엄격성을 강요한다.7) 이로 인해 도시는 7) 게오르그 짐멜. 김덕영,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새물결, 2005, 37쪽.
전근대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대상의 개별성과 대체 불가능한 질적 특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보편적 객관성으로 도시를 지배 한다. 도시는 최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며 비인격적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기준과 절차를 만들고 객관적인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도시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보편적 사회체제를 만드는 것은 의사결정과 정책의 집행에 있어 시간과 자원을 절약하는 근대적 합리성의 일환이다. 호남평론에도 목포가 추구한 객 관적이고 보편적인 체계에 대한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내부 정책을 논의할 공론의 장을 마련해 도시의 전반적 문제를 해결할 단일하고 납득할만한 절차를 만드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시민들에게도 시정에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하고 관심을 가지도 록하면서 이러한 시스템의 필요성과 가치를 재인식하도록 요구 한다.
필자가 지금 논하랴는 것은 부의회기관이나 읍의회기 관의 존재성에 대한 시비와 조선인의원선거의 필요 불필요 에 대한 근본문제를 말하랴는 것은 안임으로 여기에는 붓 을 대지 안코 다만 선거의 철저를 논하야 유권자제위의 참 고에 바치랴는 것이다.
오인(吾人)이 현사회환경의 지배하에서 조선인의원의 선거를 필요로 하고 또 선거에 임하게 된다면 오인은 여기 에 엇더한 각오와 고려를 가지고 이에 벗틔어야 할것이다.
외냐하면 유권자 여러분이 선출 식히는 회의원은 즉 여러 분의 요구와 또 그리고 전인격을 대표하는 부의원이 되고 읍의원이 되는 까닭이다. 그럼으로 그 부와 그 읍에서 선출 되는 의원의 자격을 수준으로하야 그 지방민지(地方民智)의 발달여하를 저울데질할 수 잇는 것이니 이것의 불철저로 인하야 우리민족의게 미치는 수치와 그 영향이 걸코 적지 안는것이다. 속담에도 말하엿다. 공은 공이요 사는 사라고 한잔의 술이 비록 정실에 매개가 되지 안는 것이 안이오 금전대차관계가 인연의 실마리가 되지 안는 것은 안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에 속한 것이오 공은 안이다. 사정에 억메
이는 값싸고 못산 인도주의적 저심으로 인하야 한표를 그 사람의게 주는 것이지만은 그 결과는 우리의게 치욕이 도 라오고 손실이 도라오는 동기를 메저주는 것이니 그는 우 리 사회에 한개의 죄악자가 되는 것이며 공적이 되는 것이 다.
( 부회의원선거를 압두고 유권자제위에게 일언함- 나해성 , 호남평론 1935년 6월호, 5쪽)
위 기사에서 민족이라는 말이 사용되기는 하나 이는 수사적 이며 한정적인 표현일 뿐이다. 선거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부각 되는 것은 올바른 선거제도의 정착과 그로 인한 시민의 이익 증대이다. 즉 부의회나 읍의회라는 한정된 의사결정 시스템과 이를 통한 지역발전의 의지만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선거에 임하는 시민의 자세가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선거의 중 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여기에는 공과 사를 구분하고 올바른 사람에게 투표를 하는 것이 재원의 손실을 줄이고 공동의 이익 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합리적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따 라서 의회의 존재에 대한 ‘필요 불필요’의 문제는 이미 논외가 되었고 다만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용할지에 대한 담론만 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위 기사의 후반부에서는 선거의 잘못된 사례를 예로 들어 좀 더 직접적으로 유권자들의 신중을 요구하고 있다.8) 유능한 부
8) 여기에 한가지 참고재료로 말하랴고 하는 것은 작년도 목포부회의때에 발생된 사실이 다. 남교동 등모(藤某)라는 의원이 자기집문압히 비가 오면 물이 고이여 내왕에 불편을 늣기엇다. 그러나 자기가 방수공사를 하기는 돈이 들겟고 또 그러타고 자기체면으로서 는 부회의석상에서 자기 집 문압을 곳처 달나고 먼저 주장하기가 거북하엿든 것이다.
