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민수기 13:25-33절에 대한 김승호교수 강해설교 전문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민수기 13:25-33절에 대한 김승호교수 강해설교 전문"

Copied!
12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2019년

설교이론과 실제 제 10주 강의

설교실습

(1)

(2)

민수기 13:25-33절에 대한 김승호교수 강해설교 전문

중심진리: 가나안 땅 정탐 사건은 믿음의 삶은 세심하게 준비하는 것, 하나님의 안목으 로 보는 것, 긍정적인 자세를 갖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중심사상: 믿음의 삶은 세심하게 준비하는 것,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는 것, 긍정적인 자 세로 살아가는 것이다.

설교제목: 믿음으로 산다는 것

민수기 36장 전체내용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방황(wander) 이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 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불신앙은 방황하게 만든다. 믿음이 없는 개인, 가정, 사회는 방황한다. 믿음은 삶의 방황 을 끝나게 해준다.

민수기 13장의 사건으로 뼈아픈 40 년간 광야생활에 들어간다. 가데스 바네아는 이스 라엘 백성에게 가장 기억하기 싫은 장소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 에 들어가기 까지 걸린기간이 40년이었고, 가데스 바네아 사건으로 38년의 광야 생활을 하게 된다(신2:14).

12명에게 가나안 땅을 살핀 후 돌아올 때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도록 했다. 이것만 보 더라도 군사적 정찰의 목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탐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정찰하다” 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 엘 백성에게 주시려고 하는 땅이 얼마나 좋은지/ 가나안 땅의 풍요를 미리 맛보고/눈으 로 보여주고자 하시려고/ 미리 가서보고 기대하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가나안 땅은 이스 라엘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다.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의 비옥함을 눈으로 직접 관찰하게 된다.

(3)

10 정탐꾼의 보고를 따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겠 다고 한 약속을 믿지하니한 댓가로 38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였고 애굽에서 나온 20세 이상의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게 된다. 애굽에서 나온 자들 가운데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약속된 가나땅을 밟게 된다.

오늘 본문의 가나안 땅 정탐 사건은 믿음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세 가지로 교훈한다.

애굽을 빠져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13개월 쯤 되었을 때(애굽을 빠져나온 때가 1월15 일(민33:3), 3개월을 행진하여 시내광야/시내산에 도착(출19:1). 그곳에 약 11개월을 머 문 후, 출애굽 둘째 되던 해 제2년 2월 20일 출발한다. 민10:11. 11일 행진하여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한다. 신1:1).

가나안땅을 목전에 둔 남쪽에 위치한 (접경. 130km/4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거리) 가 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모세는하나님의 명령을 좇아서/본문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신1:22 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가나안 땅 정탐을 요청했다. 하나님은 그들 의 요구를 허락하셨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선물” 로 주신 땅이다. 아직 들어가지 않았 지만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 이다.

(4)

38년의 광야에서 방황한 사건을 통해 “믿음으로 산다는 것” 은 어떻게 사는 것인지?에 대해 세가지로 교훈을 얻고자 한다.

첫째,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고백하며 살아가는 삶” 이다.

13:20절: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7월에 정탐꾼을 파견) 12 정탐꾼이 40일동안(25절) 동 일한 시간/ 동일한 땅을 정탐했다. 그들이 돌아와서 한 보고내용도 동일했다.

보고내용은 두 가지다. 땅이 비옥하다는 것/그 땅 거민들이 강대하다는 것이다.

1)그 땅은 아름다운 땅이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비옥한 땅. 27절) 한마디로 살기 좋은 땅!). 포도 한송이가 달린 가지를 두 사람이 막대기에 메고 왔고, 석류와 무화과를 가져왔다.

2) 성읍들은 심히 크고 견고하다.

3) 그 땅에 거민들은 네피림 후손(키가 장대한 몸집이 큰 거인.2 미터-2미터70센티)인 아낙자손(긴목을 가진자/ 거인족. 전쟁에 능한 족속) 의 후손의 신장이 장대한 거인들이 었다.

(5)

정탐꾼들의 보고내용은 같았지만/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를 놓고는 두 패로 갈렸다.

12 명의 보고 모두 사실이었지만 정탐한 내용에 근거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를 놓 고는 두 편으로 나눠졌다.

정탐꾼들의 보고가 사실보고에서 사실보도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바뀌고 있다.(해석.

