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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언어의 힘, 에크프라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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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언어의 힘, 에크프라시스

앞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미지가 모든 것을 삼킬 만큼 중요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의미를 홍수처럼 전달한다. 종이 책이 점점 안 팔리고 있으며, 대표적 활자매 체인 종이신문도 매출이 점점 줄고 있다. 대신 방송이나 만화 인터넷 등 시각 매체 의 성장세는 두드러지고 있다. 앞으로의 미래의 모습은 어떠할까? 최근에 나온 영 화 <그녀(Her)>는 멀지 않은 인간의 미래를 그려내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동 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하며, 시간과 공간의 벽을 가볍게 넘는다. 지 금도 누구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으며, 시공간의 제한 없이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다. SF 영화들은 시종 새로운 기술과 상상력을 결 합하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내왔다. 과학기술 발전의 궁극은 사랑의 감정 에까지 닿는 경지일 것이다. 영화에서 남자주인공 테오도르는 오래 사귄 뒤 결혼한 아내와 이혼과정 중이며, 사람이 아닌 OS(컴퓨터 운영체계)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 지게 된다. 그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손편지를 써주는 회사인 ‘예쁜 손편지 닷컴’에 근무하며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전달한다. 일종의 감정노동자인 그에게 정서적 해 소는 필수적이며 감정적 소모가 많은 피곤한 사람 대신 자신에게 딱 맞게 최적화된 OS에 그는 점점 빠져들어 간다. 하지만 OS는 상호작용적이며, 프로그래밍 화되어 있지 않고 매번 진화한다. 문제는 프로그래밍을 넘어서 진화한다는 것. 자신의 감정 과 상대의 반응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점점 감정적이고 의존적으로 변화하는 OS와 다시 감정적인 문제를 겪고, 결국 OS는 또 다른 OS와 바람이 나서 사라져버린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만 한 점은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풋과 명령어와 대화의 현저 성이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디지털 신호와 알고리즘이 네트워크를 장악한 다 해도 인간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행위는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손편지를 쓰는 주인공이 있는 회사에는 직원들이 전화상담원처럼 책상에서 편지를 구술한다. 물론 컴퓨터가 글을 쓴다. 주인공은 OS와 중얼거리며 대화를 하고, 이후 에 지하도를 지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OS와 중얼거린다. 어쩌면 말과 글 즉 언어 는 사람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일지도 모른다. 사람에게서 말과 글을 떼어 낸다면, 사람과 동물의 차이도 생각보다 크지 않을 지도 모른다.

1) 왜 언어인가?

<인간과 말>이라는 책에서 막스 피카르트는 인간이 지닌 다양한 능력을 대체하고 그것을 멋지게 초과하는 다양한 매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말과 동거하는 인

간의 능력만큼은 그 대체물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카르트는

“인간이 말을 배우기 이전부터 언어는 인간 속에 내재해 있다. 언어는 스스로 가르 치며 스스로 해석한다. 이것이 바로 언어가 스스로 발휘하는 기적이다”고 말한 메 를로-퐁티를 인용하며 언어의 선험성을 말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 속에 선험적으 로 내재하는 언어를 사용해서 말을 한다(Picard, 2013/2013). 이런 선험성 때문인지 인간은 살아있는 내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말한다. 심지어 침묵하는 순간에도 자 기 자신을 상대로 말하고 있다. 잠자고 있는 순간에도 마치 무성영화처럼 펼쳐지는 꿈속에서 말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음과 더불어 놀라운 사유를 창조해내고 말할 수 없음과 더불어 언어 너머의 심연의 존재를 증명하기도 한다. 인간의 조그만 육체 안에는 이처럼 엄청난 말이 존재한다. 우리가 실제로 감지하는 말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말에 비하면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조연정, 2013).

인간에 대한 탐색은 언어에 대한 탐색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지어주는 유일한 종차가 바로 언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 닌 모든 특징들이 언어에서 파생된다. 인간의 말이 순수해질 때 그것은 그림과 가 까워진다. 침묵은 ‘말의 어머니’이며, 그림은 ‘인간이 말로 타락하기 이전의 낙원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그림의 침묵에 대항하면서 말이 최초의 현존을 획득하게 되었다. 말을 배우기 이전의 아이의 영혼이 그림으로 충만하다는 사실을 참고할 수 있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애초에 말과 그림은 분절되지 않은 침묵의 공간을 그 기원으로 공유하고 있다(Picard, 2013/2013). 침묵의 공간에서 말과 그림은 분절되지 않았지만, 침묵의 공간을 벗어나며 말과 그림은 분리된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영상 카피라이팅은 분절되지 않은 말과 그림을 분리해내는 것 이다. 따라서 영상 카피라이팅의 핵심은 그림 속에 내재한 말을 흘러나오게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어떤 이미지를 보고 있노라면 이미지가 무언가 속삭이는 듯한 느낌 을 받을 때가 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지는가? 당신도 분명이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속삭임은 그림 속이 아니라 당신 안에 내재된 것인 지도 모 른다. 그림에 내재된 침묵의 언어와 당신에 내재된 언어의 만남, 그것이 영상 카피 라이팅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 시공간적인 흐름