그리하야 X동(洞)사는 의원 모씨를 너 가지고 이런 조흔 재료가 잇스니 요구하여 보시오 하고 슬적 엿을 먹여 노앗다 - 이양반이야말로 말은 하고 십흐나 말할만한 재료를 몰나서 뿐 안이라 말할 줄을 몰나서 무섹스럽게 남의 입만 치어다보고 잇든 때인지라 올타구나하고 고맙소 고맙소하는 경의를 표한 다음 언권(言權)을 어더가지 고 그를 요구하여 보다가 권의원의게 톡톡이 어더듯고 드러가는 자라목아지가 되엿 다. 그때 만장의원과 방청인은 박수를 불금하엿고 씨(氏)는 추절을 당한 댓초빗이 되엿 스니 이게 우리의게 미치는 영향이 업다고 하겟는가
의원을 뽑는 것은 도시의 재원을 공평무사하게 분배하고 정책 을 공정하게 집행하기 위함이며 그러기 위해 유권자는 선거에 임할 때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잡지는 전하고 있다. 만 약 그렇지 못한다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예산과 물자의 배분은 부당한 곳에 사용되기 쉬우며 이는 곧 시민의 생활에 직간접적 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1930년대 조선 땅에서 도시는 시민이 현실 문제와 행 정에 대해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공간이었다. 담론의 대상이 바뀌고 범위가 축소되자 기존에 불가능했던 발언들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9) 이 경우 일제시대를 상상할 때 우리가 흔히 기대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대립적 구도가 모든 면에서 일 치하지는 않게 되며 그 성격 또한 관념적인 것에서 현실적인
그리고 또 한가지 실례로는 재작년목포부회의 때 일이니 공동묘지이전문제로 연삼일 끄러오며 의원들은 악전고투을 하엿고 부민의 이전진정은 빗발치듯 하엿다. 이와 가치 중대문제인지라 전(全)의원은 김용진씨 집에서 밀의(密議)를 한결과 묘안을 발견하엿 다 그것은 서로 감정이 업시 원만히 조건부해결을 식킬 수 잇다는 점을 차저낸 것이다.
그리하야 일동은 깃붐을 가지고 회의에 임하엿스나 모의원의 발설로 인하야 묘안은 결국 파안으로 되고 말엇다. 이상 두 가지 예로 만 보아서도 유권자 여러분은 일대주의 를 가지고 한장의 투표를 가치 잇시 이용하여야 할 것이다.
(부회의원선거를 압두고 유권자제위에게 일언함-나해성,
호남평론 1935년 6월호, 7쪽) 9) 권영례씨 부립병원은 누구를 위하야 존재하여잇는지 오인은 자못 해석하기 곤란한 바이다. 매년 부예산중에서 수만원식의 병원적자비보충을 한다면 그는 목포부오만부 민의 병원이여야 할 것이며 일부인의 병원이 안일것은 사실이라. 그러타면 현재 부립 병원의 의사급(及)간호부의 배치를 보자! 조선인의사와 조선인간호부는 한사람도 두 엇든 예가 없섯스니 이것은 완전히 조선인부민을 문외한으로 역이는 부정(府政)이 안 이고 무엇이냐. 조선인의사는 의술이 낫다거나 조선인간호부는 더 친절하다해서 조선 인의사와 조선인간호부를 두어달나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언어에 대한 통역이라는 것은 가장 어려운 것이 병자에 대한 통역일 것이다. 그것은 통역의 잘못으로 인하야 근본적으로 치료를 잘못할 염에가 잇는 까닭인것이다. 이러한 중대성을 운 문제임에 도 불구하고 현부립병원은 조선인의사나 간호부가 한 사람이 업스니 이에 불편을 늣긴 조선인환자가 가지안을것은 무리가 안이며 이와 동시에 손님을 일케되는 부립병원은 년(年)수히 수만원의 적자를 네일것은 불가피의 반응현상일것이다.
