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희(한서대 교수)
추존 원종의 김포 장릉과
인조의 파주 장릉
Ⅰ.머리말
Ⅱ. 김포 장릉의 역사
Ⅲ. 김포 장릉의 구조
Ⅳ. 파주 장릉의 건물 비교
Ⅴ. 파주 장릉의 석물 비교
Ⅵ. 맺음말
참고문헌
Ⅰ.머리말
조선왕릉은 한 왕조의 왕과 왕비의 무덤을 보존 한 유적지임. 왕릉은 선조의 넋을 보호하고 능 묘의 훼손을 막는 역할을 함.
김포 장릉은 추존왕 원종과 그의 부인인 인헌왕 후 구씨의 무덤이다. 파주 장릉은 원종의 아들 인 인조와 그의 비인 인렬왕후 한씨의 무덤임.
이 시간에는 김포 장릉의 역사와 구조, 그와 대 비되는 파주 장릉을 비교해보고자 함.
Ⅱ. 김포 장릉의 역사
김포 장릉은 인조의 부모로서 인조 즉위 후 추존 원종과 그의 부인인 인 헌왕후 구씨의 무덤임.
원종은 조선중기의 추존왕으로, 선조의 다섯째 아들임. 41세의 나이로 승 하한 후 경기 양주 곡촌리에 묻어졌음.
인조가 즉위했을 때 현재 장소인 김포로 옮기며 흥경원이라는 칭호를 붙 였음. 하지만 후에 원종의 칭호와 함께 장릉이라는 이름을 붙였음.
원종 장릉(章陵)의 역사
연도 재위 사료(史料)
1632 인조10년 대원군과 대원부인의 시호를 올리고 묘호를 논의하다
1632 인조10년 장릉에 석물을 옮길 때 민폐가 없도록 도감에 경계하다
1634 인조12년 장릉에 세울 석조물에 대해 논의하다
1637 인조15년 장릉에 불이 나다.
인조 장릉(張陵)의 역사
연도 재위 사료(史料)
1649 효종6년 인조의 시호와 능호와 묘호를 정하다.
1649 효종6년 인조의 장례를 지내다.
1725 영조1년 장릉에 불이 나서 능관을 추고하다.
1731 영조7년 파주의 인조의 능을 옮기는 문제를 의논하다.
1731 영조7년 조문명 등을 보내 장릉을 봉심하게 하고, 드디어 능을 옮겨 모실 계획을 정 하다.
1731 영조7년 축시에 장릉의 천릉을 행하다
원종 장릉 인조 장릉
Ⅲ. 김포 장릉
김포 장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 쌍릉의 구조임.
병풍석이나 난간석은 설치하지 않고 다른 왕릉의 전례를 따라 봉분 아래 로 얕은 보호석만 둘렀음.
▲ 쌍릉구조의 장릉
Ⅲ. 김포 장릉
능원 밑에 정자각, 비각, 수복방, 홍살문, 재실이 있음.
▲ 정자각 ▲ 비각 ▲ 홍살문
Ⅲ. 김포 장릉
-비석에는 영조 29년(1753)에 세운 ‘조선국원종대 왕장릉 인헌왕후부좌(朝鮮國元宗大王章陵 仁獻王 后부左)’라고 새겨져 있음
-비각에는 비석이 배치되어 있음.
▲ 장릉 비각
Ⅲ. 김포 장릉
-각 능 앞에 상석이 놓여 있고, 상석 좌우로 망주석 1쌍이 있음.
-봉분 주위로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2쌍을 교대로 배치하였음.
▲ 우측 망주석 ▲ 좌측 망주석
▲ 우측 석양상
▲ 좌측 석양상
▲ 우측 석호상
▲ 좌측 석호상
Ⅳ. 파주 장릉
파주 장릉은 원종의 아들인 인조와 그의 비 인렬왕후 한씨의 무덤임.
파주 장릉은 왕과 왕후가 합장된 형태의 무덤임.
장릉은 원래 인조가 왕위에 있을 때 정한 파주 운천리에 있었으나, 후 에 뱀과 전갈이 석물 틈에 집을 짓고 있어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임.
▲ 합장된 형태의 장릉
Ⅳ. 파주 장릉
파주 장릉의 건물에는 정자각, 수복방, 재실 등이 있음.
▲ 수복방 ▲ 재실
Ⅴ. 파주 장릉
파주 장릉은 전통적인 십이지신상이나 구름무늬가 아닌 모란무늬와 연꽃무늬가 새겨진 병풍석이 무덤을 두르고 있는데, 특히 중앙에 설치되어 있는 돌로 된 등인 장명등 에도 모란무늬와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음.
▲ 연꽃과 모란꽃 문양의 병풍석
Ⅴ. 파주 장릉
-파주 장릉은 왕릉을 현재의 위치로 옮길 때에, 기존의 능에 있던 것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크기가 맞지 않는 석물은 다시 만들어야 했음.
-그 결과, 인조 시대의 석물과 영조 시대의 석물, 즉 17세기와 18세기 왕릉의 석물을 동시에 볼 수 있음.
▲ 파주 장릉의 석인과 석주
정자각
• 추존 원종 김포 장릉 • 인조 파주 장릉
봉분
• 추존 원종 장릉 • 인조 장릉
장명등
• 추존 원종 장릉 • 인조 장릉
무인석
• 추존 원종 장릉 • 인조장릉
문인석
• 추존 원종 장릉 • 인조장릉
조선왕릉 중 인조가 자신의 부모를 왕과 왕비로 올린 추존 원종과 그의 부인의 무 덤인 김포 장릉, 인조와 그의 비 인렬왕후의 무덤을 영조대에 천릉하여 조성한 파 주 장릉에 대해 알아보았음.
Ⅵ. 맺음말
김포 장릉은 17세기 초 쌍릉의 형태로 보호석만 둘러진 것이 특 징이었고, 파주 장릉은 합장릉의 형태로 석물에서는 연꽃이나 모 란꽃 무늬를 비롯하여 17세기와 18세기의 양식 경향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음.
• 김포장릉은 원종과 인헌왕후의 추존 왕릉이다. 능상은 보통 왕릉만큼 컸지만 전 체적인 석물 등은 조각적 품격이 떨어져 왕릉보다 떨어지는 원(園)의 형식이 많 이 엿보인다.
• 이처럼 원에서 왕릉으로 추존 되어진 김포 장릉과 원래의 왕릉으로 조성된 파주 장릉을 비교해보았다. 정자각 크기부터 차이가 있었고 석물은 추가적으로 배치하 여 기존 왕릉과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전통 왕릉의 기백과 숭고함을 찾 기에는 뭔가 부족한 면이 있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