<표 6>. 피카르트의 언어관을 바탕으로 한 영상카피라이팅 개념도

그림 속의 언어 영상 카피라이팅 내 속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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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나의 주장은 광고 전문가들의 목소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카피라이터 윤준호는 연필만 들볶지 말고 연필의 대변인을 찾으라고 한다. “세상에 말을 못하 는 물건이란 없기 때문이다. 사진이 말하고, 신호등이 말하며, 표지판이 말한다. 넥 타이가 말하며, 냄새가 말하고, 여백이 말한다. 심지어 침묵도 말을 한다. 카피라이 터는 어쩌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 아닐까. 말보다 더 좋은 말을 찾는 사람 아닐까? 연필보다 더 좋은 연필을 찾는 사람 아닐 까?”(윤준호, 2012, 271쪽).

2) 스토리텔링보다 에크프라시스

나는 서론에서 스토리텔링보다 에크프라시스(Ekphrasis)를 기억하라고 말했다. 스토 리텔링의 시대에 왜 에크프라시스인가? 에크프라시스는 상상력과 관련된 예술작업 의 그리스식 정의로서 수사학적인 훈련으로 생겨났다. 즉 시각적인 예술작품의 문 자적이고 극적인 기술(description)을 말한다. 고대에 그것은 사물, 사람, 경험에 대 한 자세한 기술을 뜻하기도 했다. 그리스어 ek는 ‘밖으로’를 phrasis는 '말하다'를 뜻 하므로(wikipedia) 에크프라시스란 ‘밖으로 말한다’, ‘말로 풀어낸다’는 뜻에 해당하 겠다.

에크프라시스의 원뜻은 폭이 넓다. 에크프라시스는 예술의 한 매체를 다른 매체로 전환하는 데 있어 사용되는 수사학적인 도구로 고려되어 왔기 때문이다. 즉 이런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듯한 생생함을 통해서 수용자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예술의 핵심요소와 형태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산문이나 시, 영화, 심지어 사진의 설명 은 따라서 수사학적 화려함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각 예술의 경우 원작을 고양하고 화려한 기술을 통하여 생생하게 살아난다. 조각을 그린 그림을 예로 든다면, 그림은 조각의 '이야기를 말함'으로써 이야기 자체뿐만 아니라 이야기꾼이 된다. 사실상 예 술의 어느 매체라도 에크프라시스의 주체 혹은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 로 회화는 조각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시는 그림을 묘사할 수 있으며, 조각은 소설의 주인공을 묘사할 수 있다(wikipedia). 에크프라시스의 폭 을 좁히면 ‘시각적 재현의 언어적 재현’으로(verbal representation of visual representation) 설명하기도 한다(이재현, 2013).

영상콘텐츠를 예로 들어보자. 영상 콘텐츠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말과 글, 영상, 사운드 등이 존재한다. 다양한 요소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영상 콘텐츠를 완성 한다. 에크프라시스의 넓은 의미를 적용하자면, 시청각적 매체와 언어적 매체를 자

유롭게 변용시킬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에크프라시스 능력이다. 영상 콘텐츠를 잘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말과 글, 영상, 사운드 간의 넘나들기를 능숙하게 할 수 있어 야 한다. 즉 에크프라시스란 ‘매체 간 넘나들기(cross media translation)’라고 간략 하게 정의할 수 있겠다.

↔ ↔

↔ (말과 글, 사운드 연결)

<표 7>. 영상 콘텐츠의 구성요소와 요소간 에크프라시스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모두 다 주문을 외듯이 읊조린다. 초등학생 수학도 스토리 텔링 수학이어야 하고, 많은 대학에도 스토리텔링 전공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광고 도 스토리텔링이고, 만화도 스토리텔링이며, 프레젠테이션도 스토리텔링이다. 물론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을 익히고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스토 리텔링을 위한 여러 가지 전략들이 있겠지만, 가장 쉽고도 유용한 방법은 바로 시 각적 이미지를 언어적 표현으로 전환하는 이른바 에크프라시스다. 따라서 스토리텔 링이 막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것보다 에크프라시스에 힘써야 한다. 에 크프라시스가 끝난 뒤에 이야기와 담화로 구성된 서사의 원리나, 기승전결의 원리 등을 익혀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스토리텔링의 첫걸음은 시각적 이미지의 언 어적 전환인 에크프라시스라고 주장한다.