(목포부회일잠(一暫)-오태준,
호남평론 1935년 6월호, 22쪽)
것으로 변하게 된다.
물론 이 당시 부의회의 의사결정이 완벽히 민주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부의회는 일본인의 이익과 일제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의 측면이 강했다. 목포의 경제 및 정치권력이 일본인에게 집중되었음은 여기서 더 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의회도 순수하게 다수 조선인들의 의견을 반영한 정책을 집행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 리라 추측된다.10) 그러나 이를 국가 대 국가 차원의 지배ㆍ피 지배의 관점이 아닌 의회에서의 숫적 대결로 인식하고 있기에 그 대응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때 민족이라는 관념은 정당이나 정치세력과 같은 한정된 개념으로 축소되고 변화한 다. 그리고 이 축소와 변화가 한편으로는 조선인이 부의회에서 의견을 개진할 계기가 되기도 한다. 노동자의 유입으로 인해 목포의 인구 분포가 조선인 위주로 형성되고 유권자수도 늘어 조선인이 우세해 지자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는 부내 조선 인 거주 지역의 시설 차별에 대한 문제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제기할 수도 있었고 이에 따라 조선인 마을에 대한 투자가 다 소 증가하기도 했다.11) 그러나 이는 단순히 도시민과 유권자 수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화와 부의회의 발전을 통해 시민의 시 정에 대한 참여의식이 높아졌던 것에도 한 원인이 있을 것이 다. 그러므로 조선인의 부의회 참여나 제도에 대한 순응은 그 시대를 사는 목포인들의 삶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10) 조선에서 아직 부회예산안이나 읍회예산안이 심의회에서 번안(飜案)된 예를 보지 못 하엿스니 목포부회라고 별다른 기대를 가질 수 업는 것은 다언을 불요하는 바이언이와 너머나 싱거웁게 진행되는 감업지 안엇다. 가등(街燈) 문제에 잇서서 김용진씨로부터 일본내지인과 조선인의 인구 예(例)로 본 차별적 시설을 들어 질문전이 개시되는가하 고 생각할 때에 발서 다음문제로 넘어가버리고 만다.
(목포부회일잠(一暫)-오태준,
호남평론 1935년 6월호, 22쪽) 11) 고석규, 근대도시 목포의 역사 공간 문화,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116쪽.
의회제도의 보급 및 시정에 대한 시민의 참여와 함께 도시인 의 삶을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또 다른 제도가 근대 적 법률이다. 법이란 인간들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다수의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도시 사회의 개 인은 서로 친분이 없는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해야 하기에 법과 같은 객관적이고 기준이 되는 규칙들에 쉽게 의존하려 한다.
반면 전통적 공동체사회에서는 법보다는 도덕과 윤리적 지침에 따르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부분에서도 전통 적 사회에서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익보다는 공동 체 내의 관계이다. 그러나 소속감과 유대가 약화된 도시사회에 서 인간들 간의 윤리는 보다 축소되고 개인화되기 마련이다.
이 경우 도시민들의 사회적 관계는 최대한 개인의 이익을 보호 할 수 있는 공평무사한 기준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이에 가장 합당한 기준으로 법이 이용되는 것이다.
