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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 점을 놓치면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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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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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법의 사회적 기초 : 살아있는 법?

[철학적 급진파의 등장 배경]

지금까지 우리는 근대적인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진행되는 19세기 서구의 상 황을 전제로 법전화 운동과 이에 맞서는 역사법학파의 대립을 이야기했고, 어떤 의미 에서 그 대립이 정반대로 구성되었던 커먼로 전통의 흐름을 이야기 했습니다. 여기서 역사법학파나 커먼로 전통은 서양 사람들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이고 도덕 적인 전제들을 보존하려는 의도도 어느 정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의해 주었으 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그에 비해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유산들과 완전히 절연하 고 모더니티에 입각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급진적인 법사상가를 이제 소개할 참 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이미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휴머니즘을 기 초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급진적 무신론자들에 대하여 배운 적이 있 을 것입니다. 미터법을 도입하고, 10요일제를 시행하고, 행정구역을 거리기준으로 하 루 아침에 바꾸고, 만약 그것이 잘 돌아가지 않으면, 곧바로 또 바꾸고, 이러한 방향 자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면 길로틴으로 보내 사형에 처하고 하던, 급진적 이성주 의자들 말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내가 말하려는 급진적인 법사상가들과는 궤를 달리 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인본주의라는 새로운 종교를 창안하고 그것을 숭배한 ‘무신론’이라는 종교광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이성숭배 또는 이성주의적 역사숭배의 흐름은 서양 근대의 사상사에 정말 그 깊이를 알 수 없 을 만큼 뿌리가 박혀 있습니다. 조셉 슘페터가 쓴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라 는 책에 보면, 칼 마르크스를 소개하는 장은 첫 절을 ‘예언자 마르크스’라고 쓰고 있 는데, 이는 바로 이와 같은 이성숭배 또는 이성주의적 역사숭배가 마르크스주의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점을 놓치면 안 될 것입니다.

내가 말하려는 급진적인 법사상가는 이러한 이성숭배 또는 이성주의적 역사 숭배의 느낌을 민감하게 알아채고, 그에 대하여 쓰디쓴 냉소를 보내는 인물입니다. 그 는 바로 제레미 벤담입니다. 영국의 런던에서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제레미 벤담의 사상 운동이 진행된 과정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일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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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따르는 사람들을 벤다마이트(Benthamites)라고 하는데, 이들은 매일 저녁 그들 중 지도자였던 제임스 밀의 집에 모여 토론회를 개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임 에는 제임스 밀의 아들인 존 스튜어트 밀이 어릴 때부터 함께 앉아 있었다고 하지요.

일종의 영재교육인 셈인데, 정작 존 스튜어트 밀 자신은 어릴 때부터 철학자들의 논 변에 눌려서 그랬는지, 자신의 지적 능력이 남보다 아주 못하다는 열등감에 시달렸다 고 하네요. 대단한 아이러니이긴 한데, 어쨌든 이렇게 함께 모여 토론하는 방식으로 공부해 가는 것은 나중에 벤담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일세를 풍미하게 되는 자유주 의자들의 가장 큰 특징이 됩니다. 19세기야 말로 이들의 시대이고, 또 그들의 자유주 의의 정치적 표현인 의회지상주의와 경제적 표현인 시장방임주의가 클라이맥스를 누 린 시기이기도 합니다. 거기 비하면 20세기는 아무래도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일대 실 험이 시도되었다가 실패한 시대라고 봐야겠지요.

[벤담주의와 ‘말’]

당시 영국은 서구 세계의 지도적 국가였는데, 커먼로 전통에 따라 제대로 된 법전 없이 국가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의회파의 일부를 차지한 법 률가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로마법의 영향을 받은 법전화 운동을 전 면적으로 저지하는 흐름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7세기의 시민혁명이 끝난 뒤 의회를 독점하고 두 세대 쯤 지나니까, 의회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의 연결과 부패가 고개를 들게 됩니다. 이게 한 1740-60년경의 이야기인데, 의회를 과점한 귀족과 상인 들이 해군력을 앞세워 식민지 경영과 해외 무역을 통해 거대한 부를 쌓아가는 중상주 의적 경제발전의 시대에는 어디에나 나타나는 폐해가 노골화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 겠지요.