스토리텔링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서사다. 내러티브라고도 부르는 서사는 스토리와 담화로 나뉜다. 스토리가 ‘무엇’이라면, 담화는 ‘어떻게’에 해당한다. 따라서 훌륭한 서사를 만들기 위한 한쪽 날개가 담화 즉 ‘어떻게’인 셈이다. 사건과 존재물을 어떻 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 ‘담화’라면 눈에 보이는 요소를 언어적으로 묘사하는 에크 프라시스가 담화에 해당한다 하겠다. 에크프라시스는 서사의 두 요소 중 하나이므 로 스토리텔링의 첫걸음이 에크프라시스라는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서사 이야기 사건 행위

돌발사

존재물 등장인물

배경 담화 서사전달구조-언술표현 목소리, 시점 등

영상 콘텐츠

말과 글 영상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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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8> 서사의 구조(Chatman, 1978에서 재구성)

에크프라시스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미 한국의 중학교 수업과정에 포함되 어 있다. 김기국은 논문에서 한국과 캐나다, 프랑스의 국어교과서에서 에크프라시스 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 지 분석했다. 한국의 에크프라시스 교육이 단편적이고 소홀 하게 다루어지는 데 비해, 캐나다와 프랑스에서는 상대적으로 체계적이고 통합적으 로 고안되었다는 것이다(김기국, 2007).

한국의 중학교 3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 ‘시의 표현’이라는 단원과, 2학기 ‘작가의 개성’이라는 단원에서 에크프라시스를 연습하도록 제안했다. 눈 쌓인 장독대 사진 옆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있다.

“다음의 사진 풍경을 감상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시로 써보자. 풍경에 어울리는 소재를 나열해보자. 위에서 나열한 소재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보자.”

또한 예전 학교 교실에서 따뜻한 난로위에 도시락을 얹어놓고 둘러앉은 모습을 인 형으로 표현한 사진과 제안이 제시되어 있다.

“다음 사진을 보고 사진 속에 나타난 삶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하지만 이와 같은 교육 내용이 이미지 읽기 교육으로 충분하지도 않고 통합되어 있지도 않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반면 캐나다의 국어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이미지 읽기 수업이 제시되어 있다.

“회화, 조각, 데생, 꼴라주, 직물, 태피스트리, 기타 다른 형식의 예술작품이다. 다 음 질문에 답하라.

1. 이런 예술 작업은 나에게 어떻게 느껴지는가?

2. 이 예술 작품이 나에게 어떤 사물, 생각, 감정, 경험 등을 떠올리게 하는가?

3. 이 예술작업은 목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것인가?

4. 그것들은 왜 있으며 무엇을 말하는가?

5. 이 그림은 어떤 이야기를 제안하는가?

6. 나는 그것을 좋아하는가?”

프랑스의 국어교과서에는 캐나다의 것보다 더 폭넓은 이미지 읽기 교육내용이 제시

서사의 발현-영상표현 이미지, 편집 등 되어 있다. 한 데생을 제시하고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제시된다.

“텍스트 관찰하기

1. 이미지는 데생, 사진, 회화 중 무엇인가? 대답을 증명하시오.

2. 날씨가 어떠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3. 이미지에 등장한 다양한 인물들은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가?

4. 어머니와 아이들의 세 가지 다른 태도를 정확히 묘사하시오.

시점 생각하기

5. 화가의 위치는 다음 중 어디인가? 부모앞, 운동장, 거리, 위. 어떻게 그 위치를 알 수 있는가?

6. 당신이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부모 혹은 아이들 중 한 사람이라면 무엇을 보는 가? 이들은 같은 것을 생각하는가?

7. 결국 우리는 부모 아이들 화가 중 어느 쪽에 위치하나?

8. 상뻬는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는가? 어떤 점에서 이 데생이 재미있는가?”

프랑스의 국어교과서는 데생 읽기 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와 텍스트와의 관 계를 익히도록 다양한 질문을 제시한다. 사진 읽기, 글과 그림이 결합된 이야기책을 통한 이미지와 상상력 교육,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을 통한 간 학문적 경험, 오디세 이 신화를 그린 텍스트의 비교를 통한 이미지 읽기, 회화읽기 교육, 헤라클레스와 오이디푸스 신화에 관계된 이미지 읽기, 렘브란트 회화와 영화 십계 포스트 비교, 예술에서의 주제와 기법, 어둠과 빛, 이미지의 형태선, 이미지의 서술적 기법 읽기, 이미지와 문자의 결합이 주는 효과, 책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잡지 표지, 연극의 한 장면, 광고, 만화 등의 이미지와 내용과의 연관성 등 매우 폭이 넓다(김기국, 2007).

프랑스의 이미지 읽기 교육 내용이 흥미로운 것은 단순하게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는 방법에 대해서도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는 서사의 두 가지 줄기인 이야기와 담론을 이미지 분석에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등장인물, 장소, 사건 등으로 구성된다면, 담론은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 즉 시점, 앵글, 화법 등이다(표 8 참 조).