호남평론은 1935년 11월 호에서 상식의 법률 이라는 코너 를 마련하여 일상생활에서 법률의 필요성과 가치를 알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법률의 해석 문제나 효용성 등 법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법률의 민중화를 목표로 일상생활에 직접 필요한 것을 적출하야 비교적 평이하게 진술하라는 사명(社命)에 의하야 기술하였으나 원래 천학비재(淺學菲才)의 둔물(鈍物)인지라 숭고 엄밀한 법률을 통속적으로 해설하기 기임(其任)이 아 닌 줄을 절실이 느낀다. 그러나 하지 아니치 못할 것이니 인도의 투사 로만 로랭은 말하였다. 여가히 숭고한 학리도 차(此)를 일반대중에게 전달못한다면 하등의 가치가 없다 고. 사회제도의 기조가 된 법률을 가급적 민중화 식혀보자 는 본사의 의도도 의의 없는 배 아니니 감이 독필(禿筆)을 가(呵)하야 일상생활에 필요한 법률에 해설을 가하야 볼가 한다.
(상식의 법률- 박찬일, 호남평론 1935년 11월호, 34쪽)
이 기사는 법률을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의 수준에 맞춰 평이하게 해설함으로써 법이 민중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 게 하고자 했던 호남평론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법에 의 한 사회생활은 하나의 단일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서로의 오 해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지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첨예한 이해 관계에 있어서도 법은 이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중재할 중재 자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분쟁을 해결할 권위 있는 준거가 된 다. 즉 호남평론은 생활의 필요와 합리성이라는 실질적인 관 점에서 법률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개화기 무렵 열강 에 대한 대응수단으로 또는 새로운 국가운영의 체제로서 서구 법학에 주로 관심을 가졌던 지식인들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 습이다.12)
위 기사 후반부에서는 법률의 해석과 관련하여 두 가지 재미 있는 사례를 들고 있다. 행인이 어느 곳을 지나가는데 ‘차마통 행금지(車馬通行禁止)’가 나오자 소나 개는 괜찮다며 자신의 소 를 끌고 건너가는 이야기와, 새를 가지고 기차를 타려는 아이에 게 차장이 생물을 가지고는 탈수 없다는 규칙을 적용하려 하자 그러면 이나 빈대도 생물이지 않느냐며 반발하는 이야기가 이 어진다.
법의 적용은 법의 해석에서 시작하며 따라서 해석은 법체제 가 정착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된다. 생물을 데리고 기차 에 탈 수 없다는 것을 말 그대로 엄격히 적용한다면 이나 빈대 가 있는 사람은 차에 못 탈 것이며 계란을 가진 손님도 마찬가 지로 승차할 수 없다. 그러나 생물을 가지고 기차에 탈 수 없 다는 규칙은 큰 동물이 탈 경우 다른 승객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러므로 법을 12) 황민호, 일제의 식민지 언론정책과 법률관련 논설의 경향 , 정신문화연구 91, 한국
학중앙연구원, 2003, p. 216.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법의 올바른 활용이 될 수 없다.
이리하야 아무리 상세를 극진한 법률이라 할지로도 건 전한 해석을 대(待)치 아니하고는 활용되지 못하나니 법률 해석에는 항상 사회통념이라든가 상식이라든가가 건전함을 요한다는 이유가 자명하리라
(상식의 법률-박찬일,
호남평론 1935년 11월호, 36쪽) 법률의 해석은 언제나 상식적이고 사회통념적인 기준을 바탕 으로 해야 된다는 말은 사회 내의 모든 일들 역시 상식과 사회 적 통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 기반으로 도 시민들은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하나의 합리적인 기준으로 모 아가게 된다. 상식과 통념은 판단과 결정에 있어서도 확실한 근거를 제공하게 된다. 분쟁과 대립의 소모적인 상태를 최소한 으로 줄이고 원만하며 공정한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도시 가 추구하는 이상이다.
또한 도시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민감하다. 따라서 재산을 포 함한 개인의 권리 일체를 보호하는 것이 도시의 최우선적인 목 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법 중 하나인 민법은 개인의 권리와 의무 및 재산의 보호에 이르는 모든 것들에 대 해 법적 권위를 부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민은 국가와 민족의 일원이라는 보편성에서 벗어나 근대적이며 법적인 개인 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개인주의적 민법의 근본적 이상은 개인인격의 절대적 존중 이라는 기인(旗印)하에 다시 구체적으로는 이하의 삼 대원칙으로 구현되나니 개인의사 자치의 원칙, 자기책임의 원칙, 개인재산권존중의 원칙이 이것이다.