이 시기에 영국을 부패한 휘그당의 일당 독재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개혁 의 논리가 여기저기서 제시되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시민적 휴머니즘(civic humanism)이라고도 하고 고전적 공화주의(classical republicanism)라고도 하는 사 상인데, 이것은 17세기 시민혁명의 토대를 이루었던 혼합정체라는 권력의 견제와 균 형이 휘그당의 일당 독재를 통해 깨졌기 때문에, 자영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시민들 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하여 그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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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베일린 교수가 쓴 <미국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이라는 책에 보면, 고전적 공화주의야말로 당시 영국은 물론 영국의 변방이었던 아메리카 식민지의 개혁적 지식 인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던 사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벤담은 이와 같은 시민적 휴머니즘이나 고전적 공화주의 역시 합리적 이지 못한 논리로 치부해버리고 맙니다. 왜냐하면 고전적 공화주의조차도 벤담이 보 기에는 역사의 자의적 해석에 입각한 보수적인 논리였기 때문입니다. 벤담의 도전은 그렇게 증명할 수 없는 역사해석 운운하는 소리들을 다 집어 치우고, 내세우는 논변 이 왜 합리적인지를 한 번 ‘말’로 해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벤담식의 자유주의는 명 제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말’이 중요합니다. 벤담의 논리에 따르면, 종교적, 도덕적, 역사적 명제들을 모두가 공유하는 것으로 전제한 뒤, 그것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예 논증의 마당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나오는 철학적 보수주의자들은 처음부터

‘말’의 논리를 거스르는, 반칙을 범하는 사람들입니다. 달리 말해, 이것은 ‘역사’란 언 제나 가진 자들, 보수파들에 의하여 동원된다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보수파들은 항상 말을 믿지 않고, 실력으로 성과를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요 구는 언제나 기득권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과를 낼 수 있는 실력은 항상 비대칭적으로 기득권자들에게 더 많으니까 말입니다.

벤담과 벤다마이트들을 철학적 급진파(Philosophical Radicals)로 부르는데, 이처럼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 명칭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알 수 있게 만 드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더라도 한 가지 문제는 해결되 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합리성의 논증을 어떤 척도에 의하여 판단할 것인지는 정해 놓 고 가야 하니까요. 물론 이 문제 역시 ‘말’로 할 수밖에 없지만 말입니다. 벤담은 이 문제를 너무도 간명하게 풀어 버립니다. 모든 형이상학적 주장들을 물리치고 아주 심 플하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더 줄여서 ‘효용’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니 까요. 철학자 급진파는 철학적 단순파이기도 한 셈입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유틸리티(Utility). 흔히 유틸리티를 쾌락이라고도 번역하고 효용이라고 번역하 기도 합니다만, 우리말로는 ‘쓸모’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실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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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하거나 조직하거나 재구성하는데 쓸모가 있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다. 이 말이지 요. 그러면 그 다음엔 곧바로 쓸모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반론이 나오겠지요. 여기 에 대해서는 간단한 재반론이 있습니다. 그럼 당신은 평가 안하냐? 선택한다는 것은 평가한단 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때 평가의 기준이 무엇인가? 예를 들어 점심 메 뉴를 고민한다고 칩시다. 평가를 하고 메뉴를 선택하는 것과 그냥 내키는 대로 시켜 먹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 않습니까? 누구든 평가를 할 때는 암암리에라도 기준을 만 듭니다. 물론 그 기준이 잘못 되었을 때도 있지요. 하지만 기준이 잘못된 것은 기준 이 없거나 그래서 평가를 하지 않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벤담의 주장은 한 마디로 판단의 기준을 합리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자는 것 인데, 그때 그러한 노력을 이끄는 명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요. 그가 보기에 신법이든, 관습이든, 판례든 뭐든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 운 규범적 전제들을 판단의 전제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은 판단의 기준을 합리화하려 는 노력을 그만두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거든요. 그러므로 벤담의 철학적 급진주의는 효용의 논리로 합리성을 극대화하려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기원을 따져 올라가면 이런 식의 어프로치는 토마스 홉스의 철학에서 이미 체계화된 것이고, 벤담 의 시대 이후에는 자유주의자들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발전되었던 것입니다. 19세기 중반 경제학자들이 한계 효용의 논리를 가지고 소위 신고전파 경제학을 시작한 이래, 벤담의 자유주의는 지금까지도 앵글로-아메리칸 세계의 가장 두드러지는 철학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경제학 입문을 배우면서 많은 학생들이 합리성의 경연에 매혹당하는 것은 2백 년 전 영국 런던의 제임스 밀의 집에서 열렸던 토론 모임에서 벤담의 분석 과 논변에 참가자들이 설득 당했던 것의 재현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 벤담주의의 한계가 노출됩니다. 벤담이 법이론에 근 본적으로 공헌한 지점은 동시에 그의 한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합리성의 경연에 나서는 것이야 권장할만한 일이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 마다 능력의 차이도 있고, 취향의 차이도 있고, 관심의 차이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합 리성의 경연을 그만두거나 아예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그런 선택을 비합리적이 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합리성의 경연을 그만두더라도 자신의 능력에 맞 게, 취향과 관심에 따라 그 나름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도 있 겠고, 또 그런 사람들이 더욱 많다면 그 자체가 이러한 다른 종류의 합리성을 증명하 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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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상식]