평가가 중요하다!). 사람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환경을 만나면 환경에 정복 당 할 수 있다. 그래서 용기를 잃고, 두려움을 갖고 되고, 판단력을 잃고 좌왕 우왕한다. 운동경기 에서 선수들이 평정심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흔들 릴 때 감독이나 코치는 time out 을 신 청하고 선수들을 만나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환경이나 문제에 매달릴 때 좌로 우로 흔들릴 수 있다. 환경의 희 생물이 되기 쉽다. “그 길이 아니야” “그 길로 가면 안돼” “일어나” 주님은 말씀하신다(

코치 처럼!)

여호수와와 갈렙 두 사람의 고백속에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 신 앙(오직 하나님/오직 예수 신앙!)을 가졌다. 현실적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와 갈 렙 두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하나님이 우리를 기 뻐하시면“(14:6-9) 이란 고백한 반면 10명은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10명은 하나님의 약 속/하나님을 잊고 그들의 입에서 낙심, 원망, 불평, 두려움을 쏟아냈다.

(6)

10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 보다 강 하니라”(13:31).

반면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막히거나 서투른 데가 없이) 이 기리라”(30절).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리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14:9).

14장 7-9절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다만 여호와를 거역하 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 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14:7-9절).

여호수와와 갈렙 장애물/어려운 현실(아낙자손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도 불구하고 하 나님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이란 고백 한다.

반면 10명은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그들의 입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할 수 없다’ ‘우 리는 메뚜기다’ 는 불안/불평/두려움을 쏟아 내었다.

불신앙은 환경과 장애물에 초점을 맞추고 믿음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의 지 배를 받는다.

(7)

10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 보다 강 하니라”고 말한다(13절). 33절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아낙 자손으 L 키와 무시무시한 성격은 유명했다. 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 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우리” 가 보았다. “우리 스스로 보기에도”.

“그들이 보기에도”)라는 말은 그들 믿음으로 사는 삶은, 사실을 사실 (있는 그대로) 대로 보는 살지 않는다. 열 명의 정탐군의 보고는 사실에 근거하여 틀림이 없는 정확한 보고였 다 (27-29 절). 그들의 결정적 실수는 하나님을 잊었다는데 있다.이 하나님의 시각을 갖 지 못하고 인간적인 시각에 머물러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말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 하나님 의식을 갖고 사는 삶“ 이 다. 하나님은 계시며 어느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 보고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삶이다.

우리(내)속에 아낙자손이 있을 수 있다. 아낙자손과 비교해서 자신들을 늘 메뚜기 떼와 같다고 생각했다. 아낙자손은 장애물/트라우마이다. 우리 안에 있는 아낙자손과 같은 두 려움, 열등감, 피해 의식등과 같은 영적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

(8)

둘째,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소망/희망을 전이시키며 사는 삶” 이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사실을 사실그대로 보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는 사실에 근거하여 하나도 틀림이 없는 정확한 보고였다(27-29 절). 이들의 결정적 실수는 하나님을 계산(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갈렙과 여호수아는 열 명의 정탐꾼과 달리 사실을 사실대로만 보지 않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많은 현실적인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했습니 다. 두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이라고 고백 한 반면 열 사람은 하나님을 잊어버려 불안과 공포가 역역했고 그들의 입에서는 장애물, 두려움, 자신들을 메뚜기에 비유하며 무능력을 쏟아 내었던 것입니다.

현상을 현상대로, 사실을 사실대로만 보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취할 자세가 아닙니다 .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대단히 지성적이고 이성적이지만 믿음으로 해 석할 능력을 갖지 못하는 결정적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불신앙의 사람은 사실을 언제나 사실로만 보아 낙심하거나, 불평하며 주저앉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불안/두려워/염려/근심하는 사람을 안심시키고 소망과 자신감을 갖게 한다.사람들이 동요하고, 불안을 전염시키고, 안된다, 어렵다 할 때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 , 소망, 힘, 격려을 준다.

(9)

믿음의 삶은 ‘현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물이 있고 어려운 문제들이 있음을 인 정하지만 환경에 지배받지 않는다. 도우실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에 초점을 맞춘다.

믿음의 사람의 특징은 낙관적이다. 동요하고/불안해/낙심 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며 하 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믿음의 사람은 불안해 하는 사람은 안돈(

안심. 안정) 시키며 소망을 전염시킨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 영 향을 준다. 불안과 불평을 조성하는 사람이 아니다. 불안, 절망, 좌절, 원망은 전염된다.