(상식의 법률-박찬일,
호남평론 1935년 12월호, 39쪽)
도시화를 통한 법의식의 발전은 개인의 권리를 쉽게 말하지 못했던 과거의 상황을 역전시키고 자신의 권리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똑같은 식민지배의 상황이 지만 민족의 일원으로서의 법적 권리와 도시민으로서의 법적 권리가 다른 의미로 인식되는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박찬일의 상식의 법률 은 1935년 11월호와 12월호에 실려 있으며 1936년 1월호에서는 법률 로 이름을 바 꿔 2월호까지 연재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3ㆍ4월 합본호에서 대중법률강좌 로 이름을 바꿔 6월호, 7월호, 8월호, 9월호, 11 월호, 1937년 1월호에 실리며 꾸준히 법률과 관련한 지식을 전 달하고 있다. 또한 그 외에 다양한 법 관련 글들이 호남평론
의 지면을 차지하며 독자들에게 법에 관한 실용적 정보를 전달 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핀 부의회제도와 법체제는 목포라는 공간이 가지 고 있는 도시적 특성을 대변하고 있다. 즉 도시의 운영과 내부 문제에 대한 해결에 있어서 도시 구성원의 참여와 공정한 판결 이 어느 정도는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어디까지 진 실로 볼 것인지는 물론 확언할 수 없다. 실상 법제도는 일제의 조선 지배에 이용되어 가혹한 수탈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 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호남평론이라는 잡지가 스스 로 목포를 재현하는 방식이다. 호남평론이 이상과 같은 방식으 로 목포라는 공간을 재현하고 있는 것은 목포에 거주하고 또 호남평론을 보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도시라는 근대적 공간 에서 근대적 제도의 혜택과 보호아래에 지내고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
Ⅳ. 재현의 의도와 일제의 지배전략
목포는 일제에 의해 개항장으로 지정되어 물류의 수입과 수 출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각지에서 굶주린 노동자 들이 유입되었다. 여기에 조선의 미곡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주 요한 통로로 목화와 면직물이 들고나는 주요한 창구이기도 했 다. 목포는 호남평야의 농산물이 모여드는 곳이었고 목포와 인 근 섬에서 잡힌 풍부하고 신선한 해산물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항구였다.
일제에게 목포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공 간이었다. 그러므로 목포라는 도시가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작동해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여기에 식민지를 지배하는 제국주의의 필요와 전략이 절묘한 방식으로 반영된다. 식민권력이 힘과 폭력으로만 피식민지를 지배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무리가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자발성을 도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필요성이 제기된 다. 권력은 모든 개인이 기꺼이 받아들이고 스스로 재활성화하 는 필수적이고 결정적인 기능이 될 때만, 주민의 전체 삶을 효 과적으로 지배할 수가 있게 된다.13) 따라서 식민지배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보편성과 합리성을 피식민지인에게 보장해 주는 것이 통치를 이롭게 하는 일이었다. 이는 또한 일제의 직접적 이고 폭력적인 통치에 대한 부작용을 상당부분 줄여주기도 했 다. 그런 의미에서 부의회나 법률은 식민통치의 매개이면서 완 충지대역할을 했다.
자신이 합리적 의사 결정체계가 존재하는 공간 속에 거주하 고 법률로 보호받는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자신의 삶과 주변 환 경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성과 안정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이때 그들은 제국주의의 침략에 수탈당하는 고통 받는 피식민지인이 아니라 세계 공통의 근대적 제도를 함께 누리는 초민족적이며 초국가적인 주체가 되는 것이다. 즉 민주적으로 13) 안토니오 네그리ㆍ마이클 하트, 윤수종 옮김, 제국, 이학사, 2001, 53쪽.