벤담의 바로 앞 시대에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였던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습관 이 가지는 합리성을 연구하면서, 좁은 의미의 이성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깊은 의 미의 장기적 합리성이 사람들의 감성과 습관과 관습에 축적되고 있음을 통찰했습니 다. 데이비드 흄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비조라고 할 만한 인물인데, 그의 사상은 자신의 여러 저작 뿐만 아니라 친구였던 아담 스미스의 첫 번째 책인 도덕감정론에 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한 마디로 인간의 감정과 습관이 가지고 있는 실체적 합리성은 사회적 삶의 기초를 이루는 도덕 감정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는 것 입니다. 벤담과는 논증이 정반대 방향인 셈이지요.

데이비드 흄이 보기에 습관이 논리에 비해서 합리적이지 않은 경향을 가진다 는 것은 검증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습관이 훨씬 합리적일 수도 있지요. 왜냐? 논 리라는 것이 추상적으로 합리적이라면, 습관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합리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습관은 어떤 선택에서 이루어지는데, 그 선택은 항상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리로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합리적인 것이라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 봅시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이 흥정을 할 때 어떤 사람에게는 5 천원으로 팔고 어떤 사람한테는 2만원으로 팔고, 그렇게 합니다. 추상 적으로 보면 이는 정찰 가격 제도에 비해서 합리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상인의 입장에서는 이것보다 더 합리적인 것은 없습니다. 고객 한 명 한 명마다 다르게 가격 을 세세하게 설정하는 구체적 합리성을 전제하는 것이니까요. 떨이의 논리도 마찬가 지에요. 싼 가격에 다 치우고 가는 것은 사실 상인이 집에 일찍 가고 싶기 때문이에 요. 그래서 떨이로 파는 것처럼 하면서 사실 장사하는 사람은 집에 가고 싶은 효용을 사는 것이지요. 그 상황에서 그 상인의 입장이 되어보면 그처럼 합리적인 선택이 또 어디 있습니까?

나아가 벤담의 시대에는 원래 휘그당의 지도자 중 하나였던 에드먼드 버크의 영도에 의하여 이처럼 사람들의 감성과 습관과 관습, 즉 한마디로 역사에 축적된 깊 은 의미의 장기적 합리성이 철학적 보수주의(Philosophical Conservatism)로 정돈되 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일랜드에서 온 이 또 다른 천재는 자유주의자이긴 한데 벤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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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의 논리에 입각한 자유주의자들이 아니고 벤담주의자들이 덜떨어진 것으로 치부한

‘역사’를 중요하게 보는 자유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이 보기에는 종교적, 도덕적, 역사적 명제들이 그냥 형성된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 어찌 보면 벤담이 딛고 있는 것보다 한 결 깊은 차원에서 결코 어떤 한 사람의 천재에 의해 좌우될 수 없는 형태로 깊은 의 미의 합리성이 체현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요사이 현대의 철학자들 가운데는 합리성(rationality)과 합당성(reasonableness)을 구분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철학적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은 후자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물론 합당 성의 범주마저 넘어서서 역사 그 자체에 대한 숭배나 찬양으로 나아가면 큰 문제지만 말입니다.