3) 예술의 시작은 에크프라시스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는 미술품에 대한 해설은 필연적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언어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조건에서 시작된다고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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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미술품은 하나의 물체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물체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물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이미지를 갖고 이야기한다. 오브제가 아니라 이미지 로 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미술을 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그 이미지를 극명하게 부각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해왔다. 그런 중에 옛사람들이 곧 잘 채택했던 방법은 하나의 시각적 이미지를 시적 영상으로 대치시켜보는 것이 었다. 오늘날에는 제아무리 뛰어난 문장가라도 엄두를 못내는 이 방법을 조선시 대에는 웬만한 선비라면 제화시(題畵詩) 정도는 우리가 유행가 한 자락 부르는 흥취로 해치웠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미지는 선명하게 부각되고, 확대되고, 심화 되어 침묵의 물체는 생동하는 영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그것은 곧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만남이며,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인 것이다 (유홍준, 1994, 73쪽).

내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처음 접한 것은 1993년 7월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 교수는 왕성하게 일본 문화유산 답사기까지 써내려가고 있다. 그 의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그의 탁월한 언변이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 사학자이며 스토리텔러다. 그의 스토리텔링의 비결 중 하나는 눈에 보이는 미술품 을 독자들이 흡사 직접 눈앞에 보는 것처럼 말과 글로 그리는 능력이다. 그는 에크 프라시스를 직접 실천한 것이며, 에크프라시스만으로도 스토리텔링을 훌륭하게 완 성한 것이다. 유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사찰인 개심사, 무위사, 내소사, 운문사, 부석사를 비유적으로 묘사하는 글로 에크프라시스의 진수를 보여준다.

춘삼월 양지바른 댓돌 위에서 서당 개가 턱을 앞발에 묻고 한가로이 낮잠 자 는 듯한 절은 서산 개심사이다. 한 여름 온 식구가 김매러 간 사이 대청에서 낮 잠 자던 어린애가 잠이 깨어 엄마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듯한 절은 강진 무 위사이다. 늦가을 해질녘 할머니가 툇마루에 안장 반가운 손님이 올 리도 없건 만 산마루 넘어오는 장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듯한 절은 부안 내소사 이다. 한겨울 폭설이 내린 산골 한 아낙네가 솔밭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 굴러가 는 솔방울을 줍고 있는 듯한 절은 청도 운문사이다. 몇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 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은 영풍 부석사이다(유홍준, 1994, 75쪽).

글로 썼는데도 잘 찍은 사진을 본 것처럼 또렷한 이미지가 생겨나지 않는가? 그의 묘사력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으로 더욱 빛난다. 말을 잘하는 사람과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의 차이를 살펴보자. 말을 잘하는 사람은 이야기꾼이라는 칭송 을 듣고,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은 어눌하다거나 재미없다는 평을 받기 쉽다. 말을 잘

못하는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 상대 방도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를 전해온다. 인사가 오고가고, ‘어디 가느냐’ 묻고 답 하고 나면 말이 궁해진다. 하지만 말을 잘하는 사람은 이런 기본적인 인사와 더불 어 묘사의 언어를 더한다. ‘안녕하십니까? 얼굴이 홍시처럼 붉은 것을 보니 뭔가 기 분 좋은 일이 있으시군요?’ 상대방은 이야기꾼의 에크프라시스를 듣고는 자신에게 뭔가 좋은 일이 없었는지 되돌아본다. 그리고는 ‘아, 아침에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물이 부족해 고생한다는 뉴스를 보고, 후원 신청하러 가는 길입니다’라고 답한다.

이야기꾼은 아프리카 아이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이를 돕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 이 얼마나 다양한 지 설명한다. 그리고는 ‘촌각을 다투는 일이니 어서 가시라’고 말 한다. 약간의 묘사 즉 에크프라시스는 이야기가 꺼지지 않고 계속 피어나도록 돕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마치 활활 타는 장작들을 거들어 주면 산소가 공급되어 타 오르는 것처럼 에크프라시스는 대화의 장작불을 활활 타오르게 만든다.

연습문제

1. 유홍준 교수가 표현한 절의 모습을 상기할 때, 다음 사진은 어느 절인지 유추하 고 근거를 제시하라.

2. 다음의 사진은 어떤 느낌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이야기를 제안하는가?

3. 혹시 2번의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사물들은 무엇인가?

4. 식사 후에 마시는 숭늉의 맛을 에크프라시스 해보시오.

5. 다음의 말 그림을 보고 이를 에크프라시스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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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6. 콩 사진을 보고 이를 후각을 중심으로 에크프라시스 하시오.

7. 굴찜을 에크프라시스 하라.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