보이는 의회제도나 개인의 법적인 권리를 보장해주는 법률 속 에서 목포시민은 근대적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할 가능성이 높 아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해와 왜곡 속에서 일제라는 식민지배자의 얼굴은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진다. 식민지에서 초월적이며 주 권적인 힘을 가진 자신들의 존재를 사라지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제국주의의 주요한 통치방식중 하나이다. 이를 위해 일제 는 촌락이나 면, 소도시 단위로 근대적 관료제를 전파하고 그 위에 합리적인 문서행정체제를 확립했다. 문서행정체제는 관료 제의 부작용일 수 있는 관리의 자의적 개입 가능성과 관리 개 인의 능력에 따른 결과의 차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문서를 매 개로 행정의 효율성을 최대화하는 것이다.14) 이러한 제도 역시 식민지배의 폭력성을 제거하고 비인격적이고 제도적인 사회체 제를 만드는 일환이었다. 이에 따라 일본인과 조선인이 같은 부나 군의 구성원이 되고 서로 대등하게 경쟁하는 정치적 세력 으로 상대와 자신을 인식 또는 오해하게 된다. 그 결과로 피식 민지인들의 시ㆍ공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전근대적인 주권자의 일인지배와 권력의 횡포가 사라진 것은 그들에게는 피부로 느끼는 변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지배는 실상 더욱 은밀하게 공고화 되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신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지배 의 전략 안으로 깊숙이 포획된 것이다.
박화성의 소설 하수도공사 에는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 이 경찰서로 가서 서장과 면담을 주고 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서장은 노동자측의 요구와 중정대리의 변명의 내용을 말 한 후
“중정과 정식 해약이 되었습니까?”
14) 윤해동, 일제시기 면제(面制) 실시와 근대적 관료ㆍ행정제도의 도입 , 한국사학보
24, 고려사학회, 2006, 262쪽.
하니까 북천이는 큰 눈을 황당하게 더 크게 뜨며
“아닙니다. 아직 정식 해약의 선언은 하지 않았습니다.”
한다.
“그렇다면 해약 송달을 하기 전에 노동자들의 임금을 먼 저 지불하여야 되지 않겠소?”
“그렇지만 어디 그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 그러나 이 때가지 한번밖에 받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나 지독하지 않소. 중정의 보증금에서라도 임금 지불을 하도록 하시구려.”15)
일본인 공사업자에게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목포의 노 동자들은 이를 항의하기 위해 경찰서장과 면담을 한다. 서장은 일본인이지만 이들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제압하지 않으며 오히 려 갈등을 조정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노동자들 역시 자 신들이 어느 정도는 법의 보호를 받고 있고 또한 그들에게 법 적 권리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서장의 유화적 제스처나 중 재시도는 식민지배의 현실과는 사뭇 다른 대응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피식민지인의 권리가 확 대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이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 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통치의 효율성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라는 근대적 공간은 피식민지인의 인식을 왜곡하고 이들 을 지배하기에 알맞은 전략적 공간이다. 근대적 도시인으로서 살아가는 그곳에서는 민족이 처한 문제는 점차 시야에서 사라 지게 된다. 즉 조선의 도시는 어느 순간 주권과 식민지배의 문 제가 해소된 공간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16) 그러나 이 도 시인으로서의 자기 인식은 식민지 피지배민족이 받는 차별위에 그 기반을 두고 있음은 자명하다. 위 소설에 등장하는 노동자 들의 경우도 일본인 공사업자의 임금체불 문제를 떠나서 그들
15) 박화성, 하수도공사 , 박화성 전집 16, 푸른사상, 2004, 52쪽.
16) 김수림, 제국과 유럽: 삶의 장소, 초극의 장소 , 상허학보 23, 상허학회, 2008, 144쪽.