한 가지 더 짚어 둘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동일한 시기 바다 건너 아메리 카 식민지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흥미롭게도 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독립혁명이 소위

‘상식’ 철학에 의하여 주도되었는데, 이는 영국에 비하여 신세계에서는 역사라고 부를 만한 실체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벤담주의자들을 포함한 영국의 기득권층에게 맞설 수 있는 보다 기층적인 철학이 정치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점 에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새로운 국가의 수립을 목적하는 한, 아메리카 식민지에 는 버크적 보수주의가 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분위기는 형성되기 어려웠다고 보아 야겠지요. 그래서 미합중국은 상식의 합리성을 믿는 평등주의적 이해가 혁명의 논리 로 발전한 매우 특이한 발전 경로를 거치게 됩니다. 이처럼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유 럽의 논리를 뒤집고 비틀어 붙이는 데서 출발하는 매우 특이한 나라이고, 그래서 ‘미 국 예외주의’라는 용어마저 있을 정도입니다. 이 이야기는 국제어문학부에 열리는 미 국정치론 등에서 다룰 테니까 이 정도로 하기로 하고, 더 궁금한 사람들은 ‘미국에는 봉건주의가 없었다!’는 루이스 하츠의 명제를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벤담 vs 버크]

어쨌든 벤담 vs 버크, 공리주의 vs 역사주의, 휘그 vs 토리의 이와 같은 대 립은 이후 영국의 역사를 지배하는 기본축이 됩니다. 17세기의 시민혁명을 이룬 세력 이 이제 둘로 나누어져서 의회를 중심으로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는 셈입니다. 19세기 중반 글래드스턴 vs 디즈레일리의 구도로 전개되는 빅토리아 시대의 대영제국은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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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이해해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말하는 데, 영국에서 노예제도를 없앤 윌리엄 윌버포스의 예를 여러분 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자(Why Not Change the World)의 구호의 정치적 성공 사례로 대한민국의 기독교인들이 늘 첫 손에 꼽는 인물이지요. 한동대학 교 학생들은 이 사례를 단지 기독교인의 신앙적 실천의 관점에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벤담주의자들이 혹독하게 비판했던 당시의 지배층은 의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인-정치인-군인의 기득권연합을 통하여 중상주의적 국가발전을 이루려던 사람들이 고, 이들은 보호무역주의를 불변의 전제로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벤담주 의자들은 자유무역을 내세웠지요. 데이비드 리카아도가 체계화한 자유무역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국가가 비교우위론에 입각하여 자유무역에 종사하면 개개의 국가는 물 론이려니와 세계 전체의 부도 획기적으로 증대될 수 있으니까요. 윌버포스의 노예무 역의 폐지 주장은 물론 그 저변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전제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와 함께 자유무역주의의 주류화라는 시대적 흐름에도 긴밀하게 연계된 일이었음을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벤담과 버크는 모두 당시 유럽 대륙을 휩쓸고 있었던 프랑스 대 혁명의 무신론적 급진주의에 반대했는데, 그 근거가 정반대였습니다. 벤담이나 버크나 프랑스 대혁명의 유사종교적 인본주의의 광기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인데, 그 근 거를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가져오고, 버크는 축적된 역사의 힘을 믿는 보수주의의 관점에서 가져옵니다. 벤담은 프랑스 대혁명의 광기를 유치하다고 일소에 부치고 맙니다만, 이에 비해서 버크의 비판은 심금을 울리 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의 비판에는 역사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 뭐든지 고치면 된 다는 논리는 죽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가볍게 여기는 나 쁜 사람들이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기 때문이지요. 자유주의 내부의 벤담 vs 버크의 대립은 이처럼 인간성에 대한 깊은 낙관과 깊은 비관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립이라고 도 볼 여지가 있습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늘 왔다 갔다 하지요.