30절 “갈렙(유다지파의 대표) 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겼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7절)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 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9절).

장애물과 어려운 상황에도 그들은 낙관적이었으며 꿈을 줄 수 있었다. 장애물로 인해 가나안 땅 입성이 쉽지만 않지만 갈렙과 여호수는 그 땅의 거민 보다는 그 땅 성읍들의 견고함 보다는(사람, 장애물, 환경에 지배되지 않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다. 그 결과 낙 관적이 될 수 있었다.

반면 10명은 “비관적인 사람” “낙심시키는 사람들” “악평하는 사람들” 이었다. 하나님 이 아닌 장애물에 초점을 맞추어 원망하며 백성들을 불안하게 했다. “우리는 능히 올라 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31절) “탐지한 땅을 악평하 였다”(32절).

(10)

셋째,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 편에 서는 창조적 소수’ 가 되는 삶이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10명의 말을 좇았다. 2명 보다 10명이 하는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숫자의 논리의 위험성이다. 그리고는 자신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모세와 아 론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했다.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 옳은 길이 아닐 수 있다. 10 명의 정탐꾼과는 달리 갈렙이나 여 호수아는 불안해하는 이스라엘백성을 안심 (안돈) 시킬 수 있는 내적 (영적) 능력을 갖고 있었다. 믿음의 사람은 앞길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평안함과 확신이 있다. 시험문제를 쳐다는 선생님과 학생의 마음에는 차이 가 있다. 선생님은 답을 알고 있기에 마음이 편안하지만 답을 모르는 학생은 문제를 쳐다 보면서 불안하다.

불신앙은 두려움과 불안감을 갖게 하지만 믿음은 확신과 평안을 갖게 하여 불안과 의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위로하며 도울 수 있도록 해 준다.

30절에서 갈렙의 고백처럼 결국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고, 가나안 땅 정복 후 이스라엘 백성은 아낙 자손들을 가나안 땅에서 쫓아 낸다(수14“6-15, 15:13-14).

(11)

지금도 우리는 다수의 의견, 다수의 생각, 다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 맞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더 옳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대중신앙/

여론신앙 이라고 부른다. 대중신앙/여론신앙이 아닌 예수신앙/좁은 길 신앙/의 길을 가 자!

우리는 창조적 소수가 되어야 한다. 주님과 함께 하는/ 주님편에 선 사람은 결코 소수 가 아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열하6:16). 모 세는 애굽이 줄 영광과 쾌락을 거부했다(히11:25).

믿음의 사람은 불안해 하는 사람은 안돈(안심. 안정) 시키며 소망을 전염시킨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 영향을 준다. 불안과 불평을 조성하는 사람이 아니 다. 불안, 절망, 좌절, 원망은 전염된다. 백성들에게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갈렙은 하 나님이 하신 약속을 상기시켰다.

가나안 땅에 놓인 장애물과 어려운 상황에도 그들은 낙관적이었으며 꿈을 줄 수 있었다 . 믿음의 삶은 ‘현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물이 있고 어려운 문제들이 있음을 인 정하지만 환경에 지배받지 않는다. 도우실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에 초점을 맞춘다.

10 사람들이 쏟아내는 두려움과 불평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급속히 전염되어갔다.

“모세와 아론과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게 했다”. 불신앙의 사람들은 주변의 사람들을 낙심과 절망과 불안에 빠드린다.

불신앙의 사람은 불안케 하며 낙심케 한다. 하나님을 계산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잊어 버린다. 장애물과 환경에 지배당한다.

(12)

결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 편에 서는 창조적 소수” 가 되는 삶이다.

갈렙은 수에 있어 말렸다. 10명의 정탐꾼들과 갈렙과 여호수아 사이에는 하나님의 약 속과 능력을 믿는 신앙의 차이가 있었다. 지금껏 능력의 하나님을 수 차례 경험했으면서 도 지금 오로지 눈앞에 있는 가나안의 거민들만 보며 두려움이 사로 잡혔다.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 옳은 길이 아닐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10명의 말을 좇았다. 2명 보다 10명이 하는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숫자의 논리의 위험성이다.

그리고는 자신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모세와 아론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했다.

오늘 우리도 다수의 의견, 다수의 생각, 다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 맞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더 옳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 대중신앙/여론신앙 의 위험성을 볼 수 있다.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