이 저임금으로 착취당하는 현실에는 일제의 다양한 전략이 반 영되어 있다. 특히 조선의 농업을 파괴한 저가의 미곡정책은 일본자본주의의 기초인 저임금정책을 가능하게 했다.17) 이러한 정책은 농민의 수탈을 바탕으로 노동자를 수탈하는 이중의 구 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일본인 사업가들이 저임금의 중국인 노동자들을 고용 한 결과 조선인의 일자리가 줄어들기도 했다.
당시 조선인에게 진정한 문제 중 하나는 실상 식민모국의 지배 보다는 자본주의적 논리가 갖고 있는 폭력성이었다.
앞에서 모두 살펴보았듯이 목포는 호남 지역 경제의 핵심적 인 공간으로 급부상했으며 빠른 속도로 도시화를 경험하게 된 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근대적 체제의 결합은 국가가 아닌 도 시를 삶의 주된 환경으로 만들었다. 또한 부의회를 통한 도시 행정의 결정이나 법률의 시행은 조선인들에게 근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의회나 사법제도는 일본이라는 식민지배 자를 조선인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고 도시를 자치의 공간 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는 단순한 속임수나 왜곡 이전에 어느 정도 실질적인 효율성과 합리성 아래에서 추진된 것이다. 그리 고 이 환경 속에서 살아간 조선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 의식적으로 식민지배에 깊숙이 포섭되어 버렸다.
Ⅴ. 나오며
호남평론은 그전과는 달라진 환경에 처한 민중의 인식 변 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식민지 조선의 일반적 상황과는 상 당히 다른 성질의 것이었으며 따라서 이 변화된 환경 속에서 인간은 그에 적합한 반응으로 주체를 재구성하게 된다. 목포라 17) 오승용, 식민지 정책과 국가자율성 문제-관세정책과 미곡정책을 중심으로 , 사회와
역사 89, 한국사회사학회, 2011, 20쪽.
는 공간의 근대화와 도시화는 피식민지인이 근대적 시민이면서 주체로서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했다. 이는 단순 한 식민지배의 호의가 아니라 치밀한 제국주의적 전략에서 비 롯된다. 하지만 목포부민이 조선이라는 보편적 공간에서 경험 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경험하게 된 것은 자명한 사실 이다. 이러한 변화와 경험이 주체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 는지를 엄밀하게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 적인 과정 속에서 주체화는 비정상적인 형태로나마 분명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주체의 변화가 1930년대를 넘어서 40년대에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펴보 아야 하며 또한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를 연구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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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호, 일제의 식민지 언론정책과 법률관련 논설의 경향 , 정신 문화연구 9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3.
□ Abstract
A Study on Modernity and Mass Media of 1930's in Mokpo
- focusing on the novels and descriptions in Honampyoungron(湖南評論)
A Lecture of Chonnam National Univ.
Choi, Chang Geun
There are much great meaning of magazines and mass media in terms of social reflection. Mass media can include much positively the boundary of possibility that a society could be able to accept. Magazines in 1920's emphasized nationalism & illuminism, but magazines in 1930's a little more digged into the various points with the changed realities of life. Starting with
byoulgeongon
(별건곤) in the late 1920's, most of magazines in 1930's kept one's distance with the colonial realities. A series of flow make sure to bring a change of discourse and change of subject. This change of discourse & subject inevitably calls to come the change of reappearance & representation.This thesis deals with the appearance of cites and these changes with modernization, the colonial domination strategy.
투고일 2013. 4. 24.
심사 시작 일자 2013. 5. 20.
심사완료일 2013. 6. 20.
The process of reconstructing discourse from question of nation and people to that of one region should go through complex process with the modernization and urbanization.
The special space of city and new subject of citizen became the driving force of making a new discourse getting out of previous nation and nationalism. And this magazine took charge of a role reflected such a change actively. In this thesis Taking into account the these points, we will be able to look into the relations and interaction of both the space of Mokpo in 1930's and reflection of
Honampyoungron.
Key word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