좀 다른 이야기인데, 여러분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고 싶다면 단연 프 랑스 대혁명사를 읽어보기 바랍니다. 스페인 내전이나 한국 전쟁, 미국의 남북전쟁을 다른 책들도 좋습니다만, 일단 프랑스 대혁명사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노명식 교수님이 쓰신 <프랑스 대혁명에서 빠리 꼬뮌까지>(까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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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시작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프랑스 대혁명사를 읽으면 “아, 인간이라는 게 참 무서운 존재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정말 감격적으로 진행되던 프 랑스 대혁명사가 감격으로 가다가 어떤 순간에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아는 광 기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다음에는 지독한 국가주의가 따라 나오니까요. 빅토르 위고 의 <레미제라블>은 이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다룬 소설입니다. 나는 레미제라블 뮤지 컬을 볼 때마다 늘 감격의 눈물을 흘리곤 하는데, 여러분은 어떤지요. 프랑스 대혁명 의 역사를 읽고 보면, 더 이해의 심도가 깊어질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벤담 vs 버크’의 이 대립이 영국의 대학교육에도 영향을 아주 커다란 미쳤다는 점인데, 그 계기는 벤다마이트들이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고 고 전 교육을 통해 보수주의적 세계관을 지속적으로 유포해 온 옥스브리지(옥스포드 + 케임브리지) 대학에 맞서 벤담의 철학에 입각한 새로운 대학을 시작한 데서 마련되었 습니다. 이 새로운 대학이 바로 런던 대학입니다. 지금도 런던 대학의 대학 본부에 가면 방부처리가 된 벤담의 시신이 앉은 채로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낭 여행으로 런던을 방문할 사람들은 언제든 한 번 찾아가 보기 바랍니다.

[실증의 이념]

다시 법사회학, 또는 법사회과학이 형성되는 기원을 추적하려는 우리의 출발 점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계속해 봅시다. 벤담의 새로운 철학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나름의 합리적 기준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개척해 나가려는, 그러니까 이를테면 자유의 적극적 발현으로 볼 여지도 분명히 있습니다. 서구의 근대 법사상사에서 특별한 것은 과거에는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던 ‘입법’(legislation)의 사 상이 인간의 자유의 실현하는 방식으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인데, 벤담으로 보자면 그와 같은 입법의 원칙이 제시된다는 측면이 덧붙여지는 셈입니다. 그 이전까지 법이 론은 법현상으로 주장되는 것들 중에서 진정한 법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기준 을 제시하는 것을 주된 과제로 삼았다면, 벤담은 더욱 적극적으로 법을 만들어내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니까요. 여기서 벤담은 단순한 법의 이론가가 아니라 입법의 이 론가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대체로 벤담에 대한 오해는 전통적인 소극적 법이론 의 고정 관념을 가지고 벤담의 철학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으로 보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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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그렇지만 벤담의 철학적 급진주의는 나름의 독자적인 전개과정을 거쳤지만, 큰 흐름으로 보자면 소위 과학적 실증주의가 역사와 사회의 연구에 영향을 끼쳐서 사 회과학을 형성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를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그처럼 입법의 이론가로 벤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현상이라 고 주장되는 것들 중에서 진정한 법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 부 분은 주의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적, 도덕적, 역사적 명제들의 특징은 경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벤담이 주장하는 합리성의 범주는 일단 사회적 삶의 범위 내에서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서구의 지성사에서 19세기는 바로 이 ‘경험’이라는 범주가 문과학문의 전면 에 떠오르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처럼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것들만을 문과학문의 대상으로 다루자는 주장이 학문적 토론의 대세를 장악하게 된 시기로도 볼 수 있겠지요.

기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이과학문의 영역에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17세기에 어느 정도 달성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사 시간에 배웠겠지만, 아 이작 뉴튼에 의해서 완성된 근대의 정상과학은 자연세계의 관찰을 통해 경험적 데이 터를 얻은 뒤, 그것을 바탕으로 일단 말이 되는 가설을 세운 뒤에, 실험을 통해서 그 가설을 검증하여, 가설의 진리 또는 허위 여부를 판명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는 전과학적 전제들을 요구하고 시작하는 그 이전 시대의 과학을 뒤집어 버린, 일종의 패러다임 쉬프트였지요. 서구의 19세기에 문과학문의 영역에서 벌어진 패러다임 쉬프 트의 핵심은 바로 이와 같은 뉴튼적 이과학문의 방법론을 문과학문의 영역에 적극적 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 과정에 가장 중심이 되는 단어는 ‘실증’입니다. 이것은 한 마다로 실제의 경험을 통해 진리 또는 허위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가의 기준으로 학문성을 평가하겠 다는 말입니다. 언뜻 듣기에 이 말은 아주 당연하고 객관적인 듯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많습니다. 왜냐면 일단 실제로 실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 가 그리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과학을 내세우는 학자들은 국가가 기업이 제공하는 리서치 펀드에 목을 매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그 이유는 국가나 기업의 힘을 빌려야만 제대로 된 실증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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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에서 국가나 기업이 전과학적인 자기들만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게 된다는 것은 불 문가지의 일입니다. 어쨌든 국가나 기업이 갑이고 과학자는 을이니까요.

다른 한 가지 문제는 흔히 문과학문의 종사자들이 하는 소리인데, ‘실증’할 수 없는 지식들은 학문의 세계에서 쫓겨나 취향의 문제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 때 취향이 그래도 다수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영역이면 좋은데, 때로는 그렇지가 못 해서 아예 비정상의 영역 또는 광기의 영역으로 규정되는 현상마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미셀 푸코는 바로 이 문제를 천착하여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

과 같은 연구들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취향이나 심지어 비정상의 영역으로 쫓겨나게 되면, 아예 실증의 이념을 내세우는 근대적 과학주의, 합리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고, 나아가 그와 같은 사유의 원형으로 기독교나 플라톤주의를 지목한 뒤, 그 자체를 근 저에서 뒤집어 버리려는 철학적 운동이 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니이체 나 마르틴 하이데거를 연원으로 하는 20세기의 유럽 철학은 대체로 이와 같은 모티브 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80년대 이후 전 세계를 휩쓸었던 포스트모더니즘도 바로 이와 같은 맥락의 철학적 운동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실정법과 폭력]

결국 실증의 이념에 의해 추동되어 19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사회과학의 태동 은 법과 법학을 주권국가의 실정법 만능주의로 이끌었다고 일단 말해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 과정에는 근대적 국민국가의 법적 표현으로 육법전서의 법전화 운동이 내세워졌던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그 저변에 주권국가를 중 심으로 한 거대한 폭력의 집중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통찰해야 할 것입니 다.

이 문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은 역시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

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초두에서 푸코는 루이 15세의 암살을 시도했다가 잡힌 다 미엥이라는 사나이에 대한 처벌 장면을 장대하게 묘사하는데, 이는 그처럼 과시적인 처벌이 어느 샌가 보이지 않는 교도소주의에 의해 대체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한 글쓰기의 장치입니다. 교도소주의를 이끄는 감시의 논리야말로 근대 국가의 핵심적 논리라는 것인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여기서 일찍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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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 제안한 판옵티콘의 예를 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것을 언제나 볼 수 있는 판-옵티콘의 감옥을 벤담이 고안하여 제안했다는 것이야말로 벤담의 공리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근대적 주권국가와 결탁하게 되는 지를 보여주는 증거하고 할 수 있겠지요.

한마디로 실증의 이념이 담고 있는 폭력성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법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은 이처럼 근대적 주권국가주의나 그 표현으로서 실정법 만능주의와 결탁할 위험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다시 그것 을 통찰하고 그 구조를 분석하고 또 그것을 극복할 방안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요. 법 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은 권력의 도구로 법을 만드느냐 아니면 자유의 도구로 법을 만드느냐의 기로에 언제든 설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고 태어났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 다.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탄생이지요. 바로 이 문제를 통찰하면서 주권 국가의 실정법 만능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하는 맥락에서 이번 학기 우리가 검토하려는 법사회학 또는 법사회과학은 하나의 학문적, 실천적, 정치적 운동으로 출발했던 것입 니다. 적어도 서구적 맥락에서는 이렇게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다음 문제는 한국 사회, 또는 비서구 사회 일반의 맥락에서 법사회학 의 학문적 위상이 어떠냐는 것인데, 이 문제까지 답하기에는 아직 여러분이 준비가 덜 된 것 같습니다. 해서 이 문제는 조금 뒤로 미루려고 합니다만, 일단 서구의 경우 보다 더 문제가 복잡하고 꼬여 있다는 점, 달리 말해 법사회학 또는 법사회과학이 권 력의 도구로 쓰일 가능성과 자유의 도구로 쓰일 가능성 모두를 더욱 많이 가지고 있 다는 점 정도를 지적해 두겠습니다.

[요약정리]

실증의 이념과 그 밑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의 문제까지 이야기했기 때문에 법사회학적인 배경설명은 어느 정도 한 셈이 되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리의 이야기는 근대적 주권 국가의 법 시스템이 출현하기 전의 배경을 세 측면에서 살펴 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일단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어 서양 사람들의 뇌리에 오 랫동안 박혀 있었던 자연법의 이념, 그리고 이에 맞서는 법실증주의의 도도한 흐름이 있습니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후자의 흐름은 입법이라는 신 영역을 개척하게 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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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실 중세 말부터 시작된 유명론(nominalism)이라는 철학운동과 관련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흐름을 실천에 옮기는 법전화 운동. 또 그것에 의해 태어나는 육 법전서 체제와 실정법 만능주의를 여러분은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모든 법 문제는 실정법을 통해서 해결하면 되고, 만약 그것이 한계에 부딪힐 경우에는 새로운 입법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계몽주의의 법사상인 셈이지요.

우리는 여기에 대한 저항으로서 역사법학파의 도전을 다루었습니다. 사비니의 민족정신론은 그 한 예였고, 유럽 대륙과 달리 커먼로의 전통이 오히려 주류의 위치 를 차지한 앵글로-아메리카의 모습은 또 다른 예였습니다. 그러나 마치 유럽 대륙에 서 법전화주의자들과 역사법학파가 부딪혔던 것처럼, 영국에서도 커먼로주의자들에 대하여 벤다마이트들이 부딪혔고, 이것이 다시 ‘벤담 vs 버크’, ‘효용 vs 역사’라는 자 유주의 내부의 이항적 대립구도로 전개되었다고 정리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 볼 때, 분명한 것은 ‘자연법 이론 vs 법실증주 의’의 대립구도가 모더니티의 새로운 구도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모더니티의 혁신적인 모습은 예컨대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입 니다. 역사니, 도덕이니, 종교니 하면서 미적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최대 다수의 최 대 행복’이라는 단순하고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합리성의 측정과 그것에 기초한 지속 적인 입법을 통해 능동적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자는 주장 말입니다. 분명히 이 주장은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모더니티의 주장이고 또 자유주의의 급진적 주장입니 다.

그러나 우리는 앞의 이야기들을 마무리하기 전에 벤담류의 급진적 자유주의 의 이면에 실증의 이념과 연결된 폭력의 문제가 잠재되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사실 이 지적은 서구의 바깥에 있는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서구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 예를 들어 프리드리히 니체나 미셀 푸코 같은 사람들이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모더니티의 한계이자 더러운 이면을 목도하면서 이들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요? 초기 법사회학의 출범 배경에는 바로 이 문제를 꿰뚫어 보고 사회과학적으로 분 석하되, 결코 거기서 그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근본적인 대안을 내놓으려고 했던 노력 들이 결부되어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강의하게 될 칼 마르크스, 막스 베버, 에밀 뒤 르케임은 모두 이 점을 공유하고 있는 大법사회학자들입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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